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2015도2844 사기
피고인
A
상고인
피고인
변호인
변호사 AA(국선)
원심판결
서울북부지방법원 2015. 1. 30. 선고 2014노1335 판결
판결선고
2015. 6. 11.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방법원 합의부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는,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돈을 빌리더라도 제때 이를 변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음에도, 2008. 8. 8.경 피해자 G에게 "서울 강남구 H 소재 부동산 등 개발사업을 하고 있는데, 운영자금 1억 원을 빌려주면 매월 이자로 180만 원을 주고 원금은 3개월 뒤에 갚아주겠다."라고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부터 같은 날 1억 원을 송금 받아 편취하였다는 것이다.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변제능력 없는 피고인이 3개월 후에 변제할 것을 약속하며 1억 원(이하 '이 사건 차용금'이라 한다)을 빌린 사정만으로도 피해자를 기망한 사실이 인정되고, 이 사건 차용 당시 피고인에게 변제능력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이유로,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2. 차용금의 편취에 의한 사기죄의 성립 여부는 차용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므로, 피고인이 차용 당시에 변제할 의사와 능력이 있었다면 그 이후에 경제사정의 변화로 차용금을 변제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단순한 민사상의 채무불이행에 불과할 뿐 형사상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할 수 없다. 한편, 사기죄의 주관적 구성요.건인 편취의 범의는 피고인이 자백하지 아니하는 한, 범행 전후의 피고인의 재력, 환경, 범행의 내용, 거래의 이행과정, 피해자와의 관계 등과 같은 객관적인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할 수밖에 없다(대법원 2008. 6. 12. 선고 2008도2893 판결 참조).
3. 위 법리에 따라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을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1) 원심은 이 사건 차용 당시 피고인에게 변제능력이 없었다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기록에 의하면, 이 사건 차용 무렵 피고인은 그 처인 L과 공동으로 부천시 원미구 M건물 제에이동 1106호를 소유하고 있었고, 피고인이 대표이사로서 실질적으로 운영하던 주식회사 D(이하 '피고인 회사'라 한다)는 직원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등 자금 사정이 어려웠으나 그 체불 임금의 규모가 크지 않았고 그 밖의 다른 채무는 없었으며, 반면 서울 서대문구 W건물 신축 및 분양 사업, 거제시 X에 있는 Y 호텔 건립 사업, 부산 동구 2 빌딩의 마무리 공사 및 매각 내지 임대 사업, 서울 강남구 H 부동산 매매 중개 사업을 진행하면서 대규모 투자유치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던 사실이 인정된다. 한편 피고인이 그 처나 공동 소유의 재산을 활용하여 자금을 융통하는 것이 불가능하였다거나, 이 사건 차용 당시 피고인 회사가 진행한 사업의 성공가능성 및 투자유치가능성이 없었다고 볼 만한 증거는 제출되어 있지 않다.
위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여 살펴보면, 피고인은 이 사건 차용 당시 이 사건 차용금을 변제할 능력이 있었다고 볼 여지가 있고, 나중에 피고인 회사가 추진한 사업이 무산되어 위 차용금을 변제할 수 없게 되었더라도 이 사건 차용 당시 피고인에게 이 사건 차용금을 변제할 능력이 없었다고 추단할 수 없다. 따라서 피고인에게 이 사건 차용금을 변제할 능력이 없었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2) 원심은 변제능력이 없는 피고인이 3개월 후에 변제할 것을 약속하며 1억 원을 빌린 사정만으로도 피해자를 기망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피고인에게 변제능력이 없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은 앞서 인정한 바와 같고, 피고인 회사와 피해자 사이에 이 사건 차용금에 관하여 작성된 금전소비대차계약서에 의하면, 대여기간은 차용일로부터 3개월까지로 하되 당사자들의 합의에 따라 연장할 수 있는 것으로 기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이 이 사건 차용 이후인 2008. 9.부터 2009. 8.까지 12회에 걸쳐 월 180만 원의 약정 이자를 비교적 꾸준히 지급하여 왔고, 피해자가 위 차용금의 변제기로부터 상당 기간이 지날 때까지 원금의 변제를 독촉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므로, 이 사건 차용 당시 3개월이라는 변제기 한은 당사자 사이에 중요한 고려 사항으로 취급되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나아가 피고인이 이 사건 차용 당시 피해자에게 피고인 회사가 추진하는 사업 내용, 진행 정도나 상환 능력에 관하여 허위 사실을 알렸다거나 이 사건 차용금을 빌린 용도가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하였다고 인정할 증거도 없으므로, 피고인이 3개월의 변제기한 내에 차용금을 변제하지 못한 사정만으로는 피고인이 이 사건 차용금을 3개월 내에 변제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피해자를 기망하였다고 보기도 어렵다.
(3) 또한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은 1990년대 중반 무렵 종친모임에서 피해자를 알게 되었고 이 사건 차용 이전부터 피해자가 대표이사인 ㈜T의 고문 역할을 하면서 피해자가 운영한 ㈜T나 ㈜F의 경영 자문과 민원 해결, 대출 주선 등의 업무를 도와 처리해 주었고, 피고인 회사가 2008. 4. 10, ㈜T와 사이에 자금차입과 투자유치에 관한 자문계약을 체결하기도 한 사실이 인정된다. 이러한 인정사실에 피해자의 남편은 수사나 공판 과정에서 피고인이 부동산 개발 사업을 하는데 자금이 모자라므로 빌려달라고 요청하여 며칠간을 고민하다가 빌려주게 되었다거나, 피고인과의 관계 때문에 피고인이 자금 사정이 부족한 것 같아 빌려주었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던 점을 보태어 감안하면, 피해자가 피고인이나 피고인 회사의 재산 상태나 변제 능력에 착오를 일으켜 이 사건 차용금을 대여한 것인지도 의문이 간다.
(4) 결국 위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면, 원심이 든 사정이나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이 사건 차용 당시 그 차용금을 변제할 의사와 능력이 없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 사건 차용금을 편취하였다는 이 사건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된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하였으니,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사기죄에서 편취 범의나 기망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합리적인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4.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재판장대법관이상훈
대법관김창석
주심대법관조희대
대법관박상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