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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법원 2012. 11. 29. 선고 2012나31842 판결
[손해배상][미간행]
원고, 항소인

원고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덕수, 담당변호사 김진영)

피고, 피항소인

대한민국 (소송대리인 정부법무공단, 담당변호사 최재정 외 1인)

변론종결

2012. 9. 27.

주문

1. 제1심판결 중 아래에서 지급을 명하는 금원에 해당하는 원고 패소 부분을 취소한다.

피고는 원고에게 10,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2011. 5. 24.부터 2012. 11. 29.까지는 연 5%의,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2. 원고의 나머지 항소를 기각한다.

3. 소송총비용은 2분하여 그 1은 원고가, 나머지는 피고가 각 부담한다.

4. 제1항의 금원지급부분은 가집행할 수 있다.

청구취지 및 항소취지

제1심판결을 취소한다. 피고는 원고에게 3억 원 및 이에 대하여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20%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피고는 별지 광고문을, 이 판결 송달 후 3일 내 발행되는 3개 이상의 중앙일간지 사회면 광고란에 가로 37㎝, 세로 17㎝의 크기로 제목은 2호, 내용은 3호의 활자로, 이 판결 송달 1일 후부터 7일 동안 통일부 홈페이지(http://www.unikorea.go.kr) 초기화면 중앙 상단에, 각 게재하라.

이유

1. 인정사실

이 법원이 이 부분에 관하여 설시할 이유는, 제1심판결서 제4면 제6행의 ‘2011. 6. 17.’을 ‘2010. 6. 17.’로 고쳐 쓰는 외에는 제1심판결 중 ‘1. 기초사실’ 부분의 기재와 같으므로, 민사소송법 제420조 본문에 의하여 그대로 인용한다.

2. 피고의 본안전 항변에 관한 판단

피고는, 이 사건 소가 명백히 이유 없는 것으로서 소권의 남용에 해당하여 신의칙에 위반되므로 부적법하다는 취지로 본안전 항변을 하나, 원고가 이 사건 소로써 주장하는 내용이 명백히 이유 없다거나 그 밖의 다른 사유로 소권의 남용에 해당한다고 볼 아무런 자료가 없으므로, 위 본안전 항변은 이유 없다.

3. 쟁점

가. 당사자의 주장

1) 동일성유지권의 침해

가) 원고 주장의 요지

⑴ 피고는 이 사건 벽화에 물을 분사, 벽체와 벽화를 박리시키는 방법으로 철거하고, 그 철거과정에서 이 사건 벽화를 작은 크기로 절단하여 심각하게 손상한 후 이를 악의적으로 소각하였는바, 위와 같이 피고가 이 사건 벽화를 철거 후 훼손·소각한 행위는 이 사건 벽화의 내용·형식의 동일성을 깨뜨리는 것으로서 저작인격권 중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우리나라가 가입한 베른협약 제6조의2는 저작물에 대한 ‘기타의 침해’를 저작인격권 침해로 규정하고 있는바, 공공장소에 설치된 미술작품의 철거행위도 이에 포함된다.

특히 피고는 이 사건 벽화를 철거하면서 손상을 방지하기 위한 아무런 대책도 없이 신속히 철거공사를 마무리하여 버림으로써 이 사건 벽화에 심각한 손상을 일으켰고 뜯어낸 벽화를 작은 조각으로 절단하였으며, 절단한 작품들을 창고에 방치하여 곰팡이가 생기도록 하였다. 이러한 이 사건 벽화의 철거 과정에서의 손상과 철거 후 작품의 절단 행위 등은 각각 소각행위와 별도의 동일성유지권 침해를 구성한다.

⑵ 소유권자가 저작물을 파괴한 경우 저작자가 갖는 보존의 이익과 소유권자가 갖는 파괴의 이익 사이를 비교 형량하여 동일성유지권의 침해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인 예술의 자유와 저작권법 제1조 의 일반규정에 대한 체계적, 역사적·목적론적 해석을 통하여 동일성유지권의 침해대상에 작품의 파괴행위도 포함하는 것이 타당하다. 원고는 오랜 기간 비무장지대 예술운동을 펼쳐온 독보적 작가로서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 수준의 예술가인 점, 이 사건 벽화는 8단계의 제작과정을 거쳐 완성한 것으로 하나밖에 없는 원본이고 다시 만들 수 없는 장소특정적 미술로서 공공장소에 설치된 점, 이 사건 벽화는 원고의 비무장지대 문화예술운동의 노력이 집대성된 작품으로 피고의 요청에 따라 제작된 것이며 고도의 문화예술적 가치가 있는 점, 피고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음에도 적법절차를 준수하지 아니하고 정당한 사유도 없이 이 사건 벽화를 철거한 후 악의적으로 소각한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 벽화의 파괴는 동일성유지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⑶ 이 사건 벽화는 외국의 입법례 등에서 인정하고 있는 이른바 ‘장소특정적 미술’(Site-specific art)에 해당하여 작품이 위치한 특정 장소 또한 그 주요 구성 부분인 미술작품이다. 피고가 이를 철거하여 다른 곳에 옮긴 것 자체로 작품의 의미와 완전성이 손상되어 원고의 창작의도가 침해되고 작가로서의 명예도 훼손되므로, 개변에 의한 동일성유지권의 침해에 해당한다.

⑷ 피고는 원고에게 위와 같은 저작인격권 침해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고, 저작권법 제127조 에 정한 명예회복에 필요한 조치로서 별지 광고문을 중앙일간지 등에 게재할 의무가 있다.

나) 피고의 반론 요지

저작권법 제127조 에 따라 저작인격권 침해가 인정되려면 저작물의 이용이 전제되어야 하나, 피고는 원고의 이 사건 벽화를 떼어 내어 폐기함으로써 이용하고 있지 아니하므로 동일성유지권 침해의 문제가 생길 여지가 없으며, 이 사건 벽화의 영구 존치는 불가능하므로, 떼어내는 데 대하여 원고의 암묵적 양해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⑵ 이 사건 벽화가 장소성을 상실한 경우 본래의 작품과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리므로 동일성유지권의 문제는 제기될 수 없다. 원고가 주장하는 장소특정적 미술 이론은 현행 저작권법의 해석상 인정되지 아니한다.

⑶ 피고가 이 사건 벽화를 떼어 내는 과정에서 일부 손상이 이루어진 것은 부득이한 것이었다. 소유권자는 자신이 소유한 저작물을 처분하거나 사용, 수익할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있고, 그 권능에는 저작물을 파괴할 권리도 포함되며, 이 사건 벽화의 철거, 절단 등은 폐기과정의 일부일 뿐이므로 별도로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

2) 예술의 자유 또는 인격권의 침해

가) 원고 주장의 요지

피고는 예술작품에 대한 몰지각과 왜곡된 정치·이념적 잣대를 근거로 하여 이 사건 벽화를 일방적으로 공공장소에서 철거하였고, 절차상으로도 철거과정에서 원고에게 사전 협의나 동의를 구하지 않았으며, 철거 당시 이 사건 벽화의 보존을 위한 최소한의 주의의무도 기울이지 아니하였는바, 위와 같은 피고의 행위는 헌법상 보장된 원고의 예술의 자유 또는 인격권을 침해하는 위법행위로서 원고에게 커다란 정신적 고통을 겪게 하였으므로,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 민법 제750조 , 제751조 에 따른 위자료의 지급을 구한다.

나) 피고의 반론 요지

예술의 자유에는 국가나 예술작품의 소유자에 대하여 예술작품을 전시·공연·보급해 달라고 요구할 권리는 포함되지 아니한다. 피고는 원고의 작품 창작 활동에 간섭하거나 작품의 표현 자체를 금지한 것이 아니므로 원고의 예술의 자유를 침해한 바 없다.

피고는 원고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할만한 사실의 적시를 한 바 없고 단순히 원고의 주관적 명예감정의 침해만으로는 명예훼손이 될 수 없어 인격권에 대한 침해에 해당하지도 아니한다.

피고 소속 공무원은 이 사건 벽화의 철거를 결정하기에 앞서 설문조사 및 관계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 등 신중을 기하여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처리하였으므로 고의, 과실 등의 귀책사유가 없고, 행위의 위법성이나 원고 주장 손해와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도 인정되지 아니한다.

나. 쟁점

1) 피고의 행위가 원고의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하는지

2) 피고의 행위가 원고의 예술의 자유 또는 인격권을 침해한 불법행위에 해당하는지

4. 판단

가. 동일성유지권의 침해: 부정

○ 다음과 같은 이유로, 피고의 행위가 원고의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1) 동일성유지권은 저작물 소유권자의 처분행위에 대항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가) 피고가 이 사건 벽화를 떼어낸 후 소각하여 폐기한 것은 이 사건 벽화의 소유권자로서의 권능을 행사한 것이라고 보아야 하고, 이에 대하여 원고가 동일성유지권을 주장할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즉 원고가 저작물 원본에 대한 소유권을 피고에 양도하고 이에 대한 대가도 지급 받은 이상, 그 저작물이 화체된 유형물의 소유권자인 피고의 그 유형물 자체에 대한 처분행위를 제한할 법적 근거가 없으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저작권법상 동일성유지권이 보호하는 '저작물의 동일성'은 저작물이 화체된 유형물 자체의 존재나 귀속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저작물의 내용 등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만일 저작인격권자가 저작물 원본의 소유권 양도 후에도 동일성유지권을 유보하고 소유권의 행사에 대하여 언제라도 이를 추급할 수 있게 한다면, 저작물의 소유권자로 하여금 저작물 보유에 대한 예측할 수 없는 과도한 부담을 갖게 하여 오히려 저작물의 원활한 유통을 저해함으로써 저작권자의 권리를 해할 우려도 있다.

그리고 피고가 이 사건 벽화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손상한 행위, 절단한 행위, 방치하여 추가로 손상한 행위는 개별적으로 나누어 보면 동일성유지권 침해 행위를 구성할 여지도 있으나,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 궁극적인 폐기행위를 저작인격권의 침해로 볼 수 없는 이상, 위 손상, 절단 등의 행위는 폐기를 위한 전 단계 행위로서 그 폐기행위에 흡수되어 별도의 저작인격권 침해를 구성하지 아니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나) 특정 형태의 저작물에 대하여는 소유권자에 대한 저작자의 권리를 보장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을 수도 있으나 이는 쌍방의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한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는 방법으로 해결되어야 하며, 원고 주장처럼 쌍방 이익의 비교형량을 통한 현행법의 해석론으로 이를 인정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원고의 주장은 현행 저작권법에 대한 해석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베른협약 제6조의2의 저작물에 대한 ‘기타의 침해’에 공공장소에 설치된 미술작품의 철거행위가 포함된다는 원고의 주장을 인정할 아무런 근거가 없고, 위 협약의 규정이 직접 이 사건에 적용된다고 볼 수도 없다(위 협약에서는 저작인격권의 보호를 ‘보호가 주장되는 국가’의 입법에 맡기고 있다).

다) 원고의 이 부분 주장은 모두 이유 없다.

2) 현행 저작권법상 장소특정적 미술에 대한 특별한 보호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원고가 주장하는 장소특정적 미술이란 현행 저작권법에서는 인정하지 아니하는 개념임이 명백하므로 이에 대하여 다른 저작물에 비하여 특별한 보호를 할 근거가 없다. 원고의 이 부분 주장 또한 현행 저작권법 해석의 한계를 넘는 것으로서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받아들일 수 없다.

나. 불법행위: 성립

○ 다음과 같은 이유로 피고의 이 사건 벽화 폐기행위는 원고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를 구성한다.

1) 기본 법리

헌법 제22조 제1항 은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제2항 은 ‘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헌법상의 기본권은 제1차적으로 개인의 자유로운 영역을 공권력의 침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 권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헌법의 기본적인 결단인 객관적인 가치질서를 구체화한 것으로서, 사법을 포함한 모든 법 영역에 그 영향을 미치는 것이므로 사인 간의 사적인 법률관계도 헌법상의 기본권 규정에 적합하게 규율되어야 한다. 다만 기본권 규정은 그 성질상 사법관계에 직접 적용될 수 있는 예외적인 것을 제외하고는 사법상의 일반원칙을 규정한 민법 제2조 , 제103조 , 제750조 , 제751조 등의 내용을 형성하고 그 해석 기준이 되어 간접적으로 사법관계에 효력을 미치게 된다. 예술의 자유라는 기본권의 침해와 관련한 불법행위의 성립 여부도 위와 같은 일반규정을 통하여 사법상으로 보호되는 예술에 관한 인격적 법익침해 등의 형태로 구체화되어 논하여져야 한다( 대법원 2010. 4. 22. 선고 2008다38288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한편 공무원에게 부과된 직무상 의무의 내용이 단순히 공공 일반의 이익을 위한 것이거나 행정기관 내부의 질서를 규율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또는 부수적으로 사회구성원 개인의 안전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설정된 것이라면, 공무원이 그와 같은 직무상 의무를 위반함으로 인하여 피해자가 입은 손해에 대하여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 국가가 배상책임을 지는 것이고, 이때 상당인과관계의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일반적인 결과발생의 개연성은 물론 직무상 의무를 부과하는 법령 기타 행동규범의 목적, 그 수행하는 직무의 목적 내지 기능으로부터 예견가능한 행위 후의 사정, 가해행위의 태양 및 피해의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대법원 2003. 4. 25. 선고 2001다59842 판결 ).

또한, 공무원의 행위를 이유로 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기 위하여는 ‘공무원이 그 직무를 집행함에 당하여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에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라고 하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의 요건이 충족되어야 할 것인바, 여기서 ‘법령에 위반하여’라고 함은 엄격하게 형식적 의미의 법령에 명시적으로 공무원의 작위의무가 정하여져 있음에도 이를 위반하는 경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인권존중·권력남용금지·신의성실과 같이 공무원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준칙이나 규범을 지키지 아니하고 위반한 경우를 포함하여 널리 그 행위가 객관적인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는 경우도 포함한다( 대법원 2012. 7. 26. 선고 2010다95666 판결 ).

2) 판단

가) 불법행위의 성립

앞서 채택한 증거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여러 사정에 비추어 보면, 피고 산하 남북출입사무소 소속 공무원이 이 사건 벽화를 철거한 후 소각한 행위는 원고가 예술창작자로서 갖는 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인격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객관적인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는 위법한 행위라 할 것이고, 그로 인하여 원고가 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임은 경험칙상 분명하므로, 피고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에 따라 원고에게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

[피고의 불법행위를 인정하는 근거]

⑴ 이 사건 벽화의 성격

○ 원고는 1968년 이래 대학교수 등으로 재직하면서 작품활동을 하여 왔고, 특히 비무장지대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이 있었다. 이 사건 벽화는 처음부터 공공장소이자 특별한 역사적, 시대적 의미를 띠고 있는 도라산역에 설치하는 것이 예정되었고, 벽화의 내용 또한 설치 장소에 맞추어 제작되었으며, 피고 스스로 이 사건 벽화의 내용 및 의미와 더불어 원고의 인적사항을 상세히 소개하는 홍보자료를 제작·배포하였다(갑 제6호증). 피고가 밝힌 추진계획(갑 제1호증의 1)에 따르면, 통일문화광장을 조성하여 도라산역 방문객에게 민족의 동질성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작품을 전시함으로써 통일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남북교류협력의 현실과 통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는 내용을 대형벽화를 통해 표현하기 위하여 이 사건 벽화를 제작·설치하였다는 것이다.

○ 이러한 특정 공공장소에 설치된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시각예술은 그 작품의 의미와 설치장소가 하나로 결합하여 새로운 예술적 가치와 공간적, 역사적 의미를 창조하게 된다. 이러한 창작물이 관람객들에 대하여 상당한 인지도를 얻게 되는 정도에 이르면, 창작자 개인이 위 작품이 현상 그대로 유지되는 데 대하여 커다란 이익을 갖게 됨은 물론, 공공적 측면에서도 이를 후대를 위한 문화예술자산으로 유지·보전하여야 할 이익이 발생한다.

⑵ 국가인 피고의 책무

○ 예술의 자유는 인간이 자신의 개성을 예술적 언어로 창의적이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특히 공권력에 의한 예술 활동의 침해로부터 예술가를 보호하는 것을 포함한다. 예술작품은 이러한 예술의 자유에 근거한 다양성의 발현을 본질적 가치로 삼는 것으로 예술작품에 대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또 헌법은 국가로 하여금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할 의무를 부과하고( 제9조 ), 예술가의 권리를 법률로써 보호하도록 정하고 있다( 제22조 제2항 ). 이처럼 국가는 국민에 대하여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여야 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예술을 보호하고 장려할 책무 또한 부담한다.

따라서 국가인 피고는 이 사건과 같이 스스로 설치하여 인지도를 얻은 공공예술작품을 완전히 폐기하는 데에는 신중하여야 하고 공론화의 과정을 충분히 거쳐 결정하여야 할 것이다. 특정 예술작품을 국가가 일정한 잣대 아래 일방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자칫하면 예술에 대한 국가의 감독으로 이어질 수 있어 예술의 자유를 정면으로 침해할 가능성이 있고 위 책무를 저버릴 위험도 있다.

문화예술진흥법 제9조 는 일정한 건축물의 건축주에게 건축비용 중 일부로 미술작품을 설치하도록 하되, 같은 법 시행령 제15조 에서는 지방자치단체장으로 하여금 위와 같이 설치된 미술작품이 철거·훼손된 경우 해당 건축주에게 원상회복조치를 요구하도록 정하고 있는바, 피고가 위 규정의 직접 적용을 받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사인인 건축주에 비하여 더 완화된 책임을 부담하는 것은 앞서 본 피고의 책무에 비추어 볼 때 부당하다.

물품관리법시행령(2011. 12. 30. 대통령령 23429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51조 제2항 의 위임에 따라 정부미술품의 관리를 위해 제정된 정부미술품 보관관리규정(2010. 2. 4. 조달청고시 제2010 - 4호) 제4조 제1항 제2호는 ‘미술품의 보존·관리를 위하여 수선을 하거나 장소 변경 등 이동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미술품의 가치를 충분히 고려하여 원형이 손상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고(밑줄은 편의상 덧붙인 것이다), 제8조에서는 ‘보존이나 보관할 필요가 없어 불용의 결정을 한 미술품 중 관리전환 등 방법으로 처분되지 않는 경우에는 물품관리법 제38조 에 해당하는 기관이나 단체에 무상으로 양여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9조 제2항에서 ‘미술품의 손상의 정도가 심하여 수복이 불가능하거나 보존가치가 없는 미술품에 대하여는 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폐기처분할 수 있다.’라고 규정함으로써 정부미술품에 대해서는 보존의무를 규정하면서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폐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이러한 물품관리규정은 국가 재산의 효율적 보존과 적정한 관리를 목적으로 한 것으로서, 특히 정부미술품에 대하여 별도의 보관관리규정을 두고 상세한 보존 방법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미술품을 특별히 원형 그대로 장기 보존함으로써 그 경제적 가치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지만, 이와 더불어 정신적, 문화적 산물인 미술품의 창작자가 자신의 작품이 장기간 온전히 유지되고 공중에 전시되는 데 대하여 갖는 인격적 이익이나 해당 작품이 가지는 문화 예술적 유산으로서의 공공적 가치도 부수적으로 보호하고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

⑶ 이 사건 벽화의 폐기절차

○ 피고는 관람객 140명에 대한 15일간의 설문조사와 2010. 4. 30. 회의에 참석한 외부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이 사건 벽화의 철거를 결정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피고는 그 설문조사의 최종결과만을 제시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설문지의 내용이나 실제 응답내용 등에 관한 자료는 전혀 제출하지 아니하고 있다. 나아가 위 외부전문가들이 이 사건 벽화를 철거하여야 할 이유로 지적한 ‘작가 개인의 지나친 부각’, ‘관광객의 이해 곤란’, ‘어두운 색채와 반복적 내용’, ‘프린트 방식으로 아우라 없음’은 이미 이 사건 벽화의 제작에 앞서 도안을 검토하기 위해 2006. 11. 2. 열린 회의에 참석한 외부전문가들이 지적한 사항과 사실상 같은 것이어서 이를 다시 철거의 이유로 삼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피고는 벽화 제작·설치와 철거에 관하여 각 자문한 외부전문가들의 인적사항을 전혀 밝히지 아니하고 있다).

○ 결국, 피고가 이 사건 벽화의 철거를 결정하기 위해 거친 위와 같은 절차는, 공론의 장을 충분히 거쳤다고 볼 수 없는 매우 형식적인 것이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으며, 그 철거가 어떠한 공익적 목적을 위한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또 이 사건 벽화는 앞서 본 정부미술품 보관관리규정에서 규정한 수복이 불가능하거나 보존가치가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피고가 이 사건 벽화의 내용이 부적절함을 이유로 이를 소각하는 방법으로 폐기해 버린 것은 위 규정에 명백히 위반되는 것이라고 보인다(피고는 이 사건 벽화가 도라산역 건물에 부합되어 부동산의 일부가 되었으므로 동산인 물품에 대한 관리방법만을 정하고 있는 위 규정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취지로 주장하는바, 이 사건 벽화가 부동산에 부합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설령 부합되었다고 보더라도 그 소유권의 귀속과는 무관한 미술품으로서의 보존가치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며, 피고의 폐기행위가 정부미술품의 원칙적인 보존과 관리를 규정한 위 규정의 취지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행위임은 여전히 부인할 수 없다).

○ 피고는 2011. 8. 9. 열린 이 사건 제1심 1차 변론기일에서 이 사건 벽화를 떼어내어 보관하고 있다고 진술하였는데, 이에 따라 원고가 2011. 9. 14.경 이 사건 벽화의 현황을 살피기 위해 도라산역을 방문하자 비로소 도라산역 옆 공터에서 이미 소각하여 버린 사실만을 고지하였다. 피고는 그 구체적인 소각 경위에 대해서 더 이상 밝히지 아니하고 있고, 위와 같은 소각결정 및 경위에 관하여 아무런 문서도 작성되지 아니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피고의 행위는 이 사건 벽화의 훼손에 따른 원고의 인격적 이익의 침해 여부와 관련하여 그 증거자료를 파기함으로써 이 사건 벽화의 훼손사실에 대한 원고의 입증을 방해한 행위라고 볼 여지가 있다.

⑷ 폐기의 결과

○ 피고가 이 사건 벽화를 떼어내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손상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복원 과정 등을 통하여 이 사건 벽화를 다시 제작한 후 다른 곳에 전시하거나 보관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고 보인다. 원고는 이 사건 벽화를 완성하기 위하여 필생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 사건 벽화가 원고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장소에 전시되어 후대에도 원고의 대표작으로 남게 될 것으로 기대하였을 것으로 보이므로, 설령 이 사건 벽화가 도라산역에서 철거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작품의 보존에 대하여 상당한 이익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것이다.

○ 피고 역시 이 사건 벽화의 가치와 의미에 대하여 스스로 적극적으로 홍보하기까지 한 점 등에 비추어 이 사건 벽화의 존속에 대하여 원고가 보유하는 인격적 이익을 충분히 알고 있었으리라 보이고, 실제로 앞서 인정한 바와 같이 원고의 청원서에 대하여 피고 산하 남북출입사무소장이 2010. 6. 17. 이 사건 벽화를 적절한 장소에 보관하고 있다는 취지로 회신하면서 '교수님께서 벽화에 그려 놓으신 혼과 열정은 철거된 이후에도 길이 남을 것을 확신합니다.'라고 답변한 내용은 이러한 사정을 뒷받침한다.

○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었던 피고가 이 사건 벽화를 소각할 예정임을 원고에게 미리 알렸다면 원고는 자신의 작품을 보존하기 위하여 다시 매수하는 등의 조치를 강구할 가능성도 있었다고 보인다. 그럼에도 피고는 원고에게 아무런 통보 없이 이 사건 벽화를 관련 법령에 규정된 절차도 지키지 아니한 채 소각하는 방법으로 폐기하였는바, 이는 저작권법의 시각에서만 보면, 저작권법이 저작자의 인격권으로 보호하는 저작물의 '내용·형식 및 제호'에 대한 동일성유지를 넘어 저작물 그 자체를 극단적으로 변형·왜곡하여 버린 것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나) 위자료의 액수

법원이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를 산정함에 있어서는 피해자의 연령·직업·사회적 지위, 재산 및 생활상태, 피해로 입은 고통의 정도, 피해자의 과실 정도 등 피해자 측의 사정에 가해자의 고의·과실의 정도, 가해행위의 동기·원인, 가해자의 재산상태·사회적 지위·연령, 사고 후의 가해자의 태도 등 가해자 측의 사정까지 함께 참작하는 것이 손해의 공평 부담이라는 손해배상의 원칙에 부합한다( 대법원 2009. 12. 4. 선고 2007다77149 판결 ).

이 사건 제1심 및 당심 변론 과정에서 나타난 원고의 작가 활동 경력과 예술가로서의 사회적 지위, 이 사건 벽화의 제작 경위, 원고 개인적 측면과 공공적 관점에서 보는 이 사건 벽화의 보존가치, 이 사건 벽화의 구체적 제작방법과 그 재제작의 가능성, 이 사건 벽화가 도라산역에 전시된 기간, 이 사건 벽화에 대한 공중의 인지도, 피고가 이 사건 벽화의 철거를 결정하게 된 이유와 절차, 피고의 이 사건 벽화의 제거 방법과 보관 경위, 이 사건 벽화의 소각 시기와 경위, 원고가 이 사건 벽화의 폐기로 인하여 입었을 정신적 고통의 정도, 피고가 부담하는 기본권 보장의무의 내용 및 그 위반의 정도 등 모든 사정을 고려하여 보면, 원고가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는 10,000,000원으로 인정함이 상당하다.

다) 명예회복에 필요한 조치 부분에 관한 판단

원고는 피고의 저작인격권침해를 전제로 저작권법 제127조 에 정한 명예회복에 필요한 조치를 청구하고 있는바, 위 청구에는 피고의 저작인격권침해가 아닌 불법행위가 인정될 경우 민법 제764조 에 정한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을 구하는 청구 또한 포함된 것으로 보아 판단한다.

살피건대, 민법 제764조 에서 말하는 명예훼손이란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하는 행위를 말하고 단순히 주관적으로 명예감정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명예훼손이 되지 않는 것인바( 대법원 1992. 10. 27. 선고 92다756 판결 ), 피고는 이 사건 벽화를 철거하여 소각하였을 뿐 이에 더하여 특별히 원고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하는 다른 행위를 하였다고 보이지 아니하는 점, 피고의 행위로 인하여 원고가 입었을 것으로 보이는 정신적 손해의 정도, 피고 행위에 대한 비난 가능성, 피고의 지위, 그 밖에 앞서 위자료를 인정하면서 살핀 제반 사정 등을 종합하면, 앞서 인정한 위자료의 배상에 더하여 피고에게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으로서 별지 광고문을 중앙일간지 등에 게재할 것을 명할 필요성까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이 부분 원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

라) 소결론

피고는 원고에게 위자료 10,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불법행위일 이후로서 원고가 구하는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 다음 날인 2011. 5. 24.부터 피고가 그 이행의무의 존부 또는 범위에 관하여 항쟁함이 상당한 당심 판결 선고일인 2012. 11. 29.까지는 민법에 정한 연 5%의,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 정한 연 20%의 각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5. 결론

원고의 청구는 위 인정 범위 내에서 이유 있어 인용하고, 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어 기각하여야 한다. 제1심판결은 이와 일부 결론을 달리하여 부당하므로 제1심판결 중 위에서 지급을 명한 원고 패소 부분을 취소하여 피고에게 위 금원의 지급을 명하고, 원고의 나머지 항소는 이유 없어 기각한다.

[별지 생략]

판사 권택수(재판장) 강경태 백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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