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가. 분납보험료를 연체하면 상법 제650조 소정의 최고 및 해지절차를 거치지 아니하고 막바로 보험계약이 해지되거나 실효되는 것으로 규정한 보험약관의 효력 유무(소극)
나. 분납보험료 연체기간 중 발생한 보험사고에 대하여 보험계약은 존속하나 보험금 지급책임이 면책된다는 보험약관의 효력 유무(소극)
원고, 상고인
원고 소송대리인 변호사 유인의
피고, 피상고인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 소송대리인 변호사 장한각 외 2인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본다. 상고이유보충서는 상고이유에서 기재된 상고이유를 보충하는 범위 안에서 본다.
1.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가. 이 사건 선박의 소유자인 원고는 1989.6.20. 피고와 사이에 이 사건 선박의 고용선원이 공제기간 중에 발생한 직무상 사고로 재해를 입게 되는 경우 선원법상 원고가 부담 하여야 할 보상책임으로 인한 손해를 보상하여 주는 내용의 보험계약인 이른바 선원특수공제계약(이하 이 사건 공제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하였는데, 공제기간은 1989.6.20. 부터 1990.6.20. 까지, 공제료는 금3,666,000원으로 하되 그 중 국고보조금을 제외한 금 3,116,100원을 4회로 나누어 1989.6.20., 같은 해 9.20., 같은 해 12.20., 1990.3.20에 4분의 1씩을 납입하기로 약정한 사실과, 이 사건 선박은 고기잡이를 위하여 동해에서 조업하던 중 1990.4.12. 오전 무렵 기상이 악화되어 조업을 중단하고 부산항으로 귀항 도중 같은 날 14:00경 같은 선단인 제101 ○○호에 당시 이 사건 선박이 경북 영일군 구룡포 앞 해상을 통과중이며 같은 날 23:00경 부산항에 입항할 예정이라는 무전교신을 보낸 후 연락이 두절된 채 행방불명되었다가, 같은달 21. 및 23. 경남 방어진 동남방 2.5마일 해상에서 이 사건 선박에 타고 있었던 선원 2명의 익사체가 발견됨으로써 이 사건 선박의 침몰로 선원들이 모두 사망하는 재해가 발생하였음이 확인된 사실을 인정하고, 이 사건 선박의 항해 당시의 기상상태, 항해 도중의 교신상황, 항로 및 선원들의 익사체가 발견된 해상의 지리적 위치 등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 선박은 위 제101 ○○호와의 최후음신이 있은 1989.4.12. 14:00경 부터 후포어업무선국과의 정기교신 시각인 같은 날 19:45경 사이의 어느 시점에서 사고를 당하여 침몰하고 그 무렵이 사건 선박에 탔던 선원들 역시 사망 하였으리라고 봄이 우리의 경험법칙과 논리법칙에 비추어 맞다 할 것이므로, 이 사건 공제계약의 약관에 따른 이 사건 공제 사고의 발생시기는 이 사건 선박이 최후음신을 하고 실종된 때인 1990.4.12. 14:00경 부터 위 후포어업무선국과의 정기교신 시각인 같은 날 19:45경 사이로 볼 것이라고 판단하고,
나. 나아가 이 사건 공제계약 약관 제5조 제1항은 “공제료는 피고 또는 피고가 지정하는 사무소에서 전액을 일시에 납입하여야 한다. 다만, 피고가 따로 정하는 바에 의하여 수회로 나누어 납입할 수 있다” 고 규정하여 공제료분할납부의 근거를 마련한 뒤, 같은 조 제3항에서 “제1항 단서에 의거 공제료를 분할하여 납입하는 경우 그 약정 납입기일까지 해당 분납공제료를 납입하지 아니하였을 때에는 피고는 그 미납입 기간 중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는 보상책임을 지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여 분납공제료의 납입지체에 대한 공제금면책조항을 두고 있는 사실과 원고는 동해구 수협조합을 통하여 이 사건 공제계약을 체결한 후 공제료를 납입하여 온 사실, 원고는 이 사건 선박의 연락이 두절되자 납기가 1990.3.20.인 이 사건 공제계약의 제4회 분납공제료를 납부하지 아니하고 있던 탓으로 피고로부터 공제금을 지급받지 못하게 될 것을 우려한 나머지 같은해 4.13. 09:30경 동해구 수협조합의 공제담당직원인 소외 1에게 이 사건 제4회 분납공제료의 소급처리를 부탁하여, 원고 소유인 제101 ○○호의 선원사고와 관련하여 원고측이 피고로부터 지급받기로 되어 있던 선원특수공제금 479,308원과 원고측의 위탁판매대금 중 일부로서 동해구 수협조합에 예치되어 있던 가수금 205,000원의 합계금 684,308원을 그 전날인 같은해 4. 12.자로 이 사건 제4회 분납공제료의 일부로 소급하여 대체처리하고 나머지 부족금 94,717원을 현금으로 입금 시키면서 이 사건 제4회분납공제료가 마치 같은해 4.12. 자로 전액 납입된 것으로 위계처리한 사실을 인정하고, 원고는 이 사고 공제사고의 발생후인 같은 해 4. 13. 에야 이 사건 제4회 분납공제료를 납입한 것이므로 피고는 위의 면책조항에 의하여 이 사건 공제사고에 대한 공제금의 지급책임이 없다고 판단한 다음,
다. 이 사건 공제계약은 선원들이 직무상 재해를 당한 경우 선박 소유자로 하여금 선원법상의 재해보상을 완전히 이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선박 소유자 모두에게 가입이 강제되어 있는 특수보험제도인데, 자동차종합보험이나 근로자재해보상책임보험 등 보험료분납특별약관을 채택하고 있는 다른 일반보험에서는 분납보험료의 미납시 일정한 납입유예기간을 두고 이 납입유예기간 중에 발생한 사고에 대하여도 보상을 하여 주고 있는 것에 비하여, 이 사건 공제계악약관상의 면책조항은 분납공제료를 약정된 기일까지 납입하지 아니하는 경우 그 미납공제료의 납입을 위한 유예기간도 주지 않은 채 막바로 미납입기간 중에 발생한 공제사고에 대하여 보상책임을 지지 아니하도록 규정하여, 경제적 약자인 공제계약자에게만 일방적으로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는 불공정한 약관이고, 또 공제계약자가 분납공제료를 약정한 납입기일까지 납입하지 않았다 하여 공제자에 의한 최고절차도 없이 막바로 공제계약을 해지 당하는 결과를 낳게 되어 상법 제663조 , 제650조 에 의하여 무효라는 원고의 주장에대하여는, 보험계약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보험약관의 구속력을 존중하여 이에 따라야 하고, 피고는 감독기관인 수산청장의 인가를 얻어 공제규약을 개정하고 이에 맞추어 이 사건 공제금 면책조항을 새로이 삽입하였고, 보험계약자 스스로도 자신의 위험을 관리할 책임이 있으며, 위의 공제금 면책조항의 취지는 공제계약자가 분납공제료의 납입을 지체하더라도 공제자가 미납입기간 중에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만 보상책임을 지지 않을 뿐 공제계약을 해소시키지 않고 유효하게 존속시켰다가 공제계약자가 지체된 분납공제료를 납입하기만 하면 즉시 그 이후에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는 종전과 마찬가지로 보상을 받게 하여 주는 것이므로, 이 사건 면책조항에 의하여 공제계약이 막바로 해지(실효)되는 것도 아니라는 등의 이유로 배척하였다.
2. 상법 제650조 에 의하면 보험료가 적당한 시기에 지급되지 아니한 때에는 보험자는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보험계약자에게 최고하고 그 기간 내에 지급하지 아니한 때에는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같은 법 제663조 는 위의 규정은 보험당사자간의 특약으로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나 보험수익자의 불이익으로 변경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분납보험료가 소정의 시기에 납입되지 아니하였음을 이유로 위와 같은 절차를 거치지 아니하고 막바로 보험계약이 해지 되거나 실효됨을 규정하고 보험자의 보험금지급책임을 면하도록 규정한 보험약관은, 위 상법의 규정에 위배되어 무효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3. 원심은 이 사건 공제계약약관이 분납공제료의 미납기간 중에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 보상책임을 지지 않을 뿐 공제계약은 해소되지 않고 유효하게 존속함을 이유로 이 사건 공제금 면책조항이 무효가 아니라고 설시하고 있으나,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으면서 보험계약을 존속시킨다는 것은 보험가입자에게 별다른 의미가 없고,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없는 점에 있어서는 보험계약이 해지되거나 실효된 경우와 다를 바 없다. 물론 선원법 제98조 는 선박소유자의 보험가입을 강제하고, 그 제139조 는 보험미가입선주를 처벌하며, 해운항만청은 보험미가입선박의 출항을 사실상 금지하고 있는 실정이므로, 이러한 처벌과 출항금지의 불이익을 피할 수 있는 점에서는 선주에게 의미가 없다고 할수 없으나, 이것도 선원법상 선주의 보상책임을 담보하고자 함에 있는 것이므로 보험금이 지급되지 아니하는 보험은 선원법이 보험의 강제가입을 규정한 목적을 충족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또, 보험계약이 일단 해지되거나 실효되면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거나 기존의 계약을 부활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이 사건에 있어서는 연체된 보험료(분납공제료)만 내면 되는 편리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나, 보험가입자의 최대의 목적은 보험금의 확보이고, 더구나 이 사건 공제와 같은 선주배상책임보험은 선원들에 대한 재해보상을 완전히 확보하기 위하여 법률로 가입을 강제하고( 선원법 제98조 , 같은법시행령 제32조 제1항 ), 그 보험료의 일부를 국고에서 보조해 주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피보험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있는 선원에게는 보험금 없는 보험계약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또, 만일 이 사건과 같은 경우 피고의 공제금 지급책임이 면책된다면 보험자계약자에 해당하는 원고는 분납공제료의 미납기간 중에는 보험금을 전혀 지급 받지 못하면서 보험료는 전액을 납부하여야 하는 것이 되고, 피고는 보상책임을 지지 아니하면서 공제료는 지급받는 결과가 되어 형평에도 맞지 아니하고, 보험료의 지급과 보험자의 책임이 대가관계에 있는 보험계약의 본질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따라서 보험계약을 존속시키면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위와 같은 약관은 보험가입자에게는 보험계약의 해지와 실질적으로 동일한 결과에 귀착한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4. 보험료의 분할납입기간과 보험기간 또는 보험료기간은 의미가 다른 것이다. 이 사건 공제료의 분할납입 제도는 1년의 보험기간과 보험료기간동안에 지급하여야 하는 보험료를 보험가입자의 편의를 위하여 분할하여 지급받는 것뿐이지, 그 분할 납입기간마다 보험기간이나 보험료기간이 달리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원고는 이 사건에서 제4회 분납공제료만 연체하였으므로 1년의 보험기간동안 내야 하는 전체 보험료의 4분의 3은 납입한 셈이고, 더구나 국고보조금을 고려하면 그 이상 납입한 셈이 된다. 왜냐하면 계약이 존속하는 한 국고보조금은 나올 것이기 때문이며, 그렇게 본다면 원고는 제4회 분납공제료의 일부만 지체한 셈이 된다고 볼 수도 있다.
보험기간 중에 보험료의 일부를 미납하였다고 하여 보험금 전액을 면책한다는 것은 일정한 보험기간을 정하여 책임기간으로 하고 보험료기간을 단위로 하여 보험료를 산정하는 보험제도의 취지에 부합하는지도 의문이다.
5. 그렇다면 이 사건 면책조항은 실질적으로는 상법 제650조 의 규정에 위배되는 결과를 초래하여 같은 법 제663조 에 의하여 공제가입자에게 불이익한 범위 안에서는 무효라고 봄이 상당하고, 논지는 이점을 지적하는 범위 안에서 이유 있다.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