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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1991. 12. 27. 선고 90도2801 판결
[범인도피][공1992.3.1.(915),810]
판시사항

피고인들이 고문치사사건의 가혹행위 관련자가 더 있음을 알고도 이를 적극적으로 은폐 축소할 것을 공모하여 나머지 관련자를 도피케 하였다고 인정되지 아니한다 하여 무죄를 선고 한 원심판결을 채증법칙을 위배하여 사실을 오인한 위법이 있다 하여 파기한 사례

판결요지

피고인들이 고문치사사건의 가혹행위 관련자가 더 있음을 알고도 이를 적극적으로 은폐 축소할 것을 공모하여 나머지 관련자를 도피케 하였다는 공소사실에 대하여 원심이 이에 부합하는 증거들을 배척하고 무죄를 선고 한 것이 채증법칙을 위배하여 사실을 오인하고 나아가 범인도피죄 및 공동정범에 있어 공모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 하여 이를 파기한 사례.

참조조문
피 고 인

A 외 2인

상 고 인

검사

변 호 인

변호사 B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검사의 상고이유에 대하여

1. 원심판결 이유를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가. 피고인들이 이 사건 당시 고문치사 관련자로서 C, D 외에 E, F, G 등 3인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여부에 관하여

(1) 이에 부합하는 C의 검찰진술은 추측인데다가 동인은 원심법정에서 이를 번복하였고, D의 검찰진술 (제2회)은 검사의 추리에 의한 유도신문에 부응하는 정도이거나 추측이므로, 모두 믿을 수 없어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으며,

(2) 그밖에 피고인들의 이에 부합하는 듯한 각 검찰 진술부분은, E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등본의 기재와 C와 D가 피고인들에게 H의 사망이 그들의 가혹행위로 인한 것이며 그 관련자가 5명이라고 보고 한 바 없다는 동인들의 검찰이래 진술에 비추어, 피고인들은 고문치사범이 5명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는게 아니라 H의 사망원인이 물고문 치사인 줄 알았거나 또는 고문관련자에 관한 것이라도 막연히 의심, 추측하였다는 정도에 불과하고

(3) 또한 C, D, E, F가 검찰과 제1심 법정에서 사고 당시의 신문실 현장상황에 관하여 진술한 부분만으로는 이 점을 인정할 자료가 되지 못하여, 결국 이 점을 인정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없다.

나. 피고인들이 가혹행위치사범을 C, D로 축소하고, E, F, G를 도피케 하기로 공모하였는지 여부에 관하여, 이를 인정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없고, 오히려 C 등 5명이 행정보고서 초안작성 등의 과정에서 C, D만 책임지기로 논의하고 그 이후 위 5명 사이에 행정보고서와 같이 그대로 밀고 나가기로 하였던 사실이 인정될 뿐이다.

다. 피고인들이 가혹행위치사범을 축소, 도피케 한 구체적 실행행위를 하였는지 여부에 관하여, (1) 피고인 A가 1987.1.16. 19:00경 치안본부 대공수사 I단 J과 K계 사무실에서 C 등 5명을 모아 놓고 앞으로의 조사에 대비하여 행정보고서 내용대로 암기하도록 지시하였다는 점에 대하여는, 이에 부합하는 C, D의 각 검찰진술은 대부분 검사의 추리에 의한 유도신문에 부응하는 정도이거나 추측일 뿐더러, C는 원심에서 이를 번복하였고, 오히려 당시 그 자리에 참석한 E, G, L은 이와 다른 진술을 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이를 인정할 수 없고,

(2) 피고인 A가 같은 달 18. 10:00경, 피고인 M이 같은 달 17. 23:00경과 같은 달 19. 21:00경, 피고인 N이 같은 달 18. 11:00경 각각 특수수사 O대에서 C, D를 면회하면서 제1심 판시와 같은 구체적인 실행 행위를 하였다는 점은 (가) 이에 부합하는 증거는 C, D의 각 검찰진술 뿐인데, 우선 이 각 진술은 위 면회일로부터 4,5개월여가 지난 후에야 이루어진 것이어서 그 당시의 말을 정확하게 기억하여 진술할 수 있다는 것에 의문이 가고, 특히 C의 진술은 동인의 느낌 또는 단순한 추측에 기한 것들인 데다가 제1심 및 원심 법정에서는 “기억이 없다”는 등으로 진술하고 있으며, 또한 D는 검찰 1회 진술에서는 “못 들었다”고 하다가 제2회 진술에서는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진술하고 다시 제1심 법정에서는 "기억에 없다"고 진술하는 등 그 진술에 일관성이 없으므로 이를 모두 믿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없을 뿐 아니라, (나) 피고인들이 제1심 판시와 같은 말 또는 행위를 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상사로서 직무수행중의 사고로 구속된 부하직원들을 위로, 격려하는 취지에서였다고 못볼 바 아니므로, 결국 피고인들이 C, D 외에 가혹행위관련자가 더 있음을 알고 이를 적극적으로 은폐, 축소할 것을 공모하여 나머지 관련자를 도피케 하였다고 인정되지 아니한다 하여 모두 무죄를 선고하였다.

2. 그러나 먼저 피고인들이 범인도피의 공모를 하였는지 여부에 관하여 본다.

가. 우선 피고인들의 이에 부합하는 진술들을 살핀다.

(1) 피고인 A는 검찰에서 “1.15. 12:00경 H군 가족이 면회와서 C와 접견시 C의 태도로 보아 H군 사망원인 이 단순쇼크사가 아닌 다른 변수가 가세되었다고 의심을 갖게되었는데” (수사기록 700, 702, 705-706면), “1.16. 오후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던 중 누군가가 ‘새끼들, 벌건 대낮에 물고문으로 애새끼를 죽이는 놈들이 어디 있느냐’고 말하는 것을 듣고 ‘H군이 물고문으로 죽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그날 오후 L 경사를 남도록 하여 행정보고서를 외우도록 하는 한편 L 경사로 하여금 H군 수사팀이 제대로 숙지하였는지 문답을 행하도록 하였고” (수사기록 723면), “물고문을 하려면 여러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H군이 물고문으로 죽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C, D 두 사람만의 소행이라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더 가담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당시 분위기가 H군 사망사건을 말썽이 안나도록 수습하는 쪽으로 흘렀으므로”(수사기록 724면)라고 진술하였고,

(2) 피고인 M은 검찰에서 처음에는 “1.18. 오후 3시경 그들을 면회가 보니 그곳 수사관들이 제게 인사도 하지 않는 등 분위기가 이상하여 고문범인이 한두명 더 있지 않나 의심이 들고 하여”라고 진술하였으나 (수사기록 131면), 그후 “사실은 제가 A의 메모를 받고 참모회의 도중 뛰쳐나와 사고현장에 가본 결과 H가 눕혀져 있는 상태나 인공호흡을 하고 있던 상황에 비추어 보아 물고문에 의한 사고라는 것을 직감하였습니다”라고 진술하였고 (수사기록 179면),

(3) 피고인 N은 검찰에서 “P 경무관이 아주 불길한 소식이라면서 ‘조사 도중 사람이 죽었다’는 보고를 하기에, 저는 직감으로 ‘수사요원들이 고문을 하다가 사람을 죽였구나’라고 생각을 하였으며, ‘불길한 소식이니 직원들의 실수니’ 당황해서 보고하는 것을 생각할 때 단순한 추락사나 자연사로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수사기록 496면), “1.14. 15:00경 대공수사 I단 사무실에 도착하였더니 P 단장을 비롯하여 M과장 등 4,5명이 당황한 상태로 쇼파에 앉아 있었는데, ‘어떻게 된 것이냐’고 추궁하니까 누군가 확실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Q대학생을 연행하여 같은 Q대학생인 R의 행방을 추궁하던 중 쉽게 이야기를 하지 않기에 물고문을 가하다가 잘못되어 그 Q대학생이 죽어 버렸다’는 보고를 하였으며” (수사기록 730면, 497면, 108면), “행정보고는 고문치사내용을 사실대로 밝히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생길 것 같기에 사건내용을 보도기관에 조작하여 발표하기 위한 것으로 알았다” (수사기록 499면, 113면)고 진술한데 이어, “H군이 죽은 날 오후 대공수사 I단장실에 가서 H군이 물고문으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람이 죽도록 물고문한 점으로 보아 범인이 C, D 두 사람만이 아니고 두세명 더 가담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만····· 구체적으로 누구 누구가 H군을 어떻게 물고문하다가 죽였는지는 몰랐지만 H군이 죽었다고 할 때 ‘여러명이 관련되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C, D 두 사람만이 수사를 받게 되니 더이상 저의 부하를 희생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가진 것은 사실이다”라고 진술하였다 (수사기록 734면).

(4) 그런데 피고인들의 위 각 진술이 기재되어 있는 검사 작성의 각 피의자신문조서는 그 진술자인 피고인들이 각 그 진정성립을 인정하고 있고, 달리 위 각 진술의 임의성이나 신빙성을 배척할 만한 특별한 사정도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그 신빙성을 합리적 근거 없이 배척할 수는 없다 할 것이다.

나. 이어서 다른 증거들을 살핀다.

(1) 망 H의 부검의사 S는 수사기관 이래 원심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하여 “부검팀을 구성한 후 1.15. 18:00경 연구소를 출발, 20분 후 치안본부에 도착하여 본인만 치안 본부장실로 갔으나 바로 T차장 (피고인 N) 방으로 안내되어 본 부검에 대한 설명을 T차장으로부터 간략하게 들었는데, 이때 T차장은 ‘전혀 외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쇼크로 사망한 것 같다’고 설명하면서 ‘욕조에 3-4회 담구었으니 익사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한것으로 기억합니다’라는 취지로 진술하고 (공판기록 1261면, 1234면, 1244면, 1938면),

(2) C는 검찰에서 “상식적으로 2명이 물고문으로 사람을 죽게 할 수 없다는 것을 N이나 M은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저의 직속상관인 A계장은 H군 고문치사 범인이 5명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았다고 보는데 그 사실을 위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수사기록 658면)

“현장을 보면 누구나 ‘물고문으로 H군이 죽었구나’하고 직감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또 사실상 대공수사단 J과 K계 직원들은 뚜렷이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H군이 물고문으로 죽었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는 터인데 계장인 A가 몰랐다고 하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수사기록 714면), “또 당시 M 경정은 범인이 꼭 5명이라고 알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2명이 넘는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우선 상식적으로 2명이 건장한 청년을 물고문으로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고, 특히 M 경정이 H군 사망직후 현장에 왔을 때 현장에는 저와 D 이외에 F 경장 등 여럿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M 경정으로서는 여러명이 물고문에 가담하였다는 것을 직감하였을 것입니다” (수사기록 465면), “1.17. 오후 감찰조사를 받으러 P 단장의 방에 들어가니 M 과장이 저와 D에게 금 5만원을 주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행정보고서대로 이야기해야 된다고 몇번 다짐하였다” (수사기록 784면) 라고 진술하였고,

(3) D는 검찰에서 “사고직후 E경위의 보고에 따라 즉시 A계장이 현장에 와 보았는데 현장상태가 바닥은 축축히 물에 젖어 있었고 H군의 머리가 물속에 처박힌 것 같이 완전히 젖어 있었을 뿐 아니라 그 당시 상태가 누가 보아도 물을 먹인 것임을 당장 알 수 있었으니, 우선 물고문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또 물고문이라는 점을 알았다면 그와 같은 신체 건장한 젊은 학생에게 단둘이서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은 주무계장이라면 사실이 아님을 금방 알수 있는 일입니다·····

원래 그 사건은 F가 공작 주무였고, A계장이 현장에 왔을 때 현장에 있었으니 우선 가담자가 3명 이상이라는 것은 알았을 것입니다... A계장 말도 ‘상부에서 다 알아서 하는 일이니 신경쓸 것 없고 앞으로 조사 받을 때 실수하지 말고 지금 연습한 대로만 하면 걱정할 것 없다’고 하여, 솔직히 말씀드리면 정책적으로 징계처분도 받지 않고 끝날 줄 알았습니다.” (수사기록 633-635면), “저희 계 직원 전부가 5명이 범행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M과장이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요·····M과장이 수시로 저희 계에 내려와 상황을 살피고 격려하였는데, 그럴 때마다 다른 직원과 달리 H군 고문치사에 관련된 5명은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얼굴들이 새파랗게 질려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므로, 구체적으로 보고가 없었다 하더라도 H군고문치사범이 누구 누구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라고 진술하였으며 (수사기록 785면).

(4) E는 검찰에서 “A가 사고직후 현장에 와서 보았으므로 물고문에 의한 사고는 직감할 수 있었을 것이고, 물고문은 주로 4-5명이 같이 하지만 3명 가지고도 할 수 있으므로, A가 이 사건 사고가 물고문인 줄 알았다면 적어도 3명 이상이 가담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고·····.사고 당일에는 직원들도 조사도중 사고가 난 정도로 알았을 것이고, 다음 날부터 저와 F, G는 계속 사무실에서 늦게까지 대기하였으므로 대개 저희 3명이 가담되었다는 것을 알았고····· 저가 단언할 수 있는 것은 1.15.밤부터 저희 3명이 사무실에 대기하고 있었으므로 일반 직원들이 눈치를 채고 있었다”고 진술하였고 (수사기록 480-482면), 한편 1987. 1.16. 15:00경 행정보고서 내용을 검토할 때의 상황에 대하여 “C를 일문일답할때지금 기억나는 특이사항은 L 경사가 C에게 ‘어떻게 죽게 되었는가’라고 물으니, C 경위가 암기한 대로 “꽝” 치니까 “억”하고 죽었는데 머리를 책상 앞으로 쓰러졌습니다’라고 하니까, A계장이 ‘앞으로 쓰러졌다고 하면 이상하지 않은가’하니까, C가 ‘그러면 옆으로 쓰러졌다’고 한 부분이 기억되고”라고 진술하였고 (수사기록 682면), 이어 “변사사건 발생보고서 작성시 U경감이 물고문사항은 묻지 아니하던가요”라는 검사의 신문에 대하여 “사무실 분위기로 보아 물고문 사고라는 것은 누구든지 아는데 일종의 금기사항 비슷하게 되어 다른 직원들은 물론 U경감조차도 사고수습 처리차원이어서 묻지 아니하는 것 같았습니다”고 진술하였다 (수사기록 687면).

(5) 살피건대, C, D, E의 위 각 진술은 그들이 제1심 또는 원심 법정에서 그 진정성립과 내용까지 인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진술에 이르는 과정 및 그 진술내용이 구체적이고 실제 경험한 사람이 아니면 진술할 수 없는 사항을 담고 있는 점등에 비추어, 검사의 추리에 의한 유도신문에 부응하는 정도라고 할 수 없는 데다가 , 제1심 또는 원심 법정에서 과거 자기의 상관이었던 피고인들의 면전에서 진술하는 관계로 일부 진술을 번복하거나 “잘 모른다” 또는 “기억이 안난다”고 진술하였다 하여 곧 이로써 위 진술의신빙성을 배척할 수 없고, 또한 위 각 진술에 추측사실이 일부 포함되어 있지만 이는 이들이 경험한 구체적 사실을 진술하면서 이에 기초한 합리성 있는 사실의 추측이라고 인정되므로 이를 증거로 하는데 무슨 장애가 된다 할 수는 없다.

다. 그러므로 위 각 진술에다가 H군 사망직후의 현장상황 즉, 대공수사 I단 제9조사실은 욕조에 물이 채워져 있었고, 바닥에 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을 뿐만 아니라 H군은 머리가 온통 물에 적셔져 있었고 웃옷이 벗겨진 채 침대에 눕혀져 C, D, F, V가 인공호흡을 하고 있었던 상황 및 실제 위 물고문은 3명이 합세하여서도 하기 어려워 4명이 합세하여 한 사실 (공판기록 1717면) 을 종합하면, 오랜 수사경험을 가지고 있는 피고인들로서는 피고인 A가 최종작성한 “C, D만이 위 H의 신문관이고 그 사망경위도 C, D가 그를 조사하던 중 C가 책상을 “꽝” 치니까 “억”하는 신음소리를 내면서 앞으로 넘어져 쇼크사 하였다”는 내용의 연행피의자 변사사건 발생보고(수사기록 157면, 행정보고서라고도 함)를 피고인 M과 공소외 P 대공수사 I단장에게 보고 한 1987.1.14. 23:00경에는 H가 물고문 도중에 사망하였다는 사실 (그 사인이 정확히 심장마비사인지 익사인지 질식사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더라도) 및 위 물고문에 가담한 자가 C, D 이외에 더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고 봄이 옳고, 따라서 피고인들이 위 변사사건 발생보고를 받아 보고 (피고인 N은 1987.1.14. 밤늦게 받아 보았다. 수사기록 731면) 이를 모두 그대로 용인한 다음 치안본부장에게 이르도록 하였다는 것은 그 자체가 물고문 도중에 일어난 사고를 변사사건 발생보고서에 기재된 대로 단순 쇼크사로 은폐하거나 또는 축소함으로써 그 범인들을 도피하게 하려는 순차적, 묵시적인 범의의 연락이라고 볼 것이므로 피고인들에게는 범인도피의 공모관계가 인정된다 할 것이다.

3. 나아가 피고인들이 범인도피의 실행행위를 하였는지 여부에 관하여 본다.

가. 피고인 A가 1987.1.16. 19:00경 위 수사 I반 J과 K계 사무실에서, 위 경찰관 5명을 모아놓고 앞으로 조사를 받을 경우 이미 상부에 보고 한대로, “E, F, G는 H의 조사에는 관여하지 아니하였고, 그 사망경위도 C, D가 그를 조사하던 중 C가 책상을 “꽝” 치니까 “억”하고 신음소리를 내면서 넘어져 쇼크로 사망했다”는 허위내용의 행정보고서를 외우고 수사에 대비하여 문답형식으로 예행연습을 하였다는 사실은, 앞서 이와 같은 이유로 신빙성을 배척할 수 없는 검찰에서 한 C(수사기록 423면, 601면, 659-662면, 714-716면), D(수사기록 634-636면), E(수사기록 475면, 674면, 678면이하), F(수사기록 662면), G(수사기록 613면 이하), L(수사기록 806-811면, 832면)의 각 진술을 종합하여 인정할 수 있고, 이 가운데 특히 “그 당시 누군가가 ‘G를 빼자’고 제의하자 피고인 A가 ‘그렇게 하면 스토리가 이어지지 않는다’고 하면서 G를 넣어 연습하였으며” (수사기록 661면,683면), “수사경험이 있는 L 경사로 하여금 수사대상이 될 경우에 대비하여 신문을 하도록 하고” (수사기록 662면), “위 행정보고서에 따라 문답시 L 경사가 C 보고 ‘어떻게 죽게되었는가’라고 물으니 C가 암기한 대로 ‘“꽝”치니까 “억”하고 죽었는데 머리를 책상 앞으로 쓰러졌습니다’고 하니까 A계장이 ‘앞으로 쓰러졌다고 하면 이상하지 않은가’하니 C가 ‘그러면 옆으로 쓰러졌다’고 한 부분이 기억되고”(수사기록 682면)라는 진술과 “당시 L 경사는 ‘강제동행이 아닌 임의동행을 했다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묻고 대답했으며 또 ‘쇼크사로 사망원인을 정한 이상 사고 당시 H군이 꽉 짜이는 옷을 입었다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였고, 피고인 A가 L로 하여금 W회사 X 이사의 고문치사사건 수사경험담을 이야기해 주도록 하였다” (수사기록 715면)는 진술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 A의 위 행위는 단순히 행정보고서의 확인, 재검토를 목적으로 한 행위라기 보다는 H의 물고문 사건을 은폐하여 범인을 도피시키려는 행위라고 보이고,

나. 피고인 A가 1987.1.18. 10:00경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소재 치안본부 특수수사 O대에서 C, D가 그 둘만이 H를 가혹행위로 치사케 하였다는 내용의 자백을 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동인들에게 “바깥걱정을 하지 말라”고 말함으로써 범인이 더 있음을 실토하지 않도록 하였다는 사실은, 검찰에서의 C(수사기록 430면, 742면, 746면), D(수사기록 752면)의 각 진술로 인정할 수 있으며,

다. 피고인 M이 같은 달 17. 23:00경 위 특수수사 O대에서 수사관들로부터 H를 가혹행위로 치사케 하였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으면서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는 C, D를 만나 그들에게 “부검결과가 질식사로 판명되었다. 너희들이 속죄양이 되어야겠다”라고 말하고, 같은 달 19. 21:00경 같은 장소에서 그들에 대한 구속영장이 집행되자 그들에게 검찰에서도 경찰조사와 같은 내용으로 진술하도록 말하여 그 둘만의 범행인 것처럼 자백하도록 설득하였다는 사실도, 검찰에서의 C(수사기록 426면, 431면, 464면, 470면, 745면), D(수사기록 638면, 752면, 783면)의 각 진술에 의하여 인정되고,

라. 피고인 N이 같은 달 18. 11:00경 위 특수수사 O대에서 C, D를 만나 그들이 그 둘만의 가혹행위로 H를 치사케 하였다는 내용의 자백을 한 사실을 알고 그들에게 “대공요원은 사상전이나 접선공작중 총에 맞아 죽기도 한다. 다른 관련자가 더 있다 해도 다른 대공요원을 희생시키지 말고 둘이서 책임지고 가라”는 말을 하여 다른 범인이 더 있음을 실토하지 않도록 하였다는 사실 역시 검찰에서의 C(수사기록 431면,468면), D(수사기록 783면)의 각 진술로 인정할 수 있다.

4. 따라서 원심이 이 사건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증거들을 배척하고 피고인들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 한 것은, 채증법칙을 위배하여 사실을 오인하고 나아가 범인도피죄 및 공동정범에 있어서의 공모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로써 판결결과에 영향을 미쳤다 할 것이므로, 이 점을 탓하는 논지는 이유 있다.

5. 이에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원심으로 하여금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케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어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김상원(재판장) 박우동 윤영철 박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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