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백지어음보충권의 한도가 특정되어 있지 아니하고 그 행사방법에 대하여도 특별한 정함이 없는 경우 결과적으로 그 범위를 일탈한 보충권의 행사와 유가증권위조죄
판결요지
백지어음에 대하여 취득자가 발행자와의 합의에 의하여 정하여진 보충권의 한도를 넘어 보충을 한 경우에는 발행인의 서명날인 있는 기존의 약속 어음용지를 이용하여 새로운 약속어음을 발행하는 것에 해당하므로 위와 같은 보충권의 남용행위는 유가증권위조죄를 구성하는 것이나, 그 보충권의 한도자체가 처음부터 일정한 금액 등으로 특정되어 있지 아니하고 그 행사방법에 대하여도 특별한 정함이 없어서 다툼이 있는 경우에는 결과적으로 보충권의 행사가 그 범위를 일탈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 점만 가지고 바로 백지보충권의 남용 또는 그에 대한 범의가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할 것이고 그 보충권일탈의 정도, 보충권행사의 원인 및 경위 등에 관한 심리를 통하여 신중히 이를 인정하여야 한다.
참조조문
피 고 인
피고인
상 고 인
피고인
변 호 인
변호사 한광세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여 사건을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부에 환송한다.
이유
각 상고이유에 대하여,
원심은 피고인의 항소이유에 대한 판단을 통해서 이 사건 백지어음은 피고인이 신축하는 목욕탕 및 여관 건물의 설비공사에 관하여 도급인인 피고인이 수급인인 고소인 김 준웅이 경영하는 공소외 회사의 귀책사유로 인하여 입게 될 모든 손해를 담보하기 위하여 피고인이 그 손해상당액을 액면금으로 보충하여 유통시킬 수 있는 보충권을 수여하여 발행교부된 사실, 그런데 고소인은 위 설비공사를 하면서 그 설시와 같이 위 건물 지하실의 배수관에서 누수되게 하였고 옥상의 물탱크 등을 설계용량에 미달되게 하였으며 온수배수관의 일부 등을 누락시킨 사실, 또한 위 공사도중 이 사건 누수하자가 발견되어 피고인과 고소인, 방수업자인 공소외 송우섭 사이에 1986.2.8.까지 이를 보수하고 같은 날까지 보수를 마치지 아니하면 고소인은 1일 50만원의 비율에 의한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기로 약정하면서 그와 같은 취지의 각서까지 피고인에게 작성하여 주었으나 다툼이 계속되어 같은 해 6.10.까지 보수공사가 시행되지 않고 있던 중 피고인은 같은 해 5.2. 고소인에게 같은 달 10.까지 위 하자보수공사를 하지 아니하면 피고인 스스로 보수공사를 시행하겠다고 통고한 후 다른 공사업자를 선정하여 약 20일간 1,200만원 정도의 비용을 들여 위 보수공사를 마친 사실,그리고 피고인은 같은 해 6.10. 그 설시와 같이 이 사건 백지어음에 액면금을 6,470만원으로 보충하여 이를 유통시키고 공소의 김생룡으로부터 할인금 명목의 금원을 교부받은 사실 등을 확정한 다음 피고인은 고소인의 귀책사유로 말미암아 규격미달의 용기설치 등으로 인한 공사대금 감액요인 1,670만원과 누수하자 보수비용 1,200만원 및 손해배상약정에 따라 1986.2.9.부터 피고인의 하자보수공사 개시일인 같은 해 6.10.까지 122일간 1일 50만원의 비율에 의한 손해배상액 6.100만원을 합한 8,970만원에서 나머지 공사대금 채무액 2,500만원을 공제한 6,470만원의 손해배상채권을 고소인에 대하여 취득하게 되었으므로 이를 액면금으로 보충하여 이 사건 백지어음을 행사한 것이라는 피고인의 주장에 대하여 고소인이 옥상 물탱크 등을 당초의 설계용량에 미달하게 설치한 것은 피고인의 설계변경에 따른 것이고 위 하자보수약정에 따라 보수공사를 시행하지 않은 것도 피고인의 일방적인 방해로 인한 것이어서 고소인에게만 귀책사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며 또한 1일 50만원의 비율에 의한 손해배상금은 여관개업이 지연됨으로써 피고인이 입을 손해를 배상하기로 한 것인데 고소인이 하자보수공사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1986.4. 초순경에야 비로서 여관개업이 가능하였던 사정이엿보이며 1,200만원의 하자보수비용도 고소인이 보수의무를 부담하고 있었던 범위를 넘는 것이어서 결국 피고인이 이 사건 약속어음에 6,470만원으로 액면금을 보충한 것은 실제로 입은 손해액의 상당범위를 넘는 것이므로 위 보충행위는 유가증권위조죄를 구성하고 정당하게 보충된 약속어음인 것처럼 이를 위 김생룡에게 제시하고 할인받은 행위는 위조유가증권행사죄 및 사기죄를 구성한다고 판단하여 피고인을 위 각 죄의 경합범으로 처단하고 있다.
어음취득자로 하여금 후일 어음요건을 보충시키기 위하여 미완성으로 발행된 이른바, 백지어음에 대하여 취득자가 발행자와의 합의에 의하여 정해진 보충권의 한도를 넘어 보충을 한 경우에는 발행인의 서명날인 있는 기존의 약속어음 용지를 이용하여 새로운 약속어음을 발행하는 것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위와 같은 보충권의 남용행위는 유가증권위조죄을 구성하는 것이고 ( 당원 1972.6.13. 선고 72도897 판결 참조) 나아가 이를 정당하게 보충된 약속어음인 것처럼 상대방에게 제시하여 할인명목의 돈을 교부케 한 행위는 위조유가증권행사죄 및 사기죄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과 같이 그 보충권의 한도 자체가 처음부터 일정한 금액 등으로 특정되어 있지 아니하고 그 행사방법에 대하여도 특별한 정함이 없어서 다툼이 있는 경우에는 결과적으로 보충권의 행사가 그 범위를 일탈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 점만 가지고 바로 백지보충권의 남용 또는 그에 대한 범의가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할 것이고 그 보충권일탈의 정도, 보충권행사의 원인 및 경위 등에 관한 심리를 통하여 신중히 이를 인정하여야 할 것인 바,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은 보충한 위 액면금 6,470만원 중 규격미달의 용기설치 등으로 인한 공사대금 감액요인 1,670만원에 대하여는 그가 이른바 정산감리를 시켰다는 공소외 전 재곤을 내세워 그 금액의 내역을 주장하고 있고(공판기록 96, 106쪽) 비록 액수는 확정하지 않았으나 이미 1986.5.2. 고소인에게 내용증명을 보내어 그 지급을 청구하고 있었으며 또한 이 사건 누수하자보수비용 1,200만원과 손해배상약정에 따른 1일 50만원의 비율에 의한 손해배상액 6,100만 원에 대하여는 피고인은 고소인이 위 보수공사를 불성실하게 시행하려 하기에 이를 제지한 것일 뿐 일방적으로 위 보수공사시행을 방해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고(수사기록 403쪽, 공판기록 315쪽) 제1심증인 조성국(공판기록 202쪽), 전재곤(공판기록98쪽), 송우섭(공판기록 173쪽), 원심증인 김대윤(공판기록 361쪽)의 각 증언도 이에 부합하고 있으며 한편 고소인은 각서까지 작성하여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고 다시 이를 다투자 피고인은 1986.3.8.경 위 건물의 설계자 겸 건축사인 공소의 이종엽에게 위 하자부분에 대한 감정을 의뢰하여 위 하자는 고소인의 귀책사유로 인한 것이고 재시공을 하여야 한다는 감정결과가 나오자(수사기록 66, 20쪽) 1986.5.2. 고소인에게 누수하자보수를 위한 전면재시공을 같은 해 5.10.까지 착공하지 아니하면 스스로 착공할 것과 1일 50만원의 비율에 의한 지체배상금 및 설계도면과 달리 시공함으로써 생긴 차액의 보상금 등을 청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내었으나(수사기록 17쪽) 고소인이 같은 해 5.26. 역시 내용증명을 통하여 이를 거절하자 피고인 스스로 하자보수공사를 하고 이 사건 약속어음을 보충하여 행사한 사실이 인정되며, 또한 고소인이 작성한 이 사건 하자보수각서(수사기록70쪽) 에 의하면 위 보수약정은 1986.2.8. 여관을 개업치 못하면 고소인은 그 이튿날부터 1일 금 50만원의 비율에 의한 금원을 실제로 피고인이 입게 되는 손해액에 관계없이 배상하기로 약정한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서 이 사건 건물의 여관개업이 1986.4. 초순경에야 비로서 가능하였던 사정은 위 손해배상의 기준이 되는 일자를 정함에 있어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보이는 점 등 이 사건 백지어음의 보충원인 및 그 경위 등에 비추어 보면 비록 피고인이 보충한 이 사건 어음의 액면금은 피고인이 일방적으로 의뢰한 감정서 등에 산출근거를 둔 것이어서 실제로는 원심설시와 같이 고소인이 부담하여야 할 손해배상채무액을 넘는 것이었고, 또한 고소인으로부터 공사도급계약서의 조항대로 분쟁을 제3자의 중재에 따르자는 제의를 받고도 이에 따르지 아니하고 보충권을 행사한 것이라 할지라도 원심설시와 같이 고소인에게도 이 사건 분쟁의 근본원인인 위 불실공사나 공사지연의 일부 귀책사유가 있었던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피고인이 실제로 상당액의 수리비용을 지출하는 등 손해를 입고 있었으며 당사자사이에 그 책임의 존부나 범위에 관하여 다툼이 있는 중에 피고인은 나름대로의 근거를 내세워 고소인에게 그 하자보수의 이행 등을 독촉하다가 끝내 고소인이 이에 응하지 아니하자 이 사건 어음보충행위에 이르게 되었다면 고소인이 민사상 그 손해배상채무액에 대한 별도의 확정절차를 거쳐서 이 사건 어음금과의 정산을 볼 수 있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피고인이 위 어음을 보충한 것이 백지보충권남용에 해당되고 나아가 이에 대한 범의가 있었다고 단정하여 피고인에게 형사책임을 지우기는 어렵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이 이 사건 어음의 액면금액이 그 보충권의 범위를 상당정도 넘었으리라는 점만 가지고 피고인에게 백지어음보충권 남용에 대한 범의가 인정된다는 전제아래 유가증권위조죄와 동행사죄 및 사기죄가 구성된다고 판단한 것은 판결에 영향을 미친 백지어음보충권 남용의 범의에 대한 법리오해가 아니면 심리미진 또는 채증법칙위배로 인한 사실오인의 위법을 저지른 것이라 할 것이므로 이 점을 지적하는 논지는 이유있다.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인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부로 환송하기로 관여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어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