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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11. 2. 24. 선고 2010도14262 판결
[공용물건손상][미간행]
판시사항

[1] 형사재판에서 자유심증주의의 한계 및 유죄 인정을 위한 심증형성의 정도에서 ‘합리적 의심’의 의미

[2] 피고인이 공용물건손상죄로 기소된 사안에서, 사실심의 증거들에 의하면 피고인이 면사무소에 비치되어 있는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소화기 9대를 가져간 후 분말액과 질소가스를 충전하지도 않은 채 충전대금을 청구하였으나 면사무소 측에서 대금 지급을 거절하자 원래 소화기에 들어 있던 분말액과 질소가스를 빼내었다고 봄이 논리와 경험칙에 부합함에도, 이를 무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에 합리적인 자유심증의 범위와 한계를 넘어섬으로써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한 사례

피 고 인

피고인

상 고 인

검사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방법원 합의부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형사재판에 있어 심증형성은 반드시 직접증거에 의하여 형성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간접증거에 의할 수도 있으며, 간접증거는 이를 개별적·고립적으로 평가하여서는 아니 되고 모든 관점에서 빠짐없이 상호 관련시켜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치밀하고 모순 없는 논증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맡겨져 있으나 그 판단은 논리와 경험칙에 합치하여야 하고, 형사재판에 있어서 유죄로 인정하기 위한 심증형성의 정도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여야 하나, 이는 모든 가능한 의심을 배제할 정도에 이를 것까지 요구하는 것은 아니며, 증명력이 있는 것으로 인정되는 증거를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의심을 일으켜 이를 배척하는 것은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으로 허용되지 않고, 여기에서 말하는 합리적 의심이라 함은 모든 의문, 불신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와 경험칙에 기하여 요증사실과 양립할 수 없는 사실의 개연성에 대한 합리성 있는 의문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황을 사실인정과 관련하여 파악한 이성적 추론에 그 근거를 두어야 하는 것이므로 단순히 관념적인 의심이나 추상적인 가능성에 기초한 의심은 합리적 의심에 포함된다고 할 수 없다 ( 대법원 2004. 6. 25. 선고 2004도2221 판결 , 대법원 2010. 12. 23. 선고 2010도8153 판결 등 참조).

2. 원심은, ‘피고인은 2009. 9. 9. 능서면사무소에 찾아가 무상으로 소화기를 점검해 준다고 하면서 환경미화원 공소외 1로부터 면사무소에 비치된 소화기 9대를 건네받은 다음 그 소화기에 분말액과 질소가스가 들어있고 정상적으로 작동되는데도 마치 이상이 있는 것처럼 한 후 그 소화기를 자신의 차량에 싣고 가 자신이 분말액과 질소가스를 넣은 것처럼 하여 12만 원을 청구하였으나 능서면사무소 측이 이를 거절하자, 앙심을 품고 위 소화기 9대 내부에 들어 있는 분말액과 질소가스를 빼내는 등 작동이 되지 않게 하여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공용물건을 손상하여 그 효용을 해하였다.’는 공소사실에 대하여, 그 판시와 같은 사실을 인정한 다음, 그 인정 사실에 의하면 피고인은 소화기의 점검은 무료로 하되 소화액을 충전할 경우 1㎏당 3,500원을 청구한다는 점을 공소외 1에게 미리 고지하고 이에 따라 소화액을 충전하였으나 공소외 2 등이 충약비용의 지급을 거절하면서 원상태로 돌려줄 것을 요구하자 충전하였던 분말액과 질소가스를 모두 빼고 돌려준 것으로 보이고, 반면 제1심 증인 공소외 2, 1의 각 진술만으로 위 소화기 9대가 분말액과 질소가스가 들어 있어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것이었다는 점 및 피고인 자신이 분말액과 질소가스를 넣은 것처럼 하였다는 점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하여,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하였다.

3. 그러나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수긍하기 어렵다.

우선, 피고인의 주장은 다소 일관되지 못한 점이 있지만, 2009. 9. 9. 능서면사무소에서 수거해 간 소화기 9대 모두가 분말액이 굳는 등 작동이 되지 않아 자신이 굳은 분말덩어리를 제거하고 분말액을 충전하였는데, 충전대금의 지급을 거절하는 능서면사무소 직원의 요구에 의해 충전한 분말액과 질소가스(피고인이 질소가스까지 충전하였다는 입장인지는 기록상 분명하지 않다)를 다시 빼냈다는 것으로, 이는 제대로 작동되던 소화기의 효능을 해친 것이 아니라 소화기가 제대로 작동되게끔 분말덩어리 제거작업을 한 셈이 되어 전체적으로 볼 때 공용물건손상죄에서의 ‘효용 침해’가 없었다는 취지로 요약할 수 있다.

다음으로 사실심의 증거들에 의하면, ① 2009. 9. 8. 기준으로 능서면사무소가 소유 또는 관리하는 소화기는 모두 22대로 그 중 3대는 2001. 12. 31., 12대는 2004. 12. 31., 7대는 2007. 6. 29. 각 취득한 것이며, 능서면사무소 담당공무원은 소화기 22대 중 최근에 구입한 9대를 실제로 사용하기 위해 사무실 곳곳에 비치하였고 나머지는 창고에 보관하여 두었던 점, ② 능서면사무소 측으로부터 소방시설 점검 업무를 도급받은 주식회사 삼성이앤씨는 2009. 2. 10. 게이지 불량 등의 사유로 소화기 1대를 교체하는 등 매달 1회 가량 소화기를 포함한 소방시절 점검을 해오던 중, 위 회사의 담당직원 공소외 3이 2009. 9. 8. 능서면사무소에 비치된 소화기 점검 후 ‘소방시설 월간 통상 점검표’ 하단 점검 결과 지적내역서란에 ‘소화기 충압/충약 상태 점검 - 양호’라고 기재한 점(증거기록 제7쪽), ③ ‘한국소방안전공사’라는 상호를 사용하는 피고인이 2009. 9. 9. 소화기를 점검한다며 능서면사무소를 찾아오자 공소외 1 등은 ‘한국소방안전공사’가 소화기 점검에 관한 공적인 권한 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오인하여 그 당시 능서면사무소 사무실 내에 비치되어 있던 소화기 9대 모두를 피고인에게 건네 준 점, ④ 피고인은 2009. 9. 16. 능서면사무소 담당직원에게 자신이 소화기의 분말액을 충전하였다면서 그 대금을 요구하였으나 담당직원이 이를 거절한 채 원상복구를 요구하자, 소화기를 다시 가져가 소화기 내부의 분말액과 질소가스를 모두 빼낸 후 2009. 9. 25. 택배를 통해 능서면사무소에 소화기 9대를 반환한 점을 알 수 있다.

위와 같은 사정하에서라면, 통상적인 소화기의 수명 내에 있다고 보일 뿐 아니라 전문업체의 점검을 받는 관공서에 비치된 소화기 9대 전부가 하나 같이 분말액이 굳는 등 작동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경험칙상 극히 이례적인 일로 쉽사리 수긍하기 어려워, 이는 피고인의 주장을 근원적으로 흔들 만한 요소가 분명하고, 여기에 피고인이 ‘한국소방안전공사’라는 타인으로 하여금 공적인 기관으로 오인할 만한 상호를 사용하면서 스스로 능서면사무소를 방문한 점 등을 보태어 볼 때, 피고인의 위와 같은 주장은 더욱 신뢰할 수 없다(이 사건과 같이 무작위로 관공서를 방문하여 소화기 점검을 한 결과, 그 소화기 모두가 불량일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반면, 주식회사 삼성이앤씨의 담당직원 공소외 3 작성의 2009. 9. 8.자 소방시설 월간 통상 점검표 하단의 기재를 배척할 만한 사유로는 앞서 본 신뢰할 수 없는 피고인의 주장 외에는 공소외 3의 착오 또는 허위기재, 불성실 점검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는 관념적인 의심이나 추상적인 가능성에 기초한 의심에 불과하여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의심이라 할 수 없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 기재의 증명력을 배척할 것은 아니다.

결국, 2009. 9. 8.자 점검과 2009. 9. 9.자 피고인의 소화기 수거 사이에 소화기 상태의 변동을 초래할 만한 아무런 정황을 찾아볼 수 없는 이 사건에서, 앞서 본 사정에 위 점검표 하단의 기재를 보태어 보면, 피고인은 분말액과 질소가스가 들어 있는 등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소화기 9대를 가져간 후 분말액과 질소가스를 충전하지도 않은 채 능서면사무소 측에 충전대금을 청구하였고, 능서면사무소 측에서 대금 지급을 거절하자 원래 소화기에 들어 있던 분말액과 질소가스를 빼내었다고 봄이 논리와 경험칙에 부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이, 피고인이 수거 무렵 소화기 9대가 분말액과 질소가스가 들어 있어 정상적으로 작동되었다는 점 등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취지로 판단하여 무죄를 선고한 데에는, 합리적인 자유심증의 범위와 한계를 넘어섬으로써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고,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상고이유의 주장은 이유 있다.

4.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차한성(재판장) 박시환(주심) 안대희 신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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