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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1990. 4. 17. 선고 88나21512 제5민사부판결 : 상고기각
[토지소유권보존등기말소][하집1990(1),162]
판시사항

우리나라 구 관습상 호주의 기혼장남이 호주보다 먼저 사망한 경우 그의 사후양자를 선정할 수 있는 자 및 그 입양의 방식과 효과

판결요지

1912년 이래 우리나라에 시행되었던 조선민사령 제11조 에 의하면 당시의 일본 민법 중 입양 등 친족, 상속에 관한 규정은 우리나라에 적용되지 아니하고 우리나라의 관습에 의하도록 되어 있었는 바 당시 우리나라 관습에 의하면 호주의 기혼장남이 호주보다 먼저 사망한 경우에는 설사 차남이 있더라도 차남이 이를 대신하는 것은 허용하지 아니하고 반드시 망 장남의 사후양자를 입양하여야 하였고 이때 사후양자를 선정할 수 있는 자는 망 장남의 유처 또는 호주인 망 장남의 부모이었으며 입양의 약정이 성립된후 근친을 모아 이를 조상의 영전에 고하고 치주를 올리는 방식으로 입양이 성립되었으며 위와 같이 호주의 기혼장남이 자 없이 사망하고 부인 호주의 생전에 그 장남을 위하여 사후양자를 입양한 경우에는 호주 사망시에 위 양자가 양조부에 해당하는 전 호주로부터 직접 호주권을 승계하며 전 호주의 재산은 호주상속인인 양자만이 이를 상속한다.

참조조문

민법 제867조 , 제868조 , 조선민사령 제11조 [참조문헌] 친족상속에관한구관습(재판자료제29집220,281,283,287면)

피고, 피항소인

원고 종중

피고, 항소인

피고 1 외 1인

주문

1. 제1심판결 중 피고 1에게 별지목록기재 제5토지에 대하여 1984.5.3. 대전지방법원 부여등기소 접수 제7150호로서 경료된 소유권이전등기 및 별지목록기재 제6토지의 1/2지분에 대하여 1984.5.4. 같은 등기소 접수 제7148호로서 경료된 소유권이전등기의 각 말소등기절차의 이행을 명한 부분을 취소하고, 위 취소부분에 해당하는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2. 피고 1의 나머지 항소 및 피고 2의 항소를 각 기각 한다.

3. 원고와 피고 1 사이에서 생긴 소송총비용은 이를 4분하여 그1은 원고의, 나머지는 같은 피고의 각 부담으로 하고, 피고 2의 항소비용은 같은 피고의 부담으로 한다.

청구취지

원고에게,(1) 피고 1은 별지목록기재 제1토지에 관하여 1984.5.3. 대전지방법원 부여등기소 접수 제7100호로서 경료된 소유권보존등기, 제2토지에 관하여 같은 날 같은 등기소 접수 제7099호로서 경료된 소유권보존등기, 제3토지의 1/2지분에 관하여 같은 날 같은 등기소 접수 제7098호로서 경료된 소유권보존등기, 제4토지의 1/2지분에 관하여 같은 날 같은 등기소 접수 제7097호로서 경료된 소유권보존등기, 제5토지에 관하여 같은 날 같은 등기소 접수 제7150호로서 경료된 소유권이전등기, 제6토지의 1/2지분에 관하여 같은 날 같은 등기소 접수 제7148호로서 경료된 소유권이전등기 의 각 말소등기절차를 이행하고, (2) 피고 2는 별지목록기재 제3토지의 1/2지분에 관하여 위 같은 날 위 같은 등기소 접수 제7098호로서 경료된 소유권보존등기의 말소등기절차를 이행하라.

소송비용은 피고들의 부담으로 한다는 판결

항소취지

제1심판결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소송총비용은 원고의 부담으로 한다는 판결

이유

1. 본안전항변에 관한 판단

피고들 소송대리인은, 이 사건 원고로 된 원고 종중이라는 명칭의 종중은 존재하지 아니하고 가사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원고가 주장하는 1986.11.25.자 종중규약작성임시총회와 1987.1.10.자 대표자선임총회는 모두 실제로 개최된 일이 없이 결의서만 허위로 작성한 것이며, 또한 위 소외 1의 자손 중 성년남자는 약 70여명에 이르는데 위 대표자선임총회의 결의는 그 중 과반수도 채안되는 14명만이 참석하여 이루어진 것이어서 부적법하다 할 것이므로 위 총회에서 대표자로 선임된 소외 2는 원고종종의 대표자로서의 적격이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므로 살피건대, 종중은 공동선조의 후손 중 성년 이상의 남자를 종원으로 하여 구성되는 자연적 집단이므로 종중의 성립을 위하여 특별한 조직행위가 필요한 것은 아니고 다만 그 목적인 공동선조의 분묘의 수호, 제사라든가 종원 상호간의 친목을 위한 활동을 규율하기 위하여 규약을 정하는 경우가 있고 또 대외적인 행위를 할 때에는 대표자를 정할 필요가 있는 것에 지나지 아니하며, 반드시 서면화한 규약의 작성이 종중의 성립이나 활동의 필요조건은 아니라고 할 것이고, 또한 종중대표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종장, 문장 또는 연고항존자가 종족 중 성년이상의 남자를 소집하여 출석자의 과반수 결의로 선임하는 것이 일반 관례라고 할 것인바, 각 성립에 다툼이 없는 갑 제11호증의 1,2(위 토지대장표지 및 내용), 갑 제14호증의 1,2, 갑 제19호증의 1,2, 갑 제20호증의 1,2, 갑 제21호증의 1,2(각 족보표지 및 내용), 각 공성부분은 성립에 다툼이 없고 각 사성부분은 변론의 전취지에 의하여 진정성립이 인정되는 갑 제15호증의 1 내지 5(각 특수우편물수령증), 갑 제16호증의 1 내지 7(각 배달증명서) 갑 제18호증의 1 내지 8(각 배달증명봉투표면), 제1심증인 이상인의 증언에 의하여 각 진정성립이 인정되는 갑 제3호증의 1,2(회의록표지 및 내용), 같은 호증의 3(참석자명단), 갑 제4호증의 1,2(규약표지 및 내용), 갑 제13호증의 1,2(종원주소록 표지 및 내용), 갑 제17호증의(회의소집통보), 제1심증인 증인 이문우의 증언에 의하여 각 진정성립이 인정되는 갑 제45호증의 1(회의서류철표지), 같은 호증의 2,3(발기인회의록 표지 및 내용), 갑 제46호증의1(종원명단), 같은호증의 2,3(주소표지 및 내용), 갑 제47호증의1(내용증명발급상황표지), 같은 호증의 2,3,4(각 통보요청), 갑 제48호증(우편물수령증), 갑 제49호증의 1,2(종회소집통보서 표지 및 내용), 갑 제50호증의 1 내지 4(우편물수령증철 표지 및 각 우편물수령증), 갑 제51호증의 1,2(총회소집통보 수령증철 표지 및 수령증), 갑 제53호증의 1,2(회의록 표지 및 내용), 같은 호증의 3(참석자명단), 갑 제54호증의 1 내지 18(위임장철 표지 및 각 위임장), 갑 제55호증의 1,2(종중규약표지 및 내용)의 각 기재와 위 증인들의 각 증언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원고종중은 소외 1을 시조로 하는 자손들 중 성년남자들로 구성된 종중으로서 성문의 규약은 없이 충남 부여군 외산면 일대에 모여 살면서 위 시조의 제사를 공동으로 지내 연장자들이 간헐적으로 회합하여 대소사를 논의하여 오다가 이 사건 소제기 직전인 1987.1.10. 임시총회를 열어 종중규약을 작성하고 소외 2를 종중대표로 선임한 후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가 종원인 피고들이 위 총회의 적법성에 이의를 제기하자 같은 해 4.4. 및 같은 달 5.경 당시 성년남자인 종원은 모두 69명이었음에도 54명에게만 총회소집통보를 한 후 같은 달 14. 그중 14명이 참석하여 발기총회를 개최하고 참석자 전원의 동의로 종중규약을 재작성하는 한편 위 소외 2를 다시 대표자로 선임한 사실, 그런데 이사건 소송진행중 원고종중의 종원총수가 69명인 사실이 드러나자 종중원 중연고항존자인 소외 3이 종원 중 41명에게는 등기우편으로, 3명에게는 내용증명우편으로, 10명에게는 구두로 각 총회의 소집을 통보하였고, 나머지 사람은 주소를 알 수 없어 소집통보를 하지 못한 채 1988.1.24. 위 종원 중 24명은 참석하고 17명은 참석한 종원에게 의결권을 위임하여 총회를 개최하였는데 이 총회에서 위 참석자와 의결권위암자 중 40명의 참석으로 다시 성문의 규약을 작성하고 위 소외 2를 종중대표자로 추인한 사실 등을 인정할 수 있고 위 인정에 반하는 듯한 중인 소외 20의 증언은 믿지 아니하며, 달리 반증이 없는바,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원고종중은 앞에서 본바와 같은 실체를 인정할 수 있고, 소외 2는 원고종중의 총회에서 적법한 절차에 의하여 선임된 대표자라고 할 것이므로 위 원고종중의 실체와 대표자의 대표권을 다투는 피고들 소송대리인의 주장은 이유없다 할 것이다.

피고들 소송대리인은 원고종중의 조원 중 최연장자는 소외 4인데도 불구하고 1988.1.24.자 총회소집통지를 소외 3이 한것은 부적법하며 또한 주소불명자에 대하여는 최소한 신문공고를 통하여서라도 총호소집통지를 하여야 하는데도 이에 이르지 아니하고 개최된 위 1988.1.24. 자 총회는 부적법하므로 위 총회에서 대표자로 선출된 소외 2에게는 원고종중을 대표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하나, 우리나라 종중에 관한 고래의 관습에 의하면 종원 중 최연장자가 있더라도 동인보다 항렬이 높은 연고항존자가 있으면 연고항존자가 종장이 되어 총회의 소집을 통지하며 이 경우에 종원중 국내에 거주하고 소재가 파악되는 자에 한하여 소집통지를 발하면 그소집통지는 적법하다 할 것이므로, 원고종중의 종원 중 연고항존자인 위 소외 3이 종원 69명중 소재가 파악되는 54명에 대하여 소집통지를 한 이사건의 경우 위 총회는 적법히 소집되었다 할 것이므로 피고들의 위 주장은 이유없다 할 것이다.

2. 별지목록기재 제1,2,3,4 토지에 관한 청구에 대한 판단

(가) 등기부 기재

각 성립에 다툼이 없는 갑 제1호증의 1 내지 4(각 등기부등본)의 각 기재에 의하면, 1984.5.3. 부동산소유권이전등기등에관한특별조치법(법률 제3562호)에 의거하여 별지목록 기재 1,2 토지에 대하여는 피고 1 명의로, 제3토지에 대하여는 피고들 공동명의로, 제4토지에 대하여는 피고 1 및 소외 5(제1심공동피고)의 공동명의로 각 청구취지와 같은 소유권보존등기가 경료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사실이 인정된다.

(나)명의신탁관계

각 성립에 다툼이 없는 갑 제2호증의 1,3(각 임야대장등본), 같은호증의 2,4(각 토지대장등본), 갑 제5호증의 1(보증서철표지), 같은호증의 2(확인서발급신청서), 같은호증의 3(보증서), 갑 제6 내지 10(호증의 각 1,2(각 확인서발급신청서 및 보증서), 갑 제11호증의 1,2(위 토지대장 표지 및 내용), 갑 제19,20,21 각 호증의 각 12(각족보표지 및 내용), 갑 제22호증의1(형사1심기록표지), 같은호증의 2(별지), 같은호증의 3(공소장), 갑 제23호증의 1(형사1심 기록표지), 같은호증의 2(공소장), 갑 제24호증의 1(수사기록표지), 같은호증의 2(사건송치서), 같은호증의 3(기록목록), 같은호증의 4(고소장), 같은호증의 5,8 내지 12,16,18,22,27,28(각 진술조서), 같은호증의 19,20,21,26(피의자신문조서), 갑 제25호증의 1(등기신청서), 같은호증의 2(위임장), 갑 제26호증의 1(등기신청서), 같은호증의 2(위임장), 갑 제27 내지 30의 각 1,2(각 등기신청서 및 위임장), 갑 제31호증의 1 내지 4(각 소유명의인변경등록신청서), 갑 제35,36,37 각호증(각 제적등본), 갑 제38호증의 1(형사1심기록표지), 같은호증의 2(별지), 같은호증의 3(증거목록), 같은호증의 4(공소장), 같은호증의 5,9(각 공판조서), 같은호증의 7,10,11,12(각 증인신문조서), 갑 제39호증(판결), 을 제4호증의 1(임야대장), 을 제5호증의 1(임야대장)의 각 기재(다만 뒤에 믿지 아니하는 부분 제외)와 제1심증인 이상인, 소외 3, 이운우, 소외 16 및 당심증인 소외 35, 소외 33, 김영달, 김영기, 소외 20의 각 증언(다만 뒤에 믿지 아니하는 부분 제외)에 변론의 전취지(특히 뒤에서 보는 제5,6 토지에 대하여는 망 소외 6 등이 소유권보존등기 또는 이전등기를 경료하면서도 제1,2,3,4 토지에 대하여는 소유권보존등기를 경료하지 아니한 채 미등기상태로 최근까지 내려온 점)를 종합하면, 위 제1,3토지(각 임야)상에는 원고종중의 시조인 소외 1( ○○○씨 제27세)의 묘소를 비롯하여 원고종중원의 선대묘소 40여기가 설치되어 있고 제2,4 토지(전답)는 위 소외 1의 위토로서 위 토지들에 대한 사정 당시에는 위 소외 1의 10대 손으로서 장손인 망 소외 7이 이를 경작·관리하여 오다가 동인 사망후에는 동인의 차남인 위 소외 5가 이를 경작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토지사정 당시 원고종중이 편의상 종중원인 망 소외 6(제1,3,4토지)또는 망 소외 8(제2토지)에게 명의 신탁하여 동인들 명의로 위 제2,3,4 토지 및 위 제1토지가 포함된 충남 부여군 (상세지번 생략) 임야 177정 7보 5무보를 사정받아 토지대장 또는 임야대장에 동인들이 소유자로 등재되어 있었던 사실(실제는 위 소외 6, 소외 8이 임의로 자신들 명의로 위 토지를 사정받았다가 나중에 이를 알게된 종중원들이 이에 항의하자 원고종중과 사이에 명의신탁관계를 설정하기로 하는 한편 종주원들의 불만을 무마하고자 10 내지 20년 후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위 제1토지가 포함된 충남 부여군 (상세지번 생략) 임야 177정 7보 5무보를 6필지로 분할하여 위 제1토지가 포함된 1필지는 종토로 남겨두고 나머지 5필지는 위 소외 1의 후손 지파별로 나누어 주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피고들 및 위 소외 5는 공모하여 위 소외인들이 1951.11.17.과 1976.7.28. 각 사망하고 원고종중이 위 토지들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함을 기화로 위 토지들을 원고종중이나 위 소외인들 또는 그 상속인들로부터 매수한 일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위 특별조치법에 의거하여 위 토지들의 소유명의를 동인들 앞으로 하기로 마음먹고 위 제1내지 4 부동산에 관하여 동인들이 1970.2.5.과1974.3.10., 1973.2.5. 및 1970.2.5. 각 위 소외인들로 부터 매수한 것처럼 당시 농지위원이던 소외 9, 소외 10, 소외 11 등에게서 허위의 보증서를 발급받아 토지대장과 임야대장상의 소유명의를 동인들의 명의로 변경한 후 이에 기하여 1984.5.3. 위 각 토지들에 관하여 앞서 본 바와 같은 피고들 또는 위 소외 5명의의 각 소유권보존등기를 경료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위 인정에 반하여 위 각 토지들이 위 망 소외 6 또는 소외 8의 개인소유였음을 전제로 하는 피고들의 주장에 부합하는 갑 제24호증의 13,14,15,23,24,25(각 피의자신문조서), 갑 제32,33,34 각 호증(각 피의자신문조서), 갑 제38호증의 5(공판조서)의 각 기재와 제1심증인 소외 20, 소외 16 및 당심증인 소외 33, 김영달, 김영기, 소외 20의 각 일부증언은 믿기 어렵고, 을 제4호증의 2,3,4(각 계약서), 을 제5호증의 4(매매계약서)의 각 기재는 위 인정에 방해가 되지아니하며, 을 제11호증의 1 내지 20(각 확인서)는 그 진정성립을 인정할 자료가 없으며, 달리 위 인정을 뒤집을 만한 증거가 없다.

위와 같은 사실인정에 대한 피고들의 반대주장에 관하여 참고적으로 거듭 살펴보건대, 피고들은 설사 소외 1의 묘소가 있는 분할되기 전의 위 (상세지번 생략) 임야 177.75정이 원고종중 토지였다 하더라도 일정시에 종중원들의 합의에 따라 위 임야를 앞서 본 바와 같이 6필지로 분할하여 분배할 당시 위 제1토지가 포함된 (지번 생략) 임야는 마동포기 작은집(피고들의 선대인 망 소외 6 등의 소외 1지파), 나머지 5필지는 마동포기 큰집( 소외 1의 종가인 망 소외 7의 지파), 면동포기(소외 망 소외 8의 지파), 청양포기(망 소외 12의 지파), 보령포기(망 소외 13의 지파), 중산포기(망 소외 14의 지파)에게 각 나누어 주었으므로 그 이후에는 위 각 분할된 토지는 위 소외 1의 지파인 각 소종중 소유 또는 각 개인소유로 되었으므로 위 제1토지가 여전히 원고종중의 소유임을 전제로 하는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보건대, 앞서 든 증거들에 의하면 위 (지번 생략) 임야를 6필지로 분할하여 그중 5필지를 위 소외 1의 각 지파에게 나누어 준 사실은 인정되나, 피고들의 1989.6.26.자 준비서면 기재와 같이 피고들의 선대인 위 망 소외 6은 4촌인 망 소외 8과 더불어 면동포기에 속하는데 면동포기 몫으로 위 임야 중 상당부분을 분배받았으면서도 6촌으로서 지파를 달리하는 망 소외 7( 소외 1의 종가)과 더불어 마동포기 몫으로 이 사건 제1토지를 분배 받았다고 보기어려울 뿐만 아니라 종손인 위 소외 7을 제쳐두고 위 소외 1의 지손에 불과한 위 소외 6이 위 소외 1의 묘산과더불어 위 소외 1의 위토를 분배받았다고는 보여지지 아니하며 더구나 위토인 제2,4토지(전답)을 종손인 위 소외 7이 경작하여 왔던 점에 비추어 보아도 피고들의 위 주장은 이유없고, 오히려 앞서 인정한 바와 같이 위 제1토지가 포함된 (지번 생략) 및 위토인 제2,4토지는 종중토지로서 남겨두었는데 종중토지인 위 (지번 생략) 임야에 대하여 위 소외 6의 차남이자 피고들의 아버지인 망 소외 15가 임야를 임의로 (지번 생략)과 이 사건 제1토지인 (지번 생략)로 분할하여 그 중 (지번 생략) 임야 37.74절을 소외 16에게 임의 매각하여 버림으로써 현재는 묘산으로서 제1토지인 (지번 생략) 임야만이 남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 무리가 없다.

결국 위 각 인정사실에 의하면, 위 제1,2,3,4, 각 토지는 원고종중 소유의 토지로서 위 망 소외 6 또는 소외 8에게 사정명의가 신탁되어 있었을 뿐인데 피고들 및 소외 5가 위 각 토지가 미등기상태로 방치되어 있음을 기화로 법률상 원인없이 앞서 본 소유권보존등기를 경료하였다 할 것이므로, 위 각 소유권보존등기는 무효의 등기이고 위 각 토지는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원고종중 소유라 할 것이고 외부적으로는 명의수탁자인 위 소외 6 또는 소외 8의 상속인들의 소유에 속한다 할 것이다.

(다) 상속관계

앞서 본 갑 제19,20,21 각 호증의 1,2(각 족보, 표지 및 내용) 및 각 성립에 다툼이 없는 갑 제40,59,60,62(각 제적등본) 및 갑 제41,42,43,44,61,63,68,69,70,71(각 호적등본)의 각 기재와 당심증인 소외 35의 증언을 종합하면, 위 망 소외 6(1951.11.17.사망)은 처 유씨(1967.6.29. 사망)과 사이에 장남 소외 17(호적명으로서 족보명은 ○○, 1935.1.27.사망), 차남 소외 18(족보명은 ○○, 1951.12.20.사망), 삼남 소외 15(족보명은 ○○, 1985.5.25.사망)및 딸 소외 19(1979.9.19 사망)가 있었는데, 장남 소외 17이 처 한씨(1950.6.30.사망)와 사이에 딸 둘만 두고 후사없이 위 소외 6 생존시에 사망하고, 차남 이호우는 딸 셋 외에 아들은 망 소외 20 밖에 두지 못하였는데 반하여(동인외에 아들 소외 21이 더 있었으나 요절하였다), 삼남 소외 15는 처 소외 22와 사이에 딸 소외 23외에 장남 소외 24(1980.1.31. 사망), 차남 피고 1(이 사건 피고), 삼남 피고 2(이 사건 피고), 사남 소외 25를 두었으므로, 위 소외 6은 장남 소외 17 사망 직후 동인의 처 유씨와 위 망 장남의 유처 한씨 및 삼남 소외 15 및 그의 아들 소외 24와 합의하에 삼남 소외 15의 아들 위 소외 24를 위 망 장남 소외 17의 사후양자로 입양하기로 하고 입양의 약정설립후 근친을 모아 이를 조상의 연전에 고하고 치주를 올림으로써 위 소외 24를 위 망 소외 17의 사후양자로 삼았으며 그 취지가 ○○○씨 족보에는 등재되었으나 호적부에는 기재하지 아니한 채 지내오다가, 위 소외 6이 1951.11.17. 사망하고 잇달아 동인의 차남 소외 18 마저 1951.12.20. 사망하자 삼남이고 위 소외 24의 생부인 소외 15가 1952.10.17. 위 망 소외 6의 호주상속신고를 하고 동인이 호적부상 위 망 소외 6의 호주상속인으로 등재되었다가 위 소외 24가 1980.1.31. 사망하고 위 소외 15가 1985.5.25. 사망하자 위 소외 15의 손자 소외 26가 호주상속신고하여 신고대로 호적부에 등재된 사실 및 위 소외 24의 사망으로 인하여 동인의 재산은 유처인 소외 27과 아들 소외 26(호주상속), 소외 28, 소외 29, 소외 30, 소외 31이 공동상속한 사실, 한편 위 망 소외 8(1976.7.28. 사망)은 처 소외 32(1976.8.3. 사망)와 사이에 아들인 소외 33, 소외 34와 딸인 소외 35, 소외 36, 소외 37, 소외 38이 있어 이들이 위 망 소외 8 부부의 재산을 상속한 사실을 각 인정할 수 있는바, 위 망 소외 6의 장남 소외 17이 사망할 당시인 1935년경에 우리나라에 시행되었던 친족, 상속법규인 조선 민사령(명치 45.3.18. 제령 제7호) 제11조 에 의하면 당시의 일본 민법 중 입양 등 친족, 상속에 관한 규정은 우리나라에 적용되지 아니하고 우리나라의 관습에 의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는데(1943년 소화 18.6.9. 제령 제30호로써 개정된 조선민사령에 의하여 비로소 입양, 혼인 등은 시, 읍, 면장에 그 사유를 계출함으로써 효력을 발생하게 되었다), 당시의 우리나라 관습에 의하면 호주의 기혼장남이 호주보다 먼저 사망한 경우에는 설사 차남이 있더라도 망 장남을 위하여 사후양자를 입양하여야 하고 차남이 이를 대신하는 것은 절대로 허용되지 아니하였으며(법원행정처간 재판자료 제29집 220면 참조) 이때의 사후양자선정을 할 수 있는 자는 망 장남의 유처(위 같은 책 281면 참조) 또는 호주인 망 장남의 부 또는 모(위 같은 책 283면 참조)에게 선정권이 있었으며, 입양의 방식으로는 입양(입양)의 약정이 성립된 후 근친을 모아서 이를 조상의 영전에 고하고 치주를 올리는 것으로서 입양이 성립하였으며(위 같은 책 287면), 위와 같이 호주의 기혼장남이 자 없이 사망하고 부(부)인 호주의 생전에 그 장남을 위하여 사후양자를 입양한 경우에는 호주사망시에 위 양자가 양조부에 해당하는 전 호주로부터 직접 호주권을 승계하며 전 호주의 재산은 호주상속인인 양자만이 이를 상속하는바(위 같은 책 456면 및 486면, 487면 참조), 위와 같은 관습법에 따라 이 사건의 경우 위 망 소외 6의 재산은 위 소외 24(위 소외 6의 장남 소외 17의 사후양자)이 이를 단독 상속하고 뒤이은 동인의 사망(1980.1.31.)으로 인하여 동인의 처 자식인 앞서 본 소외 27(처), 소외 26(장남), 소외 28(차남), 소외 29(삼남), 소외 30(사남), 소외 31(오남)이 이를 다시 공동상속하였다 할 것이며, 위 망 소외 8의 재산은 궁극적으로 1976년경에 시행되었던 민법(법률 제2200호)에 따라 동인의 자인 소외 33(장남), 소외 34(차남), 소외 35, 소외 36, 소외 37, 소외 38(각 출가녀)가 공동상속하였다 할 것이다.

(라) 소 결론

위 각 인정사실에 의하면, 위 제1,2,3,4 토지의 실질적인 소유자이며 명의신탁자(채권자)인 원고종중이 명의수탁자인 위 망 소외 6, 소외 8의 앞서 본 각 상속인들을 대위하여 위 각 토지 위에 원인무효의 소유권보존등기를 경료한 피고들에 대하여 위 각 등기의 말소등기절차의 이행을 구하는 원고의 이사건 청구는 모두 정당하므로, 피고들은 피대위자인 위 망 소외 6, 소외 8의 상속인들에게(또는 대위자인 원고에게, 대법원 1966.6.12. 선고, 66다417 판결 참조)위 각 소유권보존등기의 말소등기절차를 이행할 의무가 있다할 것이다.

3. 별지목록기재 제5토지에 대한 청구에 관한 판단.

(가) 등기부의 기재 등

각 성립에 다툼이 없는 갑 제1호증의 5(등기부등본), 갑 제2호증의 5(토지대장등본),을 제7호증의 1(구 토지대장등본), 같은 호증의 2(소유권보존등기 권리증)의 각 기재에 의하면, 위 제5토지에 대하여는 1913년(대정 2년) 위에서 본 망 소외 6 명의로 토지사정받은 후 1934.12.29. 동인 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가 경료되었다가 1984.5.3. 위에서 본 부동산소유권이전등기등에관한특별조치법(법률 제356호)에 의거하여 피고 1 명의로 청구취지기재와 같은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어 있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며, 앞서 든 갑 제5호증의 1,2,3, 갑 제6 내지 10호증의 각 1,2, 갑 제22호증의 1,2,3, 갑 제23호증의 1,2, 갑 제24호증의 1,2,3,4,5,8,12,16,19,20,21,22,26,27,28, 갑 제26호증의 1,2,3, 갑 제38호증의 1,2,3,4,5,7,9,10,11,12, 갑 제39호증의 각 기재(다만 뒤에 믿지 아니하는 부분 제외)에 의하면, 1984.5.3. 경료된 피고 1 명의의 위 소유권이전등기는 앞서 본 제1,2,3,4 토지에 관하여 본 바와 같이 동 피고가 위 소외 6으로부터 위 토지를 매수한 바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1974.3.10. 동인으로부터 이를 매수한 양 농지위원이던 소외 9 등으로 하여 경료된 등기임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위 1984.5.3.자소유권이전등기는 일응 무효의 등기라 할 것이나 1984.5.3. 이전에는 위 소외 6(또는 동인으로부터 권리를 승계받은 자)이 위 토지를 사정받아 적법히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할 것이다.

(나) 명의신탁관계

원고는 위 제5토지도 당초 위 소외 1의 위토로서 원고종중 소유였으나 편의상 위 소외 6에게 명의신탁하여 동인 명의로 토지 사정받게 하였다고 주장하므로 살피건대, 원고 주장에 부합하는 앞서 본 갑 제22호증의 3(공소장), 갑 제23호증의 2(공소장), 갑 제24호증의 4(고소장), 같은 호증의 5,8 내지 12,16,18,22,27,28(각 진술조서), 같은 호증의 19,20,21,26(피의자신문조서), 갑 제38호증의 7,10,11,12(각 증인신문조서), 갑 제39호증(판결)의 각 기재 중 해당부분과 제1심증인 이상인, 소외 3, 이운우, 소외 16 및 당심증인 소외 35, 이운우, 김영달, 김영기, 소외 20의 각 증언 중 해당부분은 앞서 본 갑 제11호증의 1,2(위토대장 표지 및 내용, 위 제2,4 토지에 대하여는 소외 1의 종손인 망 소외 7이 위토의 수호자로 기재되어 있으나 제5토지에 대하여는 피고 1의 아버지인 망 소외 15가 위토의 수호자로 기재되어 있다), 같은 갑 제33호증(피의자신문조서, 소외 1의 위토인 제2,4 토지는 소외 1의 10대 종손인 위 소외 7의 차남이 소외 5가 이를 경작, 관리하고 있는데 반하여 제5토지는 종손이 아닌 위 소외 6의 손자이고 위 소외 15의 장남인 피고 1이 이를 경작, 관리하여 왔다고 진술되어 있다) 및 같은 을 제7호증의 2(소유권보존등기권리증, 종중토지인 위 제1,2,3,4, 토지에 대하여 종손이 아닌 위 소외 6 및 소외 8이 단독명의로 사정받은 데 대하여 종중원들이 항의하자 동인이 위 제1토지가 분할되기 전의 종산이던 (지번 생략)번지를 분할하여 각 지파별로 나누어 줄 당시거나 그 전후로 추측되는 1934년에 위 소외 6이 위 제1,2,3,4 토지를 미등기상태로 방치시킨 것과는 달리 위 제5토지에 대하여는 자신의 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를 경료한 후 그 등기필증을 그자와 손에 이르기까지 약55년간 보관하여 오다가 이 사건 변론기일에 피고 1이 이를 증거로서 제출하였다)의 각 기재와 변론의 전취지(원고가 이 사건 제소시에는 제1,2,3,4 토지에 대해서만 소유권을 주장하다가 그 후에 뒤에서 보는 제6토지와 더불어 위 제5토지에 대하여도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청구를 확장하였다)에 비추어 믿기 어렵거나 원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부족하고 그밖에 달리 위 제5토지 역시 내부적으로는 원고종중 소유의 위토임을 뒷받침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

(다) 소 결론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위 제5토지 역시 원고종중 소유로서 망 소외 39에게 명의신탁하였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위토지가 실질적으로는 원고종중 소유임을 전제로 하는 원고의 이 부분 청구는 결국 이유없음에 귀착한다 할 것이다.

4. 별지목록 기재 6토지에 관한 청구에 대한 판단.

(가) 등기부의 기재 등

각 성립에 다툼이 없는 갑 제1호증의 6(등기부등본), 갑 제2호증의 6(토지대장등본), 을 제10호증의 1(구 토지대장등본), 같은 호증의 2(소유권보존등기권리증) 및 변론의 전취지에 의하여 진정성립이 인정되는 을 제10호증의 3(매도증서)의 각 기재에 의하면, 위 제6토지에 대하여는 1913년(대정 2년) 망 소외 40(원고종중의 종중원이 아니다)이 토지사정받아 1925.4.17. 동인 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를 경료한 후 같은 날 망 소외 6, 소외 8의 공동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었다가, 1984.5.3. 위에서 본 부동산소유권이전등기등에관한특별조치법(법률 제3562호)에 의거하여 피고 1 및 소외 5의 공동명의로 청구취재기재와 같은 소유권이 전등기가 경료되어 있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며, 앞서 든 갑 제5호증의 1,2,3, 갑 제 6 내지 10호증의 각 1,2, 갑 제22호증의 1,2,3, 갑 제23호증의 1,2, 갑 제24호증의 1,2,3,4,5,8,12,16,19,20,21,22,26,27,28, 갑 제25호증의 1,2,3, 갑 제38호증의 1,2,3,4,5,7,9,10,11,12, 갑 제39호증의 각 기재(다만 뒤에 믿지 아니하는 부분 제외)에 의하면,1984.5.3. 경료된 피고 1 및 위 소외 5 명의의 위 소유권이전등기는 동인들이 위 망 소외 6, 소외 8로부터 위 토지를 매수한 바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1970.3.5. 위 소외 망인들로부터 이를 매수한 양 농지위원이던 소외 9 등으로 하여금 허위의 보증서를 작성하도록 하여 이를 근거로 하여 경료된 등기임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위 1984.5.3.자 소유권이전등기는 일응 무효의 등기라 할 것이나 1984.5.3. 이전에는 위 소외 40이 이를 토지사정받아 위 소외 6, 소외 8(또는 동인들로 부터 권리를 승게받은자)이 위 토지를 적법히 매수하여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할 것이다.

(나) 명의신탁관계

원고는 위 제6토지도 당초 원고종중이 위 망 소외 6, 소외 8에게 명의를 신탁하여 매수하였던 토지로서 원고종중 소유 토지라고 주장하므로 살피건대, 무릇 위 토지와 같이 당초 제3자 명의로 등기되어 있던 부동산을 원고가 타인에게 명의를 신탁하여 매수하였음이 인정되려면 명의수탁자인 타인이 위 부동산을 매수할 당시 그 매수대금을 명의신탁자인 원고가 마련하여 명의수탁자에게 제공하였다거나 또는 명의수탁자인 위 타인이 이를 매수하여 명의신탁자인 원고에게 그 부동산을 기증하였음에 대한 구체적증거가 있어야 한다 할 것인데, 원고의 전거증에 의하여도 이를 인정할 구체적인 증거는 없고 원고의 위 주장을 뒷받침하는 듯한 앞서 본 갑 제22호증의 3, 갑 제23호증의 2, 갑 제24호증의 4,5,8 내지 12,16,18,22,27,28,19,20,21,26, 갑 제38호증의 7,10,11,12, 갑 제39호증의 각 기재 중 해당부분과 제1심증인 이상인, 소외 3, 이운우 및 당심증인 소외 35의 각 증언 중 해당부분은 앞서 본 갑 제10호증의 2,3(소유권보존등기권리증 및 매도증서, 종중토지인 위 제1,2,3,4, 토지에 대하여 위 소외 6, 소외 8이 단독명의로 토지사정받은 사실을 원고종중원들이 뒤늦게 알고 이에 대한 불만을 나타낼 당시인 1925년 위 소외 6, 소외 8이 동인들 명의로 위 제6토지를 매입하여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한 후 그 등기필증을 약 65년간 보관하여 오다가 이 사건 변론기일에 피고 1이 이를 증거로 제출하였다)의 각 기재와 변론의 전취지(원고가 이 사건 제소시에는 위 토지에 대하여 소유권을 주장하지 아니하다가 나중에 위 토지에 대해서도 청구를 확장하였다)에 비추어 믿기 어렵거나 원고의 위 주장을 뒷받침하기 부족하고 그밖에 달리 위 토지 역시 원고종중 소유임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제1심 공동피고였던 소외 5가 위 제6토지에 관한 원고의 청구를 인용한 제1심판결에 승복하고 항소하지 아니한 사정은 위 인정에 방해가 되지 아니한다. 왜냐하면 위 토지에 관한 원고의 주장이 인용되면 위 토지는 종중토지로서 장손인 소외 35(동인의 친형)의 장남인 소외 41의 관리하에 넘어가게 되고, 피고들의 주장이 인용되면 위 토지는 동인의 7촌 숙부인 위 소외 6 및 소외 8의 상속인들의 소유로 귀착되어 그어느 경우에도 공인에게는 실질적인 권리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다) 소 결론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위 제6토지가 원고종중 소유로서 망 소외 6, 소외 8에게 명의신탁하였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위 토지가 실질적으로는 원고종중 소유임을 전제로 하는 원고의 이 부분 청구 역시 이유없음에 귀착한다 할 것이다.

5. 결론

그렇다면 피고들은 위 제1,2,3,4 토지 또는 그1/2지분에 관하여 경료된 위 각 소유권보존등기의 말소등기절차를 이행할 의무가 있다할 것이고, 위 제5,6 토지에 관한 원고의 주장은 이유없으므로, 원고의 청구는 위 인정범위내에서 이를 인용하고 나머지 청구를 기각할 것인바, 이와 결론을 달리하여 원고의 청구를 모두 인용한 제1심판결 중 제5,6 토지에 관한 부분은 이를 취소하고 위 취소부분에 해당하는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고 피고 1의 나머지 항소 및 피고 2의 항소는 이유없으므로 이를 각 기각하여 소송비용의 부담에 관하여는 민사소송법 제89조 , 제92조 , 제93조 , 제95조 , 제96조 를 각 적용하며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유태현(재판장) 최세모 배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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