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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경)대법원 2007. 12. 27. 선고 2007도7941 판결
[병역법위반][공2008상,183]
판시사항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병역의무 면제나 대체복무의 기회를 부여하지 아니한 채 병역법 제88조 제1항 위반죄로 처벌하는 것이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 반하는지 여부(소극)

판결요지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으로부터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당연히 도출되는 것은 아니지만, 위 규약 제18조 제1항에는 종교나 신념에 기한 결정을 외부로 표현하고 실현할 수 있는 자유도 함께 포함되어 있음이 문면상 명백하다. 한편, 자신이 믿는 종교적 교리에 좇아 형성된 인격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양심의 명령에 따라 현역병 입영을 거부하는 것은 적어도 소극적 부작위에 의한 양심의 표명행위에는 해당하고, 따라서 현역입영 통지서를 받고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아니하는 행위를 처벌하고 있을 뿐, 양심에 반한다는 이유로 입영을 거부하는 자에 대하여 병역의무를 면제하거나 혹은 순수한 민간 성격의 복무로 병역의무의 이행에 갈음할 수 있도록 하는 어떠한 예외조항도 두고 있지 아니한 병역법 제88조 제1항 제1호 는 위 규약 제18조 제3항에서 말하는 양심표명의 자유에 대한 제한 법률에 해당한다. 그러나 대체복무제도를 두지 아니한 것 그 자체를 규약 위반으로 평가할 수는 없고, 대체복무제도의 도입 여부 등에 관하여는 가입국의 입법자에게 광범위한 재량이 부여되어야 하는바, 현재로서는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기는 어렵다고 본 입법자의 판단이 현저히 불합리하다거나 명백히 잘못되었다고 볼 수 없다. 또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병역의무 면제나 대체복무의 기회를 부여하지 아니한 채 병역법 제88조 제1항 위반죄로 처벌한다 하여 규약에 반한다고 해석되지는 아니한다.

참조조문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8조, 병역법 제88조 제1항 제1호

피 고 인

피고인

상 고 인

피고인

변 호 인

변호사 송호신

주문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 후의 구금일수 중 110일을 본형에 산입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상고이유의 요지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 1990. 7. 10. 대한민국에 대하여 발효된 조약 제1007호. 이하 ‘규약’이라고만 한다) 제18조 제1항에 의하여 보장되고 있으므로, 종교적 양심에 기한 병역의무의 거부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 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2. 규약 제18조는, “사람은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를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권리는 스스로 선택하는 종교나 신념을 가지거나 받아들일 자유와 또는 다른 사람과 공동으로 공적 또는 사적으로 예배의식, 행사 및 선교에 의하여 그의 종교나 신념을 표명하는 자유를 포함한다(제1항). 어느 누구도 스스로 선택하는 종교나 신념을 가지거나 받아들일 자유를 침해하게 될 강제를 받지 아니한다(제2항). 자신의 종교나 신념을 표명하는 자유는, 법률에 규정되고 공공의 안전, 질서, 공중보건, 도덕 또는 타인의 기본적 권리 및 자유를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만 제한받을 수 있다(제3항).”고 규정하고 있다.

살피건대, 규약 제18조는 물론, 규약의 다른 어느 조문에서도 양심적 병역거부권(right of conscientious objection)을 기본적 인권의 하나로 명시하고 있지 않으며, 규약의 제정 과정에서 규약 제18조에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포함시키자는 논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제정에 관여한 국가들의 의사는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규약이 양심적 병역거부권이나 대체복무제도 자체를 전혀 인식치 못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강제노역금지에 관한 규약 제8조 제3항 (C) 제(ⅱ)호에서 “군사적 성격의 역무 및 양심적 병역거부가 인정되고 있는 국가에 있어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법률에 의하여 요구되는 국민적 역무(any service of a military character and, in countries where conscientious objection is recognized, any national service required by law of conscientious objectors)”를 규약상 금지되는 강제노역의 범주에서 제외되는 것 중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양심적 병역거부가 인정되고 있는 국가에 있어서는(where conscientious objection is recognized.)”이라는 표현은, 개개의 가입국이 양심적 병역거부권 및 대체복무제도를 인정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제8조의 문언에 비추어 볼 때, 규약은 가입국으로 하여금 양심적 병역거부를 반드시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 않다.

3. 그러나 규약 제18조 제1항에는 이른바 양심 형성의 자유와 양심상 결정의 자유를 포함하는 내심적 자유뿐만 아니라 종교나 신념에 기한 결정을 외부로 표현하고 실현할 수 있는 자유도 함께 포함되어 있음이 문면상 명백하다. 따라서 앞서 본 바와 같이, 규약 제18조로부터 개인의 국가에 대한 독자적인 권리로서 국가적 의무의 이행을 거부할 권리, 즉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당연히 도출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자신이 믿는 종교적 교리에 좇아 형성된 인격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양심의 명령에 따라 현역병 입영을 거부하는 것은, 적어도 소극적 부작위에 의한 양심의 표명행위에는 해당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대법원 2004. 7. 15. 선고 2004도2965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그리고 병역법 제88조 제1항 제1호 에 의하면 현역입영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기일부터 3일의 기간이 경과하여도 입영하지 아니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양심에 반한다는 이유로 현역입영을 거부하는 자에 대하여 병역의무를 면제하거나 혹은 순수한 민간 성격의 복무로 병역의무의 이행에 갈음할 수 있도록 하는 그 어떠한 예외조항도 두고 있지 아니하므로, 병역법 제88조 제1항 은 규약 제18조 제3항에서 말하는 양심표명의 자유에 대한 제한 법률에 해당한다.

그리고 앞서 본 규약 제8조와의 관계 등을 고려할 때, 규약 제18조 제1항의 양심 표명의 자유의 일환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첫째 대체복무제도를 두지 아니한 것 그 자체가 규약 위반으로 평가될 수는 없고, 둘째 단지 상당수의 가입국들이 징병제도를 폐지하거나 순수 민간적 성격의 대체복무제도를 두고 있다는 현실에 기반하여 그러한 가입국들과 문제가 되는 가입국이 처한 현실과 병력 유지의 필요성만을 비교하여 규약 위반 여부를 가리는 것은 적절치 못하며, 어디까지나 해당 가입국의 역사와 안보환경, 사회적 계층 구조, 정치적, 문화적, 종교적 또는 철학적 가치 등 국가별로 상이하고도 다양한 여러 요소에 기반한 정책적 선택이 존중되어야 한다. 결국,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병역의무의 면제를 부여할 것인지 여부 혹은 순수한 민간 성격의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할 것인지 여부에 관하여는 가입국의 입법자에게 광범위한 재량이 부여되어야 한다.

국가안보는 국가의 존립과 개개인이 누리는 모든 자유의 전제조건을 이루는 것으로서 무리한 입법적 실험을 할 것을 요구할 수는 없다. 남북한 사이에 평화공존관계가 정착되고, 우리 사회에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 자리잡음으로써 그들에게 대체복무를 허용하더라도 병역의무의 이행에 있어서 부담의 평등이 실현되며 사회통합이 저해되지 않는다는 사회공동체 구성원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아니한 현재로서는,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기는 어렵다고 본 입법자의 판단이 현저히 불합리하다거나 명백히 잘못되었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장차 여건의 변화로 말미암아 양심의 자유 침해 정도와 형벌 사이의 비례관계를 인정할 수 없음이 명백한 경우에 조약 합치적 해석 혹은 양심우호적 법적용을 통하여 병역법 제88조 제1항 소정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아 적용을 배제할 여지가 전혀 없다고는 단정할 수 없겠으나, 현재로서는 대체복무제도를 두지 아니하였다 하여 규약 위반으로 평가할 수는 없고, 또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병역의무 면제나 대체복무의 기회를 부여하지 아니한 채 병역법 제88조 제1항 위반죄로 처벌한다 하여 규약에 반한다고 해석되지는 아니한다.

4.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자에게 가하여지는 실로 심대한 불이익과, 거기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양심상의 갈등에 비추어, 입법자는 헌법 제19조 의 양심의 자유에 의하여 공익이나 법질서를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법적 의무를 대체하는 다른 가능성이나 법적 의무의 개별적인 면제와 같은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양심상의 갈등을 완화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이러한 가능성을 제공할 수 없다면, 적어도 의무위반시 가해지는 처벌이나 징계에 있어서 그의 경감이나 면제를 허용함으로써 양심의 자유를 보호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헌법재판소 2004. 8. 26.자 2002헌가1 결정 ).

규약 제18조에 관한 당원의 앞서 본 해석은 위와 같은 입법적 해결의 필요성과 논의의 시급함을 부인하는 의미로는 결코 받아들여져서는 아니될 것이다.

5. 규약 제18조에 의하여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한 상고이유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므로 상고를 기각하고, 상고 후의 구금일수 중 일부를 본형에 산입하기로 관여 대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어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이홍훈(재판장) 김영란(주심) 김황식 안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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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급 사건
-서울중앙지방법원 2007.7.18.선고 2007고단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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