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1] 일제강점기에 일본 정부에 의하여 강제징용되어 일본국 내 기업에서 강제노동에 종사한 대한민국 국민이 그 기업을 상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등을 한 사안에서, 대한민국 법원의 국제재판관할권을 인정한 사례
[2] 외국 법원의 확정판결이 민사소송법 제217조 각 호 의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경우, 그와 동일한 소송을 우리나라 법원에 다시 제기하는 것이 외국 법원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되는지 여부(적극)
[3] 일제강점기에 일본 정부에 의하여 강제징용되어 일본국 내 기업에서 강제노동에 종사한 대한민국 국민이 그 기업을 상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및 임금 등 청구를 한 사안에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에 관하여는 대한민국법 또는 일본법이 준거법이 되고, 임금 청구에 관하여는 일본법이 준거법이 된다고 본 사례
[4] 민사소송법 제217조 제3호 에 정한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 위반의 의미
[5] 일제강점기에 일본 정부에 의하여 강제징용되어 일본국 내 기업에서 강제노동에 종사한 대한민국 국민이 그 기업을 상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등을 한 사안에서, 이와 동일한 청구원인으로 일본국에서 제기한 소송의 패소확정판결을 승인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난다고 할 수 없다고 본 사례
[6] 일제강점기에 일본 정부에 의하여 강제징용되어 일본국 내 기업에서 강제노동에 종사한 대한민국 국민이 그 기업을 상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및 임금 등 청구를 한 사안에서, 위 손해배상채권 등이 시효로 소멸하였다고 본 사례
판결요지
[1] 일제강점기에 일본 정부에 의하여 강제징용되어 일본국 내 기업에서 강제노동에 종사한 대한민국 국민이 그 기업을 상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및 임금 등 청구를 한 사안에서, 그 기업이 일본법에 의하여 설립된 일본 법인으로서 그 주된 사무소를 일본국 내에 두고 있으나 대한민국 내 업무 진행을 위하여 설치한 연락사무소가 소 제기시에 대한민국 내에 존재하고 있었으며, 위 청구 중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는 구 섭외사법(2001. 4. 7. 법률 제6465호 국제사법으로 전문 개정되기 전의 것) 제13조 제1항 에 따라 불법행위지 중 일부인 대한민국의 법률이 준거법이 될 수 있어 대한민국과 실질적 관련성도 있으므로, 대한민국 법원이 재판관할권을 행사하는 것이 당사자 간의 공평이나 재판의 적정, 신속을 해쳐 조리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고 한 사례.
[2] 외국 법원의 확정판결은 민사소송법 제217조 각 호 의 요건을 모두 충족하면 대한민국에서 그 효력이 인정되고, 외국 법원의 확정판결이 위 승인요건을 구비하고 있는 경우에는 이와 동일한 소송을 우리나라 법원에 다시 제기하는 것은 외국 법원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된다.
[3] 일제강점기에 일본 정부에 의하여 강제징용되어 일본국 내 기업에서 강제노동에 종사한 대한민국 국민이 그 기업을 상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및 임금 등 청구를 한 사안에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에 관하여는 그 기업의 강제연행 및 강제노동 등의 불법행위가 대한민국으로부터 일본국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계속된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므로 실제 행위지로서 대한민국법뿐만 아니라 일본법도 준거법이 되고, 임금 청구에 관하여는 근로계약에 관한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볼 때 당사자 사이에 근로계약을 체결함에 있어 일본법을 준거법으로 정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한 사례.
[4] 민사소송법 제217조 제3호 에 정한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란 외국 법원이 대한민국의 법령과는 다른 외국 법령을 적용하여 내린 판결을 승인한 결과가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반하는 경우로서, 외국 판결의 내용 자체만이 아니라 외국 판결이 우리 민사소송법의 기본원리에 반하는 등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반하는 방법에 의하여 성립된 경우까지 포함한다. 구체적으로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는 경우’란 동일 당사자 간의 동일 사건에 관하여 대한민국에서 판결이 확정된 후에 다시 외국에서 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됨으로써 대한민국 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되는 경우, 재심사유에 관한 민사소송법 제451조 제1항 제6호 , 제7호 , 제2항 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피고가 판결국 법정에서 사기적인 사유가 있었음을 주장할 수 없었고 처벌받을 사기적인 행위에 대하여 유죄 판결과 같은 고도의 증명이 있는 경우, 외국 판결의 내용 자체가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는 경우 등을 말한다.
[5] 일제강점기에 일본 정부에 의하여 강제징용되어 일본국 내 기업에서 강제노동에 종사한 대한민국 국민이 그 기업을 상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등을 한 사안에서, 이와 동일한 청구원인으로 일본국에서 제기한 소송의 패소확정판결을 승인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난다고 할 수 없다고 본 사례.
[6] 일제강점기에 일본 정부에 의하여 강제징용되어 일본국 내 기업에서 강제노동에 종사한 대한민국 국민이 그 기업을 상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및 임금 등 청구를 한 사안에서, 위 손해배상채권이 반인도적인 전쟁범죄에 관련된 것이라는 사정만으로 소멸시효의 적용을 배제할 수 없고, 위 손해배상채권은 불법행위가 있은 날로부터는 물론 그 후 대한민국과 일본국의 국교가 정상화된 날로부터 기산하더라도 10년이 경과하여 이미 시효로 소멸하였고,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의 존재 또는 대일 민간청구권의 소멸을 규정한 일본 국내법의 제정·시행 등의 사정만으로는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 법률상의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한 사례.
참조조문
[1] 구 민사소송법(2002. 1. 26. 법률 제6626호로 전문 개정되기 전의 것) 제4조 (현행 민사소송법 제5조 참조), 구 섭외사법(2001. 4. 7. 법률 제6465호 국제사법으로 전문 개정되기 전의 것) 제13조 제1항 (현행 국제사법 제32조 제1항 참조), 민법 부칙(1958. 2. 22.) 제2조 [2] 민사소송법 제217조 [3] 구 섭외사법(2001. 4. 7. 법률 제6465호 국제사법으로 전문 개정되기 전의 것) 제9조 (현행 국제사법 제25조 , 제28조 참조), 제13조 제1항 (현행 국제사법 제32조 제1항 참조) [4] 민사소송법 제217조 제3호 [5] 민사소송법 제217조 제3호 [6] 민법 제162조 제1항 , 제166조 제1항 , 제766조 , 근로기준법 제49조
참조판례
[1] 대법원 1992. 7. 28. 선고 91다41897 판결 (공1992하, 2551) 대법원 2000. 6. 9. 선고 98다35037 판결 (공2000하, 1593) 대법원 2005. 1. 27. 선고 2002다59788 판결 (공2005상, 294) [3] 대법원 2004. 6. 25. 선고 2002다56130, 56147 판결 (공2004하, 1230) 대법원 2008. 4. 24. 선고 2005다75071 판결 (공2008상, 759) [4] 대법원 1994. 5. 10. 선고 93므1051, 1068 판결 (공1994상, 1692) 대법원 2004. 10. 28. 선고 2002다74213 판결 (공2004하, 1937)
원고, 항소인
망 소외 1의 소송수계인 원고 1외 4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삼일외 2인)
피고, 피항소인
미쓰비시(삼능)중공업 주식회사 (소송대리인 변호사 유상순)
변론종결
2008. 12. 30.
주문
1. 원고들의 항소를 모두 기각한다.
2. 항소비용은 원고들이 부담한다.
청구취지 및 항소취지
제1심판결을 취소한다. 피고는 원고들에게 각 1억 100만 원 및 이에 대하여 이 사건 소장부본 송달일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25%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이유
1. 기초 사실
다음 사실은 당사자들 사이에 다툼이 없거나 갑1, 2, 3호증의 각 1, 2, 3, 5, 6, 갑4호증의 1, 2, 3, 4, 5, 갑11, 12호증, 갑13 내지 19호증의 각 1, 2, 3, 갑20호증의 1, 2, 갑21호증의 3 내지 16, 갑25호증의 1, 2, 을1, 9, 10, 11, 12호증, 을13, 14, 15호증의 각 1, 2의 각 기재와 제1심의 제1심 공동원고 4에 대한 본인신문 결과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된다.
가. 일본의 한반도 침탈과 태평양전쟁 등의 발발
(1) 일본은 1910. 8. 22. 대한제국과 사이에 한일합병조약을 체결한 후 조선총독부를 통하여 한반도를 지배하였다.
(2) (가)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을, 1937년 중일전쟁을 각 일으킴으로써 점차 전시체제에 들어가게 되었고, 1941. 12. 8.에는 태평양전쟁까지 일으키게 되었다.
(나) 일본은 앞서 본 바와 같은 전쟁으로 인하여 인력과 물자가 부족해지자 1939. 7. 8. ‘국가총동원법(1938. 4. 1. 법률 제55호)’에 따른 ‘국민징용령(칙령 제451호)’을 제정한 후(다만, 한반도 등 외지에는 1943년의 칙령 제600호에 의해 같은 해 10. 1.부터 실제로 적용되었다), 비행기 부품 및 제철 용광로 제조자, 선박 수리공 등 특수기능을 가진, 한반도에 거주하는 한국인을 일본으로 이주시키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다가(초기에는 한국인들의 반발을 우려하여 강제적으로 시행하지는 않고, 노무동원계획에 따른 모집형식으로 실시되었다), 계속적으로 인력과 물자가 부족하자 태평양전쟁이 최고조에 달할 즈음인 1944. 8. 8. 각의(각의)에서 ‘반도인 노무자의 이입에 관한 건’을 결의함으로써 특수기능의 보유 여부에 관계없이 일반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징용령이 한반도에도 적용되었다.
(다) 국민징용령(제18조)에 의하면 피징용자는 이들을 사용한 사업주 등으로부터 급여를 지급받도록 되어 있다.
나. 망 소외 1, 원고 2, 3, 4, 5의 강제징용 등
(1) 망 소외 1( 이하 ‘망인’이라 한다)과 원고 2, 3, 4, 5(이하 이들을 합쳐 부를 때는 ‘원고 등’이라 한다)는 1923년부터 1926년 사이에 한반도에서 출생한 한국인들인데, 국민징용령에 기하여 망인은 1944. 9. 20.경 거주지이던 경기 평택군 포승면 신영리에서, 원고 2는 1944. 9.경 거주지이던 경기 안성군 원곡면 성주리에서, 원고 3은 1944. 9.경 거주지이던 경기 안성군 원곡면 반제리에서, 원고 4는 1944. 8.경 거주지이던 경성부(경성부) 중구 남미창정(남미창정)에서, 원고 5는 1944. 10.경 거주지이던 경성부 용산구 청파동에서 각 징용영서(징용영서)를 받았다.
(2) 원고 등은 위와 같이 징용영서를 받은 후 각자의 주거지 부근에 다른 피징용자들과 집결하여 그들과 함께 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 관부(관부)연락선을 타고 일본 시모노세키(하관)항에 도착하였고, 그곳에서 열차를 타고 미쓰비시중공업 주식회사(이하 ‘종전 회사’라 한다)가 있는 히로시마(광도)로 갔다.
(3) 원고 등은 종전 회사의 기계제작소와 조선소 등에 노무자로 배치되었는데, 망인은 기계제작소 주철공장에, 원고 2는 동관(동관)공장에, 원고 3은 조선소 창고에, 원고 4, 5는 조선소 제3공장 배관부에 각 배치되어 자재를 운반하거나 동관을 구부리는 등의 노동을 하였는바, 앞서 본 이송 및 배치 등의 과정은 일본 군인 및 경찰, 종전 회사 담당자의 통제 아래 이루어졌다.
(4) 그 후 원고 등은 각자의 작업장에서 월 2회의 휴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철판을 자르거나 동관을 구부리는 일, 배관일 등에 종사하였고, 하루 작업을 마치면 종전 회사가 마련한 숙소인 료(료)로 돌아가 숙식을 해결하였는데, 식사의 양이나 질은 현저히 부실하였고, 숙소도 다다미 12개 정도의 좁은 방에서 10-12명의 피징용자들이 함께 생활하였다. 또한, 숙소 주변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었고 근무시간은 물론 휴일에도 헌병, 경찰 등에 의한 감시가 삼엄하여 자유가 거의 없었으며, 한반도에 남아 있는 가족들과의 서신 교환도 사전검열에 의하여 그 내용이 제한되었다. 종전 회사로부터 전월 21일부터 당월 20일까지의 출근일수를 기준으로 하여 당월 28일에 월급을 받았는데, 월급으로 지급되는 돈은 망인은 월 20엔 정도, 원고 2는 월 23-24엔 정도, 원고 3은 월 35엔 정도, 원고 4는 월 30엔 정도였다.
다. 원자폭탄의 투하와 원고 등의 귀국
(1) 1945. 8. 6.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됨으로써 종전 회사의 기계제작소 및 조선소 등이 파괴되어 작업이 중단되었고, 일본은 같은 달 15.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에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태평양전쟁은 종전되었다.
(2) 원자폭탄이 투하되자 이를 피하는 과정에서 망인은 철파편에 맞아 턱부분의 살이 떨어져 나간 상태로 1945. 9. 13.경 시모노세키에서 밀항선을 타고, 원고 2는 특별한 부상은 입지 않은 상태로 같은 해 10. 하카다(박다)에서 밀항선을 타고, 원고 3은 유리파편에 맞아 팔다리에 상처를 입은 상태로 같은 해 9.경 하카다에서 UN군이 마련한 귀국선을 타고, 원고 4는 특별한 부상은 입지 않은 상태로 같은 해 8. 30.경 시모노세키에서 관부연락선을 타고, 원고 5는 특별한 부상은 입지 않은 상태로 같은 해 10. 20.경 시모노세키에서 밀항선을 타고 각 귀국하였다.
(3) 원고 등은 귀국 후에도 강제징용 이전에 다니던 직장을 잃는 등 종래의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한 채 사회적,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피폭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최근까지도 전신권태감, 호흡 곤란, 피부질환, 시력 감퇴 등의 각종 신체적 장해에 시달리고 있다.
라. 태평양전쟁 종전 이후의 상황
(1) 대일평화조약의 체결
태평양전쟁이 종전된 후 1951. 9. 8. 미국 샌프란시스코시에서 미국, 영국 등을 포함한 연합국과 일본국은 전후 배상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대일평화조약을 체결하였는데, 위 조약 제4조 (a)는 “대한민국을 포함한 위 조약 제2조에 규정된 지역에 존재하는 일본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그리고 위 지역의 통치 당국 및 그 국민을 상대로 한 청구권과 일본국에 존재하는 위 지역의 통치 당국 및 그 국민 소유의 재산, 그리고 위 지역의 통치 당국 및 그 국민의 일본국 및 일본국 국민들에 대한 청구권의 처리는 일본국과 위 지역의 통치 당국 간의 특별 협정이 규정하는 바에 따른다”고 정하였다.
(2)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조약과 부속협정의 체결
대일평화조약 제4조 (a)의 규정 취지에 따라 1951년 말경부터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국 정부 사이에 국교정상화 및 전후 보상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하여 마침내 1965. 6. 22. ‘국교정상화를 위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과 그 부속협정의 하나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하 ‘청구권협정’이라 한다)이 체결되었는데, 청구권협정은 제1조에서 “일본국이 대한민국에 10년간에 걸쳐 3억 달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2억 달러의 차관을 행하기로 한다”고 정함과 아울러 제2조에서 다음과 같이 정하였다.
1.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스코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2. 본조의 규정은 다음의 것(본 협정의 서명일까지 각기 체약국이 취한 특별조치의 대상이 된 것을 제외한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a) 일방 체약국의 국민으로서 1947년 8월 15일부터 본 협정의 서명일까지 사이에 타방 체약국에 거주한 일이 있는 사람의 재산, 권리 및 이익
(b) 일방 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으로서 1945년 8월 15일 이후에 있어서의 통상의 접촉의 과정에 있어 취득되었고 또는 타방 체약국의 관할하에 들어오게 된 것
3. 제2.의 규정에 따르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일방 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으로서 본 협정의 서명일에 타방 체약국의 관할하에 있는 것에 대한 조치와 일방 체약국 및 그 국민의 타방 체약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으로서 동일자 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기인하는 것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
또한, 청구권협정에 대한 합의의사록(Ⅰ)은 위 제2조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a) “재산, 권리 및 이익”이라 함은 법률상의 근거에 의거하여 재산적 가치가 인정되는 모든 종류의 실체적 권리를 말하는 것으로 양해되었다.
(e) 동조 3.에 의하여 취하여질 조치는 동조 1.에서 말하는 양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취하여질 각 국의 국내조치를 말하는 것으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g) 동조 1.에서 말하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되는 양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에는 한일회담에서 한국측으로부터 제출된 “한국의 대일청구요강”(소위 8개 항목)의 범위에 속하는 모든 청구가 포함되어 있고, 따라서 동 대일청구요강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게 됨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위 합의의사록에 적시된 대일청구 8개 요강은 “① 1909년부터 1945년까지 사이에 일본이 조선은행을 통하여 한국으로부터 반출하여 간 지금(지김) 및 지은(지은)의 반환청구, ② 1945. 8. 9. 현재 및 그 이후의 일본의 대(대)조선총독부 채무의 변제청구, ③ 1945. 8. 9. 이후 한국으로부터 이체 또는 송금된 금원의 반환청구, ④ 1945. 8. 9. 현재 한국에 본점, 본사 또는 주사무소가 있는 법인의 재일(재일)재산의 반환청구, ⑤ 한국법인 또는 한국자연인의 일본은행권, 피징용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주1) 변제청구 , ⑥ 한국인의 일본국 또는 일본인에 대한 청구로서 ① 내지 ⑤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한일회담 성립 후 개별적으로 행사할 수 있음을 인정할 것, ⑦ 전기(전기) 제 재산 또는 청구권에서 생한 제 과실(과실)의 반환청구, ⑧ 전기(전기) 반환 및 결제는 협정성립 후 즉시 개시하여 늦어도 6개월 이내에 완료할 것” 등이다.
(3) 청구권협정에 따른 후속조치
(가) 청구권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일본은 1965. 12. 17.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일본국과 대한민국 간의 협정 제2조의 실시에 따른 대한민국 등의 재산권에 대한 조치에 관한 법률 주2) ’(법률 제144호. 이하 ‘재산권조치법’이라 한다)을 제정·시행하였다.
(나) 한편, 대한민국은 청구권협정에 의해 지급되는 자금을 사용하기 위한 기본적 사항을 정하기 위하여 1966. 2. 19. ‘청구권자금의 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주3) ’을 제정하고, 이에 이어 1971. 1. 19. ‘대일 민간청구권 신고에 관한 법률 주4) ’을 제정하여 10개월간 국민의 대일청구권 신고를 받은 결과 총 109,540건의 신고가 접수되었는바, 위 신고분에 대한 실제 보상을 집행하기 위하여 1974. 12. 21. ‘대일 민간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1975. 7. 1.부터 1977. 6. 30.까지 사이에 총 83,519건에 대하여 총 9,187,693,000원의 보상금을 지급하였고, 위 각 법률은 1982. 12. 31. 모두 폐지되었다. 그런데 앞서 본 법률들은 강제징용 피해자 중 사망자에 대한 보상만을 규정하였을 뿐이므로, 원고 등은 현재까지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다.
(다) 원고 2, 3, 4, 5 등은 외교통상부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소송( 서울행정법원 2002구합33943 )에서 2004. 2. 13. 승소판결을 선고받았고(외교통상부장관의 항소취하로 제1심판결이 그대로 확정되었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는 청구권협정과 관련한 일부 문서를 공개한 후 2005. 8. 26. ‘한일회담 문서공개 후속대책 관련 민관공동위원회’를 개최하고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하여는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다”는 취지의 공식의견을 표명하였으며, 2006. 9. 25. 일본의 ‘국가총동원법’ 제정 이후 군인·군무원·노무자 등으로 강제동원되어 그 기간 중 사망 또는 행방불명되거나 부상으로 장애를 입은 사람과 노무제공 등의 대가로 일본국 및 일본 기업으로부터 지급받을 수 있었던 급료 등을 지급받지 못한 사람 또는 그 유족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주5) 제출하였다.
마. 종전 회사의 해산과 피고의 설립
(1) 종전 회사는 일본의 패전 이후 일본 내 연합국 최고사령부(GHQ)의 재벌해체정책을 따름과 아울러 패전으로 인하여 일본 기업들이 부담하게 될 엄청난 액수의 배상 및 노무자들에 대한 미지급임금 채무 등의 해결을 위하여 제정된 ‘회사경리응급조치법(1946년 법률 제7호)’상의 특별경리회사, ‘기업재건정비법(같은 해 법률 제40호)’상 특별경리 주식회사로 된 후, 1949. 7. 4. 기업재건정비법에 의한 재건정비계획 인가신청을 하여 같은 해 11. 3. 신청한 내용대로 주무대신의 인가를 받았다.
(2) (가) 그 뒤 종전 회사는 1950. 1. 11. 그 재건정비계획에 따라 해산하고, 같은 날 종전 회사의 현물출자 등에 의하여 기업재건정비법상의 새로운 회사인 중일본(중일본)중공업 주식회사(상호가 1952. 5. 29. 신미쓰비시중공업 주식회사로, 1964. 6. 1. 미쓰비시중공업 주식회사로 각 변경되었다. 이하 ‘중일본중공업’이라 한다), 동일본(동일본)중공업 주식회사(상호가 1952. 6. 1. 상호가 미쓰비시일본중공업 주식회사로 변경되었다), 서일본(서일본)중공업 주식회사(상호가 1952. 5. 27. 미쓰비시조선 주식회사로 변경되었다)의 3개 회사(이하 새로이 설립된 3개 회사를 합쳐 ‘제2회사’라 한다)가 설립되었다. 그 뒤 중일본중공업(다만, 당시의 상호는 이미 미쓰비시중공업 주식회사로 변경되어 있었다)이 1964. 6. 30. 나머지 2개 회사를 흡수합병함으로써 제2회사가 현재의 피고로 되었다.
(나) 종전 회사 종업원들은 직위, 급료를 그대로 하고, 종전 회사에서의 재직기간을 통산하여 퇴직금을 산정하기로 하여 제2회사로 승계되었고, 제2회사의 초대사장들은 모두 종전 회사의 상무이사였다.
(다) 한편, 앞서 본 바와 같은 경위로 청산회사가 된 종전 회사는 1957. 3. 25. 설립된 료쥬(능중)중공업 주식회사에 흡수합병되었다가 같은 해 10. 31. 해산하였다.
(3) ‘회사경리응급조치법’은 “특별경리회사에 해당될 경우 그 회사는 지정시(1946. 8. 11. 00:00을 말한다. 제1조 제1호)에 신계정과 구계정을 설정하고(제7조 제1항), 재산목록상의 동산, 부동산, 채권 기타 재산에 대하여는 ‘회사의 목적인 현재 행하고 있는 사업의 계속 및 전후산업의 회복진흥에 필요한 것’에 한하여 지정시에 신계정에 속하며, 그 외에는 원칙적으로 지정시에 구계정에 속하고(제7조 제2항), 지정시 이후의 원인에 근거하여 발생한 수입 및 지출을 신계정의 수입 및 지출로, 지정시 이전의 원인에 근거하여 발생한 수입 및 지출은 구계정의 수입 및 지출로 경리처리하며(제11조 제1, 2항), 구채권에 대해서는 변제 등 소멸행위를 금지하되, 예외적으로 변제를 인정하는 경우에도 구계정으로 변제하여야 하고, 신계정으로 변제하는 경우는 특별관리인의 승인 등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 일정한 금액의 한도에서만 가능(제14조)”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바. 일본에서의 소송경과와 망인의 사망
(1) 원고 등은 일본국 히로시마지방재판소에 피고 등을 주6) 상대로 종전 회사의 강제징용 등 불법행위 등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금(1,100만 엔)과 강제노동기간 동안 지급받지 못한 임금 등을 현재의 가치로 환산한 금액(그 금액은 망인이 99,014엔, 원고 2가 96,056엔, 원고 3이 68,424엔, 원고 4, 5가 각 59,512엔이다)의 지급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가{1995(ワ)2158, 1996(ワ)1162, 1998(ワ)649}, 1999. 3. 25. 청구기각판결을 선고받자, 히로시마고등재판소에 항소{1999(ネ)206}하였으나 2005. 1. 19. 항소기각판결을 선고받았고, 상고심인 최고재판소{2005(オ)1691}에서도 2007. 11. 1. 상고기각되어 위 판결은 확정되었다(이하 ‘종전 소송’이라 한다).
(2) 그런데 원고 등은 히로시마지방재판소에서 종전 소송의 제1심판결을 선고받은 이후인 2000. 5. 1. 대한민국 법원에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하였다.
(3) 망인은 이 사건 소송이 제1심법원에 계속중이던 2001. 2. 24. 사망하여 그 상속인들( 소외 2, 3, 원고 1, 소외 4, 5, 6, 7, 8)은 원고 1이 망인의 피고에 대한 이 사건 청구권을 단독상속하기로 상속재산분할협의를 하였고, 이에 원고 1은 망인의 소송절차를 수계하였다.
2. 원고들의 주장
가. 종전 회사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1) 강제연행 및 강제노동
종전 회사는 노동력확보라는 목적 아래 일본국의 한반도침탈에 편승하여 종전 회사 담당자를 한반도에 파견, 원고 등을 히로시마로 강제연행한 후 앞서 본 바와 같이 자유를 억압하고, 충분한 식사를 제공하지 아니하는 등 원고 등을 배타적·독점적 지배하에 두고 마치 노예처럼 부리면서 강제노동에 종사하게 하였는바, 이는 체포·감금·강요 등 반인도적인 범죄행위를 구성한다.
(2) 원자폭탄 투하 후 구호조치의 불이행
종전 회사는 앞서 본 바와 같이 1944. 8. 6.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원고 등이 근무하던 기계제작소와 조선소가 파괴되자 일본인 종업원들에 대하여는 구호조치를 취하였으나, 한국인인 원고 등에 대하여는 적당한 피난장소나 식량을 제공하는 등의 아무런 구호조치를 취하지 않고 피폭상태 그대로 방치하였다.
오히려 종전 회사는 원고 등이 그동안 수용되어 있던 료에서 퇴거하는 것을 방치함으로써 멀리 한반도에서 강제징용된 원고 등을 생사의 갈림길로 내몰았다.
(3) 안전귀국의무 위반
종전 회사는 원고 등 피징용자의 강제노동으로 인하여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었고, 국민징용령에 의하더라도 징용 사유가 종료한 때에는 피징용자들에게 여비를 지급하는 등 원고 등이 안전하게 귀국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전 회사는 원고 등을 한반도로 안전하게 귀국시키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아, 원고 등이 스스로 비용을 마련하여 밀항선 등을 타고 위험한 방법으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4) 종전 회사의 이러한 행위는 ① 노예제를 금지하는 국제관습법과 1930년 체결된 강제노동 폐지를 규정한 국제노동기구(ILO) 제29호 조약 등에 위반될 뿐만 아니라 뉘른베르그(Nurnberg) 국제군사재판소 조례 및 당해 재판소의 판결에 의해 승인된 국제법의 제 원칙, 즉 전쟁범죄 및 인도에 대한 죄에 해당하여 불법행위를 구성하고, ② 민법 제750조 소정의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나. 미지급임금 등 청구
원고 등과 종전 회사 사이에는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하였다. 종전 회사는 ① 원고 등에게 강제노동을 시키면서 “약정된 월급의 절반을 한반도에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직접 송금하겠다”고 약속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전혀 이행하지 않았고, ② 원고 등에게 직접 지급하던 월급에서 국민저금 명목으로 공제했던 돈을 강제징용 사유가 종료한 뒤 원고 등에게 반환하지 않았으며, ③ 원고 등에게 직접 지급하던 월급도 1945. 6. 21. 이후부터는 지급하지 않았다.
그 구체적인 내역은 ㉮ 송금약속 상당액(당시 후생연금법 규정의 평균임금에서 기숙사비와 식비의 합계 13엔 및 피보험자 부담의 보험료를 공제한 금액 × 1/2 × 가동월수), ㉯ 국민저금 상당액(최소 50엔), ㉰ 1945. 6. 21.부터 1945. 8. 31.까지의 임금 상당액(당시 후생연금법 규정의 평균임금에서 기숙사비와 식비의 합계 13엔 및 피보험자 부담의 보험료를 공제한 금액 × 1/2 × 2.33개월)인바, 위 돈을 그 동안의 물가상승률과 환율 등을 고려하여 현재의 가치(원화)로 환산하면 적어도 100만 원을 초과한다.
다. 종전 회사와 피고의 동일성
종전 회사와 피고는 외형상 별개의 법인격을 가진 회사로 보이나, 제2회사가 종전 회사의 영업을 계속할 목적으로 설립되었고, 그 과정에서 인적·물적 조직을 그대로 승계하였을 뿐 아니라 제2회사의 초대 사장이 모두 종전 회사의 상무이사였던 점, 피고가 종전 회사의 상호와 상표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점, 피고가 종전 회사와 동일성이 있다는 전제하에 종전 회사의 역사까지도 피고의 역사로 간주하여 홍보하고 있는 점, 피고와 같은 계열사 경영자들의 모임인 ‘금요회’가 정기적으로 개최되고 있는 점, 피고가 1968. 1.과 1974. 8.에 원고 4 등으로부터 미지급임금 등의 청구를 받고서는 교섭을 거부하거나 종전의 회사와는 별개의 회사라는 주장을 펼친 적이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는 종전 회사와 실질적으로 동일한 회사로서 종전 회사의 원고 등에 대한 채무를 승계하였다.
라. 피고의 책임
따라서 피고는 원고들에게 각 종전 회사의 ① 불법행위에 따른 위자료로 1억 원, ② 미지급임금 등으로 100만 원 등 합계 1억 100만 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3. 국제재판관할에 관한 판단
가. 피고의 주장
국제사법 부칙 제2조는 “이 법 시행(2001. 7. 1.) 이전에 생긴 사항에 대하여는 종전의 섭외사법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종전의 섭외사법에는 국제재판관할에 관한 아무런 규정이 없고, 이와 관련한 조약이나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가 존재하지 아니하는 이상, 섭외적 사건에 관한 국내법원의 재판관할을 인정할지 여부는 소송당사자들의 공평, 재판의 적정, 신속을 기한다는 기본이념에 따라 조리에 의하여 결정하여 한다. 그런데 원고 등이 일본에서 종전 소송을 제기하여 증거조사를 모두 마친 후 패소 판결을 선고받아 확정되었고, 피고는 대한민국에 지점이나 영업소가 없으며, 이 사건 소송의 청구원인 사실이 모두 일본에서 일어나 대한민국과는 실질적 관련성도 없는바, 일본 법인인 피고로 하여금 대한민국 법원에서 종전 소송과 동일한 내용의 소송을 반복하게 하는 것은 앞서 본 기본이념들에 반한다. 따라서 이 사건 소는 재판관할권이 없는 대한민국 법원에 제기된 것으로서 부적법하다.
나. 판 단
국제재판관할을 결정함에 있어서는 당사자 간의 공평, 재판의 적정, 신속 및 경제를 기한다는 기본이념에 따라야 할 것이고, 구체적으로는 소송당사자들의 공평, 편의 그리고 예측가능성과 같은 개인적인 이익뿐만 아니라 재판의 적정, 신속, 효율 및 판결의 실효성 등과 같은 법원 내지 국가의 이익도 함께 고려하여야 할 것이며, 이러한 다양한 이익 중 어떠한 이익을 보호할 필요가 있을지 여부는 개별 사건에서 법정지와 당사자와의 실질적 관련성 및 법정지와 분쟁이 된 사안과의 실질적 관련성을 객관적인 기준으로 삼아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할 것이고( 대법원 2005. 1. 27. 선고 2002다59788 판결 등 참조), 국제재판관할에 관하여 조약이나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상의 원칙이 아직 확립되어 있지 않고 이에 관한 우리나라의 성문법규도 없는 이상 우리나라 민사소송법의 토지관할에 관한 규정 또한 위 기본이념에 따라 제정된 것이므로 기본적으로 위 규정에 의한 재판적이 국내에 있을 때에는 섭외적 사건에 관한 소송에 관하여도 우리나라에 재판관할권이 있다고 인정함이 상당하다( 대법원 1992. 7. 28. 선고 91다41897 판결 등 참조).
한편, 구 민사소송법(2002. 1. 26. 법률 제662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4조 제1항 은 법인 등의 보통재판적은 그 주된 사무소 또는 영업소에 의하고 사무소와 영업소가 없는 때에는 그 주된 업무담당자의 주소에 적용됨을 규정하고, 제2항 은 제1항 의 규정이 외국법인 등의 보통재판적에 관하여 대한민국에 있는 사무소, 영업소 또는 업무담당자의 주소에 적용됨을 정하고 있으므로, 증거수집의 용이성이나 소송수행의 부담 정도 등 구체적인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그 응소를 강제하는 것이 민사소송의 이념에 비추어 보아 심히 부당한 결과에 이르게 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분쟁이 외국법인의 대한민국 내 사무소 등의 영업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 법원의 관할권을 인정하는 것이 조리에 맞는다 할 것이다( 대법원 2000. 6. 9. 선고 98다35037 판결 등 참조).
위와 같은 법리에 비추어 이 사건을 보건대, 피고는 일본법에 의하여 설립된 일본 법인으로서 그 주된 사무소를 일본국 내에 두고 있으나, 1987년경 부산 중구 중앙동 4가 53-11 소재 동아일보빌딩 8층에 피고의 대한민국 내 업무 진행을 위한 부산 연락사무소를 설치하여 일본인 직원 1명을 비롯한 5명의 직원을 두었고, 원고 등이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할 당시 위 부산 연락사무소가 존재하고 있었으며, 더구나 이 사건 청구 중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는 구 섭외사법(1962. 1. 5. 법률 제966호로 제정되었다가 2001. 4. 7. 법률 제6465호로 전문 개정되기 전의 것) 제13조 제1항 에 따라 불법행위지 중 일부인 대한민국의 법률이 준거법이 될 수 있어 대한민국과 실질적 관련성도 있으므로, 원고 등이 위 부산 연락사무소의 소재지 관할법원인 제1심법원에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한 이상, 위 부산 연락사무소가 상법의 규정에 따른 대표자 선정이나 영업소 설치등기를 하지 않았다거나 이 사건 소송 계속중에 폐쇄되었다는 사정 또는 종전 소송에서 이미 증거조사를 마쳤다는 사정만으로는 대한민국 법원이 재판관할권을 행사하는 것이 당사자 간의 공평이나 재판의 적정, 신속을 해쳐 조리에 반한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이와 다른 전제에서 나온 피고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
4. 종전 소송 확정판결의 효력(기판력)에 관한 판단
가. 피고의 주장
원고 등은 일본에서 이 사건 소송과 동일한 청구원인으로 종전 소송을 제기하여 패소확정판결을 선고받았는바, 위 판결은 대한민국 민사소송법 제217조 에서 정한 요건을 모두 갖추어 대한민국에서도 효력이 있다.
따라서 원고 등이 다시 대한민국 법원에 제기한 이 사건 소송은 종전 소송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된다.
나. 판 단
(1) 외국 법원 확정판결의 승인 요건
민사소송법 제217조 에 의하면, 외국 법원의 확정판결은 ① 대한민국의 법령 또는 조약에 따른 국제재판관할의 원칙상 그 외국 법원의 국제재판관할이 인정될 것, ② 패소한 피고가 소장 또는 이에 준하는 서면 및 기일통지서나 명령을 적법한 방식에 따라 방어에 필요한 시간여유를 두고 송달받았거나 송달받지 아니하였더라도 소송에 응하였을 것, ③ 그 판결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지 아니할 것, ④ 상호보증이 있을 것 등 4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면 대한민국에서 그 효력이 인정되고, 외국 법원의 확정판결이 위 승인요건을 구비하고 있는 경우에는 이와 동일한 소송을 우리나라 법원에 다시 제기하는 것은 외국 법원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된다 할 것이다.
(2) 이 사건 소송이 종전 소송의 확정판결에 반하는지 여부
(가) 종전 소송이 위 4가지 요건을 충족하는지에 대하여 보건대, 먼저 일본은 피고의 주된 사무소 소재지이므로, 종전 소송이 제기된 일본국 재판소가 위 사건에 대하여 국제재판관할권을 가지고, 종전 소송에서 원고로서 소를 제기하였다가 패소한 경우임이 분명하므로, 위 ①, ② 요건은 모두 충족되었다 할 것이다.
다음, ④ 요건에 관하여 보면, 상호보증은 외국의 법령, 판례 및 관례 등에 의하여 승인요건을 비교하여 인정되면 충분하고 반드시 당사국과 조약이 체결되어 있을 필요는 없고, 우리나라와 외국 사이에 동종 판결의 승인요건이 현저히 균형을 상실하지 아니하고 외국에서 정한 요건이 우리나라에서 정한 요건보다 전체로서 과중하지 아니하며 중요한 점에서 실질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는 정도라면 상호보증의 요건을 구비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며, 당해 외국에서 구체적으로 우리나라의 동종 판결을 승인한 사례가 없더라도 실제로 승인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상태이면 충분하다 할 것인바( 대법원 2004. 10. 28. 선고 2002다74213 판결 등 참조), 일본의 경우 일본 민사소송법 제118조에서 외국 판결의 승인에 대하여 우리 민사소송법 제217조 와 동일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상호보증이 있다고 할 것이어서, 위 ④ 요건도 충족되었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외국 법원 확정판결의 승인요건 중 위 ③ 요건 즉, 종전 소송 판결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는지 여부만이 문제로 된다 할 것인바, 이하에서 살핀다.
(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 위반의 의미
위 ③ 요건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란 외국 법원이 대한민국의 법령과는 다른 외국 법령을 적용하여 내린 판결을 승인한 결과가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반하는 경우로서 외국 판결의 내용 자체만이 아니라 외국 판결이 우리 민사소송법의 기본원리에 반하는 등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반하는 방법에 의하여 성립된 경우까지 포함하는바, 구체적으로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는 경우’란 ㉠ 동일 당사자 간의 동일 사건에 관하여 대한민국에서 판결이 확정된 후에 다시 외국에서 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됨으로써 대한민국 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되는 경우( 대법원 1994. 5. 10. 선고 93므1051, 1068 판결 참조), ㉡ 재심사유에 관한 민사소송법 제451조 제1항 제6호 , 제7호 , 제2항 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피고가 판결국 법정에서 사기적인 사유(예컨대 위조·변조 내지 폐기된 서류를 사용하였다거나 위증을 이용하는 것)가 있었음을 주장할 수 없었고, 또한 처벌받을 사기적인 행위에 대하여 유죄 판결과 같은 고도의 증명이 있는 경우( 대법원 2004. 10. 28. 선고 2002다74213 판결 참조), ㉢ 외국 판결의 내용 자체가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는 경우 등을 말한다고 하겠다.
종전 소송 확정판결이 이 사건 소송이 계속중에 이루어진 것이고, 달리 이에 재심사유가 있다고 볼 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는 이 사건에 있어서 종전 소송 확정판결이 위 ㉠, ㉡의 경우에 해당할 여지는 없으므로, 결국 ㉢의 경우, 즉 일본국 재판소에서 이루어진 종전 소송 확정판결의 내용 자체가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는지 여부만 문제될 뿐이다.
(다) 종전 소송 확정판결의 내용
앞서 본 을13, 14호증의 각 1, 2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보태어 보면, 원고 등은 이 사건과 동일한 청구원인으로 피고를 상대로 종전 소송을 제기하였고, 이에 대하여 피고는 제척기간 경과, 소멸시효 완성 또는 청구권협정에 따라 원고 등의 청구권이 소멸하였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였는데, 제1심인 히로시마지방재판소는 1999. 3. 25. “① 국제법 내지 국제관습법 위반을 원인으로 한 청구에 관하여는 원칙적으로 사인(사인)이 국제법의 주체인 국가를 상대로 직접 구체적인 청구를 할 수 없고, 달리 각 조약 등 국제법에서 사인이 국가를 상대로 직접 청구를 할 수 있다는 구체적인 절차규정이 없으며, 원고 등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국제관습법의 존재도 인정되지 않고, ② 강제연행 및 강제노동 등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에 관하여는 원칙적으로 원고 등이 귀국한 1945. 9.로부터 일본 민법 제724조 후단에 규정된 20년의 제척기간이 주7) 경과되어 청구권이 소멸되었으며(원고 등의 주장에 따라 한국원폭피해미쓰비시징용자동지회가 결성되어 피고와 교섭을 시작한 1974. 8.경부터 기산하더라도 1994. 8.경에 제척기간이 경과되었다), ③ 안전배려의무 위반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에 관하여 이에 관한 구체적 주장·입증이 없고, ④ 미지급임금 등 청구에 관하여 기산점을 앞서 본 1974. 8.로 보더라도 이 부분 청구를 임금청구로 본다면 늦어도 일본 민법 제174조 제1호에 따라 1년의 소멸시효가, 이를 예탁금반환청구로 보더라도 일본 민법상 10년의 소멸시효가 각 완성되었다”는 등의 사유를 들어 원고 등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 사실, 항소심인 히로시마고등재판소도 2005. 1. 19. 국제법 내지 국제관습법 위반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에 대하여는 대체로 제1심판결과 같은 견해를 피력하면서 “① 강제연행 및 강제노동 등에 관하여는 당시의 법령에 따른 징용행위 그 자체를 바로 위법행위라고 볼 수는 없지만, 강제연행 및 강제노동 과정에서 국민징용령이 정한 범위를 벗어난 위법행위를 하였으므로 불법행위가 성립할 여지가 있고, ② 원자폭탄 투하 후 구호조치 불이행 또는 안전귀국의무 위반의 점에 관하여도 종전 회사가 피징용자인 원고 등에게 신의칙상 안전배려의무를 부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자폭탄이 투하된 후 원고 등의 구호나 보호를 위한 아무런 조치도 강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식사 등도 주지 않고 원고 등을 방치한 점, 그 후 공장가동이 불가능하게 되고 1945. 8. 15.에는 전쟁도 끝나 징용을 계속할 필요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원고 등을 귀국시키거나 원고 등이 스스로 귀국하는 것에도 협력하지 않은 점 등에 비추어 안전배려의무 위반이 인정되므로, 이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며(다만, 앞서 본 사정만으로는 종전 회사의 불법행위책임을 막바로 인정할 수는 없다), ③ 미지급임금 등에 관하여도 구체적 금액은 알 수 없으나 미지급임금 상당액 및 저금액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면서도,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은 20년의 제척기간 경과로, 안전배려의무 위반(채무불이행)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이나 미지급임금 등 지급청구권은 한일 간의 국교가 회복된 1965년이나 늦어도 보상교섭이 시작된 1974. 8.로부터 기산하여 최장 10년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등의 주8) 사유로 원고 등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였고, 2007. 11. 1. 원고 등의 상고가 모두 기각됨으로써 위 판결은 확정된 사실이 각 인정된다.
(라) 판 단
1) 준거법의 결정
구 섭외사법 제9조 는 “법률행위의 성립 및 효력에 관하여는 당사자의 의사에 의하여 적용할 법을 정한다. 그러나 당사자의 의사가 분명하지 아니한 때에는 행위지법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제13조 제1항 은 “사무관리, 부당이득 또는 불법행위로 인하여 생긴 채권의 성립 및 효력은 그 원인된 사실이 발생한 곳의 법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먼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에 관하여 보건대, 구 섭외사법 제13조 제1항 에서 규정한 “그 원인된 사실이 발생한 곳”이라 함은 불법행위의 행위지뿐만 아니라 손해의 결과발생지도 포함한다고 할 것인바( 대법원 2008. 4. 24. 선고 2005다75071 판결 등 참조), 원고들이 주장하는 종전 회사의 강제연행 및 강제노동 등의 불법행위는 대한민국 내 원고 등 각자의 거주지역으로부터 일본국 내 히로시마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계속된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므로, 실제 행위지로서 대한민국법뿐만 아니라 일본법도 준거법이 될 수 있다고 하겠다.
다음 미지급임금 청구와 관련하여 보건대, 원고들이 종전 회사와 사이에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하였음을 전제로 그 미지급임금 등의 지급을 구하고 있고, 구 섭외사법 제9조 에 따라 근로계약의 당사자 사이에 준거법 선택에 관한 명시적인 합의가 없는 경우에 있어서는 근로계약에 포함된 준거법 이외의 다른 의사표시의 내용이나 소송행위를 통하여 나타난 당사자의 태도 등을 기초로 당사자의 묵시적 의사를 추정하여야 할 것이며, 그러한 묵시적 의사를 추정할 수 없는 경우에도 당사자의 국적, 주소 등 생활본거지, 사용자인 법인의 설립 준거법, 노무 급부지, 직무 내용 등 근로계약에 관한 여러 가지 객관적 사정을 종합하여 볼 때 근로계약 당시 당사자가 준거법을 지정하였더라면 선택하였을 것으로 판단되는 가정적 의사를 추정하여 준거법을 결정하여야 할 것인바( 대법원 2004. 6. 25. 선고 2002다56130, 56147 판결 등 참조), 앞서 본 사실관계에 비추어 인정되는, ①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할 당시는 일본에 의한 한반도 강제점령기였고, 이에 따라 한반도에서도 일본법이 적용되고 있었던 점, ② 행위지(근로지)가 일본이고, 그 사용자인 종전 회사의 설립 준거법도 일본법인데 반하여 원고 등이 한국인이라는 것 외에는 대한민국과 실질적 관련성은 없는 점(임금 또한 일본화폐로 지급되었다), ③ 원고 등의 근로 내용 또한 일본이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데 주로 집중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④ 원고 등이 종전 소송에서 일본법을 준거법으로 적용하는 데 아무런 이의가 없었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 등과 종전 회사는 근로계약을 체결함에 있어 일본법을 준거법으로 정하였다고 봄이 상당하고, 안전배려의무 위반(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도 마찬가지로 원래 채권계약의 준거법을 따른다고 하겠다.
따라서 원고 등의 종전 소송에서의 주장에 관한 준거법은 불법행위와 관련하여서는 대한민국법 또는 일본법, 그 외의 청구와 관련하여서는 일본법이 된다고 하겠다.
2) 종전 소송 확정판결의 승인가능성
일본국 재판소가 종전 소송에서 일본법을 적용하여 제척기간 경과 또는 소멸시효 완성 등을 이유로 원고 등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고, 일본법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기간 3년은 대한민국법의 단기 소멸시효기간과 동일하고, 제척기간 20년은 그 자체만으로 대한민국법의 장기 소멸시효기간 10년보다 길거나 적어도 불리하다고 볼 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으며,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기간 10년도 대한민국법과 동일한 점(다만, 일본법상 임금청구의 소멸시효기간은 1년으로 대한민국법상의 3년보다 짧으나, 이에 대하여 일반채권의 소멸시효기간 10년을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일본국 재판소가 원고 등의 청구권이 청구권협정에 따라 모두 소멸하였다고 판단한 것은 부가적인 주9) 판단인데다가, 이는 어디까지나 법률적 판단의 문제일 뿐 정치적·역사적 관점에서 판단할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이는 점, 항소심판결에서 징용에 따른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청구가 인정될 여지가 있고, 안전배려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이나 미지급임금 등의 존재 자체는 시인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종전 소송 확정판결을 승인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난다고 할 수 없고, 과거 일본이 한반도를 침탈하고 지배하면서 피해를 끼치는 등 양국 및 그 국민들 사이에 과거사에 대한 평가가 엇갈릴 뿐만 아니라 감정이 좋지 않다는 사정만으로 달리 볼 수 없다.
(마) 원고들의 주장에 대한 판단
1) 주 장
가) 일본국 재판소는 종전 소송에서 일본의 한반도 강제점령이 법률적으로 유효하여 원고 등을 강제연행한 국민징용령 등이 합법적인 공권력의 행사라는 전제 아래 판단을 하였는바, 이러한 판결을 승인하는 것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 헌법정신에 반하므로, 일본법은 준거법이 될 수 없다.
나) 종전 회사의 불법행위는 반인도적인 전쟁범죄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시효제도가 적용되지 않고, 설령 시효제도가 적용된다고 할지라도 대한민국과 일본국 사이의 국교 단절, 그 후 국교 수립과 동시에 체결된 청구권협정의 존재, 대한민국 국민의 대일 민간청구권을 소멸시킨 일본 국내법 제144호의 시행 등 법률상 장애사유로 인하여 원고 등의 이 사건 손해배상채권의 소멸시효가 진행되지 않고 있던 중, 청구권협정 관련 문서가 전면 공개된 후 대한민국 정부의 법적 의견이 표명됨에 따라 책임주체에 대한 권리행사가 실질적으로 가능해진 2005. 8. 26.(또는 이 사건 소제기일인 2000. 5. 1.)에야 비로소 진행하게 되었으므로 아직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으며, 그동안 원고 등의 끊임없는 배상청구에 대하여 피고가 지금까지 보여 온 태도에 비추어 피고가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을 하는 것은 신의칙이나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에도 위반되는바, 일본국 재판소가 이러한 피고의 항변을 받아들여 원고 등의 청구를 기각한 종전 소송 확정판결이 우리나라에서 승인되어서는 아니된다.
다) 따라서 종전 소송 확정판결의 기판력을 인정할 수 없는 이상, 피고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
2) 판 단
가) 종전 소송 확정판결의 승인이 헌법정신에 반하는지 여부
앞서 본 바와 같이 구 섭외사법에 의하더라도 일본법이 준거법으로 될 수 있는데다가, 일본국 재판소 역시 준거법으로 삼은 일본법에서 규정한 제척기간 또는 소멸시효 기간이 대한민국법의 그것보다 불리하다고 볼 만한 이유가 없으므로, 원고들이 주장하는 사유만으로는 일본국 재판소가 일본법을 준거법으로 적용하여 판단한 종전 소송 확정판결을 승인하는 것이 대한민국 헌법정신에 어긋난다고 볼 수 없다(설령 그렇지 않고 대한민국법을 준거법으로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어차피 원고들의 이 사건 청구는 모두 소멸시효가 완성되었음은 마찬가지이다).
나) 소멸시효 제도의 적용 여부에 대하여
대한민국법을 준거법으로 적용한다는 전제 아래 원고들의 주장에 대하여 살피건대, 먼저 이 사건 손해배상채권이 종전 회사의 반인도적인 전쟁범죄와 관련된 손해배상채권이라는 사정만으로는 그와 같은 채권에 대하여 예외적으로 소멸시효의 적용을 배제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
따라서 원고 등의 이 사건 손해배상채권에도 소멸시효 제도는 적용된다 할 것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 채권은 대한민국법에 의하더라도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간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소멸한다고 할 것인데( 민법 제766조 제2항 ), 원고들이 주장하는 이 사건 불법행위가 있은 날로부터는 물론, 피고의 주장과 같이 그 이후 대한민국과 일본국의 국교가 정상화된 1965. 6. 22.로부터 기산하더라도 이 사건 소가 그로부터 10년이 이미 경과된 후인 2000. 5. 1. 제기되었음이 기록상 명백하므로, 원고 등의 이 사건 손해배상채권은 소 제기 이전에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한편, 원고들의 주장 자체에 의하더라도 원고 등을 비롯한 재한 피폭자들은 일본과의 국교가 수립된 직후인 1967년경부터 사단법인 한국원폭피해자원호협회를 설립하고, 1974년 그 하부조직으로 한국원폭피해미쓰비시징용자동지회를 설립하여, 같은 해 8월경 그 회원들이 피고를 방문하여 강제징용으로 인한 배상금 및 미수금의 지급을 촉구하였다는 것인바, 원고 등은 늦어도 그 무렵에는 이 사건 손해배상채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므로, 그 때로부터 기산하더라도 이미 10년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음은 마찬가지이다. 뿐만 아니라, 미지급임금 등과 관련한 청구권도 3년 또는 최장 10년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어 소멸하였다).
또한, 소멸시효는 객관적으로 권리가 발생하여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하고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동안은 진행하지 않지만 여기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경우라 함은 그 권리행사에 법률상의 장애사유, 예컨대 기간의 미도래나 조건 불성취 등이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고, 사실상 권리의 존재나 권리행사 가능성을 알지 못하였고 알지 못함에 과실이 없다고 하여도 이러한 사유는 법률상 장애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할 것인바( 대법원 2006. 4. 27. 선고 2006다1381 판결 등 참조), 그동안 청구권협정 제2조 및 그 합의의사록의 규정과 관련하여 우리 정부의 국민에 대한 외교적 보호권만을 포기한 것인지, 혹은 우리 국민의 일본국 또는 일본 국민에 대한 개인적 손해배상청구권도 포기된 것인지에 관하여 논란이 있어 왔고, 원고 등이 위 청구권협정의 명확한 의미를 알지 못하여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것으로 믿었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청구권협정의 존재 또는 대일 민간청구권의 소멸을 규정한 일본 국내법의 제정·시행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원고 등의 권리 행사를 저지하는 법률상의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할 수 없으므로, 원고 등의 이 사건 손해배상채권에 대한 소멸시효의 기산점을 2005. 8. 26.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나아가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는 경우는,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 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한한다고 할 것인데( 대법원 2005. 5. 13. 선고 2004다71881 판결 등 참조), 원고들의 주장과 같이 피고가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 국교가 수립되기 전까지는 “국교 수립시까지 기다리자”고 하였다거나, 국교 수립 후에는 직접적인 배상의무는 부정하면서도 “다른 기업들이 피징용피해자들에 대하여 보상을 할 움직임을 보이면 원고 등에게도 성의를 보이겠다”는 태도를 보였다는 사정만으로 피고가 소멸시효가 완성된 후에도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원고 등으로 하여금 이를 신뢰하게 하였다고 보기는 어렵고, 원고 등의 이 사건 손해배상채권이 반인도적인 전쟁범죄에 관련된 손해배상채권이라는 이유만으로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 자체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없다.
다) 결국, 원고들의 이 부분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바) 소결론
따라서 일본국 재판소의 종전 소송 확정판결은 대한민국에서 그 효력이 승인된다고 하겠고, 이 사건 청구가 종전 소송의 청구와 동일한 이상 이 법원으로서는 기판력에 따라 그와 모순된 판단을 할 수 없으므로, 원고들의 청구는 더 나아가 살필 것 없이 이유 없다.
5. 결 론
그렇다면 원고들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모두 기각할 것인바, 제1심판결은 이와 결론을 같이 하여 정당하므로, 원고들의 항소는 이유 없어 이를 모두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주1) 청구권협정 과정에서 한국정부는 대일청구요강과 관련하여 일본에 총 12억 2,000만 달러를 요구하였는데, 그 중 피징용자와 관련한 금액은 3억 6,000만 달러 정도이다.
주2) 1. 다음에 게재하는 대한민국 또는 그 국민의 재산권으로 협정 제2조의 재산, 이익에 해당하는 것은 다음 항의 적용을 제외하고 1965년 6월 22일에 소멸한 것으로 한다(단서 생략). (1) 일본국 또는 그 국민에 대한 채권 (2) 담보권으로 일본국 또는 그 국민이 가지는 물(물) 또는 채권을 목적으로 하는 것
주3) 제5조 제1항 대한민국 국민이 가지고 있는 1945년 8월 15일 이전까지의 일본국에 대한 민간청구권은 이 법에서 정하는 청구권자금 중에서 보상하여야 한다. 제2항 전항의 민간청구권의 보상에 관한 기준, 종류, 한도 등의 결정에 필요한 사항은 따로 법률로 정한다.
주4) 제2조 (신고대상의 범위) 제1항 이 법의 규정에 의한 신고대상의 범위는 1947년 8월 15일부터 1965년 6월 22일까지 일본국에 거주한 일이 있는 자를 제외한 대한민국 국민이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일본국 및 일본국민에 대하여 가졌던 청구권 등으로서 다음 각 호에 게기하는 것으로 한다. 9. 일본국에 의하여 군인, 군속 또는 노무자로 소집 또는 징용되어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사망한 자
주5) 2007. 7. 3. 열린 국회에서 가결되어 같은 달 20. 행정부로 이송되었으나, 대통령이 같은 해 8. 2.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하여 재의(재의)를 요구하였고, 이에 같은 해 11. 23. 열린 국회에서 재의결하였으나 부결되었다.
주6) 원고 등은 이 소송에서 일본국과 료쥬중공업 주식회사도 피고로 삼았는데, 제1심에서 원고 등의 청구가 모두 기각되었다. 항소심에서 피고 일본국에 대하여는 “일본 정부가 피폭자 건강수첩을 교부받은 피폭자가 일본 영역을 넘어 거주지를 옮긴 경우에는 ‘원폭특별조치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후생성 공중위생국장이 1974. 7. 22. 위발 제402호(통달 402호)를 작성, 발표하고 이를 각 도도부현(도도부현)의 지사와 히로시마 및 나가사키 시장 앞으로 발송하는 등 행정조치를 취한 것은 위법하다”는 등의 이유로 원고 등에게 각 위자료 100만 엔과 변호사비용 20만 엔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명하는 일부 승소판결을 선고받았다(이에 대한 원고 등의 상고는 불수리결정을 받았다). 한편, 료쥬중공업 주식회사에 대하여는 피고에 대한 것과 마찬가지 이유, 즉 제척기간의 경과 또는 소멸시효의 완성 등을 이유로 원고 등의 항소기각 판결을 선고받았다(이에 대하여 원고 등이 상고하였으나 상고기각되었다).
주8) 부가적으로 청구권협정에 따라 원고 등의 청구권이 소멸하였다는 취지로도 판단하였다.
주9) 다만, 최고재판소는 이와 관련된 상고이유에 대하여서만 판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