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beta
텍스트 조절
arrow
arrow
서울행정법원 2017.9.1. 선고 2016구합85972 판결
전역처분무효확인의소
사건

2016구합85972 전역처분무효확인의 소

원고

A

피고

국방부장관

변론종결

2017. 7. 5.

판결선고

2017. 9. 1.

주문

1. 피고가 1973. 4. 20. 원고에 대하여 한 전역처분이 무효임을 확인한다.

2.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주문과 같다.

이유

1. 처분의 경위

가. 원고(B생)는 1957. 6. 12. 소위로 임관하였고, 1972. 8. 29.부터 C 사령부 작전참모로 근무하였으며, 1972. 11. 1. 대령으로 진급하였다.

나. 원고는 1973. 4. 3.부터 1973. 4. 6. 사이에 전역지원서를 피고에게 제출하였고, 피고는 1973. 4. 16. 원고에 대하여 구 군인사법(1976. 12. 31. 법률 제2979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35조 제1항에 의거하여 1973. 4. 20.부로 원에 의한 전역을 명하였다(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4, 5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본안전항변에 관한 판단

가. 피고의 주장

피고는 정년이 지났으므로 무효확인판결을 받더라도 현역으로서의 지위가 회복되지 않는 점, 원고의 급여 청구 및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는 이 사건 처분의 무효확인 없이도 곧바로 행사할 수 있으므로 이 사건 처분의 효력이 발생한 1973. 4. 20.부터 급여 및 이에 준하는 금전을 국가에 대하여 청구할 수 있었고 가사 원고가 국가에 대하여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장애사유는 D 전 대통령이 사망하고 1980. 2. 29.경 소위 E 사건 관련자들에 대하여 특별사면이 이루어진 때에는 해소되었으므로, 이 사건 변론종결일 현재 그 무렵부터 5년이 경과하여 원고의 급여 청구권 및 민사상 손해배상청구권은 그 소멸시효가 이미 완성된 점, 진급 가능성이나 명예회복은 이 사건 처분의 무효를 확인할 법률상 이익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이 사건 처분의 무효확인을 구할 법률상 이익이 없다.

나. 판단

1) 전역명령을 받은 자가 현역정년에 도달하여 전역명령 무효확인으로 지위를 회복할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그 무효확인으로 전역명령일부터 현역정년 도달일까지 기간에 대한 보수지급을 구할 수 있는 경우에는 전역명령의 무효확인을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다(대법원 2012. 2. 23. 선고 2011두5001 판결 참조). 그리고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한 경우,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는 경우,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한 경우, 또는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대법원 1997. 12. 12. 선고 95다29895 판결, 대법원 2002. 10. 25. 선고 2002다32332 판결 등 참조).

2)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비록 원고가 이 사건 소 제기 당시 만 81세로 정년을 지나 군인으로서의 지위가 회복될 수는 없으나 이 사건 처분의 무효확인으로 전역명령일부터 현역정년 도달일까지 기간에 대한 보수지급을 구할 수 있으므로 원고는 이 사건 처분의 무효확인을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다. 그리고 소멸시효는 항변사항으로서 소멸시효 기간의 도과만으로 곧바로 권리가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소송과정에서 이를 원용하여야 비로소 권리행사의 장애사유가 될 뿐이므로, 원고가 향후 제기할 보수지급청구의 소의 소송계속 중 상대방인 대한민국이 소멸시효 항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 그 소송이 제기되거나 그와 같은 항변권이 행사되지도 않은 현재의 상황에서 그와 같은 가능성만으로 곧바로 이 사건 처분의 무효확인을 구할 소의 이익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나아가 원고는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불법 감금 및 고문을 당함으로써 전역 희망을 하게 되었으므로 객관적으로 원고가 피고에 대하여 보수 지급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원고를 제외한 다른 관련자들에 대하여 특별사면이 이루어졌다고 하여 원고에 대하여 위 장애사유가 사라졌다고 보기도 어려우므로 피고가 원고에 대하여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할 여지도 있다.

3) 한편, 이 사건 처분의 무효확인으로 이 사건 처분일로부터 적어도 이 사건 처분 당시 원고의 계급인 대령의 계급정년일인 1981. 10. 31.(대령 진급일인 1972. 11. 1.부터 대령의 계급정년 9년이 되는 날)까지의 기간이 원고의 복무기간에 포함될 경우 1957. 6. 12. 소위로 임관한 원고의 복무기간이 20년 이상이 되어, 원고는 군인사법 제55조, 군인연금법 제21조 제1항에 따라 퇴역연금을 지급받을 수 있고, 이러한 점에서도 원고가 이 사건 처분의 무효확인을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다고 할 것이다.

4) 따라서 원고는 어느 모로 보나 이 사건 처분의 무효확인을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으므로 피고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3. 이 사건 처분의 적법 여부

가. 원고의 주장

원고가 의사결정의 자유가 박탈될 정도의 강박 상태에서 전역지원서를 작성하였으므로 원에 의한 전역임을 전제로 한 이 사건 처분은 무효이다.

나. 관계 법령

별지 관계 법령 기재와 같다.

다. 전역지원서의 작성이 의사결정의 자유가 박탈될 정도의 강박 상태에서 이루어졌는지 여부

1) 갑 제1, 2, 3, 5 내지 19, 23, 25, 26 내지 32호증(가지번호 있는 것은 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 증인 F의 증언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다음의 사실이 인정된다.

가) E 장군은 1973. 3. 9. 육군 보안사령부에 연행되었고, 1973. 3. 26. 구속되었다.

나) C 사령부 작전참모로 근무하던 원고는 1973. 3. 26. 육군 3군단 G로 전보되었고, 1973. 4. 3. 3군단 보안대장의 소환을 받고 3군단 보안부대로 출석하였는데, 성명미상의 소령이 원고에게 '원고가 E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 내지 동조자로 적발되었으니 그 여죄를 철저히 조사하라는 명령에 의하여 원고를 피의자로 체포한다'고 말하고 원고를 계급장이 없는 작업복으로 갈아입혔다.

다) 원고는 1973. 4. 3.부터 같은 달 6.까지 3군단 보안부대에서 조사관으로부터 C 작전참모로서 E으로부터 받은 지령을 밝히라고 추궁받았고 조사관이 원하던 대답을 하지 아니하자 EE8 전화기를 이용한 전기고문, 고개를 젖힌 후 수건을 얼굴에 덮고 그 위에 물을 붓는 물고문, 구타 등의 가혹행위를 당하였다.

라) 위 성명미상의 소령은 원고에게 '예편원을 쓰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다. 우리가 봐드리고 싶어도 봐드릴 수 없다'고 말하였고, 원고는 1973. 4. 6. 전역지원서를 작성하고 풀려났다.

마) 원고는 1973. 4. 18. 3군단 보안부대로부터 보안사령부로 출석하라는 통보를 받고, 3군단 보안부대 무장장교의 호송 하에 보안사령부 서빙고분실로 연행되었고, 위 서빙고분실에 도착하여 계급장이 없는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대기하던 중 사복 차림의 3명으로부터 주먹과 발로 복부 등을 무차별로 맞고 실신하였다.

바) 원고는 약 1시간 후 F 준위 등 수사관으로부터 조사를 받았는데, 수사관이 '100만 원 이상 받은 돈을 쓰면 위에 얘기해보겠다'고 말하여 '재임 시절 월남 참모 방문시 각 지구 보안부대장으로부터 여비조로 미화 1,500달러를 강제로 징수하였고, 508 부대에 근무하는 H(개명 후 성명: I) 대위에 대한 인사의 대가로 20만 원을 받았다'는 내용의 진술서를 작성하였다.

사) 원고는 같은 날 밤 보자기로 얼굴이 덮어씌워진 채 구타, 전기고문 등의 고문을 당하였다.

아) F는 1973. 4. 19. 08:00경부터 09:00경까지 사이에 서빙고분실 조사실에서 원고를 보았는데, 원고가 정상적이 아닌 상태였고 얼굴에 수심이 끼어 있는 것 같아서 원고에게 그 사유를 물었고, 이에 원고는 "저녁에 보자기에 덮어씌워져 지하실에서 당했다."라고 말하였다. 원고는 같은 날 석방되었다.

자) 원고가 석방된 후 위 H이 원고의 자택에 가서 본 원고는 '거동이 몹시 어려웠고, 얼굴 등 온 몸에 멍투성이로 처참한 몰골'이었다. 원고는 H에게 3군단 보안부대 및 보안사령부 서빙고분실에서 고문과 폭행을 당한 사실, 전역지원서의 작성을 강요받고 이를 제출한 사실에 대하여 말하였다.

차) E 사건으로 서빙고분실에서 조사를 받은 J, K, L, M, N 등에 대해서는 당시 형사사건에서 징역형이 선고되었으나 2009년 이후 재심에서 폭행 등 가혹행위를 당한 상태에서 진술한 점이 인정되어 무죄가 선고되었고, 그 무렵 서빙고분실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하고 전역지원서를 작성하여 제출한 O는 2016. 9. 9. 전역처분이 무효임을 확인하는 판결을 선고 받았고, 위 판결에 대한 항소 및 상고가 기각되어 위 판결은 확정되었다.

2)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원고는 고문 등의 가혹행위로 인해 의사결정의 자유가 박탈될 정도의 강박 상태에서 전역지원서를 작성하였다고 봄이 상당하고, 이 사건 처분은 절대적 강박 상태에서 작성된 전역지원서에 기초한 것이므로 그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하여 무효이다.

라. 이 사건 처분의 무효확인 청구가 신의성실의 원칙 또는 실효의 원칙에 반하는지 여부

1) 피고의 주장

① 원고는 이 사건 처분이 있었던 때로부터 이 사건 소를 제기한 때까지 43년의 기간 동안 이 사건 처분의 위법성을 법적 절차를 통하여 충분히 확인해 볼 수 있었으나 전혀 그러한 시도를 하지 않았고, ② '1980년해직공무원의보상등에관한특별조치법'이 1989. 3. 29. 시행되어 지난 정권의 과오에 대하여 반성하는 입법 및 정부정책이 지속적으로 시행되었으며, 이후에도 군사정권에서 부당한 해고 또는 해직을 당한 사람에 대한 입법적·정책적 구제가 활발히 진행되었고, ③ 군 내부의 인사 분쟁은 신속하게 해결될 필요성이 있으므로, 원고의 이 사건 처분에 대한 무효확인 청구는 너무나 뒤늦은 것으로서 신의성실의 원칙 또는 실효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

2) 판단

가) 일반적으로 권리의 행사는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하고 권리는 남용하지 못하는 것이므로 권리자가 실제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기간이 경과하도록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하여 의무자인 상대방으로서도 이제는 권리자가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할 것으로 신뢰할 만한 정당한 기대를 가지게 된 다음에 새삼스럽게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법질서 전체를 지배하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결과가 될 때에는 이른바 실효의 원칙에 따라 그 권리의 행사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또한 실효의 원칙이 적용되기 위하여 필요한 요건으로서의 실효기간(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한 기간)의 길이와 의무자인 상대방이 권리가 행사되지 아니하리라고 신뢰할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었는지의 여부는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우마다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한 기간의 장단과 함께 권리자측과 상대방측 쌍방의 사정 및 객관적으로 존재한 사정 등을 모두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대법원 2005. 10. 28. 선고 2005다45827 판결 등 참조).

나) 위 법리에 비추어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앞서 든 증거들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원고는 불법 감금 및 고문을 당함으로써 의사결정의 자유가 박탈될 정도의 강박 상태에서 전역 희망을 하게 된 것을 보면, 이 사건 처분 당시에는 객관적으로 원고가 피고에 대하여 이 사건 처분의 무효확인을 구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었던 점, D 전 대통령의 집권기간이 끝난 1980년경 이후에는 위와 같은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는 이 사건 처분이 의사결정의 자유가 박탈된 상태에서 한 원고의 전역 희망에 기한 것이어서 무효인지 아니면 단지 의사결정의 자유가 제약된 상태에서 한 원고의 전역 희망에 기한 것이어서 단순히 취소사유가 있음에 불과하여 더 이상 다툴 수 없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았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설령 원고가 이 사건 처분 이후 상당기간 동안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는 피고에게 원고가 이 사건 처분의 무효확인을 구하지 아니할 것으로 믿을 만한 정당한 사유가 생겼다거나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처분의 무효확인을 구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된 권리행사로 단정하기는 어려우므로, 피고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4.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이를 인용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재판장 판사 김용철

판사 김남균

판사 강민기

별지

arr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