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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1997. 12. 12. 선고 95다29895 판결
[손해배상(기)][공1998.1.15.(50),237]
판시사항

[1] 한미행정협정 제23조 제5항 소정의 '계약에 의한 청구권'의 실현을 위한 소송의 상대방(=미합중국)

[2] 한미행정협정 제23조 제5항 소정의 '계약에 의한 청구권'에 포함되는 청구권의 범위

[3] 한미행정협정 제23조 제5항 소정의 '계약에 의한 청구권'에 기하여 미합중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국가배상법상의 전치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여부(소극)

[4] 소멸시효의 항변이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1] 대한민국과아메리카합중국간의상호방위조약제4조에의한시설과구역및대한민국에서의합중국군대의지위에관한협정(이하 '한미행정협정'이라고 한다) 제23조 제5항은 공무집행중인 미합중국 군대의 구성원이나 고용원의 작위나 부작위 또는 미합중국 군대가 법률상 책임을 지는 기타의 작위나 부작위 또는 사고로서 대한민국 안에서 대한민국 정부 이외의 제3자에게 손해를 가한 것으로부터 발생하는 청구권은 대한민국이 이를 처리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위 청구권의 실현을 위한 소송은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하는 것이 원칙이고, 대한민국을 상대로 위와 같은 소송을 제기하기 위하여는 대한민국과아메리카합중국간의상호방위조약제4조에의한시설과구역및대한민국에서의합중국군대의지위에관한협정의시행에관한민사특별법 제2조, 제4조에 따라 국가배상법이 규정하고 있는 전치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한편, 위 한미행정협정 제23조 제5항은 위와 같은 청구권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계약에 의한 청구권(contractual claim)'인 경우에는 대한민국이 처리할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위 '계약에 의한 청구권'의 실현을 위한 소송은 계약 당사자인 미합중국을 상대로 제기할 수 있다.

[2] 한미행정협정 제23조 제5항의 계약에 의한 청구에는 계약의 당사자인 미합중국에 대한 계약의 이행 청구와 계약 불이행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 청구뿐만 아니라, 계약의 체결 및 이행 사무를 담당하는 미합중국 군대의 구성원이나 고용원 등이 계약의 체결 및 이행과 직접 관련하여 행한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계약 상대방의 손해배상 청구도 포함된다.

[3] 계약에 의한 청구권에 기하여 미합중국을 피고로 하여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과아메리카합중국간의상호방위조약제4조에의한시설과구역및대한민국에서의합중국군대의지위에관한협정의시행에관한민사특별법 제2조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므로 그 법 제4조가 규정한 국가배상법상의 전치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4]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의 단기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하기 전에 채무자가 적극적으로 채권자로 하여금 소 제기 등 시효 중단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고 이를 소청심사위원회에 의한 구제절차의 종료시까지 미루도록 유인하는 행동을 하였고, 또한 채무자와의 약정에 따라 위와 같은 채무자측의 행정적 구제절차를 충실히 밟고 이를 기다린 다음 상당한 기간 내에 소를 제기한 채권자에 대하여, 위 행정적 구제절차를 오래 끌어오면서 애초에는 채권자의 청구를 인용하는 결정을 하였다가 오류가 있는 재심결정에 의하여 채권자의 청구를 부정한 채무자가 이번에는 단기소멸시효를 원용하여 채무 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다고 할 것이므로, 채무자의 소멸시효 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 사례.

원고,피상고인

대림기업 주식회사

피고,상고인

미합중국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태평양 담당변호사 김인섭 외 3인)

주문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피고의 부담으로 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제1점에 대하여

대한민국과아메리카합중국간의상호방위조약제4조에의한시설과구역및대한민국에서의합중국군대의지위에관한협정(이하 '한미행정협정'이라고 한다) 제23조 제5항은 공무집행중인 미합중국 군대의 구성원이나 고용원의 작위나 부작위 또는 미합중국 군대가 법률상 책임을 지는 기타의 작위나 부작위 또는 사고로서 대한민국 안에서 대한민국 정부 이외의 제3자에게 손해를 가한 것으로부터 발생하는 청구권은 대한민국이 이를 처리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위 청구권의 실현을 위한 소송은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할 것이고, 대한민국을 상대로 위와 같은 소송을 제기하기 위하여는 대한민국과아메리카합중국간의상호방위조약제4조에의한시설과구역및대한민국에서의합중국군대의지위에관한협정의시행에관한민사특별법(이하 '민사특별법'이라고 한다) 제2조, 제4조에 따라 국가배상법이 규정하고 있는 전치절차를 거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 위 한미행정협정 제23조 제5항은 위와 같은 청구권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계약에 의한 청구권(contractual claim)'인 경우에는 대한민국이 처리할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위 '계약에 의한 청구권'의 실현을 위한 소송은 계약 당사자인 미합중국을 상대로 제기할 수 있다 고 할 것인바, 여기에서 말하는 계약에 의한 청구에는 계약의 당사자인 미합중국에 대한 계약의 이행 청구와 계약 불이행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 청구뿐만 아니라, 계약의 체결 및 이행 사무를 담당하는 미합중국 군대의 구성원이나 고용원 등이 계약의 체결 및 이행과 직접 관련하여 행한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계약 상대방의 손해배상 청구도 포함된다 고 할 것이다.

그리고 계약에 의한 청구권에 기하여 미합중국을 피고로 하여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에는 위 민사특별법 제2조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므로 그 법 제4조가 규정한 국가배상법상의 전치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원고가 1980. 2. 22. 대한민국의 영역 안에 있는 피고 산하 육군(이하 '주한미군'이라고 한다) 계약담당부(United States Army Korea Contracting Agency)를 대표한 계약담당관인 소외 레너드 라조프(Leonard Lazoff)와 사이에서 원고가 주한미군의 휴양시설인 내자호텔 내의 상점에서 피고측으로부터 인가된 구매자들에게만 인가된 가격으로 전자제품을 판매하고 위 계약담당관에게 일일보고를 하여 확인을 받으며 위 상점의 월차임 명목으로 금 2,501달러를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의 이 사건 계약을 체결하였고, 위 내자호텔의 총지배인인 소외 살레르노(Salerno)는 위 계약의 이행 과정에 있어서의 모든 권한에 관하여 위 계약담당관의 대리인으로 지명된 사실, 위 계약담당관 레너드 라조프, 내자호텔의 총지배인 살레르노 등 피고 소속 공무원들은 이 사건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위 계약에 기하여 판매되는 물품의 면세 여부에 관하여 한미행정협정의 규정 및 대한민국의 세법 등을 조사하거나 대한민국의 세무당국에 그에 관한 문의를 하는 등의 방법으로 이를 면밀하게 검토하지 아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위 살레르노는 위 계약의 체결을 위한 경쟁입찰에의 응찰자들을 상대로 하여 1980. 1. 24. 실시된 현장 설명회에서 원고를 포함한 응찰자들에게 위 계약에 기하여 판매될 물품에 관하여 대한민국에서 부과되는 모든 세금이 면제된다고 설명하였고, 위 레너드 라조프는 위 계약을 체결하면서 그 계약서에 원고가 판매하는 물품에 관하여는 한미행정협정에 의하여 대한민국에서 부과되는 부가가치세, 특별소비세, 관세 기타 세금이 면제된다고 기재함으로써 위와 같은 취지를 위 계약의 내용으로 포함시킨 사실, 원고는 1980. 4. 1.부터 위 내자호텔 내의 상점에서 영업을 개시하면서 소외 주식회사 금성사로부터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전자기기를 공급받았는데, 위 회사는 원고가 제출한 이 사건 계약서를 보고 위 계약에 기하여 판매되는 물품은 면세라고 믿고 원고에게 공급하는 물품에 관한 각종 세금을 제외한 가격으로 이를 공급하고 관할 세무서에 면세의 근거로 원고가 제공한 위 계약서의 사본을 제출하기까지 하였으며, 원고는 위 물품들을 위 계약상 피고측으로부터 인가된 구매자들에게만 인가된 면세 가격으로 판매한 사실, 피고 소속 공무원들은 원고가 영업을 시작하면서 위 내자호텔의 내부에 '면세품점'이라는 대형 광고판을 설치하고 원고가 운영하는 위 상점이 면세점이라는 취지의 광고를 '성조기(Stars and Stripes)' 신문에 게재한 사실, 원고는 1980. 10.경에 이르러 관할 세무당국으로부터 원고가 판매하는 물품을 비록 주한미군의 구성원이나 고용원 및 그들의 가족들이 구입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공용이 아닌 개인적인 구입으로서 한미행정협정에 의한 면세의 대상이 아니라는 통보를 받았고, 이에 피고 소속 공무원들은 원고에게 면세가 되도록 해 주겠다고 하여 원고는 피고측의 이러한 말을 믿고 계속 물품을 면세 가격으로 구입하여 전부 면세 가격으로 판매한 사실, 원고는 1981. 4.경에 이르러 부득이 그 동안 자신이 구입하여 판매한 텔레비전 등 물품에 관하여 부과된 부가가치세 금 20,529,797원, 특별소비세 금 49,672,586원, 방위세 금 16,256,480원, 관세 금 9,510,666원 등 합계 금 95,969,529원의 세금을 부담한 사실 등을 인정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위와 같다면, 위 계약담당관, 내자호텔 지배인 등은 피고의 사경제적 활동이라 할 이 사건 계약의 체결 및 이행 사무를 담당한 피고 소속 공무원들이고, 또한 그들의 위와 같은 행위 등은 위 계약의 체결 및 이행에 직접 관련된 행위라고 할 것이므로, 비록 피고 소속 위 공무원들이 주한미군의 구성원이나 고용원이라고 하더라도 위 계약의 상대방인 원고가 피고 소속 공무원들의 위 행위 등으로 말미암아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여 위 계약의 당사자인 피고를 상대로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한미행정협정 제23조 제5항이 규정하고 있는 '계약에 의한 청구권'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고, 따라서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위 손해배상 청구의 소를 제기할 수 있고, 이 때에 국가배상법상의 전치주의에 관한 규정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취지에서 원고의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존부와 그 범위를 판단하고 있는 원심판결에 소론과 같은 한미행정협정 제23조 제5항, 민사특별법 제2조, 제4조 등에 대한 법리오해나 심리미진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논지는 모두 이유 없다.

2. 제2점에 대하여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원고가 주한미군 계약담당부를 대표한 계약담당관인 레너드 라조프와 사이에서 이 사건 계약을 체결할 당시 위 계약과 관련된 분쟁이나 청구로서 합의에 의하여 해결되지 않은 것은 계약담당관의 결정을 받고, 계약담당관은 그 결정 내용을 서면으로 작성하여 그 사본을 우편 기타의 방법으로 원고에게 송달하며, 원고는 위 서면을 받은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미군계약소청심사위원회(Armed Services Board of Contract Appeals) 앞으로 된 서면을 계약담당관에게 우편 기타의 방법으로 제출하여 불복할 수 있으며, 위 위원회의 결정은 종국적인 것으로 한다는 내용의 약정을 한 사실은 인정할 수 있으나, 한편 피고의 연방법률집(United States Code)의 관련 조항에 의하면 미군계약소청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대하여는 절대적으로 제소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사실관계에 대한 다툼은 더 이상 하지 못하되 사실관계가 아닌 법률적인 문제나 기타 위 소청심사위원회의 결정 자체에 상당한 하자가 있거나 그 결정이 상당한 증거에 기하여 내려진 것이 아닌 경우 등에는 연방순회법원에 제소할 수 있는 여지가 남겨져 있는 사실, 원고가 한미행정협정 합동위원회(SOFA Joint Committee)에 대하여 한 조정신청에 관하여 주한미군 부사령관 특별법률고문관은 1984. 2. 6. 원고에게 위와 같은 피고측의 행정적 구제절차를 거치고도 분쟁을 해결하지 못한 때에는 한미행정협정에 따른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회신한 사실 등에 비추어 볼 때, 위와 같은 분쟁해결약정은 사법적인 해결 방법을 완전히 배제한 것으로는 볼 수 없고 위 행정적 구제절차에서 내려진 결정에 법리오해나 상당한 채증법칙상의 오류가 있는 경우에는 사법적인 분쟁 해결 방법으로 법원에 제소할 수 있는 권한을 유보한 취지라고 할 것이고, 이 사건에 있어서 원고는 위 분쟁해결약정에서 정한 구제절차를 밟았으나 위 미군계약소청심사위원회에서 최종적으로 내려진 1989. 9. 29.자 재심결정은 법리오해와 중대한 채증법칙상의 오류가 있다고 보여지므로 원고가 법원에 제소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며, 또한 이 사건 청구가 금반언의 원칙이나 신의칙에 위반된다고 보여지지 아니한다고 판단하였다.

기록과 대조하여 살펴보면, 원심의 위 사실인정 및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소론과 같은 채증법칙 위반으로 인한 사실오인 또는 금반언의 원칙이나 신의칙에 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원심은 위 분쟁해결약정과 관련하여 피고의 연방법률집의 규정을 이 사건에 적용한 것이 아니라 단지 위 분쟁해결약정에 관한 당사자의 의사를 해석함에 있어서 위 연방법령집의 규정 내용을 참고로 하고 있을 뿐이므로, 원심이 이를 이 사건에 적용하였음을 전제로 하여 이를 탓하는 소론도 받아들일 수 없다. 논지도 모두 이유 없다.

3. 제4점에 대하여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이 사건 계약의 피고측 담당관인 레너드 라조프가 위 계약을 체결하면서 그 계약서에 원고가 판매하는 물품에 관하여는 한미행정협정에 의하여 대한민국에서 부과되는 부가가치세, 특별소비세, 관세 기타 세금이 면제된다고 기재함으로써 위와 같은 취지를 위 계약의 내용으로 포함시켰다고 한 원심의 사실인정은 정당하고, 거기에 소론과 같은 채증법칙 위반으로 인한 사실오인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원심은 위 인정 사실 등을 토대로 하여, 피고 소속 공무원들이 한미행정협정 및 대한민국의 세법에 의하면 면세가 되지 않는 물품의 판매에 관하여 관계 법령의 검토 등을 거치지 아니한 채 만연히 원고에게 이 사건 계약에 기하여 판매하는 물품에 관하여는 면세가 된다고 설명하여 이를 위 계약 내용의 일부로 포함시켜 원고로 하여금 위 물품을 면세 가격으로 판매하도록 하는 등의 과실로 인한 행위로 말미암아 원고는 면세가 되지 않는 물품들을 모두 면세 가격에 판매하고서도 예기치 않게 위 물품들에 관하여 부과된 세금 합계 금 95,969,529원을 추가로 지출하였으므로 피고 소속 공무원들의 위와 같은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말미암아 원고가 위 금액 상당의 손해를 입은 것이라는 취지로 판단하였는바, 원심의 이러한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소론과 같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의 요건에 관한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논지 또한 모두 이유 없다.

4. 제3점에 대하여

원심은 이 사건 불법행위로 인한 피고의 손해배상채무가 3년의 단기소멸시효의 완성으로 소멸하였다는 피고의 항변에 대하여 판단하지 아니한 잘못이 있고, 위에서 본 사실관계에 의하면 원고로서는 1981. 4.경 이 사건 계약에 기하여 자신이 판매한 물품들에 관하여 부과된 각종의 세금을 부담한 때에 위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 및 가해자를 알았다고 할 것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때부터 소멸시효기간이 진행하여 1984. 4.경 3년의 단기소멸시효기간이 완료하게 될 것이라고 함은 소론과 같다 할 것이다.

그러나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원고는 앞서 본 분쟁해결약정에 따라 1983. 3. 30. 피고측 계약담당관에게 위 세금의 부담으로 인한 손해에 대한 미화 환산금 124,147.61달러를 포함하여 미화 234,351.84달러의 손해배상청구서를 제출하였으나 1983. 4. 11. 기각되자 1983. 5. 10. 미군계약소청심사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한 사실, 이와는 별도로 원고가 한미행정협정 합동위원회에 대하여 한 조정신청과 관련하여 주한미군 부사령관 특별법률고문관은 1984. 2. 6. 원고에게 위와 같은 행정적 구제절차를 거치고도 분쟁을 해결하지 못한 때에는 한미행정협정에 따른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회신한 사실, 미군계약소청심사위원회에서는 이 사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단기소멸시효기간이 지난 1984. 7. 3.경 청문을 개시하여 1986. 8. 25.에 이르러 원고의 피고에 대한 위 손해배상 청구 중 위 세금 부담으로 인한 손해 미화 124,147.61달러에 한하여 이유 있다는 결정을 한 사실, 한편 원고의 대표이사인 소외인은 1981. 1. 20. 위 내자호텔 내의 상점에서 금성사로부터 공급받은 칼라텔레비전들을 비면세권자인 내국인들에게 판매하였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다가, 1987. 11. 2. 검찰에서 위 혐의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처분을 받은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측이 1986. 9. 26. 위 소청심사위원회에 위 소외인 등 원고의 위와 같은 위법행위에 대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재심을 청구하자, 위 소청심사위원회는 1989. 9. 29. 원고가 피고측으로부터 인가받은 고객들에게 판매한 칼라텔레비전의 수량을 입증하여야 함에도 이를 입증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를 내세워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는 결정을 함으로써 이 때에 비로소 위 행정적 구제절차가 종료된 사실, 위 소청심사위원회의 재심결정에는 상당한 채증법칙상의 오류 등이 있는 사실, 그 후 원고는 1990. 1. 23. 이 사건 소를 제기한 사실 등을 알 수 있다.

위와 같은 제반 사정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의 단기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하기 전에 채무자인 피고가 적극적으로 채권자인 원고의 소 제기 등 시효 중단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고 이를 위 소청심사위원회에 의한 구제절차의 종료시까지 미루도록 유인하는 행동을 하였다고 할 것이고, 또한 피고와의 약정에 따라 위와 같은 피고측의 행정적 구제절차를 충실히 밟고 이를 기다린 다음 상당한 기간 내에 이 사건 소를 제기한 원고에 대하여, 위 행정적 구제절차를 오래 끌어오면서 애초에는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는 결정을 하였다가 오류가 있는 위 재심결정에 의하여 원고의 청구를 부정한 피고가 이번에는 단기소멸시효를 원용하여 채무 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되지 않는다 고 보아야 할 것이다(당원 1994. 12. 9. 선고 93다27604 판결 참조).

그렇다면 피고의 위 소멸시효 항변은 결국 배척될 경우임이 명백하므로, 위와 같은 원심의 잘못은 판결 결과에 영향이 없어 판결의 파기 이유가 되는 위법이라고 할 수 없다. 논지도 역시 이유 없다.

5. 그러므로 상고를 기각하고 상고비용은 패소자의 부담으로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신성택(재판장) 천경송(주심) 지창권 송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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