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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1993. 1. 12. 선고 92도2656 판결
[군용물절도,폭발물사용][공1993.3.1.(939),769]
판시사항

가. 임의성 있는 자백의 증명력에 대한 판단방법

나. 피고인의 검찰관 앞에서의 자백이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하거나 범행현장의 객관적 상황에 부합하는 정황증거들과 상치되어 믿을 수 없다고 본 사례

판결요지

가. 피고인의 자백이 임의로 진술한 것이어서 증거능력이 인정된다고 하여 자백의 진실성과 신빙성까지도 당연히 인정되는 것은 아니므로, 법원은 진술의 내용이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비추어 볼 때 합리적인 것으로 인정되는지의 여부나 자백 이외의 정황증거들 중에 자백과 저촉되거나 모순되는 것이 없는지의 여부 등을 두루 참작하여 자유심증으로 자백이 신빙할 수 있는 것인지의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

나. 피고인의 검찰관 앞에서의 자백이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하거나 범행현장의 객관적 상황에 부합하는 정황증거들과 상치되어 믿을 수 없다고 본 사례.

피 고 인

피고인

상 고 인

피고인

변 호 인

변호사 김형태 외 1인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사건을 육군고등군사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피고인의 상고이유와 변호인들의 상고이유에 대하여 함께 판단한다.

1. 원심이 유지한 제1심판결이 유죄로 인정한 범죄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소속대 소총수로 복무하는 자로서, (1)1992.1.6. 05:00경부터 07:00경까지 충남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 소재 50엠지 전방진지에서 이병 이종걸과 함께 근무를 서던 중, 06:30경 위 이종걸이 상병 엄재학에게 상황실로 불려간 사이에, 피고인이 보관중이던 열쇠를 이용하여 위 진지 선상탄약고 내 탄통을 열고 그 속에 있던 폭발물인 K-400 세열수류탄 1발을 꺼내어 절취하고, (2) 같은 날 10:30경 같은 리 소재 제32초소 내무반에서 평소 초소원들로부터 고문관 취급 및 소외당한 데 대한 불만으로 초소원들을 한번 혼내주기로 하고, 위와 같이 절취한 폭발물인 수류탄 1발을 안전크립 및 안전핀을 제거한 후 초소원들이 자고 있던 위 내무반 복도에 던져서 그 곳 침상에서 자고 있던 일병 한규석과 이병 김기보를 다음날 국군수도병원에서 뇌연수마비등으로 사망케 하고 하사 이광희에게 요치 약 6주간의, 상병 박성오에게 요치 약 8주간의, 이병 이종걸에게 요치 약 8주간의 개방성 함몰골절상 등을 각 가하고, 병장 김우성과 상병 권만순에게 각 요치 4주간의, 일병 이재태에게 요치 약 3주간의 두피열상 및 파편창상 등을 각 가한 것이다.

2. 각 상고이유 제1점에 대한 판단.

검찰관이 작성한 피고인에 대한 각 피의자신문조서의 각 기재에 의하면 피고인이 이 사건 군용물절도와 폭발물사용의 각 범행에 관하여 상세히 자백하였음을 알 수 있는바, 피고인이 제1심 공판정에서 한 진술과 그 밖에 기록에나타난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이 군사법경찰관으로부터 자백을 강요당하여 임의성이 없는 상태에서 자백을 하고 그 임의성이 없는 상태가 검찰관의 조사단계에까지 계속되었다고는 인정되지 아니할 뿐더러, 피고인의 검찰관 앞에서의 자백이 임의로 진술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할만한 이유가 있다고도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논지는 이유가 없다.

3. 각 상고이유 제2점에 대한 판단

가. 피고인의 자백이 임의로 진술한 것이어서 증거능력이 인정된다고 하여 자백의 진실성과 신빙성까지도 당연히 인정되는 것은 아니므로, 법원은 그 진술의 내용이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비추어 볼 때 합리적인 것으로 인정되는지의 여부나 자백 이외의 정황증거들 중에 자백과 저촉되거나 모순되는 것이 없는지의 여부 등을 두루 참작하여 자유심증으로 자백이 신빙할 수 있는 것인지의 여부를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원심이 유지한 제1심판결이 채용한 증거들과 원심판결이 채용한 증거들을 기록과 대조하여 검토하여 보면, 피고인이 수류탄을 절취하여 병사들이 잠들어 있는 내무반에서 폭발시켰다는 점에 직접 부합하는 증거는 검찰관이 작성한 피고인에 대한 각 피의자신문조서(제1회 및 제2회)의 진술기재뿐임을 알 수 있는바, 피고인이 검찰관 앞에서 한 자백은 다음에서 검토하는 바와 같이 우리의 경험칙에 반하거나 객관적인 사실에 부합하는 정황증거들과도 상치되는 것이어서 신빙성이 박약하여 유죄의 증거로 삼기에 충분한 것이 아니다.

(1) 수류탄 절취의 점에 관하여,

원심은, 1991.12.27. 수류탄 1발이 이병 이종걸의 세면백에서 발견되어 하사 신건이 탄약을 점검한 결과 선상탄약고 내의 탄통에서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 곧 탄통에 넣어둔 사실, 그 이후 이 사건 발생전인 1992.1.5. 08:00경 위 신건이 위 탄통을 점검하여 이상 없음을 확인할 때까지 매일 아침 근무철수 후 위 탄통을 점검한 사실, 1992.1.5. 저녁부터 이 사건 당일 아침까지 피고인은위 이종걸과 함께 2시간씩 3회에 걸쳐(1.5. 19:00부터 21:00까지, 1.5. 23:00부터 1.6. 01:00까지, 1.6. 05:00부터 07:00까지) 위 50엠지 진지에서 근무를 하였으며 그때마다 선임병인 피고인이 탄약고 및 탄통 열쇠를 소지하고 있었고, 세 번째 근무중이었던 1.6. 06:20경에는 함께 근무를 하였던 위 이종걸이 상병 엄재학으로부터 인터폰으로 상황실로 불려가 위 진지에는 피고인만이 있었던 사실 등을 인정한 다음, 이러한 사실은 피고인이 위 진지에서 약 16m 떨어진 탐조등에서 근무하다가 06:20경 위 진지로 내려와 보니 위 이종걸이 없어서 우발적으로 이 사건 수류탄을 절취하여 스키파카 오른쪽 주머니에 넣었다고 하는 검찰에서의 진술과 장소적·시간적 상황이 부합되어 그 신빙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원심이 인정한 위와 같은 사실들은 피고인이 이 사건 수류탄을 절취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점을 추인할 수 있는 간접사실에 지나지 아니할 뿐, 위 신건이 탄통을 점검한 1992.1.5. 08:00 이후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한 1.6. 10:30까지 사이에 피고인 이외의 다른 사람이 수류탄을 절취할 가능성이 없었다거나 피고인이 수류탄을 절취하였을 개연성이 높았음을 증명하는 사실들은 아니라고 할 것이므로, 위와 같은 사실들이 위 자백의 신빙성을 인정할 만한 결정적인 정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 반면에 검찰관이 작성한 피고인에 대한 각 피의자신문조서의 기재내용을 보면, 피고인이 수류탄을 절취한 후 진지근무를 마치고 내무반으로 돌아와 이광희 하사에게 신고를 한 다음 방한모와 방한수갑을 벗어 비어 있는 관물대에 놓고 총을 총기함에 가져다 놓고 나서 스키파카의 오른쪽 주머니에 있던 수류탄을 꺼내어 피고인의 관물대 액자 뒤의 수건과 내복을 정돈하여 놓은 위에 올려 놓았으며, 이어서 내무반을 쓸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총을 닦은 후 김기보 이병과 같이 아침을 먹으러 갔다가 돌아온 후, 10:20경 잠이 깨어 자고 있던 침상으로부터 내무반 통로의 가운데에 있는 탁자를 밟고 피고인의 관물대가 있는 반대편 침상으로 건너가 감추어 두었던 수류탄을 가지고 자던 자리로 돌아왔다는 것인바, 피고인이 수류탄을 감추어 두었다는 곳이 피고인의 관물대 액자의 뒤이기 때문에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장소라고 하더라도, 액자만 들추어 보면 그대로 발각될 수 있는 상태로 수류탄을 놓아 두었다는 것은 수류탄의 절취범이 취한 은닉방법으로서는 쉽게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허술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고, 더욱이 피고인이 위와 같이 허술하게 은닉한 수류탄을 놓아 둔 채로 내무반을 쓸고 총기를 닦은 후 아침을 먹으러 갔다가 돌아와서 다른 사람의 관물대 앞에서 잠을 잤다거나, 감추어 둔 수류탄을 가지러 반대편의 침상으로 건너가면서 다른 사람의 눈에 띄기 쉽게 내무반 통로의 가운데에 있는 탁자를 밟고 건너갔다는 피고인의 행동은, 수류탄을 절취한 범인의 행동으로서는 어쩐지 석연하지 않은 점이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떨칠 수 없다.

(2) 수류탄이 폭발될 당시의 피고인의 위치와 자세에 관하여

피고인은 검찰관 앞에서 수류탄을 폭발시킨 경위와 그 당시의 피고인의 자세 등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즉 피고인은 이 사건 사고가 일어난 1.6. 08:30경 내무반에서 신건 하사로부터 10분 정도 교육을 받은 후 신건 하사가 앉아 있던 옆자리(텔레비젼이 있는 침상 중 텔리비젼으로부터 세 번째에 있는 엄재학 상병의 관물대 앞)가 비어 있어서 그 곳에서 위 이광희와 김기보 사이에서 잠을 자다가 10:20경 잠에서 깨어 내무반 통로의 가운데에 있는 탁자를 밟고 맞은편의 침상으로 건너가 피고인의 관물대에 감추어 둔 수류탄을 꺼내 가지고 자던 자리로 되돌아 온 다음, 엎드린 자세로 상체가 침상 끝 밖으로 조금 나온 상태에서 오른손으로 수류탄을 잡고 왼손으로 수류탄을 감싼 상태로 있다가 안전핀을 제거하여 내무반 바닥에 굴리고 나서 수사기록 제102면 42번 사진(군사법경찰관이 작성한 검증조서의 일부임)의 영상과 같이 몸을 뒤로 빼면서 양팔을 겨드랑이 밑으로 끼고 얼굴을 침상 바닥에 댄 웅크린 자세로 엎드려 있었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하여 원심은 피고인의 상처부위가 왼쪽 안면부 및 왼쪽 이마에 집중되어 있는 점, 군복 상의의 왼쪽 앞깃에 파편창이 있는 점 등이 위와 같은 피고인의 검찰관 앞에서의 진술내용과 부합된다고 판시하고 있다.

그러나 군사법경찰관이 작성한 검증조서와 국방부과학수사연구소장이 원심의 사실조회에 따라 작성하여 보낸 세열수류탄 파편의 비산각도와 방향에 관한 사실조회결과 통보서의 각 기재에 의하여 명백히 인정되는, 수류탄의 폭발지점 및 세열수류탄의 파편이 위치한 면과 수직방향(방사선 모양)으로 비산된다는 파편의 비산각도 등을 감안하여 보면, 피고인이 자고 있던 위치에 관하여 검찰관앞에서 자백한 내용이 진실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위치에 있던 피고인의 상처부위가 왼쪽 안면부 및 왼쪽 이마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과 피고인이 입고 있던 군복 상의의 왼쪽 앞깃에 파편창이 있었다는 점은, 오히려 수류탄이 폭발될 당시 피고인이 천정을 향하여 누운 자세로 잠들어 있다가 부상을 당하였다는 피고인의 제1심 공판정에서부터 원심 공판정에 이르기까지의 진술에 보다 더 부합하는 것이라고 보일 뿐, 피고인이 얼굴을 침상바닥에 대고 엎드린 자세로 있었다는 검찰관 앞에서의 진술내용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는 도저히 보기 어렵다. 특히 피고인을 치료한 군의관 강창희가 작성한 소견서(수사기록 353면)의 기재와 피고인의 상처를 촬영한 사진들(수사기록 355면 내지 362면)의 각 영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피고인이 이 사건 사고로 인하여 입은 상처 중 왼쪽 눈과 왼쪽 귀 사이에 있는 파편창은, 파편삽입구로부터 왼쪽 눈의 아래쪽으로(7시 방향) 2cm 가량 터널이 형성되어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는바, 만일 피고인이 검찰관 앞에서 진술한 대로 피고인이 수류탄이 폭발될 당시 얼굴을 침상바닥에 대고 엎드려 있었다면, 내무반 바닥의 수류탄이 폭발된 지점과 그 파편의 비산각도 등에 비추어 볼때 위 파편창은 파편삽입구로부터 왼쪽 귀의 아래쪽으로(5시 방향) 터널이 형성되는 형태가 될 것임이 경험칙상 명백하므로, 위와 같은 상흔의 각도와 방향은 바로, 위 파편창이 피고인이 천정을 향하여 누운 자세로 자다가 내무반 바닥에서 폭발하여 비산하는 수류탄의 파편에 의하여 입은 것이라는 피고인의 공판정에서의 진술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검찰관이 작성한 박세종·계한성·이재태·김형준·김우성·권만순 등에 대한 각 진술조서의 기재내용을 보면, 수류탄이 폭발될 당시 초소원들이 자고 있던 위치가 수사기록 78면에 편철된 내무반 및 상황실 평면도와 같다는 것이고(수사기록 587면, 602면, 609면, 620면, 631면, 642면), 증인 함성민도 원심 공판정에서 피고인의 옆자리에 이광희 하사가 잤다고 진술하고 있어(공판기록 349면), 피고인이 검찰관앞에서 자고 있던 위치에 관하여 한 진술(텔레비젼이 있는 곳으로부터 함성민·이광희·피고인·김기보의 순으로 자고 있었다는 것)과 부합하는 점이 있기는 하지만, 위 함성민은 군사법경찰관 앞에서 자기가 1.6. 03:00부터 한규석 일병의 옆에서 자다가 10:00경 잠이 깨어 화장실에 갔다 온 후 반대편 침상 텔레비젼 앞 이광희 하사의 왼쪽 옆자리로 이동하여 취침하였는데, 위 이광희의 오른쪽 옆자리에서 자던 사람이 엎드린 자세에서 움직이는 것은 보았으나 그가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진술하고(수사기록 273면, 274면), 검찰관 앞에서는 박성오 상병·이광희 하사·한규석 일병이 자던 위치는 알지만 다른 사람이 자던 위치는 모르겠다고 진술하였으며(수사기록 694면), 원심 공판정에서도 위 이광희의 오른쪽 옆자리에서 자던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다고 진술하고 있으므로(공판기록 350면), 피고인이 위 이광희의 옆에서 자고 있었다는 위 함성민의 원심 공판정에서의 진술부분은 그대로 믿기 어렵고, 위 박세종·계한성·이재태·김형준·김우성·권만순의 위 각 진술도 진술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보면 초소원들이 내무반에서 자는 형태와 각자 자신이 자고 있던 위치를 확인한 것일 뿐, 모든 초소원들이 자고 있던 위치를 정확히 알고 그와 같이 진술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위 이재태는 원심 공판정에서 “이건 수류탄폭발 당시 건너편의 침상에는 누가 잤지요?”라는 변호인의 반대신문에 대하여 “잠들기 전에는 이광희, 김기보가 있었고 그 다음에는 모르겠읍니다”라고 답변하면서(이와 같은 진술은 함성민이 당초에는 이광희·김기보가 자던 침상과는 다른 침상에서 자고 있었다는 함성민의 위 진술과 부합된다), “이쪽편에는 네번째로 피고인이 잤나요?”라는 변호인의 반대신문에 대하여는 “예, 그 옆에는 한규석이 잤습니다”라고 답변하고(이 부분에 관한 진술의 취지는 분명하지 않다. 공판기록 360면) 있고, 위 권만순이 작성한 진술서(수사기록 165면)에도 “김기보 이병이 누워 있는 것이 보여 깨우려고 다가갔더니 이광희 하사가 김기보 이병 곁에서 일어나고 있었는데 얼굴에서 많은 피가 흐르고 있었고 ···”라고 기재되어 있는바, 이와 같은 증거들은, 피고인이 텔레비젼으로부터 네 번째인 위 박성오의 관물대앞에서 위 김기보와 계한성 사이에서 자고 있었다는 제1심 공판정에서부터 원심 공판정에 이르기까지의 진술(이 진술에 의하면 텔레비젼이 있는 곳으로부터 함성민·이광희·김기보·피고인·계한성의 순으로 자고 있었던 것이 된다)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원심은, 피고인의 진술에 의하면 신건 하사가 침상의 중앙에 걸터앉아서 교육하고 있을 때 그 왼쪽으로 엄재학과 박성오의 관물대(텔레비젼이 있는 곳으로부터 세 번째와 네 번째) 앞 침상이 비어 있었는데, 굳이 상급자인 위 신건의 바로 곁(박성오의 관물대 앞)에 붙어서 취침했다는 피고인의 주장은 계급사회라는 군조직의 특성상 이례적인 것으로 경험칙에 반한다고 판시하고 있으나, 피고인이 상급자의 바로 곁에서 취침하였을 리가 있겠느냐는 막연한 추측만으로 피고인이 자고 있던 위치가 위 엄재학의 관물대 앞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원심으로서는 그 당시 같은 내무반에서 자고 있던 위 이재태·권만순 등 초소원들을 증인으로 신문하여 피고인이 자고 있던 정확한 위치를 심리하여 보았어야 마땅하다. 만일 피고인이 그가 공판정에서 주장하는대로 텔레비젼이 있는 곳으로부터 네 번째 관물대 앞 자리에서 자고 있었던 것이 진실이라면, 피고인이 입은 왼쪽 안면부 및 왼쪽 이마의 집중적인 상처는 피고인이 검찰관 앞에서 자백한 것과 같은 범행자세로서는 도저히 생길 수 없는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3) 수류탄의 안전크립과 안전핀이 발견되지 아니한 점에 관하여

원심은, 당시 내무반은 문이 닫혀 있어 피고인이 나올 때 발로 차고 나왔으며 등화관제상태라서 외부에서 수류탄을 내무반 안으로 던져 넣으려면 유리창을 깨거나 창문을 열고 던져야 하는데 그러한 외부인의 소행이라고 볼만한 자료가 없다는 점을, 피고인이 검찰관 앞에서 한 자백과 부합하는 것으로 들고있다.

그러나 피고인은 검찰관 앞에서 수류탄에서 제거한 안전크립과 안전핀에 관하여 “잘 기억은 안나나 내무반 바닥에 그냥 버린 것 같습니다”(수사기록 541면), “수류탄을 던진 것이 아니고 안전크립 및 안전핀을 빼서 가지고 있다가 당황하여 놓친 것입니다”(수사기록 650면)라고 진술하고 있는 반면, 군사법경찰관이 작성한 압수수색조서(수사기록 112면)와 수류탄폭발사상사건발생보고(수사기록 19면) 및 수류탄폭발사상사건중간보고(수사기록 30면)의 각 기재에의하면, 1.6. 13:10경 이 사건 사고현장에서 수류탄의 안전손잡이만이 유류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어 압수하였을 뿐, 초소화장실의 인분을 제거하고 지뢰탐지기를 동원하여 초소의 내외부를 탐색하는 등 안전핀의 수거를 위하여 현장수색을 계속하였으나 수류탄의 안전크립과 안전핀을 발견하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는바, 피고인이 검찰관 앞에서 자백한대로 범행이 이루어진 것이라면 수류탄의 안전크립과 안전핀이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볼 수밖에 없으므로(안전크립과 안전핀이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오히려 내무반에서 자고 있던 초소원들 이외의 제3자가 내무반 밖에서 안전크립과 안전핀을 제거하여 은닉한 다음 수류탄만을 내무반 안으로 던져넣어 이 사건 사고를 일으킨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강하게 생기게 한다), 위와 같은 사정은 피고인의 자백을 신빙할 수 없게 하는 사유가 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4) 그밖에 원심은, 평소에 동작이 둔하고 미숙한 피고인이 이 사건 사고 당시에는 취침자들 중에서 가장 먼저 밖으로 뛰어 나갔다고 피고인 스스로 진술하고 있는 점, 폭발지점으로부터 가까운 곳에 취침한 사람들 중에서 가장 경미한 상해를 입었고, 밖으로 뛰어 나와 함성민과 마주쳤을 때 잠에서 방금깨어난 표정이 아니었다는 점 등을, 피고인이 검찰관 앞에서 한 자백을 신빙할수 있는 사유로 내세우고 있으나, 위와 같은 점들은 피고인의 자백이 진실한 것임을 뒷받침할 만한 사유가 되지 못함이 명백하다.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하거나 범행현장의 객관적인 상황에 부합하는 정황증거들과 상치되어 신빙하기 어려운 피고인의 검찰관 앞에서의 자백을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보아 믿은 나머지, 피고인이 수류탄을 절취한 후의 행동·이 사건 사고가 일어날 당시 피고인이 자고 있던 위치·수류탄의 폭발로 인하여 피고인이 입게 된 상처·안전크립과 안전핀이 발견되지 아니한 이유 등에 관하여 조금 더 세심하게 심리하여 보지도 아니한 채, 이 사건 군용물절도 및 폭발물사용의 범죄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제1심판결을 유지하였으니, 원심판결에는 심리를 제대로 하지 아니한 채 자백의 증명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 채증법칙을 위반하여 사실을 잘못 인정한 위법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고, 이와 같은 위법은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임이 분명하므로, 이 점을 지적하는 논지는 이유가 있다.

4.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사건을 원심군사법원에 환송하기로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어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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