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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법 1996. 8. 22. 선고 94가합98592 판결 : 항소
[손해배상(기) ][하집1996-2, 134]
판시사항

월간잡지 기사에 의한 명예훼손을 인정한 사례

판결요지

월간잡지 기사에 의한 명예훼손을 인정한 사례.

원고

줄리 문 (소송대리인 변호사 최영도 외 3인)

피고

주식회사 조선일보사 (소송대리인 동양종합 법무법인 담당변호사 김성기 외 2인)

주문

1. 피고는 원고에게 금 30,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1994. 8. 20.부터 1996. 8. 22.까지는 연 5푼, 그 다음날부터 완제일까지는 연 2할 5푼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2. 피고는 이 사건 판결문을 송달 받은 후 처음 발간되는 편집이 완료되지 아니한 '월간조선' 제119면에 제목은 고딕체 3호 활자로, 내용은 명조체 5호 활자로 하여 별지 1. 기재의 보도내용을 게재하라.

3. 원고의 나머지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4. 소송비용은 이를 2분하여 그 1은 원고의, 나머지는 피고의 각 부담으로 한다.

5. 제1항은 가집행 할 수 있다.

청구취지

피고는 원고에게 금 100,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1994. 8. 20.부터 이 판결 선고일까지는 연 5푼, 그 다음날부터 완제일까지는 연 2할 5푼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고, 피고는 이 사건 판결문을 송달 받은 후 처음 발간되는 '월간조선' 119쪽에 제목은 고딕체 특호활자로, 내용은 5호 활자로 하여 별지 2. 기재 정정보도문을 게재하라는 판결

이유

1. 기초사실의 인정

가. 다음의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거나 갑 제5호증, 을 제3호증, 을 제9호증의 각 기재 및 증인 김연광의 증언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이를 인정할 수 있고 반증 없다.

나. 원고는 소외 경향신문사에서 1966. 11. 14.부터 1971. 10. 7.까지 편집부 워싱턴 특파원으로 근무하다가 미국에 정치적 망명을 하여 미국 국적을 취득한 후 현재 미국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국내에도 일간 신문이나 월간지에 상당수의 기사를 기고한 바 있고, 피고는 신문, 잡지 발행업을 주목적으로 하는 법인으로서 일간지인 '조선일보' 및 월간지인 '월간조선'을 발행하고 있다.

다. 피고는 피고 소속 월간조선부 기자인 소외 김연광이 취재하여 작성한 "김일성 장례식은 희대의 비극적인 코미디였다."라는 제목의 기사(이하 이 사건 기사라고 한다)를 '월간조선' 1994. 9. 호 제119면부터 125면까지 사이에 게재하였는바, 그 기사의 본문이 시작되기 앞서 '편집자 주'라는 제목 아래 '이 사건 기사는 김일성 장례식에 참석한 한 재일교포와의 국제전화를 통한 인터뷰의 내용을 그대로 전재한 것이며 취재원인 그의 신변 안전을 위하여 그 신분이나 기타 신분이 들어날 수 있는 구체적인 상황은 숨겼다.'는 취지의 내용이 덧붙여져 있으며, 그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부분이 포함되어 있었다.

(1) 김일성의 장례식과 추도식은 희대의 코미디였다. 이런 비극적인 코미디를 나는 일생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대성통곡하며 집단 공황증세를 보이다가도 '울지 말라'는 당의 지시가 있자 추도식에서는 울음을 뚝 그친 북한 동포들, 허름한 신발에 양말도 신지 못한 채 주석단에 올라가 농민대표로 추도사를 읽은 여성, 추도식이 끝난 뒤 위로연에서 "이제는 기러기떼가 제일 앞서 가는 기러기를 따라가듯 김정일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고 충성을 맹세하는 교포들…. 다양한 군상들이 펼치는 광경은 정말 희대의 코미디이자 희대의 비극이었다. 김일성이 2천만 주민을 이런 바보들로 만든 것은 역사와 인간에 대한 모독이다(이 사건 기사의 시작부분임. 119면 1단∼120면 1단).

(2) 문명자의 충성서약(122면 1단 소제목 고딕체 활자)

교포들은 김일성의 시신 앞에서 큰절을 하고 아부성 발언을 쏟아냈다. 장례식이 끝난 다음 열린 위로연에서 문명자의 발언이 그 극치를 이뤘다. 문씨는 마이크를 잡더니 "도쿄에서 김주석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고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울었다. 카터 전대통령에게 서거 소식을 알려주자 카터 대통령도 울었다. 이제 우리 7천만 인민은 기러기떼처럼 김정일 동지를 뒤따라가는 수밖에 없다."고 발언했다. 그 광경은 북한에서 내가 본 또 하나의 비극적인 코미디였다. 그래서 이번 북한 체류는 길고 지루했다(122면 3단).

라. 이 사건 기사에는 대한민국의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김정일, 오진우 등의 북한측의 고위층의 인사를 제외하고는 실명이 등장하는 것은 오직 원고 한 사람 뿐이다.

마. 위 기사가 실린 '월간조선' 1994. 9.호는 국내에서는 1994. 8. 20.부터 서점을 통하여 판매되었다.

바. '월간조선'은 항공편으로 미국에서 매월 약 650부 가량이 판매되고 있다.

2. 명예훼손의 성립

일반적으로 신문이나 월간지 등 언론매체가 특정인에 관한 기사를 게재한 경우 그 기사가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인지의 여부에 관하여는, 기사의 객관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일반의 독자가 기사를 접하는 통상의 방법을 전제로 기사의 전체적인 흐름, 사용된 어휘의 통상적인 의미, 문구의 연결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 기사가 독자에게 부여하는 전체적인 인상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할 것인바, 위 인정 사실에 의하면, 이 사건 기사는 그 시작 부분에 김일성의 장례식과 추도식은 한 마디로 코미디였다는 취재원의 소감을 요약하면서 그 뒤에 추도식 당시의 북한 군중들의 태도와 농민대표로 조사를 읽은 여성의 모습, 기러기떼 운운하며 충성을 맹세하는 교포들이라는 내용을 열거하여 그러한 모습 때문에 취재원이 그와 같은 소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인상을 주도록 되어 있고, 그 뒤에 '문명자의 충성서약'이라는 소제목 하에 원고의 발언이 장례식이 끝난 다음 열린 위로연에서 행해진 해외 교포들의 아부성 발언 중의 극치였다는 설명과 같이 원고가 "도쿄에서 김주석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고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울었다. 카터 전대통령에게 서거 소식을 알려주자 카터 대통령도 울었다. 이제 우리 7천만 인민은 기러기떼처럼 김정일 동지를 뒤따라가는 수밖에 없다."고 발언하였다는 내용을 싣고 있으며, 이 기사를 통하여 대한민국의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김정일, 오진우 등의 북한측의 고위층 인사를 제외하고는 오직 원고 한 사람만이 실명으로 거론되고 있어, 일반의 독자로서는 이 사건 기사의 시작 부분과 원고의 발언 부분을 연결지어 원고가 김일성 추도식이 끝난 뒤의 위로연에서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가장 심한 아부성 발언을 하였으며 원고의 그러한 발언과 다른 정황들로 인하여 위 취재원은 김일성의 장례식이 한마디로 코미디라는 소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전체적인 인상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할 것이어서 이 사건 기사가 실린 피고 발행의 '월간조선' 1994. 9. 호가 국내 및 미국 내의 독자들에게 배포됨으로 인하여 미국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국내의 일간지 및 월간지에 상당수의 기사를 기고하는 등으로 국내에서도 기자로서 활동해 온 원고의 명예가 현저하게 훼손되었음은 명백하다 할 것이고, 피고 주장과 같이 이 사건 기사가 남북정상회담의 개최 직전에 김일성이 갑자기 사망한 상황에서 김일성의 장례식에 참석한 어느 재미교포의 체험기를 통하여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한 김일성의 저의, 김일성 사망 후의 북한 전망 및 지도층 인사들의 동향 등과 같은 공공의 이익과 관련한 중요한 사실을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목적에서 작성된 것으로서 원고 관련 부분은 부수적인 내용에 불과하다거나 이 사건 기사 중 원고 관련 부분이 차지하는 분량이 기사 전체의 분량과 비교할 때 미미하다는 이유만으로 원고의 명예가 훼손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3. 위법성에 대한 판단

가. 피고의 주장

이에 대하여 피고는, 이 사건 기사는 남북정상회담의 개최 직전에 김일성이 갑자기 사망한 상황에서 김일성의 장례식에 참석한 어느 재미교포의 체험기를 통하여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한 김일성의 저의, 김일성 사망 후의 북한 전망 및 지도층 인사들의 동향 등과 같은 공공의 이익과 관련한 중요한 사실을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목적에서 작성된 것으로서, 피고 소속의 기자인 소외 김연광 및 편집부장인 소외 조갑제가 위 재미교포를 만나 이 사건 기사 내용을 취재함에 있어 위 재미교포는 그간 수차례에 걸쳐서 북한 관련 정보를 제공하여 왔고, 그 때까지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김일성 동상 사진 2매를 제공한 점 및 위 취재원의 학력, 경력이나 사회적 지위 등에 비추어 볼 때 그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고, 또한 원고는 월간 '말'지 1994. 9.호에 게재된 대담기사에서 도쿄에서 김일성 사망소식을 듣고 울었다고 진술하였고, 원고가 위 위로연에 참석한 사실은 북한 T.V.에도 방송된 바 있는 점을 고려하면, 원고 관련 부분을 포함한 이 사건 기사 내용은 사실이거나 피고로서는 그 내용이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으므로 위법성이 조각되어 불법행위를 구성하지 아니한다고 주장한다.

나. 명예훼손에 있어서의 위법성 조각사유

이 사건에 있어서와 같이 월간지 기사의 보도로 인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한 경우에는 그것이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서 그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적시된 기사내용이 진실한 것이거나 그 진실성이 증명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취재행위에 관련된 자가 그 취재 당시에 그 내용이 진실하다고 믿은 것에 대하여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위법성이 없어 불법행위가 성립되지 아니한다 할 것인데, 기사내용이 진실하다는 점은 이를 주장하는 자에게 그 입증책임이 있으며, 또한 여기서 취재한 사실이 진실이라고 믿은 데 대하여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하기 위하여는 월간지와 같은 언론매체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함에 비추어 그 기사가 단순히 풍문이나 추측에 근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이를 뒷받침할 만한 합리적인 자료나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할 것이다.

다. 이 사건 기사의 진실성 여부에 대한 판단

우선 이 사건 기사의 원고 관련 부분이 진실한지의 여부에 관하여 살펴본다.

(1) 취재원의 존재 및 정보 제공

원고가 1994. 7. 8. 도쿄에서 북한 김일성이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같은 달 13. 북경을 통하여 평양에 도착하여 같은 달 19. 평양에서 열린 김일성 장례식과 같은 달 20. 평양에서 열린 추도식에 각 참석하였으며, 위 추도식 후에 평양 목란관에서 열린 해외동포들을 위한 위로연에 참석한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고, 을 제6호증의 3(갑 제2호증의 6과 같다), 4(갑 제2호증의 7과 같다), 5 내지 7, 을 제8호증의 1, 2, 을 제11호증, 을 제12호증의 각 기재 및 영상, 증인 김연광, 조갑제의 각 증언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피고 소속 월간조선부 기자인 소외 김연광이 1994. 7.경 김일성 장례식에 참석한 성명 미상의 재미교포(이하 취재원이라고만 한다)와 국제전화 통화를 하여 이 사건 기사 내용을 취재한 뒤 같은 해 8. 초순경 국내를 방문한 위 취재원을 서울 소재 코리아나 호텔에서 만나 보다 자세한 내용을 취재하고 그로부터 김일성 동상 사진 2장(을 제8호증의 1, 2)을 받은 사실 및 그 후 같은 달 초순경 위 김연광은 피고 소속 월간조선부 편집부장인 소외 조갑제와 같이 위 취재원을 만나 이 사건 기사의 내용 및 그외 북한의 정세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사실, 위 김연광은 위 취재원으로부터 취재한 내용을 토대로 이 사건 기사를 작성하였으며, 이 사건 기사가 위 취재원의 진술 내용과 주된 부분에서 일치하는 사실{위 김연광의 취재수첩(을 제2호증의 6, 7)에는 원고가 '7천만 인민'이 아니라 '7천만 동포'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되어 있고, 위 취재원으로부터 사후에 제출받았다는 일기장(을 제11호증)에는 김일성이 사망하였다는 원고의 이야기를 듣고 카터 미국 전(전)대통령이 운 것이 아니라 원고가 울면서 카터 전대통령에게 김일성의 사망 소식을 전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원고가 도쿄에서 김일성 사망 소식을 듣고 울었고, 원고가 김일성 사망 소식과 관련하여 카터 전대통령과 통화하였으며, 기러기떼처럼 김정일을 따라가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는 주된 부분에서는 일치하고 있다}, 위 김연광 및 위 조갑제는 위 취재원으로부터 취재한 내용을 이 사건 기사로 작성함에 있어 위 취재원이 계속적으로 북한에 출입하는 까닭에 그 신변 보호 등을 위하여 취재원을 은닉하기로 마음먹고 이 사건 기사 첫머리 부분의 편집자 주에서 그를 재미교포 아닌 재일교포로, 국내에서 직접 만나 취재하였음에도 국제전화를 통하여 취재한 것이라고 밝힌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반증 없으므로, 이 사건 기사는 피고가 방북하여 김일성 장례식 및 추도식에 참석한 위 취재원으로부터 취재한 내용에 의하여 작성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2) 취재원이 제공한 정보의 진실성 여부

나아가 위 취재원이 이 사건 기사 중 원고 관련 부분에 관하여 제공한 정보가 진실한 것인지 여부에 관하여 보건대, 을 제1호증의 2, 3, 을 제10호증의 1 내지 6의 각 기재에 의하면 원고가 월간 '말'지 1994. 9.호에 게재된 그 잡지 기자인 소외 신준영과의 대담 기사 중에 도쿄에서 김일성 사망 소식을 듣고 울었고, 김일성 추도식 행사 후에 3일 동안 앓아 누웠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사실, 원고가 위 '말'지에 수차례에 걸쳐서 기고한 북한 관련 기사에서 김일성이나 김정일의 사람됨됨이나 그들에 대한 북한 주민의 태도, 북한의 경제사정 등에 관하여 우호적인 내용의 기사를 게재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반증 없으나, 그와 같은 사실만으로는 바로 원고가 김일성 추도식행사 이후에 열린 해외동포들을 위한 위로연 석상에서 이 사건 기사 내용과 같은 발언을 하였으리라고 속단할 수는 없고{위 '말'지 1994. 9.호에 게재된 원고의 발언은 "저는 7월 25일로 예정됐던 남북정상회담 취재 준비를 위해 7월 8일 도쿄에 도착했는데 거기서 그런 뜻밖의 사태(김일성 사망 소식을 뜻한다)에 접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이 성과를 거둬 조국이 통일로 다가가기를 누구보다도 간절히 염원했던 한 사람으로서 저는 그 비보를 접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라는 내용으로서 그 문맥상 원고가 단순히 김일성 사망 소식을 듣고 그에 대한 추도의 마음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취지라기보다는 남북통일의 밑받침이 될 남북정상회담이 무산된 것을 안타까와 하는 마음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취지로 해석되나, 이 사건 기사 내용 중의 원고가 발언했다는 내용은 그 전체적인 문맥상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아부 내지는 충성을 맹세하는 취지로 해석되므로, 위 '말'지에 실린 원고의 발언이 일부 이 사건 기사 중의 원고가 발언했다는 내용과 유사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로써 원고가 이 사건 기사에 실린 내용과 같은 발언을 위 위로연에서 하였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을 제8호증의 1, 2의 각 사진들이 피고 주장과 같이 그 때까지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사진들이었다고 하더라도 이로써 위 취재원이 방북하여 김일성 장례식에 참석한 것이 사실이라는 점을 입증할 수 있을 뿐 나아가 이 사건 기사 중 원고 관련 부분을 포함하여 취재원이 제공한 다른 부분의 내용도 진실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것이며, 오히려 당원의 비디오테이프 검증 결과에 의하면 위 위로연 장면을 방영한 북한 T.V.의 화면상 원고가 위 위로연에 참석한 사실은 확인되나 발언하는 장면은 전혀 보이지 않으며, 더욱이 을 제5호증의 1, 2, 을 제6호증의 6, 7, 갑 제1호증의 2, 갑 제3호증의 1 내지 3의 각 기재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김일성의 장례식 및 추도식에 그의 처인 김성애 및 자인 김평일이 참석하였고 다만 북한 T.V. 방영 화면에 모습이 나타나지 않은 것뿐인데도(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러한 사실은 피고 발행의 '조선일보'를 포함한 국내 도하 각 일간지에도 보도된 바 있다) 위 취재원은 위 양인이 장례식 및 추도식에 참석하지 아니하였다고 피고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등 위 취재원이 피고에게 제공한 정보 중 상당 부분에 객관적인 진실과 부합하지 않는 점이 있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바, 이에 비추어 볼 때 위 취재원이 김일성 사망 당시 북한을 방북하여 그 장례식 및 추도식에 참석한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제공한 정보 중 원고 관련 부분의 정확성, 진실성에 관하여는 의문이 남는다. 그외 을 제2호증의 2, 을 제6호증의 3 내지 7, 을 제7호증, 을 제9호증, 을 제11호증, 을 제14호증의 1 내지 4, 을 제15호증의 1, 2, 을 제16호증의 각 기재와 증인 김연광, 조갑제의 각 증언, 당원의 비디오테이프 검증 결과만으로는 원고가 위 위로연에서 이 사건 기사 내용과 같은 발언을 하였다는 점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

다. 상당한 이유의 존재 여부에 대한 판단

나아가 이 사건 기사의 내용의 진실이 아니더라도 당시 피고에게는 그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는지의 여부에 관하여 살펴본다.

피고 소속 기자인 소외 김연광이 1994. 7.경 김일성 장례식에 참석한 취재원과 국제전화 통화를 하여 이 사건 기사 내용을 취재한 뒤 같은 해 8. 초순경 국내를 방문한 위 취재원을 2차례에 걸쳐서 만나 보다 자세한 내용을 취재하고 그로부터 김일성 동상 사진 2장을 받은 사실 및 그 취재한 내용을 토대로 이 사건 기사를 작성하였으며, 피고 소속 편집부장인 소외 조갑제 역시 위 취재원을 만나 그 진술 내용을 취재한 사실 및 이 사건 기사가 위 취재원의 진술 내용과 주된 부분에서 일치하는 사실, 원고가 위 위로연에 참석한 사실, 원고가 월간 '말' 1994. 9. 호에 게재된 그 잡지 기자인 소외 신준영과의 대담 기사 중에 도쿄에서 김일성 사망 소식을 듣고 울었고, 김일성 추도식 행사 후에 3일 동안 앓아 누웠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사실은 앞서 인정한 바와 같다. 그러나 위 김연광이나 조갑제가 이 사건 기사 중 원고 관련 부분의 진실 여부에 대하여 원고에게 아무런 확인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으며, 을 제5호증의 1, 2, 을 제6호증의 6, 7, 갑 제1호증의 2, 갑 제3호증의 1 내지 3의 각 기재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이 사건 기사에는 김일성의 장례식 및 추도식에 그의 처인 김성애 및 자인 김평일이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위 양인이 참석하였고, 다만 북한 T.V. 방영 화면에 모습이 나타나지 않은 것뿐인 사실 및 위 양인의 참석 여부와 T.V.에 그 참석 모습이 방영되었는지의 여부는 김일성 사후의 북한의 권력구도와 관련하여 언론 및 북한전문가들 사이에 상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국내의 일간신문에도 그 참석 사실 등이 보도된 사실{피고 발행의 '조선일보' 1994. 7. 20.자(갑 제3호증의 1) 및 같은 달 28.자(갑 제3호증의 3)에도 위 양인의 참석 사실이 보도되고 있다}을 인정할 수 있고 반증 없다.

위 인정 사실에 의하면 위 김연광 및 조갑제는 이 사건 기사를 취재함에 있어 김일성 사망 후의 북한 전망 및 지도층 인사들의 동향 등을 알리기 위하여 작성되었다는 이 사건 기사 내용 중 북한의 주요 지도층 인사로서 김일성 사후의 북한의 권력 구도 문제를 논함에 있어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김성애 및 김평일의 김일성 장례식 및 추도식에의 참석 여부와 관련하여 명백하게 잘못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이 사건 기사 내용 중 다른 부분의 진실성 여부도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원고에 대하여 아무런 확인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채(원고가 그간 수차례에 걸쳐서 국내의 월간지 등에 기사를 기고하여 왔으므로 위 김연광 및 조갑제로서는 큰 어려움 없이 원고의 연락처를 수소문하여 원고에 대하여 이 사건 기사의 진실성 여부에 대하여 확인 절차를 취할 수 있었다고 판단된다) 단지 위 취재원이 그간 수차례에 걸쳐서 북한 관련 정보를 제공하여 왔고, 그 학력, 경력이나 사회적 지위 등에 비추어 신뢰할만한 인물이며,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김일성 동상 사진 2매를 제공하였다는 등의 사정만으로 이 사건 기사의 내용이 진실하다고 믿었다고 할 것이어서 그와 같이 믿은 데에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더욱이 이 사건 기사가 게재된 '월간조선'은 월간지로서 일간신문이나 방송과는 달리 취재시간에도 상당한 여유가 있다는(위 김연광이 취재원과 국제전화상으로 최초로 연락을 한 것은 1994. 7.경이고 조갑제와 같이 국내에서 취재원을 직접 만난 것도 1994. 8. 초순경으로 이 사건 기사가 게재된 '월간조선' 1994. 9. 호가 발매된 1994. 8. 20.까지는 상당한 시간적 여유가 있다) 점에서도 그러하다.

또한 피고가 주장하는 월간 '말'지의 기사 및 북한 T.V.의 방영 내용에 관하여 살피건대, 원고가 '말'지 1994. 9. 호에 실린 대담기사에서 도쿄에서 김일성 사망소식을 듣고 울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사실(다만 위 대담기사의 문맥상 원고가 운 것은 피고 주장과 같이 김일성에 대한 추도의 마음에서라기보다는 남북통일의 실현이 어려워졌다는 마음에서라고 해석됨은 앞서 살핀 바와 같다) 및 원고가 위로연에 참석한 모습이 북한 T.V.에 방영된 사실은 앞서 인정한 바와 같으나, 일반적으로 언론보도에 의한 명예훼손 사건에 있어서 그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었는지의 여부는 문제된 기사 내용을 취재하여 기사를 작성하는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할 것인바, 을 제9호증의 기재에 의하면 이 사건 기사가 게재된 '월간조선' 1994. 9. 호는 위 '말'지 1994. 9. 호보다 먼저 발매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어 위 김연광이나 조갑제가 이 사건 기사를 작성함에 있어 이를 참조하였다고 볼 수 없고, 또 원고의 위로연 참석 모습이 포함되어 있는 북한 T.V. 방영 내용을 위 양인이 이 사건 기사 작성 당시에 참조하였음을 인정할 증거도 없으므로, 위 '말'지의 기사나 북한 T.V.의 방영 내용을 들어 위 김연광이나 조갑제가 이 사건 기사를 작성하는 당시에 원고 관련 부분의 내용이 진실한 것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할 수도 없다.

라. 소결론

그렇다면 이 사건 기사 중 원고 관련 부분의 내용이 진실한 것이거나 피고에게 그 내용이 진실하다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음을 전제로 하는 피고의 주장은 결국 이유 없다.

4. 손해배상책임의 범위

이 사건 기사가 게재된 '월간조선' 1994. 9. 호가 배포되어 원고의 명예가 훼손됨으로써 입은 정신적 고통을 피고는 금전으로나마 위자할 의무가 있다 할 것인바, 앞에서 본 바와 같은 원고의 사회적 지위, 이 사건 기사의 내용과 표현, 이 사건 기사를 게재하게 된 경위 등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모든 사정과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피고에게 원고의 명예회복을 위한 처분을 명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할 때 피고는 그 손해배상으로 원고에게 금 30,000,000원을 지급함이 상당하다고 할 것이다.

5. 명예회복의 방법

한편 위 손해배상만으로는 원고의 구제가 충분하지 못하므로 이와 함께 원고의 명예회복을 위하여 적당한 처분을 명함이 상당하다고 할 것인바, 앞서 본 이 사건 기사의 내용, 활자의 크기와 종류 기타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보면 피고 회사에 대하여 별지 1. 기재 보도내용을 '월간조선'에 이 사건 기사에 준하는 주문 제2항 기재와 같은 크기의 활자와 지면으로 게재토록 함이 상당하다고 할 것이다.

6. 결 론

그렇다면 피고는 원고에게 위 위자료 금 30,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이 사건 기사가 게재된 '월간조선' 1994. 9. 호가 발매된 1994. 8. 20.부터 피고가 그 지급의무의 존부 및 범위에 대하여 항쟁함이 상당한 이 판결 선고일인 1996. 8. 22.까지는 민법 소정의 연 5푼, 그 다음날부터 완제일까지는 소송촉진등에관한특례법 소정의 연 2할 5푼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고, 이 사건 판결문을 송달 받은 후 처음 발간되는 편집이 완료되지 아니한 '월간조선' 제119면에 제목은 고딕체 3호 활자로, 내용은 명조체 5호 활자로 하여 별지 1. 기재의 보도내용을 게재할 의무가 있다고 할 것이므로,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위 인정범위 내에서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하고 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며 소송비용의 부담에 관하여는 민사소송법 제89조, 제92조 를, 가집행선고에 관하여는 같은 법 제199조 를 각 적용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별지 생략]

판사 심재돈(재판장) 박종욱 유헌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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