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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
서울고법 1990. 8. 22. 선고 87노1404 제1형사부판결 : 상고기각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등피고사건][하집1990(2),446]
판시사항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제6조 제1항 소정의 신고를 요하는 집회 또는 시위의 의미와 범위

판결요지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제6조 제1항 소정의 신고를 요하는 집회 또는 시위라 함은 그 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 목적, 일시, 장소 등이 사전에 특정될 정도의 계획적인 집회 또는 시위를 말한다 할 것이고, 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 목적 등이 특정되지 아니하고 사실상 사전신고가 불가능한 우발적 집회 또는 시위는 여기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 할 것인바, 범국민 대토론회에 참석할 목적으로 그 개최장소인 대학교 정문앞에 도착한 피고인들이 학교당국과 경찰의 외부인 및 타교생에 대한 출입금지조치로 출입을 저지당하여 교내로 들어갈 수 없게 되자 그에 항의하기 위한 방편으로 자진해산하기에 앞서 즉흥적으로 약 20분간에 걸쳐 당시 일반적으로 성행하던 반정부구호와 노래를 제창하였다면 이는 사전계획에 없었던 우발적 집회 또는 시위에 불과하다 할 것이므로 사전에 이를 신고하지 아니하였다 하여 미신고시위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없다.

피 고 인

피고인 1 외 6인

항 소 인

피고인들 및 검사

주문

원심판결을 모두 파기한다.

이 사건 공소사실 중 피고인 1에 대한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집회, 시위선동)의 점과 피고인들에 대한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미신고 시위주최)의 점은 각 무죄.

이 사건 공소사실 중 피고인 4에 대한 국가모독의 점은 면소.

이유

1. 항소이유

가. 검사의 항소이유:피고인들은 전.현직 국회의원 또는 기타 정치인들로서 이 사건 당시의 우리나라의 정치, 사회, 경제적 상황과 학원가의 동향(전학련.삼민투의 등장, 대학생들의 조직적인 대규모 집회.시위, 사상적.이데올로기적 투쟁양상 등), 이른바 범국민 대토론회의 불법집회성 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동참하려 하였고, 피고인 4는 외신기자에게 허위사실을 날조하여 정부를 모략, 비방함으로써 국내정치문제에 외세의 개입을 촉구한 점 등을 고려할 때 피고인들에 대한 원심의 형의 양정은 각각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는 것이다.

나. 피고인들의 변호인들의 항소이유:(1) 공소사실의 특정에 관한 법리오해......피고인 4에 대한 국가모독의 점은, 공소장에 적시된 정부가 어느 헌법기관을 지칭하는지 구체적으로 특정되어 있지 아니하므로 원심은 이에 대하여 공소기각의 판결을 하였어야 함에도 이를 유죄로 인정하였고 또한 포괄적 개념인 형법 제104조의2 소정의 정부를 개별적 헌법기관으로 오인하였으니 원심판결에는 형사소송법 제254조 제4항 , 형법 제104조의2 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 (2) 사실오인......이 사건 각 공소사실(피고인 1의 집회 및 시위선동의 점, 피고인들의 미신고 시위주최의 점, 피고인 4의 국가모독의 점)은 각각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거나 부족할 뿐만 아니라 원심은 피고인들이 신청한 탄핵증거를 채택, 조사하였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나아가지 아니한 채 결심, 피고인들에 대하여 모두 유죄로 인정, 처단하였으니 원심판결에는 채증법칙위배 또는 심리미진으로 인한 사실오인의 위법이 있다. (3) 정당행위에 관한 법리오해......피고인들의 미신고 시위주최의 점에 있어 그 행위의 목적과 동기에 정당성이, 수단과 방법에 상당성이 인정되고, 기타 법익균형성, 보충성, 긴급성이 인정되어 피고인들의 위와 같은 행위가 정당행위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피고인들의 사회적 지위, 이 사건 당시의 주위상황, 사건경위, 사건의 전개과정 등으로 보아 정당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판시한 원심판결에는 정당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

2. 항소이유에 대한 판단

검사 및 피고인들의 변호인들의 각 항소이유에 대한 판단에 앞서 직권으로 살피건대, 피고인들의 이 사건 각 행위 당시에 시행되던 구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제14조 제2항 , 제3조 제2항 , 제1항 제4호 (피고인 1에 대한 불법집회 및 시위선동의 점) 및 같은 법 제14조 제1항 , 제4조 제1항 (피고인들에 대한 미신고 시위주최의 점)은 각각 원심판결선고 후인 1989.3.29. 법률 제4095호의 같은법 제19조 제3항 , 제5조 제2항 , 제1항 제2호 같은 법 제19조 제2항 , 제6조 제1항 으로 전면 개정되었고(특히 개정전의 같은 법 제3조 제1항 제4호 "현저히 사회적 불안을 야기시킬 우려가 있는 집회 또는 시위"는 개정 후의 같은 법 제5조 제1항 제2호 "집단적인 폭행·협박·손괴·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로 그 구성요건이 변경되었음), 그 형의 경중을 비교하면 각 개정된 법률의 형이 개정 전 법률의 형보다 경하므로 형법 제1조 제2항 에 의하여 개정된 법률을 적용하여야 할 것임에도 원심은 결국 개정 전의 법률을 적용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법령위반의 잘못을 범하였으니 원심판결을 이 점만으로도 이미 유지될 수가 없다 할 것인바, 검사는 당심에 이르러 2차에 걸쳐(1989.6.8. 및 1990.7.18.) 개정된 법률에 따라 공소장변경신청을 하여 당원이 이를 각 허가하였으니(피고인들의 변호인 변호사 김광일, 조승형은 위 1989.6.8.자 공소장변경신청에 대한 당원의 허가결정에 대하여 이의신청을 하였으나 피고인들에 대한 미신고 시위주최의 점은 공소사실 자체는 변경함이 없이 다만 개정된 법률에 따라 그 적용법조만을 변경한 것이고, 피고인 1에 대한 집회 및 선동의 점 역시 공소사실 자체는 변경함이 없이 개정된 법률에 따라 공소사실의 마지막 법률적 평가부분과 그 적용법조만을 변경한 것으로서 각각 그 공소사실 자체의 단일성과 동일성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음이 분명하므로 위 변호인들의 이의신청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이에 위 각 항소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2항 , 제6항 에 의하여 원심판결을 모두 파기하고, 위 변경된 공소사실에 관한 심리를 거쳐 다시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3. 당심의 판단

가. 이 사건 각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 1은 국회의원 및 신한민주당(이하. 신민당이라고만 한다), 민주화추진협의회(이하, 민추협이라고만 한다)의 각 인권옹호위원장으로, 피고인 2는 신민당 소속 국회의원 및 민추협 상임운영위원으로, 피고인 3은 신민당 중앙상무위원 및 민추협 부간사장으로, 피고인 4는 신민당 중앙상무위원 및 민추협 대변인으로, 공소외 5는 민추협 문교국장으로, 공소외 6은 민추협 사회국장으로, 피고인 7은 민추협 노동국장으로 각 있던 자인바,

(1) 1985.9.5.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수사기관의 지명수배를 받아오던 전학련 삼민투위원장 공소외 1이 고려대학교에서 1,000여명의 서울시내 대학생들을 집결시켜 교내시위를 주도하면서 미리 준비한 석유를 자신의 몸에 뿌리고 체포하면 분신자살하겠다고 위협하는 한편, 이들 학생들이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을 점거, 각목 등을 준비해 놓고 철야농성을 하고 다음날인 9.6.에도 교내시위를 계속하다가 700여명의 학생들이 같은 대학 대강당에 집결, 학교당국의 승인없이 이른바 범국민 대토론회를 개최한다고 하면서 집회를 진행중이었는바, 피고인들은 위 집회에 참석하기로 마음먹고 위 9.6. 13:20경 서울 중구 서소문동 소재 진흥기업빌딩 안에 있던 민추협 사무실에서 피고인 1, 피고인 2, 피고인 3, 피고인 4, 공소외 5, 공소외 6 등은 공소외 2, 공소외 3, 공소외 4, 공소외 5 등과 위 사무실에 모여 승용차 4대에 나누어 타고 고려대학교를 향하여 출발하여 그날 13:45경 위 대학교 정문 앞에 도착하여 피고인 7과 합류한 다음, 교내로 들어가려 하였으나 학교당국과 경찰의 외부인 및 타교생 출입금지조치로 인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자 계속하여 대회참석을 위한 교내입장과 총장 및 학생대표와의 면담을 요구하면서 그날 15:00경까지 돌아가지 않고 대치하던중,

(가) 피고인 1은 위와 같은 불법집회가 결국에는 가두진출을 기도하여 대치중인 경찰관들과 충돌, 투석 등으로 폭력화 된다는 정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소외 1 등을 고무할 것을 기도하여 그 무렵 닫혀진 정문창살을 통하여 교내에 있던 신문기자로 보이는 성명불상 청년에게 "당신 기자냐, 나 피고인 1의원인데 학생을 불러달라"고 한 다음, 성명불상 학생이 다가오자 그에게 공소외 6의 변호를 맡고 있는 피고인 1의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후 " 공소외 6군의 멧세지를 전하려 하니 학생대표에게 내가 왔다고 해라"라고 말하고, 곧이어 학생대표라고 자처하는 위 학교 서클연합회장인 공소외 7, 위 학교 법대 학생회장인 공소외 8, 위 학교 신문기자인 공소외 9 등이 학교출입용 측문을 통하여 밖으로 나오자 그 옆에 주차시켜 둔 피고인의 승용차안으로 불러들여, 자신의 신분을 밝힌 다음 "우리들이 대회에 참가하려고 와 있는데 들어가지 못하고 있으니 그 사실을 학생들에게 알려달라, 공소외 6의 변호인단 중 한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하지 못해서 김군이 이 대회를 주재하지 못하게 되어 미안하다, 김군은 교도소에서 금치처분을 당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지만 건강히 잘 있다. 공소외 6군은 전학련의 간부들이 많이 구속되었는데도 밖에서 열심히 싸워주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계속 열심히 싸워달라고 한다. 전국통일조직으로서의 삼민투는 존재하지도 않고 하부조직도 없는데 정부에서는 이를 좌경용공단체로 생각하고 있다. 전학련도 불법단체가 아니며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요지의 말을 하고, 이를 집회중인 학생들에게 전달하게 함으로써, 그 말을 전해들은 집회중인 700여명의 학생들이 박수를 치며 호응하도록 하여 같은 날 17:45경 자유토론회를 마친 학생 1,000여명이 스크럼을 형성하여 공소외 1의 주도로 가두 진출을 기도하며 교문으로 나아가 대치하고 있던 경찰관들에게 돌맹이를 투석하는 등 하여 집단적인 폭행·협박·손괴·방화등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를 할 것을 선동하고,

(나) 피고인들은, 그날 15:30경 같은 곳에서 피고인 3의 제의로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시위하기로 마음먹고 소정의 신고를 하지 않은 채 공동하여, 그 무렵부터 같은 날 15:50경까지 그곳에 모여 있던 공소외 4, 공소외 10 등 민추협 회원과 부근에 있던 시민 등 50여명을 모아 피고인 3이 먼저 오른손 주먹을 쳐들고 "폭력정권 물러가라, 학원자율화 보장하라, 학원탄압 중지하라, 구속학생 석방하라, 언론자유 보장하라, 폭력경찰 물러가라"는 구호를 선창하고, 나머지 피고인들과 공소외 4 등은 오른손 주먹의 쳐들고 후창한 후, 이어서 공소외 5, 피고인 3, 공소외 4의 순으로 위와 같은 구호를 선창하고 나머지 피고인들이 그에 따라 후창한 다음, 피고인 3의 선창에 따라 애국가, 선구자, 봉선화, 아리랑 등 노래를 제창하고, 피고인 4가 "민주쟁취는 우리의 갈 길이다."라고 외치고 그의 선창에 따라 나머지 피고인들이 함께 만세삼창을 하는 등 시위를 주최하고,

(2) 피고인 4는, 1986.5.7. 오전 민추협이 서울 종로구 관훈동 151의 8에 있는 근학빌딩 3층으로 사무실을 이전하려다 그곳을 사용하고 있던 삼환상호신용금고측이 사무실을 비워주지 않고 건물주는 위 사무실의 임대차계약을 할 때 민추협측의 계약자가 신분을 감추고 또 사무실 용도를 속인 사실을 들어 위 임대차계약의 무효를 주장하며 민추협의 입주를 불허하자, 같은 날 15:20경 위 근학빌딩 3층에서 위 상황을 취재하러 나온 티 브이(T.V.)아사히 소속 성명불상 외신기자에게 "현정부가 건물주와 사용자측에 압력을 가하여 민추협의 사무실 입주를 방해하고 있다"는 취지의 내용 등이 기재된 「민주화추진협의회에 대한 정치적 탄압을 즉각 중지하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배포함으로써, 내국인이 외국인이나 외국단체 등을 이용하여 국내에서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인 정부를 모욕, 비방하고 그에 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대한민국의 위신을 해하고 또한 대한민국의 안전이익을 해할 우려가 있게 한 것이다.

나. 피고인 1의 집회 또는 시위 선동의 점에 대한 판단 피고인 1은 동 피고인에 대한 위 집회 또는 시위선동의 점에 관한 공소사실에 대하여 검찰이래 당심에 이르기까지 그 공소사실 말미의 법률적 평가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 즉 동 피고인이 이 사건 당일에 전학련 주최의 범국민 대토론회가 개최되고 있는 고려대학교의 정문에 이르러 학생 3명을 통하여 위 토론회 참석자들에게 동인의 생각과 공소외 6의 옥중근황을 전달한 사실은 대체로 이를 자백하면서도, 동 피고인이 위와 같은 행위를 한 것은 자신이 주최측의 요청에 따라 위 토론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고대까지 왔으나 경찰의 저지로 참석하지 못함을 알리고, 공소외 1이 분신자살하겠다고 하는 것을 말리도록 하며, 참석자에게 평화적으로 집회를 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일 뿐 위 토론회 참석자들로 하여금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를 할 것을 선동할 의사는 없었다면서 그 범의를 극구 부인하고 있다.

그러므로 살피건대, 이 사건 기록에 의하면(특히 원심 제21회 공판조서 중 증인 공소외 1의 진술기재, 서울형사지방법원 85초1118 증거보전기록에 편철되어 있는 공소외 7에 대한 증인신문조서 및 같은 법원 85초1124 증거보전기록에 편철되어 있는 공소외 9, 공소외 8, 공소외 11에 대한 각 증인신문조서의 각 진술기재, 위 피고인 및 공동피고인들의 검찰이래 당심에 이르기까지의 각 진술, 당심증인 공소외 12, 공소외 13의 각 일부진술, 수사기록 2책 중 1권 260면 이하에 편철된 실황조사보고서와 당심에 제출된 "고대 9.5.-6. 교내행사와 관련한 전학련 연합집회" 상황일지의 각 일부기개), 위 피고인은 공동피고인들과 함께 이 사건 당일인 1985.9.6. 고려대학교 대강당에서 개최중인 이른바 범국민 대토론회에 주최측 학생들의 초청을 받고 위 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고려대학교 정문에 이르렀으나 경찰 및 학교당국의 교문봉쇄, 출입저지로 인하여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또한 국회의원 자격으로서 총장과의 면담요청까지 거부 또는 그 의사전달이 되지 아니하여 2시간 가까운 시간에 걸친 위 대학교에서 출입교섭이 무위로 돌아가 결국 위 토론회장에 들어갈 수 없게 되자 위 토론회 참석자들에게 피고인이 신민당 대표로서 위 토론회에 참석하려고 노력하였다는 점과 마침 피고인이 변호를 맡고 있던 전학련의장 공소외 6의 옥중근황을 전하여 줌으로써 자신과 신민당이 학생들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성의를 다하였음을 보여 줄 의도하에 주최측의 학생대표라고 자처하는 공소외 7, 공소외 8, 공소외 9 등을 만나 공소사실 기재와 공소외 6의 근황과 위 피고인이 평소 공소외 6을 접견하면서 나눈 대화에서 느낀 동인의 생각하는 바를 요약하여 전하면서(이하, 공소외 6의 메세지라 한다) 그 전날 분신자살도 불사하겠다고 한 공소외 1이 위험한 행동에 나아가지 않도록 그 신변보호를 부탁하고(다만 그 구체적인 전달내용과 의미에 대하여는 위 피고인은 물론 위 공소외 3인들도 각각 해석을 달리하고 있다), 동인들이 토론회장으로 돌아와서, 토론회 진행자들인 공소외 11(이대 민민탄위원장), 공소외 14(서울대 민민탄위원장) 등을 통하여 위 피고인의 뜻과 공소외 6의 메세지를 전달한 사실, 위 토론회는 당시 정부, 여당에서 입법추진중이던 학원원안정법의 폐지, 국제통화기금(IMF),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의 개최저지, 반민주악법철폐 및 직선제를 포함한 민주헌법쟁취 등을 주제로 하여 전학련, 삼민투에서 주최하고, 신민당 및 민정당의 당직자, 민추협 관계인사 등 사회 각계 각층의 인사들을 초청한 집회로서 사실상 개최장소인 고려대학교 당국과 경찰의 암묵적인 승인 아래(학교당국 또는 관할 경찰서장으로부터의 해산명령도 없었다) 위 대학교 대강당에서 700여명이 참석하여 순수한 토론회로서 평온하게 진행되었고, 실제 위 피고인의 뜻과 공소외 6의 메세지가 토론회 참석자들에게 전달되었을 때 당시 참석자들은 박수와 환호로써 일순 호응하였을 뿐 계속하여 위 토론회는 비교적 진지하고 차분한 분위기아래 진행되어 간 사실, 위 토론회의 주최자들은 처음부터 위 토론회를 평화적으로 진행하기로 하여 그 전날 오후부터는 시위를 자제하였고 또 토론회종료 후 시위로 나아갈 것을 의도하지 아니하여 당시 학생운동에 흔히 사용되던 각목, 화염병 등도 준비하지 아니하였으며 토론회개최 당일에는 외부인사의 참여로 인하여 평화적인 토론회진행에 차질을 초래할까 우려하여 오히려 위 피고인 등으로 하여금 돌아가 줄 것을 요청하였고, 공소외 6의 메세지나 위 피고인의 말 등에 의하여 토론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거나 위 피고인이 토론회에 참석하여 위 공소사실 기재의 발언을 하였다 하더라도 토론회의 성격이 변질되리라거나 과격화되지는 않았으리라고 진술하고 있으며 위 메세지낭독과 토론회종료 후의 학생들의 시위와는 관계가 없다고 진술하고 있는 사실, 위 토론회 개최장소인 대강당은 정문의 서북방향으로 약 200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고 당일에는 13:00경부터 18:00경까지 사이에 수시로 폭우가 쏟아져 강우량이 67mm를 기록하여 토론회 개최장소가 원래 민주광장에서 대강당으로 변경되었으며, 위 대학교 주변은 서울시경 기동대 16개 중대병력과 성북경찰서 사복경찰관 100여명이 포진, 경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문 가운데 중앙문과 좌측쪽 문은 닫아 걸고 우측쪽 문만 열어 놓고 동교학생만 출입을 허용하고 있었던 사실, 위 피고인 및 공동피고인들은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같은 날 15:30경 출입저지에 대한 항의조로 위 정문 앞에서 억수같은 비를 맞아가며 약 20분간 구호를 외치고 애국가 등 노래를 제창하고 만세삼창을 한 다음 15:50경 현장을 떠난 사실, 한편 같은 날 17:45경 토론회를 마친 학생 1,000명이 스크럼

을 형성하여 공소외 1을 앞세우고 교내 운동장을 선회하다가 18:05경 공소외 1이 경찰에 연행되자 비로소 경찰과 투석전을 전개하였고, 18:15경 경찰 2개 중대 병력이 학내에 투입되어 데모대를 해산시킨 사실이 인정된다.

위 인정사실에 비추어 보면, 위 범국민 대토론회는 사후에 시위로 나아가기로 예정된 바 없이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으므로 위 피고인으로서도 위 토론회가 장차 집단적인 폭행·협박·손괴·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위협을 가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이하, 금지된 집회, 시위라고 한다)로 발전하리라고 예측할 수 없었고, 자신의 언동으로 인하여 위 토론회가 위와 같은 내용의 집회 또는 시위로 발전, 전환하도록 의욕하였다거나 미필적으로라도 이를 인식하면서 이 사건 행위로 나아갔음을 인정할 만한 자료가 없으므로 위 피고인에게 선동의 범의가 있었다고는 단정하기 어렵고, 위 피고인이 학생대표들을 통하여 토론회 참석자들에게 전달한 피고인의 언동의 내용은 위 피고인이 출입금지조치로 토론회에 참석할 수 없다는 것과 공소외 6의 옥중근황 및 동인의 변호인으로서 접견과정에서 느낀 공소외 6의 생각하는 바를 요약, 정리한 것에 불과하므로 위 피고인의 이 사건 행위를 가리켜 금지된 집회, 시위를 할 것을 선동한 행위라고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토론회종료 후의 시위와 투석전은 이미 위 피고인이 현장을 이탈한 후 공소외 1이 경찰에 검거되면서 비로소 전개된 상황이므로 위 시위와 투석전이 위 피고인의 이 사건 행위로 인하여 야기되었다고 인정되지도 아니한다.

그렇다면 위 범국민 대토론회 개최 당시 이로 인하여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하여 위 법 제1항 제2호 소정의 현존하고 명백한 위험이 있었다거나 그와 같은 위 집회 또는 시위를 선동하였음을 전제로 한 이 점 공소사실은 결국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위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다.

다. 피고인들의 미신고 시위주최의 점에 대한 판단

이 사건 기록과 피고인들의 검찰이래 당심에 이르기까지의 일관된 진술에 의하면, 피고인들이 다른 민추협 인사들과 함께 공소사실에 적시된 일시, 장소에서 그 적시된 방법으로 구호를 외치며 노래를 제창하고 만세를 삼창하는 등으로 시위한 사실은 충분히 인정된다.

그러나 과연 피고인들의 위와 같은 시위가 사전에 신고를 요하는 시위인가의 점에 관하여 살피건대, 위 같은 법률에 의하면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주최하고자 하는 자는 그 목적, 일시(소요시간 포함), 장소, 주최자, 연락책임자, 질서유지인의 주소·성명·직업·연제, 참가예정단체 및 참가예정인원과 시위방법(진로 및 약도 포함)을 기재한 신고서를......시위의 48시간 전에 관할 경찰서장에게 제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동법 제6조 제1항 ), 위 규정에 위반한 집회 또는 시위를 주최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동법 제19조 제2항 ), 여기서 "주최자"라 함은 자기명의로 자기책임 아래 집회 또는 시위를 개최하는 사람 또는 단체를 말한다( 동법 제2조 제3호 )할 것인바, 우리 헌법제21조 제1항 , 제2항 에서 모든 국민은 집회의 자유를 가지며, 집회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37조 제2항 에서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 등 헌법의 근본정신과 집회의 자유의 제한입법으로서의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의 입법취지 그리고 위 같은법률 제6조 제1항 , 제19조 제2항 의 각 규정 및 동법에서 집회 및 시위가 절대적으로 금지되거나( 동법 제5조 제1항 ), 상대적으로 제한되는 경우( 동법 제10조 , 제11조 , 제12조 )에는 주최자 및 참가자를 모두 처벌하면서도( 동법 제19조 제2항 , 제4항 , 제20조 ), 미신고집회 및 시위주최의 경우에는 주최자만을 처벌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하여 판단할 때, 위 법률 제6조 제1항 에서 신고를 요하는 집회 또는 시위라 함은 그 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 그 목적, 일시, 장소 등이 사전에 특정될 정도의 계획적인 집회 또는 시위를 말한다 할 것이고, 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 목적 등이 특정되지 아니하고 사실상 사전 신고가 불가능한 이른바 우발적인 집회 또는 시위는 여기에 해당되지 아니한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그런데 앞서 인용한 증거들과 이 사건 기록에 의하여 피고인들이 이 사건 시위에 이르게 된 경위를 살펴보면, 피고인들은 주최측의 요청 또는 개인적인 관심으로 1985.9.6. 위 범국민 대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같은 날 13:45경 고려대학교 정문앞에 도착하여 교내로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앞서 본 바와 같이 학교당국과 경찰의 외부인 및 타교생 출입금지조치로 정문에서 출입이 봉쇄, 저지당하여 교내로 들어갈 수 없게 되자, 전.현직 국회의원 등 사회적 신분에도 불구하고 폭우 속에서 2시간 가까운 시간에 걸쳐 총장과의 면담요청 등 여러 경로를 통하여 토론회 참석을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결국 돌아갈 수 밖에 없게 되자 심한 모멸감으로 격분하여 학교당국과 경찰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같은 날 15:30경 정문 앞 광장에서 비를 맞으며 피고인들을 포함한 민추협 등 관계인사 20여명이 공소사실에 적시된 방법으로 구호를 외치고 애국가 등 노래를 부르며 만세삼창을 부른 다음(이때 현장에 있던 경찰이 자진해산할 것을 요청하였다거나 해산을 명한 바 없었고, 주위에 있던 경찰 이외의 몇명 안되는 시민 또는 학생들은 이를 보고만 있었다), 15:50경 자진 해산한 사실, 피고인들이 외친 구호의 내용도 "폭력정권 물러가라, 학원자율화 보장하라, 학원탄압 중지하라, 구속학생 석방하라, 언론자유 보장하라, 폭력경찰 물러가라"는 등 그 당시 일반적으로 주장되던 내용인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바, 이에 비추어 볼 때 당시 전.현직 국회의원이거나 정치인들로서 토론회 주최측의 초청을 받아 위 토론회에 참석하려 하였던 피고인들로서는 자신들에 대하여 출입이 금지되리라고 예상하고 사전에 시위를 계획함으로써 이를 실행한 것이라고 볼 수 없고, 달리 이를 인정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없으므로 이와 같은 경우 피고인들이 학교당국과 경찰의 출입금지조치에 항의하기 위한 방편으로 자진해산하기에 앞서 즉석에서 즉흥적으로, 약 20분간의 단시간에 당시 일반적으로 성행하던 구호와 노래를 제창한 것은 사전계획이 없었던 우발적인 집회 또는 시위라고 할 것으로서 이를 사전에 당국에 신고할 수 없었던 이상 그 신고가 없었다는 점 만으로 미신고 시위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피고인들에 대한 이 사건 미신고 시위주최의 점에 관한 공소사실 역시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피고인들에 대하여 각 무죄를 선고한다.

라. 피고인 4의 국가모독의 점에 대한 판단

형법(1975.3.25. 법률 제2745호) 제104조의2 소정의 국가모독죄는 이 사건 범행 후인 1988.12.31.자로 법률 제4040호로써 폐지되었음이 명백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6조 제4호 에 의하여 이 부분 공소사실에 대하여 위 피고인에게 면소를 선고한다.

이상의 이유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유근완(재판장) 오상현 조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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