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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고법 2018. 4. 6. 선고 2017나13464 판결
[손해배상(기)] 상고[각공2018상,392]
판시사항

정부 수립 직후 발생한 이른바 여순사건의 진압과정에서 군과 경찰에 의해 살해된 갑 등 민간인 희생자의 유족들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정리위원회’라고 한다)의 진실규명결정이 있은 날로부터 약 7년 9개월이 지난 시점에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자, 국가가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시효 완성으로 소멸하였다고 항변한 사안에서, 위 유족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소멸시효 완성으로 소멸하였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정부 수립 직후 발생한 이른바 여순사건의 진압과정에서 군과 경찰에 의해 살해된 갑 등 민간인 희생자의 유족들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정리위원회’라고 한다)의 진실규명결정이 있은 날로부터 약 7년 9개월이 지난 시점에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자, 국가가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시효 완성으로 소멸하였다고 항변한 사안에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갑 등을 희생자로 확인하는 내용의 진실규명결정을 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유족들로서는 위 결정에 기초하여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할 경우 국가가 적어도 소멸시효의 완성을 들어 권리소멸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에 신뢰를 가질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봄이 타당하여 국가가 유족들에게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으나, 유족들이 소멸시효 항변을 저지하기 위하여 권리를 행사하여야 하는 ‘상당한 기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상 시효정지의 경우에 준하여 단기간으로 제한되고, 매우 특수한 사정이 있어 기간을 연장하는 것이 부득이한 경우라도 민법 제766조 제1항 에서 정한 단기소멸시효기간인 3년을 넘을 수는 없으므로, 위 유족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소멸시효 완성으로 소멸하였다고 한 사례.

원고, 항소인

별지 1 원고 명단 기재와 같음 (소송대리인 변호사 위성권)

피고, 피항소인

대한민국

변론종결

2018. 3. 16.

주문

1. 원고들의 항소를 모두 기각한다.

2. 항소비용은 원고들이 부담한다.

청구취지 및 항소취지

제1심판결을 취소한다. 피고는 원고들에게 별지 2 원고별 청구금액표의 ‘변경 후 청구금액’란 기재 각 돈 및 이에 대하여 이 사건 소장 송달일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5%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원고들은 당심에서 위 표의 ‘변경 전 청구금액’란 기재 각 돈의 일부만을 청구하는 것으로 청구취지를 감축하였다).

이유

1. 기초 사실

가. 구례지역 민간인 희생사건의 발생

1) 피고 산하 육군본부는 1948. 10. 19. 당시 여수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육군 제14연대에 제주 4·3사건 진압을 위해 제주도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하였는데, 이에 반대하는 위 제14연대 소속 군인 약 2,000명이 반란을 일으켜 여수·순천 지역을 장악했다.

2) 이에 정부는 광주에 토벌군사령부를 설치하고 1948. 10. 22.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한 후 육군 제2 내지 6, 12, 15연대 등 진압군으로 하여금 여수를 탈환하도록 지시하였고, 진압군은 1948. 10. 27. 여수를 탈환하였다.

3) 이후 진압군은 지리산 일대를 중심으로 반란군 토벌작전을 진행하였고, 피고 소속 진압군과 경찰이 1948. 10. 말경부터 1949. 7.경까지 전남 구례군 산동면, 간전면, 토지면, 구례읍, 마산면, 문척면, 광의면, 용방면 일대에서 반란군 협력자 및 좌익혐의자를 색출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민간인이 살해되었다(이하 ‘구례지역 민간인 희생사건’이라 한다).

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

피고 산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정리위원회’라고만 한다)는 2008. 7. 8. 별지 2 원고별 청구금액 및 항소금액 표 중 ‘희생자’란 기재 망인들(이하 ‘망인들’이라 한다) 등을 구례지역 민간인 희생사건의 희생자로 확인하는 내용의 진실규명결정(이하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이라 한다)을 하였다.

다. 원고들과 망인들의 관계

원고들은 각 해당 망인의 유족들이다.

[인정 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26호증의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당사자의 주장

가. 원고들의 주장 요지

피고 소속 군인, 경찰이 정당한 이유 없이 적법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채 무고한 망인들을 살해하였으므로, 피고는 그 관리감독자로서 망인들과 그 유족인 원고들이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로 청구취지 기재 각 돈과 그 지연손해금을 배상할 책임이 있다.

나. 피고의 주장 요지

1)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과 원고들이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망인들이 피고 소속 군인, 경찰의 불법행위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2) 설령 피고의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소는 망인들의 사망일로부터 5년이 지난 후에 제기되었으므로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시효로 소멸하였다.

3. 판단

가. 판단의 순서

피고의 불법행위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한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시효로 소멸하였다면 원고들은 더 이상 피고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으므로, 소멸시효의 완성 여부에 관하여 먼저 판단한다.

나. 소멸시효의 완성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불법행위일로부터 5년 동안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소멸하는바(1921. 4. 7. 조선총독부법률 제42호로 제정되고, 1951. 9. 24. 법률 제217호로 제정된 구 재정법 제82조 에 의하여 폐지되기 전의 구 회계법 제32조 ), 원고들의 이 사건 소가 구례지역 민간인 희생사건이 발생한 1948. 10.경부터 1949. 7.경까지의 시점으로부터 5년이 훨씬 지난 후인 2016. 4. 29. 제기된 사실은 기록상 명백하므로,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사건 소제기 전에 소멸시효 완성으로 소멸하였다고 할 것이다.

다. 권리남용 및 상당한 기간의 도과 여부

1) 원고들의 주장

피고가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을 통하여 원고들에게 소멸시효의 이익을 원용하지 않을 것 같은 신뢰를 부여하였음에도 원고들에게 소제기 기간을 고지하거나 이를 명시한 법률을 제정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거나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될 수 없다.

2) 판단

가) 소멸시효를 이유로 한 항변권의 행사도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 후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이를 신뢰하게 하였고, 채무자가 그로부터 권리행사를 기대할 수 있는 상당한 기간 내에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였다면,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 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 산하의 과거사정리위원회가「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의 적용대상인 망인들에 대하여 진실규명신청을 받아 희생자로 확인하는 내용의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을 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망인들의 유족들인 원고들로서는 위 결정에 기초하여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할 경우 피고가 적어도 소멸시효의 완성을 들어 권리소멸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대한 신뢰를 가질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봄이 타당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가 원고들에 대하여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

나) 그러나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이익을 원용하지 않을 것 같은 신뢰를 부여한 경우에도 채권자는 그러한 사정이 있은 때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하여야만 채무자의 소멸시효의 항변을 저지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가 있었는지는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관계, 신뢰를 부여하게 된 채무자의 행위 등의 내용과 동기 및 경위, 채무자가 그 행위 등에 의하여 달성하려고 한 목적과 진정한 의도, 채권자의 권리행사가 지연될 수밖에 없었던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할 것이다. 다만 신의성실의 원칙을 들어 시효 완성의 효력을 부정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의 달성, 입증곤란의 구제, 권리행사의 태만에 대한 제재를 이념으로 삼고 있는 소멸시효 제도에 대한 대단히 예외적인 제한에 그쳐야 할 것이므로, 위 권리행사의 ‘상당한 기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상 시효정지의 경우에 준하여 단기간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개별 사건에서 매우 특수한 사정이 있어 그 기간을 연장하여 인정하는 것이 부득이한 경우에도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의 경우 그 기간은 아무리 길어도 민법 제766조 제1항 이 규정한 단기소멸시효기간인 3년을 넘을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위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따라서 원고들이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일인 2008. 7. 8.부터 3년 이내에 피고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였어야 할 것인데, 이 사건 소는 그로부터 약 7년 9개월이 경과한 2016. 4. 29. 비로소 제기되었으므로, 원고들의 권리남용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기간에 대하여는 민법 제766조 에 규정되어 있으므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을 하면서 원고들에게 소제기 기간을 고지해야 한다거나 피고가 소제기 기간을 명시한 별도의 법률을 제정할 의무가 있다고 볼 수도 없다).

다) 이에 대하여 원고들은,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을 하면서 원고들에게 망인들의 사망연월일 등에 관한 가족관계등록부를 정정할 것을 권고하였고, 그에 따라 원고들이 2014. 6. 12.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신청을 하여 2015. 11. 30.경에 가족관계등록부의 정정을 완료하였으므로, 위 ‘상당한 기간’은 가족관계등록부의 정정이 완료된 이후부터 기산하여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그러나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권고사항은 “국가는 ‘유족들이 원할 경우’ 법적 절차를 통해 가족관계등록부에 대한 정정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라는 것에 불과하고(갑 제26호증), 가족관계등록부에 망인들의 사망연월일 등이 사실과 다르게 기재되어 있다고 하여 원고들의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 행사에 어떠한 법률상 장애가 있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원고들의 위 주장도 이유 없다.

4. 결론

그렇다면 원고들의 이 사건 청구는 모두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할 것인바, 제1심판결은 이와 결론을 같이하여 정당하므로 원고들의 항소는 모두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별 지 1] 원고 명단: 생략]

[[별 지 2] 원고별 청구금액: 생략]

판사 박병칠(재판장) 김진환 윤봉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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