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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11. 4. 28. 선고 2010두29123 판결
[친일반민족행위자지정처분취소][공2011상,1055]
판시사항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활동한 행위 자체만으로도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9호 에서 정한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원칙적 적극)

판결요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조사 및 결정에 관한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 이라 한다) 제3조 , 제4조 , 제19조 제1항 등의 규정과 특별법의 입법 취지, 특별법 제2조 제9호 의 규정 형식,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반민족적인 자문기구로서의 성격과 기능, 중추원 참의 등의 발탁 및 임명 경위, 정치적·법률적 지위나 임무 및 그 활동 내용 등을 종합하여 보면, 일제의 총독정치와 식민통치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중추원 참의의 경우에는 참의로 활동한 행위 자체만으로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원회의 결정을 거쳐 특별법 제2조 제9호 에서 규정한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하고, 다만 재직기간이 매우 짧다든가 또는 형식적으로 중추원 참의의 지위만 가지고 있었을 뿐 실제로는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였거나 독립운동에 참여하거나 이를 지원하였음이 밝혀지는 등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친일반민족행위에서 배제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원고, 상고인

원고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화우 담당변호사 강보현 외 3인)

피고, 피상고인

행정안전부장관

주문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원심은 제1심판결 이유를 인용하여, 원고의 조부인 망 소외인이 1941. 9. 13.부터 1944. 9. 12.까지 3년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활동한 사실 등 그 판시와 같은 사실을 인정한 다음,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이라고 한다) 제2조 제9호 가 ‘친일반민족행위’에 관하여 정의하면서 같은 조 제1호 등과는 달리 구체적인 행위를 규정하지 않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고문 또는 참의로 활동한 행위’를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위 조항이 정한 친일반민족행위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고문 또는 참의로 활동한 행위 자체로 인정되는 것이고 그 외에 추가적이고 구체적인 행위를 요건으로 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함이 상당하므로, 망인이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활동한 이상 그 행위는 특별법 제2조 제9호 가 정한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특별법 제1조 는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이 시작된 러·일전쟁 개전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일본제국주의를 위하여 행한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을 규명하여 역사의 진실과 민족의 정통성을 확인하고 사회정의 구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2조 는 “이 법에서 ‘친일반민족행위’라고 함은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이 시작된 러·일전쟁 개시 전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행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말한다.”고 규정하면서, 제1호 부터 제20호 까지 친일반민족행위를 열거하고 있다. 위 각 호에 규정된 친일반민족행위의 내용을 유형별로 분류해 보면, ① 일본제국의회의 귀족원의원 또는 중의원,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부의장·고문 또는 참의의 경우에는 그 관직에서 활동한 행위 자체를, ② 일본제국주의 군대의 소위 이상의 장교, 판사·검사 또는 사법관리, 고등문관 이상의 관리, 헌병 또는 경찰 등 특정 관직의 경우에는 그 관직에 있으면서 침략전쟁 등에 적극 협력하거나 무고한 우리민족 구성원을 감금·고문·학대하는 등 탄압에 적극 앞장선 행위 등을, ③ 일반인의 경우에는 일제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 등에 적극 협력하거나 이를 주도한 행위 등을 각각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 즉 특별법은 다른 관직에 있었던 자나 일반인 등의 경우와는 달리 일본제국의회의 귀족원의원 또는 중의원,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부의장·고문 또는 참의의 경우에는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보아 그 관직에서 활동한 행위 자체를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원심이 인용한 제1심판결 이유와 그 채용 증거들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기능 및 역할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화하였지만, 기본활동은 총독의 자문기구로서 총독이 부의한 안건에 대해 심의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었다. 즉 조선총독부 중추원은 기본적으로 일제강점과 총독통치에 기여하기 위해 설치된 기관으로서 일제의 조선침략을 합리화하고 식민통치체제를 강화하기 위하여 각종 조사·편찬 작업에 힘썼던 반민족적 성격을 지니는 기관이다. 특히 1937년경 전시체제로 돌입한 이후에는 일제의 대륙침략정책에 동조하고 선전하는 기구로도 활용되었다.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간부에 해당하는 중추원 고문 및 참의는 일제의 조선통치에 도움이 된 자 또는 통치과정에서 새로이 공로가 있는 자, 일제의 식민정책이나 지방통치 등에 적극적으로 협력해 온 자들이 발탁·임명되어 왔으며, 그 시기에 따라 당시의 표현으로 내선융화정책을 추진하는 데 활용되거나 침략전쟁과 황민화정책의 선전, 징병과 징용 등의 선전 및 선동에 동원되는 등 일제의 식민통치에 협조하거나 이를 합리화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이러한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지위 및 역할 등에 비추어 볼 때, 특별법 제2조 9호 에서 정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활동한 행위 자체만으로 대표적인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제헌헌법하에서 제정된 반민족행위처벌법(1948. 9. 22. 법률 제3호로 제정된 것) 제4조 제2호 에서 ‘중추원 참의였던 자’ 등에 대하여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15년 이하의 공민권 정지에 처하고 그 재산의 전부 또는 일부를 몰수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고 있었던 것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활동한 자는 당연히 반민족행위자에 해당한다는 전제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특별법은,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규명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으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라고 한다)를 설치하여( 제3조 ), 친일반민족행위 조사대상자의 선정, 그 조사대상자에 대한 친일반민족행위의 조사 및 결정 등에 관한 사항의 심의·의결의 업무를 처리하도록 하고 있는데( 제4조 ), 제19조 제1항 에서 “위원회는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고 그 내용이 중대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의결로써 조사대상자를 선정하여 필요한 조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 제20조 에서 “위원회는 객관적이고도 공정한 조사를 위하여 조사대상자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에 참여 또는 지원한 사실이 있는 때에는 이러한 사실을 함께 조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19조 , 제24조 , 제28조 등에서 조사대상자 등에게 의견진술권 및 이의신청권 등을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들에 의하면, 특별법 제2조 제9호 의 조항이 있다고 하여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활동한 자가 곧바로 친일반민족행위자로서 조사를 받거나 친일반민족행위결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위원회의 결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활동한 행위가 있더라도 예외 없이 친일반민족행위 결정을 받게 되는 것도 아니다.

위와 같은 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조사 및 결정에 관한 특별법의 규정과 앞서 본 특별법의 입법 취지, 특별법 제2조 제9호 의 규정 형식,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반민족적인 자문기구로서의 성격과 기능, 중추원 참의 등의 발탁 및 임명 경위, 그 정치적·법률적 지위나 임무 및 그 활동 내용 등을 종합하여 보면, 일제의 총독정치와 식민통치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중추원 참의의 경우에는 참의로 활동한 행위 그 자체만으로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원회의 결정을 거쳐 특별법 제2조 제9호 에 정한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하게 되고, 다만 그 재직기간이 매우 짧다든가 또는 형식적으로 중추원 참의의 지위만 가지고 있었을 뿐 실제로는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였거나 독립운동에 참여하거나 이를 지원하였음이 밝혀지는 등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친일반민족행위에서 배제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원심이 인용한 제1심판결 이유와 그 채용 증거들에 의하면, 망 소외인은 1941. 9. 13.부터 1944. 9. 12.까지 3년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활동하면서, 그 기간 동안 중추원회의에 참석하여 조선총독의 자문에 응하였고, 특히 1942년 제23회 중추원회의에 출석한 후에 조선총독의 자문에 응하여, 징병제의 실시와 더불어 ‘충량한 황국신민이 되어 손색없는 폐하의 적자로서 대동아공영권의 강력한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의무교육제도를 실시할 것을 건의하고, 일본의 전시체제에 협력하기 위하여 식량배급제도의 개선과 하급관리들의 재교육 등을 제안하기도 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 관계를 위 법리에 비추어 보면, 망 소외인이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활동한 행위는 특별법 제2조 제9호 에 정한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하고, 원고가 주장하는 바와 같은 선행 행위 등이 있다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

원심이 인용한 제1심판결 이유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활동한 행위가 예외 없이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일부 적절하지 않은 부분이 있으나, 친일반민족행위에서 배제되어야 할 앞서 본 바와 같은 예외적 사유가 인정되지 않은 이 사건에서, 망 소외인이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활동한 행위는 추가적이고 구체적인 행위를 요건으로 함이 없이 그 자체로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아 이 사건 친일반민족행위결정 처분을 적법하다고 판단한 결론은 정당하다. 거기에 상고이유로 주장하는 바와 같은 판결에 영향을 미친 법리오해나 판단누락 등의 위법은 없다.

그러므로 상고를 기각하고 상고비용은 패소자가 부담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차한성(재판장) 박시환(주심) 안대희 신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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