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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방법원 2017.3.16.선고 2015가단92707 판결
손해배상(기)
사건

2015가단92707 손해배상 ( 기 )

원고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

담당변호사 ○○○

피고

주식회사 B

일본국 ○○시 * * *

소송대리인 변호사 ○○○, ○○○

변론종결

2017. 1. 19 .

판결선고

2017. 3. 16 .

주문

1. 피고는 원고에게 1억 원 및 이에 대하여 2017. 1. 19. 부터 2017. 3. 16. 까지는 연5 %,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5 % 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

2. 원고의 나머지 청구를 기각한다 .

3.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

4.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

청구취지

피고는 원고에게 1억 원 및 이에 대하여 이 사건 소장 송달 다음날부터 2015. 9. 30. 까

지는 연 20 %,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5 % 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

하라 .

이유

1. 인정사실

가. 일본의 한반도 침탈과 태평양전쟁 등의 발발에 따른 노무동원계획의 실시 ( 1 ) 일본은 1910. 8. 22. 대한제국과 사이에 한일합병조약을 체결한 후 조선총독부를 통하여 한반도를 지배하였다.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을, 1937년 중일전쟁을 각각 일으킴으로써 점차 전시체제에 들어가게 되었고, 1941. 12. 8. 에는 태평양전쟁까지 일으켰다 .

( 2 ) 일본은 이러한 전쟁들로 인하여 인력과 물자가 부족해지자, 1938. 4. 1. ' 국가총동원법 ( 1938. 4. 1. 법률 제55호 ) ' 을, 1939. 7. 8. 위 법에 따른 ' 국민징용령 ( 칙령 제451호 ) ' 을 각각 제정 · 공포하고, 모집 형식의 노무동원계획을 실시하여 비행기 부품 및 제철 용광로 제조자, 선박 수리공 등 특수기능을 가진 한반도에 거주하는 한국인을 일본으로 이주시키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태평양전쟁이 개시됨에 따라 인력과 물자의 부족은 계속되었고, 이에 일본은 1942년경 ' 국민동원계획 ' 을 세워 전쟁을 위한 군수산업에 필요한 노동력 동원을 확대해 나갔으며, 1942. 2. 13. 각의 ( 閣議 ) 에서 ' 조선인 노무자 활용에 관한 방책 ' 과 ' 조선인 내지이주 알선요강 ' 을 결의함으로써 한반도에서 관 알선 형식의 노무동원계획을 실시하였다. 태평양전쟁이 최고조에 달할 즈음인 1944. 8 .

8. 에는 각의에서 ' 반도인 노무자 이입에 관한 건 ' 을 결의함으로써 특수기능의 보유 여부에 관계없이 일반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징용령이 한반도에도 적용되었다 . ( 3 ) 또한 일본은 1943. 9. 13. 차관회의에서 ' 여자근로동원 촉진에 관한 건 ' 을 결의하고, 1944. 3. 18. 각의에서 ' 여자 정신대제도 강화방책요강 ' 을 결의하여, 국민등록자인 여자를 여자정신대로 조직해서 필요한 업무에 협력할 것을 명령하는 것이 가능하게 하였고, 같은 해 6. 21. 각의에서 ' 여자정신대원 인수측 조치요강 ' 을 결의하고, 같은 해 8 .

23. 에는 ' 여자정신근로령 ( 칙령 제519호 ) ' 을 공포하여 이를 한반도에서도 동시에 시행하였다 ( 그러나 한반도에서 여자근로정신대 동원은 ' 여자정신근로령 ' 의 시행 전부터 이루어지고 있었다 ). ' 여자정신대제도 강화방책요강 ' 및 ' 여자정신근로령 ' 에서는 기본적으로 국민등록자인 여성들을 정신대 대원으로 할 것으로 정하고 있었는데, 당시 한반도에서 여성의 국민등록은 기능자, 즉 12세 이상 40세 미만의 기능자로서 중학교 정도의 학교 졸업자 또는 실력과 경험에 의해 광산기술자, 전기기술자, 전기통신기술자 등으로 현직에 취업하고 있거나 예전에 일한 적이 있는 자만으로 한정되어 있어, 국민등록자의 범위는 매우 좁았다. 그러나 위 ' 여자정신대제도 강화방책요강 ' 및 ' 여자정신근로령 ' 에는 " 특히 지원하는 자는 정신대원으로 할 것을 막지 않음 " 이라고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반도에서는 지원이라는 형식으로 근로정신대원 모집이 행해졌고, 이러한 모집은 관의 적극적인 개입이나 신문광고, 기사를 통한 모집, 학교나 단체를 통한 모집의 방법으로 이루어졌는데, 특히 국민학교의 담임교사나 학교장이 그 학생이나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지원을 강요하거나 가정방문을 하여 설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방식으로 모집된 근로정신대원들은 피고를 비롯한 C 공업 주식회사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 도토구 공장, D방적주식회사 누마즈 공장 등의 군수 공장에 동원되었다. 한편 ' 여자정신근로령 ' 은 정신근로대를 받으려고 하는 자는 지방장관에게 이를 청구 또는 신청하고 지방장관이 그 필요성을 인정하면 시정촌장 기타 단체의 장 또는 학교장에 대하여 대원의 선발을 명하여 그 결과를 보고받고, 지방장관이 대원을 결정하여 통지하면 이 통지를 받은 자는 정신근로를 하고 정신근로대를 받게 된 자가 원칙적으로 그 경비를 부담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

나. 원고의 근로정신대 지원 ( 1 ) 피고는 1928년경 일본국 ○○시에서 설립되어 금속 열처리, 공업용 재료 생산 및 가공업 등을 운영하던 회사이다 ( 당시 회사명은 ' B 강재공업주식회사 ' 였다 ). 피고는 1944. 1. 18. 경 일본의 군수회사법 제2조 제1항에 근거하여 군수회사로 지정되어 1944년경부터 1945년경까지 군수품인 축받이, 특수강 등을 생산하였다 . ( 2 ) 원고는 1931. *. * *. 생으로 서울 ○○구 ○○동에서 출생하였고, ○○○○으로 창씨개명하였다. 1944년 ○○ 국민학교를 졸업할 무렵 교장으로부터 ' 일본에 있는 B 공장에 가면 중학교와 전문학교도 다닐 수 있다 ' 는 취지가 담긴 통지서와 그와 같이 보내온 책자에 일본 기업에서 공부하는 내용 등의 홍보를 보고, 부모님과 상의도 없이 아버지의 도장을 몰래 가지고 근로정신대 신청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이와 같은 경위로 원고는 1944. 4. 경 근로정신대에 지원하여 다른 근로정신대 지원자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간 뒤 배를 타고 일본 시모노세키로 갔으며, 그곳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까지 이동하여 피고의 ○○ 공장 ( 이하 ' 이 사건 공장 ' 이라 한다 ) 으로 갔다. 그 후 1945. 7. 경 함경북도 나진으로 귀국할 때까지 이 사건 공장에서 선반을 사용하여 철을 깎는 작업에 종사하였다 .

( 3 ) 원고를 비롯한 근로정신대 지원자들은 대부분 이 사건 공장에 도착한 이후 1개월 내지 2개월 가량의 군대식 훈련을 받은 후, 이 사건 공장 내 각 작업장에 배치되어 각자의 작업장에서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10 ~ 12시간가량 위와 같은 노동을 하여야 했고, 하루 작업을 마치면 피고가 마련한 기숙사로 돌아가 숙식을 해결하였다. 원고 등이 담당한 일은 주로 선반과 같은 큰 기계를 이용하여 철을 깎거나 자르는 위험한 작업이었고, 이에 작업 도중 종종 부상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원고 등은 부상을 당하더라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다 낫기도 전에 작업에 다시 투입되었고 , 하루에 할당된 작업량을 채우지 못하면 질책을 받기도 하였다. 원고 등은 좁은 기숙사 방에서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하였는데 ( 1명당 다다미 1장 정도의 공간만이 주어졌다 ), 기숙사에는 난방시설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침구도 부족하거나 부실하여 겨울에는 추위에 시달리고 동상에 걸리기도 했다. 또한 이 사건 공장에는 식당과 매점이 있었으나 , 1945년경에는 물자가 부족해 식량사정도 나빠졌으며, 종전이 가까워지자 원고 등 이 사건 공장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식사로 삼각빵이 배급되어 그중에는 공복을 물로 견디는 사람이 있을 정도여서, 1944년과 1945년경부터 이 사건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된 원고 등으로서는 이 사건 공장에서 일하는 기간 내내 배고픔을 감내해야만 했다. 기숙사 주위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었고, 입구에는 감시원이 있었으며, 자유로운 외출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었고, 한반도에 남아 있는 가족들과 서신을 교환하는 경우 그 내용은 피고의 직원들에 의하여 검열되었다. 1945년경부터는 ○○에 대한 공습이 심해져 한밤 중에 대피하는 일도 있었고, 원고 등은 그 과정에서 극심한 공포와 두려움을 느꼈으며 , 부상을 당하기도 하였다 .

( 4 ) 원고는 이 사건 공장에서 근로를 제공한 기간 동안 피고로부터 임금을 지급받지 못하였고, 근로정신대 지원 당시 들었던 이야기와는 달리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태평양전쟁의 종전과 원고의 귀국

피고는 1945. 3. 경 일본 군수성의 명령에 따라 평양 근처 ○○○에 공장을 건설하기로 하고, 같은 해 7. 한반도에서 온 근로정신대원들을 ○○○으로 파견하기로 하였다. 이에 원고는 1945. 7. 경 한반도로 귀국하였다. 그런데 일본이 1945. 8. 15.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에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태평양전쟁이 종전되었다 .

라. 태평양전쟁 종전 이후의 상황

( 1 ) 대일평화조약의 체결

태평양전쟁이 종전된 후 1951. 9. 8. 미국 샌프란시스코시에서 미국, 영국 등을 포함한 연합국과 일본국은 전후 배상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대일평화조약을 체결하였는데, 위 조약 제4조 ( a ) 는 " 대한민국을 포함한 위 조약 제2조에 규정된 지역에 존재하는 일본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그리고 위 지역의 통치 당국 및 그 국민을 상대로 한 청구권과 일본국에 존재하는 위 지역의 통치 당국 및 그 국민 소유의 재산, 그리고 위 지역의 통치 당국 및 그 국민의 일본국 및 일본국 국민들에 대한 청구권의 처리는 일본국과 위 지역의 통치 당국간의 특별 협정이 규정하는 바에 따른다 " 고 정하였다 . ( 2 )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조약과 부속협정의 체결

대일평화조약 제4조 ( a ) 의 규정취지에 따라 1951년 말경부터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국 정부 사이에 국교정상화 및 전후 보상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하여 1965. 6. 22 .

' 국교정상화를 위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 ' 과 그 부속협정의 하나로 '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 ( 이하 ' 청구권협정 ' 이라 한다 ) 이 체결되었다. 청구권협정은 제1조에서 " 일본국 이 대한민국에 10년간에 걸쳐 3억 달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2억 달러의 차관을 행하기로 한다 " 고 정함과 아울러 제2조에서 다음과 같이 정하였다 .

1.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 법인을 포함함 ) 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스코우시에서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 a ) 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2. 본조의 규정은 다음의 것 ( 본 협정의 서명일까지 각기 체약국이 취한 특별조치의 대상이 된 것을 제외한다 ) 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 a ) 일방 체약국의 국민으로서 1947년 8월 15일부터 본 협정의 서명일까지 사이에타방 체약국에 거주한 일이 있는 사람의 재산, 권리 및 이익( b ) 일방 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으로서 1945년 8월 15일 이후에있어서의 통상의 접촉의 과정에 있어 취득되었고 또는 타방 체약국의 관할하에들어오게 된 것 .3. 2. 의 규정에 따르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일방 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이익으로서 본 협정의 서명일에 타방 체약국의 관할하에 있는 것에 대한 조치와 일방 체약국 및 그 국민의 타방 체약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으로서 동일자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기인하는 것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한다 .
또한 청구권협정에 대한 합의의사록 ( I ) 은 위 제2조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

( a ) “ 재산, 권리 및 이익 " 이라 함은 법률상의 근거에 의거하여 재산적 가치가 인정되는모든 종류의 실체적 권리를 말하는 것으로 양해되었다 .( e ) 동조 3. 에 의하여 취하여질 조치는 동조 1. 에서 말하는 양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
리 및 이익과 양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취하여질 각 국의 국내조치를 말하는 것으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 g ) 동조 1. 에서 말하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되는 양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에는 한일회담에서 한국측으로부터 제출된 " 한국의 대일청구요강 " ( 소위 8개 항목 ) 의 범위에 속하는모든 청구가 포함되어 있고, 따라서 동 대일청구요강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수 없게 됨을 확인하였다 .
위 합의의사록에 적시된 대일청구 8개 요강에는 다음과 같은 항목이 포함되어 있다 .

( 5 ) 한국 법인 또는 한국 자연인의 일본국 또는 일본국민에 대한 일본국채, 공채, 일본은행권, 피징용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반제 청구( 다 ) 피징용한국인 미수금( 라 ) 전쟁에 의한 피징용자의 피해에 대한 보상( 바 ) 한국인의 대 일본인 또는 법인청구( 6 ) 한국인 ( 자연인, 법인 ) 의 일본정부 또는 일본인에 대한 개별적 권리행사에 관한 항목
( 3 ) 청구권협정에 따른 후속조치 ( 가 ) 청구권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일본은 1965. 12. 17. '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일본국과 대한민국 간의 협정 제2조의 실시에 따른 대한민국 등의 재산권에 대한 조치에 관한 법률 ( 법률 제144호, 이하 ' 재산권조치법 ' 이라한다 ) 을 제정 · 시행하였는데, 그 내용은 " 대한민국 또는 그 국민의 일본국 또는 그 국민에 대한 채권 또는 담보권으로 협정 제2조의 재산, 이익에 해당하는 것을 1965. 6 .

22. 소멸한 것으로 한다 " 는 것이다 .

( 나 ) 한편 대한민국은 청구권협정에 의해 지급되는 자금을 사용하기 위한 기본적 사항을 정하기 위하여 1966. 2. 19. ' 청구권자금의 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1 ) ' 을 제정하고, 1971. 1. 19. 에는 ' 대일 민간청구권 신고에 관한 법률2 ) ' 을 제정하여 10개월간 국민의 대일청구권 신고를 받은 결과 총 109, 540건의 신고가 접수되었는바, 위 신고분에 대한 실제 보상을 집행하기 위하여 1974. 12. 21. ' 대일 민간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 ' 을 제정하여 1975. 7. 1. 부터 1977. 6. 30. 까지 사이에 총 83, 519건에 대하여 총 19, 187, 693, 000원의 보상금을 지급하였고, 위 각 법률은 1982. 12. 31. 모두 폐지되었다 .

그런데 앞서 본 법률들은 강제징용 피해자들 중 1945. 8. 15. 이전에 사망한 자에 대한 보상만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

마. 민관공동위원회의 개최강제징용자 중 일부는 외교통상부장관을 상대로 청구권협정과 관련한 문서들의 공개를 거부한 처분을 다투는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 ( 서울행정법원 2002구합33943 )

을 제기하였는데, 2004. 2. 13. 위 법원으로부터 승소판결을 선고받았으며, 위 판결은 외교통상부장관의 항소취하로 그대로 확정되었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는 청구권협정과 관련한 일부 문서를 공개한 후 2005. 8. 26. ' 한일회담 문서공개 후속대책 관련 민관공동위원회 ' ( 이하 ' 민관공동위원회 ' 라고 한다 ) 를 개최하고, "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 · 민사적 채권 · 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일본군 위 안부 문제 등 일본정부와 군대 등 일본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하여는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으며 , 사할린동포 문제와 원폭피해자 문제도 청구권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 는 취지의 의견을 표명하였다 .

[ 인정근거 ]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43호증 ( 가지번호 있는 경우 각 가지번호 포함 ) 의 각 기재, 증인 이춘경의 증언, 변론 전체의 취지

2. 본안 전 항변에 대한 판단

가. 피고의 주장

피고는 일본 법인이고, 원고 주장의 행위가 이루어진 장소 역시 일본 내이며, 위 행위를 비롯한 원고가 주장하는 사실관계에 관한 증거 대부분이 일본 내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므로, 대한민국 법원이 아니라 일본 법원이 이 사건에 대한 국제재판관할을 가진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 사건은 대한민국과 실질적 관련성이 없으므로, 이 사건 소는 재판관할권이 없는 대한민국 법원에 제기된 것으로서 부적법하다 .

나. 판단 ,

국제재판관할을 결정함에 있어서는 당사자 간의 공평, 재판의 적정, 신속 및 경제를 기한다는 기본이념에 따라야 할 것이고, 구체적으로는 소송당사자들의 공평, 편의 그리고 예측가능성과 같은 개인적인 이익뿐만 아니라 재판의 적정, 신속, 효율 및 판결의 실효성 등과 같은 법원 내지 국가의 이익도 함께 고려하여야 할 것이며, 이러한 다양한 이익 중 어떠한 이익을 보호할 필요가 있을지 여부는 개별 사건에서 법정지와 당사자와의 실질적 관련성 및 법정지와 분쟁이 된 사안과의 실질적 관련성을 객관적인 기준으로 삼아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할 것이고 ( 대법원 2005. 1. 27. 선고 2002다59788 판결 등 참조 ), 국제재판관할에 관하여 조약이나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상의 원칙이 아직 확립되어 있지 않고 이에 관한 우리나라의 성문법규도 없는 이상 우리나라 민사소송법의 토지관할에 관한 규정 또한 위 기본이념에 따라 제정된 것이므로 기본적으로 위 규정에 의한 재판적이 국내에 있을 때에는 섭외적 사건에 관한 소송에 관하여도 우리나라에 재판관할권이 있다고 인정함이 상당하다 ( 대법원 1992. 7. 28. 선고 191다41897 판결 등 참조 ) .

위 법리에 비추어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피고는 일본법에 의하여 설립된 일본 법인으로서 그 주된 사무소를 일본국 내에 두고 있기는 하지만, ① 이 사건 청구는 피고가 일본국과 함께 원고를 불법으로 연행하여 강제노동을 시킨 일련의 행위가 불법행위에 해당함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것인데, 대한민국은 위와 같은 일련의 불법행위 중 일부가 이루어진 불법행위지인 점, ② 원고는 대한민국의 민법에 근거하여 피고의 불법행위책임을 묻고 있는 점, ③ 원고가 이 사건에서 주장하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일본 내의 물적 증거는 거의 멸실된 반면 피해자인 원고가 대한민국에 거주하고 있고, 사안의 내용이 대한민국의 역사 및 정치적 변동 상황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대한민국은 이 사건의 당사자 및 분쟁이 된 사안과 실질적 관련성이 있다고 할 것이고, 따라서 대한민국 법원은 이 사건에 대하여 재판관할권을 가진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

3. 본안에 대한 판단

가. 손해배상책임의 성립 ( 1 ) 손해배상책임의 발생

원고에 대한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의 발생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준거법은 법정지인 대한민국에 있어서 외국적 요소가 있는 법률관계에 적용될 준거법의 결정에 관한 규범 ( 이하 ' 저촉규범 ' 이라 한다 ) 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하는데, 원고와 피고 사이에 그 법률관계가 발생한 시점은 구 섭외사법 ( 1962. 1. 15. 법률 제996호로 제정된 것 ) 이 시행된 1962. 1. 15. 이전부터 그 이후까지 걸쳐 있다. 그 중 1962. 1. 15. 이전에 발생한 법률관계에 적용되는 대한민국의 저촉규범은 1912. 3. 28. 부터 일왕 ( 日王 ) 의칙령 제21호에 의하여 우리나라에 의용 ( 依用 ) 되어 오다가 군정 법령 제21호를 거쳐 대한민국 제헌헌법 부칙 제100조에 의하여 " 현행법령 " 으로서 대한민국 법질서에 편입된 일본의 ' 법례 ( 法例 ) ' ( 1898. 6. 21. 법률 제10호 ) 이다. 원고의 청구권이 성립한 시점에 적용되는 대한민국의 저촉규범에 해당하는 위 ' 법례 ' 에 의하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성립과 효력은 불법행위 발생지의 법률에 의하는데 ( 제11조 ), 이 사건 불법행위지는 대한민국과 일본에 걸쳐 있으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에 관하여 판단할 준거법은 대한민국법 또는 일본법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원고는 대한민국법을 준거법으로 하여 피고의 불법행위 책임을 묻고 있음을 명백히 하고 있으므로, 피고의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성립하는지 여부는 대한민국법을 준거법으로 하여 판단하기로 한다. 나아가 제정 민법이 시행된 1960. 1. 1. 이전에 발생한 사건이 불법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의 판단에 적용될 대한민국법은 제정 민법 부칙 제2조 본문에 따라 ' 구 민법 ( 의용 민법 ) ' 이 아닌 ' 현행 민법 ' 이다 .

위 인정사실과 앞서 든 증거들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일본국 정부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등 불법적인 침략전쟁의 수행과정에서 군수사업체 등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조직적으로 인력을 동원하였고, 피고는 이러한 일본국 정부의 인력동원 정책에 적극 편승하여 인력을 확충하였는바, 당시 위의 침략전쟁들로 인하여 다수의 학생들까지 동원하고 있는 터라 근로정신대원으로 지원하더라도 여학교 또는 상급학교에 진학하여 공부를 하도록 지원할 여유가 없는 상황

임에도, 당시 일본국 정부와 피고는 원고가 다니던 학교의 교장이나 담임교사 등 나이 어린 원고가 믿고 따를 수 있는 연장자들을 동원하여, ' 근로정신대원에 지원하여 일본에 가면 상급학교에 진학시켜 주고, 돈도 벌 수 있다 ' 는 취지의 거짓말로 근로정신대에 지원할 것을 회유하거나 부모의 의사에 반하여 근로정신대에 지원하도록 하였으며 , 당시 원고는 한반도와 한국인들이 일본의 불법적이고 폭압적인 지배를 받고 있던 상황

아래에서 장차 일본에서 처하게 될 노동의 내용이나 강도, 환경 등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일본국 정부와 피고의 위와 같은 조직적인 기망이나 협박으로 인하여 근로정신대에 지원하거나 강제연행 되어 그 의사에 반하여 이 사건 공장에서 노동에 종사하게 되었음을 인정할 수 있다. 또한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당시 원고는 13세의 어린 소녀였음에도 피고는 이러한 원고를 기숙사에 집단으로 수용하면서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10 ~ 12시간에 이르는 장시간 동안 엄격한 감시와 통제 속에서 철을 깎거나 자르는 등의 힘들고 위험한 노동에 종사하게 하였고, 열악한 기숙사와 부실한 식사만을 제공하고, 급여조차 지급하지 아니하는 등, 원고의 자유를 현저하게 억압한 채 생명이나 신체에 위협을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환경에서 위험하고 혹독한 노동에 강제로 종사하게 하였음을 인정할 수 있다. 이러한 피고의 원고에 대한 행위는 당시 일본국 정부의 한반도와 한국인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고, 이러한 피고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가 심한 정신적 고통을 입었음은 경험칙상 명백하다 .

따라서 피고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와 같은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가 입은 정신적 고통을 금전으로나마 배상할 의무가 있다 . ( 2 ) 피고의 주장 및 이에 대한 판단 ( 가 )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원고의 청구권이 소멸하였다는 주장에 관한 판단

1 ) 피고의 주장

피징용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은 1965. 6. 22.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에 체결된 청구권협정의 대상에 포함되어 있는바, 국가 사이의 일괄처리협정에 해당하는 청구권협정의 체결로 원고의 피고에 대한 청구권은 이미 소멸하였다 . 2 ) 판단

갑 8 내지 27, 36 내지 40호증, 을 2 내지 6호증 ( 가지번호 있는 경우 각 가지번호 포함 ) 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국교정상화 등을 위하여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국 정부 사이에 이루어진 이른바 ' 한일회담 ' 중 제5차 한일회담 이후부터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인한 피해에 대한 보상의 문제가 양국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하였고,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국 정부 측에 사죄의 의미가 포함된 청구권이라는 형태의 보상을 요구하면서, 그 항목 중 하나로 생존한 피징용자가 입은 육체적, 정신적 피해와 고통에 대한 보상 역시 보상의 대상에 포함시킬 것을 주장하였으나, 이에 대하여 일본국 정부는 피해자들의 명단 등 정확한 사실의 확인 없이는 보상을 해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생존자에 대하여는 그 당시의 법적지위가 일본인이었다 .

는 점에서 일본인에게도 지불된 바 없는 보상금을 지불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던 사실, 대한민국 정부가 일본에 대하여 요구하는 개개의 청구권 항목들에 대해서는 양국 간의 현격한 입장의 차이가 있었고, 최종적으로는 일본이 대한민국에 10년간에 걸쳐 3억 달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2억 달러의 차관을 행하는 것으로 합의가 이루어졌으나, 그 액수의 명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명백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으며, 이에 대하여 일본국 정부는 ' 대한민국에 대한 일본 측의 제공은 어디까지나 배상과 같이 의무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는 경제협력이라는 기본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 ' 는 입장을 확고히 했던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

이러한 청구권협정의 체결 경위와 앞서 인정사실에서 본 청구권협정의 내용 및 후속 조치상황 등을 종합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①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 · 민사적 채권 · 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하여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서, 청구권협정 제1조에 의해 일본국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에 지급한 경제협력 자금은 제2조에 의한 권리문제의 해결과 법적 대가관계가 있다고 보이지 않는 점, ② 청구권협정의 협상과정에서 일본국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하였고, 이에 따라 한일 양국의 정부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하여는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하지 아니하였음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도 포기되지 아니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 ( 대법원 2012. 5. 24. 선고 2009다22549 판결 참조 ) .

나아가 국가가 조약을 체결하여 외교적 보호권을 포기함에 그치지 않고 국가와는 별개의 법인격을 가진 국민 개인의 동의 없이 국민의 개인청구권을 직접적으로 소멸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근대법의 원리와 상충되는 점, 국가가 조약을 통하여 국민의 개인청구권을 소멸시키는 것이 국제법상 허용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와 국민 개인이 별개의 법적 주체임을 고려하면 조약에 명확한 근거가 없는 한 조약 체결로 국가의 외교적 보호권 이외에 국민의 개인청구권까지 소멸하였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인데, 청구권협정에는 개인청구권의 소멸에 관하여 한일 양국 정부의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볼 만큼 충분한 근거가 없는 점, 일본이 청구권협정 직후 일본국 내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일본국 및 그 국민에 대한 권리를 소멸시키는 내용의 재산권조치법을 제정 · 시행한 조치는 청구권협정만으로 대한민국 국민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음을 전제로 할 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해 보면, 원고의 청구권이 청구권협정에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개인청구권 자체는 청구권협정만으로 당연히 소멸한다고 볼 수는 없고, 다만 청구권협정으로 그 청구권에 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됨으로써 일본의 국내 조치로 해당 청구권이 일본국 내에서 소멸하더라도 대한민국이 이를 외교적으로 보호할 수단을 상실하게 될 뿐이다 ( 대법원 2012. 5. 24. 선고 2009다22549 판결 참조 ) .

따라서 원고의 피고에 대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으로 소멸하지 아니하였다 할 것이므로, 원고는 청구권 협정에도 불구하고 피고에 대하여 위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할 것이므로, 피고의 위 주장도 이유 없다 . ( 나 ) 소멸시효 완성 주장에 관한 판단

1 ) 피고의 주장

원고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원고가 주장하는 불법행위일로부터 10년 이상의 기간이 경과하여 이미 시효가 완성되어 소멸하였고, 원고에게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존재하지도 않았으므로, 피고의 소멸시효 주장이 권리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 설령 피고의 소멸시효 주장이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원고가 권리행사의 객관적 장애사유가 해소된 날로부터 신의칙상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원고의 청구는 배척되어야 한다 .

2 ) 판단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거나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이 경과하면 시효로 소멸한다 ( 민법 제766조 ). 소멸시효는 객관적으로 권리가 발생하여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하고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동안은 진행하지 않지만, 여기서 '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 경우라 함은 그 권리행사에 법률상의 장애사유, 예컨대 기간의 미도래나 조건 불성취 등이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고 , 사실상 권리의 존재나 권리행사 가능성을 알지 못하였고 알지 못함에 과실이 없다고 하여도 이러한 사유는 법률상 장애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 대법원 2006. 4. 27. 선고 2006다1381 판결 등 참조 ). 다만,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 대법원 2011. 6. 30. 선고 2009다72599 판결 등 참조 ) .

위 법리에 비추어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앞서 든 증거들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① 피고의 불법행위가 있은 후 1965. 6. 22. 한일 간의 국교가 수립될 때까지는 대한민국과 일본국 사이의 국교가 단절되어 있었고, 따라서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대한민국에서 판결을 받더라도 이를 집행할 수 없었던 사실, ② 1965년 한일 간에 국교가 정상화되었으나, 한일 청구권협정 관련 문서가 모두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청구권협정 제2조 및 그 합의의사록의 규정과 관련하여 청구권협정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일본국 또는 일본 국민에 대한 개인청구권이 포괄적으로 해결된 것이라는 견해가 대한민국 내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져 온 사실, ③ 일본에서는 청구권협정의 후속조치로 재산권조치법을 제정하여 원고의 청구권을 일본 국내적으로 소멸시키는 조치를 취한 사실, ④ 그런데 원고와 같이 강제동원된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소송을 제기하기 시작함에 따라 그 개인청구권, 그 중에서도 특히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 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으로 소멸하지 않았다는 견해가 서서히 부각되었고, 2005. 1. 한국에서 한일 청구권협정 관련 문서가 공개된 뒤, 2005. 8. 26.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민관공동위원회의 견해가 표명된 사실, ⑤ 대법원은 2012. 5. 24 . 선고 2009다22549 판결을 통해 원고와 같은 강제노동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한 일본 판결은 대한민국의 공서에 반하여 승인될 수 없으며,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 어려워 청구권협정으로 원고와 같은 강제노동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하고, 설령 그와 같은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그 개인청구권 자체는 청구권협정만으로 당연히 소멸한다고 볼 수는 없고, 다만 청구권협정으로 그 청구권에 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만이 포기된 것이라고 판시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

위 인정사실에, 위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원고와 같은 강제노동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이 포함되는지에 관하여 여전히 국내외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고, 청구권협정의 당사자인 일본국 정부는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과거 일본국 정부 등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되었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현재까지도 청구권협정 관련 정보공개조차 거부하고 있는 사정을 보태어 보면, 원고가 이 사건 소를 제기할 무렵까지도 원고에게는 객관적으로 권리를 사실상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다만, 법령의 해석 · 적용에 관한 최종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 최고법원인 대법원 이 위와 같은 청구권협정에 관한 해석을 천명한 이상, 적어도 대한민국 내에서 원고와 같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청구권협정의 해석 등과 관련하여 객관적으로 권리를 사실상 행사할 수 없었던 장애사유는 소멸하였다고 볼 여지는 있다고 할 것이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원고가 위 대법원 판결의 당사자도 아니었고, 이 사건과 위 대법원 판결의 구체적인 사안이 동일하다고 보기 어려운 점에 비추어 볼 때, 원고가 위 대법원 판결 선고일로부터 민법 제766조 제1항이 규정한 단기소멸시효인 3년 내에 이 사건 소를 제기한 이상, 원고로서는 그 장애사유가 해소된 때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또한 피고의 이 사건 불법행위는 피고가 원고의 개인의 존엄성을 부정한 채, 일본국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수행 과정에 적극적으로 편승한 반인도적인 행위로서, 피고로서는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반성하고 자신의 불법행위로 인한 원고의 피해에 대해 진심어린 사과와 적절한 배상을 해야 함이 마땅함에도 무려 7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고 회피하고 있는바, 이러한 피고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여 원고에 대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무의 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일정기간 계속된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시간의 경과로 인하여 커져가는 법률관계의 불명확성에 대처하려는 목적에서 인정되는 소멸시효 제도의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

따라서 피고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며 원고에 대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무의 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여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으므로, 피고의 위 주장도 이유 없다 .

나. 손해배상의 범위 ( 1 ) 위자료의 액수

피고는 과거 일본국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을 위한 강제적인 인력동원 정책에 적극 동참하여 원고를 기망하거나 강제로 연행하여 강제노동에 종사하게 강요하였고, 특히 원고는 어린 소녀였음에도 부모와 헤어져 자유를 박탈당한 채 열악한 환경에서 위험하고 혹독한 노동에 강제로 종사해야 했는바, 이러한 가해행위의 불법성의 정도와 피고의 가담 정도, 당시 원고의 연령 및 강제노동에 종사한 기간, 노동의 강도, 근로환경과 자유 억압의 정도, 임금 등이 제대로 지급되지 아니한 점 등 원고가 입은 피해의 정도, 원고가 귀국 후에 겪은 사회적, 경제적 어려움, 불법행위 이후 상당한 기간 피해회복이 전혀 이루어지지 아니한 점과 불법행위일부터 이 사건 변론종결일에 이르기까지 장기간의 세월이 경과함에 따라 우리나라의 물가와 국민소득수준 등이 크게 상승하였고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불법행위일부터 장기간 배상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그 기간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가산하지 아니하는 사정, 기타 이 사건 변론을 통하여 나타난 제반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보면, 피고가 원고에게 지급하여야 할 위자료는 이 사건 변론종결일을 기준으로, 1억 원으로 정함이 상당하다 .

( 2 ) 지연손해금의 기산일

원고는 피고의 위자료 지급채무에 대하여 이 사건 소장 송달 다음날부터의 지연손해금을 청구하고 있다 .

그러나 위자료를 산정함에 있어서는 사실심 변론종결 당시까지 발생한 일체의 사정이 그 참작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위자료 산정의 기준이 되는 국민소득수준이나 통화가치 등도 변론종결시의 것을 반영해야만 하는바, 불법행위가 행하여진 시기와 가까운 무렵에 통화가치 등의 별다른 변동이 없는 상태에서 위자료 액수가 결정된 경우에는 그 채무가 성립한 불법행위시로부터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보더라도 특별히 문제될 것은 없으나, 불법행위시와 변론종결시 사이에 장기간의 세월이 경과되어 위자료를 산정함에 있어 반드시 참작해야 할 변론종결시의 통화가치 등에 불법행위시와 비교하여 상당한 변동이 생긴 때에도 불법행위시로부터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보는 경우에는 현저한 과잉배상의 문제가 제기된다. 따라서 불법행위시와 변론종결시 사이에 장기간의 세월이 경과되어, 위자료를 산정함에 있어 반드시 참작해야 할 변론종결시의 통화가치 등에 불법행위시와 비교하여 상당한 변동이 생긴 때에는, 예외적으로라도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 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은 그 위자료 산정의 기준시인 변론종결 당일로부터 발생한다고 보아야만 한다 ( 대법원 2011. 1. 13. 선고 2009다103950 판결 참조 ) .

위 법리에 비추어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이 사건의 경우 불법행위 종료일인 1945년경 무렵부터 이 사건 변론종결일인 2017. 1. 19. 까지 사이에 71년 이상의 장기 간이 경과하고 통화가치 등에 상당한 변동이 생겼으며, 그와 같이 변동된 사정까지 참작하여 이 사건 변론종결시를 기준으로 위자료의 수액을 결정하였으므로, 이 사건 변론종결일 이후의 기간에 대해서만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할 것이다 .

따라서 원고가 위 각 위자료 상당 금원에 대하여 이 사건 소장 송달 다음날부터 이 사건 변론종결일 전일인 2017. 1. 18. 까지의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구하는 부분은 이유 없다 .

다. 소결론

따라서 피고는 원고에게 1억 원 및 이에 대하여 이 사건 변론종결일인 2017. 1 .

19. 부터 이 판결 선고일인 2017. 3. 16. 까지는 민법이 정한 연 5 %,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연 15 % 의 각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

4. 결론

그러므로 원고의 청구는 위 인정범위 내에서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하고, 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각 기각하고, 소송비용의 부담에 관하여는 민사소송법 제101조 단서에 의하여 피고에게 부담하게 한다 .

판사

판사류종명

주석

1 ) 제5조 .

① 대한민국 국민이 가지고 있는 1945년 8월 15일 이전까지의 일본국에 대한 민간청구권은 이 법에서 정하는 청구권자금 중

에서 보상하여야 한다 .

② 전항의 민간청구권의 보상에 관한 기준, 종류, 한도 등의 결정에 필요한 사항은 따로 법률로 정한다 .

2 ) 제2조 ( 신고대상의 범위 )

① 이 법의 규정에 의한 신고대상의 범위는 1947년 8월 15일부터 1965년 6월 22일까지 일본국에 거주한 일이 있는 자를 제

외한 대한민국 국민이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일본국 및 일본국민에 대하여 가졌던 청구권 등으로서 다음 각 호에 게기

하는 것으로 한다 .

9. 일본국에 의하여 군인, 군속 또는 노무자로 소집 또는 징용되어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사망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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