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2017도14960 사기
피고인
S(개명전성명A)
상고인
피고인
변호인
변호사 T, V, W, C
원심판결
서울북부지방법원 2017. 9. 1. 선고 2016노2190 판결
판결선고
2017. 12. 5.
주문
원심판결 중 유죄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서울북부지방법원 합의부에 환송한
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사기죄는 타인을 기망하여 착오에 빠뜨리고 처분행위를 유발하여 재물을 교부받
거나 재산상 이익을 얻음으로써 성립하는 것으로, 기망, 착오, 재산적 처분행위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한편 어떠한 행위가 타인을 착오에 빠지게 한 기망행위에 해
당하는지 및 그러한 기망행위와 재산적 처분행위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는 거래의
상황, 상대방의 지식, 성격, 경험, 직업 등 행위 당시의 구체적 사정을 고려하여 일반
적·객관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1. 10. 13. 선고 2011도8829 판결 등 참
조),
그리고 사기죄의 주관적 구성요건인 편취의 범의는 피고인이 자백하지 않는 이상 범
행 전후의 피고인 등의 재력, 환경, 범행의 경위와 내용, 기래의 이행과정 등과 같은
객관적인 사정 등을 종합하여 판단할 수밖에 없다. 한편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
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
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
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으며, 이
는 사기죄의 주관적 요소인 범의를 인정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대법원 2013. 8.
23. 선고 2012도6011 판결 등 참조).
2. 원심에서 공소장이 변경된 이 사건 공소사실 중 2014. 7.경 사기의 점의 요지는,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선금을 받더라도 약속한 시기까지 무스너클 의류를 공급할 수
있는 의사나 능력이 없었는데도, 2014. 7. 17.경 서울 노원구에 있는 커피숍에서 피해
자에게 "내가 미국 거래처에 미리 2,000~3,000장 정도 주문해두었다. 선금으로 53,155,
212원을 주면 2014년 8월경이나 9월경까지 가을·겨울용 무스너클 의류를 공급해 주
겠다."라는 취지로 거짓말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부터 53,155,212원을 송금받아 편취
하였다는 것이다.
3. 원심은 그 채택 증거를 종합하여, 피해자는 일관되게 납품기일이 정해져 있었다고
진술한 반면, 피고인은 피해자가 주장하는 시기가 의류의 생산기일인지 납품기일인지
에 관하여 일관된 진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점, 피고인이 공급계약서 작성과 동시에
피해자에게 제시한 주문장에 무스너클 의류 210장은 2014. 9.경까지, 350장은 2014. 8.
경까지 공급한다는 취지가 기재되어 있고, 색깔, 치수별 물건 개수까지 특정되어 있으
며, 공급계약서에도 잔금 납부시기가 2014. 9. 1.로 기재되어 있는 점, 피고인은 주문장
이 작성된 경위나 주문장 내용대로 수입되지 아니한 이유에 대하여 일관되지 않고 납
득하기 어려운 변명만을 하고 있고, 2014. 11. 25.경 피해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8월,
9월 못 들어온 거는 제가 성실하게 못되게 했기 때문에 그랬던 거 같아요. 그거는 죄
송해요."라고 말하였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 2014. 8.경까지
350장, 2014. 9.경까지 210장의 무스너클 의류를 공급하기로 하는 약정이 있었다고 인
정되고, 피해자가 제1심 법정에서 피고인이 미리 확보한 물량의 일부를 준다고 하면서
관련 서류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2014년 8, 9월경 입고된다는 것을 확신하였다는 취지
로 진술하였던 점, 피해자가 그때까지 의류가 공급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면 전체
계약금액의 30%에 이르는 선금을 지급하면서까지 계약을 체결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추어 피해자가 피고인의 말을 믿고 선금을 교부한 것으로 인정된다
는 이유를 들어, 2014년 8월 내지 9월경까지 의류를 공급해주겠다는 취지로 납품시기
에 관하여 피해자를 기망한 적이 없다는 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하고 이 부분 공소사실
을 유죄로 판단하였다.
4. 그러나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그대로 수긍하기 어렵다.
가.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① 피고인은 의류 수입업자이고 피해자는 2010년경부터 의류 및 잡화 도소매업
을 영위하여 온 사람이다. 피고인과 피해자는 2014. 7. 17.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아동
용 의류 220장을 비롯한 총 560장의 가을 · 겨울용 무스너클 의류를 수입하여 납품하
기로 하는 내용이 포함된 의류 공급계약(이하 '이 사건 공급계약'이라고 한다)을 체결
하였고, 같은 날 피해자는 위 무스너클 의류 560장의 대금 중 30%에 해당하는
53,155,212원을 선금 명목으로 피고인에게 지급하였다.
② 이 사건 공급계약 당시 작성된 계약서에는, 위 계약일부터 1년간 피해자가
서면 또는 이메일로 제품을 주문하면 피고인이 이를 납품하고 피해자는 제품 인수와
대금 결제 의무를 부담한다고 되어 있으나(제4조, 제10조),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주
문받은 의류를 언제까지 납품하여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아무런 기재가 없다.
③ 오리털 패딩 제품과 같은 가을·겨울용 수입의류는 해당 연도의 전체 주문량
이나 제조공장의 가동능력 등에 따라 제품의 출고일이 어느 정도 유동적이고, 추가 주
문이나 주문 취소가 발생할 경우를 고려하여 제조업체에서 제품을 단계별로 생산·출
고하는 일이 많으며, 이 경우 보통 주문순서에 따라 순차적으로 제품이 공급되기 때문
에 일반적으로 수입업자의 입장에서 납품시기를 특정하기가 쉽지 않다. 한편 이 사건
공급계약이 체결되기 한 해 전인 2013년에는 반대로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가을 · 겨울
용 수입의류를 판매한 적이 있는데, 당시 피해자가 의류를 납품한 시기는 11월 중순경
부터 12월 중순경까지였다.
④ 피고인은 2014. 10. 23. 아동용 의류 13장을 포함한 무스너클 의류 122장을
피해자에게 1차로 납품하였고, 피해자는 아무런 이의 없이 이를 수령한 후 이 사건 공
급계약 당시 지급한 선금과 별도로 2014. 10. 24.까지 위 122장의 의류 대금 합계
74,766,410원을 피고인에게 지급하였다. 그 후 피해자는 2014. 11. 3.에 이르러 위와
같이 납품받은 의류 중 아동용인 13장이 중국에서 생산된 것으로 보이므로 이를 확인
해보고 연락을 달라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피고인에게 보냈다.
⑤ 한편 피고인과 피해자는 무스너클 의류에 관한 이 사건 공급계약과는 별도로
가을·겨울용 노비스 의류 공급계약과 관련한 교섭을 진행하여 왔는데, 피해자는
2014. 7. 1.경 피고인에게 노비스 의류의 제품명과 색상, 주문수량(총 968장) 등이 기재
된 엑셀파일을 첨부하여 '노비스 오더'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보냈고, 피고인은 2014.
11.경 아동용 무스너클 의류 54장과 노비스 의류 400장을 수입한 후 피해자에게 위 노
비스 의류를 인수할 것을 통지하였다. 그런데 피해자는 노비스 의류에 관하여 정식의
공급계약이 체결된 바 없으므로 이를 인수할 수 없다며 거절하였고, 피고인은 위 노비
스 의류를 인수하지 않으면 이 사건 공급계약에 의해 피고인이 공급하기로 했던 무스
너클 의류도 더 이상 납품하지 않겠다고 맞섰다.
⑥ 그러자 피해자는 위 노비스 의류 중 136장을 인수하겠다면서 2014. 11. 20.
피고인에게 그 대금의 일부인 3,000만 원을 지급하였고, 2014. 11. 24. 피고인에게
노비스 의류 136장에 관한 중도금 명목으로 3,000만 원을 추가로 지급하면서 이를 납
품해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피고인은 상품 정리가 덜 되었다는 등의 이유를 대며 피해
자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⑦) 피해자는 2014. 11, 25. 피고인에게 위 노비스 의류 136장을 납품해줄 것을
다시 요구하였으나, 피고인은 이미 다른 거래처에 넘겨주었다면서 이를 거절하고 같은
날 노비스 의류 대금 중 3,000만 원을 피해자에게 반환하였다. 이에 피해자가 피고인
에게 항의하자, 피고인은 제품이 중국에서 생산되어 품질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피해자
가 그때까지 인수하지 않고 있던 위 아동용 무스너클 의류 54장을 인수할 것을 요구하
였다.
⑧ 피해자는 2014. 12. 2.경 피고인에게 이 사건 공급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통지
한 후, 2014. 12. 4. 피고인에게 기왕에 지급한 선금 53,155,212원 중 위 아동용 무스
너클 의류 54장의 대금을 공제한 금액을 반환하라고 요구하였으나, 2015. 1. 20.경부터
는 위 의류 대금을 공제하지 말고 선금 전액을 반환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⑨ 피해자는 위 선금 반환요구에 피고인이 응하지 않자 2015. 2. 23. 피고인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 사건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선금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
면서 피고인을 사기죄 등으로 형사고소하였다.
⑩ 피해자는 위 형사고소와는 별도로 2015. 5.경 대한상사중재원에 중재신청을
하였고, 이에 대해 피고인은 반대신청을 하였는데, 대한상사중재원은 2016. 3. 23. 피고
인은 피해자에게 이 사건 공급계약에 따라 지급받은 선금을 반환하고, 피해자는 인수
를 거절하였던 아동용 무스너클 의류 54장을 인도받음과 동시에 그 대금을 피고인에게
지급하라는 등의 내용이 담긴 중재판정을 하였다.
나. 위와 같은 사실관계 및 이를 통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이 든 이유나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편취의 범의를 가지고 피해자를 기망하였다거나 피해자가 피고인의 기망으로 인하여
착오를 일으켜 선금을 지급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으므로, 이 부분 공소사실이 합리
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① 피해자는 계절상품인 무스너클 의류의 특성상 납품시기가 중요하다고 판단하
였는데 계약 체결일부터 한 달 보름 이내에 위 의류를 납품해줄 수 있다는 피고인의
말에 속아서 이 사건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선금을 지급한 것이라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 공급계약 당시 납품시기를 특정하였다는 점에 관하여는 피해자
의 진술 외에 직접적인 증거가 없고, 피해자의 주장처럼 납품시기가 이 사건 공급계약
의 체결 여부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사항이었다면 계약서에 그에 관한 내용을 기재
하지 않은 이유가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② 피해자는 수년간 의류 및 잡화 도소매업에 종사하여 왔고 2013년에는 자신
이 수입한 의류를 피고인에게 납품한 바도 있으므로, 제조업체의 제품 출고시기와 이
에 따른 수입업자의 납품시기가 어느 정도 유동적이라는 업계의 현실을 비교적 잘 알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바, 피고인이 계약 당시 보여준 주문장에 제품의 납품시기로
보이는 기재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잠정적으로 대강의 납품시기를 제시하는 정도
의 의미를 넘어 구체적인 납품시기를 특정하여 계약의 내용에 편입시킨 것으로 단정하
기 어렵다.
③ 피해자는 자신이 주장하는 약정 납품시기로부터 한 달 이상 지난 2014. 10.
23. 별다른 이의 없이 피고인으로부터 무스너클 의류 122장을 납품받은 후 그 대금을
모두 지급하였고, 다시 그때부터 한 달가량 지난 2014. 11. 20.경 이후에도 피고인에게
무스너클 의류와 노비스 의류를 납품해줄 것을 거듭 요청하기도 하였다. 이는 납품시
기에 관한 기망으로 착오를 일으켜 이 사건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선금을 지급한 것이
라는 피해자의 주장과 배치되는 사정이다.
④ 피고인과 피해자는 아동용 무스너클 의류의 하자 여부 및 노비스 의류에 관
한 공급계약 체결 여부 등에 관한 견해차에서 비롯된 분쟁을 원만히 해결하지 못한 채
상호간 계약 위반을 주장하면서 책임을 미루다가 결국 이 사건 공급계약을 해지하기에
이르렀다. 피고인은 그 과정에서 노비스 의류와 관련하여 받은 선금과 중도금 합계
60,000,000원을 피해자에게 곧바로 반환하였으나, 피해자가 인수하지 아니한 아동용 무
스너클 의류 대금의 공제 여부에 따라 반환범위가 달라지는 이 사건 공급계약에 기한
선금은 반환하지 않았고, 피해자는 이를 돌려받기 위한 수단으로 피고인을 형사고소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거래의 이행과정과 분쟁의 전개양상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이
처음부터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 사건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선금을 지급받은 것은 아니
라는 피고인의 변소를 쉽사리 배척하기 어렵다.
다. 그런데도 원심은 피고인이 2014년 8월경 내지 9월경까지 무스너클 의류를 공
급할 의사나 능력이 없으면서도 피해자에게 그때까지 의류를 공급하겠다고 거짓말하였
고, 피해자는 이에 속아 피고인에게 선금을 교부하였다고 인정하여 이 부분 공소사실
을 유죄로 판단하였으니,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사기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
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5. 그러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에 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 중 유죄부분을 파
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 · 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재판장대법관김재형
대법관박보영
주심대법관김창석
대법관이기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