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고 인
피고인
항 소 인
피고인
검사
정규영
변 호 인
변호사 송호신
주문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한다.
이 판결 선고 전의 당심 구금일수 중 39일을 원심판결의 형에 산입한다.
이유
1. 항소이유의 요지
피고인은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종교의 신자로서 성서로 훈련받은 종교적 양심에 따라 현역병 입영을 거부하였는바, 피고인의 이러한 양심적 병역거부는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8조, 헌법상 양심의 자유( 제19조 ), 종교의 자유( 제20조 ),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 제10조 )으로부터 도출되는 헌법적 권리로서 병역법 제88조 제1항 (다음부터 ‘이 사건 법률조항’이라 한다)에 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에는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2. 판단( 대법원 2004. 7. 15. 선고 2004도2965 판결 참조)
가. 정당한 사유의 의미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에서의 '정당한 사유'는 원칙적으로 추상적 병역의무의 존재와 그 이행 자체의 긍정을 전제로 하되 다만 병무청장 등의 결정으로 구체화된 병역의무의 불이행을 정당화할 만한 사유, 즉 질병 등 병역의무 불이행자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사유에 한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대법원 1967. 6. 13. 선고 67도677 판결 , 2003. 12. 26. 선고 2003도5365 판결 등 참조).
나. 정당한 사유의 존부 및 헌법상 기본권의 부당한 침해 여부
헌법 제19조 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헌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양심은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서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을 말하는 것인데, 양심의 자유에는 이러한 양심 형성의 자유와 양심상 결정의 자유를 포함하는 내심적 자유뿐만 아니라 소극적인 부작위에 의하여 양심상 결정을 외부로 표현하고 실현할 수 있는 자유, 즉 양심상 결정에 반하는 행위를 강제 받지 아니할 자유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 1997. 3. 27. 선고 96헌가11 전원합의체 결정 , 1998. 7. 16. 선고 96헌바35 전원합의체 결정 등 참조). 따라서 양심의 자유는 기본적으로 국가에 대하여 개인의 양심의 형성 및 실현 과정에 대하여 부당한 법적 강제를 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소극적인 방어권으로서의 성격을 가진다.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은 부모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여호와의 증인’교의 신자로서 신앙생활을 해왔고, 자신이 믿는 종교적 교리에 좇아 형성된 인격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양심의 명령에 따라 현역병 입영을 거부한 것으로 보이므로, 피고인의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 이 사건 법률조항을 적용하여 형벌을 부과하는 것은 간접적으로 피고인의 양심상의 결정에 반하여 현역병 입영을 강제하는 것으로서 헌법 제19조 가 보호하는 ‘자신의 양심상 결정에 반하는 행위를 강제 받지 아니할 자유'를 제한하고, 동시에 피고인의 양심상 결정의 동기가 그가 믿는 종교에 기초한 이상 헌법 제20조 제1항 의 종교의 자유도 제한하는 것이 될 것이다(이러한 의미에서 이하에서는 양심의 자유의 침해 여부에 대하여 판단하는 것으로써 종교의 자유의 침해 여부에 대한 판단까지도 갈음한다).
그러나 양심형성의 자유와 양심상 결정의 자유는 내심에 머무르는 한 이를 제한할 수도 그리고 제한할 필요성도 없다는 점에서 절대적 자유라고 할 것이지만 이와 달리 피고인이 주장하는 소극적 부작위에 의한 양심실현의 자유는 그 양심의 실현과정에서 다른 법익과 충돌할 수 있게 되고 이 때에는 필연적으로 제한이 수반될 수도 있으므로, 이러한 경우라면 소극적 부작위에 의한 양심 실현의 자유가 제한받는다고 하여 곧바로 양심의 자유의 본질적인 내용에 대한 침해가 있다고 말할 것은 아니다. 헌법상 기본권의 행사가 국가공동체 내에서 타인과의 공동생활을 가능하게 하고 다른 헌법적 가치 및 국가의 법질서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포함한 모든 기본권 행사의 원칙적인 한계이므로, 양심 실현의 자유도 결국 그 제한을 정당화할 헌법적 법익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헌법 제37조 제2항 에 따라 법률에 의하여 제한될 수 있는 상대적 자유라고 하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법원 1982. 7. 13. 선고 82도1219 판결 등 참조).
그런데 우리 헌법은 제5조 제2항 에서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고 규정하고, 제39조 제1항 에서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대 민주국가에서 주권자인 국민에게 국방의 의무라는 헌법적 의무를 부담시키는 것은 그것이 주권자인 국민 자신에게도 필요한 일이라는 관점에서 정당화된다. 즉 국민이 이러한 헌법적 의무를 부담함으로써 비로소 국민 스스로가 그의 기본권의 실현과 보호를 위한 전제 조건인 국가의 존립과 안전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국민은 헌법적 의무로서 국방의 의무를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헌법 제39조 제1항 이 규정한 국방의 의무는 외적으로부터 국가를 방위하여 국가의 정치적 독립성과 영토의 완전성을 수호할 의무로서 납세의 의무와 더불어 국가의 존립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의무라 할 것이고, 특히 남북이 분단되어 여전히 서로 군사적으로 대치되고 있어 불안정성과 불가예측성이 상존하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현실적 안보상황을 고려하면 국방의 의무는 보다 강조되어도 지나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사건 법률조항은 바로 이와 같이 가장 기본적인 국민의 국방의 의무를 구체화하기 위하여 마련된 것이고, 이와 같은 병역의무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국가의 안전보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국민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도 보장될 수 없음은 불을 보듯 명확한 일이다. 따라서 병역의무는, 궁극적으로는 국민 전체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 할 것이고, 피고인의 양심의 자유가 위와 같은 헌법적 법익보다 우월한 가치라고는 할 수 없다. 그 결과, 위와 같은 헌법적 법익을 위하여 헌법 제37조 제2항 에 따라 피고인의 양심의 자유를 제한한다 하더라도 이는 헌법상 허용된 정당한 제한이라 할 것이다.
또한, 헌법 제10조 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이 헌법상의 기본권은 다른 개별적 기본권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에 한하여 보충적으로 적용되는 기본권이고, 헌법 제10조 의 보장 내용인 일반적 행동의 자유 등이 양심 및 종교의 영역에서 구체화된 것이 바로 양심 및 종교의 자유이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의 적용으로 인하여 피고인의 양심 및 종교의 자유가 부당하게 침해되었다거나 피고인의 현역입영 거부에 정당한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이상, 이 사건 법률 조항의 적용으로 인하여 피고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또는 행복추구권이 침해된다거나 피고인이 위와 같은 기본권에 반하는 현역입영을 거부하는 것은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양심적 병역거부가 이 사건 법률조항에 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거나 이 사건 법률조항의 적용으로 피고인의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이 부당하게 침해되었다는 취지의 피고인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3. 결론
따라서 피고인의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4항 에 따라 이를 기각하고, 형법 제57조 에 의하여 이 판결 선고 전의 당심 구금일수 중 39일을 원심판결의 형에 산입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