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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가법 2005. 3. 10. 선고 2004르910 판결
[혼인의무효] 확정[각공2005.5.10.(21),773]
판시사항

[1] 민법 제816조 제3호 의 입법 취지

[2] 사기 또는 강박에 의하여 혼인의 의사형성과정에 하자가 존재하는 경우 외에 의사결정능력 및 판단력에 심각한 장애가 있는 상태에서 혼인의 의사표시가 이루어진 경우, 민법 제816조 제3호 의 규정을 유추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적극)

[3]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하여 의사결정능력 및 판단력이 매우 제약된, 이른바 '양가감정' 상태에서 이루어진 혼인의 의사표시에 대하여 민법 제816조 제3호 를 유추적용하여 혼인의 취소를 인정한 사례

판결요지

[1] 민법 제816조 제3호 는 혼인의 효력을 부인해야 할 혼인취소 사유의 하나로서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하여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때'를 규정하고 있는바, 이는 혼인의 당사자 또는 제3자의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하여 혼인의 의사형성과정에 하자가 존재하는 경우 혼인의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여 혼인의 의사결정의 자유를 보호함과 아울러, 하자 있는 의사표시에 의해 성립된 혼인관계를 해소시켜 법률, 도덕, 관습 등에 부합하는 온당한 혼인질서를 확립하려는 데 그 입법 취지가 있다.

[2] 민법 제816조 제3호 의 규정이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사기 또는 강박에 의하여 혼인의 의사형성과정에 하자가 존재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의사결정능력 및 판단력에 심각한 장애가 있는 상태에서 혼인의 의사표시가 이루어진 경우 등과 같이 혼인의 취소를 통해 혼인의 의사결정의 자유를 보호하고 온당한 혼인질서를 확립해야 할 필요성이 충분히 인정되는 경우에는 위 법 규정을 유추적용하여 혼인의 취소를 허용하는 것이 혼인제도의 본질적 의미 및 위 법 규정의 입법 취지에 부합한다.

[3]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하여 의사결정능력 및 판단력이 매우 제약된, 이른바 '양가감정' 상태에서 이루어진 혼인의 의사표시에 대하여 민법 제816조 제3호 를 유추적용하여 혼인의 취소를 인정한 사례.

원고,항소인

원고 (소송대리인 변호사 양정숙 외 1인)

피고,피항소인

피고

변론종결

2005. 2. 24.

주문

1. 제1심판결 중 예비적 청구에 관한 부분을 취소한다.

원고와 피고 사이에 2003. 7. 24. 서울 관악구청장에게 신고하여 한 혼인은 이를 취소한다.

2. 원고의 주위적 청구에 대한 항소를 기각한다.

3. 소송총비용은 피고의 부담으로 한다.

청구취지및항소취지

제1심판결을 취소한다. 주위적으로, 원고와 피고 사이에 2003. 7. 24. 서울 관악구청장에게 신고하여 한 혼인은 무효임을 확인한다. 예비적으로, 주문 제1항 제2문과 같다.

이유

1. 기초사실

아래 각 사실은 갑 제1 내지 3호증, 갑 제4호증의 1 내지 6, 갑 제8, 10, 24호증, 을 제1호증의 1 내지 4, 을 제3, 4호증, 을 제5호증의 1 내지 6, 을 제7, 9호증의 각 기재, 제1심 법원 가사조사관 작성의 조사보고서의 기재, 갑 제6호증의 5 내지 14, 갑 제23호증의 1 내지 6의 각 영상, 당심 증인 소외인의 증언, 제1심 법원의 국립서울병원장에 대한 사실조회결과 및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할 수 있다.

가. 원고는 대전 우송공업대학 세무회계과를 졸업하고, 1999. 4.경부터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연지사'라는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2002. 4. 초순경 인터넷 채팅을 통해 자영업을 하던 피고를 알게 되었고, 원고와 피고는 그즈음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부근에서 직접 만나 근처 여관에서 성관계를 가졌다.

나. 원고는 그 때부터 2003. 1.경까지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38-51에 있는 피고의 집을 수시로 왕래하며 피고의 집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위 회사에 출근하곤 하다가, 2002. 8.경 임신을 하였으나 임신한 사실을 모르고 피임약을 복용하여 2002. 8. 31. 임신중절수술을 받았는데, 이후 원고는 임신중절수술로 인한 수치심과 피고에 대한 실망감으로 이 때부터 화가 나면 피고를 멍이 들 때까지 때리고 물건을 부수곤 하였다.

다. 원고는 2002. 12.경 피고의 집에서 피고로부터 자신은 결혼한 적이 있는데, 전처는 1998. 사고로 사망하였으며, 전처와의 사이에 딸이 한 명 있다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기도 하였다.

라. 원고는 2003. 1.경 피고의 집에서 피고에게 원고의 부모께 인사드리러 가자고 하였으나 피고가 답변을 하지 않자 화가 나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전화로 피고와 그 동안 있었던 일들을 상세하게 말하였고, 이에 원고의 가족들은 피고의 집으로 찾아와서 원고를 데려간 다음 피고를 혼인빙자간음 또는 강간 혐의로 고소하려 하였으나 죄가 성립하기 어렵다는 경찰관의 설명을 듣고 고소를 하지 않는 대신, 그 후로 원고가 피고를 만나지 못하도록 원고의 작은 오빠와 여동생이 자취하던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있는 집에서 원고의 외출을 금지시키고 전화도 하지 못하게 감시하였다.

마. 원고는 2003. 2. 25. 가족들 몰래 피고를 만나러 가기 위해 위 방배동 집 3층 창문으로 내려오다가 지면으로 추락하여 제1번 요추 방출성 골절과 좌측 종골 골절상을 입었음에도 택시를 타고 피고를 찾아갔다.

바. 이에 피고는 원고를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 응급실로 데려갔으나 위 대학병원측에서 수술을 하기 위해 원고의 보호자에게 연락할 것을 요구하여 피고가 원고의 가족들에게 원고의 부상 사실을 알렸고, 원고 가족들의 동의 아래 원고는 위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입원하게 되었는데, 원고 가족들은 원고가 위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여전히 피고와 만나지 못하도록 원고를 감시하였다.

사. 그러던 중 원고는 2003. 3.경 피고에게 위 대학병원으로 오라고 전화하여 피고가 찾아가자 피고에게 " 오빠, 영원히 사랑해."라는 쪽지를 건네준 후, 피고가 병실을 나온 지 1시간 정도 지나 다시 피고에게 전화하여 자신의 여동생이 피고와 만난 것을 알고 가족에게 알리려고 하니 자신이 병원에서 나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였다.

아. 이에 피고는 2003. 3. 24. 원고를 퇴원시킨 후 서울 마포구 신공덕동 139-19에서 동거를 시작하였는데, 원고가 화를 참지 못하고 피고를 때리거나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손에 상처를 내는 등의 자해행위를 일삼고 2003. 4.경에는 위 회사에서도 해고되기에 이르자, 2003. 5. 2. 원고를 위 대학병원 응급실로 데려가 외래 진료 예약을 한 후 2003. 5. 7. 정신과에서 진료를 받게 하였다. 그 당시 진료기록에는 위 나., 다., 마., 바.항 기재 사실과 '원고가 2003. 5.경 병원 내원 3일 전 피고와 사귀던 여자친구와 전화통화를 한 후 피고를 비난하고, 피고가 헤어진 여자친구를 상처 주고 버린 것처럼 자신도 그렇게 상처받고 있다고 하면서 왼쪽 손목을 유리로 긋기도 하고, 왼쪽 손등을 담뱃불로 지지기도 하는 등의 행동을 하며, 원고는 피고가 밉고 죽이고 싶지만 그 반면에 너무 좋아해서 자신의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취지의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며, 진료기록 상단에 '현재까지 두 사람의 관계는 남자가 주도하고 여자가 남자의 뜻에 따르는 편이며, 원고가 피고와 헤어지기를 원하고 법적 처벌보다 경제적 보상을 원한다.'고 기재되어 있다.

자. 원고 가족들은 2003. 6.경 원고와 피고가 동거하던 집으로 찾아와 원고를 다시 원고의 큰오빠가 자취하던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집으로 데려간 후, 한국정신과의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하였는데, 위 의원의 2003. 6. 16.자 진료기록에는 '원고가 피고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로 머리카락 뜯고 자해하고, 불면증과 악몽을 꾼다.'는 취지의 내용이 기재되어 있고, 위 의원의 2003. 6. 27.자 진료기록에는 '원고가 약을 먹고난 후 억울함은 덜하나 아직도 자신이 어떻게 행동할지 모르고 피고의 꿈을 꾸며, 피고가 불쌍한 생각도 들고, 피고가 찾아올까, 흔들리면 어쩌나 생각 들고, 피고가 약을 올려서 쫓아가게 만든다.' 취지의 내용이 진술되어 있고, 의사의 의견은 '이전보다 안정된 모습이나 피고에 대한 분노, 억울한 생각 여전하다.'고 기재되어 있으며, 위 의원의 2003. 7. 11.자 진료기록에는 '원고가 가끔씩 피고에게 전화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나 전화하지 않고 수영 다니고 다른 일 하려고 하고 있으며, 밖에서 남녀커플을 보거나 임신여성을 보면 울화가 치미는 것 조금 덜 하나 머리 속에 피고 생각 여전히 스쳐 지나간다.'는 취지의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차. 피고는 원고가 가족들에 의해 위 봉천동 집으로 돌아간 후 원고와 이메일을 주고받던 중 혼인신고를 하면 원고의 가족들도 피고와의 교제를 더 이상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원고에게 혼인신고를 제의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원고는 피고에게 오빠가 신분증을 가져가 신분증이 없다는 메일을 보내기도 하였고, 2003. 7. 23.에는 피고에게 "메일이 다 안 돼. 큰오빠가 그렇게 만들어놨나 봐.", "메일 보내지 마. 이거 꼭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일 목요일 아침 11시쯤 올 수 있으면 와. 여관 잡아놓고 차 거기다 두고 오는 것이 날 것 같아. 내일 안될 수도 있는데 ... 하여튼 그렇게 알고 있어."라는 메일을 보내기도 하였다.

카. 원고는 2003. 7. 24. 여동생에게 "잠깐 나갔다 금방 올께."라고 말하고 집을 나가 피고를 만난 다음, 서울 관악구 봉천1동 사무소에서 주민등록 재발급 신청을 하여 확인서를 발급받았고, 다시 피고의 차를 타고 서울 관악구청에 가서 피고와 함께 혼인신고서 중 '처'란에 이름 등을 직접 작성하고 서명까지 한 다음, 담당직원에게 혼인신고서를 제출하여 혼인신고를 마쳤다(이하 원고와 피고 사이에 성립된 혼인을 '이 사건 혼인'이라고 한다).

타. 원고는 혼인신고를 마치고 여관과 서울 마포구 신공덕동에 있는 피고 집에서 피고와 동거하던 중, 2003. 8. 8.에는 한빛 신경정신과의원에서, 2003. 8. 9.에는 위 대학병원 정신과에서 피고와 함께 각 정신과 진료를 받았는데, 위 한빛 신경정신과의원의 진료기록에는 '금치산자가 아니라는 소견서를 피고가 원하다.'는 내용과 '혼인신고에 대해 원고가 양가적 감정, 태도 가진 것으로 보인다.'는 의사의 소견이 기재되어 있고, 위 대학병원 정신과 진료기록에는 '지난 달에 남자친구와 합의해서 혼인신고를 했다. 부모는 심하게 반대해서 예전 정신과 진료기록에 대해 문제삼고, 정신과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할 경우 혼인을 무효화하려 한다.'는 내용과 '차트복사 원함'이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파. 원고는 2003. 8. 11. 스스로 위 봉천동 집으로 돌아간 후 다시 위 한국정신과의원과 한빛 신경정신과의원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위 한국정신과의원의 2003. 8. 11.자 진료기록에는 '피고가 혼인신고를 일방적으로 했다. 피고가 자꾸 혼인신고 하자고 하고, 잘 하겠다고 해서 피고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어 혼인신고를 했다. 지하철에 뛰어들고 싶고, 미칠 것 같고,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정도이고, 자신을 갈기갈기 찢어 놓고 싶다. 머리에 핏줄이 서고 귀신이 느껴진다.'는 취지의 내용이 기재되어 있고, 위 한국정신과의원의 2003. 8. 13.자 진료기록에는 '억울해서 피고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다. 아무리 거절하려고 해도 넘어가게 만든다. 같이 죽고 싶고,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다.'는 취지의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며, 위 한빛 신경정신과의원의 2003. 8. 11.자 진료기록에는 '현재 원고는 혼인이나 피고에 대해 양가적 감정을 가지고 있다. 주요 우울증에 해당하는 다른 증상 및 자살사고 있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하여 입원치료를 받으면서 안정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의사의 소견이 기재되어 있다.

하. 원고는 2003. 8. 18. 국립서울병원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정신분열병 진단을 받고, 그 때부터 2003. 12. 1.까지 위 병원 폐쇄병동에 입원하여 약물치료 및 지지적 정신치료를 받았다.

2. 판 단

가. 주위적 청구에 대한 판단

(1) 원고는 주위적으로, 2003. 7. 24.자 혼인신고는 원고가 극도로 불안하고 무력감으로 인해 혼인의사를 결정할 수 없는 정신상태에서 피고의 강압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으로서 당사자 사이에 혼인에 관한 실질적 합의가 결여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위 혼인신고는 무효라고 주장한다.

(2) 살피건대, 앞서 인정한 바와 같이 원고가 임신중절수술에 대한 수치감 및 피고에 대한 배신감으로 피고를 때리거나 물건을 부수는 등 행동을 하기도 하고, 피고로부터 결혼한 적이 있고 부인이 사고로 사망하였으며 딸까지 있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피고와 교제하면서 피고에게 원고의 부모를 찾아가서 인사를 하자고 하였을 뿐만 아니라 가족들 몰래 도망치다 중상을 입고도 피고를 찾아가 피고의 도움으로 병원에 입원하고, 가족들 몰래 피고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퇴원한 후 피고와 2개월 이상 동거하기도 하였으며, 가족들에 의해 집으로 돌아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외출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피고의 혼인신고 제의에 따라 주민등록증 재발급에 필요한 사진까지 준비하고 피고와 함께 동사무소에서 주민등록증 재발급 신청을 하고 구청에서 혼인신고서 중 '처'란에 이름 등을 직접 기재하고 서명까지 하여 혼인신고를 마쳤으며, 혼인신고 후 피고와 같이 동거하다 스스로 가족에게 돌아간 점에 비추어 보면, 원고의 주장과 같이 원고가 혼인신고서 작성 당시 의사결정능력 및 판단력에 심각한 장애가 있었다는 취지의 갑 제4호증의 6, 갑 제25호증의 각 기재와 당심 증인 소외인의 증언 및 제1심 법원의 국립서울병원장에 대한 사실조회 결과만으로는 원고의 위 주장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원고의 위 주위적 청구는 이유 없다.

나. 예비적 청구에 대한 판단

(1) 다음으로 원고는, 가사 피고와의 혼인이 무효가 아니더라도 원고는 피고의 강박 등으로 인하여 정신적으로 자유로운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혼인신고서를 작성한 것이므로 이 사건 혼인의 취소를 구한다고 주장한다.

(2) 살피건대, 혼인은 남녀의 애정을 바탕으로 하여 일생의 공동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도덕적·풍속적으로 정당시되는 결합으로서 부부 사이에 동거하고 서로 부양하며 협조하고 자녀를 출산하여 양육하는 것 등을 본질적 내용으로 하는 것이므로, 혼인을 무효로 하거나 그 혼인을 취소하는 등 혼인의 효력 자체를 부인하는 경우에는 그 혼인이 위와 같은 혼인의 본질에 반하는 것으로서 법률, 도덕, 관습 등 혼인질서에 합치되지 않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우리 민법은 혼인의 효력을 부인해야 할 혼인취소 사유의 하나로서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하여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때'를 규정하고 있는바( 제816조 제3호 ), 이는 혼인의 당사자 또는 제3자의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하여 혼인의 의사형성과정에 하자가 존재하는 경우 혼인의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여 혼인의 의사결정의 자유를 보호함과 아울러, 하자 있는 의사표시에 의해 성립된 혼인관계를 해소시켜 법률, 도덕, 관습 등에 부합하는 온당한 혼인질서를 확립하려는 데 그 입법 취지가 있다고 할 것이므로, 위 법 규정이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사기 또는 강박에 의하여 혼인의 의사형성과정에 하자가 존재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의사결정능력 및 판단력에 심각한 장애가 있는 상태에서 혼인의 의사표시가 이루어진 경우 등과 같이 혼인의 취소를 통해 혼인의 의사결정의 자유를 보호하고 온당한 혼인질서를 확립해야 할 필요성이 충분히 인정되는 경우에는 위 법 규정을 유추적용하여 혼인의 취소를 허용하는 것이 혼인제도의 본질적 의미 및 위 법 규정의 입법 취지에 부합하는 해석일 것이다.

돌이켜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앞서 인정한 바와 같이 원고는 뜻하지 않게 임신중절수술을 받고 피고의 결혼 전력을 알고 난 후부터 수치심, 피고에 대한 분노, 배신감 등으로 인하여 피고를 폭행하거나 자해를 하는 등의 정신이상 증세를 나타내기 시작하여, 2003. 5. 7.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 정신과에서, 2003. 6. 16.부터 2003. 8. 13.까지 한국정신과의원에서, 2003. 8. 8.부터 같은 달 11.까지 한빛 신경정신과의원에서 각 정신과 진료를 받았는데, 위 각 병원에서는 모두 '원고가 피고를 좋아하면서도 피고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로 인하여 자해를 하는 등의 정신이상 증세를 나타내고 있으므로 정신과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진단을 하였고, 이에 원고는 2003. 8. 18. 국립서울병원으로부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신체적, 정신적 충격을 경험한 후 나타나는 정신적인 장애가 1개월 이상 지속되는 질병으로서 사건의 고통적 재경험, 회피와 정서적 마비증상, 증가된 자율신경계의 각성 등을 특징적인 임상반응으로 보임)' 진단을 받고 2003. 12. 1.까지 폐쇄병동에서 입원치료를 받게 되었는바, 이에 비추어 보면 원고는 혼인신고일인 2003. 7. 24. 당시에도 위와 같은 정신분열병 질환을 앓고 있었고, 이로 인하여 의사결정능력 및 판단력이 매우 제약된 상태에서 피고에게 이끌리어 혼인신고를 하였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으므로, 위와 같이 하자 있는 의사표시에 의하여 성립된 이 사건 혼인에는 혼인취소 사유가 있다고 할 것이다. 한편, 앞서 본 바와 같이 원고가 가족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피고를 찾아가 피고와 동거한 사실, 원고 스스로 혼인신고서의 '처'란을 작성하여 피고와 함께 직접 혼인신고를 한 사실, 원고가 2003. 8. 9. 피고와 함께 정신과 진료를 받은 위 대학병원 정신과 진료기록에 '원고가 피고와 합의해서 혼인신고를 했다.'는 취지의 원고 진술 내용이 기재되어 있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나, 갑 제25호증의 기재 및 당심 증인 소외인의 증언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원고가 피고에 대한 분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직접 혼인신고를 하는 등 피고를 좋아하는 듯한 일련의 행동을 나타낸 것은 원고와 같은 정신분열병 환자에게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이른바 '양가감정(ambivalence, 자신을 학대한 사람에 대해 미움만 갖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복종하거나 그에게 끌리는 마음을 갖는 것과 같이 한 가지 대상을 접할 때 대립되는 감정이 동시에 느껴지고 이러한 감정의 통합을 이루지 못해 생기는 증상 내지 심리현상)'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이에 비추어 보면 앞서 인정한 사실만으로 이 사건 혼인이 원고의 하자 없는 진의에 의해 성립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3. 결 론

그렇다면 원고의 주위적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고, 예비적 청구는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할 것인바, 제1심판결은 예비적 청구에 관하여 이와 결론을 달리하여 부당하므로 제1심판결 중 예비적 청구에 관한 부분을 취소하여 이 사건 혼인을 취소하기로 하고, 원고의 주위적 청구에 대한 항소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김선종(재판장) 김매경 시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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