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보석가게를 운영하는 자가 손님이 구하는 물건을 다른 보석상에서 가져온 경우를 보석상 사이에 그 물건에 대한 매매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판단하여 물건을 가져간 보석상에 대하여 횡령죄 소정의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를 부정한 원심판결을 횡령죄에 대한 법리오해 또는 심리미진의 위법이 있다는 이유로 파기한 사례
판결요지
보석가게를 운영하는 자가 손님이 구하는 물건을 다른 보석상에서 가져온 경우를 보석상 사이에 그 물건에 대한 매매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판단하여 물건을 가져간 보석상에 대하여 횡령죄 소정의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를 부정한 원심판결을 횡령죄에 대한 법리오해 또는 심리미진의 위법이 있다는 이유로 파기한 사례.
참조조문
피고인
피고인
상고인
검사
변호인
변호사 윤석정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지방법원 본원 합의부에 환송한다.
이유
1. 공소사실의 요지
주위적으로, 피고인은 서울 중구 남창동 4-3 우주상가 지하 1층 38호 소재 '성은사'라는 보석가게를 운영하는 자인바, 2000. 8. 16. 14:00경 위 상가 1층 8호 소재 피해자 이옥희 운영의 '성심사'에서, 위 '성은사'에 찾아온 손님이 급하게 다이아몬드를 찾자 물건을 구하던 중, 피해자로부터 다이아몬드 1.06캐럿 짜리 1개 시가 900만 원 상당을 잠시 빌려 피해자를 위하여 보관하던 중, 같은 해 9. 6.경 위 '성심사'에서 피해자로부터 빌려간 다이아몬드를 돌려달라는 요청을 받고도 아무런 이유 없이 그 반환을 거부하여 이를 횡령하고, 예비적으로, 위 일시 장소에서 위 다이아몬드를 구입할 의사나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에게 마치 그 대금을 지급할 것처럼 기망하고, 이에 속은 피해자로부터 즉석에서 위 다이아몬드를 교부받아 편취한 것이라는 것이다.
2. 원심의 판단
원심은, 주위적 공소사실에 대하여, 검사는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다이아몬드를 빌려간 후 이를 판매하지 못하였으므로 상관습상 또는 당사자들의 의사해석상 빌려간 다이아몬드를 보관하고 있다가 반환하여야 할 것이므로 피고인은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바, 기록을 살펴보아도 피고인 및 피해자 등 상인 사이에 다른 가게에서 물건을 가져가 판매하려 하였으나 판매하지 못한 경우에는 가져간 물건 자체를 반환하여야 한다는 상관습이 존재한다고 인정할 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고, 가사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다이아몬드를 빌려갔다고 하더라도 피해자 이옥희의 진술에 의하면, 피고인 및 피해자가 상점을 경영하는 위 상가에서는 손님이 찾는 물건이 자신의 가게에 없는 경우에 다른 상인의 가게에서 물건을 가져와 손님에게 판매하고 그 대금을 사후에 정산하는 사례가 종종 있어 왔는데, 이 사건 당시 피고인이 피해자를 찾아와 다이아몬드를 달라고 말하자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다이아몬드를 건네 주면서 가격을 알려 주었고,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싸게 안돼?"라고 묻자, 피해자는 "자기, 잘 알잖아."라고 대답하였다는 것인바, 이러한 사실관계를 기초로 하더라도 피고인과 피해자의 거래행위는 그 법률관계를 매매로 볼 것인데,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다이아몬드를 건네 주면서 서로 가격을 결정하고 그 대금을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매매계약은 성립되었다 할 것이고, 따라서 피고인은 다이아몬드를 판매한 경우에는 약정된 대금을, 판매하지 못한 경우에는 위 대금 또는 위 대금에 상당하는 다이아몬드(건네 받은 다이아몬드이거나 위 약정된 대금에 상응하는 다이아몬드)를 피해자에게 건네 줌으로써 그 변제의무를 이행하는 것으로 해석함이 타당하므로, 피고인이 횡령죄 소정의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할 수 없다(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한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은 별론으로 한다.)고 판단하고, 예비적 공소사실에 대하여는,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이 사건 다이아몬드를 가져갈 때 그 대금을 지급할 의사가 없었다거나 이를 지급할 능력이 없었다고 볼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판단한 다음, 결국 피고인에 대한 주위적, 예비적 공소사실 모두 범죄사실에 대한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고 하여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 판결을 선고하였다.
3. 당원의 판단
가. 주위적 공소사실에 대하여 원심은,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다이아몬드를 건네 주면서 가격을 알려 주자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싸게 안돼?"라고 물었으며, 피해자는 피고인에게 "자기, 잘 알잖아."라고 말하였다고 진술하고 있는 점에 착안하여, 피해자의 주장과 같이 설사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다이아몬드를 건네 주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 위 다이아몬드의 가격 및 대금지급에 관한 약정을 하여 매매계약이 성립되었으므로 피고인은 그 대가를 지급할 민사상의 책임을 질 뿐이지, 피고인에게 횡령죄 소정의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로서의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본 듯하다.
나. 그러나 원심의 판단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수긍하기 어렵다.
(1) 공소외 임종률의 진술에 의하면, 피고인과 피해자의 상가에서는 찾아온 손님이 구하는 물건이 자신의 가게에 없는 경우에 다른 상인의 가게에서 물건을 가져다 손님에게 판매하여 주는 것이 서로간의 정이라고 여겨 서로 믿고 아무런 증표 없이 그와 같이 하고 있고, 증표를 요구하는 상인에게는 다른 상인들이 물건을 잘 빌려 주지도 않고 구색도 맞추어 주지 않는 등 따돌리며, 그와 같이 서로 증표 없이 거래함으로 인하여 상인들 간에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고(수사기록 2책 1권 44정, 공판기록 54정), 이와 같은 관행을 '되돌이'라고 하며, 서로 돈을 빌려 주지는 않을망정 물건은 빌려 준다는 것인바(수사기록 2책 2권 43정), 만약 위와 같은 관행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는 자금이 영세한 상인들, 특히 다이아몬드와 같이 고가의 품목을 취급하는 상인들이 자금력의 부족, 자금운용의 경제성 등의 측면에서 모든 종류의 품목을 구비할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상부상조의 취지로 생겨난 관행이라 보여진다.
(2) 그런데 피고인의 진술에 의하면, 당시 피고인은 자신의 가게에 온 손님이 원하는 다이아몬드가 없자 그 다이아몬드를 구하려고 피해자의 가게에 갔다가 그냥 돌아 온 적이 있으며, 위 상가에서는 남의 가게에서 물건을 가져와 판매를 하는 경우에는 통상 2-3일 이내에 물건 값을 결제하여 주고, 물건을 판매하지 못하면 이를 반품하는 것이 관행이라는 것이고(수사기록 2책 1권 20, 24정), 피고인과 피해자의 진술에 의하면, 그 전에 피해자가 피고인의 사파이어를 가져다가 판 적이 있으며, 피해자의 진술에 의하면, 피고인이 그 전에도 피해자의 보석을 가져갔다가 팔지 못하고 되돌려 준 적이 몇 번 있었다는 것이다(수사기록 2책 2권 97정).
(3) 위와 같은 점들을 고려할 때, 만약 피고인이 앞서 본 바와 같은 일명 '되돌이' 관행에 따라 피해자에게서 다이아몬드를 가져온 것이라면, 당시 피고인의 의도는 피해자가 제시하는 가격에 자신의 적정이윤을 더한 가격으로 위 다이아몬드를 소비자에게 매도하여 이윤을 취하고, 소비자에게 판매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특별히 이를 피고인이 계속 보유하여야 할 사정이나 의사가 없는 한 다시 원소유자인 피해자에게 반환하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여지고, 당시 피고인이 피해자와 나눈 대화의 취지는 피고인의 적정이윤이 보장되는 소비자 판매가격을 결정하기 위한 기준을 알고, 이왕이면 소비자에게 좀더 저렴한 판매가격을 제시하여 판매를 쉽게 성사시키기 위하여 피해자가 원하는 소비자 판매가격을 낮추려는 것이었다고 판단되며, 피해자도 피고인의 그런 의도를 알고 다이아몬드를 건네 주었으며, 피해자의 위 다이아몬드 교부 행위는 피고인으로 하여금 소비자에게 판매목적물인 다이아몬드를 제시할 기회를 주려는 편의제공에 불과하다고 여겨진다.
(4) 거래상의 관행에서 추단되는 피고인과 피해자의 의사와 사실관계가 위에서 본 바와 같다면, 당시 피고인과 피해자는 피고인의 가게에 온 손님을 놓치지 아니하고 고객확보를 하기 위하여 또는 피해자의 물건을 팔아 위에서 본 방식으로 서로가 이윤을 취하기 위하여 이 사건 다이아몬드를 수수한 것일 뿐, 이를 원심과 같이 매매계약이 체결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할 것이니, 피고인은 위 다이아몬드를 소비자에게 판매한 경우에는 그 판매대금에서 자신의 몫인 이윤이 있을 경우에는 이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피해자에게 지급하고, 만약 판매하지 못한 경우에는 위 다이아몬드를 원래대로 피해자에게 돌려 주어야 하는 법률관계로 파악하여야 할 것이다.
(이와 달리, 원심과 같이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다이아몬드를 가져간 때에 그 매매계약이 성립되었다고 보게 되는 경우에는, 피고인은 위 다이아몬드를 소비자에게 판매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에도 그 다이아몬드를 계속 보유하면서 피해자에게 대금을 지급할 의무를 지게 될 것인바, 이는 이윤을 추구하는 상인인 피고인으로서 피해자 대신 다이아몬드 도매상으로부터 더 싸게 다이아몬드를 구입하는 기회를 잃게 되고, 팔리지도 않은 다이아몬드를 대금을 지급하고 구입하여 자금운용이 경색되는 것을 감수하게 되어 사리에 맞지 않고, 서로의 편의를 도모하겠다는 뜻에서 출발한 위 관행의 취지에도 어긋난다).
(5) 그런데 피해자의 진술에 의하면, 피고인은 상당한 기간이 지난 후에도 위 다이아몬드 대금을 지급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하여 위 다이아몬드를 반환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며, 피해자가 그 반환을 요구하자 아예 다이아몬드를 가져온 사실을 부인하면서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인바, 만약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위 다이아몬드를 가져간 것이 맞다면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은 위 다이아몬드 대금이나 다이아몬드 자체를 피해자에게 반환하여야 할, 횡령죄 소정의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 할 것인바, 그와 같은 지위에 있는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다이아몬드를 교부받은 사실조차 부인하는 이상, 피고인의 위 다이아몬드에 대한 불법영득의사가 객관적으로 외부에 드러났다 할 것이다.
다. 그렇다면 원심으로서는, 공소사실과 같이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다이아몬드를 가져 갔다고 하더라도 그 매매계약이 체결된 이상 피고인이 횡령죄 소정의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지 않다고 단정지을 것이 아니라,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 다이아몬드의 교부가 있었는지 여부, 상인들 사이에 일명 '되돌이'의 관행이 존재하는지 여부, 그 관행의 내용,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의 위 다이아몬드 거래가 위 관행에 따른 거래였는지 여부에 관하여 심리한 다음 판단에 나아갔어야 할 것이다.
결국, 원심은 횡령죄에 관한 법리오해나 심리미진의 위법을 저질렀다 할 것이고, 이러한 위법은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다.
이 사건 다이아몬드의 소유권이 여전히 피해자에게 귀속한다는 취지하에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의 주장은 이유 있다.
4. 그러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더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