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2016가합522523 물품대금 등
원고
주식회사 지엠티
피고
대한민국
변론종결
2017. 3. 14.
판결선고
2017. 3. 28.
주문
1.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2.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원고의 피고에 대한 2014. 9. 29. 물품계약에 의한 선금 390,593,000원의 반환채무는 존재하지 아니함을 확인한다. 피고는 원고에게 167,397,000원 및 이에 대하여 2014. 12. 20.부터 소장 부본 송달일까지는 연 6%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5%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이유
1. 기초사실
가. 원고는 소프트웨어 개발 및 공급과 이와 관련된 기계장치의 제조·판매업을 영위하는 회사이다.
나. 피고 산하의 경남지방조달청장(이하 '조달청'이라 한다)은 2014. 9. 7.경 아래의 내용이 포함된 구매입찰공고를 하였다.
다. 이 사건 계약의 체결 및 선금의 지급
1) 원고는 입찰에 참가하여 계약당사자로 선정되었고, 2014. 9. 29. 조달청과 조난 자무선식별장치(이하 '이 사건 제품'이라 한다) 1식에 관하여 계약금액 557,990,000원, 납품기한 2014. 12. 19.로 정하여 물품공급계약(이하 '이 사건 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하였고, 이 사건 계약에 첨부된 이 사건 제품에 관한 구매사양서에는 아래의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2) 조달청은 이 사건 계약을 체결한 후 원고에게 계약금액의 70%인 390,593,000원을 선금으로 지급하였다.
라. 기존 장비의 사용현황
해군은 2013년경 주식회사 유니모테크놀로지(이하 '유니모'라 한다)로부터 조난자 무선식별장치 9,298대(이하 '기존 장비'라 한다)를 구매하여 운용하고 있는데, 기존 장비의 프로토콜1)은 암호화되어 있었고, 무선통신을 함에 있어 해군은 ○○○.○○○○㎒, 해경은 △△△.△△△△㎒의 주파수를 사용하고 있었다. 위 주파수는 서울이동통신이 미래창조과 학부로부터 심사할당받은 것인데, 유니모는 서울이동통신과 이용계약을 체결하여 전파사용료를 납부한 후 기존 장비마다 식별 번호를 부여받았다.
마. 2014. 12. 23. 해군 및 해병대와 원고가 참여한 가운데 이 사건 제품에 관한 성능확인 시험이 실시되었고, 그 결과 해군은 납품장비 성능검증을 위해 공인기관 시험자료가 필요하고, 기존 장비와 호환이 불가능하며, 깜박임 기능이 없다고 판단하였고, 해병대는 원고에게 기존 장비와 호환이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검수불합격증을 교부하였다.
바. 조달청은 2015. 12. 29. 원고에게 계약 미이행을 이유로 이 사건 계약을 해제한다는 의사표시를 하였고, 선금으로 지급한 390,593,000원의 반환을 요청함과 동시에 원고의 선금 반환채무를 보증한 소프트웨어공제조합에 보증금을 청구하였다.
사. 관련 행정소송의 경과
조달청은 2016. 3. 24. 원고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사유로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제27조 제1항, 같은 법 시행령 제76조 제1항 제6호를 근거로 3개월간(2016. 4. 1.~2016. 6. 30.)의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을 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원고가 제기한 서울행정법원 2016구합58055호 사건에서 2016. 9. 8. 원고가 정당한 이유 없이 이 사건 계약을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위 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이 선고되었고, 위 판결은 그 무렵 확정되었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2, 3, 11, 24, 25, 28호증, 을 제1, 2, 4, 12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당사자들의 주장
가. 원고의 주장
이 사건 제품이 해군 및 해양경찰청에서 운용 중인 기존 장비와 연동 및 호환되기 위해서는 기존 장비의 프로토콜을 알아야 하나, 기존 장비의 프로토콜이 암호화되어 있어 원고가 이를 적법하게 알아내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기존장비가 사용하는 주파수(○○○.○○○○㎒)는 서울이동통신사가 무선호출용으로 할당받은 것이어서 이 사건 제품에는 사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피고는 기존 장비의 프로토콜을 제공하고 적법한 주파수를 할당받음으로써 원고가 이 사건 계약을 이행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하는 계약상 또는 신의칙상 요구되는 협력의무를 부담한다. 그럼에도 피고는 원고의 프로토콜 제공 및 주파수 문제 해결 요청에 용하지 않음으로써 원고가 이 사건 계약의 계약특수조건을 성취하는 것을 방해하였다.
따라서 원고는 민법 제150조 제1항에 근거하여 이 사건 계약을 모두 이행하였음을 주장할 수 있고, 결국 원고의 피고에 대한 선금 390,593,000원의 반환의무는 존재하지 아니하고, 피고는 원고에게 미지급 물품대금 167,397,000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나. 피고의 주장
원고는 이 사건 계약의 계약특수조건에서 정한 바와 같이 기존 장비와 연동 및 호환이 되고 주파수 문제가 없는 제품을 납품하기로 약정하였음에도 구매사양서상의 규격을 충족하지 못한 제품을 생산하였고, 결국 검수에 불합격하였다. 따라서 이 사건 계약의 해제는 적법하므로, 원고의 청구에 응할 수 없다.
3. 판단
가. 이 사건 계약 및 계약특수조건의 성격
1) 당사자의 일방이 상대방의 주문에 따라 자기 소유의 재료를 사용하여 만든 물건을 공급하기로 하고 상대방이 대가를 지급하기로 약정하는 이른바 제작물공급계약은 그 제작의 측면에서는 도급의 성질이 있고 공급의 측면에서는 매매의 성질이 있어 대체로 매매와 도급의 성질을 함께 가지고 있으므로, 그 적용 법률은 계약에 의하여 제작 공급하여야 할 물건이 대체물인 경우에는 매매에 관한 규정이 적용되지만, 물건이 특정의 주문자의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한 부대체물인 경우에는 당해 물건의 공급과 함께 그 제작이 계약의 주목적이 되어 도급의 성질을 띠게 되는데(대법원 2010. 11. 25. 선고 2010다56685 판결 참조), 이 사건 제품은 해군의 요구에 따른 특정한 성능을 갖추어 제작되는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판매되는 것이 어렵거나 불가능한 제작물이므로 이 사건 계약이 도급의 성질을 갖는다는 점은 원고의 주장과 같다.
2) 그런데, 이 사건 계약의 계약특수조건 중 가. 내지 다.항에서 정하고 있는 것은 원고와 조달청 사이에 이 사건 제품이 갖추어야 하는 구체적인 사양을 정한 계약의 내용이라고 할 것이어서, 법률행위의 효력의 발생 또는 소멸을 장래의 불확실한 사실의 성부에 의존케 하는 법률행위의 부관인 조건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따라서, 이 사건 계약의 계약특수조건 중 가. 내지 다.항이 민법 제150조 제1항 소정의 조건임을 전제로, 피고가 협력의무를 위반하여 조건 성취를 방해하였으므로 이 사건 계약을 모두 이행하였다는 취지의 원고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다만, 위와 같은 원고의 주장은 이 사건 제품이 검수를 통과하지 못하고 이에 따라 피고가 이 사건 계약을 해제한 것이 피고의 책임 있는 사유로 인한 것인지와 관련하여 여전히 의미가 있다고 보이므로, 이하에서는 이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나. 피고에게 기존 장비의 프로토콜을 제공할 의무가 있는지 여부
1) 계약당사자 사이에 어떠한 계약내용을 처분문서인 서면으로 작성한 경우에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가 명확하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문언대로의 의사표시의 존재와 내용을 인정하여야 하며, 문언의 객관적 의미와 달리 해석함으로써 당사자 사이의 법률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초래하게 되는 경우에는 문언의 내용을 더욱 엄격하게 해석하여야 한다. 그리고 채권자의 권리행사가 신의칙에 비추어 용납할 수 없는 것인 때에는 이를 부정하는 것이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을 것이나, 일단 유효하게 성립한 계약상의 책임을 공평의 이념 및 신의칙과 같은 일반원칙에 의하여 제한하는 것은 자칫하면 사적 자치의 원칙이나 법적 안정성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으므로 신중을 기하여 극히 예외적으로 인정하여야 한다(대법원 2015. 10. 15. 선고 2012다64253 판결 등 참조).
살피건대, 위 기초사실 및 갑 제12, 31호증, 을 제5, 11, 12, 15 내지 18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더하여 인정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① 이 사건 계약의 계약특수조건 나.항 및 다.항은 이 사건 제품이 갖추어야 할 사양으로 해군 및 해양경찰청의 기존 장비와 호환되어야 한다는 점을 원고의 의무사항으로 정하고 있을 뿐, 이 사건 입찰공고서 또는 계약서 어디에도 조달청이나 해군이 원고에게 기존장비의 프로토콜을 제공해야 한다는 정함이 없는 점, ② 이 사건 계약의 계약특수조건 가.항은, 원고는 특정업체의 특허권 침해 문제가 없는 장비를 납품하여야 하고, 제반비용 발생시 이를 원고가 부담하는 것으로 정하고 있는데, 계약서의 문언과 달리 피고에게 기존 장비의 프로토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의무를 부여할 수 없는 점, ③ 이 사건 제품은 인명구조용 통신장비로서 해군의 기존 장비뿐만 아니라 해경의 장비와도 호환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어 보안성보다는 범용성이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이지만, 해군도 기존 장비의 프로토콜을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뿐 이를 용이하게 제공할 수 있음에도 거절하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위와 같은 사정만으로 피고 측에 큰 부담을 초래하게 될 신의칙상의 의무가 발생한다고 보기 어려운 점, ④ 원고는 이 사건 제품과 유사한 방식으로 운용되는 V-PASS2) 사업에도 참여한 경험이 있어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프로토콜이 암호화된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알 수 있었을 것임에도(V-PASS 사업의 제안요청서에는 발주자인 해경이 통신용 프로토콜을 제공할 것이라는 점이 명시되어 있었고, 이에 따라 실제로 그 제공이 이루어졌다), 계약의 입찰이나 계약 체결에 앞서 기존 장비의 프로토콜과의 호환 가능성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조달청이나 해군이 원고에게 기존 장비의 프로토콜을 제공하여야 할 계약상 또는 신의칙상 요구되는 협력의무가 있다고 인정하기 어려우므로, 결국 이를 전제로 하는 원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
2) 한편, 원고는 2015. 9. 3. 해군과 사이에 기존 장비의 소프트웨어를 교체하는 방법으로 프로토콜 호환 문제를 해결하기로 이 사건 계약의 내용을 변경하였는데 해군이 이를 불이행한 것이라고도 주장하나, 갑 제16 내지 21호증의 각 기재만으로 원고와 해군 사이에 이 사건 계약의 내용을 변경하기로 하는 합의가 성립되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원고의 주장은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이유 없다.
다. 주파수 문제의 해결 여부
살피건대, 위 기초사실 및 갑 제23, 28, 30호증, 을 제7, 9, 12호증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더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① 해군은 2014. 12. 19. 미래창조과학부의 권고에 따라 원고에게 해군이 확보한 주파수를 사용할 수 있도록 내부적으로 검토하여 그와 같은 검토결과를 구매사업 담당부서에 시달한 점, ② 원고와 조달청 및 해군 사이에 2015. 5. 21., 2015. 9. 3. 있었던 합동회의에서 주파수와 관련된 논의사항은 없었던 점, ③ 원고는 위 두 차례의 합동회의 이후 해군에 프로토콜의 제공만을 요구하였을 뿐 해군이 확보한 주파수를 사용할 수 있도록 요청하지는 않은 점, ④ 미래창조과학부장관이 2015. 10. 28. 해상 조난자위치발신용 주파수를 배분하는 고시를 함으로써 주파수 불법사용 문제는 해소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해군은 위와 같은 내부 검토를 거쳐 원고로 하여금 해군이 확보한 주파수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
따라서 주파수로 문제로 인해 원고가 이 사건 제품을 제작·공급할 수 없었다는 주장은 이유 없다.
4.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모두 이유 없으므로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재판장 판사 김범준
판사 강민정
판사 김현성
주석
1) 통신기기의 원활한 정보교환을 통신기기 사이에 약속한 통신규칙과 방법
2) 민간어선의 위치정보를 파악하여 해양사고시 구조요청에 사용되는 어선위치발신장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