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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고등법원 2015.1.22.선고 2014누5513 판결
국가유공자요건비해당결정취소
사건

2014누5513 국가유공자요건비해당결정취소

원고항소인

A

피고피항소인

광주지방보훈청장

변론종결

2014. 1. 8.

판결선고

2015. 1. 22.

주문

1. 제1심 판결을 취소한다.

2. 피고가 2013. 7. 24. 원고에 대하여 한 국가유공자 및 보훈보상대상자 요건 비해 당결정처분을 취소한다.

3. 소송총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및항소취지

주문과 같다.

이유

1. 처분의 경위

가. C(이하 '망인'이라 한다)는 1976. 7. 15. 입대한 뒤 1976. 9. 25. 전남지방경찰청 D전투경찰대(이하 '이 사건 전경대'라고 한다)에 배속되어 약 한 달간 중대본부(예비소 대)에서 근무하다가 전남 고흥군 E 소재 해안초소로 배치 받아 근무하게 되었는데, 1976.11.20, 새벽(00:00 ~ 04:00) 위 초소에서 불침번 근무를 서던 중 내부반에서 M1 소총으로 자신의 머리(오른 쪽 관자놀이)에 실탄 1발을 발사함으로써 사망하였다.

나. 망인의 아버지인 원고는 2004. 11. 30. 피고에게 국가유공자유족 등록신청을 하였으나, 피고는 2005. 8. 26. "망인은 불침번 근무 중 자살한 것으로 인정되므로 이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유공자법'이라 한다)상 국가유공자 요건 인정기준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라는 이유로 원고에게 국가유공자유족 비해당결정 통지를 하였고, 원고가 이에 불복하여 2005. 11. 16. 행정심판을 제기하였으나 2006. 2. 23. 기각재결되었다.

다. 이후 원고는 2005, 12. 12.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망인의 사망사건을 진정하였고 위 사건이 2006. 4. 21.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이 사건 위원회'라고 한다)로 이송되었는데, 이 사건 위원회는 조사를 거쳐 2008. 3. 26. "망인이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편, 위 자살의 중요하고도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볼 만한 선임대원들의 가혹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확정할 수 없어, 망인의 사망경위에 대한 진상을 규명할 수 없다"라는 이유로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하였고, 원고가 위 결정에 불복하여 이의신청을 하였으나 2008. 7. 23. 기각결정되었다.

라. 원고는 2012. 10. 15. 피고에게 망인에 대한 선임병들의 가혹행위가 있었음을 들었다는 인근 초소 및 중대본부 대원들의 진술이 기재된 이 사건 위원회의 결정문 등을 제출하면서 망인에 대한 국가유공자 및 보훈보상대상자 등록신청을 하였으나, 피고는 2013. 7. 24. "망인에 대한 구타, 가혹행위 또는 산다이가 있었다는 진술들은 E 초소 아닌 다른 초소에서 근무하거나 망인이 사망한 이후 E 초소에서 근무한 대원들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전해들은 것인 반면, 망인과 같은 초소에 근무했던 동료대원은 위와 같은 내용을 부인하고 그 외 망인과 같은 초소에서 근무했던 다른 대원들을 찾을 수 없는 등 이 사건 위원회의 결정 등을 번복할 만한 사정변경이 없어, 망인이 국가의 수호 등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군 직무수행이나 교육훈견 중 사망하였다거나 군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과 관련한 가혹행위 등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자해 사망하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라는 이유로 원고에게 국가유공자 및 보훈보상대상자 요건 비해당결정 통지(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를 하였다.

[인정 사실]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3, 5 내지 8, 12호증, 을 제1 내지 7호증(가지번호 있는 것은 가지번호 포함, 이하 같다)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관계 법령

별지 기재와 같다.

3. 처분의 적법 여부

가. 원고의 주장 요지

망인은 평소 밝고 명랑한 성격에 입대 전 정신질환을 앓은 적도 없었고 사망하기 며칠 전 가족에게 곧 휴가를 나간다는 편지를 보내는 등 갑자기 자살할 만한 동기가 전혀 없었다. 그러한 망인이 E 해안초소에 배치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자살하였고, 군 당국은 당시 타살 아닌 자살의 판단 근거로 삼은 것으로 보이는 유서 기타 서신을 유족들에게 보여주지 않았으며, 선임병들의 망인에 대한 구타 등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는 같은 중대 소속 부대원들의 진술이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망인은 선임병들의 구타 등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망인의 군 직무수행과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 할 것이고, 이와 다른 전제에 선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나. 인정사실

1) 이 사건 전경대는 대간첩 작전을 목적으로 당시 전남 고흥군 H에 위치한 중대급 부대로서 4개 소대 12개 초소(분대)로 구성되어 있었고 각 초소의 인원은 분대장을 포함하여 총 9명이었는데, 망인이 근무했던 E 초소는 분대장 아닌 소대장이 근무하는 '소초'로서 초소, J초소, K초소와 같은 소대에 속하였다.

2) 망인은 E 초소로 배치를 받은 후 초소 근무 대원 중 가장 낮은 기수로서 바로 윗 기수인 L과 함께 식사당번을 하였고, 그 외에도 청소, 식수 길어오기 등 잡일을 도맡아 처리하였다.

3) 망인이 복무할 당시 J초소를 포함한 이 사건 전경대 산하 초소에서는 대부분 선임병의 후임병에 대한 구타 등 가혹행위와 속칭 산다이 1)라는 유흥문화가 존재하였는데, 산다이가 있는 경우 식사당번병(이른바 졸병)들은 술상을 준비하거나 선임병들의 술시중을 들었고 산다이가 끝난 후에는 술에 취한 선임병들이 후임대원들을 구타하는 일도 종종 발생하였으며, 산다이는 주로 소대장이 인근 초소로 감독순시를 나간 사이에 이루어졌지만 소대장들도 대개 산다이를 묵인하였다.

4) 원고는 망인이 사망한 당일 이 사건 전경대로부터 "(망인의) 신상관계로 부모 속래(速來)"라는 내용의 전보만을 받은 관계로 망인이 사망하였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의 처와 단 둘이서만 위 부대를 찾아갔는데 그때서야 위 부대 관계자로부터 망인의 사망사실을 전해 들었고, 이에 경황이 없어 망인의 시신에 상처 등이 있는지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채 망인의 사망원인에 관하여 물었는데, 위 부대 관계자는 "망인은 자살하였고, 유서 등 아무런 자료가 남아있지 않다"라는 취지로 답변하였다.

5) 망인의 시신은 1976. 11. 22.경 이 사건 전경대 중대본부가 위치한 전남 고흥군 H 인근 야산에 매장되었고, 망인의 사망사고 이후 E 초소를 비롯한 이 사건 전경대 소속 각 초소의 고참 선임병들은 모두 중대본부(예비소대)로 전출되었다가 그곳에서 전역하거나 다른 초소로 재배치되었다.

6) 한편, 원고의 2004. 11, 30.자 피고에 대한 국가유공자유족 등록신청과 관련하여, 전남지방경찰청장이 2005. 3. 8. 국가보훈처장에게 보낸 망인에 관한 사망확인서의 '사망 사유'란에는 "(망인은) 1976, 11. 20. 새벽(00:00 ~ 04:00)에 불침번 근무를 서던 중 자기에게 지급된 총기(M1 소총)로 머리(관자놀이)에 실탄 1발을 발사하여 사망하였으며, 당시 지휘관 및 수사과에서 검찰의 지휘를 받아 현장검증을 하였던바 본인의 유서 및 목격자 진술 등 여러 가지 정황으로 타살이 아닌 자살로 판명되어 변사사건처리로 종결하였음(※ 사망 당시의 기록이 미비하여, 당시 지휘관과 목격자 확인서를 바탕으로 작성)"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인정증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9, 12호증, 을 제5 내지 7호증의 각 기재, 당심 증인 M, N의 각 증언, 당심 증인 L의 일부 증언, 이 법원의 원고에 대한 당사자 본인신문결과, 변론 전체의 취지

다. 판단

1) 직무수행 해당 여부

국가유공자법 제4조 제1항 제5호에서는 국가유공자의 하나로서 '순직군경'을 "군인이나 경찰·소방 공무원으로서 국가의 수호·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사망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고, 같은 조 제2항은 위와 같은 국가유공자의 요건에 해당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과 범위를 사망 경위 및 본인 과실의 유무와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위 위임에 따른 같은 법 시행령 제3조 제1항 제3호 [별표1] 제2호의 2-1의 규정에 의하면 "군인으로서 경계·수색·매복 · 정찰 등에 해당하는 직무수행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발생한 사고나 재해로 사망한 사람"이 순직군경에 해당한다.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망인이 초소 불침번 근무 중에 사망하였음은 앞서 본 바와 같고, 여기에 위 인정사실 및 갑 제5호증, 을 제7호증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초소 불침번 근무는 그 성격상 국가의 수호 또는 E 초소 부대원들의 생명 보호와 관련이 있는 업무로서 위 법령에서 규정한 "경계"업무에 해당한다고 할 것인 점, 당시 불침번을 포함한 해안초소 근무 중에는 총기와 실탄이 원칙적으로 지급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망인은 이 사건 당일 초소 불침번 근무를 서던 중 내무반에서 자신에게 지급된 M1 소총으로 오른 쪽 관자놀이 부위를 쏘아 사망한 점 등을 종합하여 볼 때 망인이 사망할 당시 수행 중이던 불침번 근무는 국가의 수호 등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직무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설령 위 불침번 근무가 위 법령에서 규정한 국가의 수호 등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직무수행이라 하더라도, 망인은 보훈보상대상자 지원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항 제1호에서 규정한 직무수행 중 사망한 '재해사망군경'에 해당할 것으로 보인다).

2) 직무수행과 사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 여부가 국가유공자법 제4조 제6항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유, 즉 불가피한 사유 없이 본인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이거나 관련 법령 또는 소속 상관의 명령을 현저히 위반하여 발생한 경우(제1호), 공무를 이탈한 상태에서의 사고나 재해로 인한 경우(제 2호), 장난·싸움 등 직무수행으로 볼 수 없는 사적인 행위가 원인이 된 경우(제3호)에 해당하는 원인으로 사망하거나 상이를 입으면 국가유공자, 그 유족 또는 가족에서 제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국가유공자법이 2011. 9. 15. 법률 제11041호로 개정되면서 이전에 국가유공자 적용대상 제외사유 중 하나로 규정되었던 "자해행위로 인한 경우"(구 국가유공자법 제4조 제6항 제4호)가 삭제된 것인데, 위와 같이 개정된 이유는 자해 행위자도 그 원인 규명을 통해 국가유공자로 등록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국가유공자법이 국가를 위하여 희생하거나 공헌한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에게 합당한 예우를 다하고자 함을 입법 목적으로 하고 있고(제1조), 국가유공자의 희생과 공헌의 정도에 상응하여 국가유공자와 유족의 영예로운 생활이 유지 보장되도록 실질적인 보상을 하는 것을 예우의 기본이념으로 삼고 있음(제2조)에 비추어 보면, 국가유공자법 제4조 제1항 제5호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사망"이라 함은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과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경우를 말한다고 하겠고, 이는 군인의 사망이 자해행위인 자살로 인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할 것이며, 같은 법 제4조 제6항에서 들고 있는 위와 같은 국가유공자 제외 사유들은 모두 교육훈련 또는 직무수행과 사망 등과의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려운 경우를 예시한 규정이라 할 것이므로(구 국가유공자법 제4조 제6항 제4호에서 규정했던 "자해행위로 인한 경우" 역시 마찬가지로 교육훈련 또는 직무수행과 사망 등과의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는 자해행위의 경우에는 국가유공자에서 제외된다는 취지를 주의적 확인적으로 규정한 당연한 규정으로 보아야 한다), 군인이 군 복무 중 자살로 사망한 경우에도 국가유공자법 제4조 제1항 제5호에서 정한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사망"에 해당하는지는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과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는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하고, 교육훈련 또는 직무수행과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데도 사망이 자살로 인한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또는 자유로운 의지가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 한 자살이 아니라는 이유로 국가유공자에서 제외되어서는 안 된다(대법원 2012. 6. 18. 선고 2010두27363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나) 위와 같은 법령 및 법리에 비추어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위 인정사실과 앞서 든 증거들 및 갑 제10호증의 기재, 당심 증인 M, N의 각 증언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더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① 이 사건 전경대 예비소대에서 근무하던 신병들은 훈련소와 똑같은 훈련의 연장인 예비소대 근무를 오래 하고 싶어 하지 않고 초소 근무를 희망하였고, 그리하여 망인은 E 초소로 배치되자 굉장히 즐거운 마음으로 떠났는데, 그러한 망인이 E 초소에 배치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자살에 이른 점, ② 망인은 밝고 긍정적인 명랑한 성격이었고, E 초소에서 근무하는 동안 이 성관계 등의 문제로 고민한 적도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입대 전까지 정신질환을 앓은 병력도 없었고, 자살하기 며칠 전 곧 휴가를 나가게 된다는 내용의 편지를 가족들에게 보내기까지 한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망인이 E 초소에서 근무했던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정신질환이나 개인적인 신상문제로 갑자기 자살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는 점, ③ 망인이 E 초소에 배치되기 이전인 1975, 3.경부터 1975. 9.경까지 위 초소에서는 속칭 산다이가 자주 있었고 망인의 사망사고가 발생한 이후에도 위 초소에서 산다이가 몇 차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망인이 근무할 당시에도 E 초소에서 산다.이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한 점, 1 또한 당시는 군 문화 특성상 부대 내에 구타 및 가혹행위가 종종 있었던 시절이었고, 특히 이 사건 전경대 소속 해안초소에서 각목으로 엉덩이를 치는 구타행위(일명 '빳다')가 자주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바, 이 사건 당시 망인이 근무했던 E 초소에서도 선임병들의 후임병들에 대한 구타 등 가혹행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점, ⑤ 나아가 망인과 동기였던 M은 평소 E 초소 선임병 중에 후임병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고, 망인이 사망한 이후에는 이 사건 전경대 예비소대 동기들과 사이에 "저것들 (선임병들)이 애들을 두들겨 패서 일이 이렇게 터졌는데 영창가지 않겠느냐"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였으며, 망인이 사망한 지 약 한달 후에 J초소로 발령받아 근무하면서 그곳 분대장으로 온 F(망인이 사망할 당시 E 초소의 임시 분대장이었던 자)로부터 "사내놈(망인)이 그걸 못 참아서 자살하냐"는 식의 이야기를 몇 번 들었다는 것인바, 그러한 사정을 감안할 때 당시 위 초소에서 제일 후 임병이었던 망인에 대한 선임병들의 구타 등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추단할 수 있는 점, (⑥) 만약 망인이 일신상의 문제로 사망한 것에 불과하다면, 망인의 사망 직후 이 사건 중대본부가 E 초소를 포함한 산하 각 초소의 고참 선임병들을 모두 중대본부로 소환시켜 그곳에서 전역시키거나 각기 다른 초소로 재배치한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점, ⑦ 그리고 망인과 동기였던 N은 이 사건 위원회 및 당심 법정에서 "이 사건 전경대 중 대본부 위경소에서 근무할 당시 그곳에서 약 10m 정도 떨어진 들에서 망인의 시신에 대한 의사의 부검이 있었는데, 당시 성명불상의 소대장으로부터 망인의 손등에 찰과상 이 있고 몸에 멍이 있는 것을 보았다는 말을 들었다"라고 진술하였는데, 그 진술이 일관될 뿐만 아니라 망인과 동기이긴 하나 망인과 같이 근무한 적이 없는 등 전혀 이해관계가 없어 거짓으로 진술할 이유가 없어 보이고, 위 M 역시 이 사건 위원회 및 당심 법정에서 "성명불상의 부대원으로부터 망인의 사망 전날에 E 초소에서 산다이가 있었고, 망인과 그 윗 기수 대원인 L이 선임병들에게 심하게 구타당한 후에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라고 진술하였는데, 그 진술이 일관되고 비록 당시 E 초소에서 근무한 부대원들에게 들은 것은 아니지만 앞서 언급한 정황과 부합하는 등 위N 및 M의 각 진술이 신빙성이 있는 점, ⑧ 한편, 위 L은 당심 법정에서 이 사건 위원회에서 조사받았을 때와 같이 "이 사건 당시 E 초소에서 산다이도, 구타 등 가혹행위도 전혀 없었다"라고 진술하였는데, 위 위원회에서조차 당시 L의 진술태도에 대해 "L이 망인과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었을 위치에 있었고 직접 망인의 시체를 수습하는 등 사건 경위에 대하여 가장 잘 알고 있을 핵심 참고인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출석요구 시부터 오래된 일이라서 기억하고 있는 것도 없고 특별히 진술할 내용이 없다는 식으로 출석을 기피하였고, 현직 경찰이라는 신분 때문에 진술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듯하였으며, 대부분의 참고인들이 당시 해안초소에서는 구타와 산다이가 일반화되어 있었다고 진술하고 있음에도 자신이 E 초소에서 근무하는 동안 한 번도 구타나 산다이가 없었다고 진술하고 함께 근무했던 대원들이 단 한명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는 등 가능한 한 이 사건에 관여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보인다"라고 기술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L의 위와 같은 진술은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할 것이며, 위와 같은 L의 태도로 인해 이 사건 위원회에서 망인의 사망사건 당시 E 초소에서 근무했던 대원들에 대해서는 전혀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그 결과 이 사건 위원회가 망인이 선임병들로부터 구타 등 가혹행위를 당하였는지 여부 및 망인의 사망과 인과관계 유무를 확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진상규명불능 결정을 하였던 점(그리고 "상부에서 수시로 구타금지 지시가 내려오기 때문에 구타 등 가혹행위는 없다고 본다"는 F의 진술 역시 이 사건 위원회가 면담한 참고인들 대부분이 당시 이 사건 전경대 산하 초소에서 구타나 산다이가 일반화되어 있었다고 진술하고 있는 것과 배치되는 등 신빙성이 없는 한편, 위 F는 E 초소 소대장이 휴가를 간 5일 동안 직무대리로 소대장을 맡았던 것에 불과하여 그가 평상 시 망인에 대한 선임병들의 가혹행위가 있었는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하였을 개연성도 있어 보인다), ④ 위 F가 2005. 1. 26. 망인의 사망사고에 관해 작성한 의견서에 "즉시 본부에 보고하여 부대 지휘관 및 경찰서 수사과에서 나와 현장을 확인한 후 검찰의 지휘를 받아 당시 참고인(분대원) 진술 및 부모에게 망인이 부모에게 보내기 위해 써놓은 편지 등 기타 여러 정황 등으로 보아 자살로 판명되어 변사사건처리 종결한 것으로 기억됩 니다"라고 기재되어 있고, 이 사건 위원회의 2007. 12. 3.부터 2007. 12. 5.까지의 출장조사에서도 O(망인의 사망 당시 이 사건 전경대 대장)과 위 F가 "자살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메모지나 일기장, 편지가 있는지 찾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기억이 있다", "누군가 망인이 사망하기 며칠 전에 편지를 썼다는 말을 하여 혹시 무슨 단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고흥경찰서 수사팀이 우체국의 협조를 받아 망인의 편지를 수거했다는 말을 들었다", "고흥경찰서 수사팀이 우체통에서 수거한 편지의 내용이 염세적이었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된다"라고 각 진술하였으며, 사람이 자살할 때 가족 등에게 유서를 남기는 것이 일반적인 점 등을 감안하면 망인이 죽기 전 부모에게 남긴 편지 또는 유서가 존재하였다고 보이는데, 이 사건 당시 이 사건 전경대나 고흥경찰서 수사팀이 망인의 유가족에게 편지 내지 유서를 전달하지 않은 것은 일반 상식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게 하는 점, ① E 초소는 인근 마을에서 1㎞가량 떨어진 약 100m 높이의 절벽 위에 있고 인근 초소와도 3~4㎞가량씩 떨어져 있어서 평상 시 다른 이들의 왕래가 거의 없이 9명의 분대원들만이 같이 생활하는 상황이었는데, 망인은 위 초소의 제일 하급병으로서 동기병도 전혀 없이 8명의 선임병과 함께 생활함에 따라 선임병들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할 경우 스트레스가 극심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데에다가, 망인이 분대원들이 취침 중이었음에도 그 옆에서 머리에 총을 쏘아 자살한 점까지 보태어 보면, 당시 망인이 힘든 전투경찰대 복무 및 구타, 가혹행위 등을 견디지 못하고 극도의 불안감과 절망감에 빠져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기대하기 매우 어려운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게 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3) 소결

결국 망인은 국가의 수호 등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군 직무수행 과정에서 상급자의 가혹행위 등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사망하였다고 볼 것이므로 군 직무수행과 망인의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할 것인바, 피고가 이와 다른 전제에서 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4.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하여야 할 것인바, 이와 결론을 달리 한 제1심 판결은 부당하므로 원고의 항소를 받아들여 제1심 판결을 취소하고 이 사건 처분을 취소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재판장판사박병칠

판사김평호

판사이양희

주석

1) 당시 초소 부대원들이 인근 마을에 거주하는 젊은 여성들을 불러 함께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는 등의 유흥행사를 일컫는

속어임

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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