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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2005. 3. 11. 선고 2003가합9129 판결
[양수금] 항소[각공2005.6.10.(22),898]
판시사항

[1] 현대그룹의 대북사업 및 대북송금과정에서 현대전자산업 주식회사가 현대건설 주식회사 거래계좌에 송금한 금액은 대북송금용 자금 중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전자산업 주식회사의 분담 부분으로서 대여금으로 볼 수 없다고 한 사례

[2] 계약의 실질적인 당사자는 해외 현지법인이 아닌 모회사라고 판단하여, 모회사와 계약 상대방 사이의 의사가 일치하는 이상 해외 현지법인이 의사불일치를 이유로 계약불성립을 주장할 수 없다고 한 사례

[3] 이사회가 일반적·구체적으로 대표이사에게 위임하지 않은 업무로서 일상 업무에 속하지 아니한 중요한 업무에 대하여 이사회에게 그 의사결정권한이 있는지 여부(적극)

[4] 현대그룹의 대북송금과정에서 그 송금 방법으로 다른 계열 회사의 거래계좌를 이용할 것인지의 여부는 이사회 결의 사항이 아닌 대표이사의 일상적인 업무의 범위 내에 속하는 것이라고 한 사례

[5] 해외 현지법인이 모회사 대표이사의 지시에 따라 대북송금분담액을 그 내용을 알지 못하고 송금한 경우, 위 대북송금과 관련하여 해외 현지법인은 모회사에 대하여 구상권 기타 법률상의 권리를 가지고 있으므로 위 대북송금과정상 불법행위의 피해자라고 볼 수 없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1] 현대그룹의 대북사업 및 대북송금과정에서 현대전자산업 주식회사가 현대건설 주식회사 거래계좌에 송금한 금액은 대북송금용 자금 중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전자산업 주식회사의 분담 부분으로서 대여금으로 볼 수 없다고 한 사례.

[2] 계약의 실질적인 당사자는 해외 현지법인이 아닌 모회사라고 판단하여, 모회사와 계약 상대방 사이의 의사가 일치하는 이상 해외 현지법인이 의사불일치를 이유로 계약불성립을 주장할 수 없다고 한 사례.

[3] 주식회사의 이사회는 회사의 업무집행에 관한 의사결정권한이 있고, 법률 또는 정관 등의 규정에 의하여 주주총회 또는 이사회의 결의를 필요로 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 아니한 업무 중 이사회가 일반적·구체적으로 대표이사에게 위임하지 않은 업무로서 일상 업무에 속하지 아니한 중요한 업무에 대하여는 이사회에게 그 의사결정권한이 있다.

[4] '대북사업권 등의 대가로 북한측에 1억 달러의 거액을 송금할 것인지 여부'는 대표이사의 일상 업무에 속하지 아니한 중요한 업무라 할 것이어서 회사의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할 사항이라 할 것이나, 반면에 '대북송금과정에서 다른 계열 회사의 거래계좌를 이용할 것인지의 여부'는 대북송금의 의사결정에 따르는 '송금 방법'에 관한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어서 대표이사의 일상적인 업무의 범위 내에 속하는 것으로 이사회 결의 사항이라고 볼 수 없다고 한 사례.

[5] 해외 현지법인이 모회사 대표이사의 지시에 따라 대북송금분담액을 그 내용을 알지 못하고 송금한 경우, 위 대북송금과 관련하여 해외 현지법인은 모회사에 대하여 구상권 기타 법률상의 권리를 가지고 있으므로 위 대북송금과정상 불법행위의 피해자라고 볼 수 없다고 한 사례.

원고

하이닉스 세미컨덕터 유케이 리미티드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세종 담당변호사 강신섭외 2인)

피고

현대건설 주식회사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광장 담당변호사 권광중외 3인)

변론종결

2005.2.28.

주문

1.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2.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주위적 및 예비적으로, 피고는 원고에게 미화 1억 달러 및 이에 대하여 2000. 6. 10.부터 2003. 5. 31.까지 연 6%,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돈을 지급하라.

이유

1. 기초적 사실관계

가. 당사자의 관계

원고는 주식회사 하이닉스반도체(2001. 3. 29. 변경 전 상호 : 현대전자산업 주식회사, 이하 편의상 종전 상호대로 '현대전자'라고만 한다)의 영국 현지법인이고, 하이닉스 세미컨덕터 아메리카 인크{Hynix Semiconductor America Inc, 2001. 5. 1. 변경 전 상호 : 현대 일렉트로닉스 아메리카 인크(Hyundai Electronics America Inc.), 이하 '하이닉스 아메리카'라고 한다}는 현대전자의 미국 현지법인이며, 하이닉스 세미컨덕터 재팬 인크{Hynix Semiconductor Japan Inc., 변경 전 상호 : 현대 일렉트로닉스 재팬 리미티드(Hyundai Electronics Japan Limited), 이하 '하이닉스 재팬'이라고 한다}는 현대전자의 일본국 현지법인이고, 피고 회사는 건설업 등을 영위하기 위하여 설립된 법인이며, 현대 알카파지 컨트렉팅 엘엘씨(Hyundai Al Khafajy Contracting L.L.C., 이하 '현대 알카파지'라고 한다)는 두바이에 소재하는 피고 회사의 아랍에미리트국 현지법인이다.

나. 미화 1억 달러의 송금

2000. 6. 9. 하이닉스 아메리카는 8,000만 달러를, 하이닉스 재팬은 2,000만 달러를 각 피고 회사의 런던지사 거래예금계좌로 송금하였고, 피고 회사 런던지사는 Raiffcisen Zentral Bank의 Wien지점 등에 개설된 북한측 아태위원회 지정의 3개 예금계좌로 2000. 6. 9. 2,000만 달러, 6. 12. 8,000만 달러를 각 송금함으로써, 합계 미화 1억 달러(이하 '미화'는 생략한다)를 북한측에 송금하였다.

다. 대여계약서 및 채권양도계약서의 존재

한편, "대여자 하이닉스 아메리카, 차용인 현대 알카파지, 계약체결일 2000. 6. 7., 대여금액 8,000만 달러"인 하이닉스 아메리카와 현대 알카파지 사이의 대여계약서(갑8의 2)와 "대여자 하이닉스 재팬, 차용인 현대 알카파지, 계약체결일 2000. 6. 7., 대여금액 2,000만 달러"인 하이닉스 재팬과 현대 알카파지 사이의 대여계약서(갑8의 1), "하이닉스 아메리카와 하이닉스 재팬(이하 위 회사들을 통칭할 때 '소외 회사들'이라 한다)이 2000. 7. 12.자로 원고에게 현대 알카파지에 대한 각 대여금채권을 양도한다."는 내용의 원고와 소외 회사들 사이의 각 채권양도계약서(갑9의 1·2)가 존재한다.

[인정 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1·2의 각 1·2, 갑3, 갑4·8·9의 각 1·2, 변론 전체의 취지

2. 주위적 청구에 대한 판단

가. 당사자의 주장

(1) 원고의 주장

(가) 피고 회사가 2000. 6.경 만기가 도래한 해외 차입금 등의 변제자력 부족으로 자금 유동성 위기를 겪자, 피고 회사의 대표이사 김윤규와 현대그룹 최고경영자 망 정몽헌은 현대전자의 대표이사 박종섭에게 1억 달러의 긴급 자금 지원을 요청하였다.

(나) 위 요청을 받아들인 박종섭의 지시에 따라, 2000. 6. 9. 하이닉스 아메리카는 8,000만 달러를, 하이닉스 재팬은 2,000만 달러를 각 피고 회사의 런던지사 거래계좌로 송금함으로써 합계 1억 달러를 피고 회사에 대여하였고, 소외 회사들은 2000. 7. 12. 원고에게 위 각 대여금채권을 양도하였으며, 소회 회사들은 2002. 12. 9. 피고 회사에게 위 채권양도사실을 통지하였다.

(다) 다만, 소외 회사들은 긴박하게 위 1억 달러를 송금하였던 관계로 피고 회사와 사이에 대여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하였고, 피고 회사는 현대전자의 계속적인 요청에도 불구하고 대여계약서 작성을 미루다가 2000. 9. 25.경에 이르러서야 차용인 명의를 현대 알카파지로 한 이 사건 각 대여계약서를 작성·교부하였다.

(라) 따라서 피고 회사는, 위 대여금채권을 적법하게 양도받은 원고에게 대여원금 1억 달러 및 이에 대한 상사법정이자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

(2) 피고 회사의 주장

(가) 소외 회사들이 피고 회사 거래계좌에 송금한 위 1억 달러는 정몽헌의 지시에 따른 대북송금용 자금 중 현대그룹의 계열사인 현대전자의 분담 부분이고, 피고 회사는 그 송금과정에서 현대전자측의 요청에 따라 거래계좌만을 빌려주었을 뿐, 위 1억 달러를 차용한 사실이 없다.

(나) 또한, 이 사건 각 대여계약서는 현대전자측의 요청에 따라 원고의 회계처리를 위하여, 청산을 앞둔 현대 알카파지를 차용인으로 하여 작성된 것이다.

나. 판 단

(1) 소외 회사들이 피고 회사에게 송금한 위 돈이 대여금이라는 원고의 주장에 부합하는 갑10의 2, 29, 31, 32, 갑29의 1, 갑32의 각 기재, 증인 정창시, 전인백의 각 증언은 모두 믿기 어렵고, 한편 갑1·2의 각 1·2, 갑3, 갑4·8·9의 각 1·2, 갑10의 2, 갑11 내지 20, 갑27의 1·2, 갑28, 30, 31, 을1의 36, 37(가지번호 있는 증거의 각 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 증인 정창시, 김선규, 정인선의 각 일부 증언에 의하면, 2000. 5. ~ 6.경 피고 회사가 자금 유동성 위기에 처해 있었던 사실, 소외 회사들이 피고 회사의 거래계좌로 합계 1억 달러를 송금한 사실, 소외 회사들과 피고 회사의 계열사인 현대 알카파지 명의의 이 사건 각 대여계약서가 존재하는 사실, 소외 회사들의 송금증빙자료에 '송금목적'이 '계열회사간 단기대여금'으로 기재되어 있는 사실, 피고 회사측에서 박종섭에게는 북한측 계좌번호를 알려준 적이 없는 사실, 현대전자가 2000. 11.경 채권은행단에게 제출한 '기업정보자료'와 2001. 6.경 해외주식예탁증서를 발행할 때 배포한 '투자제안서'에 이 사건 1억 달러가 피고 회사에 대한 대여금으로 기재되어 있는 사실은 인정되나, 아래에서 인정되는 사실관계에 비추어 볼 때, 위 인정 사실만으로는 소외 회사들이 위 돈을 피고 회사에게 대여한 것이라고 인정하기 어려우며,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2) 오히려,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거나, 갑1·2·4의 각 1·2, 갑6, 갑7 내지 8의 각 1·2, 갑10의 4 내지 7·10·28·42·44·45, 갑24, 갑27의 1·2, 갑28, 을1의 46 내지 48·150·151·176·182, 을2, 4, 을5·6의 각 1 내지 3, 을8의 각 기재와 증인 정인선, 김재수의 각 증언, 증인 김선규, 정인선의 각 일부 증언(앞에서 배척한 부분 제외)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인정된다.

(가) 현대그룹의 대북사업과 대북송금에 대한 합의

① 현대그룹은 망 정주영 명예회장(2001. 3. 21. 사망)이 1989.경 민간 기업인으로서는 최초로 북한을 방문하여 금강산 관광사업 등을 협의하고 남북경제협력사업의 모태가 되는 의정서를 체결한 이후로 지속적으로 남북경제협력사업에 관심을 가져 왔고, 1999. 2.경 대북사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현대상선 주식회사(이하 '현대상선'이라고 한다), 피고 회사 등 8개의 현대 계열사들이 출자하여 현대아산 주식회사를 설립하였으며, 정주영의 아들인 정몽헌이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으로 취임하여 대북사업을 총괄하게 되었다.

② 정몽헌은 남·북한관계의 획기적인 진전을 위하여 남북정상 간의 직접 만남이 절실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고, 당시 김대중 대통령 정부도 정부 출범 초기부터 대북 포용 정책을 추진하자, 2000. 초순경 조총련계 일본인 사업가 요시다를 통하여 북한측에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타진하고, 북한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게 되었다.

③ 이후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기 위한 남북한 대표의 접촉과정에서, 북한측이 2000. 4. 8. 현대그룹에게 대북사업권에 대가로 현금 7억 달러를 요구하면서 그 같은 제안을 거부하면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고 하자, 현대그룹은 4억 달러를 지급하기로 최종 합의하면서 3억 5,000만 달러는 현금으로 지급하고, 나머지 5,000만 달러는 평양체육관 건립 등으로 그 지급에 갈음하기로 했으며, 다만 북한측의 긴급한 자금필요 등을 이유로 3억 5,000만 달러를 정상회담 전에 송금해 주기로 하였는데, 이에 북한측은 우리 정부측과의 협상을 재개하여 남북정상회담 개최 전에 우리 정부도 북한측에 현금 1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합의하고 최종합의서를 교환하였다.

④ 현대아산은 2000. 5. 3. 북한측과 사이에, 북한의 모든 사회간접자본시설과 기간산업시설에 대한 개발, 건설 및 운영 등에 관한 사업권을 30년간 현대그룹에게만 부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경제협력사업권에 관한 합의'를 체결함과 동시에 그에 포함하여 그 동안 양측이 협의해 온 철도, 통신, 전력 등 이른바 7대 사업에 관한 '잠정합의서'를 작성하였다.

⑤ 그 당시 문화부장관이던 박지원은 2000. 5. 중순경 정몽헌에게 우리 정부에서 부담하기로 약속한 1억 달러를 조달하는 데 어려움이 있으니 현대그룹에서 이를 대신 지급해 달라고 요청했고, 정몽헌은 이를 수락했다.

(나) 현대전자의 대북송금 경위

① 정몽헌은 2000. 5. 31.부터 2000. 6. 1. 사이에 현대상선 대표이사 김충식, 피고 회사 대표이사 김윤규, 현대전자 대표이사 박종섭을 개별적으로 불러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에 필요하니 현대상선은 2억 달러, 현대건설은 1억 5,000만 달러, 현대전자는 1억 달러를 마련하여 북한측 아태위원회가 지정한 북한측 계좌로 송금하도록 지시했다.

② 박종섭은 피고 회사 관리본부장인 김재수에게, 제조업체인 현대전자에 비해 거액의 해외자금 입·송금이 자유로운 피고 회사가 현대전자를 대신하여 1억 달러를 북한측에 송금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이에 피고 회사는 '잔고가 적고 실제로 잘 이용하지 않는 런던지사의 거래계좌'를 그 경유계좌로 하여 현대전자의 송금 편의를 봐 주기로 하였다.

③ 박종섭은 2000. 6. 9. 현대전자 재정담당상무인 정창시를 통하여, 현대전자의 해외 법인들 중 소외 회사들이 합계 1억 달러의 여유 자금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고, 하이닉스 아메리카는 8,000만 달러를, 하이닉스 재팬은 2,000만 달러를 위 거래계좌에 송금하도록 지시하였으며, 이에 소외 회사들은 위 거래계좌로 위 돈을 각 송금하였다.

(다) 대여계약서(갑8의 1·2) 및 채권양도계약서(갑9의 1·2)의 작성 경위

① 위 정창시는 위와 같이 대북송금이 이루어진 후 2000. 6. 중순경 피고 회사 해외공사 관리부 책임자인 김선규에게, 피고 회사측에서 현대전자의 대북송금자금 1억 달러의 회계처리를 위한 대여계약서 작성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② 이에 김선규는 피고 회사 세무회계팀장인 정인선에게 "현대전자의 회계처리에 필요한 대여계약서 작성에 협조해 주는 방안을 검토할 것"을 지시하였고, 위 정인선은 청산을 앞두고 있는 현대 알카파지를 차용인으로 하여 대여계약서를 작성해 주기로 하고, 현대전자 실무자인 강선구 부장과 협의하여 대여계약서 작성에 필요한 '대출조건개요서(갑6)'를 작성하여 현대전자에게 교부하였다.

③ 현대전자는 피고 회사에게, ㉮ 2000. 6. 23.경 위 '대출조건개요서'에 따라 차용인을 현대 알카파지로 한 대여계약서 초안(Draft, 이자율 : 리보금리 + 3.5%, 만기 및 이자계산기간 : 3개월)을 작성·교부하였고, ㉯ 2000. 7. 21.경 다시 이자율을 '리보금리 + 2.5%'로, 만기 및 이자계산기간을 '6개월'로 수정한 대여계약서 수정본을 보내 주면서 "현대 알카파지 대표자의 서명·날인을 받은 후, 사본은 현대전자로, 원본 1부씩은 소외 회사들에게 송부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④ 이에 피고 회사는 2000. 8.경 위 대여계약서 수정본을 현대 알카파지에 보내어 그 대표자 김상욱의 서명을 받아 두었으나, 김재수의 대여계약서 작성 협조 중단 지시에 의하여 대여계약서 작성 작업이 잠시 중단되었다가, 2000. 9. 25.경 위와 같이 김상욱의 서명을 받아 놓은 이 사건 각 대여계약서(갑8의 1·2)를 현대전자에게 교부하였다.

⑤ 한편, 현대전자는 2000. 7. 10. 미화 1억 7천만 달러 상당의 하이닉스 아메리카의 변동금리부채권 상환 만기가 도래하자 자금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2000. 7. 20. 원고의 자회사인 하이닉스 스코틀랜드 현지법인(Hyundai Semiconductor Europe Limited) 소유의 공장 매각대금(그 매각협상이 2000. 초부터 진행되어 오다가 2000. 7. 20. 매매계약 체결과 동시에 매각대금을 지급받았다.)으로 모토롤라(Motorola Limited)에게서 지급받은 1억 6,250만 달러(부가세 불포함) 중 8,000만 달러를 하이닉스 아메리카에게, 2,000만 달러를 하이닉스 재팬에게 송금해 주었고, 그 회계처리를 위하여 2000. 10. 12. 원고와 소외 회사들 사이의 2000. 7. 12.자 각 대여금 채권양도계약서(갑9의 1·2)를 작성하였다.

⑥ 현대전자 상무이사 임정호는 2001. 3.경 피고 회사에게 원고의 회계감사에 필요한 자료를 요청하였고, 이에 피고 회사는 현대 알카파지 명의의 채무확인서(을5의 2), 만기연장요청서{갑28(=을6의 2), 을6의 1} 등을 작성하여 원고에게 교부하였다.

(라) 그 이후의 경과

① 원·피고의 회계처리내용

원고는 2000. 말경 외부 회계감사를 받는 과정에서 이 사건 각 대여계약서에 따른 양수금채권을 회수불능채권으로 보고 대손충당금으로 처리하였고, 2001. 말경에는 그 대손충당금으로 위 양수금채권 전액을 대손상각처리하였으며, 한편 피고 회사와 현대 알카파지는 소외 회사들이 피고 회사에게 송금한 1억 달러에 대해서는 전혀 회계처리를 한 바 없고, 피고 회사는 피고 회사의 대북송금분담액 중 이 사건 1억 달러와 같은 거래계좌를 통하여 북한측에 송금한 5,000만 달러에 대하여 이란국에서의 공사와 관련된 전도금으로 분식회계처리하였다.

② 현대 알카파지의 청산

현대 알카파지는 2000. 초경부터 청산대상 법인으로 지정되어 있다가 2001. 9. 11. 그 이사회의 법인 청산 결의에 따라 2002. 12. 14.자로 청산 종결되었다.

③ 채권양도사실 통지 및 이 사건 소의 제기

소외 회사들은 2002. 12. 9.에 이르러 피고 회사에게 이 사건 각 대여계약서에 기한 대여금채권을 원고에게 양도하였다는 내용의 채권양도사실을 통지하고, 원고의 모회사인 현대전자는 2002. 12. 9. 및 2003. 1. 10. 피고 회사에게 원고에 대한 채권양수금 및 이에 대한 상사법정이자의 지급을 요청한 후, 원고는 2003. 2. 5.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④ 남북정상회담의 개최와 현대그룹의 대북사업 진전

한편, 현대그룹이 4억 5,000만 달러를 모두 북한측에 송금한 후 2000. 6. 13.부터 2000. 6. 15.까지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고, 그 후 현대그룹은 대북사업권현상을 본격적으로 진행시켜 2000. 8. 22. 공업지구 건설 및 북쪽 사회간접자본시설사업 등에 관한 포괄적인 '합의서'를 체결함과 동시에 이를 구체화하는 '금강산, 통천, 원산지구 협력사업에 관한 합의서', '공업지구 건설운영에 관한 합의서', '경제협력사업권에 관한 합의서' 및 '철도, 통신, 전력 등 7대 사업에 관한 부속 합의서' 등을 체결하여 남북경제협력사업을 구체화시켰다.

(3) 살피건대, 위와 같은 현대그룹의 대북송금합의 및 현대전자의 대북송금 경위, 현대전자와 소외 회사들 간의 관계, 이 사건 각 대여계약서 및 채권양도계약서 작성 경위, 그 이후의 원고와 현대전자와 피고 회사의 대북송금자금에 대한 회계처리내용, 소외 회사들의 뒤늦은 채권양도사실 통지, 원고의 채권양수금 지급청구 및 이 사건 소 제기 경위 등에 비추어 볼 때, 소외 회사들이 피고 회사 거래계좌에 송금한 위 1억 달러는 정몽헌의 지시에 따른 대북송금용 자금 중 현대그룹의 계열사인 현대전자의 분담 부분으로서 소외 회사들은 단지 현대전자의 대표이사 박종섭의 지시에 따라 위 1억 달러를 피고 회사의 거래계좌에 송금하였을 뿐이고, 피고 회사는 그 송금과정에서 현대전자의 요청에 따라 거래계좌만을 빌려주었을 뿐이라고 보여지므로, 결국 소외 회사들이 피고 회사에게 송금한 위 돈은 정몽헌의 지시에 따라 현대전자가 북한측에 지급한 돈으로서 현대전자나 소외 회사들이 피고 회사에게 지급하는 대여금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할 것이어서, 원고의 위 채권양수금 지급청구는 나머지 점에 관하여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이유 없다.

3. 예비적 청구에 대한 판단

가. 부당이득반환청구에 대한 판단

(1) 계약 불성립에 기한 부당이득청구에 대한 판단

(가) 원고의 주장

박종섭으로부터 위 1억 달러가 대북송금용 자금의 일부임을 고지받지 못한 하이닉스 아메리카의 대표이사 전인백과 하이닉스 재팬의 대표이사 이용두는 '대여의 의사'로 위 돈을 피고 회사에게 송금하였고, 피고 회사는 박종섭의 요청에 따라 위 1억 달러를 현대전자 대신 북한측에 송금하는 '위임사무 처리의 의사'로 피고 회사의 거래계좌로 송금받았으므로, 결국 소외 회사들과 피고 회사 사이의 위임계약(이하 '이 사건 위임계약'이라 한다)은 당사자 간의 의사불일치로 성립조차 못했다고 할 것이어서, 피고 회사는 소외 회사들의 피고 회사에 대한 일체의 채권 주1) 을 양수한 원고에게 위 1억 달러를 부당이득으로서 반환할 의무가 있다.

(나) 판 단

위 제2의 나.(2)항에서 살펴본 사실관계 및 갑10의 2의 일부 기재, 증인 정창시, 전인백의 각 일부 증언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① 원고 및 소외 회사들은 모두 현대전자가 그 자본금의 100%를 출자하여 설립한 해외 현지법인으로서 하이닉스의 지시와 감독을 받는 점, ② 하이닉스 아메리카의 이사회는 4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표이사는 피고 회사의 이사 전인백이, 이사 중 1인은 박종섭이 각 겸직하고 있었고, 정몽헌이 2000. 6. 1.까지 하이닉스의 이사직을 겸직하고 있었던 점, ③ 정몽헌으로부터 송금요청을 받은 상대방은 현대전자의 대표이사 박종섭이었고, 소외 회사들은 박종섭의 지시에 따라 송금하였을 뿐인 점, ④ 소외 회사들과 현대 알카파지 사이의 이 사건 대여계약서 작성에 대한 협조요청, 합의과정, 대여계약서 교부 등은 모두 현대전자를 통하여 이루어진 점, ⑤ 현대전자의 계열사 전체의 자금 관리는 현대전자 본사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소외 회사들은 현대전자의 지시에 따라 그 내용을 알지 못한 채 위 1억 달러를 송금하였을 뿐인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이 사건 위임계약의 실질적인 계약당사자는 소외 회사들의 모회사인 현대전자라 할 것이고, 현대전자의 대표이사 박종섭이 정몽헌의 대북송금 지시에 따라 그 내용을 알고 위 1억 달러를 송금하는 과정에서 피고 회사의 거래계좌를 이용한 사실은 위 제2의 나.항에서 살펴본 바와 같으므로, 이 사건 위임계약의 당사자인 현대전자의 의사는 피고 회사의 의사와 일치한다 할 것이고, 이 사건 위임계약의 당사자가 소외 회사들임을 전제로 계약당사자 간의 의사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원고의 위 주장은 나머지 점에 관하여 살필 필요 없이 이유 없다.

(2) 계약 무효에 기한 부당이득청구에 대한 판단

(가) 원고의 주장

소외 회사들의 이 사건 대북송금행위는 이사회 결의 사항인바, 피고 회사는 이 사건 위임계약 당시 소외 회사들 또는 현대전자의 이사회 결의가 없었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으므로 결국 이사회 결의 없이 이루어진 이 사건 위임계약은 무효라 할 것이므로, 피고 회사는 소외 회사들의 피고 회사에 대한 일체의 채권을 양수한 원고에게 위 1억 달러를 부당이득으로서 반환할 의무가 있다.

(나) 판 단

무릇, 주식회사의 이사회는 회사의 업무집행에 관한 의사결정권한이 있고( 상법 제393조 제1항 ), 법률 또는 정관 등의 규정에 의하여 주주총회 또는 이사회의 결의를 필요로 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 아니한 업무 중 이사회가 일반적·구체적으로 대표이사에게 위임하지 않은 업무로서 일상 업무에 속하지 아니한 중요한 업무에 대하여는 이사회에게 그 의사결정권한이 있다고 할 것이다( 대법원 1997. 6. 13. 선고 96다48282 판결 등 참조).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현대전자 및 소외 회사들이 '대북사업권 등의 대가로 북한측에 1억 달러의 거액을 송금할 것인지 여부'는 각 대표이사의 일상 업무에 속하지 아니한 중요한 업무라 할 것이어서 위 각 회사의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할 사항이라 할 것이나, 반면에 '대북송금과정에서 피고 회사와 사이에 이 사건 위임계약을 체결할 것인지 여부'는 대북송금의 의사결정에 따르는 '송금 방법'에 관한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어서 대표이사의 일상적인 업무의 범위 내에 속하는 것이라 할 것이고, 달리 이 사건 위임계약 내용이 현대전자 및 소외 회사들의 이사회 결의 사항이라는 점을 인정할 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다(또한, 대북송금의 상대방은 북한측이므로 원고는 대북송금 여부에 대한 이사회 결의 부존재를 이유로 하여 피고 회사에게 이 사건 위임계약의 무효를 주장할 수도 없다).

따라서 이 사건 위임계약이 이사회 결의 사항임을 전제로 한 원고의 위 주장은 나머지 점에 관하여 살필 필요 없이 이유 없다.

나.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청구에 대한 판단

(1) 기망에 의한 불법행위 주장에 대한 판단

원고는, 정몽헌과 피고 회사의 대표이사 김윤규, 관리본부장 김재수, 해외공사관리부 책임자 김선규가 공모하여 이 사건 1억 달러를 상환할 의사 없이, 마치 피고 회사의 긴박한 유동성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위 돈을 차용하는 것처럼 박종섭을 기망하여 소외 회사들로 하여금 위 돈을 피고 회사에 송금하게 함으로써 이를 편취하였다고 주장하면서 피고 회사에게, 그 대표이사인 김윤규의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책임( 민법 제35조 ) 내지 그 피용자인 김재수, 김선규의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책임( 민법 제756조 )을 구하는바 살피건대, 정몽헌, 김윤규, 김재수, 김선규가 공모하여 박종섭을 위와 같이 기망하였다는 점에 부합하는 갑10의 2·29·31, 갑29의 1, 갑32의 각 기재, 증인 정창시, 전인백의 각 증언은 믿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으며, 오히려 박종섭이 정몽헌의 대북송금 지시에 따라 그 내용을 알고 위 1억 달러를 송금한 사실은 위 제2의 나.항에서 살펴본 바와 같으므로, 원고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2) 배임에 의한 불법행위 주장에 대한 판단

(가) 원고의 주장

박종섭은 현대전자의 대표이사 또는 소외 회사들의 이사로서 이사회 결의 없이 정몽헌의 대북송금 지시에 따라 위 1억 달러를 북한측에 송금함으로써 업무상 임무에 위배하여 소외 회사들에 대하여 배임행위를 하였고, 정몽헌, 김윤규, 김재수, 김선규 등 피고 회사의 임원들은 박종섭의 배임행위를 교사하거나, 박종섭과 공모하여 그 배임행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함으로써 소외 회사들에게 손해를 입혔으므로, 피고 회사는 공동불법행위자인 피고 회사들의 임원들의 행위에 대하여 민법 제35조 내지 민법 제756조 에 의하여 소외 회사들로부터 일체의 채권을 양수한 원고에게 그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

(나) 판 단

법인은 이사 기타 대표자가 그 직무에 관하여 타인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고( 민법 제35조 ), 타인을 사용하여 어느 사무에 종사하게 한 자는 피용자가 그 사무집행에 관하여 제3자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으며( 민법 제756조 ), 위 규정들에 의하여 피고 회사의 소외 회사들(또는 그들로부터 일체의 채권을 양수한 원고)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원고가 공동불법행위자라고 주장하는 박종섭 및 정몽헌, 김윤규, 김재수, 김선규 등 피고 회사 임원들의 행위가 민법 제750조 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하여야 한다.

먼저 박종섭의 1억 달러 대북송금행위가 소외 회사들에 대한 불법행위에 해당하는지에 관하여 보건대, 소외 회사들은 모회사인 현대전자의 대표이사 박종섭의 지시에 따라 그 내용을 알지 못한 채 위 1억 달러를 송금하였을 뿐인 사실은 위 제3의 가.⑴항에서 살펴본 바와 같으므로 이 사건 대북송금 및 위임계약의 당사자는 소외 회사들이 아닌 현대전자라 할 것이고, 소외 회사들로서는 현대전자에 대하여 위 1억 달러 송금과 관련하여 구상권 기타 법률상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므로 위 1억 달러의 송금으로 인하여 어떠한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볼 수 없다 할 것이어서, 결국 소외 회사들이 위 1억 달러의 송금으로 인한 피해자임을 전제로 하는 원고의 위 주장은 나머지 점에 관하여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이유 없다.

4. 결 론

그렇다면 원고의 이 사건 주위적 및 예비적 청구는 모두 이유 없으므로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김윤기(재판장) 이규훈 이세라

주1) 갑9의 1, 2의 기재에 의하면, 원고가 소외 회사들로부터 양수받은 권리는 ‘소외 회사들이 현대 알카파지에 대한 대여금채권과 관련된 소외 회사들의 모든 권리, 소유권 및 이권’인 사실이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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