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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방법원 2013. 11. 8. 선고 2012가합59393 판결
[손해배상(기)][미간행]
원고

원고 1 외 26인(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유한) 정평 담당변호사 임성택 외1인)

피고

대한민국(소송대리인 정부법무공단 담당변호사 김재학)

2013. 10. 11.

주문

1. 피고는 원고 9, 원고 10을 제외한 나머지 원고들에게 별지 ‘손해금액 계산표’의 ‘인용금액’ 란 기재 각 금원 및 위 각 금원에 대하여 2013. 10. 11.부터 2013. 11. 8.까지는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2. 원고 9, 원고 10을 제외한 나머지 원고들의 각 나머지 청구와 원고 9, 원고 10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3. 소송비용 중 원고 9, 원고 10을 제외한 나머지 원고들과 피고 사이에 생긴 부분의 90%는 위 원고들이 부담하고 나머지는 피고가 부담하며, 원고 9, 원고 10과 피고 사이에 생긴 부분은 원고 9, 원고 10이 부담한다.

4.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피고는 원고들에게 별지 ‘손해금액 계산표’의 ‘청구금액’ 란 기재 각 금원 및 위 각 금원에 대하여 이 사건 변론종결일부터 이 사건 판결 선고일까지는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이유

1. 기초사실

가. 불법 체포 및 수사

□□대학교 경상대학 경제학과 3학년에 중퇴한 원고 1(재심대상판결의 원고 1)과 같은 학교 전자공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원고 11(재심대상판결의 원고 9), 같은 학교 경영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원고 18(재심대상판결의 원고 16), 같은 학교 사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원고 24(재심대상판결의 원고 22)는(이하 위 원고들을 통틀어서 ‘원고 1 등’으로 지칭한다),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이하 ‘민청학련’이라고 한다) 총책인 소외 5, 민청학련 지도부 요원 소외 6 등과 연계하여 □□대학교 내에서 유신헌법과 대통령긴급조치의 철폐를 주장하는 데모를 주도하였다는 이유로 1974. 4월경 영장 없이 체포되어 조사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원고 1 등은 경찰관과 중앙정보부 소속 수사관으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하였다.

나. 유죄판결과 형 집행

원고 1 등은 모두 대통령긴급조치 주1) 제1호 위반 범죄사실로 기소되었고, 구 헌법(1980. 10. 27. 헌법 제9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같다) 제53조 의 대통령긴급조치권에 기하여 1974. 1. 8. 선포된 대통령긴급조치 제2호에 의하여 설치된 비상보통군법회의에서 1974. 8. 8. 원고 1은 징역 10년, 원고 11은 징역 8년, 원고 18, 원고 24는 각 징역 7년을 각 선고받았다(74비보군형공 제22호 사건).

이에 위 원고들이 항소하여 1974. 1. 8. 선포된 대통령긴급조치 제2호에 의하여 설치된 비상고등군법회의는 1974. 9. 23. 원고 1에 대하여 징역 7년, 원고 11에 대하여 징역 5년, 원고 18, 원고 24에 대하여 각 징역 3년을 각 선고하였고(74비고군형항 제22호 사건), 위 비상고등군법회의의 판결은 그대로 확정되었다.

원고 1은 314일, 원고 11, 원고 18은 각 326일, 원고 24는 317일 동안 형 집행을 받던 중 원고 1, 원고 11, 원고 18은 1979. 12. 23., 원고 24는 1978. 12. 27. 각각 사면으로 석방되었다.

다. 원고 1에 대한 언론보도

1974. 4. 25.자 동아일보와 경향신문에 실린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사건 체계도’에는 원고 1이 민청학련의 □□대책으로 기재되어 있고, 함께 실린 ‘관련자 인적사항’ 기사를 통하여 원고 1의 나이, 출신지, 주소, 학력이 공개되었다.

라. 과거사건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의 조사결과 발표

이후 인혁당 및 민청학련 사건에 관한 진실규명을 위한 조사를 실시하기로 결정한 국가정보원 산하 과거사 건진실규명을 통 한발전위원회(이하 ‘과거사위원회’라고 한다)는 2005. 12. 7. “민청학련 사건은 순수한 반정부시위를 대통령이 직접 나서 공산주의자들의 배후조종을 받는 인민혁명 시도로 왜곡하여 1천여 명을 영장 없이 체포, 구금하여, 7명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수십 명을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의 장기형에 처한 학생운동 탄압사건으로 규정하고, 그 사건에서 피고인들에게 자백을 강요하거나 핵심인물들의 소재를 찾기 위하여 국가기관에 의한 고문이나 가혹행위가 자행되었으므로, 피고인들의 명예회복과 국가 차원의 적절한 배상과 보상이 국가정보원과 다른 국가기관의 책임하에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라는 취지의 의견을 표명하였다.

마. 재심판결

원고 1 등은 2010. 11. 19. 서울고등법원 2010재노79호 로 위 비상고등군법회의 판결에 대한 재심을 청구하였는데, 서울고등법원은 2013. 5. 10. ‘대통령긴급조치 제1호는 민주주의 본질적 요소인 표현의 자유 내지 신체의 자유와 헌법상 보장된 청원권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것으로서 그 발동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목적상 한계를 벗어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헌법에 위반되어 무효’이고, ‘원고들이 수사과정에서 가혹행위를 당한 사실이 인정되어 재심대상판결의 공소의 기초가 된 수사에 관여한 수사관이 그 직무에 관하여 형법 제125조 의 폭행 가혹행위죄를 범한 사실이 증명되었으므로 재심대상판결에서 유죄의 증거로 삼은 증거들은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에서의 진술로서 증거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고, 위 판결은 그 무렵 확정되었다.

【인정근거】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4 내지 8, 10 내지 12, 19, 22호증(가지번호 있는 것은 각 가지번호 포함, 이하 같다)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본안 전 항변에 대한 판단

가. 주장의 요지

피고는, 원고 1, 원고 18이 이 사건 불법행위와 관련하여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하 ‘민주화보상법’이라 한다)에 따른 보상금 지급결정에 동의하고 보상금을 지급받음으로써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 에 따라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에 대하여 재판상 화해가 성립되었으므로, 원고 1, 원고 18의 소는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다고 주장한다.

나. 판단

재판상 화해는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있고 창설적 효력을 가지는 것이므로 화해가 이루어지면 종전의 법률관계를 바탕으로 한 권리, 의무관계는 소멸하는 것이나, 재판상 화해의 창설적 효력은 당사자 간에 다투어졌던 권리관계 즉, 계쟁 권리관계에만 미치는 것이지 당사자 간에 다툼이 없었던 사항에 관하여서까지 미치는 것은 아니므로 재판상 화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의하여 화해의 대상이 되지 않은 종전의 다른 법률관계까지 소멸하는 것은 아니고 재판상 화해가 가지는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도 소송물인 권리관계의 존부에 관한 판단에만 미친다( 대법원 1997. 1. 24. 선고 95다32273 판결 등 참조).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 은 “이 법에 의한 보상금 등의 지급결정은 신청인이 동의한 때에는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에 대하여 민사소송법의 규정에 의한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고, 같은 법 시행령 제20조 는 “ 제18조 의 규정에 의하여 보상결정통지서·생활지원금지급결정통지서 또는 명예회복결정통지서를 받은 신청인이 보상금 등의 지급을 받고자 하는 때에는 다음 각호의 사항을 기재한 별지 제10호 서식의 동의 및 청구서에 보상결정서ㆍ생활지원금지급결정서 또는 명예회복결정서 정본과 신청인의 인감증명서 각 1부를 첨부하여 보상위원회에 제출하여야 한다. 3. 보상결정에 동의하고 보상금 등의 지급을 청구한다는 취지”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같은 법 시행령 별지 제10호 서식의 동의 및 청구서에는 “신청인은 그 보상금 등을 받은 때에는 그 사건에 대하여 화해 계약하는 것이며, 그 사건에 관하여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다시 청구하지 아니할 것임을 서약합니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그런데 민주화보상법은 민주화운동관련자에 대한 보상으로 보상금, 의료지원금, 생활지원금을 두고 있는데, ① 민주화보상법 제7조 는 사망하거나 행방불명으로 확인된 경우 및 상이를 입은 경우 일실수익의 산출 방식을 적용하여 보상금을 계산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위 보상금은 일실수익에 관한 소극적 손해에 상응하는 것이고, ② 같은 법 제8조 는 상이를 입은 경우 치료·보호 및 보장구 구입에 실질적으로 소요된 비용을 의료지원금으로 규정하고 있어, 위 의료지원금은 치료비 등에 관한 적극적 손해에 상응하는 것이며, ③ 같은 법 제9조 는 구금이나 해직의 경우 생활을 보조하기 위한 지원금으로 생활지원금을 규정하고 있는데, 같은 법이 사망, 행방불명, 상이 등과 같이 중대한 피해에 대하여는 별도로 위자료를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지 않으면서 구금이나 해직 등과 같이 비교적 가벼운 피해에 대하여서만 위자료를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민주화보상법의 전체적인 체계에 반하므로, 위 생활지원금 역시 소극적 손해에 상응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 법원의 민주화운동 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원회’라고 한다)에 대한 2013. 9. 2.자 사실조회결과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원고 1, 원고 18은 심의위원회에 이 사건을 포함하여 유신체제에 항거한 행위에 관하여 민주화운동관련자로서 보상금 또는 생활지원금의 지급을 신청한 사실, 위 원고들은 심의위원회로부터 생활지원금 또는 보상금 지급결정을 받고 이에 동의하여, 원고 1은 2006. 5. 29. 생활지원금 50,000,000원, 2011. 12. 9. 보상금 49,614,590원(휴업보상금 2,070,860원, 향후치료비 19,133,520원, 기지급 치료비 28,410,210원), 원고 18은 2005. 8. 18. 생활지원금 12,342,360원을 수령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원고 1, 원고 18과 피고 사이에 이 사건 불법행위로 인하여 입은 소극적 손해에 관하여는 재판상 화해가 성립되었다 할 것이지만, 위자료 손해에 관하여는 피고와 사이에 재판상 화해가 성립되었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피고의 항변은 이유 없다.

3. 손해배상책임의 성립

가. 피고의 불법행위

1) 형사절차에서의 위법행위

구 헌법 제8조 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이를 위하여 국가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제10조 제1항 은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금, 압수, 수색, 심문, 처벌, 강제노역과 보안처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며, 제2항 은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여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국민 개개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할 국가의 의무와 신체의 자유를 헌법 상 권리로 보장하고 있었다. 또한 구 형사소송법(1980. 12. 18. 법률 제328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309조 는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 폭행, 협박, 신체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으로 임의로 진술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피고 소속 수사관들은 헌법이 규정한 적법절차와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를 저버린 채 원고들을 영장 없이 체포하고 수사과정에서 고문을 가함으로써 원고들의 신체의 자유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침해하였다. 또한 원고들에 대한 공소사실은 위헌ㆍ무효인 대통령긴급조치 제1호를 적용하여 공소가 제기된 것이고 대부분의 증거는 위와 같은 수사과정에서의 고문으로 인하여 임의성이 없어 증거능력이 없는 것이었는데도 비상보통군법회의, 비상고등군법회의는 이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면서 중형을 선고하였고, 원고들이 사면으로 석방되기까지 그 징역형이 일부 집행되었다. 피고 소속 공무원들의 이러한 일련의 행위들은 위헌ㆍ위법으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

2) 명예훼손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피고는 또한 원고 1이 조작에 의하여 마치 반국가단체인 것처럼 실체가 왜곡된 단체인 ‘민청학련’의 조직원이라는 내용을 언론에 유포함으로써 원고 1과 그 가족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불법행위도 저질렀다.

3) 피고의 위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 1 등과 그 가족들이 정신적으로 상당한 고통을 입었을 것은 경험칙상 명백하므로, 피고는 원고 9, 원고 10을 제외한 나머지 원고들에게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에 따라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

피고는 원고 1 등이 석방된 후에 혼인하거나 출생한 가족들에게는 손해배상청구는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나,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면 이른바 문민정부 시대가 시작된 1993년 이전의 우리나라의 시대적, 정치적 상황에서 원고 1 등이 석방되고 나서도 피고 소속 경찰이나 중앙정보부 직원 등이 원고 1 등과 그 가족들에 대하여 불법적인 감시나 사찰을 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이로 인하여 이 사건 후 원고 1 등과 가족관계를 맺은 원고들도 적지 않은 정신적 고통을 겪었음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피고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나. 원고 9, 원고 10의 청구 부분

갑 제15호증의 기재에 의하면 원고 9, 원고 10은 원고 1의 조카인 사실, 원고 1에 대한 수사 및 재판 당시 위 원고들은 출생하지 않았던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앞서 본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조카인 위 원고들에게까지 감시와 사찰이 이루어져 그로 인하여 위 원고들이 정신적 고통을 받았음을 인정하기에는 부족하고, 원고 9가 주장하는 사정(어렸을 때 사고로 청력을 상실하였으나 민청학련 관계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현재 장애인이 되었다)만으로는 피고의 불법행위와 원고 9의 정신적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위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 및 원고의 재항변에 대한 판단

1) 주장의 요지

피고는, 이 사건 소는 원고들이 주장하는 피고의 불법행위가 있었던 1974. 4월경으로부터 40년 가까이 지나서 제기된 것으로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되었고, 설령 당시에는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박정희 정권 종료시(1979. 10. 26.), 문민정부 출범시(1993. 2.), 국민의 정부 출범시(1998. 2.), 참여정부가 출범한 때(2003. 2.), 국무총리 산하 심의위원회가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를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한 때 또는 늦어도 과거사위원회의 민청학련에 대한 조사보고가 발표된 때에는 그 장애사유가 소멸되었다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하여 원고들은, 재심을 통하여 무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하기 어렵고, 이 사건은 채무이행거절을 인정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피고의 소멸시효 주장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2) 소멸시효의 완성

국가에 대한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은 피해자가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민법 제766조 ) 또는 불법행위일로부터 5년( 국가재정법 제96조 , 2007. 1. 1. 법률 제8050호로 폐지되기 전의 구 예산회계법 제96조 , 1989. 3. 31. 법률 제4102호로 전문 개정되기 전의 예산회계법 제71조 ) 동안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소멸하는바, 원고들의 이 사건 소가 피고의 불법행위일로부터 5년이 경과한 후인 2012. 7. 12. 제기되었음은 기록상 명백하다.

3)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

가) 관련 법리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던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대법원 2011. 1. 27. 선고 2010다1234 판결 등 참조). 한편 위와 같은 경우에도 채권자는 장애사유가 종료한 때로부터 권리행사를 기대할 수 있는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하여야만 채무자의 소멸시효 항변을 저지할 수 있다 할 것인데, 여기서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가 있었는지 여부는 채권자와 채무자와 채무자 사이의 관계, 채권자의 권리행사가 지연될 수밖에 없었던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다만 위와 같이 신의성실의 원칙을 들어 시효 완성을 효력을 부정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의 달성, 입증곤란의 구제, 권리행사의 태만에 대한 제재를 그 이념으로 삼고 있는 소멸시효 제도에 대한 대단히 예외적인 제한에 그쳐야 할 것이므로, 위 권리행사의 ‘상당한 기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상 시효정지의 경우에 준하여 단기간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개별 사건에서 매우 특수한 사정이 있어 그 기간을 연장하여 인정하는 것이 부득이한 경우에도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의 경우 그 기간은 아무리 길어도 민법 제766조 제1항 이 규정한 단기소멸시효기간인 3년을 넘을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 대법원 2013. 6. 27. 선고 2013다200773 판결 참조).

나) 객관적 장애사유의 존부 및 종료시점

원고 1 등은 위헌ㆍ무효인 대통령긴급조치 제1호에 기초하여 공소가 제기되었고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의 증명력 또한 부족한 것이었는데도 법원이 이를 유죄로 단정하여 중형을 선고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다. 재심을 통하여 법원으로부터 과거의 위 유죄판결이 오판이었음을 인정하는 공권적 판단을 받기 전까지는 과거에 오판을 했던 법원에 불법행위의 가해자인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를 제기한다는 것은 일반인의 관점에서 합리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원고 1 등에 대한 유죄판결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밝히는 재심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원고들이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인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다)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를 하였는지 여부

원고 1 등에 대한 대통령긴급조치위반 판결의 재심사건에서 이 사건 소 제기 후인 2013. 5. 10. 무죄판결이 선고되고 그 무렵 확정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다. 그렇다면, 원고들은 객관적 장애사유가 소멸되기 전에 이미 권리행사를 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결국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

4. 손해배상의 범위

가. 적정 위자료의 액수

이 사건 불법행위의 반인권적, 조직적인 특수성과 그 불법의 중대함, 원고 1 등의 선고형 및 구금기간, 원고들(원고 9, 원고 10 제외)의 가족관계, 유사 사건에서 인정된 위자료 금액과의 형평성, 원고 1의 경우 반국가단체에 연루된 것처럼 언론에 보도되어 명예를 훼손당하는 피해까지 입은 점, 기타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위자료는 원고 1의 경우 피해자 본인은 2억 원, 부모는 5,000만 원, 원고 형제자매들은 2,000만 원, 원고 11, 원고 18, 원고 24의 경우 피해자 본인은 150,000,000원, 배우자 및 부모는 30,000,000원, 형제자매들은 15,000,000원, 원고 1 등의 석방 후 혼인하거나 출생한 가족들에 대하여는 1,000만 원으로 정함이 상당하고, 이에 따른 위자료의 상속관계 및 계산내역은 다음과 같다(이하 원 미만 버림).

1) 원고 1

갑 제15호증의 기재에 의하면, 이 사건 불법행위가 일어난 1974년 당시 원고 1에게는 부 소외 2, 모 소외 3, 동생 원고 3(재심대상판결의 원고 3), 원고 4(재심대상판결의 원고 4), 원고 5(재심대상판결의 원고 5), 원고 6(재심대상판결의 원고 6), 원고 7(재심대상판결의 원고 7), 원고 8(재심대상판결의 원고 8)이 있었고, 1994. 11. 7. 원고 2(재심대상판결의 원고 2)와 혼인하였다.

가) 고유의 위자료

o 피해 당사자 원고 1 : 2억 원

o 부 소외 2, 모 소외 3 : 5,000만 원

o 이 사건 후 혼인관계를 맺은 처 원고 원고 2 : 1,000만 원

o 형제자매 원고 3, 원고 4, 원고 5, 원고 6, 원고 7, 원고 8 : 각 2,000만 원

나) 상속금

① 부 소외 2 1984. 4. 23. 사망 : 위자료 5,000만 원을 처와 직계비속이 공동상속하되, 재산상속인이 호주상속하면 고유상속분의 5할을 가산하고, 처는 직계비속과 공동상속시 동일가적 내에 있는 직계비속 상속분의 5할을 가산한다.

o 처 소외 3 : 8,333,333원(= 5,000만 원 × 3/18)

o 호주상속인 원고 1 : 8,333,333원(= 5,000만 원 × 3/18)

o 자녀 원고 3, 원고 4, 원고 5, 원고 6, 원고 7, 원고 8 : 각 5,555,555원(= 5,000만 원 × 2/18)

② 모 소외 3 2009. 4. 6. 사망 : 상속한 소외 2의 위자료 8,333,333원 및 고유 위자료 5,000만 원을 직계비속이 공동상속한다.

o 자녀 원고 1, 원고 3, 원고 4, 원고 5, 원고 6, 원고 7, 원고 8 : 각 8,333,333원(= 58,333,333원 × 1/7)

2) 원고 11

갑 제16호증의 기재에 의하면, 1974년 당시 원고 11에게는 부 소외 7, 모 원고 12(재심대상판결의 원고 10), 동생 원고 14(재심대상판결의 원고 12), 원고 15(재심대상판결의 원고 13), 원고 16(재심대상판결의 원고 14), 원고 17(재심대상판결의 원고 15), 소외 8이 있었고, 1981. 3. 9. 원고 13(재심대상판결의 원고 11)과 혼인하였다.

가) 고유의 위자료

o 피해 당사자 원고 11 : 1억 5,000만 원

o 부 소외 7 : 3,000만 원

o 모 원고 12 : 3,000만 원

o 이 사건 후 혼인관계를 맺은 처 원고 13 : 1,000만 원

o 형제자매 원고 14, 원고 15, 원고 16, 원고 17 : 각 1,500만 원

나) 상속금

① 부 소외 7 2011. 11. 30. 사망 : 위자료 3,000만 원을 처와 직계비속이 공동상속하되, 처는 직계비속 상속분의 5할을 가산한다.

o 처 원고 12 : 600만 원(= 3,000만 원 × 3/15)

o 자녀 원고 11, 원고 14, 원고 15, 원고 16, 원고 17 및 소외 8 : 각 400만 원(=3,000만 원 × 2/15)

3) 원고 18

갑 제17호증의 기재에 의하면 1974년 당시 원고 18의 가족으로는 부 소외 4, 모 원고 19(재심대상판결의 원고 17), 형 원고 20(재심대상판결의 원고 18), 원고 21(재심대상판결의 원고 19), 누나 원고 22(재심대상판결의 원고 20), 동생 원고 23(재심대상판결의 원고 21)이 있었다.

가) 고유의 위자료

o 피해 당사자 원고 18 : 1억 5,000만 원

o 부 소외 4 : 3,000만 원

o 모 원고 19 : 3,000만 원

o 형제자매 원고 20, 원고 21, 원고 22, 원고 23 : 각 1,500만 원

나) 상속금

① 부 소외 4 1990. 1. 5. 사망 : 위자료 3,000만 원을 처와 직계비속이 공동상속하되, 호주상속인은 고유상속분의 5할을 가산하고, 동일 가적 내에 없는 여자의 상속분은 남자 상속분의 1/4이며, 처는 직계비속과 공동상속시 동일 가적 내에 있는 직계비속 상속분의 5할을 가산한다.

o 처 원고 19 : 8,181,818원(= 3,000만 원 × 6/22)

o 호주상속인 원고 20 : 8,181,818원(= 3,000만 원 × 6/22)

o 아들 원고 21, 원고 18 : 각 5,454,545원(= 3,000만 원 × 4/22)

o 기혼 딸 원고 22, 원고 23 : 각 1,363,636원(= 3,000만 원 × 1/22)

4) 원고 24

갑 제18호증의 기재에 의하면, 1974년 당시 원고 24에게는 부 소외 9, 모 원고 25(재심대상판결의 원고 23), 형 소외 10, 동생 원고 26(재심대상판결의 원고 24)가 있었고, 1983. 7. 13. 딸 원고 27(재심대상판결의 원고 25)가 출생하였다.

가) 고유의 위자료

o 피해 당사자 원고 24 : 1억 5,000만 원

o 모 원고 25 : 3,000만 원

o 동생 원고 26 : 1,500만 원

o 이 사건 후 출생한 자녀 원고 27 : 1,000만 원

나) 상속금

① 부 소외 9 2005. 9. 13. 사망 : 위자료 3,000만 원을 처와 직계비속이 공동상속하되, 처의 상속분은 직계비속 상속분의 5할을 가산한다.

o 처 원고 25 : 1,000만 원(= 3,000만 원 × 3/9)

o 아들 소외 10, 원고 24, 원고 26 : 각 6,666,666원(= 3,000만 원 × 2/9)

나. 형사보상금 공제

형사보상법은 ‘다른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손해배상을 받을 자가 동일한 원인에 대하여 형사보상법에 의한 보상을 받았을 때에는 그 보상금의 액수를 공제하고 손해배상의 액수를 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5조 제3항 ), 또한 그 보상금을 산정할 때에는 구금기간 중에 받은 재산상 손실, 얻을 수 있었던 이익의 상실과 함께 정신상의 고통 등의 사정도 고려하는 것이므로( 제4조 제2항 ), 이렇게 산정된 형사보상금 안에는 일반 손해배상에 있어서의 적극적, 소극적 손해는 물론 위자료 손해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형사보상절차에서 형사보상금을 산정하면서 적극적 손해, 소극적 손해, 위자료를 구분하여 보상액을 산정하였을 경우에는 각 손해액에 대응하는 형사보상금을 공제하여야 할 것이지만, 형사보상절차에서 손해항목별 구분 없이 총액으로 형사보상금을 정하여 지급하였을 경우에는 민법에서 정한 변제충당의 일반 원칙을 준용하여 채무자에게 변제이익이 많은 채무에서 우선 공제하되, 손해배상의 원금에서 형사보상금을 공제하는 것이 상당하다.

갑 제31호증의 기재에 의하면, 형사보상금으로 원고 1이 61,041,600원을, 원고 14, 원고 18이 각 63,374,400원을, 원고 24가 61,624,800원을 각 지급받게 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원고 1 등의 위자료 원금에서 위 형사보상금을 공제하기로 한다.

다. 소결론

따라서 피고는 원고 9, 원고 10을 제외한 나머지 원고들에게 별지 손해금액 계산표 중 ‘인용금액’란 기재 각 금원 및 위 각 금원에 대하여 원고가 구하는 바에 따라 이 사건 변론종결일인 2013. 10. 11.부터 이 판결 선고일인 2013. 11. 8.까지는 민법에서 정한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 정한 연 20%의 각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4. 결 론

그렇다면, 원고 9, 원고 10을 제외한 나머지 원고들의 청구는 위 인정 범위 내에서 이유 있어 인용하고 각 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어 기각하며, 원고 9, 원고 10의 청구는 이유 없어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별지 생략)

판사 한영환(재판장) 이영림 노한동

주1) 긴급조치 제1호의 내용은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 대한민국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제안 또는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와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일체의 행위 및 이와 같이 금지된 행위를 권유, 선동, 선전하거나 방송, 보도, 출판 기타 방법으로 이를 타인에게 알리는 일체의 언동을 금하고(제1항 내지 제4항), 이 조치를 위반하거나 비방한 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며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제5항)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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