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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2021. 5. 7. 선고 2019가합503684 판결
[물품대금] 항소[각공2021상,406]
판시사항

갑이 페이퍼 컴퍼니인 을 외국회사 등을 설립한 다음 을 회사 등 명의로 국가와 ‘국외 생산업체가 국외에서 생산한 물품’에 관한 물품공급계약을 체결하면서 실제 제작자가 아닌 을 회사 등 명의로 허위의 제작자 정보명세서 등을 작성ㆍ제출하는 방법으로 국가를 기망하여 납품대금을 편취하였다는 범죄사실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는데, 을 회사 등이 국가를 상대로 위 계약에서 정한 물품들을 모두 공급하였다며 물품대금의 지급을 구한 사안에서, 위 소는 신의칙에 반하는 소권의 행사로서 부적법하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갑이 페이퍼 컴퍼니인 을 외국회사 등을 설립한 다음 을 회사 등 명의로 국가와 ‘국외 생산업체가 국외에서 생산한 물품’에 관한 물품공급계약을 체결하면서 실제 제작자가 아닌 을 회사 등 명의로 허위의 제작자 정보명세서 등을 작성ㆍ제출하는 방법으로 국가를 기망하여 납품대금을 편취하였다는 범죄사실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는데, 을 회사 등이 국가를 상대로 위 계약에서 정한 물품들을 모두 공급하였다며 물품대금의 지급을 구한 사안이다.

을 회사 등은 갑이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로 법인격이 형해화되어 갑과 별개의 법인으로서 실체를 가진다고 볼 수 없는 점, 위 청구는 갑이 국가를 상대로 사기 범행을 저지르기 위하여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에 물품대금을 지급할 것을 구하는 것으로 해당 물품대금을 을 회사 등에 지급하는 것은 갑에게 그가 저지른 범죄행위의 수익을 지급하는 것이 되는 점, 국가가 제작자 정보명세서를 받는 이유는 해당 물품의 조달경로를 투명하게 하여 품질보증 및 사후관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인데, 갑이 실제 제작자가 아닌 페이퍼 컴퍼니에 불과한 을 회사 등 명의로 제작자 정보명세서와 제작자 검사증명서를 제출한 결과, 국가로서는 해당 물품에 하자가 발생할 경우 실제 제작자에게 책임을 추궁하기 어렵게 되었고, 을 회사 등이 법인의 실체를 갖지 못하여 그들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한 점 등 제반 사정에 비추어 보면, 위 소는 신의칙에 반하는 소권의 행사로서 부적법하다고 한 사례이다.

원고

티비티 피티이 엘티디(TBT PTE Ltd.) 외 1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원 담당변호사 박창환)

피고

대한민국

2021. 4. 2.

주문

1. 이 사건 소를 각하한다.

2. 소송비용은 원고들이 부담한다.

피고는 원고 티비티 피티이 엘티디에 미합중국 통화 287,961달러(이하 ‘미합중국 통화’를 생략하고 ‘달러’라 한다), 싱가포르 통화 54,217달러(이하 ‘싱가포르 통화’를 생략하고 ‘싱달러’라 한다), 유럽연합 통화 12,768유로(이하 ‘유럽연합 통화’를 생략하고 ‘유로’라 한다), 원고 묵쿰 피티이 엘티디에 194,724달러, 278,928싱달러, 8,614유로와 위 각 돈에 대하여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2%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이유

1. 기초 사실

가. 물품공급계약의 체결 및 공급

1) 원고 티비티 피티이 엘티디(이하 ‘원고 티비티’라 한다) 명의로 2014. 6. 17. 피고와 사이에 베이스 링크 어셈블리(Base link assembly) 29개 등을 공급하고 44,622달러를 지급받는 내용의 물품공급계약서(계약번호 1 생략)가 작성된 것을 비롯하여 2016. 12. 21.까지 별지 1 기재와 같이 14건의 물품공급계약서가 작성되었다(이하 통칭할 때는 ‘이 사건 티비티 물품공급계약’이라 하고, 개별 계약을 지칭할 때는 ‘별지 1 ○계약’이라 한다).

2) 원고 묵쿰 피티이 엘티디(이하 ‘원고 묵쿰’이라 한다) 명의로 2016. 8. 1. 피고와 사이에 액셀러레이터(Accelerator) 21개 등을 공급하고 57,915싱달러를 지급받는 내용의 물품공급계약서(계약번호 2 생략)가 작성된 것을 비롯하여 2017. 10. 11.까지 별지 2 기재와 같이 5건의 물품공급계약서가 작성되었다.

나. 소외 1에 대한 형사판결 및 계약 해제 예정 최고

1) 소외 1은 2018. 11. 2. 서울중앙지방법원 2018고합669호 사건에서 외국환거래법 위반죄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죄가 유죄로 인정되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명하는 판결을 선고받았는데, 그중 사기 범행의 범죄사실은 아래와 같다.

방위사업청은 ‘국외 생산업체가 국외에서 생산한 물품’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입찰의 경우 낙찰받은 업체와 납품계약을 체결할 때 제작자에 의한 사후 품질보증검사를 마친 물품을 배송할 것을 보증하는 제작자 정보명세서와 제작자 검사증명서를 제출받고 위 서류만으로 품질에 이상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여 납품받아 왔다.
소외 1은 싱가포르에 페이퍼 컴퍼니인 원고 묵쿰, 트리오 비, 원고 티비티(이하 세 회사를 통칭할 때는 ‘원고들 등’이라 한다)를 순차로 설립한 후, 위 페이퍼 컴퍼니 명의(무역대리점 ‘마스터코리아’)로 방위사업청이 실시하는 입찰에 참가하여 낙찰자로 결정되면, 사실 원고들 등은 페이퍼 컴퍼니에 불과하여 자신을 제작자로 한 제작자 정보명세서나 제작자 검사증명서를 작성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원고들 등이 제작자로서 군수물품을 직접 제작하였고, 방위사업청과의 계약조건에 따라 제작자 스스로 군수물품을 검사한 결과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것처럼 원고들 등 명의의 제작자 정보명세서 등을 작성ㆍ제출하는 방법으로 납품대금 지급요건을 가장하여 방위사업청을 속이고 납품대금을 편취하기로 마음먹었다.
소외 1은 2010. 4.경 페이퍼 컴퍼니인 트리오 비 명의(무역대리점 ‘마스터코리아’)로 방위사업청이 실시하는 ‘국외 생산업체가 국외에서 생산한 물품’인 ‘LIGHT ASSY(조명 조립품)’의 납품 입찰에 참가하여 낙찰자로 결정되자, 2010. 4. 19. 방위사업청과 사이에 트리오 비가 제작하는 ‘LIGHT ASSY’를 납품하겠다는 계약(계약번호 3 생략)을 체결하면서, 제작자인 트리오 비에 의한 품질보증검사를 마친 물품을 납품하겠다는 내용의 제작자 정보명세서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사실 트리오 비는 서류상 존재하는 회사였을 뿐, 생산시설 등 실체가 없어 트리오 비가 제작한 물품(LIGHT ASSY)을 납품할 수 있는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
그 후 소외 1은 불상자로부터 방위사업청에 납품할 ‘LIGHT ASSY’ 56개를 구매하여 2012. 6. 26. 트리오 비 명의로 방위사업청에 납품하고, 2012. 8. 2. 방위사업청으로부터 그 납품대금 명목으로 7,560달러(한화 8,534,505원 상당)를 트리오 비 명의의 싱가포르 UOB 은행 해외예금계좌로 송금받았다.
소외 1은 이를 비롯하여 2009. 7.경부터 2017. 6.경까지 사이에 총 87회에 걸쳐 원고들 등 명의의 제작자 정보명세서를 제출하는 등 같은 방법으로 방위사업청을 기망하여 이에 속은 방위사업청으로부터 한화 합계 2,085,918,067원을 송금받아 편취하였다.

2) 피고는 위 형사판결 선고 이후인 2019. 3. 13. 원고 티비티에는 별지 1 ②, ⑨, ⑩, ⑫, ⑬, ⑭계약이 포함된 18개의 물품공급계약에 관하여, 트리오 비에는 7개의 물품공급계약에 관하여 각각 허위의 제작자 정보명세서를 제출하여 계약을 불이행하였다는 사실을 통보하며, 2019. 5. 3.까지 하자를 치유하고 계약이행을 완료할 것과, 2019. 5. 3.까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각 물품공급계약을 해제할 것을 통보하였다.

다. 형사판결의 상소심 경과

1) 소외 1은 위 형사판결에 불복하여 서울고등법원 2018노3177호 로 항소하였고, 서울고등법원은 2019. 9. 17. 소외 1의 범죄사실 중 외국환거래법 위반의 점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하면서 사기 범행에 관하여서는 원심의 유죄판단을 유지하였다.

2) 소외 1은 위 서울고등법원 판결에 불복하여 대법원 2019도14019호 로 상고하였으나, 2019. 12. 27. 상고가 기각되어 위 서울고등법원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었다.

[인정 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호증의 1 내지 14, 갑 제2호증의 1 내지 5, 갑 제3호증의 1 내지 15, 갑 제4호증의 1 내지 6, 을 제4호증의 1, 2, 을 제13호증의 1 내지 3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당사자들의 주장

가. 원고들의 주장

원고들은 피고와의 물품공급계약에 따라 계약에서 정한 물품들을 모두 공급하였으므로 피고는 원고들에게 물품대금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나. 피고의 주장

원고들은 소외 1이 싱가포르에 세운 페이퍼 컴퍼니에 불과하여 물품을 제작하지 않았고, 원고들이 국외 생산업체로서 국외에서 생산한 물품을 공급한다며 피고에게 제출한 제작자 정보명세서는 허위의 제작자 정보명세서에 해당한다.

1) 원고들이 사실에 부합하는 제작자 정보명세서를 작성ㆍ제출할 의무는 물품공급계약의 주요 의무에 해당하는데, 원고들은 피고에게 허위의 제작자 정보명세서를 제출하였고, 피고는 2019. 5. 3. 하자를 치유할 것을 요구하였음에도 원고들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따라서 피고는 원고 티비티가 공급한 물품 중 사용하지 않은 부분인 별지 1 ②계약의 Bearing Cone 중 33,366달러 부분, 별지 1 ⑨계약의 Steering Wheel 및 Cable, Puspull 중 각 3,289달러, 37,344달러 부분, 별지 1 ⑩계약의 Ball BearingㆍBearing, Roller, NeedleㆍBall Bearing 중 350싱달러, 1,014싱달러, 2,553싱달러 부분, 별지 1 ⑫계약 중 7,623싱달러 부분, 별지 1 ⑬계약의 ImpellerㆍCable, Puspull 중 5,368달러, 3,675달러 부분, 별지 1 ⑭계약 전부를 각각 해제한다(이하 피고가 해제를 주장하는 부분을 통칭하여 ‘이 사건 해제 부분’이라 한다). 설사 원고 티비티가 허위의 제작자 정보명세서를 제출한 것이 해제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피고는 기망행위를 이유로 이 사건 해제 부분을 취소한다. 따라서 피고는 이 사건 해제 부분에 해당하는 물품대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

2) 피고는 원고 티비티와 사이에 이 사건 티비티 물품공급계약 외에도 10여 건의 물품공급계약(이하 ‘소외 티비티 물품공급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하였고, 이미 물품대금을 모두 지급하였다. 소외 티비티 물품공급계약에도 이 사건 해제 부분과 같은 하자가 존재하므로 피고는 미사용 물품 부분에 대하여 계약을 해제하고, 해제사유가 되지 않을 경우 이를 취소한다. 따라서 원고 티비티는 소외 티비티 물품공급계약에 따라 피고로부터 지급받은 물품대금 중 해제 내지 취소된 부분에 해당하는 대금 103,148달러, 145,796싱달러를 피고에게 반환할 의무가 있으므로, 피고는 이를 자동채권으로 하여 원고 티비티가 피고에 대하여 가지는 채권과 대등액에서 상계한다.

3) 원고 티비티는 피고에게 이 사건 티비티 물품공급계약과 소외 티비티 물품공급계약에 따라 계약금액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계약이행보증금으로 제공하여야 하고, 피고는 원고 티비티가 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이를 몰수할 수 있다. 따라서 원고 티비티는 이 사건 해제 부분과 소외 티비티 물품공급계약 중 해제된 부분의 물품대금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피고에게 지급할 의무가 있다. 피고는 이를 자동채권으로 하여 원고 티비티의 채권과 대등액에서 상계한다.

4) 트리오 비는 원고들과 마찬가지로 소외 1이 싱가포르에 세운 페이퍼 컴퍼니에 불과하고, 소외 1은 피고와 물품공급계약을 체결하기 위하여 원고들 등의 법인격을 남용하였다. 따라서 피고는 트리오 비에 대한 아래와 같은 채권으로 원고들의 피고에 대한 채권과 상계할 수 있다.

가) 트리오 비는 2009. 7. 28.부터 2010. 7. 23.까지 사이에 허위의 제작자 정보명세서를 제출하는 방법으로 피고와 물품공급계약(이하 ‘소외 트리오 비 물품공급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하였고, 피고는 트리오 비에 모든 물품대금을 지급하였다. 피고는 소외 트리오 비 물품공급계약에 따라 공급받은 물품들 중 사용하지 않은 부분에 관하여 허위의 제작자 정보명세서 제출을 이유로 물품공급계약을 해제하거나 해제사유가 되지 않을 경우 사기를 이유로 이를 취소한다. 따라서 트리오 비는 50,341달러, 8,592유로를 피고에게 반환하여야 한다.

나) 트리오 비는 피고가 물품공급계약을 해제한 부분에 관하여 계약대금의 10%에 해당하는 계약이행보증금을 피고에게 지급할 의무가 있다.

5) 피고는 원고 티비티 및 트리오 비와의 물품공급계약이 해제됨으로 인하여 해당 물품에 대하여 새로운 물품공급계약을 체결하여야 하고, 새로운 물품공급계약의 공급대금과 기존의 공급대금의 차액만큼 추가로 지급해야 하는 손해를 입었으므로, 원고 티비티와 트리오 비는 피고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피고는 원고 티비티 및 트리오 비에 대한 손해배상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하여 원고 티비티의 채권과 대등액에서 상계한다.

6) 원고들 등이 피고와의 관계에서 별개의 법인격을 주장하는 것은 법인격의 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으므로, 피고가 원고 티비티 및 트리오 비에 대하여 가지는 채권 중 상계 이후 남은 채권으로 원고 묵쿰의 채권과 상계한다.

7) 페이퍼 컴퍼니에 불과한 원고들의 물품대금 청구는 원고들의 배후에 있는 소외 1이 물품대금을 청구하는 것과 같고, 이는 소외 1이 저지른 사기 범행의 범죄수익을 청구하는 것이어서 공서양속에 반하므로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3. 이 사건 소의 적법 여부에 관한 직권 판단

직권으로 이 사건 소의 적법 여부에 관하여 본다.

가. 관련 법리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하고 권리를 남용하지 못한다 함은 사법질서를 지배하는 기본적 원칙이다. 이와 같은 신의칙은 비단 계약법의 영역에 한정되지 않고 모든 법률관계를 규제, 지배하는 원리로 파악되며 따라서 신의칙에 반하는 소권의 행사 또한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대법원 1983. 5. 24. 선고 82다카1919 판결 참조).

나. 원고들이 페이퍼 컴퍼니인지 여부에 관한 판단

1) 관련 법리

회사가 외형상으로는 법인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법인의 형태를 빌리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아니하고 실질적으로는 완전히 그 법인격의 배후에 있는 타인의 개인기업에 불과하거나 그것이 배후자에 대한 법률적용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함부로 이용되는 경우에는, 비록 외견상으로는 회사의 행위라 할지라도 회사와 그 배후자가 별개의 인격체임을 내세워 회사에만 그로 인한 법적 효과가 귀속됨을 주장하면서 배후자의 책임을 부정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되는 법인격의 남용으로서 심히 정의와 형평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고, 회사는 물론 그 배후자인 타인에 대하여도 회사의 행위에 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여기서 회사가 그 법인격의 배후에 있는 타인의 개인기업에 불과하다고 보려면, 원칙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법률행위나 사실행위를 한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회사와 배후자 사이에 재산과 업무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혼용되었는지, 주주총회나 이사회를 개최하지 아니하는 등 법률이나 정관에 규정된 의사결정 절차를 밟지 아니하였는지, 회사 자본의 부실 정도, 영업의 규모 및 직원의 수 등에 비추어 볼 때, 회사가 이름뿐이고 실질적으로는 개인 영업에 지나지 아니하는 상태로 될 정도로 형해화되어야 한다. 또한 이와 같이 법인격이 형해화될 정도에 이르지 아니하더라도 회사의 배후에 있는 자가 회사의 법인격을 남용한 경우 회사는 물론 그 배후자인 타인에 대하여도 회사의 행위에 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으나, 이 경우 채무면탈 등의 남용행위를 한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회사의 배후에 있는 자가 회사를 자기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지배적 지위에 있고 그와 같은 지위를 이용하여 법인 제도를 남용하는 행위를 할 것이 요구되며, 이와 같이 배후자가 법인 제도를 남용하였는지는 앞서 본 법인격 형해화의 정도 및 거래 상대방의 인식이나 신뢰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개별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 2008. 9. 11. 선고 2007다90982 판결 , 대법원 2011. 6. 10. 선고 2010다31785 판결 등 참조).

2) 구체적 판단

앞서 든 증거들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모두 고려하여 보면, 원고들은 소외 1이 싱가포르 소재 회사 명의로 방위사업청 군수물품입찰에 참가할 목적으로 싱가포르에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로서 이름뿐인 회사들이고, 실질적으로는 소외 1의 개인 영업에 지나지 않는 상태가 인정될 정도로 법인격이 형해화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가) 소외 1은 원고들 등의 설립 당시 주주 및 이사였고, 그 후 원고들 등의 이사 또는 주주가 소외 2, 소외 3, 소외 4로 변경되기는 하였으나, 소외 2는 소외 3의 아들, 소외 4는 소외 3의 딸로서 이들은 서로 가족인 점, 소외 2, 소외 3, 소외 4는 다수의 싱가포르 회사의 주주 또는 이사로 재직하였거나 재직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소외 2, 소외 3, 소외 4가 원고들의 이사 또는 주주로 실제 활동하면서 원고들의 운영에 관여하였다고는 보기 어렵다. 또한 소외 1은 형사사건에서 원고들 등 설립 당시 실제로 주금이 납입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하였고, 소외 1의 주장에 따르더라도 소외 3, 소외 4는 명의대여자에 불과하다.

나) 원고 묵쿰의 2017. 4. 11. 이전의 주소지는 변호사인 소외 2가 소속되어 있는 싱가포르 법률회사의 주소지와 동일하고, 2017. 4. 12. 이후의 주소지는 제조시설이 들어설 수 없는 오피스텔 건물인 점, 트리오 비의 주소지 역시 오피스텔 건물로서, 소외 2가 소속되어 있는 다른 싱가포르 법률회사의 주소지와 동일한 점 등을 고려하면, 원고들이 제조시설은 물론 회사로서의 물적 시설을 제대로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

다) 소외 1은 원고들의 직인을 모두 보관하고 있었고, 이와 함께 원고들과 피고 사이의 물품공급계약의 체결 및 이행에 관한 각종 서류 내지 파일 등도 정리하여 보관하고 있었다.

라) 소외 1은 원고 묵쿰이 피고에게 납품할 군수물품을 국내에서 주문한 뒤, 이를 싱가포르 물류업체의 주소지로 운송받고, 그 싱가포르 물류업체 직원을 통하여 다시 국내로의 선적 및 수출ㆍ통관 등의 업무를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피고에게 납품하기 위하여 구매된 물품들은 싱가포르 창이공항의 보세구역 내에 위치한 다른 회사의 창고에 반입되었다가 국내로 운송되었고, 원고들이 직접 운영하는 창고는 없다.

마) 소외 1은 동일한 공급계약서인데 계약자의 서명이 있는 것과 없는 것, 소외 1이 소외 2에게 원고 티비티의 주식을 모두 양도하고 이사직에서 물러난 이후 작성된 원고 티비티와 피고 사이의 물품공급계약서를 보관하고 있었다. 그리고 소외 1이 보관하고 있던 입찰보증금 지급보증서 중에는 완성된 지급보증서, 편집 중인 지급보증서, 영어로 된 지급보증서, 한글로 된 지급보증서 등이 포함되어 있고, 특히 소외 3의 서명이 있는 영어 지급보증서의 경우, 그 서명은 소외 3이 직접 한 것이 아니라 소외 3의 서명 이미지를 편집하여 붙여 놓은 것이었다.

바) 소외 1과 소외 2 사이의 문자메시지 608건 중 76건의 문자메시지에서 소외 2가 소외 1을 ‘BOSS’라고 호칭하였고, 피고가 원고들에 대한 싱가포르 현지 실사를 할 무렵 소외 2가 실사 상황을 소외 1에게 보고하였다.

사) 원고들 등이 피고와 물품공급계약을 체결하고 지급받은 대금 중 722,279.8달러, 601,664.8싱달러, 139,626.6유로는 소외 1이 자녀들 학비, 여행경비 등 사적으로 사용하였다. 2008년 이후에는 원고들 등 명의의 싱가포르 해외예금계좌에서 94회에 걸쳐 합계 2,275,638,848.92원(원화로 환산한 금액)이 소외 1과 소외 1의 배우자인 소외 5 명의의 국내은행 외국환계좌로 송금되었고, 소외 1은 원고들 명의의 싱가포르 해외예금계좌의 거래내역과 사용처를 정리하여 보관하고 있었으며, 피고가 지급한 물품대금 중 일부는 소외 1 개인 명의의 싱가포르 은행 해외예금계좌로 입금되기도 하였다.

아) 소외 1은 원고들 등이 공급한 물품들의 하자 보수를 위하여 직접 군부대를 방문하기도 하였고, 소외 1이 원고들 등을 위하여 업무를 수행하였음에도 원고들 등으로부터 비용을 정산받거나 수수료를 지급받지는 않았다.

자) 피고와 물품공급계약을 체결한 당사자가 원고들임에도 물품대금이 트리오 비 명의의 싱가포르 해외예금계좌로 입금된 횟수가 126회에 이르고, 원고 티비티가 피고에게 공급해야 할 물품을 원고 묵쿰이 구매하기도 하였다.

차) 소외 2가 속한 싱가포르 법률회사가 원고 티비티에 청구한 주식 증자 및 주식양도 비용은 원고 묵쿰이 이를 지급하였다.

카) 소외 1의 위와 같은 영업활동이 소외 1 개인의 행위가 아니라 법인인 원고들의 기관으로서 한 행위였다고 보기 어렵다.

다. 페이퍼 컴퍼니인 원고들이 구하는 이 사건 소의 적법 여부에 관한 판단

앞서 든 증거들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모두 고려하여 보면, 이 사건 소는 신의칙에 반하는 소권의 행사로서 부적법하다(설령 나아가 살펴보더라도, 원고들은 소외 1이 명의만 빌린 페이퍼 컴퍼니에 불과하여 원고들이 주장하는 물품공급계약의 당사자라고 볼 수도 없으므로 물품대금청구도 이유 없다).

1) 원고들은 소외 1이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로 법인격이 형해화되어 소외 1과 별개의 법인으로서 실체를 가진다고 볼 수 없다.

2) 원고들의 이 사건 청구는 소외 1이 피고를 상대로 사기 범행을 저지르기 위하여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에 물품대금을 지급할 것을 구하는 것이고, 해당 물품대금이 원고들에게 지급되는 것은 소외 1에게 물품대금이 지급되는 것과 같다.

3) 더구나 원고 티비티가 물품대금의 지급을 구하는 물품공급계약 중 별지 1 ②계약은 소외 1이 처벌받은 범죄사실 중 일부이다(을 제13호증의 1 서울중앙지방법원 2018고합669호 판결 제53면의 순번 50번). 따라서 원고 티비티가 위 계약의 물품대금 청구를 이 사건 소로 구하는 것은 소외 1이 저지른 범죄행위의 수익을 지급받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에 불과하다.

4) 피고가 제작자 정보명세서를 받는 이유는, 해당 물품의 조달경로를 투명하게 하여 품질보증 및 사후관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나아가 피고는 제작자 검사증명서를 받는 방법으로 해당 물품의 품질을 보증받고 있다. 그런데 소외 1이 실제 제작자가 아닌 페이퍼 컴퍼니에 불과한 원고들 명의로 제작자 정보명세서와 제작자 검사증명서를 제출한 결과, 피고로서는 해당 물품에 하자가 발생할 경우, 실제 제작자에게 책임을 추궁하기 어렵게 되었다. 또한 원고들이 법인의 실체를 갖지 못하여, 피고가 원고들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5) 소외 1은 원고들 명의로 제3자로부터 구매한 물품을 취합, 재포장하여 마치 원고들이 제작한 것처럼 피고에게 공급하였을 뿐이고, 해당 물품에 대하여 제작자 수준의 검사를 하지 않아 실제로는 품질이 보증되지 못한 물품이 군부대에 납품되었다. 이로 인한 피고의 손해는 측정하기 어려우며, 특히 전시상황에서 해당 물품의 하자가 드러날 경우 예측하기 어려운 심각한 손해가 현실화될 수 있다.

6) 소외 1이 공급한 물품들에 관하여 각 군에서 물품을 수령할 때 검수를 하였고, 일부는 부착검사도 하였으나, 이는 물품의 수량, 규격이 맞는지, 눈에 띄는 하자는 없는지 등을 확인하는 수준에 불과하였으므로, 소외 1이 공급한 물품들에 하자가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

7) 소외 1은 국내에서 생산되었으나 제작자 검사증명서를 받기 어려운 저가의 물품을 페이퍼 컴퍼니인 원고들 명의로 구매하고, 마치 원고들이 해외에서 생산한 물품인 것처럼 피고를 기망하여 고가에 공급하는 방법으로 이익을 얻어 온 것으로 보인다.

4. 결론

그렇다면 이 사건 소는 부적법하므로 이를 각하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원고들 소송대리인은 2021. 4. 29. ① 피고가 주장하는 해제권은 소멸한 점, ② 피고가 취소권을 행사할 경우 취소된 부분에 대하여 가액배상책임을 부담한다는 점을 주장ㆍ입증하겠다며 준비서면, 서증의 제출과 함께 변론재개를 신청하였으나, 이로 인하여 지금까지 설시한 판단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여겨지지 않으므로( 대법원 2010. 10. 28. 선고 2010다20532 판결 참조), 위 변론재개신청은 받아들이지 않기로 한다].

[별 지 1] 원고 티비티의 계약 내역: 생략

[별 지 2] 원고 묵쿰의 계약 내역: 생략

판사 김형석(재판장) 박상인 김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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