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2017노3234 준강간
피고인
A
항소인
피고인
검사
황나영(기소), 옥선기(공판)
변호인
법무법인 U
담당변호사 V, W
원심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17. 10. 13. 선고 2017고합195 판결
판결선고
2018. 2. 23.
주문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한다.
이유
1. 항소이유의 요지
가. 사실오인
이 사건 범행 당시 피해자 H(가명)은 항거불능 상태에 있지 않았고, 피고인은 피해자와 합의 하에 성관계를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므로 피고인에게 준강간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사실을 오인한 잘못이 있다.
나. 양형부당
피고인에 대한 원심의 형(징역 2년 6월,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80시간)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
2. 판단
가. 사실오인 주장에 관하여
1) 원심의 판단
원심은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 당시 피해자가 술에 만취하여 항거불능 상태에 있음을 인식하면서 준강간의 고의를 가지고 피해자를 간음한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① 피해자는 수사기관과 원심 법정에서 "이 사건 전날인 2016. 9. 26. 21:30경부터 지인들과 주점에서 술을 마셨다. 평소 주량은 소주 한 병 정도인데 처음부터 빈속에 안주 없이 소주를 계속 마셔서 금방 취했다. 이후 2차, 3차로 술자리를 옮겨 계속 술을 마시다가 이 사건 당일인 2016. 9. 27. 03:30경 주점 밖으로 나간 지인을 찾으러 나갔는데, 그 무렵부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피고인을 만나 호텔로 가게 된 경위는 전혀 기억나지 않고, 잠시 눈을 떴을 때 피고인이 옷을 벗은 채 내 몸 위로 올라와 있어 피고인에게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너 몸 파는 사람이냐'고 말했던 기억만 난다. 같은 날 08:10 경 깨어나 보니 호텔 객실에 옷이 벗겨진 채 혼자 있었다."라는 취지로 진술하였다(증거기록 27~29, 156~157쪽, 공판기록 109~113쪽), 피해 내용과 그 경위에 관한 피해자의 위와 같은 진술은 구체적이고 일관되어 실제 경험에 기초한 것으로 신빙할 수 있고, 피해자가 허위로 진술할 만한 동기나 이유를 찾을 수 없다.
② 다음과 같은 사정들은 피해자가 피고인과 성관계를 할 당시 만취하여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는 취지의 피해자 진술에 부합한다.
㉠ G은행 앞에 설치된 CCTV 영상(증거기록 117쪽)에 의하면, 피고인이 2016. 9. 27. 03:36경 건물 입구 계단에 기대어 누워 있는 피해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면서 피해자의 손을 잡고 피해자를 일으켜 세운 후 혼자서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피해자를 약 1분간 바라보다가 피해자를 뒤따라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고(20161018_102913.mp4 중 00:07~00:38, 20161018_103106.mp4 중 00:25~01:04), 피고인은 "피해자가 길에 누워 핸드폰을 보고 있었고, 일어선 후에도 혼자 10~20m 정도를 비틀거리며 걸어가다가 길에 주저앉기도 하여 술에 취한 것으로 생각했다."라고 진술하기도 하였다(증거기록 136~137, 212~215, 386쪽).
㉡ E에 설치된 '주·정차79' CCTV 영상(증거기록 272쪽)에 의하면, 2016. 9. 27. 03:48경 피고인이 비틀거리는 피해자의 어깨를 손으로 잡고 F 방면에서 E 방면으로 걸어오다가 피해자가 횡단보도 앞에서 갑자기 주저앉는 장면이 확인되고 (20161030_122615.mp4 중 00:11~00:42), 같은 날 03:53경 피해자가 E에서 N 방면으로 가는 길에 서서 피고인과 대화하다가 주저앉자 피고인이 피해자를 일으켜 세워 팔로 피해자의 어깨를 끌어안고, N 방면으로 함께 걸어가는 장면이 확인되며 (20161030_122615.mp4 중 00:54~01:28), 같은 날 03:56경 피고인이 휘청거리며 걷는 피해자의 손을 잡아끌어 N 방면으로 함께 걸어가다가 골목길로 들어가는 장면이 확인되는데(20161030_122615.mp4 중 01:35~01:57), 당시 피해자는 한동안 E 일대를 걸어 다녔음에도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만취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 J호텔 카운터에 설치된 CCTV 영상(증거기록 53쪽)에 의하면, 피해자가 위 호텔에 들어올 당시 고개를 숙이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고, 피고인이 한 손으로 비틀거리는 피해자의 어깨를 감싸 안아 피해자를 부축하면서 다른 손으로 카드결제를 한 후 피해자를 데리고 객실로 이동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04시18분05초 입실.mp4 중 00:07~00:50), 당시 위 호텔 카운터에서 근무하던 K도 "피해자가 고개를 숙인 채 몸을 가누지 못하여 피고인이 피해자를 부축하고 있었고, 술 냄새가 많이 나서 피해자가 술에 만취한 것으로 생각했다."라고 진술하였다(증거기록 166~168쪽, 공판기록 175~176, 180쪽).
③ 피고인은 "피해자가 술에 취한 것으로 알고 도와주려고 따라갔는데, 피해자가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말하고 술 냄새도 나지 않아 술에 취하지 않은 것으로 알았다. 피해자가 나에게 '남자친구 때문에 속상하다'고 말하면서 '내가 예쁘냐? 나에게 호감이 있냐?'고 물어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피해자가 '나랑 자고 싶지?'라고 말하며 성관계를 먼저 제안하여 함께 호텔로 가서 성관계하였다."라는 취지로 변소하고 있다.
그러나 피고인이 피해자를 처음 발견할 당시 피해자가 건물 입구 계단에 기대어 누워 핸드폰을 보고 있을 정도로 만취 상태에 있었음에도 피해자가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말을 믿고 피해자에게 술 냄새도 나지 않았다는 피고인의 변소를 납득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처음 보는 피고인에게 먼저 성관계를 제안하였다는 것은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렵다. 피고인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피해자는 처음부터 피고인에게 반말로 "남자친구 때문에 속상하다. 나와 함께 남자친구에게 가자."라고 말하거나 수회반복하여 "내가 예쁘냐?"라고 물어보는 등 심야에 길에서 처음 만나는 남성을 대하는 여성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것인데(증거기록 137~139, 216~217쪽), 한동안 피해자를 따라다니며 피해자가 걷는 모습을 지켜보고 피해자와 대화를 나눈 피고인으로서는 이 사건 범행 당시 피해자가 술에 만취하여 제대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음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고 할 것이다.
④ 피해자는 이 사건 범행이 있은 후 약 4시간 후인 2016. 9. 27. 08:10경 깨어나서 곧바로 이 사건을 신고하지 않고 회사에 출근하였다가, 같은 날 오후경 서울해바라 기센터에 가서 성폭력 피해에 대하여 상담하였다. 이에 관하여 피해자는 "깨어났을 때술이 깨지 않아 사리분별을 할 수 없었지만 08:30경에 회의가 있어 서둘러 회사에 갔다. 회사 화장실에서 팬티의 혈흔을 발견하고 성관계했을 때와 같은 복통이 느껴져서 성관계하였다고 확신하였고, 회의 후 산부인과에 가서 사후피임약을 처방받고 수액을 맞았다. 병원에서 기억을 떠올리고 지인과 상담하면서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생각하여 서울해바라기센터에 가서 피해를 신고하였다."라고 진술하였는데(증거기록 28~29, 31, 154~155쪽, 공판기록 114~115, 141~142쪽), 신고 경위에 관한 피해자의 위와 같은 진술은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2) 이 법원의 판단
원심이 설시한 위와 같은 사정들과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피고인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사실오인의 잘못이 없다. 따라서 피고인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
① 피해자는 수사기관에서부터 원심 법정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이 사건 범행의 경위와 내용 등에 관하여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진술하였고, 이 사건 범행 당시 성기 삽입에 대한 느낌이 있었다거나 피고인에게 '몸 파는 사람이냐'고 이야기하였다는 등 자신에게 불리할 수도 있는 내용에 관해서까지 숨기지 않고 진술하여 그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할 수 있다. 한편 피해자는 수사기관에서 이 사건 범행 전날과 당일 자신이 마신 술의 양에 관한 진술을 일부 번복하였고1) 원심 법정에서는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내용 중 일부에 관하여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진술하기도 하였으나, 이는 지엽적인 부분에 불과하고 시간의 경과에 따른 기억력의 한계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이므로 위와 같은 사정만으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할 수는 없다.
② E에 설치된 '주·정차 79' CCTV 영상에 의하면 피해자가 이 사건 범행 당일 03:58:52경 피고인과 함께 있다가 혼자 E 방면으로 10m 정도 뛰어가는 장면이 확인되기는 한다(20161030_122615.mp4 중 02:18~02:22). 그러나 위 CCTV 영상에 의하면 피해자가 위와 같이 뛰어간 직후 피고인 쪽을 잠시 돌아보다가 힘없이 건물 벽에 기대는 모습이 확인되고, 앞서 본 바와 같이 그 이전에도 피해자는 술에 취하여 길거리에 누워 있거나 비틀거리며 걸어가다가 주저앉기도 하였으므로 위와 같이 피해자가 혼자 뛰어간 것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한 행동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③ 이 사건 범행과 가장 가까운 시점에 촬영된 J호텔 카운터 CCTV 영상에 의하면 피고인과 피해자가 위 호텔에 들어왔을 당시 피해자가 고개를 숙인 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면서 피고인의 부축을 받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피고인은 피해자가 객실에 들어간 후 침대에 누워 있다가 갑자기 피고인에게 "너, 나랑 하고 싶지?", "내 옷을 벗겨라."라고 이야기 하여 피해자와 합의 하에 성관계를 하게 되었다고 주장하나, 위와 같이 호텔에 들어올 당시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해 있었던 피해자가 갑자기 피고인에게 성관계를 요구하였다는 것은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위와 같은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범행 당시 피해자가 술에 만취하여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으며 피고인도 그와 같은 상태를 충분히 인식하였다고 판단된다.
④ 피고인은 피해자가 성관계 도중 피고인에게 '몸 파는 사람이냐'고 말한 사정을 들어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지 않았다고 주장하나, 만일 피해자가 피고인과 합의 하에 성관계를 하던 중이라면 갑자기 그러한 말을 한다는 것은 오히려 경험칙상 매우 이례적이라고 보이므로, 위와 같은 사정은 이 사건 범행을 인정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
⑤ 한편 주취에 따른 일시적 기억상실증인 블랙아웃(black out) 증상이란 '알코올이 임시 기억 저장소인 해마세포의 활동을 저하시켜 정보의 입력과 해석에 악영향을 주지만 뇌의 다른 부분은 정상적 활동을 하는 현상'을 의미하는데, 앞서 본 각 CCTV 영상에서 확인되는 피해자의 행동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는 이 사건 범행 당시 술에 만취하여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것으로 보이므로, 피해자가 이 사건 범행 당일 있었던 일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정만으로 피해자가 이 사건 범행 당시 블랙아웃 증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나. 양형부당 주장에 관하여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 이전에 동종 범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없는 점,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노모 등을 부양하고 있는 점 등은 인정된다.
그러나 이 사건 범행은 피고인이 술에 만취하여 건물 입구 계단에 기대어 누워 있는 피해자에게 다가가 피해자를 일으켜 세운 후 한동안 피해자를 따라다니다가 피해자를 호텔로 데려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는 피해자를 간음한 것으로서 그 죄질이 좋지 않은 점, 피해자는 이 사건 범행으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은 것으로 보이고, 피고인은 당심에 이르기까지도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 못한 점, 그 밖에 피고인의 연령, 성행, 환경, 가족관계, 범행의 동기와 수단 및 방법, 범행 후의 정황 등 양형의 조건이 되는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면, 피고인에 대한 원심의 형이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고는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피고인의 이 부분 주장도 이유 없다.
3. 결론
그렇다면 피고인의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4항에 따라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재판장 판사 이영진
판사 홍성욱
판사 김동완
주석
1) 피해자는 경찰 1회 조사에서 '1차에서 소주를 혼자 한 병 반 정도 마셨고, 2차에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으며, 3차에서는 양주 한 잔 정도를 마셨던 것 같다'는 취지로 진술하였고(증거기록 29쪽), 경찰 2회 조사에서는 '1차에서 소주를 혼자 세 병 정도 마셨고, 2차에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으며, 3차에서는 위스키 같은 것을 두 잔 정도 마셨다고 지인들이 말을 해주었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증거기록 1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