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1] 소액사건에 관하여 상고이유로 할 수 있는 ‘대법원의 판례에 상반되는 판단을 한 때’의 요건을 갖추지 않았지만 대법원이 실체법 해석적용의 잘못에 관하여 직권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경우
[2] 대통령이 사후적으로 위헌·무효가 선언된 구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긴급조치’(긴급조치 제9호)를 발령한 행위가 국민 개개인에 대한 관계에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 여부(소극)
[3]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는 경우
[4] 중앙정보부 소속 공무원에 의하여 대통령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체포·구금되었다가 유죄 확정판결을 받지 않고 풀려난 갑이 체포·구금 상태 종료 후 30년 이상 지나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에서,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본 원심판단에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고 한 사례
참조조문
[1] 소액사건심판법 제3조 제2호 [2] 구 대한민국헌법(1980. 10. 27. 헌법 제9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제53조 (현행 삭제), 구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긴급조치(1975. 5. 13. 대통령긴급조치 제9호, 1979. 12. 8. 대통령공고 제67호로 해제), 민법 제750조 ,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3] 민법 제2조 , 제162조 ,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 제8조 , 국가재정법 제96조 [4] 민법 제2조 ,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 제8조 , 구 예산회계법(1989. 3. 31. 법률 제4102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제71조 제1항 (현행 국가재정법 제96조 제1항 참조), 제72조 (현행 국가재정법 제96조 제3항 참조)
참조판례
[1] 대법원 2004. 8. 20. 선고 2003다1878 판결 (공2004하, 1571) [2] 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4다33469 판결 (공2008하, 1109) [3] 대법원 2011. 7. 28. 선고 2009다92784 판결 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공2013하, 1077)
원고, 피상고인
원고
피고, 상고인
대한민국 (소송대리인 정부법무공단 담당변호사 최재정 외 8인)
주문
원심판결 중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대전지방법원 합의부에 환송한다.
이유
1. 소액사건에 있어서 구체적 사건에 적용할 법령의 해석에 관한 대법원판례가 아직 없는 상황에서 같은 법령의 해석이 쟁점으로 되어 있는 다수의 소액사건들이 하급심에 계속되어 있을 뿐 아니라 재판부에 따라 엇갈리는 판단을 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는 경우, 소액사건이라는 이유로 대법원이 그 법령의 해석에 관하여 판단을 하지 아니한 채 사건을 종결하고 만다면 국민생활의 법적 안전성을 해칠 것이 우려된다고 할 것인바, 이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소액사건에 관하여 상고이유로 할 수 있는 ‘대법원의 판례에 상반되는 판단을 한 때’의 요건을 갖추지 아니하였다고 하더라도 법령해석의 통일이라는 대법원의 본질적 기능을 수행하는 차원에서 실체법 해석적용에 있어서의 잘못에 관하여 판단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 대법원 2004. 8. 20. 선고 2003다1878 판결 등 참조).
이 사건에 있어서 쟁점이 되고 있는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가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에서 말하는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하여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는지 여부 및 소멸시효 완성 여부에 관하여 대법원판례가 없고, 하급심의 판단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므로, 이 사건 원심의 위 조항의 해석 및 적용의 당부에 관하여 판단한다.
2. 상고이유 제1점에 관하여
이 부분 상고이유는 사실심인 원심의 전권사항에 속하는 증거의 취사선택이나 사실인정을 탓하는 것에 불과하여 적법한 상고이유가 될 수 없고, 나아가 원심의 판단을 기록에 비추어 보더라도 거기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하여 사실을 인정하거나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한 잘못이 없다.
3. 상고이유 제2점에 관하여
가.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 부분
(1)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긴급조치(이하 ‘긴급조치 제9호’라고 한다)는 그 발령의 근거가 된 구 대한민국헌법(1980. 10. 27. 헌법 제9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유신헌법’이라고 한다) 제53조 가 규정하고 있는 요건 자체를 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본질적 요소이자 유신헌법과 현행 헌법이 규정한 표현의 자유, 영장주의와 신체의 자유, 주거의 자유, 청원권, 학문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위헌·무효이다( 대법원 2013. 4. 18.자 2011초기689 전원합의체 결정 참조). 그러나 긴급조치 제9호가 사후적으로 법원에서 위헌·무효로 선언되었다고 하더라도,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서 대통령은 국가긴급권의 행사에 관하여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하여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므로, 대통령의 이러한 권력행사가 국민 개개인에 대한 관계에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는 볼 수 없다 ( 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4다33469 판결 참조).
(2) 그럼에도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대통령의 긴급조치 제9호 발령행위가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에서 말하는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는바,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이 규정하고 있는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
나. 중앙정보부 소속 공무원의 수사상 직무행위 부분
원심은 그 채택 증거들을 종합하여 그 판시와 같은 사실을 인정한 다음, 중앙정보부가 단순 긴급조치위반행위자에 대하여 수사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긴급조치 제9호를 위반하였다는 범죄 혐의로 원고를 체포·구금하고 수사를 감행한 중앙정보부 소속 공무원의 수사상 직무행위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에서 말하는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보면, 이러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이 규정하고 있는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4. 상고이유 제3점에 관하여
가.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 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그리고 채권자에게 객관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는 사정을 들어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평가하는 것은, 소멸시효의 기산점에 관하여 변함없이 적용되어 왔던 법률상 장애와 사실상 장애의 기초적인 구분 기준을 일반조항인 신의칙을 통하여 아예 무너뜨릴 위험이 있으므로 매우 신중하여야 한다. 또한 국가에게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사유만으로 국가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이 역시 국가가 아닌 일반 채무자의 소멸시효 완성에서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인정될 때만 가능하다 할 것이다 ( 대법원 2011. 7. 28. 선고 2009다92784 판결 , 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나.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이 사건은 1978. 6.경 발생하였고, 원고가 풀려난 1978. 6.경부터 5년이 훨씬 경과한 후인 2011. 4. 22.에서야 이 사건 소가 제기된 사실을 인정한 다음, ① 원고로서는 적어도 긴급조치 제1호가 위헌이라는 대법원 2010. 12. 16. 선고 2010도5986 판결 이 있기 전까지는 과거 긴급조치위반자에게 유죄를 선고하였던 법원에 대통령 또는 중앙정보부의 과거의 행위가 잘못된 것임을 주장하면서 국가를 가해자로 하여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를 제기한다는 것은 일반인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합리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점, ② 긴급조치 위반을 이유로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의 경우에는 나중에 재심을 통하여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도 재심판결의 확정 시부터 진행된다 할 것인데, 이 사건과 같이 아예 유죄의 확정판결이 없어 재심의 여지가 없는 사건에서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받아들여 원고의 청구를 배척하는 것은 사법부의 판단을 통해 피해자에게 적절한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는 통로조차 사실상 봉쇄하여 현저히 부당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점 등의 사정을 고려하여 보면, 적어도 긴급조치 제1호를 위헌으로 판단한 위 대법원판결이 선고된 2010. 12. 16. 무렵까지는 원고가 피고에 대하여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볼 것이고, 따라서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다. 그러나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대통령의 긴급조치 제9호 발령행위가 그 자체로서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에서 말하는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하지는 아니한다. 그리고 중앙정보부 소속 공무원이 수사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원고가 대통령의 긴급조치를 위반하였다는 혐의로 체포·구금한 행위는 불법행위에 해당하는 것이나, 원고가 긴급조치 위반으로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은 것이 아니어서 재심절차를 통하여서만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하지 아니한 점, 원고의 체포·구금상태가 종료된 후 이 사건 소 제기 시까지 30년 이상이 경과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원심이 들고 있는 사유만으로는 원고가 피고에 대하여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여 이를 배척하고 말았으니,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소멸시효 항변의 권리남용 해당 여부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5. 결론
그러므로 원심판결 중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