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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사고
대법원 1995. 8. 25. 선고 94다47803 판결
[손해배상(의)][공1995.10.1.(1001),3269]
판시사항

가. 혈액관리법에 따라 혈액을 관리하는 자가 부담하는 주의의무의 내용과 그 판단 기준

나. 대한적십자사가 헌혈 혈액 전부에 대한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 검사가 의무화되기 이전에 헌혈받아 공급한 혈액을 수혈받고 에이즈에 감염된 사안에서, 대한적십자사의 과실을 인정한 사례

판결요지

가. 혈액관리법의 관련 규정에 따라 혈액원을 개설하여 수혈 또는 혈액 제제의 제조에 필요한 혈액을 채혈·조작·보존 또는 공급하는 업무는 성질상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수혈자나 혈액 제제의 이용자 등의 생명·신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서, 만일 그 업무가 적정하게 수행되지 못할 경우에는 국민 보건에 광범위하고도 중대한 위해를 가하게 될 것임이 분명하므로, 이와 같은 혈액원의 업무를 수행하는 자는 수혈 또는 혈액 제제의 제조를 위한 혈액의 순결과 공혈자 및 수혈자를 보호하고 혈액 관리의 적정을 기하기 위하여 최선의 조치를 다하여야 할 고도의 주의의무가 있고, 나아가 이러한 주의의무의 구체적 내용과 그 위반 여부를 논함에 있어서는 문제로 된 행위 당시의 일반적인 의학의 수준과 그 행위로부터 생기는 결과발생의 가능성의 정도, 피침해법익의 중대성, 결과회피 의무를 부담함에 의해서 희생되는 이익 등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나. 대한적십자사가 헌혈 혈액 전부에 대한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 검사가 의무화되기 이전에 헌혈받아 공급한 혈액을 수혈받고 에이즈에 감염된 사안에서, 대한적십자사의 과실을 인정한 사례

원고, 피상고인

원고 1 외 3인

피고, 상고인

대한적십자사 소송대리인 변호사 우영제

주문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피고의 부담으로 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본다.

혈액관리법의 관련 규정에 따라 혈액원을 개설하여 수혈 또는 혈액 제제의 제조에 필요한 혈액을 채혈·조작·보존 또는 공급하는 업무는 성질상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수혈자나 혈액 제제의 이용자 등의 생명·신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서 만일 그 업무가 적정하게 수행되지 못할 경우에는 국민 보건에 광범위하고도 중대한 위해를 가하게 될 것임이 분명하므로, 이와 같은 혈액원의 업무를 수행하는 자는 수혈 또는 혈액 제제의 제조를 위한 혈액의 순결과 공혈자 및 수혈자를 보호하고 혈액 관리의 적정을 기하기 위하여 최선의 조치를 다하여야 할 고도의 주의의무가 있다고 할 것이고, 나아가 이러한 주의의무의 구체적 내용과 그 위반 여부를 논함에 있어서는 문제로 된 행위 당시의 일반적인 의학의 수준과 그 행위로부터 생기는 결과발생의 가능성의 정도, 피침해법익의 중대성, 결과회피의무를 부담함에 의해서 희생되는 이익 등이 함께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원심은 제1심판결 이유를 인용하여 망 소외 1은 1987.1.7. 제1심 공동피고 서울대학교병원이 피고로부터 공급받아 수혈한 혈액에 의하여 후천성면역결핍증(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 약칭 AIDS, 이하 에이즈라고 한다)에 걸린 사실, 위 망인에게 수혈된 혈액은 혈액관리법 제4조 제2항 제2호 의 규정에 따라 혈액원을 개설하여 그 업무를 수행하던 피고가 1986.10.20. 에이즈 감염자인 소외 2으로부터 헌혈받은 것인데, 위 소외 2는 1988.11.1.에도 헌혈하다가 피고가 시행한 에이즈 검사에 의하여 항체 양성반응자로 판정되었고, 이에 피고가 위 소외 2의 과거 헌혈 여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위와 같이 1986.10.20. 헌혈한 혈액이 위 병원에 공급되어 위 망 소외 1에게 수혈된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1991.10.15. 위 망인의 혈액을 채혈하여 검사한 결과 위 망인도 항체 양성반응자로 판명된 사실, 위 망인은 1991.11.28.경 도봉구보건소로부터 위와 같은 사실을 통보받고 정신적 충격을 받아 삶에 대한 의욕을 완전히 상실하고 극도의 소외감 속에서 세상을 비관하면서 살아가다가 탈장이 되고 몸무게가 30kg으로 감소하는 등 건강도 급격히 악화된 상태에서 절망을 이기지 못하고 1992.4.14. 자살하기에 이른 사실, 에이즈는 후천적으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uman Immunodeficient Virus, 약칭 HIV, 이하 에이즈바이러스라 한다)의 감염에 의하여 야기되는 질병으로서 이에 이환되면 인체는 질병과 싸우는 면역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어 악성종양, 세포성면역결핍, 기회감염 등의 증후군이 나타나고 면역결핍으로 인한 기회감염으로 인하여 모든 질병에 감염의 기회를 주게 되어 감기에라도 한번 걸리면 폐렴, 만성기관지염, 피부병, 만성설사 등으로 병세가 발전하는 등 그 예후가 극히 불량하고 치유가 불가능하여 거의 예외 없이 수년 내에 사망하게 되는 치명적인 질환인 사실, 에이즈바이러스는 1981.6.경 미국에서 최초로 발견되었고, 1985.경에 이르러서는 에이즈바이러스의 감염 경로, 특히 감염된 혈액의 수혈이 그 주요한 감염 경로의 하나라는 사실이 의학계에 일반적으로 알려졌으며, 같은 해 3.경에는 에이즈 감염 여부를 판별하는 항체 검사방법이 개발되어 그 진단 시약이 미국식품의약국(FDA)의 검사승인 하에 판매되기 시작한 사실, 우리 나라에서는 1985.5.경 국내에 체류중인 외국인에게서 에이즈 감염자가 발견되었다는 보고논문이 발표되었고, 같은 해 12.경 내국인으로는 해외에서 귀국한 근로자에게서 최초로 발견되었으며, 위 소외 2가 이 사건 혈액을 헌혈한 1986.10.20. 이후 망 소외 1이 수혈받은 1987.1.7. 사이에 에이즈에 감염된 것으로 판명된 내국인의 수는 5명 정도이고, 1992. 현재 에이즈 감염자는 세 자리 숫자를 넘은 것으로 보고된 사실, 국내에서 에이즈에 대한 관심이 증가할 무렵인 1985.4. 국가적 차원에서 에이즈 예방 대책을 수립하기 위하여 보건 관계자들의 협의회가 처음으로 열렸고 피고도 이에 참석하였는데, 같은 해 12.경까지 사이에 여러 차례 개최된 위 협의회에서는 에이즈 진단 시약의 수입과 그에 따른 검사시기,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함과 아울러 피고 등에게 감염우려자로부터의 혈액채취를 금지시키기로 협의한 사실, 국립보건원은 1985.6.13.경 미국의 제약회사로부터 기증받은 에이즈 진단 시약으로 혈액 제제, 피고의 표본추출 혈액 등을 시험적으로 검사하기 시작하였고, 같은 해 6.21. 이후 진단 시약이 수입되자 주한미군 주둔지역인 의정부, 평택 등과 주한 외국인 등의 표본추출 혈액을 검사하였으며, 같은 해 11.에서 12. 사이에 미군 주둔지역의 윤락행위자 등 약 4,400명을 대상으로 에이즈 검사를 실시하였고, 1986.1.13. 일부 지역에서만 실시되던 에이즈 검사를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에이즈 감염 위험집단인 동성연애자, 마약 및 약물 상습복용자, 혈우병환자 등에 대하여 검사를 실시토록 한 사실 등을 인정하고 있고, 한편 기록에 의하면 이 사건 혈액의 채혈일에 가까운 1987.4.경 보건사회부가 피고와의 협의하에 헌혈 혈액 전부에 대한 에이즈 검사를 실시함에 따라 소요되는 비용을 산정해 본 결과, 1987년도 헌혈목표량인 838,800명분의 헌혈 혈액에 대한 에이즈 검사를 위하여 소요되는 재료비, 수수료, 인건비 등의 제반 총비용은 도합 19억원 가량이고, 수익자부담의 원칙에 따라 이 비용을 혈액 수가에 반영하면 에이즈 검사로 인하여 소요되는 1건당 2,100원의 비용이 혈액 수가에 추가되어 결국 종전에는 320cc에 10,300원이던 혈액 수가가 12,400원으로 인상, 조정되는 정도라는 것이고, 1985.10.경 수입된 진단 시약의 가액은 1인분에 8,800원이므로 1986. 우리나라에서 채혈한 혈액 전부에 대하여 위 수입진단 시약에 의한 검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면 그 비용으로는 계산상 도합 71억 여원 가량이 소요됨을 알 수 있다.

사실 관계가 위와 같다면, 피고는 1986.10.20. 소외 2로부터 이 사건 혈액을 채혈할 당시에 혈액의 수혈로 인한 에이즈 감염의 구체적 위험성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할 것이고, 그렇다면 위 채혈일로부터 망 소외 1이 수혈을 받은 1987.1.7. 사이에 에이즈에 감염된 것으로 판명된 내국인의 수는 5명 정도에 불과하여 수혈로 인한 에이즈 감염의 확률은 극히 낮은 것으로 보여지는 반면에 헌혈 혈액 전부에 대한 에이즈 검사를 실시하는 데 적지 않은 비용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수혈로 인한 에이즈 감염이라는 결과와 그로 인한 피침해이익의 중대성에 비추어 볼 때, 피고로서는 헌혈 혈액 전부에 대하여 당시 실행 가능했던 최선의 조치로 판단되는 에이즈 검사를 실시함으로써 이 사건과 같은 에이즈 감염의 결과발생을 회피할 주의의무가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 이러한 결론은 소론 주장과 같이 혈액관리법에 의하여 피고에게 헌혈 혈액 전부에 대한 에이즈 검사가 의무화된 시점이 이 사건 혈액의 채혈일 이후인 1987.7.1.부터라고 하여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원심이 이와 같은 취지에서 피고는 이 사건 채혈 당시 에이즈 검사를 하지 아니함으로써 위 망 소외 1에 에이즈 감염의 피해를 입은 데 대하여 과실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음은 정당하고, 거기에 소론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불법행위의 구성요소인 과실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실질적으로 무과실책임을 인정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논지는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상고를 기각하고 상고비용은 패소한 피고의 부담으로 하기로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어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김형선(재판장) 박만호(주심) 박준서 이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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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급 사건
-서울고등법원 1994.9.7.선고 94나5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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