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피항소인겸항소인
합병된 녹십자피디 주식회사의 소송수계인외 1인(소송대리인 변호사 장세종외 5인)
피고, 항소인겸피항소인
피고(소송대리인 변호사 전현희외 3인)
변론종결
2005. 7. 12.
주문
1. 제1심 판결 중 피고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그 부분에 해당하는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2. 원고의 항소를 기각한다.
3. 소송총비용은 원고의 부담으로 한다.
청구취지 및 항소취지
1. 청구취지
피고는 원고에게 15억 원 및 이에 대한 제1심 판결선고일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20%의 비율에 의한 돈을 지급하라.
2. 항소취지
가. 원고 : 제1심 판결 중 원고 패소 부분을 취소한다. 피고는 원고에게 14억 5,000만 원 및 이에 대한 이 사건 판결선고일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20%의 비율에 의한 돈을 지급하라.
나. 피고 : 주문 제1항과 같다.
이유
1. 기초사실
다음의 사실은, 갑 제1호증의 1·2, 제2호증의 1·2, 제3·4호증, 제5호증의 1·2, 제6호증, 제7호증, 제17 내지 19호증, 제21 내지 23호증, 제28·29호증, 을 제1 내지 3호증, 제5 내지 9호증, 제11호증의 1 내지 10, 제22호증, 제23호증의 1·2, 제27호증, 제29 내지 31호증의 각 기재, 당심 증인 소외 2의 증언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더하여 보면 이를 인정할 수 있고, 이에 반하는 을 제4호증, 제14호증의 각 기재 부분은 믿지 아니하며, 달리 반증이 없다.
가. 관련 기초 지식
(1) 혈우병
혈우병이란 선천성·유전성으로 혈액응고인자가 결핍되어 자발적 또는 경미한 외상에 의해서도 쉽게 출혈하고, 출혈 후 지혈이 잘 되지 않는 질환을 의미하는데, 출혈시 피를 멎게 하는 혈액 내의 12종의 혈액응고인자 중 제8인자가 결핍되거나 부족한 질환을 A형 혈우병, 제9인자가 결핍되거나 부족한 질환을 B형 혈우병이라고 한다. 혈우병에 대한 치료방법으로는 혈장수혈법이 주로 이용되어 왔으나, 1965년경 혈장으로부터 혈액응고인자를 분리하는 방법이 발견된 이후로는 혈장으로부터 분리한 혈액응고인자를 농축한 제제(제제)를 투여하는 방법이 주로 이용되고 있다.
(2) 후천성면역결핍증
후천성면역결핍증[AIDS(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 이하 '에이즈'라고 한다]이란 체내의 세포면역 기능이 뚜렷하게 떨어져 보통 사람에게는 볼 수 없는 희귀한 각종 감염증이 발생하고, 이것이 전신에 퍼지는 질환을 의미하며, 이는 에이치아이브이[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 : 에이즈를 일으키는 인체면역결핍 바이러스, 이하 ‘HIV'라고만 표기한다]에 의하여 발생한다.
HIV의 감염경로는,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HIV에 감염된 사람과의 성적인 접촉, 감염된 혈액의 수혈이나 감염된 혈액으로 제조된 혈액제제의 사용, 감염된 사람과의 주사바늘 및 주사기의 공동사용, 감염된 산모로부터 임신 중 또는 출산시 태아에게로 전파 또는 모유에 의한 감염 등이 있다.
에이즈의 발병원인인 HIV를 퇴치하는 약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고, 현재는 에이즈 환자의 면역체계가 정상적으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경우 발생하는 기회감염을 통제하는 방법, 즉 여러 종류의 항HIV 약제를 동시에 복용하게 하는 방법으로 치료를 하고 있으나, 증상발현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약을 계속 복용해야 하며, 현대의 의학수준으로는 완치가 불가능한 질병이다.
HIV에 감염되면 바로 체내에 항체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고, 일반적으로 약 2주 내지 12주 정도의 항체미형성기간(Window period, HIV에 감염되어 항체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보이기까지의 기간)을 거쳐 항체가 형성되며, 감염자의 95% 이상이 6개월 내에 항체가 형성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수년이 걸리기도 하는데, HIV를 보유하고 있는 자를 ‘병원체보균자’, 항체가 형성된 자를 ‘항체양성반응자’, 감염된 후 인체의 면역기능이 저하되어 에이즈 특유의 임상증상이 나타난 자를 ‘에이즈환자’라고 하고, 널리 에이즈바이러스에 감염된 자라고 함은 위의 각 경우에 해당하는 자를 말한다.
나. 원고의 지위
(1) 주식회사 녹십자홀딩스(주식회사 녹십자가 2004. 9. 3. 그 상호를 변경한 회사이다, 이하 ‘녹십자홀딩스’라고만 한다)는 의약품, 의약 부외품 등의 제조 및 판매 등의 영업을 하고 있는 제약회사이다.
(2) 원고의 피소송수계인인 녹십자피디 주식회사는 녹십자홀딩스에 의하여 1999. 12. 10. 설립되고 1999. 12. 16.경 그 영업 중 혈액제제부분에 관한 일체의 권리·의무와 시설을 양수받아 혈액제제의 제조 및 유통 등의 영업을 하던 제약회사인데, 2003. 12. 31. 주식회사 녹십자피비엠에 합병되었고, 주식회사 녹십자피비엠은 2004. 9. 30. 주식회사 녹십자상아에 합병되었으며, 주식회사 녹십자상아는 2004. 10. 4. 그 상호를 주식회사 녹십자(원고)로 변경하였다(이하, 원고가 녹십자홀딩스로부터 혈액제제와 관련한 권리·의무를 승계한 점을 참작하여, 녹십자홀딩스와 그 승계인 녹십자피디 주식회사 및 그 소송수계인 주식회사 녹십자피비엠을 모두 원고로 통칭한다).
(3) 원고는 1974.경부터 A형 혈우병 치료제인 ‘옥타비’(Octa-VI) 또는 ‘그린 에이트’(Green Eight)를 개발하여 제조·공급하였고, 1986년경에는 B형 혈우병 치료제인 ‘훽나인’(Facnyne, 이하 ‘이 사건 혈액제제’라 한다)을 제조·공급하였다가 수요 부족으로 제조를 중단한 이후, 1989. 12.경부터 다시 이 사건 혈액제제를 제조하여 공급하였으며, 1991. 2. 11.경 혈우병 환자의 치료와 재활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복지법인 한국혈우재단(이하 ‘한국혈우재단’이라고 한다)을 설립한 바 있는데, 그 무렵 한국혈우재단에 회원으로 등록된 환자들에게 위 한국혈우재단을 통하여 자신이 제조한 혈우병 치료제를 무상 또는 유상으로 공급하였다.
(4) 한편, B형 혈우병 치료제 중에 국산인 것은 원고가 생산하기 시작하여 현재 원고가 생산하고 있는 이 사건 혈액제제가 유일하다.
다. 이 사건 혈액제제의 제조과정(TNBP 공법 또는 S/D 공법)
공혈자로부터 혈액을 채취하여 혈장을 분리한 후 혈장을 급속동결하고, 혈장에 대한 HIV 및 B·C형 간염 바이러스 검사를 실시한다. 급속동결된 혈장을 융해하여 한 곳에 모으고(Pooling, 하나의 Pool에는 1,500명 이상의 혈장이 이용됨), 원심분리기를 이용하여 분리한 다음, 침전물은 혈액응고인자 중 제8인자 원액의 제조에 사용하며, 상층의 혈장에서 혈액응고인자 중 제9인자 원액을 추출한 다음 세균을 여과한다. 증류수와 유기용매(Solvent)인 TNBP(Tri-n-Butyl-Phosphate, 3부틸인산염) 0.3%, 세정제(Detergent)인 Tween80 1%를 섞어 불활성화(부활성화) 시약을 만든다. 수소이온농도 및 단백농도가 조정된 혈액응고 제9인자 원액에 불활성화 시약을 넣은 후 섭씨 25°내지 26°에서 6시간 이상 휘젓는 방법으로 HIV 및 B·C형 간염 바이러스를 불활성화시킨다. 불활성화가 끝난 혈액응고 제9인자 원액에서 이온교환수지와 컬럼을 이용하여 불활성화 시약을 제거한 후 이를 정제하고, 다시 여과기로 세균을 여과하여 무균상태의 혈액응고 제9인자 최종 용액을 만든다. 위 최종용액의 함량검사를 하여 멸균된 병에 담아 급속동결한 후 진공동결건조한다. 완성된 제품은 자체 시험 및 국가검정을 거쳐 판매한다.
라. 혈우병 환자 16인의 HIV 감염
(1) 한국혈우재단이 1992.경 혈우병 환자들에 대하여 HIV 감염검사를 실시한 결과, 1991. 등록 당시 음성이었던 환자 12인이 양성으로 확인되었고, 그 후 1994.까지 모두 16인이 HIV에 감염되었음이 확인되었으며(이하 ‘이 사건 감염’이라 한다), 위 16인의 환자들에 대한 HIV 최초의 양성결과 확인일은 아래 표와 같다.
이 름 | 최초 감염 확인일 | 이 름 | 최초 감염 확인일 |
박 * 웅 | 1992. 2. 29. | 이 * 민 | 1991. 2. 26. |
김 * 오 | 1994. 7. 25. | 이 * 혁 | 1992. 2. |
김 * 중 | 1991. 8. 20 | 이 * 필 | 1993. 3. 3. |
장 * 성 | 1992. 11. 30. | 김 * 이 | 1992. 2. 29. |
이 * 성 | 1992. 3. 2. | 김 * 길 | 1992. 2. |
장 * 식 | 1991. 7. 1. | 전 * 재 | 1992. 1. |
정 * 원 | 1991. 2. 21. | 손 * 정 | 1992. 3. 21. |
임 * 우 | 1991. 2. 21. | 조 * 석 | 1992. 1. 13. |
(2) 위 혈우병 환자 중 12인은 이 사건 감염 이전에 이 사건 혈액제제를 투여 받아오다가 이 사건 감염이 확인되었고, 위 혈우병 환자들의 어머니는 모두 HIV 감염자가 아니며, 이 사건 감염 당시 박*웅은 만 4세, 김*중은 만 5세, 이*성은 만 11세, 정*원은 만 15세, 이*필은 만 3세, 김*길은 만 11세, 전*재는 만 3세 내지 만 4세, 조*석은 만 18세로 모두 성경험이 없었다.
마. 제1차 역학조사
(1) 이 사건 감염사실이 밝혀지자, 당시 국립보건원은 1992. 12.경 피고를 포함한 혈액학자, 역학자, 분자유전학자 등의 전문가로 구성된 ‘혈액제제안전성위원회’를 구성하여, 3차례의 회의와 원고의 이 사건 혈액제제의 제조공정 확인 절차를 거쳤는데, 당시 위 위원회의 조사 및 회의결과는 다음과 같다.
ⓛ 원고의 문제된 혈액의 구입
원고는 혈액제제의 제조에 사용하기 위하여 1988. 1. 5.경부터 1988. 12. 23.경까지, 1989. 1. 5.경부터 1989. 12. 23.경까지 총 83회에 걸쳐 소외 1로부터 동인의 혈액을 구입한 바 있는데, 소외 1은 1989. 10. 16.경까지는 HIV 검사에서 음성반응을 보였으나, 최종음성반응을 보인 후 45일이 지난 1989. 11. 30. 매혈할 당시 HIV 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보였다. 원고는 위와 같이 소외 1로부터 구입한 혈액 중 HIV 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보인 1989. 11. 30.부터 같은 해 12. 23.까지 4차례(1989. 11. 30., 1989. 12. 8., 1989. 12. 20., 1989. 12. 23.)에 걸쳐 구입한 혈액은 1989. 12. 27. 목암생명공학연구소에 인계하였으나, HIV 검사에서 음성반응을 보인 1989. 10. 16.경까지 구입한 혈액은 혈액제제 등의 제조에 사용하였다.
또한, 원고는 혈액제제의 제조에 사용하기 위하여 1990. 1. 3.경부터 1990. 3. 26.경까지 총 21회에 걸쳐 소외 3으로부터 동인의 혈액을 구입한 바 있고, 소외 3은 1990. 4.경 HIV 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보였다. 원고는 위와 같이 소외 3으로부터 구입한 혈액 중 1990. 3. 22. 및 1990. 3. 26. 구입한 혈액은 공장에서 폐기하였으나, 1990. 3. 15.경까지 구입한 혈액은 이 사건 혈액제제를 포함한 혈액제제 등의 제조에 사용하였다.
원고는 그 외에 1992. 1. 29.부터 같은 해 6. 8.까지 사이에 연모, 조모로부터도 혈액을 구입하였는데, 이들의 혈액 역시 HIV 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보였으나, 이 사건 혈액제제의 제조에는 사용하지 아니하였다.
② 사용혈액의 HIV 감염 가능성에 관하여
현행 생물학적 제제기준 및 시험방법상 혈액제제의 제조를 위한 혈장에 대해서는 HIV 항체 검사를 실시하여 음성인 혈장만을 사용하도록 규정되어 있으며, 원고도 이를 준수하여 자체개발한 제1세대 에이즈 진단시약인 ‘하이비로 엘리자’(HIVIRO ELISA, 이하 '엘리자'라고 한다)로 HIV 항체 검사를 실시하여 음성인 혈액을 이 사건 혈액제제의 제조에 사용하였으나, 현재 기술적인 한계로 이와 같은 항체 검출법으로는 HIV에 감염되지 않는 혈액과 HIV 감염 후 항체미형성기간에 있는 혈액을 구별할 수 없어, 사용혈액 중 오염혈액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③ 이 사건 혈액제제의 제조 방법 및 공정의 적합성에 관하여
현장 조사시 원고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상 이 사건 혈액제제의 제조 방법 및 공정은 뉴욕혈액센터(New York Blood Center : NYBC)에서 개발되어 FDA(Food and Drug Administration : 미국식품의약국)의 승인을 받은 국제적으로 인정된 공법으로서 공정상의 하자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제조 공정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여부는 조사 당일 이 사건 혈액제제를 제조하고 있지 않아 직접 확인은 불가능하였고, 제조자의 정확한 수행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HIV 안전성 확보는 불가능하다.
한편, 원고는 A형 혈우병 치료제의 경우 8시간의 처리공정을 거쳤으나, 이 사건 혈액제제의 경우 6시간의 처리공정을 거쳐 제조하였고, 1990.경 이 사건 혈액제제의 제조에 TNBP공법을 도입한 이후 위 기술을 전수받은 뉴욕혈액센터로부터 1년에 1~2회 점검을 받는다고 발표한 바 있으나, 실제로는 이 사건 감염 이후인 1993. 5.경 미국의 혈액제제 제조전문가 버나드 호로비츠(Bernard Horowitz)박사가 원고를 방문하여 이 사건 혈액제제의 제조공정을 점검하기까지 위 뉴욕혈액센터로부터 제조공정에 관한 점검을 받은 적이 없었다.
④ 제품에 대한 에이즈 검사의 정확성 및 타당성에 관하여
혈액제제가 제조된 후 그 제품에 대하여 제조회사 및 국립보건원이 HIV 항체 검사를 실시하는 것은 감도가 낮아 완전한 방법이 아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제품의 안정성을 제품에 대한 에이즈 검사로 확인할 수는 없으며, 원료에 대한 점검과 제조 공정에 대한 정기적인 품질관리만이 제품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방법이다.
⑤ 제품의 HIV 감염 여부 규명의 가능성에 관하여
염기서열의 분석결과 HIV 염기서열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 하더라도, 동일한 감염원에 의하여 감염되었을 경우, 다른 감염원으로부터 감염되었더라도 감염원의 염기서열 사이에 유사성이 있을 경우에는 동일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위 혈우병 환자인 감염자들의 감염원이 이 사건 혈액제제였는지에 대하여 현재의 과학수준으로 직접적인 규명은 거의 불가능하다. 간접적인 방법들로 역학적 조사 방법 등이 있으나, 향후 상당한 기간을 두고 조사·연구되어야 할 사항이다.
(2) 그 후 위 위원회 조사의 연장선상에서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인 염용태가 1994. 4. 16.경 한국혈우재단에 등록되어 있는 혈우병 B형 환자들 사이에서 수혈과 혈액제제의 사용량에 따라 HIV 감염자의 수가 차이 나는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HIV 항체 양성군(군)과 음성군(군) 또는 성인군과 미성년군으로 나누어 비교를 한 ‘한국 혈우병 B형 환자들에게서 발생한 HIV 감염에 대한 역학적 연구’라는 결과보고서를 발표하였는데, 그 결론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전혈(whole blood)이나 성분수혈을 공급받은 환자들이 HIV 항체 양성군에 더 많이 속해 있지는 않았고, 오히려 1991.의 경우에는 전혈이나 성분수혈을 공급받은 환자들이 음성군에 더 많이 속해 있었다.
② 외국산 혈액제제를 사용한 환자들이 HIV 항체 양성군에 더 많이 속해 있었고(유의한 차이), 1991. 이후의 기간에 있어서 이 사건 혈액제제를 사용한 환자들이 양성군에 더 많이 속해 있었다. 성인군과 미성년군을 나누어 보았을 때, 성인군에서는 외국산 혈액제제를 사용한 환자들이 양성군에 더 많이 속해 있었고, 미성년군에서는 이 사건 혈액제제를 사용한 환자들이 양성군에 더 많이 속해 있었다.
③ 외국산 혈액제제는 HIV 항체 양성군에서 현격하게 많이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외국산 혈액제제를 사용하지 않은 환자군에서는 이 사건 혈액제제의 사용량에 따른 양성군과 음성군 사이의 차이가 없었다.
④ 결론 : 1989. 또는 그 이전에 외국산 혈액제제를 투여 받은 환자군의 HIV 항체 양성반응이 다른 환자군보다 수배 내지 수십 배 이상 높았는데, 이들이 또한 이 사건 혈액제제의 생산 이후에는 다른 환자군보다 더 많이 이 사건 혈액제제를 투여받은 것으로 나타나므로, 결론적으로 이 사건 혈액제제가 혈우병 환자의 HIV 감염과 인과관계가 있는지를 밝히기는 어렵다.
(3) 이에 따라 혈액제제안전성위원회는 1994. 5. 4.경 최종회의에서 ‘현재까지의 조사 결과 감염원인은 수혈에 의한 것은 아닌 것으로 추정되며, 혈액제제에 의한 것으로 판단되나, 감염원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는 내용의 결과를 보고하였다.
바. 피고의 논문발표와 인터뷰
(1) 피고의 경력
피고는 현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미생물학교실 부교수로 재직 중인 사람으로서, 1987. 2.경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이후 한양대학교 미생물학 의학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1990. 4.경부터 1993. 4.경까지 국립보건원 에이즈과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하였고, 1993. 5.경 울산의대에서 전임강사로 근무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피고는 1997. 9.경부터 1998. 8.경까지 미국 하버드 의대 부설센터에서 방문교수를 역임하기도 하고, 의학미생물학 교과서 일부를 집필한 것을 비롯하여 국내외의 학술지에 약 50편의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2000. 12.경 에이즈에 관한 연구의 공로로 한국에이즈퇴치연맹으로부터 올해의 에이즈퇴치상(연구부문)을 수상하였다.
(2) 논문발표의 경위
피고는 이 사건 혈우병환자들의 집단 HIV 감염 당시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면서, 전국의 에이즈 감염자를 대상으로 면담 및 역학조사를 하였고, 6개월마다 환자를 방문하여 면역검사를 하기도 하였는데, 이때 채혈한 혈액 샘플 중 일부를 제1차 역학조사위원회의 활동 이후에도 계속 보관하였다. 피고는 홍삼이 에이즈에 미치는 영향을 밝히기 위하여 100여 명의 에이즈 환자를 상대로 연구를 하였는데, 피고가 보관하며 분석하던 혈액 중에는 혈우병 환자들과 소외 1을 포함한 매혈자들의 혈액도 포함되어 있었다. 피고는 이러한 연구도중 HIV에 감염된 혈우병 환자들의 HIV 유전자 염기서열과 매혈자들의 HIV 유전자 염기서열이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러한 연구결과가 포함된 별지 1 기재 논문(갑 제5호증의 1·2, 연구에 참여한 자와 감수한 자를 공동 저작자로 표시함, 이하 ‘이 사건 제1논문’이라 한다)을 2001년 발행된 “에이즈 연구와 인간 레트로바이러스(AIDS RESEARCH AND HUMAN RETROVIRUSES)”라는 미국에서 발간하는 의학전문지 17권 16호에 발표하였다.
(3) 인터뷰 경위
피고는 이 사건 제1논문으로 2002. 4. 26. 한국과학기술총연합회로부터 제12회 과학기술우수논문상을 수상하였고, 2002. 10.경 국제인명사전인 마르퀴즈 후즈후에 등재되기도 하였다. 피고가 수상한 위 과학기술우수논문상을 주목한 동아일보사 소속 기자 소외 2는 제1차 역학조사에 관한 내용을 확인한 후 피고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여, 피고는 2002. 9.경 소외 2에게 별지 2 기재와 같은 내용을 말하였는데(이하 ‘이 사건 제1인터뷰’라고 한다), 그 내용이 2002. 9. 13.자 동아일보 1면에 그대로 보도(갑 제6호증)되었으며, 동아일보가 그 후 며칠동안 같은 주제를 다루면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다.
(4) 나머지 논문 및 인터뷰
피고는 2003.경 발행된 위 의학전문지 19권 6호에 별지 3 기재 논문(갑 제21호증, 이하 ‘이 사건 제2논문’이라 한다)을 발표하였고, 이어서 같은 해 발행된 위 의학전문지 19권 7호에 별지 4 기재 논문(갑 제22호증, 2인 공동저작의 형식, 이하 ‘이 사건 제3논문’이라 한다)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피고는 2003. 9.경 한국방송공사가 혈우병 환자들의 HIV 감염사례와 원인을 취재하면서 요청해 온 인터뷰에 응하여, 별지 5 기재와 같은 내용을 말하였는데(이하 ‘이 사건 제2인터뷰’라고 한다), 이것이 2003. 10. 4. 21:50경 KBS2 채널의 “추적 60분”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서 “어느 에이즈 환자들의 절규”라는 제목으로 그대로 방영(갑 제23호증)되었다.
(5) 이 사건 각 논문 및 인터뷰에 나오는 “Case A”, “공혈자 오(O)씨”, “매혈자 오모씨”라는 사람은 모두 소외 1을 가르킨다.
사. 제2차 역학조사
피고의 논문발표와 일간지 보도 등으로 혈우병 환자의 HIV 집단 감염이 사회문제화되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의료계, 약학계, 소비자 및 관련단체의 전문인사 등 15명을 위원으로 한 ‘혈액제제에이즈감염조사위원회’가 새로 구성되어 재조사를 실시하였고, 위 위원회는 2002. 9. 1.경부터 2004. 2. 4.경까지 조사활동을 한 후 2004. 4.경 그 연구결과를 보고하였는데,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총 25명의 혈우 HIV 감염자 중 20명의 B형 혈우병 환자를 중심으로 사례군 연구, 환자-대조군 연구, 코호트 연구와 분자생물학적 염기서열 유연성 분석을 수행하였고, A형 혈우병 환자의 경우 사례연구만을 수행하였다.
② 역학조사 결과
20명의 B형 혈우감염자 중 10명은 1990. 9.경부터 1993. 3.경까지 사이에 감염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중 5명은 감염추정기간 중 이 사건 혈액제제 이외에 다른 외국산 혈액응고제제나 수혈을 받은 기록이 없었다. 투여된 혈액응고제제에 대한 환자-대조군 연구에서 1990년 투여된 이 사건 혈액제제가 통계적으로 유의한 연관성이 있었다. 투여된 혈액응고제제의 제품번호별 코호트 연구에서는 제품번호 6개(0001, 0002, 1008, 1012, 1013, 1014)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한 연관성이 있었고, 특히 제품번호 0001과 1002를 조합하였을 때 추정 상대위험도가 34.70으로 높아지며 감염시기 추정이 가능한 10명이 모두 포함되었다.
③ 분자생물학적조사 결과
혈우, 비혈우, 매혈 HIV 감염자 및 외국 대조군에 대한 계통수 분석은 국내 HIV 분리주가 외국 분리주와는 구별되는 뚜렷한 집단을 형성하고 있었고, 일부 혈우감염자와 매혈감염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혈우감염자와 매혈감염자가 국내 HIV 분리주 그룹에 속해 있었다. 이 사건 혈액제제의 원료 제공자로 제기된 일부 매혈자와 혈우감염자가 계통수 분석에서 밀접하게 위치해 있었으나, 확률적인 유연관계를 증명할 수는 없었다. 국내 HIV 분리주 그룹에 속한 혈우감염자는 국내 감염자를 통해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④ 결론적으로, 어느 제품이 오염되어 감염이 발생하였는지 밝힐 수는 없지만 일부 혈우병 환자는 이 사건 혈액제제에 의하여 HIV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의심된다.
아. 원고의 피해
원고는 이 사건 혈액제제를 제조하여 2001년도에 16억 2,600만 원, 2002년도에 18억 2,000만 원의 매출실적을 올렸으나, 피고의 위 각 논문 발표와 언론의 보도 등으로 문제된 이후, 2003년도에 6억 8,000만 원, 2004년도에 3억 원 정도로 매출이 급감하였다.
2. 원고의 주장 및 판단
가. 원고의 주장
원고는, 피고가 이 사건 각 논문과 인터뷰를 통하여, ① ‘오모’의 혈장이 혈액응고 제9인자(이 사건 혈액제제)의 제조에 사용되었다는 내용(이하 ‘이 사건 제1내용’이라 한다), ② 그리고 ‘오모’ HIV의 염기서열과 일부 혈우병 환자 HIV의 염기서열이 고도의 유사성을 보이며 모두 이른바 ‘한국형 섭타입(Sub-type) B’ 집단에 속하고 있다는 내용(이하 ‘이 사건 제2내용’라 한다), ③ 따라서 일부 혈우병 환자가 HIV에 오염된 이 사건 혈액제제에 의하여 감염된 것이라는 내용(이하 ‘이 사건 제3내용’이라 한다)을 적시하였는데(이하 위 3가지의 내용을 통칭하여 ‘이 사건 적시내용’이라 한다), 이 사건 제1의 사실은 진실이 아닌 허위의 사실이며, 또한 피고는 이 사건 제1내용이 진실임을 전제로 하여 염기서열 분석대상을 선정한 후 그 분석을 통해 이 사건 제2내용을 이끌어 내고, 이 사건 제1내용과 이 사건 제2내용을 종합하여 이 사건 제3내용에 이르게 되었으므로, 이 사건 적시내용은 허위사실이거나 허위평가이며, 피고의 이러한 허위사실 내지 허위평가의 적시로 인하여 이를 접하는 사람들이 원고가 생산하는 제품에 중대한 하자가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 등으로 원고의 명예 내지 신용이 훼손됨으로써 이 사건 혈액제제의 매출이 26억 원 상당 감소되는 손해를 입게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피고에게 그 손해배상의 일부로써 15억 원 및 그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구하고 있다.
나. 판단
(1) 명예훼손으로 인한 불법행위의 성립요건
민법상 불법행위가 되는 명예훼손이란 사람의 품성, 덕행, 명성, 신용 등 인격적 가치에 대하여 사회로부터 받는 객관적인 평가를 침해하는 행위를 말하고, 그와 같은 침해행위는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가 있어야 하나, 객관적인 평가를 침해하는 것인 이상, 의견 또는 논평을 표명하는 표현행위에 의하여도 성립할 수 있으며, 다만 의견 또는 논평의 표명이 사실의 적시를 전제로 하지 않은 순수한 의견 또는 논평일 경우에만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며( 대법원 2000. 7. 28. 선고 99다6203 판결 참조), 학문연구에 속하는 사항이라 할지라도 구체적인 사실을 포함하고 있고, 그것이 언론 등을 통하여 발표됨으로써 개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것이라면 불법행위를 구성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2) 이 사건 적시내용이 사실적시에 해당하는지의 여부
위 인정사실에 비추어 볼 때, 피고는 이 사건 각 논문과 인터뷰 내용을 통하여 원고 주장의 이 사건 적시내용을 발표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다만, 원고는 이 사건 제1논문에 이 사건 제3내용도 들어있다고 주장하나, 이 사건 제1논문에서 피고가, 혈우병환자를 감염시킨 오염된 혈액응고 제9인자를 원고회사 제조의 것이라거나 국산제제라고 하고 있는지에 관하여, 갑 제5호증의 1, 2의 각 기재만으로는 이를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며, 국산인지도 명기하지 않은 채 단지 오염된 혈액응고 9인자라고만 하였다고 하여 이 사건 혈액제제를 가리킨다고 단정하기 어려우므로 이 부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그 중 이 사건 제1내용은 피고가 연구결과와는 별도로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다음으로, 이 사건 제3내용에 관하여 먼저 보면, 이는 피고의 전문적인 연구결과를 기초로(다만, 이 사건 제1인터뷰에 있어서는 이 사건 제3내용을 도출하는데 피고의 연구결과와 함께 ‘혈우병환자 12명은 에이즈에 감염되지 않은 게 확인된 상태에서 국내제품을 주사 맞은 직후 에이즈에 감염됐다’는 별도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앞서 본 바와 같다) 추론하여 그러한 연구결과와 함께 표명된 것이기는 하나, 이러한 추론과정이 뒤에서 살펴보는 바와 같이 위법성을 조각시키는지 특별한 사정에 해당하는지는 별론으로 할 때, ‘녹십자가 제조한 이 사건 혈액제제로 인하여 일부 혈우병환자들이 HIV에 감염되었다’는 내용은 새로운 구체적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국산 혈액응고 9인자 제제는 녹십자가 제조한 이 사건 혈액제제만이 있었던 점에 비추어 볼 때, 피고가 ‘국산 혈액응고 9인자’라는 용어로 이 사건 혈액제제를 지칭하고 있음은 일반인들이 쉽게 알 수 있다고 할 것이다).
한편, 이에 비해 이 사건 제2내용는, 피고의 전문적인 유전자 분석연구의 결과로서 그 자체만으로는 사실이라기보다 의견에 해당된다고는 할 수 있으나, 그러한 의견도 결국 원고가 제조한 이 사건 혈액제제로 인하여 일부 혈우병환자들이 HIV에 감염되었다는 이 사건 제3내용을 암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사건 제1내용 또는 이 사건 제3내용과 함께 적시될 경우에는 원고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수 있는 구체적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볼 것이다.
결국, 피고는 이 사건 적시내용을 통하여 원고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고 있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고의 명예 내지 신용의 훼손으로 인한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할 것이다.
(3) 이 사건 적시내용이 허위인지의 여부
(가) 한편 원고는, 소외 1로부터 매수한 혈액을 이 사건 혈액제제 제조에 사용한 사실이 없고, 완벽한 제조공정과 운영을 통해 이 사건 혈액제제가 HIV에 오염되어 있을 여지가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가 이 사건 적시내용과 같은 허위의 사실을 주장하여 원고의 명예를 명백하게 또는 더욱 침해하고 있다는 취지로 주장하므로 아래에서는 이 사건 적시내용이 허위인지의 여부에 관하여 살펴본다.
(나) 이 사건 제1내용에 관하여
원고가 소외 1로부터 구입한 혈액을 이 사건 혈액제제의 제조에 사용하였다는 이 사건 제1내용에 부합하는 갑 제25호증의 1·2, 제26호증의 각 기재 부분은 을 제12호증, 제13호증의 1·2, 제16·17호증, 제18호증의 1 내지 5, 제19호증, 제22호증, 제26호증, 갑 제9호증, 제10호증의 1·2, 제11호증의 각 기재에 비추어 믿기 어렵고, 갑 제9호증, 제10호증의 1·2, 제11호증의 각 기재만으로는 이를 인정하기 부족하며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이 사건 제1내용은 허위라고 단정하기 어려워, 원고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
(다) 이 사건 제2내용 및 제3내용에 관하여
이 사건 제2내용 및 제3내용이 허위라는 점을 인정할 증거는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진실한 것으로 인정되므로, 원고의 이 부분 주장 역시 이유 없다.
3. 피고의 주장 및 판단
가. 피고의 주장
피고는 이 사건 적시내용은 모두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서 진실하거나, 피고가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었고 또 그렇게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으므로 위법성이 없다는 취지로 항변한다.
살피건대, 이 사건 적시내용으로 인하여, 원고의 명예 또는 신용이 훼손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서 그 목적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일 때에는, 적시된 사실이 진실이라는 증명이 있거나, 그 증명이 없다 하더라도 피고가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었고 또 그렇게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위법성이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므로( 대법원 2004. 2. 27. 선고 2001다53387 판결 참조), 아래에서는 이에 관하여 차례로 살펴본다.
나. 공익성
앞서 본 바와 같이, 원고는 한국혈우재단을 설립하여 운영하면서 이 사건 혈액제제를 제공 또는 판매하고 있는 점, 원고가 혈우병 환자들을 상대로 판매하고 있는 이 사건 혈액제제는 국내에서 생산된 유일한 B형 혈우병 치료용 혈액제제인 점, 이 사건 각 논문은 HIV 유전자 분석을 통하여 에이즈 치료 및 예방의 방법을 찾고, 감염원인을 밝히기 위한 목적에서 쓰여졌으며, 이 사건 각 인터뷰 역시 동일한 목적에서 이루어진 점, 이 사건 각 논문 및 인터뷰의 내용은 그 진실 여부에 따라 일부 혈우병 환자들의 HIV 감염원인을 밝힐 수 있고 향후 에이즈 예방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인 점, 이 사건 각 논문 및 인터뷰에 있어 피고에게 다른 목적이 있었음을 인정하기 어려운 점, 위에서 본 피고의 경력, 이 사건 각 논문 및 인터뷰의 경위 등의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 각 논문 및 인터뷰를 통한 이 사건 적시내용의 표시는, 현대사회에 있어 인류의 생존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는 질병인 에이즈의 치료 및 예방이라는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서 그 목적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 진실인지 여부
(1) 이 사건 제1내용에 관하여
을 제18호증의 1 내지 5, 제12호증, 제13호증의 1·2, 제16·17호증, 제19호증, 제22호증, 제26호증, 갑 제9호증, 제10호증의 1·2, 제11호증의 각 기재만으로는 이 사건 제1내용이 진실이라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이 부분에 관한 피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
(2) 이 사건 제2내용에 관하여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혈액제제에는 1,500명 이상의 혈액이 사용되는 점, HIV에 감염된 혈액이라도 잠복기간 중에는 음성으로 확인되어 이 사건 혈액제제의 제조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점, 갑 제12 내지 15호증의 각 기재에 의하면, 1990.경 이 사건 혈액제제의 제조시기에 사용되던 에이즈 진단시약인 제1세대 엘리자는 개발 초기단계의 제품으로 민감도가 떨어져 위음성반응(위음성반응, 양성임에도 음성으로 반응하는 것)이 나올 가능성이 컸던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점, 위 제1차 역학조사결과와 이 사건 제2논문의 내용에 의하면, 소외 1 HIV의 유전자와 높은 동일성을 보이는 HIV 감염자의 혈액이 이 사건 혈액제제의 제조에 사용된 경우에도 이 사건 제2내용과 유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는 점, 이 사건 제2내용은 피고가 HIV의 유전자를 분석하여 내린 결론으로서 순수한 학문연구의 분야에 속한 것이어서, 그 연구방법 및 결론이 옳은 것인지 여부는 학계의 연구와 평가를 통하여 결정되어야 할 것이므로 현재로서는 그 당부를 확정할 수 없는 점, 피고의 위와 같은 연구성과가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의미 있는 것으로 평가되어 그 내용이 담긴 피고의 논문들이 권위 있는 외국 학술지에 게재되었으며, 한국과학기술총연합회로부터 우수논문상까지 수상한 점, 현재까지 피고의 연구결과가 진실에 반한다는 학술적인 연구결과가 나타나지 않은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제2내용은 진실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
(3) 이 사건 제3내용에 관하여
앞서 본 바와 같이, 원고가 HIV 감염된 소외 3의 혈액을 구입하여 그 중 일부는 이 사건 혈액제제의 제조에 사용한 것은 원고도 이를 시인하고 있는 점, 1990.경 사용한 제1세대 엘리자 진단시약은 개발 초기단계의 제품으로 민감도가 떨어져 위음성반응(위음성반응)이 나올 가능성이 컸던 점, 또한 항체미형성기간의 혈액이 공혈되었을 경우에는 이 사건 혈액제제의 제조에 사용된 혈액 중 오염혈액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점, 이 사건 감염으로 HIV에 감염된 B형 혈우병 환자 중 일부는 이 사건 혈액제제 이외의 다른 감염경로를 발견할 수 없는 점, 역학조사에 따르면 이 사건 혈액제제의 일부 제품을 투여받은 혈우병 환자들이 HIV에 감염된 확률이 상당히 높게 나타난 점, 분자생물학적 조사결과 대부분의 혈우감염자와 매혈감염자가 국내 HIV 분리주 그룹에 속해 있었으며, 혈우감염자와 매혈감염자가 계통수 분석에 있어서 밀접한 관계에 있는 점, 이러한 조사 결과에 따라 혈액제제에이즈감염조사위원회는 일부 혈우병 환자들은 국내 혈액응고제제인 이 사건 혈액제제에 의하여 HIV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의심된다는 결론을 내린 점, 피고는 이 사건 각 논문 및 인터뷰에서, 혈우병 환자들의 감염원으로 지적된 이 사건 혈액제제의 원료로 사용된 HIV 감염자의 혈액을 소외 1의 혈액에 한정하고 있지 아니한 점 등의 제반 사정에 비추어 보면, 원고는 HIV에 감염된 혈액을 이 사건 혈액제제의 제조에 사용하였고, 나아가 제조과정에서 정기적인 점검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등 HIV 바이러스를 완벽하게 불활성화시키지 못하는 바람에 HIV에 오염된 이 사건 혈액제제를 제조하였으며, 혈우병 환자들은 이러한 혈액제제의 투여로 인하여 이 사건 감염에 이르렀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이 사건 제3내용은 진실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
라.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는지 여부
이 사건 제1내용은 진실이라는 증명이 부족하므로, 나아가 피고가 이 사건 제1내용을 진실이라고 믿었고, 또한 그렇게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는지에 관하여 살펴본다.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가 제1차 역학조사위원회에 참가하여 활동을 하면서, 이 사건 혈액제제의 제품을 제조할 시점에 원고가 구입한 혈액 중 소외 1, 3을 비롯한 4명의 혈액에서 HIV 양성반응이 나왔고, 그 중 소외 3의 혈액은 이 사건 혈액제제의 제조에 사용된 사실을 알게 된 점, 원고도 원고 회사를 상대로 불매운동을 벌이던 소외 4에 대한 고소장 및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소외 1의 혈액으로 제조한 혈액제제에는 이 사건 혈액제제가 포함된 것으로 인정한 점, 피고의 HIV 유전자분석 연구결과인 이 사건 제2내용은 진실로 인정할 수 있고, 피고는 이러한 연구결과와 위 제1차 역학조사위원회에서의 활동을 통하여 알게 된 사실 및 원고의 위와 같은 인정내용을 종합하여 이 사건 제1내용을 추론한 것인 점, 갑 제23호증의 기재에 의하면, 피고가 논문을 게재한 잡지인 위 AIDS RESEARCH AND HUMAN RETROVIRUSES의 편집위원(editor)인 브라인어 폴리(Brian T. Foley) 박사 및 미국학술원의 회원으로서 유전자분석 프로그램을 개발한 월터 피치(Walter M. Fitch)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의 교수 역시 이 사건 제2의 내용과 동일한 의견을 표명한 점 등 제반 사정에 비추어 보면, 피고는 이 사건 제1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었고, 또한 그렇게 믿은 데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할 것이다.
원고는 피고가 이 사건 제1내용이 진실이 아님을 자인하고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므로 살피건대, 갑 제19호증, 을 제22호증의 각 기재에 의하면, 피고가 2002. 10. 1. 국회보건복지위원회의 국립보건원에 대한 국정감사시 증인으로 출석하여 증언하는 과정에서, “제가 하나 정정하겠습니다. 보도가 된 논문에 신문에 보도된 대로 하면 두 사람이 들어갔다고 저희가 그 때 회의 때 들었는데 제가 잘 못 들었는지, 나중에 녹십자에서 한 사람으로 이의제기가 들어와서 그것은 저희도 한 사람이 들어간 것으로 정정을 합니다”라고 진술한 사실은 인정되나, 을 제30호증의 기재 및 당심 증인 소외 2의 증언에 의하면, 동아일보의 위와 같은 보도로 인하여 사회적인 파장이 커지자, 소외 1의 혈액이 이 사건 혈액제제에 사용되었다는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소외 2는 피고에게, 국회에서의 증언시 오모의 혈액이 혈우병 치료제 생산에 사용되었는지는 불확실하다고 증언하면 이를 인용해 동아일보에도 해명하는 보도를 하겠다는 부탁을 받고 위와 같이 진술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원고의 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마. 소결론
따라서, 이 사건 적시내용은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서 그 목적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며, 적시된 사실이 진실이라는 증명이 있거나, 피고가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었고 또 그렇게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다 할 것이므로 결국 위법성이 없어 불법행위가 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4.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할 것인바, 제1심 판결 중 이와 결론을 달리하는 피고 패소 부분은 부당하여 이를 취소하고, 그 부분에 해당하는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며, 원고의 항소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