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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고법 1986. 9. 2. 선고 85나350 제5민사부판결 : 상고
[토지소유권이전등기말소청구사건][하집1986(3),111]
판시사항

상속회복청구의 소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본 사례

판결요지

청구원인이 소외 을이 참칭상속인임을 이유로 그로부터 본건 임야를 전전양수한 갑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위 소외 을이 아무 권한없이 등기서류를 위조하여 그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였으므로 그 등기 및 이에 터잡아 이루어진 주식회사 병 및 갑명의의 위 각 소유권이전등기가 원인무효라는 이유로 그 말소를 구하는 소는 상속회복청구의 소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

원고, 피항소인

원고

피고, 항소인

피고

주문

항소를 기각한다.

소송총비용은 피고의 부담으로 한다.

청구취지

피고는 원고에게 부산 서구 (상세지번 생략) 임야 20,231평방미터(2정 4무보)에 관하여 1976.7.20. 부산지방법원 등기접수 제28604호로 마친 같은 해 6.24. 경락허가결정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등기절차를 이행하라.

소송비용은 피고의 부담으로 한다.

항소취지

원판결을 취소한다.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제1, 2심 모두 원고의 부담으로 한다.

이유

1. 본안전항변에 관한 판단

피고는 이 사건의 원고가 이 사건 제소당시 이미 사망하여 실재하지 아니하는 인물이므로 이 사건 소는 부적법하다고 주장하므로 살피건대, 성립에 다툼이 없는 갑 제4호증(호적등본; 갑 제13호증의 4 및 갑 제20호증과 같다), 갑 제6호증의 1(소송위임장확인원),2(소송위임장),3(인감표; 갑 제3호증의 4와 같다),4(주민등록표; 갑 제3호증의 5와 같다),5(국민등록완료증명서; 갑 제3호증의 2와 같고, 갑 제13호증의 2와는 증명내용이 같다),6(국민등록완료증명 발급신청서; 갑 제3호증의 3과 같다), 갑 제18호증의 1 내지 5(여행증명서 표지 및 그 내용), 갑 제19호증(출입국에 관한 사실증명; 을 제12호증과 같다)의 각 기재 및 환송후 당심의 원고본인신문결과에 의하면 원고가 이 사건 제소당시는 물론 변론종결당시까지 생존하고 있음이 분명하므로 피고의 위 주장은 이유없다.

2. 본안에 관한 판단

원래 망 소외 1의 소유이던 청구취지기재의 이 사건 임야에 관하여 1970.9.12. 부산지방법원 등기접수 제47115호로 같은 달 11. 매매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가 소외 2 명의로 마쳐지고, 이에 터잡아 1971.2.22. 같은 법원 등기접수 제8204호로 같은 달 19. 매매를 원인으로 한 소외 3 주식회사( 상호변경 과정생략)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가 마쳐진 다음 청구취지기재와 같은 피고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가 순차로 경료된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고, 위 갑 제4호증, 갑 제6호증의 3 내지 6, 성립에 다툼이 없는 갑 제1호증(제적등본; 을 제3호증과같다.), 갑 제2호증(폐쇄등기부등본), 갑 제3호증의 1(인감증명서), 갑 제7호증(일본등기부등본), 갑 제8호증의 1 내지 3(각 판결정본), 갑 제9호증(심판정본), 갑 제10호증(상속증명서), 갑 제11호증(등기부등본), 갑 제14호증(일본호적등본), 갑 제16호증(출입국에 관한 사실증명서), 을 제4호증(일본제적등본), 을 제6호증(제적등본), 원심증인 소외 10의 증언에 의하여 진정성립이 인정되는 갑 제5호증의 1,2(편지봉투 및 그 내용), 공성부분 및 공증부분은 성립에 다툼이 없고 나머지 부분은 변론의 전취지에 의하여 진정성립이 인정되는 갑 제12호증(국민등록갱신신청서), 갑 제13호증의 1(친자관계존재확인원), 5(친자관계존재증명서), 갑 제23호증(공정인증서)의 각 기재, 환송후 당심증인 문차임의 증언에 의하여 진정성립이 인정되는 갑 제15호증의 1, 갑 제21호증의 1,2(각 사진) 및 위 갑 제20호증 뒷장에 편철된 사진의 각 영상, 원심증인 소외 10 및 환송전후 당심증인 문차임의 각 증언, 원심의 민사기록검증결과, 환송전 당심의 실종선고 및 그 취소심판기록과 소외 4의 가적철에 대한 각 검증결과 및 외무부장관에 대한 사실조회회보결과, 위 원고 본인신문결과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1) 부산 서구 (상세번지 생략)에 본적을 둔 호주이던 소외 1가 1950.4.2. 사망한 사실,

(2) 망 소외 4는 1913.2.6. 위 본적지에서 소외 1의 장남으로 태어나 16세 되던 해에 가출하여 만주지방을 거쳐 1932.10월경 일본으로 건너가 각지를 전전하다가 8.15해방 당시 니이가다현(신석현) 지방에 정착하여 (이름 생략)란 일본명과 소외 4 또는 소외 5란 한국명을 동시에 사용하면서 일본여인 후나미 후사(주견 후사)와 사실상 혼인관계를 맺고 동거하던중 그들 사이에서 1946.7.2. 원고를 출산하자 그 생모인 위 후나미 후사로 하여금 같은 달 14. 원고에 대한 출생신고를 하게 하면서 일본 민법상 비적출자인 원고를 모가에는 호주(위 후나미 후사의 조카인 주견국웅)의 동의를 얻지 못하여 입적시키지 못하고 일본 국내법에 따라 본적 "신석현중경성군 신정정 대자고류 (번지 생략)", 씨명 " (생략)"으로 일가 창립을 하여 일본호적에 등재되게 하였고, 1948.7.4. 다시 소외 6을 출산하자 역시 위 후나미 후사로 하여금 같은 해 10.6 동인을 비적출자로 출생신고를 하게 하여 그 신고에 의하여 생모인 위 후나미 후사에 관한 본적을 "같은 전대자소출운 (번지 생략)"로 한 호적을 편제한 후 " (씨명 생략)"이란 씨명으로 그 호적에 등재되게 하였으며, 그후 1950.1.19.에는 원고 및 소외 6에 대한 인지계를, 같은 달 21.에는 위 후나미 후사와의 혼인계를 일본 국내법에 따라 그의 소재지 관할 호적공무원인 아라이정장(신정정장)에게 각 제출하면서 그 인지계 및 혼인계에 인지자 및 계출인의 표시를 조선 경남 부산부 (상세번지 생략)에 본적을 둔 소외 1와 같은 호적에 등재된 1915.1.1.생의 소외 5로 기재하였고 그로 인하여 원고, 소외 6 및 후나미 후사 등 3사람의 가족을 일본호적에서는 제적되게 하였으나 입적될 소외 4의 한국호적의 본적 및 호주표시의 착오(이는 고향을 떠난지 오래되어 기억이 희미해졌음은 물론 호적에 대한 관심도 적었을 뿐만 아니라 해방후 우리나라 행정구역 및 명칭변경등의 사유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로 소외 4의 호적에는 입적시키지 못한 채 1956.4월경 시즈오까시(정강현 정강시 전정7정목 관유무번지)로 이사하여 생활하다가 1960.12.7. 재외국민등록법(1949.11.24. 법률 제70호)에 따라 주일 대한민국 대사관에 등록번호 제1838호로 재외국민등록을 하였고, 1964.6.2. 소외 7을 출산하여 같은 달 10. 그 소재지 관할 시즈오까 시장에게 출생신고를 하였으며, 같은 해 9.3. 일본 외국인등록법에 따라 시즈오까시역소에 가족들과 함께 등록번호 11 제296052호로서 씨명 소외 5, 생년월일 1914.8.1.생, 본적지 경남 부산부 (상세번지 생략)로 외국인등록을 하였다가(위 갑 제12호증에는 1965.9.14. 등록번호 8 제226151호로 등록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착오기재 또는 이중등록으로 보인다) 그후 1962.11.13.자 법관등 제8077호 허가에 의하여 씨명을 소외 4로, 생년월일을 1913.2.6.로, 본적지를 경남 부산시 (상세번지 생략)로 위 외국인등록부의 기재를 호적기재와 일치되게 정정하였고(위 갑 제7호증에 기재된 소외 4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 접수일자인 1964.9.24. 이전에 정정한 것으로 보인다), 1967.1.16. 주요코하마 대한민국 영사관에 등록번호 요코시즈(횡정) 제649호로 성명 소외 4, 생년월일 1913.2.6.생, 본적 경남 부산시 (상세번지 생략), 출생지 경남 부산부 (상세번지 생략)으로 하여 재외국민갱신등록을 하여(이때 원고도 독립된 세대주로서 등록번호 요코시즈 제651호로 재외국민등록을 하였다)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다가 1977.5.14. 사망하였고(사망신고는 같은 날 원고가 소재지 관할 시즈오까 시장에게 하였다), 위 후나미 후사(위 혼인신고로 인하여 남편의 성을 따라 김후사로 되어 있었다)와 소외 7은 그 직후인 1977.11.28. 귀화절차를 밟아 일본국적을 회복 및 취득한 사실(그 동안 소외 4의 가족 4명은 호적부에는 등재되지 못한 채 그들에 대한 각종 신고서만 위 시즈오까시역소에서 접수하여 보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3) 그후 원고는 1980.5.9. 위 인지계에 기하여 소외 4의 호적에 입적되어야 할 자인데 호적부에 정리되지 아니하였음을 이유로 재외국민 취적, 호적정정 및 호적정리에 관한 임시특례법(1973.6.21. 법률 제2622호)에 따라 호적정리신청을 하여 소외 4의 호적에 소외 4와 후나미 후사 사이의 혼인외 출생자로 입적되었으나(호주 소외 1는 1950.4.4. 그의 차남 소외 8의 사망신고에 의하여 호적에서 말소되었으나 호주상속신고가 없어 부산시 서구청장이 감독법원의 허가를 얻어 직권으로 1976.4.10.에 호주상속기재를 함으로써 소외 4를 호주로 한 호적이 편제되어 있었다) 호적공무원의 착오로 그 호적의 기재사항중 소외 4의 신분변동사항 기재란에 피인지자를 "선미용수"로, 원고의 모란에 "선미후사"로 각 잘못 기재되자 같은 해 7.29. 위 특례법에 따라 다시 위 착오기재를 바로 잡기 위한 호적정정신청을 한 결과 " (씨명 생략)" 및 "선견후사"로 각 정정되게 한 사실(정정된 기재도 "선"자를 "주"자로 정정하지 아니하여 잘못 기재된 채로 남아 있다),

(4) 한편, 1960년경 일본에 밀항했다가 1968.3.2. 강제송환된 위 망 소외 1의 3남으로서 원심공동피고이던 소외 2가 일본에 있을 당시 앞서 본 바와 같이 일본에서 가정을 꾸며 처자들을 거느리고 생활하던 위 망인의 장남으로서 호주 및 재산상속인인 소외 4에게 귀국의사없는 것을 확인하였으므로 별문제 없을 것으로 믿고 위 망인의 사망후 20년간이나 이 사건 임야에 대한 상속등기가 경료되지 않고 있음을 이용하여 1970.9.11.경 소외 1의 인장과 관계문서를 위조하여 마치 소외 1로부터 자신이 이 사건 임야를 매수한 양 가장하여 동인명의로 위 소규원이전등기를 마친 다음 1971.2.19. 이를 소외 3 주식회사에 대금 1,450,000원에 매도함으로써 앞서 본 바와 같이 원심공동피고이던 소외 3 주식회사 및 피고명의의 각 소유권이전등기가 순차로 마쳐진 사실,

(5) 그리고, 망 소외 1의 장남인 소외 4가 위와 같이 가출한 후 소식이 없고 그 차남인 소외 8 마저 1976.12.25. 사망하자 소외 4가 그 직계비속인 남자없이 소외 1보다 먼저 사망했을 경우 망 소외 1의 호주의 지위를 망 소외 8을 거쳐 순차 상속하게 될 입장에 있던 소외 8의 장남인 소외 9가 1977.10.7. 부산지방법원에 77느 (번호 생략)호로 소외 4가 1940.9.1.경부터 5년간 생사불명이라는 이유로 동인에 대한 실종선고심판을 청구하여( 소외 9가 위 실종선고심판청구를 한 이유는 그를 비롯한 망 소외 8의 상속인들로부터 1977.9.16. 이 사건 임야를 대금 9,200,000원에 매수한 소외 10이 1978.6.5.경 부산지방법원에 망 소외 8의 상속인들과 소외 2, 3 주식회사 및 피고를 상대로 78가합 (번호 생략)호로 소유권이전등기말소등 청구소송을 제기한 사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78.5.8. 실종선고를 받고 그 심판이 같은 해 5.31. 확정됨으로써 소외 4는 생사불명기간이 만료된 1945.9.1.경 사망한 것으로 간주되게 되었으나( 소외 4의 호적에는 1978.4.30. 생사불명기간만료로 기재되어 있으나 이는 호적공무원이 실종선고심판서에 기재된 공시최고에 의한 신고만기일을 생사불명기간만료일로 잘못 알고 기재한 것으로 보인다), 그후 원고가 소외 4 명의로 등기되어 있던 일본에 있는 부동산에 관한 상속절차를 밟던중 이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되어 1980.6.3. 같은 법원에 80느 (번호 생략)호로 소외 4가 위 실종선고에 의한 사망간주일과 다른 일자인 1977.5.14.에 사망하였다는 이유로 위 실종선고의 취소청구를 하여 같은 해 6.13. 위 실종선고취소심판을 받은 다음 이미 위 시즈오까시장에게 한 사망신고에 기하여 같은 해 7.29. 위 특례법에 따라 호적정리신청을 한 결과 비로소 소외 4의 호적에도 동인이 1977.5.14.에 사망한 것으로 기재된 사실을 각 인정할 수 있고, 이와는 달리 1950.1.19.에 원고를 인지한 소외 5는 부산 동구 (상세번지 생략)에 본적을 둔 1905.10.9.생의 호주 소외 4와 또는 부산시 (상세번지 생략)에 본적을 둔 1900.3.5.생의 호주 소외 5와 동일인이거나 그렇지 않다하더라도 위 망 소외 1의 장남인 소외 4와는 동일인이 아니라는 피고의 주장사실에 부합하는 듯한 을 제2호증, 을 제5호증(각 제적등본)의 각 기재만으로는 위 인정사실을 뒤집기에 부족하고, 위 인정에 반하는 위 민사기록검증결과 및 위 원고본인신문결과의 각 일부는 믿지 아니하며, 달리 위 인정을 뒤집을 증거없다.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이 외국에서 출생한 혼인외 출생자를 인지하는 경우 그 준거법을 정한 위 인지당시 시행의 의용법례 제18조 제1항은 "자외 인지의 요건은 그 부 또는 모에 관하여는 인지당시의 부 또는 모의 본국법에 의하여 이를 정하고, 그 자에 관하여는 인지당시 자의 본국법에 의하여 이를 정한다."라고 규정하여 인지의 실질적 성립요건만을 규정하였을뿐 그 방식에 관하여는 특별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아니하므로 이에 관하여는 법률행위의 방식에 관한 일반원칙이 적용된다 할 것이고, 위 법 제8조 제1항은 "법률행위의 방식은 그 행위의 효력을 정하는 법률에 의한다."라고 규정하고, 제2항은 "행위지법에 의하여 한 방식은 전항의 규정에 불구하고 이를 유효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어 인지의 방식은 원칙적으로 인지의 효력에 관한 준거법인 부, 모 또는 그 자의 본국법에서 정하는 방식에 의하되 보충적으로는 행위지법의 방식에 의할 수도 있음을 명백히 하고 있으므로, 위 망 소외 4가 1950.1.19. 행위지법인 일본민법호적법의 방식에 따라 당시 그의 소재지인 니이가다현 아라이정장에게 원고 및 소외 6에 대한 인지계를 계출하여 그들을 인지한 행위는 본국의 호적에 등재된 여부에 불구하고 출생시에 소급하여 인지의 효력이 생긴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이와는 달리 소외 4가 우리나라 호적법에 따라 원고에 대한 인지신고를 한바 없고 또 일본에서 한 위 인지신고에 기하여 원고가 소외 4의 사망후에 일방적인 호적정리절차를 거쳐 소외 4의 호적에 등재되었으니 원고에 대한 위 인지의 효력이 발생하지 아니한다는 피고의 주장은 법리상 이유없으며, 또한 마찬가지 이유로 소외 4가 1950.1.21. 혼인거행지인 일본법에 따라 위 후나미 후사와의 혼인계를 제출하여 혼인한 행위 역시 혼인으로서의 효력이 있다고 할 것이고, 따라서 소외 7은 소외 4와 후나미 후사 사이의 혼인중의 출생자에 해당된다 할 것이며, 피고는 당초부터 무권리자로부터 이 사건 임야를 전전양수하였으므로 인지의 소급효에 의하여 권리의 해함을 받지 아니하는 제3자에 해당되지도 아니한다 할 것이다.

따라서, 소외 1가 1950.4.2. 사망하여 그의 장남인 소외 4가 호주 및 재산상속을 하였다가 소외 4 또는 1977.5.14. 사망하여 그의 재산이 개정전의 민법소정의 법정상속분에 따라 그 처자들인 원고등 4명에게 공동상속되었다 할 것이고, 또 다른 사정이 없는 이상 이 사건 임야에 관한 소외 2 명의의 위 소유권이전등기 및 이에 터잡아 이루어진 소외 3 주식회사 및 피고명의의 위 각 소유권이전등기는 모두 원인무효의 등기라고 할 것이다.

피고는, 첫째로, 위 망 소외 1의 장남인 소외 4가 앞서 본 바와 같은 실종선고로 소외 1의 사망전인 1945.9.1.경 사망한 것으로 간주되어(그 당시 원고는 출생하지도 아니하여 대습상속을 할 지위에 있지 아니하였다) 소외 1의 사망으로 차남인 소외 8이 호주 및 재산상속을 하였음을 전제로 ① 소외 2가 소외 1의 사망직후인 1950.4월경 소외 8로부터 이 사건 임야를 증여(민법시행전의 관습에 의한 분재와 같다)받았고( 소외 1 사망후 형제들간에 유산분배시 이 사건 임야를 소외 2의 몫으로 하기로 하였다는 주장도 결국은 위 주장과 동일한 주장에 귀착된다), 또한 그 시경부터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점유하여 20년이 경과된 1970.4월경에 이르러 이를 시효취득하였으며, ② 그렇지 아니하고 소외 2가 위와 같이 이 사건 임야를 증여받거나 시효취득한 사실이 없어 비록 아무 권한없이 이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를 그 명의로 마친 다음 소외 3 주식회사에 이를 처분하였다 하더라도 이 사건 임야를 원래의 소유자인 망 소외 1로부터 상속취득한 소외 8이 1976.8.24.경 이를 추인하였으니, 위 각 소유권이전등기는 모두 실체관계에 부합하는 유효한 등기로 되었고, 둘째로, 그후 비록 위 실종선고가 취소되었다 하더라도 그 취소이전에 선의로 이 사건 임야의 소유권을 취득한 피고에게는 이로써 대항할 수 없다고 주장하므로 살피건대, 앞서 본 바와 같이 1978.5.8. 소외 4에 대한 실종선고심판(확정일은 1978.5.31.)으로 그가 1945.9.1.경 사망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또 위 각 증거들에 의하면, 소외 8이 1972년 초에 송달된 소외 2에게 부과된 이 사건 임야의 취득세납부고지서를 받아보고 비로소 이 사건 임야의 부정처분사실을 알고 이를 되찾기 위하여 위 실종선고이전인 1976.7.6. 소외 2, 3 주식회사 및 피고를 상대로 부산지방법원에 76가합 (번호 생략)호로 이 사건 임야에 관한 위 각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를 소구하였다가 위와 같은 내용을 전혀 모르고 이 사건 임야를 전전양수한 피고로부터 그의 처 및 그의 6촌으로서 위 소제기에 관여하였던 소외 11을 통하여 위 소의 취하와 이미 이루어진 소외 2의 행위를 추인해 달라는 간청을 받고 역시 실종선고 이전인 1976.8.24.경 그 사건에 관하여는 재론치 않기로 하고 소를 취하한다는 내용이 기재된 취하서에 날인하여 줌으로써 그 동생되는 소외 2의 무효인 행위를 추인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나, 위 추인은 실종선고 이전의 행위로서 무권리자에 의한 추인이므로 추인으로서의 효력을 발생하지 아니한다 할 것이고, 또한 소외 2가 소외 8로부터 이 사건 임야를 증여받았다거나 이를 1950.4월경부터 계속 점유해 왔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앞서 본 바와 같이 그후 위 실종선고가 1980.6.13. 취소됨으로써 소급하여 그 효력을 잃게 되었고, 따라서 소외 8이 상속으로 취득하였던 이 사건 임야에 관한 소유권도 취득하지 않은 것으로 되어 이를 타인에게 처분할 수 없음은 물론 무권리자의 처분행위를 추인할 수 있는 권한도 없게 되었다 할 것이니, 피고의 위 첫째주장은 어느모로 보나 그 이유없고, 또 실종선고가 취소된 경우에는 실종선고후 그 취소전에 선의로 한 행위의 효력에만 영향을 미치지 아니할뿐 실종선고 이전에 한 행위에 관하여는 선의 여부에 관계없이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할 것인데, 설령 피고의 주장과 같이 소외 8의 증여 또는 추인사실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그 증여 및 추인은 물론 피고의 이 사건 임야의 취득행위가 모두 위 실종선고 이전에 이루어진 것임이 역수상 분명하므로, 실종선고후 그 취소전에 선의로 한 행위임을 전제로 하는 피고의 위 둘째주장도 이유없다.

피고는 다음, 소외 8이 망 소외 1의 사망일인 1950.4.2.경부터 소외 1의 사실상 장남으로서 동인의 재산을 단독상속한 것으로 믿고 이 사건 임야를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점유하여 20년이 경과된 1970.4.2.경에 이르러 이를 시효취득하였음을 전제로 ① 1970.5월경 소외 2에게 이를 증여하였고 ② 그렇지 않다하더라도 앞서 본 바와 같이 1976.8.24.경 소외 2의 처분행위를 추인하였으니, 피고명의의 위 소유권이전등기는 실체관계에 부합하는 유효한 등기로 되었다는 취지로 주장하므로 살피건대, 위 각 증거에 의하면, 소외 8이 소외 1의 사망직후부터 사실상 장남행세를 하면서 계속 위 임야를 점유, 관리해 온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나, 그 점유는 망 소외 1의 사망후 20년 동안이나 상속등기를 하지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호주상속신고를 위한 절차도 밟지 아니한 점에 비추어 소유의 의사로 한 자주점유가 아니라 타주점유라 할 것이고, 또한 소외 8이 이 사건 임야를 피고의 위 주장과 같이 1950.4.2.경부터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20년간 계속 점유했다 하더라도 그 명의로 위 취득시효완성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취득등기를 한바 없어 그 소유권을 취득하지 못했다 할 것이니, 소외 8이 이 사건 임야의 소유권을 시효취득하였음을 전제로 하는 피고의 위 주장도 어느모로 보나 모두 이유없다.

피고는 또한, 소외 3 주식회사가 1971.2.22. 이 사건 임야의 소유자로 등기됨과 동시에 그때부터 소유의 의사로 이에 대한 점유를 개시하였고, 그후 피고가 이를 경락받아 1976.7.20. 그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침과 아울러 그 점유도 승계하여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선의이며 과실없이 점유하여 소외 3 주식회사의 점유개시일인 1971.2.22.부터 기산하여 10년이 경과된 1981.2.22.에 이르러 이 사건 임야에 대한 소유권을 시효취득하였다 할 것이므로, 결국 이 사건 임야에 관한 피고명의의 위 소유권이전등기는 실체관계에 부합하는 유효한 등기로 되었다고 주장하므로 살피건대, 이 사건 임야에 관하여 소외 3 주식회사 및 피고명의로 위와 같은 각 소유권이전등기가 마쳐져 있음은 앞서본 바와 같이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고, 성립에 다툼이 없는 을 제7호증의 1 내지 6(공유수면매립신청서), 위 신청에 따른 처리지연통보, 공유수면매립추진촉구, 공유수면매립면허신청에 대한 2차 구비서류제출 및 그 촉구), 변론의 전취지에 의하여 진정성립이 인정되는 을 제9호증의 1 내지 21(각 사진)의 각 기재 및 영상, 환송전 당심증인 김순희의 증언과 환송전 당심의 현장검증결과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소외 3 주식회사는 1971.2.19. 당시 이 사건 임야의 등기부상 소유명의인인 소외 2로부터 그를 소유자로 믿고 이를 매수하여 이를 인도받고 같은 해 2.22. 위와 같이 그 명의로의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함과 동시에 그곳에 채석장을 개설하여 채석작업을 계속하는 한편 이에 관하여 1976.5.4. 부산지방법원 등기접수 제17446호로서 피고를 채권자로 한 근저당권설정등기를 경료하고, 이에 기한 임의경매절차에서 피고가 이를 경락받아 1976.7.20. 그 명의로 청구취지기재와 같은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침과 아울러 이를 즉시 인도받아 1978.가을경까지 이를 사용하여 한우목장을 경영하였으며, 곧이어 1978.11.15. 부산해운항만청에 위 임야의 점유를 바탕으로 그에 연접된 공유수면의 매립신청을 하는 등 현재까지 이를 점유하고 있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나, 민법 제245조 제2항 의 "부동산의 소유자로 등기한 자가 1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선의이며 과실없이 그 부동산을 점유한 때에는 소유권을 취득한다."라는 규정의 취지는 부동산의 소유자로 등기된 기간과 점유기간이 때를 같이하여 다같이 10년임을 요한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바, 이 사건 임야에 관하여 피고가 소유자로 등기된 1976.7.20.부터 기산하여 10년이 경과되기 전임이 액수상 분명한 1981.5.6.에 이 사건 소가 제기되어 피고로서는 취득시효기간 미완성으로 이 사건 임야의 소유권을 시효취득하지 못했다 할 것이니, 피고가 이를 시효취득하였음을 전제로 하는 피고의 위 주장도 이유없다.

그리고 피고는, 비록 소외 4가 망 소외 1의 재산을 상속하였다 하더라도 그가 상속이 개시된 1950.4.22.부터 사망하였다는 1977.5.14.까지 27년간이나 이 사건 임야에 대한 상속권을 행사하지 아니함으로써 그의 모든 상속권을 포기하였거나 이 사건 임야에 관한 그의 권리가 실효되었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소외 4가 오랫동안 이 사건 임야에 대한 그의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함으로써 그의 동생인 소외 8로 하여금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않을 것으로 믿게 하였음에도 원고가 이 사건 소로서 새삼스럽게 소외 4의 상속권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위반 또는 권리남용에 해당된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므로 살피건대, 소외 4가 상속으로 취득한 것이 이 사건 임야에 관한 소유권인 이상 이를 오랫동안 행사하지 아니하였다는 사유만으로 소멸시효에도 걸리지 않는 소유권이 실효된다고 볼 수는 없고, 그 밖에 소외 4가 이 사건 임야에 관한 그의 상속권을 포기하였다거나 원고의 이 사건 청구가 신의칙위반 또는 권리남용에 해당된다고 볼 아무런 자료도 없으니, 피고의 위 주장 또한 모두 이유없다.

피고는, 이 사건 소는 참칭상속인인 소외 2의 소위에 기인한 소유권이전등기에 터잡아 이루어진 피고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를 구하는 이른바 상속회복청구의 소로서 상속이 개시된 날로부터 10년이 경과되었음은 물론 소외 2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된 1970.9.12.로부터도 10년이 경과된 후에 제기되었으므로 상속회복청구권의 제척기간이 경과되었다는 취지로 주장하므로 살피건대, 이 사건 청구원인은 소외 2가 참칭상속인임을 이유로 그로부터 이 사건 임야를 전전양수한 피고명의의 위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소외 2가 아무 권한없이 등기서류를 위조하여 그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였으므로 그 등기 및 이에 터잡아 이루어진 소외 3 주식회사 및 피고명의의 위 각 소유권이전등기가 원인무효라는 이유로 그 말소를 구하는 것임이 기록상 명백한 이상 이 사건 소를 상속회복청구의 소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 할 것이니, 이 사건 소가 상속회복청구의 소에 해당함을 전제로 하는 피고의 위 주장도 이유없다.

3. 결론

그렇다면, 피고는 그 전자인 소외 3 주식회사에 이 사건 임야에 관한 청구취지기재의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등기절차를 이행할 의무가 있다 할 것이므로, 그 이행을 이 사건 임야의 공동상속인의 1인으로서 공유물의 보존행위로 소외 2 및 소외 3 주식회사를 순차 대위하여 구하는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있어 이를 인용하여야 할 것인바, 이와 결론을 같이 한 원판결은 정당하고, 피고의 항소는 이유없으므로 이를 기각하고, 소송총비용은 패소자인 피고의 부담으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이일영(재판장) 박국홍 박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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