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고 인
피고인
항 소 인
피고인 및 검사
검사
임현외 1인
변 호 인
법무법인 정평 담당변호사 심재환외 1인
주문
피고인 및 검사의 항소를 모두 기각한다.
이유
1. 항소이유의 요지
가. 피고인
⑴ 사실오인 내지 법리오해
㈎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 과 제5항 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학문의 자유의 본질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위헌·무효이다.
㈏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에서 남한과 북한의 관계를 “국가 간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규정하고 있는 등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각 조항의 내용과 이미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거나 개정하는 내용의 법률안을 발의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북한을 국가보안법 소정의 ‘반국가단체’로 볼 수 없거나, 또는 국가보안법 제7조 는 사실상 사문화하여 그 효력이 없다.
㈐ 원심판결의 범죄사실 제3항에 관하여
피고인이 민족통일대축전의 개막식에 참관하여 박수를 치는 등의 행위를 한 것은 북한 지역의 분위기를 맞춰주기 위하여 의례적으로 한 것이었을 뿐, 피고인이 북한의 활동에 동조할 의사로 한 것이 아님에도, 원심은 이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였으니, 원심판결에는 채증법칙을 위반하여 사실을 오인하였거나 국가보안법위반(찬양·고무등)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 원심판결의 범죄사실 제4항에 관하여
피고인이 만경대의 방명록에 “만경대정신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는 문언을 기재하면서 피고인은 만경대 학원을 떠올려 항일정신의 민족정기를 염두에 두고 ‘만경대정신’이라는 말을 만들어 기재한 것일 뿐, 피고인이 김일성정신 또는 주체사상을 의미하는 말로 ‘만경대정신’이라고 기재한 것이 아니고, 만경대가 관광지인 점과 피고인이 위 방명록에 위 문언을 기재한 행위는 대중에 대한 발언이 아닌 점에서 피고인의 위 기재행위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구체적이고 명백한 위험을 초래하거나, 실질적 해악을 가할 위험성이 있다고 볼 수 없음에도, 원심은 이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였으니, 원심판결에는 채증법칙을 위반하여 사실을 오인하였거나 국가보안법위반(찬양·고무등)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 원심판결의 범죄사실 제1, 2, 5, 6, 7, 8항에 관하여
피고인이 작성한 논문, 강연자료 및 기고문 등(이하 ‘논문 등’이라 한다)을 전체적·종합적으로 볼 때, 피고인이 논문 등에서 주장한 내용은 피고인이 북한문제와 통일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에서 도출한 학문적 연구결과로서, 피고인이 논문 등을 제작·게재한 행위가 대남적화통일을 달성하려고 하는 북한의 선전·선동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고, 또 피고인의 그와 같은 학문활동은 헌법이 보장하는 학문의 자유의 범위 내에 있는 것으로서 그 자유가 절대적으로 보장되는 것임에도, 원심은 이 부분 각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하였으니, 원심판결에는 채증법칙을 위반하여 사실을 오인하였거나 국가보안법위반(찬양·고무등)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⑵ 양형부당
제반 사정에 비추어 보면, 원심의 형(징역 2년, 자격정지 2년, 집행유예 3년)이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
나. 검사
피고인은 해방 당시와 한국전쟁 등 우리 역사에 대하여 명백히 가치판단을 하면서, 이를 토대로 현재의 변혁운동에 관한 주장을 하고 있는 점, 피고인의 이 사건 범행이 극단적인 이념논쟁을 불러일으켜 국론을 분열시켰고, 대규모 폭력집회의 이론적 근거가 되기도 한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이 전혀 반성하지 않고, 이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보석으로 석방된 상태에서도 계속하여 북한의 주장에 적극 동조하여 동종 범행을 반복하고 있는 점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원심의 형(징역 2년, 자격정지 2년, 집행유예 3년)은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
2. 판단
가. 피고인의 사실오인 내지 법리오해 주장에 관한 판단
⑴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 과 제5항 이 위헌·무효라는 주장에 관하여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 과 제5항 은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하여 비례의 원칙의 범위 내에서 양심, 사상, 학문, 예술, 언론,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으로서 그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거나 이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는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대법원 2006. 6. 16. 선고 2004도851 판결 , 헌법재판소 2004. 8. 26. 선고 2003헌바85·102 전원재판부 결정 참조), 피고인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
⑵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볼 수 없다거나 국가보안법 제7조 가 사문화되었다는 주장에 관하여
비록 남북 사이에 정상회담이 개최되고 그 결과로서 공동선언이 발표되는 등 평화와 화해를 위한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에 따라 남북관계가 더욱 진전되어 남북 사이에 화해와 평화적 공존의 구도가 정착됨으로써 앞으로 북한의 반국가단체성이 소멸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지금의 현실로는 북한이 여전히 우리나라와 대치하면서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고자 하는 적화통일노선을 완전히 포기하였다는 명백한 징후를 보이지 않고 있는 이상, 북한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임과 동시에 적화통일노선을 고수하면서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고자 획책하는 반국가단체라는 성격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하고, 남북정상회담의 성사 등으로 북한의 반국가단체성이 소멸하였다거나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보안법의 규범력이 상실되었다고 볼 수는 없고( 대법원 2004. 10. 1. 선고 2004도3212 판결 , 대법원 2006. 3. 9. 선고 2002도2429 판결 등 참조), 평화적 통일을 구현하기 위하여 남한과 북한의 기본적인 관계와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하여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고 있고, 국회에 국가보안법의 폐지법률안 내지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이와 달리 볼 수 없으므로, 피고인의 이 부분 주장도 이유 없다.
⑶ 원심판결의 범죄사실 제3항에 관하여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피고인은 1972. 2.경 ○○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1981. 8.경 미국으로 유학하러 가서 1987. 12.경 □□□ 대학에서 ‘남한의 농지개혁의 재조명 - 미군정하의 남한, 필리핀과 북한 비교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한 후, 1988. 1.경 △△대학교 및 ○○대학교 강사, 1989. 3.경 △△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를 거쳐 1997. 9.경 △△대학교 사회학과 정교수로 임명된 사실, 피고인은 1994. 7.경 민족통일의 실현을 위해 평화협정의 체결, 남북한 상호군축, 주한미군의 철수 등을 실천 강령으로 조직된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정책위원장, 1998. 4.경 ‘평화주의자 공소외 1 석방대책위’ 발기인, 1999. 5. 7.경 국가보안법 철폐, 주한미군철수, 평화협정 체결, 연방제 통일방안의 합의·확산을 4대 정치적 과제로 하여 결성된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약칭 자통협)’ 공동의장, 2001. 3. 15.경 ‘2001년 민족통일 대축전’을 앞두고 외세의 간섭과 지배를 배격하는 자주, 평화협정체결 등 평화통일, 민족대단결로 조국통일 실현을 목적으로 설립된 ‘6·15 남북공동선언 실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통일연대(약칭 통일연대)’의 공동대표(현재 지도위원), 2002.경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자주평화통일, 비핵군축 등 전쟁반대의 목적으로 설립된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약칭 평통사)’의 지도위원, 2004. 9.경 위 평통사의 실천 활동을 이론·정책적으로 뒷받침하고, 연구성과의 국제화를 추구하기 위하여 설립된 위 평통사 부설 평화·통일 연구소장 등을 역임하고 있는 사실, 한편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민간의 남북교류증진을 위해 2001. 5.경 구성된 ‘6·15 남북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2001 민족공동행사 추진본부’(이하 ‘추진본부’라고 한다)는 ‘2001년 민족통일 대축전’(이하 ‘대축전’이라고 한다) 개최 문제를 협의하기 위하여 북측 준비위와 가진 두 차례 실무 접촉에서 대축전의 서울과 평양 동시 개최 및 상호 방문을 주장하다가, 북측이 서울 방문은 곤란하다고 주장하자, 민간 교류의 활성화가 절실히 요구되는 현실 등을 고려해서 북측의 입장을 받아들여, 행사를 남북에서 동시에 개최하되 남측에서만 300명 상당이 방북하기로 합의하였으나, 북측이 행사 장소에 관하여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이하 ‘3대헌장 기념탑’이라고 한다) 앞을 고수한 사실, 우리 정부는 3대헌장 기념탑 앞에서 북한이 개최되는 행사에 우리 방북단이 참석하는 것은 북한의 통일 방안을 지지하는 것으로 평가되어 북한의 정치 선전·선동에 이용당할 우려가 있으므로 3대헌장 기념탑에서의 행사 개최는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2001. 8. 13. 추진본부측에 방북 불허 통보를 한 사실, 그러자 북한은 2001. 8. 14. “3대헌장 기념탑 앞에서 개최하기로 한 대축전 개막식 행사를 남북 공동개최가 아닌 북한 측의 단독개최로 하고 남측 방북단은 참관만 하는 형식으로 하자”는 취지의 통보를 하였고, 이에 정부는 2001. 8. 14. 16:00경 “승인받은 방북목적 외 정치적 논의 또는 합의서 채택 금지, 3대헌장 기념탑 관련행사 참여금지, 안전사고 및 관련법규 위반시 책임감수”를 조건으로 394명에 대하여 방북을 승인하였고, 피고인은 통일연대 정책위원장의 지위에서 방북자에 포함되어 방북하게 된 사실, 정부는 그 직후 추진본부 상임집행위원장 공소외 2 등 4명으로부터 위와 같은 방북승인조건을 준수한다는 확약서를 제출받았고, 또 2001. 8. 14. 21:00경부터 22:00경까지 ◎◎성당 3층 가톨릭회관에서 피고인을 포함한 교육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방북시 유의사항 및 방북 승인 조건을 교육하였으며, 공소외 2도 교육 직후 교육 참석자들에게 이번 방북이 위와 같은 조건부 방북 승인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한 사실, 공소외 2는 2001. 8. 15. 피고인 등 방북단이 탑승한 비행기 내에서 3대헌장 기념탑에서의 행사에 참가해서는 안된다고 고지하였고, 같은 날 16:00경 북한에 도착한 후 평양 고려호텔 1층 로비에서 방북단에게 3대헌장 기념탑에서의 행사에 참가해서는 안된다고 재차 고지한 사실, 그러나 방북단의 지도부가 고려호텔에 도착한 후 북측으로부터 대축전의 개막식 행사 참석을 종용받고 위 개막식 행사 참석 여부에 관하여 분명한 입장을 보이지 못하는 사이에, 방북단 중 피고인 등 150여명은 같은 날 18:20경 북한측이 미리 준비한 버스를 이용하여 고려호텔을 출발, 19:00경 통일의 거리에서 하차한 다음 그곳에서부터 3대헌장 기념탑까지 ◇◇◇과 ◆◆◆ 등의 깃발을 앞세우고 행진하면서 ‘조국통일’, ‘민족자주’ 등을 연호하는 평양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답례하고, 19:20경 3대헌장 기념탑 앞에 도착하여 미리 준비되어 있는 연단 옆 좌석에 앉은 후 곧바로 시작된 대축전 개막식에서 북측 준비위원장 공소외 3의 개막선언, 공소외 4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의 “자주성이 민족의 생명이며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민족의 최고이익”이라는 취지의 연설 및 공소외 5 조평통 부위원장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방러에 앞서 미군철수와 6·15 선언 이행을 강조하신 것은 우리 민족의 자주통일 의지의 원칙적 입장을 밝힌 것이다”라는 취지의 연설에 호응하여 박수를 치는 등의 행동을 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바, 피고인은 북한문제와 통일문제의 전문가로서 3대헌장 기념탑의 의미와 성격을 잘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정부가 3대헌장 기념탑에서의 행사를 금지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고, 방북 전 교육 등을 통하여 3대헌장 기념탑에서의 행사금지방침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볼 것이고, 피고인의 위와 같은 행위는 단순히 의례적으로 참관한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 없으며, 북한은 남한에서 대학교수인 지식인이자 각종 사회단체의 주도자의 지위에 있는 피고인을 포함한 대규모 방북단이 북한의 3대헌장에 입각한 통일원칙을 지지하고 있다고 선전·선동함으로써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볼 것이고, 피고인은 그러한 정을 알면서 위와 같은 행위를 함으로써 3대헌장에 입각한 통일원칙을 선전·선동하려는 반국가단체인 북한 및 그 구성원의 활동에 동조한 것이라고 인정되므로, 피고인의 이 부분 주장도 이유 없다.
⑷ 원심판결의 범죄사실 제4항에 관하여
㈎ 피고인이 범의를 부인하는 경우에는 이러한 주관적 요소로 되는 사실은 사물의 성질상 범의와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 또는 정황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에 의하여 이를 입증할 수밖에 없으며, 이때 무엇이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에 해당할 것인가는 정상적인 경험칙에 바탕을 두고 치밀한 관찰력이나 분석력에 의하여 사실의 연결상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방법에 의하여야 한다( 대법원 2006. 2. 23. 선고 2005도8645 판결 등 참조).
㈏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피고인이 2001. 8. 17. 16:30경 방북단과 함께 김일성의 생가인 만경대를 방문하여 북측 안내원으로부터 만경대의 유래, 김일성의 일생 및 업적 등에 관한 설명을 듣고 그 안내에 따라 김일성 생가, 기념관을 차례로 둘러본 후, 그곳 테이블에 비치되어 있던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고 기재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위 인정사실과 피고인이 사용한 ‘만경대정신’이라는 용어는 북한에서도 사용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서, 피고인이 독창적으로 사용한 것이지만, 만경대는 김일성의 생가로서, 김일성이 항일 무장투쟁의 주축으로 그가 이끈 빨치산 세력을 중심으로 한 북한정권이 민족사적 정통성이 있고, 김일성이 창시한 주체사상의 기치에 따라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였다는 것을 대내외에 선전하기 위하여 성역화시킨 장소인 점, 피고인이 북한문제 전문가로서 그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점, 또 피고인이 방북하기 전 원심판결의 범죄사실 제2항과 같이 ○○대학교, ●●대학교 및 ▲▲대학교에서 각 개최된 주체사상 토론회에서 주체사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주체사상의 핵심인 대외적 자주노선과 대내적 주체노선을 받아들이자고 주장하였던 점 등 만경대가 가지는 정치적 의미, 피고인의 전문분야 및 사회적 활동 내용, 피고인이 방명록에 위와 같이 기재하게 된 경위 등을 종합하여 객관적으로 볼 때, 피고인은 김일성정신, 즉 주체사상을 염두에 두고 ‘만경대정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고 볼 것이고, 만경대 학원을 떠올려 항일정신의 민족정기를 염두에 두고 ‘만경대정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는 피고인의 변소는 만경대 학원이 혁명열사유자녀 등 고위간부의 자녀를 입학시켜 주체사상 등을 교육시키는 곳이고, 위 학원에서 배출된 자들은 주체사상의 핵심신봉자가 되는 점 등에 비추어 받아들이기 어려우며, 북한이 남한에서 대학교수인 지식인이자 각종 사회단체의 주도자의 지위에 있는 피고인이 주체사상을 지지하고 있다고 선전·선동함으로써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볼 것이고, 피고인은 그러한 정을 알면서 만경대 방명록에 위와 같은 문언을 기재함으로써 주체사상의 창시자인 김일성을 찬양하면서 통일을 위해서는 주체노선을 견지하여야 한다고 선전·선동하고 있는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활동에 동조하였다고 인정되므로, 피고인의 이 부분 주장 역시 이유 없다.
⑸ 논문 등의 이적동조 여부 및 논문 등이 헌법상의 학문의 자유의 범위 내에 있는지에 관하여
㈎ 논문 등의 이적동조 여부에 관하여
① 원심판결의 범죄사실 제1항에 관하여
㉮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로 인정되기 위하여는 그 표현물의 내용이 국가보안법의 보호법익인 대한민국의 존립·안정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것이어야 하고, 표현물에 이와 같은 이적성이 있는지 여부는 표현물의 전체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그 작성의 동기는 물론 표현행위 자체의 태양 및 외부와의 관련사항, 표현행위 당시의 정황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결정하여야 한다( 대법원 2004. 8. 30. 선고 2004도3212 판결 , 대법원 2004. 7. 22. 선고 2002도539 판결 , 대법원 1992. 3. 31. 선고 90도2033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그리고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 위반의 죄는, 그 법문이 표현하고 있는 바와 같이 제1항 내지 제4항 의 행위를 할 목적으로 문서 등 이적표현물을 취득·소지·제작·반포 등의 행위를 하는 것으로서 이른바 목적범임이 명백하므로 고의 외에 별도로 초과주관적 위법요소인 목적이 요구되는 것이고, 행위자가 표현물에 대한 이적성을 인식하고 위와 같은 행위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같은 조 제1항 내지 제4항 의 이적행위를 할 목적이 인정되지 아니하면 그 구성요건은 충족되지 않는 것이며, 같은 조 제1항 내지 제4항 의 이적행위를 할 목적은 같은 법 제1항 내지 제4항 의 행위에 대한 적극적 의욕이나 확정적 인식까지는 필요 없고 미필적 인식으로 족한 것이므로 표현물의 내용이 객관적으로 보아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대남선전·선동 등의 활동에 동조하는 등의 이적성을 담고 있는 것임을 인식하고, 나아가 그와 같은 이적행위가 될지도 모른다는 미필적 인식이 있으면 그 조항의 구성요건은 충족된다고 할 것인바, 객관적으로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대남선전·선동 등의 활동에 동조하여 반국가단체나 그 활동을 이롭게 하거나 그 이익이 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는 이적표현물을 그와 같은 인식을 하면서도 이를 취득·소지 또는 제작·반포하였다면 그 행위자에게는 위 표현물의 내용과 같은 이적행위가 될지도 모른다는 미필적 인식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고, 따라서 학문적인 연구나 오로지 영리 추구 및 호기심에 의한 것이라는 등의 그 이적 목적이 없었다고 보여지는 자료가 나타나지 않는 한 초과주관적 위법요소인 목적의 요건은 충족되는 것이다( 대법원 2003. 3. 11. 선고 2002도4665 판결 , 대법원 2002. 11. 22. 선고 2002도2246 판결 , 대법원 1992. 3. 31. 선고 90도2033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 그리고 북한이 대남적화통일을 기본목표로 설정하고 변증법적 유물론의 역사관에 서서 한국의 역사를 지배계급에 대한 피지배계급의 계급투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대남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 혁명전략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전술로 남한이 미제국주의에 종속된 식민지이고 남한정권이 반동적 파쇼정권이라고 매도하면서 남한의 노동자, 농민을 혁명의 주력군으로, 지식인, 청년학생, 도시소시민에 이르는 각계각층을 그 보조군으로 삼아서 반미, 반정부 통일전선을 형성하여 폭력, 비폭력, 합법, 반합법, 비합법 등의 모든 수단을 써서 미제국주의와 파쇼세력 및 매판자본가를 타도하여야 한다고 선전, 선동하고 통일방안으로 연방제를 제의하면서 그 선결조건으로 남한에서의 반공정권 퇴진, 반공정책과 국가보안법 폐지, 미국과 북한간의 평화협정 체결 및 주한미군 철수 등을 내세우고 있는 외에 제3국의 공작거점 및 해외 반한 교민단체를 전위조직으로 하여 위장평화공세를 전개함과 아울러 국내 반정부 인사 및 운동권 학생을 입북시켜 연공통일전선을 구축하고자 획책하고 있음은 공지의 사실이다( 대법원 1996. 12. 23. 선고 95도1035 판결 참조).
㉰ 원심에서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피고인은 2000. 10.경 ‘한국전쟁과 민족통일’이라는 논문을 제작하여 이를 ‘경제와 사회’ 겨울호에 게재되도록 한 사실, 피고인은 위 논문에서 6·25 전쟁은 민족자주세력과 외세의존세력 간의 조국통일해방전쟁의 성격을 띤 내전임에도 미국이 위 전쟁에 불법하게 개입하여 침략한 반면, 소련이나 중국은 위 전쟁에 직접적인 개입을 자제하거나 또는 자국을 방어할 의도로 정당하게 개입한 것이므로, 6·25 전쟁에 대하여 김일성에게 전적인 책임을 지울 수는 없고, 오히려 미국에게 그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위 인정사실에다가 피고인이 위 논문에서 북한과 소련 및 중국의 책임은 의도적으로 축소하거나 언급을 하지 아니하고, 남한과 미국의 책임만 부각시키고 있는 점, 또한 피고인이 위 논문에서 6·25 전쟁은 ‘통일전쟁’, ‘민족해방전쟁’, ‘통일혁명전쟁’이라고 서술하면서 ‘북한의 기습적인 침략전쟁으로 보기 힘들다’고 서술하고, 또 북한은 ‘민족자주세력’이고, 남한은 ‘외세의존, 반혁명, 반민중세력’으로 대비하여 서술하고, 미국의 참전은 ‘남의 순수내전에 불법적으로 개입한 것으로서 침략행위’이고, 중국의 참전은 ‘우방을 돕기위한 방어적인 성격’을 띠며, 소련의 관여는 ‘동맹적 수준의 동의와 지원’으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대비하여 서술한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위 논문의 내용은 대한민국의 존립·안정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고, 피고인이 북한문제와 통일문제의 전문가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은 위 논문이 이적표현물임을 인식하면서 이를 제작·반포하였다고 인정되므로 미필적 인식으로서의 목적 또한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② 원심판결의 범죄사실 제2항에 관하여
㉮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 이 규정하고 있는 이적동조라 함은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지령을 받은 자의 선전·선동 및 그 활동과 동일한 내용의 주장을 하거나 이에 합치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그들의 활동에 호응, 가세하는 것을 말한다( 대법원 2003. 9. 23. 선고 2001도4328 판결 , 대법원 1999. 9. 3. 선고 99도2317 판결 참조).
㉯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피고인은 2001. 4. 초순경 ○○대학교 총학생회측으로부터 주체사상 토론회에 참석하여 주체사상의 형성·발전과정에 관하여 발표하여 달라는 부탁을 받고 ‘주체사상은 어떻게 형성·발전되었는가’라는 강연자료를 작성하여 미리 ○○대학교 총학생회측에 전달하여 주고, 2001. 4. 23. ○○대학교 문화관에서 개최된 주체사상 토론회에 참석하여 약 150여명의 학생 및 일반인 등을 상대로 위 강연자료로 강연한 사실, 피고인은 2001. 5. 초순경 ●●대학교 총학생회측으로부터 주체사상 토론회에 참석하여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북사회 자주노선의 의미와 그 배경’이라는 강연자료를 작성하여 미리 ●●대학교 총학생회측에 전달하여 주고, 2001. 6. 13. ●●대학교 경영관에서 개최된 주체사상 토론회에 참석하여 약 200여명의 학생 및 일반인 등을 상대로 위 강연자료로 강연한 사실, 피고인은 2001. 7. 말경 ▲▲대학교 총학생회측으로부터 주체사상 토론회에 참석하여 달라는 부탁을 받고 ‘주체사상이 이북사회에 미친 영향’이라는 강연자료를 작성하여 미리 ▲▲대학교 총학생회측에 전달하여 주고, 2001. 8. 8. ▲▲대학교 전산소에서 개최된 주체사상 토론회에 참석하여 약 100여명의 학생 및 일반인 등을 상대로 위 강연자료로 강연한 사실, 피고인은 위 각 자료에서 90년대 초반 동구사회주의 체제의 몰락에도 ‘공화국’이 생존권을 누릴 수 있었고, ‘고난의 행군’ 기간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주체사상 때문이라고 분석한 뒤, 미 제국주의 중심의 외세와 사대주의 반민족 세력이 가로막고 있는 민족통일을 위해서는 남북주도를 통한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라는 대내적 주체노선을 강화하고 주체사상의 핵심인 대외적 자주노선과 대내적 주체노선이 오늘날 통일성취시대의 길잡이 역할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위 인정사실에다가 피고인이 위 각 자료에서 주체사상의 일부 내용인 대외적 자주노선과 대내적 주체노선만을 긍정적으로만 평가하면서 이를 주체사상의 핵심내용이라고 부각시키고 있을 뿐, 주체사상 중 진정한 핵심내용인 수령론 등 나머지 내용과 위 대외적 자주노선과 대내적 주체노선의 부정적인 측면에 관하여는 전혀 논급하지 아니하였고, 또한 단순히 주체사상을 분석·평가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주체사상의 핵심인 대외적 자주노선과 대내적 주체노선을 통일의 길잡이로 받아들이자고 주장하고 있는 점, 그밖에 피고인이 위 각 강연자료에서 북한과 관련한 제반표현에 있어서 ‘공화국’, ‘생존권’, ‘고난의 행군’(‘주체사상은 어떻게 형성·발전되었는가’), ‘자주 또는 주체의 나라라는 명성’, ‘제3세계의 귀감’, ‘가열차게’, ‘의연하게’, ‘끈질긴 생명력’, ‘굳건히’(‘이북사회 자주노선의 의미와 그 배경’), ‘공화국’, ‘민족정통성’, ‘정당성’, ‘생존권’(‘주체사상이 이북사회에 미친 영향’)이라는 문언을 사용한 반면, 남한과 미국과 관련한 제반표현에 있어서는 ‘압살정책’, ‘황야의 무법자’, ‘폭력중심의 세계지배질서’, ‘종속적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반통일의 주범’(‘주체사상은 어떻게 형성·발전되었는가’), ‘투쟁 대상국’, ‘미 제국주의 중심의 외세’, ‘사대주의 반민족 세력’(‘이북사회 자주노선의 의미와 그 배경’)이라는 문언을 사용한 점, 피고인이 위 각 강연자료를 제작하게 된 경위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은 위와 같이 각 강연함으로써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도 통일을 위해서는 자주적 주체노선의 입장에서 외세 및 남한 사회의 친미사대주의 세력을 척결하여야 한다고 선전·선동하고 있는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활동에 동조하였다고 인정된다.
③ 원심판결의 범죄사실 제5항에 관하여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북한이, 남한은 국제법상 실효성의 원칙과 응고된 원칙에 의해 북방한계선은 군사분계선이고 영해선이라고 억지주장을 하고 있지만, 1970년대 이후 유엔해양법이 12해리 영해를 채택하면서 북방한계선이나 서해5도 주변해역은 북한의 영해로 분류될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사실, 북한은 그러한 주장에 기하여 1999. 9.경 새로운 해상군사분계선을 선포하고, 2000. 3. 23. 남한은 북한이 설정한 두 개의 수로만을 통하여 서해5도로 통항하라는 ‘5개 섬 통항질서’를 선포한 사실, 또한 북한이 서해교전이 남한의 선제공격에 의한 것으로 남한의 호전세력과 미국이 주도하여 한반도 전쟁위기를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사실, 1999. 6. 15. 제1차 서해교전이 있은 이후 2002. 6. 29. 제2차 서해교전이 발발하자, 피고인은 2002. 6. 29.경부터 2002. 8.경까지 ‘서해교전과 맹목적 냉전성역의 허구성’이라는 기고문을 작성하여 이를 ‘진보평론’ 2002년 가을호(13호)에 게재되도록 하고, 2002. 9. 24.경 피고인의 홈페이지 중 ‘짧은 글 모음’란에 위 기고문을 게재한 사실, 피고인은 위 기고문에서 북방한계선은 북한의 영해에 불법적으로 설정된 것이고, 북한의 서해5도 통항질서 선포는 정당하며, 서해교전은 불법적인 북방한계선에서 비롯된 것으로 한국측에서 밀어붙이기식 선제공격을 가하여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위 인정사실에다가 피고인이 위 기고문에서 북방한계선 및 서해교전에 관한 북한의 위와 같은 주장을 적시하면서 피고인도 그와 같은 결론을 도출하고 있는 점, 2002. 7. 9.자 북한 노동신문에 “남의 집 마당에 주인도 모르게 금을 그어 놓고 거기까지가 자기 마당이라고 우긴다고 하여 주인이 바뀔 수야 없지 않는가”라고 기재되어 있고( 2005고단7068호 에 관한 증거기록 중 제6권 제3048쪽), 피고인의 위 기고문에 “남한이 북방한계선을 영해선이나 해상군사 분계선 및 해상포위선으로 설정하는 것은 마치 남의 집 안마당에 무단으로 줄을 그어 그 한쪽을 불법점거한 셈이 된다”라고 기재되어 있는 점, 또 피고인이 위 기고문에서 미국을 의미하는 ‘미’자를 ‘미(미)’로 표기하고 있는 점, 피고인이 위 기고문을 제작·게재하게 된 경위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은 위와 같이 피고인의 홈페이지에 위 기고문을 게재함으로써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활동에 동조하였다고 인정되고, 피고인이 위 기고문의 결론 부분에서 서해교전과 같이 서해5도 주변해역에서의 무력충돌은 민족공멸을 자초하므로, 서해5도 주변해역을 평화 및 통일해역과 공동어로 구역으로 설정하자고 서술하였다고 하더라도 달리 볼 것은 아니다.
④ 원심판결의 범죄사실 제6항에 관하여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피고인은 2004. 2.경 일부 사회단체들이 주한미군의 평택기지 이전반대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주한미군이 우리 안보를 지켜준다고’라는 기고문을 작성하여 2004. 3. 1.경 ‘ ■■■’(도서출판 ‘ ▷▷▷’ 발행)에 게재되도록 한 사실, 피고인은 위 기고문에서 조선의 해방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준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소련이고, 미국이 주도하여 한반도를 분단하였기 때문에 6·25 전쟁이 일어난 것이며, 6·25 전쟁은 내전으로 북한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전쟁이었으므로 만약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으면 한 달 이내로 전쟁이 끝나 남북이 공산화되었을 것이고 이는 역사의 필연이었으며, 북한이 아니라 주한미군이 한반도 전쟁위기를 불러오는 주범이라고 주장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위 인정사실에다가 피고인이 위 기고문에서 6·25 전쟁에 관하여는 ‘통일전쟁’이라는 문언을 사용하고, 소련에 관하여는 ‘조선의 해방에 도움을 주었다’고 서술하고, 남한에 관하여는 ‘강도를 돕는 공범자’, ‘자발적 노예주의’라는 문언을 사용하고, 미국에 관하여는 ‘조선을 분단시켰다’, ‘분단을 주도한 원흉’, ‘6·25 전쟁의 원인 제공자’, ‘살상과 파괴의 주범’, ‘한반도 전쟁위기를 불러오는 주범’, ‘사기꾼’, ‘강도행위’, ‘노골적인 위협’이라는 문언을 사용한 점, 피고인이 위 기고문을 제작하게 된 경위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은 위와 같이 위 책자에 위 기고문이 게재되도록 함으로써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6·25 전쟁을 민족해방전쟁이라고 규정하면서 제국주의인 미국에게 한반도 분단 및 6·25 전쟁의 책임이 있고, 주한미군의 존재가 우리 민족의 자주성을 짓밟고 한반도전쟁위기를 조장하고 있으므로 즉각 철수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활동에 동조하였다고 인정된다.
⑤ 원심판결의 범죄사실 제7항에 관하여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피고인은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의 공소외 6 위원장이 2005. 3. 10. 국제관계위원회 청문회에서 “한국은 누가 주적인지 분명히 말하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2005. 3. 16.경 ‘그래 주적이 누구인지 분명히 말하마’라는 기고문을 작성하여 같은 날 인터넷 신문 ‘ ◁◁◁’에 게재되도록 한 사실, 피고인은 위 기고문에서 우리나라는 미국의 신식민지 지배하에 있고, 미국에 의해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이 강요되었으며, 미국이 휴전 이후 최근에 이르기까지 9회에 걸쳐 한반도에서 전쟁위기를 야기하였다고 서술하면서 그 구체적인 예를 들고, 미국이 북핵 위기를 야기하여 우리 민족을 전쟁의 위기에 몰아넣고 있으므로 미국이 우리나라의 주적이라고 주장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위 인정사실에다가 피고인이 위 기고문에서 북한에 관하여는 ‘한반도 전쟁의 주범이거나 주적이 아니다’라고 기술한 반면, 남한에 관하여는 ‘자발적 노예주의라는 불치병’, ‘대미 예속적 고리’, ‘숭미론적 노예주의’, ‘공미론적 자폐주의’라고 표현하고, 미국에 관하여는 ‘식민지 총독’, ‘제2의 6·25 동족상잔을 강요’, ‘분단과 전쟁을 강요’, ‘끔찍한 음모의 덫을 걸고 있다’, ‘그래 주적은 바로 너 미국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켜 우리 민족을 죽이려는 전쟁주범’, ‘방해책동’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점, 피고인이 위 기고문을 제작하게 된 경위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은 위와 같이 위 인터넷 신문에 위 기고문이 게재되도록 함으로써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도, 남조선은 미제의 식민지로서 자주성을 상실하였으므로 반미자주화 투쟁을 힘차게 벌여나가 민족의 자주성을 회복하고, 미국이 한반도 전쟁위기를 조장하여 우리 민족을 말살하려 하고 있으므로 민족공조로 미제국주의 세력을 한반도에서 축출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활동에 동조하였다고 인정된다.
⑥ 원심판결의 범죄사실 제8항에 관하여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피고인은 ▶▶▶ 등 일부 단체들이 맥아더동상 철거를 주장하는 상황에서, 2005. 6. 30.경 ▶▶▶가 주최하는 ‘한국전쟁의 역사적 재조명과 맥아더의 재평가’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위 토론회에서 “6·25 전쟁은 통일전쟁으로 분단 때문에 일어났기에 분단을 주도한 원흉인 미국이야말로 6·25 전쟁의 원인제공자이고,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한국전쟁에서 최소한 400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며, 생명은인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통일 이후 숙청대상이었으나 미국으로부터 목숨을 구한 친일민족반역자에 불과하다. 맥아더의 본색을 알면 당장 맥아더동상을 부숴야 한다”고 주장한 사실, 피고인은 또 2005. 7. 26. ‘맥아더를 알기나 하나요’라는 기고문을 작성하여 그 무렵 인터넷 신문 ‘ ◁◁◁’에 게재되도록 한 사실, 피고인은 위 기고문에서 미국이 독단적으로 38선 분단을 결정하였고, 맥아더는 위 ‘분단 집행의 집달리’이며, 미국이 점령군으로서 직접적인 군사통치를 한 남쪽은 그에 반대한 좌익의 투쟁으로 혼란의 연속이었고 토지개혁과 친일파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아 정통성을 결여한 반면, 소련이 해방군으로서 간접적인 통치를 한 북쪽은 혼란 없이 토지개혁과 친일파 청산이 이루어졌고, 미국이 주도하여 한반도를 분단하였기 때문에 6·25 전쟁이 발생한 것이며, 6·25 전쟁은 내전으로 북한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전쟁이었으므로 만약 미국이 제국주의적으로 개입하지 않았으면 한 달 이내로 전쟁이 끝나 피해가 최소화되었을 것인데 맥아더라는 전쟁광 때문에 수백만 명이 더 죽게 되었다고 주장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위 인정사실에다가 피고인이 위 기고문에서 북한에 관하여는 ‘진통과 혼란이 없이 안정을 누렸으며 친일청산과 대대적인 사회경제개혁이 이뤄졌다’고 기술한 반면, 남한에 관하여는 ‘인민항쟁과 야산대와 유격대 투쟁 등 수많은 항쟁과 전투와 폭동의 연속이었다. 그 결과 6·25 전쟁 직전부터 무려 10만 명의 희생이 발생했다’, ‘분단 국내비호세력인 정치·관료 친일세력의 대부가 공소외 7이었다’라고 기술하고 있는 점, 또한 피고인은 위 기고문에서 6·25 전쟁에 관하여 ‘통일전쟁’이라고 기술하고, 남한에 관하여는 ‘ 공소외 7 정부의 체계적인 민간인 학살’이라고 표현하고, 미국에 관하여는 ‘동북아 파시스트 후견인’, ‘한반도의 분단을 주도하고 강제한 장본인’, ‘제국주의적 개입’, ‘대량살상무기에 의한 무차별 학살’, ‘한반도 전쟁위기를 몰고 오는 주범’, ‘생명을 앗아간 원수’라고 표현하고, 맥아더에 관하여는 ‘38선 분단 집행의 집달리’, ‘과대망상을 하는 전쟁광’, ‘인류의 적’, ‘원자탄 26개로 한반도 종말을 기도한 사람’, ‘민간인 학살책임자’라고 표현하고 있는 점, 피고인이 위 기고문을 제작하게 된 경위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은 위와 같이 주제발표를 하고, 위 인터넷 신문에 위 기고문이 게재되도록 함으로써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미군은 우리 민족을 억압하고 자주성을 훼손하는 제국주의 첨병으로서 점령군인 반면 소련군은 우리 민족의 반제국주의 투쟁에 도움을 준 해방군이고, 일제에 이어 미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남쪽은 민족사적 정통성이 없는 반면 해방 이전 김일성의 독립투쟁을 이어받아 토지개혁과 친일파 청산에 성공한 북쪽이 정통성 있는 정권이며, 6·25 전쟁을 민족해방전쟁이라고 규정하면서 제국주의인 미국에 한반도 분단 및 6·25 전쟁의 책임이 있고, 주한미군의 존재가 우리 민족의 자주성을 짓밟고 한반도 전쟁위기를 조장하고 있으므로 즉각 철수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활동에 동조하였다고 인정된다.
㈏ 논문 등이 헌법상의 학문의 자유의 범위 내에 있는지에 관하여
학문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적인 권리이기는 하지만 아무런 제한이 없는 것은 아니고, 헌법 제37조 제2항 에 의하여 국가의 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그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제한할 수 있는 것이며( 대법원 2000. 5. 30. 선고 2000도1226 판결 참조), 특히 북한이 여전히 우리나라와 대치하면서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고자 하는 적화통일노선을 완전히 포기하였다는 명백한 징후를 보이지 않는 현 상황에서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선전·선동에 동조하는 자유는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하여 제한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학문의 자유에 있어서, 내면적 자유인 연구의 자유는 학문의 자유의 본질적인 내용에 해당하여 제한할 수 없다고 하겠지만, 대외적 표현의 자유는 헌법 제37조 제2항 에 따라 국가의 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제한할 수 있고,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 , 제5항 이 이러한 제한에 해당한다고 볼 것이다. 대법원은 헌법상 학문의 자유는 순수하게 진리탐구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 한하여 인정되는 것이므로 반국가단체의 활동을 찬양, 고무하거나 이에 동조한다는 인식 아래 발언을 하고 글을 발표하는 행위는 이미 학문활동이라 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대법원 1986. 9. 23. 선고 86도1499 판결 , 대법원 1991. 7. 9. 선고 91도1090 판결 참조).
위에서 인정한 이 사건 논문 등이 반포·강연·게재된 경위 및 피고인의 사회단체 활동 내용 등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논문 등은 이미 피고인이 절대적으로 누릴 수 있는 연구의 자유의 영역을 벗어나 위와 같은 제한의 대상이 될 수 있게 되었다고 볼 것이고, 또 피고인이 북한문제와 통일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순수한 학문적인 동기와 목적 아래 위 논문 등을 제작·반포하거나 발표하였다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은 반국가단체의 활동에 동조한다는 인식 아래 이 사건 논문 등을 제작·반포하거나 발표한 것이어서 그것이 헌법이 보장하는 학문의 자유의 범위 내에 있다고 볼 수 없다.
㈐ 소결론
결국 피고인의 이 부분 각 주장도 모두 이유 없다.
나. 피고인 및 검사의 각 양형부당 주장에 관한 판단
피고인은 2001. 8. 21. 원심판결 범죄사실 제1 내지 4항의 범죄사실로 구속된 뒤 2001. 9. 20. 그 범죄사실로 기소되어 그 1심재판이 진행되던 중, 2001. 10. 11. 보석으로 석방되었는데, 피고인은 그 이후로도 2002. 8. 말경부터 2005. 7. 26.까지 원심판결 범죄사실 제5 내지 8항의 반국가단체 동조행위를 계속적·반복적으로 저질러 그 범죄사실로 추가 기소되었다. 피고인의 이 사건 각 범죄행위 자체만을 놓고 보더라도, 그 각 내용이 다른 국가보안법상의 이적동조 사건의 범죄내용보다 훨씬 중할 뿐만 아니라, 그 태양도 매우 자극적·선동적·공격적이고, 그 정도도 지속적으로 심화된 점에서 죄질이 나쁘고, 피고인의 범정도 매우 중하다. 피고인의 이와 같은 범죄행위가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까지 국가의 정체성과 가치관에 관하여 혼란을 일으키도록 함으로써 크게 악영향을 미쳤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 사회의 이른바 남남갈등이 심각하게 우려하여야 할 정도에 이르기까지 심화되었으며, 피고인의 선동적 발언과 논문 등의 게재에 영향을 받아 일부 학생과 대중 등은 실제로 공공질서파괴의 폭력적 범죄행위로까지 나아가기도 하였다. 그런데도 피고인은 학문의 자유라는 미명으로 자신의 모든 죄책을 가리려고만 하면서 범죄행위를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고, 이러한 피고인의 태도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이 향후 유사한 내용의 범죄를 저지를 개연성이 높다고도 보인다. 그리고, 남북 분단 이후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통하여 우리의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제도가 북한의 공산당 독재체제와 사회주의 경제제도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것이 명백히 실증되었고, 그러한 상황에서의 자신감의 발로로 사상과 학문분야에서 과거보다 전향적인 성향의 의견이 표출되고 있으며,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사상·언론·출판·학문 등의 자유를 보장하는 범위 내에서 이러한 현상을 큰 부작용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은 사실이라고 볼 수 있지만, 북한이 여전히 우리나라와 대치하면서 적화통일노선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 이를 고수하면서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고자 획책하고 있고, 지속적으로 이념공세를 가하여 오고 있는 한편 선군정치를 내세워 계속적으로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고, 심지어 2006년도에는 핵실험을 하는 등 군사력의 강화를 기도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최대의 실존적 위협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에 맞서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방어하기 위하여는 추호의 방심도 용납하지 않고 반국가단체인 북한에 동조하는 행위를 엄히 처벌하여 일반예방의 효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피고인이 많은 후학들에게 깊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대학교수이자, 대중의 여론을 조성하고자 설립된 각종 사회단체의 주도자로서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인 점에서, 피고인에 대하여는 그에 상응하는 법적 책임을 일반인에 비하여 더욱 엄격히 물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피고인에 대하여 엄중한 형을 선고하여야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현재의 시대적 상황을 보면, 북한이 선군정치를 내세워 계속적으로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고, 심지어 2006년도에는 핵실험을 하는 등 군사력의 강화를 기도하여 남북관계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기도 하였지만, 바야흐로 현시점에 이르러서는 핵폐기의 수순을 밟는 단계에 접어들어 있고, 특히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과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남한과 북한 사이에 화해협력과 교류의 분위기가 조성되어 가고 있으며, 지난 2007. 10. 4.의 남북정상회담으로 이러한 분위기는 더욱 탄력을 받고 있는 상황에 있다.
모름지기 법은 사회구성원에게 일정한 행위를 하도록 명령하거나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법이 금지하는 특정 행위가 사회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는 사회적 평가를 전제로 이를 처벌하려는 법의 의지를 국민에게 전달하고 계도하며, 이에 따라 사회구성원의 행위를 제어함으로써 사회생활에서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그 사회가 지향하는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행위규범으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고, 한편으로 법은 사회의 기본골격을 규정하고 일정한 가치에 따라 사회조직을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사회통합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 사건에서 원심은 피고인을 징역 2년 및 자격정지 2년에 처하면서 3년간 위 징역형의 집행을 유예하였다. 피고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 양형의 조건이 되는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원심의 양형을 판단한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은 엄중한 형의 선고의 필요성과 법의 행위규범으로서의 기능을 고려하여 보면, 이 법원이 이 사건에서 앞에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의 이 사건 각 행위가 유죄임을 명백히 선언하므로, 이 법원이 위에서 본 바와 같은 행위규범으로서의 국가보안법의 기능이 작용하도록 하고 있다고 볼 것이고, 피고인을 징역형과 자격정지형에 처함으로써 피고인 개인에 대하여는 그에 따른 공민권의 제한 등의 법적 제재를 가하고, 국민들에게는 피고인과 같은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볼 것이고, 한편, 앞에서 본 바와 같은 현재의 시대적 상황과 법의 사회통합기능을 고려하여 보면, 이 법원의 이 사건 판결이 우리 사회에 피고인의 행위로 일어났던 이른바 남남갈등을 재연시키는 불씨가 되어 사회의 분열을 다시금 불러일으키고, 또 다른 면에서 남한과 북한 사이의 화해협력과 교류의 분위기 조성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되고, 또 다수가 대승적 차원에서 소수를 포용하여 줌으로써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나아가 사회구성원 모두가 자유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평화적 통일의 길에 한마음으로 나서게 하는 법의 사회통합의 기능을 작용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볼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원심이 피고인을 징역 2년 및 자격정지 2년에 처하면서 3년간 위 징역형의 집행을 유예한 조치는 적정하다고 판단되고, 그것이 지나치게 가볍다거나 무거워서 부당하다고는 볼 수 없다.
따라서, 검사와 피고인의 양형부당의 항소이유는 모두 받아들일 수 없다.
3. 결론
그렇다면, 피고인 및 검사의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4항 에 따라 이를 모두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다만, 원심판결의 범죄사실 중 제5쪽 제23행의 ‘이제’는 ‘이에’의, 제6쪽 제8행의 ‘같은 달 4. 23.’은 ‘같은 달 23.’의, 제13쪽 제17행의 ‘분리하여야’는 ‘분리하려 하여도’의, 제15쪽 제23행의 ‘북한의’는 ‘북한은’의, 제17쪽 제9행의 ‘공사주의를’은 ‘공산주의를’의, 제19쪽 제19행의 ‘인공위선’은 ‘인공위성’의 각 오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