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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사고
광주지방법원 2009. 12. 2. 선고 2009노1622 판결
[업무상과실치사][미간행]
피 고 인

피고인

항 소 인

검사

검사

노로

변 호 인

변호사 이관진

주문

검사의 항소를 기각한다.

이유

1. 항소이유의 요지

검사의 항소이유 요지는, 피고인은 피해자가 일반적인 고관절 환자와는 그 상태가 확연히 다름을 인식하였고, 피해자와 같은 상태의 환자에 대해 무수혈 방식에 의한 수술을 한 경험이 없음에도, 만연히 피해자에 대하여 무수혈 방식에 의한 수술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과실이 있으며(사실오인), 의사에게는 환자의 생명이 위급한 경우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수혈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할 것이므로, 피해자의 승낙에 의한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법리오해)는 것이다.

2.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대학교병원 정형외과 의사로서 인공고관절 치환술 등의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이고, 피해자 공소외 1(여, 62세)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서 우측 고관절 부위에 결핵성 관절염을 앓아 1974.경 골반과 대퇴골의 유합수술을 시술받았던 사람이다.

피고인은 2007. 12. 초순부터 중순경 사이에 광주 (주소 생략)에 있는 ○○대학교병원 정형외과 외래진료실에서 피해자에게 수혈을 하지 않고도 우측 고관절을 인공고관절로 대치하는 수술을 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관하여 진료함에 있어, 피해자는 고령으로서 위 유합수술로 우측 골반과 대퇴골, 근육, 혈관이 심하게 유착되어 있어 다량의 출혈이 예상되므로, 이러한 경우 위 진료업무에 종사하는 자로서는 피해자의 고관절 상태 및 위 수술을 시술할 경우 절개할 근육 또는 혈관의 각 부위 및 크기, 정도, 출혈량, 지혈 방법 및 가능성 등을 면밀히 검토하여 피해자의 생명에 위험을 야기할 정도의 과다출혈이 생기지 않고, 출혈을 쉽게 막을 수 있는지 등을 확인하여 피해자의 생명 또는 신체에 대한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게을리 한 업무상 과실로 만연히 수혈을 하지 않고도 수술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피고인은 2007. 12. 20. 11:00경 ○○대학교병원 수술실에서 피해자에 대하여 우측 고관절 인공고관절 치환 수술을 시술하면서 수술용 톱과 망치, 칼로 피해자의 우측 고관절과 대퇴골 사이를 절단하자 그 부위에 있는 혈관들이 파열되어 많은 양의 출혈이 생겼고, 12:30경 혈관외과 전문의인 공소외 4가 혈관봉합술을 하였음에도 지혈이 되지 않고 계속 출혈이 생기므로 수술을 중단하고, 15:05경 중환자실로 피해자를 옮겼는바, 이때까지 피해자의 출혈량이 약 3,600㎖ 이상이었고, 중환자실로 옮길 당시 피해자의 최고 혈압이 약 70㎜Hg에 불과하였으며, 15:56 피해자의 혈액 응고에 관한 검사 결과 모든 사항에 ‘Nocoagulation(응고 불가)’ 결과가 나왔으므로, 이러한 경우 위 환자의 수술 등 치료에 종사하는 자로서는 위 수술 중 과다출혈 즉시 또는 중환자실로 옮긴 즉시 피해자에게 수혈하여 피해자의 생명 또는 신체에 대한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수혈을 하지 않은 업무상 과실로,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21:35경 위 병원 중환자실에서 다량 실혈로 인한 폐부종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3. 원심의 판단

가. 원심의 사실인정

(1) 수술 전 상황

(가) 망 공소외 1(1945. 12.생, 이하 ‘망인’이라 한다)은 1975년경 우측 고관절 부위에 결핵성 관절염을 앓아 △△△△병원에서 골반과 대퇴골의 유합수술을 받았다. 그 후 골반과 대퇴골의 유착된 부위에서 통증 등이 있자, 우측 고관절을 인공고관절로 치환하는 수술을 받기를 원하였다.

(나) 망인은 ‘여호와 증인’ 신도로서 다른 사람의 혈액을 수혈 받지 않는 방식(이하 ‘무수혈 방식’이라 한다)으로 시술되는 수술을 받고자, 2007. 11.경 인천에 있는 □□병원, 서울에 있는 ◇◇병원, 부산에 있는 ☆☆대학교병원 등에 들러 문의를 하였는데, 위 병원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무수혈 방식에 의한 수술을 거부하였다.

① □□병원 : 고관절 유합술 후 상태에서 인공고관절 치환술을 시행하는 경우 일반적인 인공고관절 전 치환술과는 달리 지혈이 어렵기 때문에 출혈량이 많아서 수혈 처치가 불가피한데 이를 거부할 경우 사망가능성이 높다. 무수혈 수술의 경우 철분과 적혈구 생성 유도제를 수술 전에 투여한 후 이를 통해 수혈 없이 출혈량을 보전하게 되는데, 환자의 나이가 66세로 임상적으로 이러한 무수혈 수술로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여 수혈이 반드시 필요하다(수사기록 340면).

② ◇◇병원 : 우측 고관절 파괴가 심하고, 하지 단축과 연부조직 구축이 있어 통상적인 고관절의 관절치환술보다는 시간이 더 소요되는 어려운 수술이 될 것으로 판단하였다(수사기록 325면).

③ ☆☆대학교병원 : 우측 고관절이 상당히 많이 파괴된 상태로 인공고관절 전 치환술이 필요하나, 개인적인 사유로 수술 중 수혈을 거부하므로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하였다(수사기록 333면).

(다) 망인은 2007. 12. 4.경 ○○대학교병원에 가 위 병원 소속 정형외과 의사이던 피고인에게 무수혈 방식에 의하여 수술을 받을 수 있는지 문의하면서 앞서 문의한 3곳의 병원들로부터는 수술을 거부당한 사실을 이야기하였다. 이에 피고인은 망인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하여 엑스레이 촬영을 하였는바, 대퇴골두와 골반의 유착 정도가 굉장히 심하였고, 결핵으로 뼈가 녹아있는 상태였으며, 엉덩이 부분에 피부반흔 및 근육 유착 정도가 심했기 때문에 수술을 하는 경우 다량의 출혈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라) 피고인은 망인에 대한 수술 여부를 결정하기 위하여 2007. 12. 12. 망인으로 하여금 혈액검사를 비롯하여 수술에 필요한 전반적인 검사를 하게 한 후, 위 병원 혈액종양내과에 무수혈 방식에 의한 수술 가능 여부를 묻자, 혈액종양내과에서는 수술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하였다. 피고인은 이와 같은 검사결과와 답변을 확인한 후 망인에 대하여 무수혈 방식에 의해 수술이 가능하다고 판단하여, 망인으로 하여금 입원하도록 하였다.

(마) 망인은 2007. 12. 17. 위 병원에 입원하여 기본적인 검사를 받았는데, 주1) 혈소판 수치는 271,000㎕(정상수치 150,000~400,000㎕), 헤모글로빈 수치는 12.6g/㎗(정상수치 12.0~16.0g/㎗), 알부민 수치는 4.08g/㎗(정상수치 3.8~5.3g/㎗)이었고, 응고검사도 정상이었으며, 소변검사와 간검사에서도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바) 망인은 2007. 12. 17. 위 병원에, “치료에 있어 전혈수혈이나 성분수혈을 전적으로 금해 주실 것을 본 각서를 통해 알려드립니다. … 담당 의료진은 치료 도중 전혈이나 혈액성분의 수혈이 필요하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그렇더라도 수혈을 원치 않는 다는 본인의 의지는 확고하며, 설사 환자가 무의식이 되더라도 이 방침은 변하지 않습니다. 본인은 여호와 증인 신분으로, 관련된 문제를 심사숙고한 후 본 의료적/종교적 각서를 작성합니다. 본인의 이러한 방침을 따름으로 인하여 야기되는 모든 피해에 대하여 본인은 병(의)원 및 담당 의료진에게 민·형사상의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겠습니다.“ 라고 기재된 책임면제각서를 제출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혈액을 수혈 받는 것(이하 ‘타가수혈’이라 한다)을 거부하겠다는 명확한 의사를 표시하였다.

(사) 위 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전공의 공소외 2는 2007. 12. 19. 정형외과 전공의 공소외 5와 함께 병실로 가서 망인 및 망인의 딸인 공소외 6을 만나, 수술 도중 대량출혈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고 그러한 경우 타가수혈을 하지 않으면 장기손상 및 부전에 의한 사망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설명을 하였다{다만 마취서약서(수사기록 291면)에는 공소외 6이 서명하였다}. 공소외 6은 복도로 공소외 5를 따라 나와 망인이 듣지 못하는 상태에서 망인에게 수혈이 필요하면 타가수혈을 해 달라고 이야기하였다.

(2) 수술의 진행 경과

(가) 공소외 2는 2007. 12. 20. 수술 시작 직전에 다시 망인에게 타가수혈을 거부하는 의사가 유효한지 확인하였는데, 망인은 타가수혈을 강력하게 거부하면서 다만 ‘셀 세이버 주2) (cell saver) ’나 주3) 인공혈장 사용에는 동의하였다.

(나) 피고인은 11:00경 위 병원 수술실에서 수술을 개시하였는데, 먼저 망인의 엉덩이 부분의 피부를 절개하여 근육조직을 박리하고 나서 수술용 톱, 망치, 칼 등을 이용하여 우측 대퇴부와 괴사된 대퇴골부 사이를 절단하였다. 피고인은 망인의 대퇴골부와 주변의 근육조직이 엑스레이 사진으로 볼 때보다 훨씬 더 심하게 유착된 것을 확인하고 혈관이 파열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위와 같이 절단술을 시행하였음에도 대퇴골부 주변에 있던 혈관이 파열되었다. 그 후 고관절 강직이 해소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관절운동을 시키니 절단된 대퇴골부와 그 주변에 있는 파열된 혈관에서 출혈이 있어 12:30경 급히 혈관외과 전문의인 공소외 4를 불러 혈관봉합술을 시행하도록 하였다. 이로 인하여 파열된 혈관에서는 더 이상의 출혈이 없었으나 절단된 대퇴골부와 그 주변조직에서 계속해서 출혈이 발생하였다. 보통 인공고관절 수술을 하는 경우 300~500㏄ 정도 출혈이 있고, 많은 경우 1,000㏄ 정도 출혈이 있는데, 망인의 경우 이를 훨씬 초과하는 대량출혈이 있었는바, 망인으로부터 출혈된 혈액 중 셀 세이버를 이용하여 망인에게 다시 투여한 혈액만도 3,689㏄나 되었다. 이후 망인은 급격한 출혈로 인하여 범발성 응고장애가 발생하여 지혈이 되지 않았다.

(다) 이에 피고인은 정형외과 전문의 공소외 3으로 하여금 수술실 밖으로 나가 망인의 가족들에게 망인의 상태를 설명한 후 타가수혈을 할 것인지 여부를 묻도록 하였는데, 망인의 남편은 ‘여호와 증인’ 신도였으므로 타가수혈을 거부한 반면 망인의 자녀들은 타가수혈을 강력히 원하는 등 가족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렸다.

(라) 피고인은 망인의 출혈이 계속되자 수술을 중단하고, 14:50경 망인을 중환자실로 옮겼다. 그 후 망인의 남편도 타가수혈에 동의하여 망인의 가족들 전부가 타가수혈을 원하였으나, 당시는 망인에게 폐울혈 및 범발성 응고장애가 발생하고 있는 상태라 타가수혈이 증상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어 위 병원 측에서는 망인에게 타가수혈을 시행하지 않았다.

(마) 망인은 21:35경 위 병원 중환자실에서 다량 실혈로 인한 폐부종으로 사망하였다.

(3) 무수혈 방식에 의한 치료의 현황 등

(가) 전 세계적으로 종교적 이유로 수혈을 거부하거나 수혈을 통한 간염이나 AIDS 등의 감염 우려 등을 이유로 수혈을 하지 않고도 안전하게 수술을 할 수 있는 의료기술이 지속적으로 개발되어 온 결과, 현재 무수혈 방식에 의한 수술은 모든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다. 수술 전 혈색소를 정상범위로 높이고, 수술 중 가급적 출혈을 줄이면서 셀 세이버를 이용하여 환자의 혈액을 보존하고, 수술 후 철분과 약물 등을 투여하여 빈혈에 대한 처치를 하면, 무수혈 방식에 의하여 복잡한 수술도 가능하다.

(나) 국내에서도 부천 ▽▽병원을 효시로 ◎◎◎ ◎병원(서울, 부산), ◁◁◁◁의료원(서울, 부천, 천안, 구미), ▷▷대병원(천안), ☆☆대병원(부산), ♤♤대병원(대구), ◈◈대병원(대전), ◐◐대병원(대전) 등을 비롯한 많은 병원들이 ‘무수혈 센터’와 무수혈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무수혈 치료를 하고 있다.

(다) ○○대학교병원도 2001년경부터 무수혈 센터를 운영하면서 무수혈 방식에 의한 수술을 시행하고 있다. 피고인은 인공고관절 수술을 월 평균 10회 정도 하고 있으나, 무수혈 방식에 의한 인공 고관절 수술 경험은 많지 않았다.

나. 무수혈 방식에 의하여 수술할 수 있다고 잘못 판단한 과실이 있는지 여부

위 사실관계에서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병원, ◇◇병원, ☆☆대학교병원이 망인에 대하여 무수혈 방식에 의한 인공고관절 치환술은 위험하다고 하여 그 수술을 거부한 점, 망인의 대퇴골과 그 주변조직의 유착 정도, 대퇴골 절단술 이후 대량출혈이 발생하였고 그로 인하여 범발성 응고장애에 이르기까지의 수술 경과, 피고인이 무수혈 방식에 의한 인공고관절 치환술 경험이 별로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망인은 과거의 유합수술로 우측 골반과 대퇴골 주위의 근육, 혈관 등이 심하게 유착되어 있는 상태였으므로 인공고관절 치환술을 하는 경우 다량의 출혈이 예상되었고, 따라서 망인의 고관절 상태 및 수술을 시술할 경우 예상되는 출혈량, 지혈 가능성 및 방법 등을 면밀히 검토하여 무수혈 방식에 의한 수술이 가능한지 여부에 관하여 판단했어야 함에도 피고인이 자신의 일반적인 인공고관절 수술 경험만을 믿고 위와 같은 검토를 게을리 한 채 만연히 망인에 대하여 무수혈 방식에 의한 수술이 가능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는 한다.

그러나 ① □□병원, ◇◇병원, ☆☆대학교병원에서 망인에 대하여 무수혈 방식에 의한 수술이 어렵다고 판단하였다는 사정만으로 그러한 수술이 망인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불가능하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점, ② ◎◎◎학교 ◎◎◎병원장의 사실조회회신서에는 망인이 고령이고 우측 고관절 파괴가 심하고 주위 조직과의 유착이 심한 상태라고 하더라도 무수혈 방식에 의한 수술이 가능하고, 위 병원에서도 그러한 환자를 여러 번 수술하여 성공한 적이 있다고 되어 있는 점, ③ 망인의 고관절 주위의 근육이나 혈관의 유착 정도는 어느 정도는 예상이 되었으나 실제로 수술에 들어가기 전에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④ 피고인이 망인의 상태에 비추어 수술하는 경우 대량출혈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그에 대비하여 셀 세이버를 비롯하여 지혈제, 항응고제 등을 준비한 점 등의 사정을 종합하면,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피고인이 망인에 대하여 무수혈 방식에 의하여 수술하는 것이 가능하였다고 판단한 것에 과실이 있다는 점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다. 피고인이 수혈을 하지 않은 행위가 피해자의 승낙에 의한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되는지 여부

(1) 법리

(가) 우리 헌법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최고의 이념으로 하고 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자기의 문제에 대하여 자신의 고유한 가치관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을 때만이 실현될 수 있다. 따라서 자기결정권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의 실현을 위한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으로서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사람들마다 신념, 가치관, 종교, 행복의 기준 등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자신의 고유한 신념, 가치관, 종교, 행복의 기준 등에 바탕을 둔 자기결정권의 행사는 그것이 비록 다수의 입장이나 객관적으로 보아 합리적이지 않다고 여겨진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이유만으로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합리적이냐 합리적이지 않느냐의 문제는 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서 시대와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지 합리성의 기준 역시 바뀔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결정권에 있어서는 합리적인지 여부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문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구도 자기의 문제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야 할 법적 의무는 없으며, 반대로 누구도 타인의 문제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합리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타인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자기결정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생명과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이라고 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생명과 신체의 기능을 어떻게 유지하고 발달시킬 것인지에 대하여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의학적인 견지에서 생명과 신체의 보호를 위해 치료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이유만으로 국가나 의사가 환자에 대하여 치료를 강제할 수는 없으며, 의료계약이 체결된 후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환자는 자유로이 의료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환자와 의사 사이에 의료계약이 체결된 경우 질병의 진행과 환자 상태의 변화에 대응하여 이루어지는 가변적인 의료의 성질로 인하여 계약 당시에는 진료의 내용 및 범위가 개괄적이고 추상적이지만, 이후 질병의 확인, 환자의 상태와 자연적 변화, 진료행위에 의한 생체반응 등에 따라 제공되는 진료의 내용이 구체화되므로, 의사는 환자의 건강상태 등과 당시의 의료수준 그리고 자기의 지식경험에 따라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진료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상당한 범위의 재량을 가진다. 그렇지만 환자의 수술과 같이 신체를 침해하는 진료행위를 하는 경우에는 질병의 증상, 치료방법의 내용 및 필요성, 발생이 예상되는 위험 등에 관하여 당시의 의료수준에 비추어 상당하다고 생각되는 사항을 설명하여 당해 환자가 그 필요성이나 위험성을 충분히 비교해 보고 그 진료행위를 받을 것인지의 여부를 선택하도록 함으로써 그 진료행위에 대한 동의를 받아야 한다( 대법원 2009. 5. 21. 선고 2009다17471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이 때 환자가 자신의 상태와 진료방법, 예상되는 위험 등에 관하여 의사로부터 충분한 설명을 들은 상태에서 진지하게 고려하여 선택 가능한 여러 치료방법 중 하나의 치료방법을 선택한 경우, 설령 환자가 선택한 치료방법이 의사나 일반인의 입장에서 보아 최선의 치료방법이라고 생각되지 않거나 비합리적인 것으로 보이더라도 의사는 환자의 결정에 따라야 하고, 환자의 이익에 부합된다는 이유로 환자가 선택하지 않은 다른 치료방법에 의하여 진료를 해서는 안 된다. 환자에게 의료행위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있는 이상 의사의 진료에 있어서의 재량권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인정되기 때문이다.

(나) 자기결정권도 구체적인 권리의 하나이므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고 헌법질서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에서만 보호받을 수 있는 내재적 한계가 있다. 생명에 대한 권리는 비록 헌법에 명문의 규정이 없다 하더라도 인간의 생존본능과 존재목적에 바탕을 둔 선험적이고 자연법적인 권리로서 헌법에 규정된 모든 기본권의 전제로서 기능하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헌법재판소 1996. 11. 28. 선고 95헌바1 결정 참조). 생명권의 주체라고 하더라도 자살의 경우와 같이 자기 생명을 자유롭게 처분하는 것은 헌법상 자기결정권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으로서 사회상규에 반하므로 허용될 수 없다. 따라서 환자가 자살을 의도하기 위하여 특정한 치료방법을 선택한 경우에는 인간 생명의 보호와 존중이라는 우리 헌법질서에 반하는 것으로서 자기결정권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 되므로 의사가 그러한 환자의 뜻에 따라서는 안 된다.

그러나 환자가 자신의 생명이나 신체의 치료를 위해 특정한 치료방법을 선택한 경우라면, 그 치료방법이 선택 가능한 다른 치료방법에 비하여 환자의 생명에 대한 위험성을 증대시킨다고 하더라도, 이는 환자가 자살을 의도하기 위하여 특정한 치료방법을 선택한 경우와 동등하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후자가 죽음을 목표로 하면서 그에 이르기 위한 수단으로서 특정한 치료방법을 선택한 것임에 반해, 전자는 생명과 신체의 건강한 회복을 목표로 하되 그 수단으로 자신의 신념이나 종교의 가르침에 반하지 않는 치료방법을 선택하면서 그에 따른 치료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생명에의 위험까지 감수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환자가 선택한 치료방법이 선택 가능한 다른 치료방법에 비하여 환자의 생명에 대한 위험성을 증대시킨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직접적으로 죽음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없는 한, 그러한 결정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의 보장’이라는 우리 헌법의 최고의 이념에 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의사나 일반인의 입장에 보아 생명의 유지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행사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환자 자신의 고유한 신념이나 가치관에 의한 것이라면 그러한 결정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라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환자가 위와 같은 치료방법을 선택한 것이 환자의 진정한 자기결정권의 행사로 볼 수 있으려면, 의사결정능력이 있는 환자가 의사로부터 직접 충분한 의학적 정보를 제공받은 후 그 의학적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의 고유한 가치관에 따라 진지하게 구체적인 진료행위에 관한 의사결정을 하여야 한다.

(다) 환자가 종교적 신념이나 가치관에 따라 자기의 혈액에 의한 수혈(자가수혈)만 허용하고 다른 사람의 혈액에 의한 수혈(타가수혈)을 허용하지 않는 치료방식, 즉 무수혈 치료를 선택하였다면, 설령 그러한 선택으로 생명에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환자의 결정이 헌법상 허용되는 자기결정권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볼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의 신체조직의 일부인 혈액을 자신의 몸에 받아들일 것인지 여부는 기본적으로 환자가 자신의 가치관이나 종교관 등에 따라 결정할 문제일 뿐만 아니라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타인의 혈액을 수혈하지 않기로 하는 결정이 의사나 일반인의 입장에서 보아 합리적이지 않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존엄성의 실현이라는 우리 헌법의 최고 가치에 반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의사결정능력이 있는 환자가 의사로부터 직접 수술 도중에 대량출혈이 발생할 수 있고 그와 같은 경우 타가수혈을 하지 않으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는 등의 내용에 관하여 충분한 의학적 정보를 제공받은 후 그 의학적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의 고유한 종교적 신념 등에 따라 진지하게 판단하여 타가수혈을 거부하고 자가수혈만을 받기로 결정하였다면, 그와 같은 환자의 결정은 존중되어야 하므로 의사는 이에 따라야 한다. 따라서 위와 같은 경우에 수술 도중 대량출혈이 발생하자 의사가 환자의 뜻에 따라 타가수혈을 제외한 다른 모든 가능한 치료방법을 시도하였으나 결국 환자가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의사의 타가수혈을 하지 않은 행위는 형법 제24조 소정의 피해자의 승낙에 의한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

(2)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공소사실과 같이 피고인이 타가수혈을 하지 않은 과실이 있고 그와 같은 피고인의 과실과 망인의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앞서 본 사실관계에 의하면 망인은 수술 직전에 의사들로부터 직접 무수혈 방식에 의하여 수술하는 경우 대량출혈로 인하여 사망할 수도 있다는 점을 비롯하여 수술의 위험성 등에 관하여 충분한 의학적 정보를 제공받은 후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진지하게 판단하여 타가수혈을 거부하고 자가수혈만을 받기로 결정하였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인이 그와 같은 망인의 결정을 존중하여 타가수혈을 하지 않은 행위는 형법 제24조 소정의 피해자의 승낙에 의한 행위에 해당하여 범죄로 되지 않는다.

4. 당심의 판단

가. 사실인정

(1) 살피건대, 원심은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을 종합하여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은 사실들을 인정하였는바, 이 사건 기록을 자세히 검토해 보면, 원심의 사실인정은 타당하고, 다만 사실인정 중 (2) 수술의 진행 경과의 내용의 (라)항 이하 부분을 다음과 같이 변경, 추가하기로 한다.

(2) 수술의 진행 경과

(라) 공소외 3은 위와 같은 말을 듣고 다시 수술실로 들어가 피고인에게, 보호자가 여러 명 있는데 그 중 몇 명은 수혈을 해달라고 하고 몇 명은 수혈을 해서는 안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전했는데, 공소외 3이 이 사건 수술 이전에는 피해자의 가족을 만난 적이 없었기에 구체적으로 누가 수혈을 요구하고 누가 수혈을 거부하는지에 대해서는 전달하지 못하였다.

(마) 피고인은 가족들의 의사가 명확하지 아니하였기에(특히 피고인은 피해자의 남편은 여전히 반대의사를 가지고 있다고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에게 타가수혈을 할 것인지에 대한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다시 의료진을 통해 피해자가 믿고 있던 ‘여호와의 증인’ 교섭위원회에 이 사건과 관련된 자문을 급하게 요청하였으나, 이와 관련하여 별다른 답신을 받지는 못하였다.

(바) 그러는 중에도 피해자의 출혈은 계속되었고, 피고인은 수술을 중단하고 14:50경 피해자를 중환자실로 옮겼다. 그 후 피해자의 남편도 타가수혈에 동의하여 망인의 가족들 전부가 타가수혈을 원하였고, 이와 관련된 각서까지 작성하여 ○○대학교병원에 제출하였으나, 당시는 피해자에게 폐울혈 및 범발성 응고장애가 발생하고 있는 상태라 타가수혈이 증상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어 위 병원 측에서는 피해자에게 타가수혈을 시행하지 않았다.

(사) 피해자는 21:35경 위 병원 중환자실에서 다량 실혈로 인한 폐부종으로 사망하였다.

나. 무수혈 방식에 의하여 수술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에 과실이 있는지 여부

형사재판에서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다( 대법원 2003. 2. 11. 선고 2002도6110 판결 등 참조).

살피건대, 원심이 적절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이 사건 수술에 상당한 출혈이 예상되었던 점, 피해자를 진료하였던 다른 3개의 병원에서는 피해자가 무수혈 방식의 수술을 요구하자 그 위험성 등을 이유로 수술을 거부하였던 점, 실제 수술과정에서도 다량의 출혈이 발생하였고, 이로 인하여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게 된 점, 피고인에게 무수혈 방식에 의한 인공고관절 치환술 경험이 많지 않았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만연히 자신의 능력과 경험만을 과신하여 오판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는 한다.

그러나 한편, 원심이 언급하고 있는 사정들에 덧붙여 이 사건 기록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① 피고인은 통상적인 방법에 의한 인공고관절 치환술을 매달 10회 이상 시술하였으며, 각종 무수혈 방식에 의한 수술 경험도 풍부한 점, ② 무수혈 방식에 의한 인공고관절 치환술은 타가수혈을 하지 않는다는 것만을 제외하고는 통상적인 수혈을 통한 인공고관절 수술법과 어떠한 차이도 없고, 국내에서도 무수혈 방식에 의한 인공고관절 치환술이 여러차례 성공한 사례가 있는 점, ③ 인공고관절 수술의 경우 수술 중 출혈의 양은 각 환자에 따라 큰 차이가 있으며, 그 차이를 수술 전에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정밀한 검사방법이 없어 그 예측이 사실상 매우 어렵고, 그렇다고 의사들이 최악의 상황만을 고려하여 수술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보기 어려운 점, ④ 피고인은 수술에 들어가기 전 수술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피해자에 대한 각종 검사를 하였고, 그 검사결과를 가지고 피고인이 근무하는 대학병원의 내과, 마취통증의학과 등 타과의 의료진들과 협진을 통하여 이 사건 수술이 가능하다고 판단을 하였던 점, ⑤ 피고인이 수술에 들어가기 전 수술 중 발생할 수 있는 출혈에 대비하여 가능한 모든 의료기구 등을 준비를 해두었으며, 수술 중 혈관의 손상에 대비하여 혈관외과 전문의인 공소외 4도 대기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⑥ 대학병원 의사인 피고인이 사적인 이익, 즉 경제적인 목적이나 명성을 얻기 위해 이 사건 수술을 결정하였다고 볼 어떠한 정황도 엿보이지 아니하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앞서 살펴본 사정 및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피고인이 망인에 대하여 무수혈 방식에 의하여 수술하는 것이 가능하였다고 판단한 것에 과실이 있다는 점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따라서 이에 관한 검사의 주장은 이유 없다.

다. 피고인이 수혈을 하지 않은 행위가 피해자의 승낙에 의한 행위 혹은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되는지 여부

(1) 원심은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헌법의 최고 원리인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 추구권에서 파생되는 자기결정권, 특히 생명과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에 대하여 자세히 판시하였는바, 그 주요한 법리는 원심 판시 내용을 원용하기로 하되 아래의 내용을 덧붙이기로 한다.

(2)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의사의 진료의무(국가의 생명권 보호의무)와의 관계

환자의 의료행위에 대한 자기결정권 또한 여타 기본권과 동일하게 헌법질서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에서만 보호받을 수 있는 내재적 한계가 존재하기는 하나, 자기결정권이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최고의 권리 중 하나이므로, 자기결정권의 행사로 인하여 타인의 권리를 명백히 침해하거나, 자신의 생명을 처분하는 것이 아닌 이상, 자기결정권 행사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며, 그에 대한 제한은 매우 엄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환자의 자기결정권 행사가 의사의 일반적인 의무, 즉 국가의 생명권 보호의무에 기초를 두고 있는 환자의 생명을 구할 의무 등과 직접 충돌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환자의 자기결정권 행사를 의사의 의무보다 우위에 두어야 할 것이고, 이러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종교의 자유에 의한 신앙에도 기초하고 있다면 이는 더욱 더 높은 수준으로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환자의 치료행위 선택은 그 치료방법의 최적절성 여부를 떠나 그 자체로 환자 자신의 생명 및 행복을 위한 환자의 권리이기에 환자가 보다 객관적으로 안전한 치료방법을 선택하지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이를 생명권을 경시하는 행위나 잘못된 판단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만일 환자의 자기결정권보다 의사의 일반적인 의무를 우위에 두게 된다면, 이는 결과적으로 국가가 후견적인 관점에서 개인을 객체화하여 개인의 자기결정권이나 나아가 헌법상의 인격권이나 행복추구권 등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3) 자기결정권 행사의 효력과 형법상 유효한 승낙의 요건

환자가 자기결정권에 기하여 선택한 치료방법에 대한 결정은 엄격하게 보호되어야 하고, 매우 일신전속적인 것이므로, 환자 자신이 아닌 의료진이나 환자의 가족은 환자가 결정한 치료방법보다 적절하고 안전한 치료방법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치료의 시술 전 혹은 시술 도중 치료방법을 환자의 동의 없이 임의로 변경할 수 없다 할 것이고, 이러한 원칙은 환자의 시술 도중 환자의 사망위험성이 증대되는 사정이 발생하였다 하더라도 변경될 수 없을 것이다.

의사의 수술행위는 환자의 신체에 대한 상해행위를 동반하게 되고, 만일 그 수술행위가 실패하여 원하지 않는 중대한 결과가 발생한다면, 의사에게 상해죄나 과실치사죄 등의 성립이 문제될 수 있을 것인데, 다만 위와 같은 수술행위가 환자의 동의에 기초하고 있고, 이러한 환자의 동의가 헌법상 인정되는 자기결정권의 발현형태임을 인정한다면, 결국 환자의 승낙이 있는 경우 의사의 수술행위(넓게 치료행위)는 형법 제24조 에 따라 그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모든 형태의 승낙이 의사의 치료행위를 정당화시켜주는 것이 아니고, 환자의 의사결정능력의 존재, 의사의 적절한 설명의무 이행(당해 환자나 그 법정대리인에게 질병의 증상, 치료방법의 내용 및 필요성, 발생이 예상되는 위험 등에 관하여 당시의 의료수준에 비추어 상당하다고 생각되는 사항을 설명하여 당해 환자가 그 필요성이나 위험성을 충분히 비교해 보고 그 의료행위를 받을 것인가의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할 의무 : 대법원 1995. 1. 20. 선고 94다3421 판결 참조), 환자의 자발적이고 진지한 의사에 기한 결정이라는 요건을 갖추었을 때에만 형법 제24조 에 정한 유효한 승낙이 된다.

(4)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한 경우

한편, 위에서 본 원칙은 환자가 치료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 및 그에 따른 위험을 모두 고려하여 치료방법을 결정한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므로, 환자나 의료진이 충분한 고려를 하였으나 미처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한 경우에는 위와 같은 원칙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곤란할 것이다. 즉, 치료를 위한 수술은 단순한 상해를 가하는 행위와 달리 복잡하고 계속적인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그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바, 이러한 경우에는 의료진은 환자가 의식이 있는 경우라면 그 의사를 다시 확인하는 방법으로, 환자에게 의식이 없는 경우라면 환자의 추정적인 의사를 객관적으로 파악하여 그에 따른 치료방법을 결정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환자가 의식이 없는 급박한 상황에서 의료진에게 여러 객관적인 상황을 고려해서 환자의 추정적인 의사(환자가 그러한 치료방법을 선택해서 얻고자 하는 결과와 그 과정에서도 지키고자 했던 종교적 신념 등을 고려하여, 환자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지)를 파악한 다음 그에 따라 치료방법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인다.

따라서 의사로서는 시간적, 장소적, 방법적으로 즉시 확인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환자 가족들이나 친구, 친척 등의 의사를 확인하여 이를 고려하거나(가족주의적 전통과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이러한 가족 등의 의사를 전혀 무시할 수는 없다), 환자가 사전에 의사를 표시한 문서 등이 있으면 그 취지를 고려하여 환자가 최초 의도했던 치료행위의 목적 달성을 위한 치료방법 중에서 가능한 한 환자가 선택한 의료방법에 가까운 수단을 선택하여 치료하거나, 환자의 뜻에 따라 특정의 치료방법을 배제하는 등의 방법으로 수술이나 치료방법이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위와 같은 과정에 따라 의료진의 치료행위가 결정되거나 부작위가 이루어졌다면, 그 결과 의학적으로 환자의 치료는 달성되었으나 그 치료방법이 환자의 종교적인 신념 등에 반하는 결과가 발생하거나 혹은 이와는 반대로 의료진이 치료는 시도하였으나 심각한 후유증이 발생하거나 환자가 사망하는 결과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이러한 의료진의 치료행위는 형법 제20조 소정의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 할 것이다.

(5) 형법 제24조 해당 여부(피해자의 승낙)

이러한 법리들을 전제로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이 사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피고인이 타가수혈을 하지 않은 행위가 과실로 평가될 수 있고, 그로 인하여 피해자가 사망하였다 하더라도, 위에서 살펴본 인정사실들 및 이 사건 기록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① 피해자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서 타인의 피를 받는 행위를 종교적인 신념에 따라 명백하게 거부하고 있었던 점, ② 피해자는 오래전 받은 골반과 대퇴골의 유합 수술로 인한 후유증으로 상당한 통증을 느끼고 있었으며 일상생활에도 상당한 지장을 겪고 있었기에 인공고관절 치환술을 받기를 원하고 있었던 점, ③ ○○대학교병원에서 수술을 받기 전 다른 3개의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그 과정에서도 수술 도중 상당한 출혈이 발생할 수 있어 무수혈 수술은 위험하다는 사실을 고지받았던 점, ④ 그러던 중 ○○대학교 병원에서 무수혈수술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위 병원에 찾아갔는데, 피고인으로부터 진료를 받는 과정 및 수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수술도중 출혈 발생 가능성 및 그로 인한 위험성 등에 대해 충분한 설명과 고지를 받았던 점, ⑤ 피해자의 딸은 피해자가 무수혈 수술을 받은 것을 반대하여 피해자를 설득하기도 하였던 것으로 보이나, 피해자는 결국 자신의 종교적인 신념에 따라 무수혈 수술을 결정하였던 점(피해자의 딸이 수술전 의료진에게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타가수혈을 해달라고 요청하였더라도 이미 피해자의 의사가 명확하였고, 자기결정권의 취지와 그 일신전속적인 성격을 고려할 때 피해자의 의사가 번복된다고 보기 어렵다), ⑥ 이 사건 수술과정에서 심각한 출혈이 발생한 것을 제외하고는 피고인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였다거나 피해자가 미리 고려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⑦ 어떤 의미에서는 심각한 출혈 자체와 그로 인한 사망의 결과도 피해자가 이 사건 수술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으로 가정하고 있었고, 이를 종교적인 이유에서 전부 감내할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피해자의 치료방법 선택에 따라 수술과정에서 자가수혈만을 시행하고 타가수혈을 하지 않은 행위는 형법 제24조 소정의 피해자의 승낙에 의한 행위에 해당하여 범죄로 되지 않는다 할 것이므로, 이 부분에 대한 검사의 주장도 이유 없다.

(6) 형법 제20조 해당 여부(정당행위)

나아가 가사 위와 같은 대량, 급격한 출혈 및 그로 인한 응고장애가 위 승낙의 전제사실이 아니어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한 것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그 상황 발생 당시 피해자는 의식이 없었고, 이에 피고인은 기본적으로 원래의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승낙의 철회(타가수혈을 배제한 수술의사의 철회)에 대한 유족들의 의사를 물어보기로 한 점, 피고인을 비롯한 의료진이 피해자의 진정한 추정적 의사를 알아내기 위해 수술실 밖에 있는 유족들의 의사를 확인하였으나 유족들로부터 통일된 의사를 얻어내지 못한 점, 그리하여 여호와의 증인 교섭위원회에까지 자문을 구하였으나 답신을 받지 못한 점, 이후 유족들이 타가수혈을 해달라는 통일된 의사를 가져왔을 때는 이미 수혈이 의미가 없는 시점이었던 점 등을 종합해보면, 결국 피고인이 위와 같이 타가수혈을 하지 않은 행위는 형법 제20조 에 의하여 위법성이 없다고 할 수 있다.

5. 결론

그렇다면, 검사의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4항 에 의하여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이준상(재판장) 김민철 박기주

주1) 혈액을 응고시켜 지혈이 이루어지는 데 관여한다.

주2) 실혈된 환자의 혈액을 회수하는 혈액회수장치

주3) 대량출혈이 있을 때나 저혈량성 쇼크가 일어났을 때 혈액대용제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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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급 사건
-광주지방법원 2009.6.26.선고 2008고단2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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