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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방법원 2012. 3. 20. 선고 2011가합49085 판결
[손해배상][미간행]
원고

원고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덕수 담당변호사 송상교)

피고

대한민국 (소송대리인 정부법무공단 담당변호사 최재정 외 1인)

변론종결

2012. 3. 6.

주문

1.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2.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피고는 원고에게 3억 원 및 이에 대하여 2010. 5. 18.부터 이 사건 소장부본 송달일까지는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피고는 별지 광고문을, 이 판결 송달 후 3일 내 발행되는 3개 이상의 중앙일간지 사회면 광고란에 가로 37센티미터, 세로 17센티미터의 크기로 제목은 2호, 내용은 3호의 활자로, 이 판결 송달 1일 후부터 7일 동안 통일부 홈페이지(http://www.unikorea.go.kr) 초기화면 중앙 상단에, 각 게재하라.

이유

1. 기초사실

가. 원고의 작품 제작 및 피고의 소유권 취득

1) 피고(통일부)는 ‘경의선 철도·도로 출입시설 공용야드 건설신축 기타공사(이하 ’도라산역 건축공사‘라 한다)를 한국철도시설공단에 위탁하였고, 한국철도시설공단은 2006. 8. 30. 영동건설주식회사와 도라산역 건축공사에 대한 도급계약을 체결하였다.

2) 피고는 2006. 3.경 원고에게, ‘경의선 철도출입시설의 공간 활용 계획의 일환으로 「산 통일교육의 장」으로 활용되는 통일문화광장을 도라산역사 내에 조성하고자 하는데, 이를 위하여 도라산역 방문객들에게 남북교류협력의 현실과 통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는 작품을 창작하여 제공해줄 것’을 의뢰하였고, 이에 따라 원고는 2007. 1. 23. 도라산역 건축공사를 실제 시공하는 영동건설주식회사와 사이에 8,000만 원에 도라산역사 내에 미술품을 제작하여 설치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하였다. 원고와 영동건설 간의 미술품설치계약서 제5조 제2항은 ‘본 계약 목적물의 소유권은 갑(영동건설)의 잔대금 완불과 동시에 을(원고)로부터 갑에게 이전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3) 원고는 도라산역사 내 벽 및 기둥들에 ‘포토콜라쥬’ 기법을 활용한 14점의 벽화(이를 더하면 폭 2. 8미터, 길이 100여 미터에 이르는 대형벽화가 완성된다. 이하 위 벽화들을 통틀어 ‘이 사건 벽화’이라 한다)를 제작하여 설치하였고, 영동건설주식회사로부터 이 사건 벽화의 제작설치 대금을 모두 지급받았다.

4) 이후 영동건설주식회사는 도라산역 건축공사를 완료하여 한국철도시설공단에게 그 시설물 일체를 인도하였고, 한국철도시설공단이 2008. 1.경 이를 다시 피고에게 인도함에 따라, 피고는 이 사건 벽화를 소유하게 되었다.

나. 피고의 이 사건 벽화 철거 경위

1) 피고는 2010. 2. 3. 도라산역 관광객의 부정적인 여론(전반적으로 색상이 어둡고, 난해하며, 그림 내용을 이해하기 곤란하고, 민중화로 ‘무당집’ 분위기를 조성하여 공공장소인 도라산역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등)이 있다는 이유로 도라산역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및 전문가와의 간담회를 개최한 다음 2010. 5. 말경까지 이 사건 벽화의 교체를 완료한다는 내용의 ‘이 사건 벽화 교체 추진계획안’을 내부결제하였다.

2) 피고는 2010. 4. 1.부터 같은 달 15.까지 도라산역 관광객 14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 사건 벽화를 교체·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이 80%로 나오고, 2010. 4. 30. 관계 전문가 의견(내부 위원 1명, 외부 전문가 3명)을 수렴한 결과 이 사건 벽화를 철거하고, 대신 밝은 정서 및 평화 등을 상징하는 그림·사진으로 교체하여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자, 2010. 5. 6. 이 사건 벽화를 철거하기로 결정하였고, 이후 철거 공사를 진행하였는데, 철거 공사는 이 사건 벽화에 물을 분사하여 원래의 규격보다 작은 규모로 이 사건 벽화를 절단하여 벽체와 이 사건 벽화를 박리시키는 방법으로 진행되었으며, 2010. 5. 18. 이 사건 벽화의 철거가 완료되었다.

다. 원고의 항의 및 피고의 소각 행위

1) 도라산역을 방문한 지인으로부터 이 사건 벽화의 철거를 알게 된 원고는 2010. 6. 11. 이 사건 벽화의 관리를 담당하고 있었던 피고 산하 남북출입사무소 소장 소외인에게 이 사건 벽화의 철거 이유, 철거로 인한 훼손 여부, 현재의 보관 상태 등을 질의하는 청원서를 보냈고, 이에 소외인은 2011. 6. 17. 원고에게 ‘이 사건 벽화의 난해성, 어두움 등을 이유로 하여 철거하였고, 철거시 이 사건 벽화를 손상시키지 않도록 노력하였으나, 부득이하게 손상된 부분이 있으며, 현재 이 사건 벽화 전체를 남북출입사무소 내 적절한 장소에 보관하고 있다’는 내용의 회신을 보냈다.

2) 피고는 이 사건 벽화를 철거한 이후 남북출입국사무소 내 어느 공간에 이를 방치하다가 2011. 초경 도라산역 인근 공터에서 이 사건 벽화를 소각하였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1호증의 1 내지 3호증의 2, 갑 14호증의 1, 2, 을 1호증의 1 내지 을 11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저작인격권 침해 여부

가. 원고의 주장

1) 피고는 이 사건 벽화에 물을 분사, 벽체와 벽화를 박리시키는 방법으로 철거하였고, 철거과정에서 이 사건 벽화를 훼손하였으며, 이후 이를 소각하였는데, 위와 같은 피고의 이 사건 벽화에 대한 철거, 훼손, 소각의 각 행위는 이 사건 벽화의 내용, 형식의 동일성을 깨뜨리는 행위로서 동일성유지권의 저작인격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2) 이 사건 벽화는 이른바 ‘장소특정적 미술’에 해당하여 작품의 위치가 작품의 주요 구성 부분을 구성하는 경우이므로, 이를 철거하여 다른 곳에 옮긴 것 자체로 저작물의 내용, 형식, 제호의 동일성을 깨뜨리는 행위에 해당한다.

3) 이에 피고는 원고에게 저작인격권 침해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고, 명예회복에 필요한 조치로서 별지 기재 광고문을 중앙일간지에 개재할 의무를 부담한다.

나. 판단

1) 앞서 본 이 사건 벽화의 철거 결정 및 실행 과정, 이후 소각에 이르는 전체 경위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벽화를 벽체에서 철거하고, 그 과정에서 훼손하며, 이후 이를 소각한 각 행위는 이 사건 벽화를 파괴하기 위한 일련의 행위들로서, 전체로서 하나의 행위인 ‘이 사건 벽화의 파괴 행위’(이하 ‘이 사건 파괴 행위’라 한다)를 구성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2) 소유자가 저작물을 저작자의 동의 없이 변경하여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자가 저작물을 완전히 파괴하는 경우라면, 일반적으로 그 파괴 행위가 예술가의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포섭된다고 볼 수는 없는데, 이는 통상 저작물에 대한 소유권을 양도하고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받은 예술가라면 이후 자신의 저작물에 발생 가능한 운명에 대하여는 이를 점유자의 손에 맡기는 행위를 이미 한 것이라고 봄이 조리에 부합하기 때문이라는 점, 소유자의 취향 변화 등 어떠한 이유로든지 예술저작물에 대해서 싫증이 났다면 소유자가 예술저작물을 양도·매도·교환·증여하거나,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으로부터 제거하여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부당한 소유권의 행사라고 보기 힘들다는 점, 예술가의 동일성유지권은 자신의 작품인 저작물에 대한 외부적 평가가 예술가 자신의 사상, 노력, 명성, 명예 등 인격적 이익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에 비추어 인정되는 예술저작물의 유지와 무흠결에 대한 이익이라 말할 수 있는데, 저작물의 동일성을 유지한 채 부분적으로 개변한 것이 아니라 저작물을 완전히 파괴하는 경우에는 작품에 대한 외부적 평가 자체가 상실되므로 위와 같은 예술가의 이익이 침해되었다고 보기 힘든 점 등의 여러 이유에 근거한다. 또한 이와 같은 논리는 ‘장소특정적 미술’에 해당하는 저작물의 경우에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그대로 유지된다.

이 사건 파괴 행위는 피고가 자신의 소유물인 이 사건 벽화를 파괴한 행위에 해당하므로, 원고의 동일성유지권이 침해되었다고 볼 수 없다.

3) 따라서 이 사건 파괴 행위가 동일성유지권의 저작인격권을 침해하는 행위임을 전제로 한 원고의 주장은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이유 없다.

3. 예술의 자유 또는 인격권 침해 여부

가. 원고의 주장

피고는 예술작품에 대한 몰지각과 왜곡된 정치·이념적 잣대에 기하여 이 사건 벽화를 철거하였고, 절차상으로도 철거과정에서 원고에게 사전 협의나 동의를 구하지 않았으며, 철거 당시 이 사건 벽화의 보존을 위한 최소한의 주의의무도 기울이지 아니하였는데, 위와 같은 피고의 행위는 원고의 예술의 자유 또는 인격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므로, 이에 대한 손해배상을 구한다.

나. 판단

1) 이 사건 파괴 행위를 함에 있어 피고가 원고에게 사전 협의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점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고, 갑 2호증의 5의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피고가 이 사건 파괴 행위 당시 이 사건 벽화를 보존하기 위한 조치들을 따로이 취하지 아니한 점은 인정된다.

2) 그러나 피고가 이 사건 파괴 행위를 함에 있어 이 사건 벽화에 대한 관광객들의 부정적인 여론을 근거로 설문조사 및 전문가와의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일응의 내부적 절차를 거친 점은 앞서 본 바와 같은바, 이에 비추어 볼 때, 피고가 이 사건 벽화에 대한 부적절한 평가를 하여 이 사건 벽화를 파괴하기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이는 피고의 정책 판단이 부적절함을 지적하는 근거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원고의 예술의 자유 내지는 인격권이 침해되었음을 인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3) 또한 피고가 원고에게 사전 협의나 동의를 구하였더라면 이 사건 파괴 행위가 보다 적절한 공권력 행사가 될 수 있었음은 별론으로 하고, 실정법상 피고가 저작자인 원고에게 저작물의 철거에 대한 사전 협의나 동의를 구해야 하는 의무를 부담하고 있지 아니한 이상 그 불이행을 두고 원고의 예술의 자유 내지는 인격권이 침해되었다고 볼 수도 없다.

4) 이 사건 파괴 행위가 이 사건 벽화의 철거, 훼손 및 소각을 포함하는, 전체적으로 하나의 행위인 점은 앞서 본 바와 같은바, 이 사건 파괴 행위의 과정에서 이 사건 벽화가 훼손되었다고 하더라도, 피고의 소유권 행사로 인한 이 사건 벽화의 파괴가 정당한 이상 그 훼손행위만을 두고 원고의 예술의 자유 내지는 인격권이 침해되었다고 볼 수 없다.

5) 따라서 이 사건 파괴 행위가 원고의 예술의 자유 내지는 인격권을 침해함을 전제로 한 원고의 주장은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이유 없다.

4. 결 론

그렇다면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모두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별지 생략]

판사   한규현(재판장) 정희엽 정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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