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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법원 2020.3.27. 선고 2019노2859 판결
살인
사건

2019노2859 살인

피고인

A

항소인

피고인

검사

박민지(기소), 진정길(공판)

변호인

변호사 김태선(국선)

원심판결

의정부지방법원 2019. 12. 5. 선고 2019고합228 판결

판결선고

2020. 3. 27.

주문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한다.

이유

1. 항소이유의 요지

가. 사실오인

피고인의 폭행으로 인하여 피해자가 사망한 것은 맞지만, 피고인은 순간적으로 화가 나 피해자를 폭행한 것일 뿐 피해자를 살해할 고의가 없었다. 그럼에도 이를 인정한 원심판결에는 사실을 오인한 위법이 있다.

나. 심신미약

피고인은 이 사건 범행 당시 술에 취하여 심신미약의 상태에 있었다.

다. 양형부당

원심의 형(징역 18년, 몰수)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

2. 사실오인 주장에 대한 판단

가. 원심의 판단

원심은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아래와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여, 이 사건 범행 당시 피고인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하였다.

① 피고인은 피해자의 집에 찾아가기 전 피해자와 통화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로부터 욕설을 듣고 이미 상당히 화가 난 상태였는데, 피해자의 집에 찾아갔을 때 피해자가 칼을 들고 나와 피고인을 공격하자 이성을 잃을 정도로 피해자에게 분노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② 피고인은 피해자로부터 얼굴을 맞은 뒤 곧바로 피해자의 얼굴을 때리고 피해자를 넘어뜨렸는데, 피해자는 넘어진 다음 피고인이 자리를 떠날 때까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였다. 피해자는 피고인의 공격을 받아 넘어진 뒤부터 피고인을 공격하거나 자신을 방어할 능력을 상실한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③ 피고인은 이처럼 넘어져 의식을 잃은 채 항거불능 상태에 있던 피해자에게 폭행을 가하였는데, 가죽구두를 신은 발로 피해자의 머리, 얼굴을 축구공 차듯이 차거나, 딱딱한 재질로 된 구두 굽으로 피해자의 머리, 얼굴, 목, 가슴 등을 내리찍는 방식으로 피해자를 폭행하였다. 피고인의 이러한 폭행은 피고인이 피해자를 넘어뜨린 뒤부터 피해자의 집을 떠날 때까지 약 10분간 비슷한 강도로 지속되었다.

④ 의식을 잃은 사람의 머리, 얼굴, 목, 가슴 등을 구둣발로 전력을 다하여 차거나 내리찍으면 사람이 사망할 수도 있다는 것은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다. K도 수사기관에서 일관되게 '피해자가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하였고, 피고인 역시 검찰 조사 당시 '피해자가 죽을 정도로 폭력을 행사한 것을 인정한다'고 진술하였다.

⑤ 피고인은 피해자에 대한 폭행을 시작한 지 약 8분이 지났을 무렵 잠시 폭행을 중단하고 K으로 하여금 피해자의 옆에 떨어져 있는 칼과 피해자의 상태를 휴대전화의 사진으로 촬영하도록 하였다. K은 경찰 조사에서 사건 당시 피해자의 상태에 관하여 '누워 있는 상태로 헉헉거리며 피를 토하고 있었고, 양팔은 축 늘어져 있었으며, 피해자의 얼굴과 몸이 피범벅이 되어 있었고, 피해자의 머리가 있던 바닥에는 피가 많이 흘러있었다.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⑥ K이 사진을 찍기 위하여 휴대전화의 플래시를 켰으므로 피고인도 피해자의 위와 같은 상태를 충분히 확인하였을 것인데, 피고인은 피해자를 구호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오히려 분풀이를 하듯 피해자의 머리, 가슴, 성기 부분을 다시 구둣발로 내리찍어 추가로 폭행을 가한 뒤 피범벅이 된 피해자를 그 자리에 방치해 둔 채 범행 장소를 떠났다.

⑦ 이 사건 다음 날인 2019. 7. 27. 피해자의 상태를 촬영한 사진에 의하면, 피해자의 본래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피해자의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어 찢어지거나 부어오른 상태였음이 확인된다. 또한 부검감정서에 의하면 피고인의 폭행에 의하여 피해자에게 얼굴 피부의 찢긴 상처와 광범위한 멍, 얼굴과 목의 심한 연조직 출혈과 박리 및 좌멸, 코뼈 및 후두골격(목뿔뼈, 갑상연골)의 골절, 갈비뼈의 다발성 골절 및 대동맥 박리, 흉강혈, 허파의 혈액 흡인 등 얼굴, 목, 가슴 부위의 손상과 그에 동반된 출혈이 발생하였고, 이러한 손상으로 인하여 피해자가 사망하게 된 사실이 인정된다.

나. 이 법원의 판단

1) 살인의 고의는 반드시 살해의 목적이나 계획적인 살해의 의도가 있어야만 인정되는 것은 아니고, 자신의 행위로 인하여 타인에게 사망의 결과를 발생시킬 만한 가능성 또는 위험이 있음을 인식하거나 예견하면 충분하며, 그 인식이나 예견은 확정적인 것은 물론 불확정적인 것이라도 미필적 고의로 인정된다. 피고인이 범행 당시 살인의 고의는 없었고 단지 상해 또는 폭행의 고의만 있었을 뿐이라고 다투는 경우에 피고인에게 범행 당시 살인의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는 피고인이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 범행의 동기, 준비된 흉기의 유무·종류·용법, 공격의 부위와 반복성, 사망의 결과발생 가능성의 정도 등 범행 전후의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1. 3. 9. 선고 2000도5590 판결, 대법원 2018. 3. 29. 선고 2017도21254 판결 등 참조).

2) 원심이 설시한 위와 같은 사정들에 더하여,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아래의 사실 또는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 범행 당시 피고인에게는 순간적이나마 확정적인 살인의 고의가 있었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살인의 미필적 고의는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이 사건 공소사실이 유죄라는 원심의 판단은 타당하고, 피고인이 주장하는 사실오인의 위법이 있다고 볼 수 없다.

가) 이 사건 범행 당시의 상황이 담긴 CCTV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CCTV 영상에 표시된 시각은 실제 시각보다 약 3분 늦은데, 이하에서는 실제 시각으로 환산하여 표시한다).

① 피고인과 K, K의 딸은 함께 차를 타고 2019. 7. 26. 22:45경 피해자의 집 앞에 도착하였다. 피고인과 K은 차에서 내려 집 앞 마당에서 피해자를 기다렸다.

② 같은 날 22:52경 피해자가 집 앞 마당으로 나와 주먹으로 피고인의 얼굴을 때렸고, 이에 피고인도 손으로 피해자를 때려 바닥에 넘어져 쓰러지게 하였다. 피고인은 넘어진 피해자를 가격하기 시작하였고, K은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다만, 피고인은 그 후 CCTV 화면의 아랫부분 사각지대에서 피해자를 가격하여 피고인의 머리와 어깨 부분이 움직이는 장면이 화면에 보일 뿐 피고인의 발이 피해자의 신체에 닿는 구체적인 장면은 촬영되어 있지 않다).

③ 같은 날 23:00경 K은 휴대전화를 꺼내기 위하여 차로 이동하였고, 피고인은 피해자에 대한 폭력 행사를 잠시 중단하고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였다. K은 차에서 휴대전화를 꺼내온 뒤 피해자의 옆에 떨어져 있던 칼과 피해자의 상태를 휴대전화로 촬영하였는데, 그동안 피고인은 옆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K의 사진 촬영이 끝나자마자 피고인은 다시 CCTV 화면의 아랫부분 사각지대로 이동하여 피해자를 수회 가격하기 시작하였는데, CCTV 영상에 의할 때 피고인이 위와 같이 피해자를 다시 가격하기 이전까지 담배를 피면서 폭력 행사를 중단은 시간은 40초 정도이다.

④ 같은 날 23:01경 피고인과 K은 차를 타고 현장을 떠났다.

나) 위와 같은 CCTV 영상의 내용에 의하면, 피고인이 피해자를 가격하기 시작한 시각은 22:52경, 범행 장소를 떠난 시각은 23:01경이므로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폭력을 행사한 시간이 9분을 넘지 않는다. 또한, 그러한 약 9분 동안 피고인의 폭력 행사가 계속하여 동일한 강도로 이루어지지도 않았고, 오히려 피고인이 잠시 폭행을 중단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피고인이 피해자에 대한 폭력 행사를 중단한 시간은 약 40초로서 긴 시간이라고 볼 수 없고, K은 검찰 조사에서 '자신이 보고 있는 동안에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계속 때리고 있었다'고 진술하기도 하였다. 또한,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폭력을 행사한 전체 시간이 9분을 넘지 않고 폭력의 강도가 균일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피고인이 사람의 생명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부분인 피해자의 머리, 얼굴, 목, 가슴을 구둣발로 전력을 다하여 수회 가격하였고, 그로 인하여 피해 부위에 중한 손상이 발생하였음을 알 수 있다.

3. 심신미약 주장에 대한 판단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알 수 있는 이 사건 범행의 경위, 범행의 수단과 방법, 이 사건 범행 전후의 정황, 당시 피고인의 행동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를 당시에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피고인의 이 부분 주장 또한 받아들일 수 없다.

4. 양형부당 주장에 대한 판단

양형은 법정형을 기초로 하여 형법 제51조에서 정한 양형의 조건이 되는 사항을 두루 참작하여 합리적이고 적정한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 재량 판단으로서, 공판중심주의와 직접주의를 취하고 있는 우리 형사소송법에서는 양형판단에 관하여도 제1심의 고유한 영역이 존재한다. 이러한 사정들과 아울러 항소심의 사후심적 성격 등에 비추어 보면, 제1심과 비교하여 양형의 조건에 변화가 없고 제1심의 양형이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경우에는 이를 존중함이 타당하다(대법원 2015. 7. 23. 선고 2015도3260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피고인은 피해자의 집으로 찾아갔다가 피해자가 칼을 들고 나와 자신을 공격하자 우발적·충동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은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고 다투는 것과는 별개로 자신의 행위로 인하여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중한 결과가 발생하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반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피고인의 지인들이 피고인에 대한 선처를 탄원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고귀한 것으로서 이를 침해하는 행위에 대하여는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필요하고,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된 동기나 경위를 감안하더라도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피고인의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피해자가 손에 칼을 든 채로 피고인을 먼저 때렸다 하더라도,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그러한 피해자의 행위가 피고인에게 중대한 위협이 되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피고인은 자신에게 맞아 넘어져 의식을 잃고 방어능력을 상실한 채피를 흘리던 피해자의 머리, 얼굴, 목, 가슴을 구둣발로 전력을 다하여 수회 걷어차고 밟아 살해하였는데, 그 범행의 수법이나 태양이 잔혹하다.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던 도중에 잠시 이를 중단하기는 하였으나, 이는 자신이 담배를 피우는 동안 K으로 하여금 휴대전화로 현장(특히 피해자가 쓰러진 곳으로부터 약 40cm 떨어진 곳에 칼이 떨어져 있었다)의 사진을 찍어 두게 함으로써 추후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자료(피해자가 칼을 들고 피고인을 먼저 공격하였음을 뒷받침할 자료)로 활용하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건 당시 K의 딸이 함께 타고 간 차량 안에 탑승하고 있었는데도 그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피고인이 위와 같이 피해자에게 폭력을 행사하였고, K이 휴대전화로 사진 촬영을 마치자마자 또다시 피고인이 피해자를 가격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당시의 상황을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별다른 죄의식 없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할 수 있으므로 더욱 비난가능성이 크다.

피고인은 자신의 폭력으로 인하여 피해자가 위중한 상태가 되었는데도 그에 대한 구호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에서 이탈하였다는 점에서(피해자를 그대로 두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느낀 K이 피고인 몰래 119 신고를 한 것으로 보인다), 범행 후의 정황도 좋지 않다. 또한, 피고인은 이 사건 범행 이전에도 폭력 범죄를 저질러 십여 차례 처벌받은 전력이 있고, 특히 사람을 때려 사망에 이르게 한 상해치사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사람을 때려 사망하게 하는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 유족의 정신적 고통 또한 상당히 큰 것으로 보임에도 피고인은 유족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하였다.

그 밖에 피고인의 연령, 성행,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등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모든 양형의 조건을 참작하여 보면, 원심의 양형은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원심과 비교하여 양형의 조건에 변화가 없는 이 사건에서 원심이 정한 형이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보이지 않으므로, 피고인의 양형부당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5. 결론

그렇다면 피고인의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4항에 의하여 이를 기각한다.

판사

재판장 판사 성수제

판사 양진수

판사 배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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