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2020노2306 살인, 절도, 사체손괴, 사체유기
피고인
A
항소인
피고인
검사
서동인(기소), 최현기(공판)
변호인
변호사 김성민(국선)
원심판결
인천지방법원 2020. 12. 1. 선고 2020고합507 판결
판결선고
2021. 6. 8.
주문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한다.
이유
1. 항소이유의 요지(양형부당)
피고인은 계획범이 아님에도 원심이 피고인에게 선고한 형(주형 : 무기징역)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
2. 판단
가. 기록상 드러난 양형 관련 사정
1) 이 사건 범행 내용
이 사건 범행은 동서지간으로 알게 된 피해자가 오랜만에 피고인의 집으로 찾아왔는데, 피고인의 설명대로라면 피고인의 아들에 대하여 듣기 싫은 말을 하였다는 이유로 전혀 방어할 수 없을 방식으로 피해자를 무참히 살해하였고, 그에 그치지 않고 죄증을 인멸하기 위하여 다음 날 전기톱 등의 도구를 새로 구입하여 사체를 여러 번 절단한 뒤 여행용 가방 2개에 나눠 담아 준비해 둔 차량에 싣고 병원 주차장에 차를 세워둔 채 유기하였으며, 피해자의 몸에 있던 금목걸이와 금반지, 하의에 있던 현찰 10만 원, 종이가방에 든 돈다발 3,000만 원을 가져간 것이다.
2) 피해자와 피고인의 관계
피고인은 169cm 정도의 키에 60kg이 되지 않는 마른 체격으로 허리와 팔, 다리, 어깨 등 관절이 좋지 않아 약을 복용하고 있으며, 피해자는 175cm 정도의 키에 73kg 정도 몸무게의 건장한 체격을 가진 49세 남성으로 피고인과는 20년쯤 전 15세가량 나이 차이가 있는 동서지간으로 알게 되었고, 피고인과 피해자 모두 이혼하면서 인척관계가 끊어지게 되었음에도 2013년경부터 약 3년간은 피해자가 운영하는 주유소에서 피고인이 숙식을 해결하며 종업원으로 근무하였던 적이 있다. 그 후 피고인은 이 사건 주소지로 이사하였고 2019. 1.경부터 2020. 5, 20.까지는 인천 중구 소재 아파트의 경비원으로 일하다 그 뒤로는 실업급여를 받으며 일 없이 지내던 중 철학관을 운영했던 경력이 있는 피고인에게 주로 피해자가 사주나 부적 또는 점괘 등을 부탁하러 연락하는 관계였다.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 피해자와 친하지 않아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먼저 연락한 경우는 드물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는데,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의 2020. 1. 1.부터 같은 해 7. 15.까지의 기간 동안 휴대폰 통화내역은 총 23회(4월에 2회, 5월에 4회, 6월에 13회, 7월에 4회)나 있었고, 그 전인 2019. 11. 17. 오후에는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명을 아는 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나를 아는 자는 남을 탓하지 않는다."라는 글귀를 한자와 한글로 함께 써 문자메시지로 보냈으며, 같은 해 11. 19. 오전에는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바쁘시지요 되면은 연락주세요. 빠르면 좋으니까요."라는 메시지를, 그 다음날 오전에도 "바쁘시지요 AR1)아빠 원래 운대로 돌아와 모든 게 잘 되면 나도 AR아빠 도움 좀 받으면 안 될까요."라는 메시지를 각 남긴 바 있다.
피해자의 배우자의 진술에 의하면, 피고인이 2019년에 모친상을 당한 피해자에게 굿을 하는 게 어떻겠냐면서 (굿 하는 데) 혼신의 힘을 쏟으면 1, 2개월간은 경비 일을 못하니 그에 대한 생활비 조로 500~600만 원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한 적이 있었고, 그 후에도 몇 차례 피해자에게 돈을 빌려달라는 피고인의 연락이 있었다.
3) 피해자의 행적
피해자는 전처와의 사이에 성인이 된 딸이 있고, 2007년에 재혼하여 아들 셋을 두고 주유소를 운영하다 실패하여 신용불량 상태가 되면서 배우자와 법률상으로 이혼한 상태에서 배우자 명의로 사업자등록을 하고 석유도소매업을 하고 있었는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주로 등유와 경유를 배달하는 방식으로 오후에 영업을 시작하곤 하였다. 이 사건이 발생한 날은 피해자가 평소와는 달리 오전에 배달을 마치고 13:18경 집에 들러, 갑자기 기름을 사입하기 위해 대비하거나 납골당과 산소로 나뉘어 모신 선친을 가족묘로 한꺼번에 모시기 위해 미리 준비해 둔 현찰 3,000만 원이 든 봉투를 가지고 13:24경 집을 나서 탱크로리 차를 운전하여 13:36경 피고인의 주거지에 도착하였는데, 당일 15시경 미용실 예약을 해둔 상태였고 배우자와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통화를 하였으며 피해자 명의로 생명보험에 가입한 것은 없다.
피해자는 피고인과 이 사건이 발생하기 4일 전인 2020. 7. 11. 13:34경 22초간(발신지역 미추홀구 도화동), 이 사건 발생 당일에는 12:47경 30초간(발신지역 미추홀구 도화동), 그리고 13:43경 8초간(발신지역 미추홀구 숭의동) 각 통화한 기록이 있고, 피해자의 배우자가 피해자에게 당일 15:00경 전화했을 때에는 수신되지 않았다.
피해자가 피고인과 이 사건 당일 13:43경 8초간 통화하기 직전인 13:40경 통화한 상대방은 AP이라는 중고차매매상이다. 피해자가 지인의 차를 팔아야 하는데 얼마 정도 받을 수 있느냐는 문의전화를 받은 AP이 등록증을 보내달라고 답한 후 전화를 끊었다가, 15분 후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피해자 폰의 신호가 몇 번 가다가 "지금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라는 문자를 받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4) 피고인 거주지의 특성
이 사건이 발생한 피고인의 거주지인 인천 중구 C오피스텔은 1층은 필로티로 되어 있고 2층부터 6층까지 40개 정도의 원룸으로 구성된 건물로, 1개 층에 7세대 정도가 복도를 가운데에 두고 양쪽으로 배치되어 있는 구조이다. 원룸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현관 좌측에 화장실, 우측에 신발장이 있고, 화장실을 지나면 왼편에 싱크대가 있고 현관문 맞은편 벽에 유리창이 달려있다.
5) 피고인의 가족관계
피고인에게는 모친과 아들, 딸이 있는데 피고인은 평소 딸과 자주 통화하였고 피고인의 모친에게도 종종 연락하는 편이었다. 피고인의 아들은 2019. 6. 26.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에서 사기 및 사기미수죄2)로 징역 2년 6월 및 2,000만 원의 배상명령을 선고받고, 2019. 10. 18. 수원지방법원에서 사기죄로 징역 6월의 형을 선고받아 항소한 결과, 2020, 1. 16. 수원지방법원에서 두 판결을 병합하여 파기하고 징역 2년의 형 및 항소심에서 추가된 배상신청인에게 5,000만 원의 지급을 추가로 명하는 판결을 선고받고 2020. 4. 9.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되어 이 사건 발생 당시 복역 중이었는데(예정된 형기종료일 2021. 7. 21.), 피고인은 아들에게 월 10만 원에서 15만 원 정도를 온라인 송금하거나 차입금으로 넣어주고 있었으며, 2020년 5월부터 7월까지는 월 1회 접견을 갔고 이 사건 발생 전 마지막 접견은 2020. 7. 9.이었다.
6) 이 사건 살인 범행 도구
가) 망치
이 사건 살해 범행에 사용된 망치의 머리는 가로가 약 9.5cm, 폭이 약 3cm 정도 크기이고 손잡이에는 두꺼운 초록색 테이프가 감긴 상태로, 망치의 머리부터 자루 끝까지의 길이는 약 22.5cm 정도 되는데 가정용 망치보다 머리 부위가 크고 두껍다. 피고인은 10년 전 쯤 영종도 개발 현장에서 막노동할 당시 자신이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버려진 망치를 쓸 데 있을지 몰라 주워와 이사를 다니면서도 계속 보관하여 왔는데, 이 사건 범행에 사용한 망치 외에 다른 망치도 같이 신발장에 보관 중이었다는 것이다.
나) 빨랫줄
피고인은 망치로 피해자 뒷머리 부분을 가격한 뒤 나일론 빨랫줄로 목을 걸어 잡아당겼는데, 그 빨랫줄은 원룸 옷장과 텔레비전 사이에 위치한 4단 짜리 서랍장 안에 있었던 것이라고 진술하였다. 피고인이 5, 6년 전 이 사건 거주지인 원룸으로 이사 오기 전에 사용하던 오래된 빨랫줄인데 이사하면서도 안 버리고 가져와 보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 수면제
피고인은 2020. 8. 7. 검찰에서 4회 피의자신문을 받을 때에서야 수면제에 관한 조사를 받으면서, 이 사건 발생 두세 달 전 동네 병원에서 1주일 분 수면제 7알을 2회 처방받아 하루에 한 알씩 복용하라고 들었는데 잘 듣지 않아서 나중에는 두세 알을 한꺼번에 먹었고, 약재상에서 구할 수 있는 안정제 같은 효과가 있는 '경면주사3)'라는 부적 쓸 때 사용되는 붉은 색 가루도 함께 섞어 먹으면 10분 정도에 잠이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피해자의 부검결과 피해자의 몸에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된 것에 대해 피고인에게 질문하자,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먹인 적이 없고 평소 경면주사와 수면제 가루를 컵에 같이 담아놓을 뿐 물을 타놓지는 않는다면서 자신이 피해자에게 수면제를 먹이지 않았다고 부인하였다.
피고인에 대한 수면제 처방 내역을 조회한 결과 2020. 5. 20. AS가정의학과의원에서 불면증을 병명으로 하여 졸피드정 10mg짜리를 1회 처방한 기록이 확인되었다.
7) 부검결과
가) 피해자의 사체에 대하여 2020. 7. 20. 부검을 실시하였으나 부검감정서는 이 사건 기소가 된 뒤인 2020. 8. 13. 검찰에 접수되었는데, 부검일은 이 사건 발생일로부터 5일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상체부분은 이미 부패가 상당히 진행되어 판단에 제한이 있다는 전제 하에, 수면제 및 메트암페타민의 영향 상태에서 머리와 목에 가해진 심각한 외력에 의한 사망으로 추정되었다. 머리부위 손상은 상처와 멍의 모양에 비추어 망치에 의한 가능성이 우선 고려되고, 목 앞 부위의 국소적인 출혈은 질식의 기전이 가해졌을 가능성이 고려되기는 하나 그 정도가 사인으로 우선 고려할 만한 수준으로 보기는 어려우며, 머리와 목 부위 손상은 주로 신체의 뒤에 위치하고 피해자에게서 어떠한 방어손상으로 볼 만한 흔적이 확인되지 않아 피해자의 뒤에서 기습적으로 외력이 가해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피해자에게서 검출된 약물의 복용 경로는 부검소견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고 하였다.
나) 피해자의 간 조직, 콩팥 조직과 위 내용물에서 졸피뎀4), 트라마돌5) 및 아세트아미노펜6)이, 간 조직과 위 내용물에서 메트암페타민7)과 암페타민8)이 각 검출되었는데,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 담당 부검의는 피해자가 살해된 후 다량의 혈액이 빠져나가는 바람에 사체의 근조직에서 검출을 하다 보니 수면제 1종(졸피뎀)과 진통제2종(아세트아미노펜, 트라마돌)이 소량뿐이어서 복용량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는 것이고, 간 조직의 메트암페타민의 함량은 2.16mg/kg, 암페타민의 함량은 0.45mg/kg이었는데, 그 정도의 농도는 급성치사독성과는 관련이 없다고 판단되나 신체적, 정신적 독성 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8) 피고인의 자백 경위
가) 경찰에서의 진술
피고인은 이 사건 발생 다음날인 2020. 7. 16. 피해자 실종사건을 조사 중인 경찰로부터 피해자를 만났는지 묻는 전화를 받자 만난 사실 없다고 부인하였고, 2020. 7. 17. 밤 긴급체포된 뒤 처음 조사를 받으면서 당일 피해자와 통화한 내역을 제시받자통화는 했지만 만난 사실은 추호도 없다고 부인하다가, 2020. 7. 18. 새벽 피고인이 빌린 승용차(렌터카) 안에서 피해자의 사체가 발견되자 '할 말이 없다. 피해자는 봤지만 빈손으로 왔고 현금이나 금목걸이, 금반지는 못 봤다. 증거대로 하시라. 죽인 게 맞으니 더 묻지 마시라.'는 취지로만 인정하였다.
경찰에서 2회 피의자신문을 받으면서 피고인은 이 사건 발생 당일 피고인의 집에서 '잠깐' 같이 있었고, 살해한 시간은 대충 2,3시경 만났으니 '그때쯤'이라면서 피해자가 뒤돌아 있을 때 망치로 계속 내리쳤다고 진술하였으며, 1회 피의자신문 때에는 보지 못했다고 했던 피해자 목에 있던 금목걸이와 손가락에 있던 금반지에 대해서는 그제야 자신이 가져갔다고 인정하였다. 그러나 현찰에 대해서는, 경찰이 피해자의 딸로부터 피고인이 준 현찰 묶음을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하고서 피고인에게 그 돈의 출처를 물었음에도 피고인은 딸에게 돈을 준 적이 없다며 부인하였다.
그 후 피고인이 딸과 면담하고서 이뤄진 3회 경찰 피의자신문에서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한 일시가 이 사건 당일 '만나서 얼마 되지 않아'라고 하였고, 피해자가 피고인을 찾아온 이유에 대하여서는 그냥 전화가 와서 만나자 하였고 특별하게 온 것이 아니라는 취지로 답하였으며, 2회 피의자신문 때까지 보지 못했다면서 부인하던 현찰에 관하여 '(피해자가) 뭐 하나(종이백)를 들기는 들었더라. 나중에 일이 터지고 보니 돈이었다.'고 답하여 종전의 진술을 번복하였다.
경찰에서의 4회 피의자신문에서는 피해자가 피고인의 집에 온 지 10분도 안 되어 범행이 이뤄졌다면서 피해자가 왜 돈을 가져왔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진술하였다.
나) 검찰에서의 진술
피고인은 사체손괴 및 사체유기 혐의는 인정하나 강도살인 혐의는 인정할 수 없고, 경찰에서와 마찬가지로 피해자가 이 사건 당일 피고인을 찾아와 사업 관련 대화를 나누던 중 10분 정도 만에 피고인의 아들에 대해 욕하는 것을 듣고 화가 나 살해하였다며, 그 전에 피해자가 피고인 집을 찾아왔을 때도 피고인의 아들 욕을 해서 감당이 되지 않았었는데 이 사건 당일도 피고인 아들 욕을 하여 피고인이 정신을 못 차리고 문 쪽으로 걸어 나와 신발장에 있던 망치로 본인도 모르게 정신없이 피해자를 때렸고, 피해자의 저항은 모르겠다고 답하였다.
피해자에게 음료 등에 약을 타 먹인 후 정신을 잃게 한 다음 가격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하여 피고인은, 피해자가 음료를 마신 것은 전혀 없다고 답하였다.
피고인은 2004년경 굿을 하면 돈을 더 벌게 해준다면서 3,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고소당한 사실이 있었는데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리 되었다는 답을 하면서 피해자에게 돈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굿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였다.
다) 기소된 후 진술
원심 제1회 공판기일 전 피고인이 처음으로 작성한 의견서에 피고인은 '수면제는 처방받아 먹던 것이고 피해자에게 먹이지 않았다. 항상 먹을 수 있게 컵에 담아 놓았다.'고 기재하여 제출하였으면서도, 원심 제1회 공판기일에 피고인과 변호인이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다고 진술하여 그대로 변론 종결된 후 피고인이 자백하였음을 전제로 원심판결이 선고되었다. 피고인은 국선변호인을 통해 항소하면서 원심판결에 사실오인이 있다고 주장하지 않고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죄임을 전제로 양형부당을 주장하였고, 제1회 공판기일이 열리기 전까지 피고인이 직접 작성한 반성문에서는 구체적으로 다투는 사유를 기재하지 않은 채 후회하고 반성한다는 취지의 내용만 기재하였다가, 당심 제1회 공판기일에 변호인이 최종 의견을 진술하면서 '수면제를 먹인 것이 아니라 피고인이 먹기 위해서 가져다놓은 수면제 컵에 있던 물을 피해자가 먹은 것인데 피고인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고 하였다.
종결했던 변론을 재개한 당심 제2회 공판기일에 피고인은 공소장에 기재된 범행수법 중 '수면제를 꺼내어 불상의 방법으로 피해자에게 먹였다.'는 부분은 원심에서부터 인정하지 않았으며, 피해자의 몸에서 검출된 수면제 성분이 피고인이 먹던 수면제 성분과 같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취지라고 진술하였다.
그 후 피고인이 자필로 작성한 반성문에 피고인이 평소 1회용 커피를 하루에도 열잔 이상 마시고, 가루로 되어 있는 경면주사를 어려서부터 불안하면 먹었던 경험이 있어 아들 걱정으로 잠이 오지 않을 때 경면주사와 수면제를 같이 먹기 좋게 가루로 만들어 담아놓았다고 기재하였고, 당심 제4회 공판기일에 이뤄진 피고인신문 시 철학관 하면서 가루로 만드는 도구가 있어 그것을 이용하여 수면제 한 알을 갈아 머그컵에 담고 그 위에 붉은 경면주사 가루를 조금 떠 넣은 채 물은 타지 않은 상태로, 밤에 마실 것을 거의 매일 습관적으로 아침, 저녁 없이 미리 담아둔다고 진술하면서, 피고인이 이 사건 당일 피해자에게 마실 것을 준 적이 없고, 피해자와 이야기하던 중 두 번인가 답답해서 밖에 나갔다 오고 화장실에도 한 번 갔다 왔는데 피해자가 먹는 것은 못 보았으며, 피고인이 수면제와 경면주사 가루를 담아두었던 그 머그컵이 현장검증 사진에 보이지 않는 이유는 모르겠다고 진술하였다.
9) 피고인의 범죄 전력
피고인은 이 사건 범행 이전까지 보호처분(가정폭력으로 2003. 4. 2. 인천지방법원에서 보호관찰, 사회봉사 20시간을 받고, 소재불명으로 집행지시 불응, 지도감독에 불응하여 2003. 9. 23. 서울가정법원에서 보호관찰, 사회봉사 20시간을 받음) 전력 외에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은 없고, 피고인에 대한 성인 재범위험성 평가도구(KORAS-G) 평가 결과 총점 9점으로 재범위험성이 '중간' 수준, 정신병질자 선별도구(PCL-R) 평가 결과 총점 10점으로 정신병질적 성격 특성에 의한 재범위험성도 '중간' 수준에 해당하여 종합적인 재범위험성이 '중간 수준으로 평가되었다.
10) 유족들의 상태
피해자의 배우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해당하는 정도의 범죄피해 트라우마 상태에 있고, 세 자녀는 피해자의 사인을 교통사고로 알고 상실감과 슬픔을 견디고 있다. 절도죄의 피해품 중 남아있는 것만 유족에게 반환되었을 뿐이고 피해자의 유족들은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면서 피고인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
나. 판단
1) 피고인이 부인하고 있는 수면제 부분
가) 피고인이 항소한 이유는 자신이 살인을 저지른 것은 맞지만 우발적으로 살인에 이르렀기에 형이 너무 무겁다는 것이고,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가장 큰 근거는 수사기관에서부터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진술해 온 '피해자에게 수면제를 탄 음료를 마시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 살피건대, 피고인이 이 사건 살인 범행을 저지른 뒤 사체를 손괴하여 유기하고, 수사기관에서 증거를 제시하기 전에는 일응 부인하는 방식으로 피고인이 대응한 바람에 이 사건 살인의 방법을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입증할 시기를 놓치게 되었다. 그러나 위에서 본 사정들을 종합하여 평가한 아래와 같은 근거를 모아보면, 공소사실처럼 피고인이 "미리 보관하고 있던 수면제를 피해자에게 먹여 항거불능 상태에 빠지게 한 다음" 이 사건 살해행위에 나아갔다고까지 인정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적어도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하기 용이하게 하거나 바깥에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수면제를 이용한 불상의 방법으로 피해자로 하여금 저항하기 어려운 상태에 빠지게 한 뒤"피해자의 뒤에서 망치로 가격하여 살인에 이르게 하였다고 인정하기에 충분하다.
① 피고인은 피해자보다 왜소한 체격이고 허리와 팔, 다리, 어깨 등 관절이 좋지 않은 60대여서, 아무리 피고인이 피해자의 등 뒤에서 기습적으로 가격하였다 하더라도 피해자가 정상적인 상태에 있었다면 저항흔 하나 없이 일방적으로 당하지만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피고인이 범행에 사용하였다는 망치는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못 박을 때 사용하는 망치보다 머리 부분이 더 크고 두꺼워 상당한 무게일 것으로 보이는 건축현장용 망치여서, 아무리 앉아있는 피해자의 뒤에서 피고인이 기습적으로 망치를 내리쳤다 하더라도 어깨와 팔 관절이 좋지 않은 피고인이 단번에 피해자로 하여금 반항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힘과 방향 조절을 할 수 있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② 피고인의 주장은 피해자와 마주 보고 앉은 상태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피해자는 그대로 벽 쪽을 보고 앉아있는데 피고인이 일어나 피해자 뒤쪽에 있는 신발장에 보관했던 위 망치를 들고서 피해자의 뒷머리 부분을 내리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 범행이 일어난 장소는 작은 원룸이어서 피고인과 피해자가 앉아있던 자리와 망치가 보관된 신발장까지의 거리가 아주 가깝고, 신발장을 열고 망치를 찾는 등 피고인의 거동에 수반되는 소리도 들릴 텐데, 피고인이 피해자와 대화 중 아무 말 없이 일어나 피해자의 뒤쪽으로 이동하는데도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왜 일어서는지, 어디 가는지 묻지도 않고 원래 앉았던 자세 그대로 벽 쪽을 본 채 앉아있었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③ 이 사건 범행이 일어난 장소는 주택가에 위치한, 소형 원룸 7개 호실이 한 층에 복도를 사이에 두고 배치되어 있는 6층 규모의 건물이고, 이 사건 범행이 일어난 시각은 2020. 7. 15. 수요일 낮 2시가 되어갈 무렵이었다. 여름철 주택가에는 유리창을 열고 있는 집도 있을 수 있고 한 층에 7세대가 붙어있는 원룸 건물의 구조상 소음차단이 잘 된다고 보기 어려워, 피해자가 정상적인 상태에서 피고인의 공격을 받았다면 비명을 지르거나 살려달라는 소리를 지를 수 있고, 그렇다면 옆집이나 주위에서 그 소리가 들릴 가능성도 있을 것인데, 피고인은 피해자가 공격받은 이후의 상황을 묻는 질문에 대해 수사기관 이래 일관되게 기억나지 않는다고만 답하였다.
④ 피고인은 이 사건 살인 범행을 저지른 시점에 대하여, 경찰에서는 피해자가 피고인의 집에 들어온 뒤 '잠깐'만에 라고 하거나 '10분도 안 돼서'라고 진술하였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 피고인이 이 사건 당일 피해자로부터 방문하겠다는 취지의 전화를 받고 다음에 보자 하였는데도 피해자가 다짜고짜 피고인의 집으로 찾아왔기에 피고인이 1층 현관으로 내려가자 피해자도 따라 내려왔고, 피고인이 건물 밖으로까지 나갔는데 피해자가 계속 따라와 다시 피고인이 피해자와 함께 피고인의 집으로 올라왔고 그 이후 언짢은 상태에서 피해자가 피고인의 아들에 대해 듣기 싫은 이야기를 하여 이 사건이 벌어졌다고 수사기관에서 진술하였다. 그런데 이 법정에서는 피해자와 이야기하던 중 두 번인가 답답해서 밖에 나갔다오고 화장실에도 한 번 갔다 왔다고 진술하여, 피해자가 피고인의 집에 온 뒤 이 사건 살인 범행이 있기까지의 행적을 일관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피해자가 피고인의 집에 들어가기 전인 이 사건 당일 13:40경 중고차 매매 관련 문의 전화를 걸었던 상대방인 AP은 그로부터 15분 뒤인 13:55경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피해자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진술하였다. 물론 피해자가 피고인과 이야기 중이어서 그 전화를 받지 않았거나 벨 소리를 듣지 못하였을 가능성도 있지만, 피고인이 밖에 두 번인가 나갔다오고 화장실에도 다녀올 정도였다면 자신의 필요에 의해 전화를 걸었던 피해자가 의식을 잃거나 손을 쓰지 못하게 되는 등 비정상적인 상태에 처한 것이 아닌 이상 그 전화를 받지 않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⑤ 피고인은 평소 피해자와 그리 친하지 않아 한동안 연락하지 않았고 피해자가 주로 피고인에게 연락하였다고 진술하였는데, 피고인이 이 사건 발생 8개월쯤 전인 2019. 11. 19.경 피해자에게 '연락을 달라.', '피해자로부터 도움받기를 바란다.'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연이어 보내기도 하였다.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점을 봐주거나 하더라도 그 대가로 돈을 받거나 요구한 적이 없다고 하였고, 위와 같은 문자메시지의 취지는 취업을 부탁하는 내용이지 돈을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으나, 피해자의 배우자는 피고인이 피해자가 모친상을 당했던 2019년경 피해자에게 굿을 해주는 대가로 돈이 든다는 제안을 한 적이 있을 뿐 아니라 몇 차례 돈을 빌려달라고 연락한 적도 있다고 진술하였다.
피해자의 배우자가 사실이 아님에도 구체적으로 일시까지 특정하여 그와 같은 말을 지어낼 이유는 없어 보이는 반면, 피해자의 배우자가 언급한 2019년경은 피고인의 아들이 2019. 10. 18,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에서 징역 2년 6월의 형과 2,000만 원의 배상명령을 선고받은 1심 재판과 수원지방법원에 기소된 또 다른 형사사건의 1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던 시기여서, 피고인에게는 급전이 필요한 때였다고 볼 수 있다.9)
⑥ 피해자의 몸에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된 이유를 이 사건 범행과 관련짓지 않고서는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피해자는 이 사건 당일 15시경 미용실 예약이 되어 있었고 석유도소매업의 영업을 주로 오후에 시작하며 피고인의 집에 가기 전에 미리 피고인에게 연락하고 자신의 탱크로리를 운전하여 갔기 때문에, 피고인의 집에 도착하기 전이나 도착한 이후 수면제 성분의 약물을 알면서 복용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피해자의 사체에서 검출된 수면제 성분은 피고인이 처방받은 수면제 성분과 같다.
⑦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수면제를 먹인 적이 없다고 부인하면서도, 굳이 평소 자신이 먹기 위하여 알약으로 된 수면제를 가루로 만들어 경면주사를 조금 뿌려 머그컵에 담아놓는데 그날도 그렇게 두었음에도 이 사건 발생 이후 현장검증 사진에는 자신이 두었던 위치에 그 머그컵이 없다고 이 법정에서 진술하였다.
수사기관은 이 사건 발생 후 3주가량 지난 뒤에서야 피해자의 시신에 저항흔이 없는 점에 비추어 약물에 의하여 피해자가 저항할 수 없게 만든 뒤 직접적인 살해행위에 나아갔을 가능성을 두고 피고인에 대한 조사를 하였고, 이 사건 발생 2개월쯤 전 피고인이 일주일 분 수면제 처방을 받은 내역이 1회 있을 뿐이어서 그에 대한 질문을 하였는데도,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 묻지도 않고 증거로 확보되지도 않은 '경면주사'라는 붉은 가루와 같이 수면제를 먹으면 '10분 정도'에 잘 수 있어 알약으로 된 수면제를 가루로 만들어 섞어 먹곤 하였다고 답하였다.
피고인의 설명대로라면 아침이나 낮부터 작은 알약으로 된 수면제를 갈아서 컵에 담고 그 위에 경면주사 가루를 조금 덜어 넣어 두었다가 저녁에 물을 부어 마시곤 했다는 것인데, 경면주사는 이미 가루형태로 되어 있어 갈 필요가 없고, 수면제 알약은 그 크기가 작아서 오히려 가루로 가는 것이 그대로 삼키는 것보다 더 불편할 것으로 보이는데도, 굳이 먹기 직전도 아닌 오전이나 낮부터 작은 수면제 알약을 갈아서 경면주사와 함께 준비해 두었다가 저녁에 물을 부어 먹곤 하였다는 피고인의 진술은 그대로 믿기 어렵다.
또한, 피고인은 거의 매일 경면주사와 가루로 만든 수면제를 같이 먹고 잠이 들곤 하였다지만 피고인이 병원에서 수면제를 처방받은 내역은 이 사건 발생 2개월 쯤 전인 2020. 5. 20.에 1회 있을 뿐이며, 설령 피고인의 진술처럼 1회가 아니라 2, 3회 처방을 받았다 하더라도 통상 병원에서 수면제를 1주일 단위로 처방하는 점에 비추어 보면, 병원 처방 기록이 남아있는 2020. 5. 20.부터 이 사건 범행일인 2020, 7. 15.까지의 기간 동안 거의 매일 복용하고 때로는 한 번에 2, 3알을 복용하였다는 피고인의 진술에 따를 때 처방 받은 분량이 남아있지 않게 되고, 잠이 오지 않아 수면제까지 먹어야 한다는 피고인이 이 법원에 2021. 3. 17. 제출한 반성문에는 평소 1회용 커피를 하루에도 열잔 이상 먹었다고 기재하고 있어, 수면제와 관련된 피고인의 진술은 모순되거나 객관적인 자료에 부합하지 않는 점, 수면제 가루는 흰 색이고 경면주사는 붉은색이어서 컵에 담아 놓으면 붉은 가루가 섞인 흰 가루가 눈에 띌 테고 물에 탈 경우 붉은 기운이 돌게 되므로, 피해자가 물을 마시기 위해 그와 같은 가루 상태의 수면제와 경면주사가 뿌려진 머그컵에 스스로 물을 담아 마시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볼 때, 피해자의 몸에서 검출된 수면제 성분은 피해자가 피고인의 집에 오기 전에 스스로 투약 내지 복용했다고 볼 아무런 근거가 없는 이상, 피고인의 집에 온 뒤 불상의 방법으로 피해자의 몸에 투여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10)
2) 원심의 양형에 대한 부분
양형부당은 원심 판결의 선고형이 구체적인 사안의 내용에 비추어 너무 무겁거나 너무 가벼운 경우를 말한다. 양형은 법정형을 기초로 하여 형법 제51조에서 정한 양형의 조건이 되는 사항을 두루 참작하여 합리적이고 적정한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 재량 판단으로서, 공판중심주의와 직접주의를 취하고 있는 우리 형사소송법에서는 양형판단에 관하여도 제1심의 고유한 영역이 존재한다. 이러한 사정들과 아울러 항소심의 사후심적 성격 등에 비추어 보면, 제1심과 비교하여 양형의 조건에 변화가 없고 제1심의 양형이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이를 존중함이 타당하며, 제1심의 형량이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 내에 속함에도 항소심의 견해와 다소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제1심 판결을 파기하여 제1심과 별로 차이 없는 형을 선고하는 것은 자제함이 바람직하다(대법원 2015. 7. 23. 선고 2015도3260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그렇다면 이 사건에서 원심과 같이 피고인을 무기징역형에 처하는 것이 적정한지 여부에 관하여 살피건대, 피고인이 법정에서는 대부분의 범행을 자백하고 있고 이 사건 범행 이전까지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은 없으며 재범의 위험성이 높지 아니하므로, 성행의 개선을 통하여 올바른 이 사회의 일원으로 다시 설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점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에 대하여 무기징역형을 선고한 원심의 형이 다소 무거운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이 존재하기는 한다.
그러나 이 사건 범행의 수단과 방법, 잔혹성, 결과의 중대성, 범행 후의 정황 등 제반사정과 형벌이 가지는 범죄에 대한 일반 예방적 기능, 다른 유사사건에서의 일반적인 양형 사례와의 균형 등을 참작하여 볼 때, 현재로서는 피고인에 대하여 유기징역형을 선고한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죄책에 합당한 처벌을 위해서는 상당히 장기간의 징역형에 처하는 중형의 선고가 불가피하고, 비록 무기징역형과 유기징역형 사이에 가석방이 가능하게 되는 시점 등에서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 만 62세인 피고인의 연령을 감안하여 볼 때 무기징역형과 장기간의 유기징역형은 피고인을 이 사회로부터 장기간 격리한다는 측면에서는 그리 큰 차이가 없다고 할 것이다.
또한 피고인이 양형사유로 주장하는 대부분의 사정들은 원심의 형에 이미 반영되었다고 보이고 원심의 형은 양형기준에 따른 권고형량의 범위 내에 있는 점, 당심에 이르러 주요 양형인자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거나 새로운 양형자료가 제출된 바 없어 원심과 비교하여 양형 조건에 큰 변화는 없는 점 및 피고인의 성행, 환경, 가족관계, 범행의 경위,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여러 양형 조건을 종합하면, 원심의 양형이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나 너무 무겁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앞서 본 법리에 따라 피고인에 대하여 무기징역형을 선고한 원심의 형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한다. 피고인의 양형부당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3. 결론
그렇다면 피고인의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4항에 따라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다만,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초래할 염려가 없는 경우에는 공소사실과 기본적 사실이 동일한 범위 내에서 법원이 공소장변경절차를 거치지 아니하고 다르게 사실을 인정하였다고 할지라도 불고불리의 원칙에 위배되지 아니하는바(대법원 2006. 6. 15. 선고 2006도1667 판결 등 참조), 일반적으로 범죄의 방법은 공소사실의 특정을 위한 요인이지 범죄사실의 기본적 요소는 아니므로 그 방법이 다소 다르다 하여 공소장변경의 절차를 요하는 것은 아니고, 그 방법의 차이가 커서 범죄의 성부에 중대한 관계가 있는 경우에는 피고인의 방어에 실질적 불이익을 가져다 줄 염려가 있으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공소장변경의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이 수면제를 불상의 방법으로 피해자에게 먹여 피해자로 하여금 항거불능 상태에 빠지게 한 다음' 살해하였다는 최초의 공소사실과 피해자, 살해한 장소, 시각, 도구(망치, 나일론 빨랫줄), 사인(머리 및 목 부위 손상 등)이 같고, 단지 피고인이 망치 등을 이용하여 피해자를 가격하는 행위에 나가기 전 피해자의 상태를 '수면제를 이용한 불상의 방법으로 피해자로 하여금 저항하기 어려운 상태에 처하게 한 뒤'로 고쳐 인정하는 것은, 기본적 사실관계는 동일하되 살해 전 피해자의 상태가 공소사실보다 피고인에게 덜 불리한 쪽으로 인정되는 것이어서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 불이익을 초래할 염려가 없으므로, 이 법원은 공소장변경절차 없이 아래와 같이 직권으로 범죄사실을 정정하고 그에 따라 그와 관련된 부분들을 다음과 같이 고친다.
원심판결 범죄사실란의 "13:37경"(2면 7행)을 "13:41경"11)으로, "사업 관련 운수를 보러 온 피해자와 대화를 하던 중 미리 보관하고 있던 수면제를 꺼내어 불상의 방법으로 피해자에게 먹여 피해자로 하여금 항거불능 상태에 빠지게 한 다음"(2면 8~10행)을 "불상의 이유로 피고인을 죽이기로 마음먹고 수면제를 이용한 불상의 방법으로 피해자로 하여금 저항하기 어려운 상태에 처하게 한 뒤"로 각 정정하고, 증거의 요지 중 "피고인의 법정진술"은 "피고인의 이 법정에서의 일부 진술"로 고치며, 양형의 이유 중 2.의 가항 특별 양형인자 가중요소에서 "반성 없음"은 삭제하고, 3항 아래로 3째 줄 뒷부분에서 시작하는 "피고인은 피해자를 자신의 주거지로 유인하여 미리 준비한 졸피뎀을 먹였고"를 "피고인은 자신을 찾아온 피해자를 죽이기로 마음먹고 수면제를 불상의 방법으로 피해자에게 투여하여"로 고치고, 원심판결 6면 밑에서 2행의 "치밀하고 계획적이며"를 "평소 거의 사용하지 않는 작업용 망치와 빨랫줄을 범행도구로 사용하였다는 점이나 피해자의 몸에서 피고인이 처방받았던 수면제 성분이 검출된 점을 볼 때 우발적이라고 보기 어렵고"로 고치고, 원심판결 6면 마지막 줄의 "방어할 수 없게"를 "방어하기 어렵게"로 고치고, 원심판결 7면 5행부터 18행까지 삭제하고, 원심판결 8면 2, 3행은 삭제하는 대신 "고 있다."로 고치기로 한다.
판사
재판장 판사 윤승은
판사 김대현
판사 하태한
주석
1) 피해자가 전 배우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이름이다.
2) 보이스피싱 범죄
3) 경면주사(鏡面朱砂)의 사전적 의미는 주홍색 또는 적갈색이 나는 황화수은을 주성분으로 하는 천연 광물의 결정체이나, 한방에서는 정신을 편안하게 안정시키는 진정 효능이 있는 약재로 알려져 있는데 수은 성분 때문에 너무 많은 양을 쓰거나 지속적으로 먹는 것은 좋지 않아, 현재는 주로 도자기 등에 색을 입히는 안료 또는 부적을 쓰는 재료로 사용된다.
4) 불면증 등의 증상에 사용하는 진정최면제
5) 중증 및 중등도의 급·만성 동통에 사용하는 의약품으로 진통에 대한 상승효과를 위해 아세트아미노펜과 복합제로 사용되기도 한다.
6) 발열, 두통, 신경통, 근육통 등에 사용하는 의약품
7) 소위 ‘필로폰’으로 불리는 각성제로 습관성 및 환각 작용이 있는 향정신성의약품
8) 메트암페타민의 복용 후 검출되는 생체 내 대사물로 메트암페타민과 같은 작용이 있는 향정신성의약품
9) 물론, 이 사건 범행이 발생한 시기는 이미 피고인 아들의 형사재판이 모두 확정된 이후여서 당장 돈이 시급한 상황은 아니었고,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돈을 빼앗기 위하여 강도살인을 하였다거나 이 사건 살인의 동기가 피해자로부터 돈을 빌리려다 피해자가 거절하는 등의 사유에서 비롯되었다고 인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위 사정은 적어도 피고인이 피해자와 소원한 관계라거나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돈을 요구한 적이 없다는 진술은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근거로 든 것이다.
10) 피해자의 사체에서 검출된 2종의 진통제 성분은 피고인이 허리와 팔, 다리, 관절 등이 좋지 않아 복용하였다는 약 성분일 수도 있으나 피해자도 진통제를 복용하였을 수 있어, 피고인의 이 사건 살인 범행에 진통제 성분이 영향을 미쳤다고까지 볼 필요는 없고, 메트암페타민 성분에 대해서는 본문 2. 나. 1) 나)의 ⑥항에서 든 이유와 마찬가지로 피해자가 피고인 집에 오기 전 스스로 메트암페타민 성분을 투약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이지는 않을 뿐 아니라, 그 성분이 수면제의 (저항하기 어렵게 하는) 작용을 저해한다고 볼 자료도 없는 이상 피고인이 다투는 것은 자신이 피해자에게 수면제를 먹이지 않았다는 것이므로, 피해자의 사체에서 검출된 약물성분 중 수면제에 대해서만 살펴본다.
11) 검사는 당심 제4회 공판기일에서 이와 같이 공소장 기재를 정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