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1]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거나 해지할 수 있는 경우 / 사정변경에 대한 예견가능성이 있었는지 판단하는 기준
[2] 갑 등이 해외이주 알선업체인 을 주식회사와 미국 비숙련 취업이민을 위한 알선업무계약을 체결한 후 이민허가를 받고 이에 따라 을 회사에 국외알선 수수료를 모두 지급하였는데, 주한 미국대사관이 갑 등에 대한 이민비자 인터뷰에서 추가 행정검토 및 이민국 이송 결정을 하여 비자발급 절차가 진행되지 않고 중단된 사안에서, 갑 등은 사정변경을 이유로 위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1] 민법 제2조 제1항 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관하여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이 원칙은 법률관계의 당사자가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하여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의를 저버리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를 이행해서는 안 된다는 추상적 규범으로서 법질서 전체를 관통하는 일반 원칙으로 작용하고 있다.
판례는 계약을 체결할 때 예견할 수 없었던 사정이 발생함으로써 야기된 불균형을 해소하고자 신의성실 원칙의 파생원칙으로서 사정변경의 원칙을 인정하고 있다. 즉, 계약 성립의 기초가 된 사정이 현저히 변경되고 당사자가 계약의 성립 당시 이를 예견할 수 없었으며, 그로 인하여 계약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당사자의 이해에 중대한 불균형을 초래하거나 계약을 체결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는 계약준수 원칙의 예외로서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거나 해지할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정이란 당사자들에게 계약 성립의 기초가 된 사정을 가리키고, 당사자들이 계약의 기초로 삼지 않은 사정이나 어느 일방당사자가 변경에 따른 불이익이나 위험을 떠안기로 한 사정은 포함되지 않는다. 사정변경에 대한 예견가능성이 있었는지는 추상적ㆍ일반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안에서 계약의 유형과 내용, 당사자의 지위, 거래경험과 인식가능성, 사정변경의 위험이 크고 구체적인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개별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이때 합리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당사자들이 사정변경을 예견했다면 계약을 체결하지 않거나 다른 내용으로 체결했을 것이라고 기대되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예견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경제상황 등의 변동으로 당사자에게 손해가 생기더라도 합리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사정변경을 예견할 수 있었다면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거나 해지할 수 없다. 특히 계속적 계약에서는 계약의 체결 시와 이행 시 사이에 간극이 크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예상할 수 없었던 사정변경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계약을 해지하려면 경제상황 등의 변동으로 당사자에게 불이익이 발생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위에서 본 요건을 충족하여야 한다.
[2] 갑 등이 해외이주 알선업체인 을 주식회사와 미국 비숙련 취업이민을 위한 알선업무계약을 체결한 후 이민허가를 받고 이에 따라 을 회사에 국외알선 수수료를 모두 지급하였는데, 주한 미국대사관이 갑 등에 대한 이민비자 인터뷰에서 추가 행정검토(Administrative Processing) 및 이민국 이송(Transfer in Progress) 결정을 하여 비자발급 절차가 진행되지 않고 중단된 사안에서, 위 계약은 성립의 기초가 되었던 비자발급 절차나 기간에 관한 사정이 현저히 변경되었고, 당사자가 계약의 성립 당시 이를 전혀 예견할 수 없었으며, 계약을 유지해도 체결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거나 당사자의 이해에 중대한 불균형을 초래하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갑 등은 사정변경을 이유로 위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한 사례.
참조조문
[1] 민법 제2조 제1항 , 제543조 [2] 민법 제2조 제1항 , 제543조
참조판례
[1] 대법원 1985. 4. 9. 선고 84다카1131, 1132 전원합의체 판결 (공1985, 721) 대법원 2007. 3. 29. 선고 2004다31302 판결 (공2007상, 601) 대법원 2013. 9. 26. 선고 2012다13637 전원합의체 판결 (공2013하, 1916) 대법원 2017. 6. 8. 선고 2016다249557 판결 (공2017하, 1457) 대법원 2021. 6. 10. 선고 2017다52712 판결 (공2021하, 1269)
원고,피상고인
원고 1 외 1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이평 담당변호사 김태석 외 2인)
피고,상고인
주식회사 드림이주 (소송대리인 변호사 김명중 외 2인)
주문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이유
상고이유(상고이유서 제출기간이 지난 다음 제출된 상고이유보충서 등은 이를 보충하는 범위에서)를 판단한다.
1. 사안 개요와 쟁점
가. 원심판결 이유에 따르면 다음 사실을 알 수 있다.
(1) 원고들은 2015. 8. 26. 해외이주 알선업체인 피고와 다음과 같은 미국 비숙련 취업이민을 위한 알선업무계약(이하 ‘이 사건 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하였다.
이 사건 계약의 유효기간은 계약서 작성일부터 원고들의 이민비자 취득일까지로 한다(제1조 제1호). 국외알선 수수료는 미화 3만 달러로 하되, 지급방법은 계약 시(1차), 노동허가 취득 시(2차), 이민허가 취득 시(3차)로 나누어 미화 1만 달러씩 지급한다(제4조). 이민허가가 나지 않을 경우 이미 납입한 국외알선 수수료의 80%를 환불한다(제5조 제4호). 미국의 이민정책 변경으로 원고들의 이민 절차가 불가능해진 경우 해외알선 수수료에서 실비를 공제한 후 50%를 환불한다(제5조 제6호).
(2) 미국 비숙련 취업이민 절차는 ① 미국 노동부의 노동허가 단계, ② 미국 이민국의 이민허가 단계, ③ 주한 미국대사관의 이민비자 발급 단계로 구분된다. 원고들은 2016. 5. 미국 이민국의 이민허가를 받았고, 이에 따라 원고들은 피고에게 이 사건 계약에 따른 국외알선 수수료를 모두 지급하였다. 그러나 주한 미국대사관은 2016. 11.경 원고들에 대한 이민비자 인터뷰를 한 다음 그 자리에서 추가 행정검토(Administrative Processing, 영사가 신청자의 비자발급 자격에 관한 결정 전 신청 건에 대하여 추가적으로 심사하는 것, 이하 ‘AP’라 한다) 결정을 하였고, 2017. 9.경 이민국 이송(Transfer in Progress, 영사가 AP 결정을 내린 건에 대하여 이민국으로 재심사를 하도록 돌려보내는 것, 이하 ‘TP’라 한다) 결정을 하였다.
(3) 원고들은 2017. 12. 1. 이 사건 계약에 관하여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해지 등을 주장하며 피고에 대하여 이미 지급한 수수료의 반환을 청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나. 쟁점은 AP/TP 결정에 따라 비자발급 절차가 진행되지 않고 중단된 상태를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계약 해지사유로 볼 수 있는지 여부이다.
2. 원심판단
원심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 사건 계약에 관하여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해지가 인정된다고 판단하였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원고들에 대해 AP/TP 결정을 함으로써 당초 예상했던 기간보다 훨씬 장기간 비자발급 절차가 진행되지 않고 중단된 상태가 지속되어 원고들이 언제 비자를 발급받을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로써 원고들과 피고가 계약의 기초로 삼았던 원고들의 비자발급 여부에 관하여 이 사건 계약 체결 당시 당사자가 예견할 수 없었던 현저한 사정변경이 생겼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고들에게 최종적인 결정을 기다려서 계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하므로 계약준수 원칙의 예외로서 원고들은 사정변경을 이유로 이 사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3. 대법원 판단
가. 민법 제2조 제1항 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관하여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이 원칙은 법률관계의 당사자가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하여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의를 저버리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를 이행해서는 안 된다는 추상적 규범으로서 법질서 전체를 관통하는 일반 원칙으로 작용하고 있다 ( 대법원 1985. 4. 9. 선고 84다카1131, 1132 전원합의체 판결 , 대법원 2021. 6. 10. 선고 2017다52712 판결 참조).
판례는 계약을 체결할 때 예견할 수 없었던 사정이 발생함으로써 야기된 불균형을 해소하고자 신의성실 원칙의 파생원칙으로서 사정변경의 원칙을 인정하고 있다. 즉, 계약 성립의 기초가 된 사정이 현저히 변경되고 당사자가 계약의 성립 당시 이를 예견할 수 없었으며, 그로 인하여 계약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당사자의 이해에 중대한 불균형을 초래하거나 계약을 체결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는 계약준수 원칙의 예외로서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거나 해지할 수 있다 ( 대법원 2007. 3. 29. 선고 2004다31302 판결 , 대법원 2013. 9. 26. 선고 2012다13637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여기에서 말하는 사정이란 당사자들에게 계약 성립의 기초가 된 사정을 가리키고, 당사자들이 계약의 기초로 삼지 않은 사정이나 어느 일방당사자가 변경에 따른 불이익이나 위험을 떠안기로 한 사정은 포함되지 않는다 ( 대법원 2017. 6. 8. 선고 2016다249557 판결 참조). 사정변경에 대한 예견가능성이 있었는지는 추상적ㆍ일반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안에서 계약의 유형과 내용, 당사자의 지위, 거래경험과 인식가능성, 사정변경의 위험이 크고 구체적인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개별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이때 합리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당사자들이 사정변경을 예견했다면 계약을 체결하지 않거나 다른 내용으로 체결했을 것이라고 기대되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예견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 있다 .
경제상황 등의 변동으로 당사자에게 손해가 생기더라도 합리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사정변경을 예견할 수 있었다면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거나 해지할 수 없다. 특히 계속적 계약에서는 계약의 체결 시와 이행 시 사이에 간극이 크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예상할 수 없었던 사정변경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계약을 해지하려면 경제상황 등의 변동으로 당사자에게 불이익이 발생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위에서 본 요건을 충족하여야 한다 (위 대법원 2016다249557 판결 참조).
나.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서 알 수 있는 다음 사정을 위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고들은 사정변경을 이유로 이 사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
(1) 이 사건 계약 당시 주한 미국대사관의 업무처리 관례에 따르면 비숙련 취업이민의 경우 대체로 2년 정도면 비자발급 절차가 마무리되었다. 피고는 원고들에게 비숙련 취업이민의 경우 1~2년 정도면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같은 내용의 안내문을 제공하였다. 이처럼 원고들과 피고 모두 늦어도 2년 내에는 비자가 발급될 것으로 예상하고 이를 계약 성립의 기초로 삼아 2015. 8. 26. 이 사건 계약을 체결하였다.
(2) 그런데 주한 미국대사관은 2016. 3.경부터 국내 비숙련 취업이민 신청에 대하여 AP 결정을 내리기 시작하였고, 2016. 9.경부터는 TP 결정을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 후 국내에서 비숙련 취업이민 신청 비자발급 절차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있고, 이때부터 국내에서 비숙련 취업이민 비자를 받은 사례는 없거나 극히 드물다. 원고들도 2016. 11.경 AP 결정을, 2017. 9.경 TP 결정을 받고 그 이후 비자발급 절차가 중단되었는데, 비자발급 절차가 중단된 이유나 재개 여부는 전혀 알 수 없다.
이 사건 계약을 체결할 당시 당사자들이 이러한 사정변경을 예견했다고 볼 수 없고, 그로 인한 불이익이나 위험을 원고들이 부담하기로 했다고 볼 수 없다. 만일 원고들이 이러한 사정을 예견했더라면 이 사건 계약을 체결하지 않거나 계약 내용 중 일부를 변경하거나 추가하였을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3) 이러한 사정을 종합하면, 이 사건 계약은 성립의 기초가 되었던 비자발급 절차나 기간에 관한 사정이 현저히 변경되었고, 당사자가 계약의 성립 당시 이를 전혀 예견할 수 없었으며, 계약을 유지해도 체결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거나 당사자의 이해에 중대한 불균형을 초래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4) 피고는 원고들에 대한 비자발급 절차 중단이 이 사건 계약 제5조 제6호에서 정한 ‘미국의 이민정책의 변경으로 인하여 원고들의 이민 절차가 불가능해진 경우’에 해당하므로, 사정변경의 법리를 적용하기에 앞서 위 계약 조항을 우선 적용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위에서 보았듯이 원고들에 대한 비자발급 절차가 중단된 구체적인 이유를 알 수 없고, 미국 이민법령의 개정이나 행정명령 발효 등 공식적인 정책 변경이 있었다는 증명이 없으므로, 원고들의 이민 절차가 미국의 암묵적인 이민정책 변경으로 불가능해졌을 것이라는 추측이나 추정만으로 위 조항을 적용할 수 없다.
다. 원심이 사정변경을 이유로 하여 이 사건 계약의 해지를 인정한 판단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신의성실 원칙이나 사정변경에 의한 해지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한 잘못이 없다. 피고의 나머지 상고이유 주장은 근거 없는 것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고, 나아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아도 원심판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처분권주의나 변론주의에 관한 법리 등을 위반한 잘못이 없다.
대법원은 이 사건과 유사한 사례에서 AP/TP 결정을 이유로 사정변경에 의한 해지를 인정한 바 있다( 대법원 2018. 11. 9. 선고 2018다208406 판결 참조). 한편 피고가 상고이유에서 들고 있는 대법원판결은 이 사건과 사안이 달라 원용하기에 적절하지 않다.
4. 결론
피고의 상고는 이유 없어 이를 모두 기각하고 상고비용은 패소자가 부담하도록 하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