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2017노2360 준강간
피고인
A
항소인
쌍방
검사
김우(기소), 옥선기(공판)
변호인
법무법인 B
담당 변호사 C, E
원심판결
서울남부지방법원 2017. 7. 14. 선고 2016고합621 판결
판결선고
2017. 12. 1.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을 징역 1년 6월에 처한다.
피고인에게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한다.
이유
1. 항소이유의 요지
가. 피고인
1) 사실오인
피해자는 당시 잠에서 깨어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피고인과 합의하고 성관계를 한 것이므로, 피해 사실에 관한 피해자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고, 피해자가 당시 항거불능 상태에 있지 않았다. 또한, 피해자가 피고인과의 성관계에 동의하는 취지로 행동하였으므로 피고인에게 준강간의 고의도 없었다. 그런데도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에는 사실오인의 잘못이 있다.
2) 양형부당
원심이 선고한 형(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등)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
나. 검사
원심이 선고한 형은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
2. 판단
가. 피고인의 사실오인 주장에 관한 판단
1) 원심의 판단
원심은,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이 피해자가 술에 취하여 잠이 들어 항거불능상태에 있음을 알면서 이를 기회로 피해자를 간음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하였다.
① 피해자는 수사기관부터 원심 법정까지 "H과 함께 놀러 간 클럽에서 피고인과 I을 만나 횟집, 주점을 거쳐 피고인의 집까지 계속하여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는데, 자신은 피고인의 집에 도착하여 맥주 한잔 정도 더 마신 후 피고인의 반소매 티셔츠와 반바지를 빌려 갈아입은 다음 바닥에 누워 잠을 잤다. 그런데 잠결에 누군가가 자신의 옷을 잡아당기고 몸을 더듬으며 음부로 성기가 삽입되는 느낌이 들어 잠에서 깨어나게 되었다. 깨어나 보니 자신이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당시 I은 자신의 옆에서 누워 자고 있었고, 피고인은 피해자의 다리가 있는 침대 아래 부근에서 마치 침대 밖으로 도망치듯이 내려가고 있었으며, 자신이 입고 있었던 반바지는 허리 단추가 풀리고 지퍼가 내려간 채 입혀져 있었고, 팬티는 엉덩이 중간 정도에, 브래지어는 가슴 중간 정도에 각각 걸쳐져 있어, 피고인이 자신을 간음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바닥에서 자고 있던 H을 깨워 피고인이 자신에게 나쁜 짓을 했다고 알린 후 피고인에게 '경찰에 신고하고, 산부인과에 가겠다'는 취지의 말을 하였는데, 피고인이 자신에게 성관계 당시 '깨어 있지 않았냐?'는 취지로 말해 '내가 왜 깨어 있었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취지로 항의하면서 서로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라고 진술하고 있는바, 피해 경위 및 내용, 피해 인지 과정 및 피해 당시 상황과 관련된 피해자의 진술은 구체적이고 일관되어 있어 신빙성이 있다.
② 기록에서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정황, 즉 ㉠ 피해자가 피고인의 범행 직후 피고인이 '성행위 당시 깨어 있지 않았냐?'라고 말하며 자신을 꽃뱀으로 몰아세우자 피고인에게 '어떻게 자고 있지 않았다고 확신하느냐?'라는 취지로 불쾌감을 표시하거나 항의하였는바, 피해자의 위와 같은 언행은 술자리에서 자신의 파트너도 아니었던 피고인으로부터 간음을 당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자연스러운 점, ㉡ 피고인은 피해자와 서로 다투는 과정에서 '서로의 의사소통 없이 이런 일이 일어난 건 내가 잘못한 거야.', 'I은 잘못 없고 원래 너랑 잘 되려고 했었는데 내가 백번, 천 번 잘못한 거야.', '또라이짓 했어.'라고 말하였는데, 이는 전체적인 대화 내용에 비추어 볼 때 피해자의 동의 없이 성행위를 한 사실을 시인하고 이를 사과하는 취지인 것으로 보이고, 피해자의 유도로 거짓으로 사과하였다고 보이지 않는 점, ㉢ 이 사건 당시 피고인의 주거지에는 피해자의 친동생인 H이 바닥에서 자고 있었고, I도 피해자 바로 옆에서 자고 있었으므로 피해자로서는 피고인과 합의하여 성관계할 상황이 전혀 아닌 점 등은 피해 사실에 관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뒷받침한다.
③ 또한, 기록에서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 피해자는 이 사건 전날 남자친구와 늦은 시각까지 놀다가 학교를 다녀온 후, 이 사건 당일 새벽부터 오전까지 피고인 등과 클럽, 횟집, 주점, 피고인의 주거지로 옮겨 다니면서 술을 마시는 등 몹시 피곤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이는 점, ㉡ 피해자는 피고인의 집에 도착하여 일행 중 제일 먼저 바닥에 누워 잠을 자기 시작하였고, 피고인의 집은 원룸 구조로 면적 27㎡ 정도에 불과하여 피해자가 잠이 들었던 좌식 테이블 근처 바닥과 침대가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음에도 피고인과 I이 양쪽 팔을 부축하여 피해자를 피고인의 침대로 옮긴 점, ㉢ 그 뒤 피고인이 피해자의 옆에 잠시 누웠을 때 이불이 들썩거리는 것을 지적한 H의 발언에도 피해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아니한 것으로 보이는 점, ㉣ 범행 당일 채취한 피해자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63%로 적지 않은 수치인 점, ㉤ 사건 발생 시각은 정오 무렵으로 피해자가 의식이 있는 상태였다면 피고인을 I으로 오인할 여지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가 이 사건 당시 술에 취하여 잠이 들어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고, 피고인도 이를 인식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2) 이 법원의 판단
원심이 설시한 사정에 원심과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 등을 보태어 살펴보면,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피고인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사실오인의 잘못이 없다. 따라서 피고인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① 피고인과 변호인은, 피해자가 이 사건 직후 H을 깨우면서 '피고인이 체내에 사정하였다.'고 말하였고 이후 피고인과 다투면서 '범행 전 잠에서 깨어 H이 화장실을 간 사이 피고인과 I의 소곤거리는 것을 들었다.'고 말하였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피해자의 진술은 범행 당시 술에 취해 잠들어 피고인의 성행위를 인식하지 못하였다는 취지의 피해자 진술과 모순되므로, 결국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피해자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고 변소한다.
그러나 기록에 의하면, ㉠ 피해자는 이 사건 당시 잠들어 있는 상태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옷을 당기거나 성기를 삽입하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던 도중 잠에서 깨어나 피고인이 침대에서 도망치듯이 내려가는 장면을 목격한 사실(소송기록 96쪽, 증거기록 21, 114쪽), ㉡ 이어 피해자가 침대에서 나와 H을 깨운 뒤 '저 오빠(피고인)가 나쁜 짓을 했다.'라고 말한 뒤 곧바로 피고인에게 '경찰에 신고하고, 산부인과로 가겠다.'라고 말한 사실(소송기록 78, 97쪽, 증거기록 22, 43~44, 118쪽), ㉢ H은 피해자의 옆에 있었던 I도 피고인의 성행위에 가담한 것으로 의심하여 '윤간한 것 아니냐?'라고 말한 사실(소송기록 78, 98쪽, 증거기록 13쪽), ㉣ 피고인은 침대에서 자고 있던 I을 깨워 '피해자와 H은 꽃뱀이니 일단 경찰에 신고하라.'라고 말하였고, I이 자신의 휴대폰으로 112에 전화를 걸어 자신에게 건네주자 '꽃뱀 같은 여자한테 협박을 당하고 있다.'라는 취지로 경찰에 신고하였는데, 피해자는 무슨 상황인지 물어보는 I의 뺨을 때린 사실(소송기록 98, 112~113, 128~129, 191~192쪽, 증거기록 8쪽), ㉤ I은 피해자한테 뺨을 맞은 뒤 피해자에게 '당시 자고 있어 아무것도 알지 못하였다.'라는 취지로 불쾌감을 표시하자, 피해자는 "저 오빠(피고인)가 이상한 짓 할 때 오빠(I)가 막았어야지. 얘(H) 화장실 갔을 때 오빠 둘(피고인과 I)이 얘기하는 거 다 들었어."라고 말한 사실(소송기록 194~195쪽), ㉥ 이에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당시 의식이 있었는데도 (피고인과의 성관계를) 모르는 척 자고 있었던 것 아니냐?'라는 취지로 항의하자 피해자는 "모르는 척하지 않았어. 중간에 일어나서 알았어."라고 대답한 사실(소송기록 195~196쪽) 등을 인정할 수 있다.
위 사실에서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 피해자는 술에 취해 잠을 자던 중 누군가가 자신을 강간하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느끼다가 잠에서 깨어났다고 진술하였는바, 그 뒤 피고인이 도망가는 듯한 모습을 보고 피고인이 자신을 강간하였음을 인식하게 된 과정을 축약하여 '중간에 알았다.'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 점, ㉡ 피고인이 범인임을 인식하기는 하였으나 잠에서 곧바로 깨어나 구체적인 상황을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하였던 피해자로서는 H이 '윤간한 것 아니냐?'라는 취지로 한 발언과 피고인이 I에게 경찰에 신고하라고 말하는 모습을 토대로 이전 술자리에서 자신의 파트너였던 I이 피고인과 함께 자신을 강간한 것으로 오인하여 I에게 '피고인과 서로 이야기하는 것 다 들었다.'라는 취지로 항의한 것으로 보이는 점,1) ㉢ 피해자가 이 사건 직후 H과 피고인에게 한 말에 비추어 보더라도 피고인의 성기가 삽입되었다는 점을 인식하였던 것으로 보일 뿐 피고인이 체내에 사정한 것까지 인식하였다고 볼 만한 사정을 찾아볼 수 없는 점2) 등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가 이 사건 범행 전이나 범행 당시 깨어 있었다는 취지의 피고인과 변호인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② 피고인과 변호인은, 피해자는 자신이 경찰에 신고한 사실을 숨긴 채 사과를 먼저 하면 이 사건은 없던 일로 하겠다는 취지로 피고인을 속여 피고인에게 사과를 받아내고, 이를 피고인 몰래 녹음하여 수사기관에 제출하였으므로, 피고인을 계획적으로 무고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록에 의하면, ㉠ 피고인은 I의 휴대폰으로 경찰에 '꽃뱀이 협박하고 있다.'라는 취지로 신고하면서 자신의 휴대폰으로 피해자, H, I과 다투는 장면을 녹화하기 시작한 사실(소송기록 269쪽 등), ㉡ H은 I을 화장실로 데리고 가 '피해자가 I의 뺨을 때린 것은 잘못했으니, 피해자에게 사과하라고 말하겠다. 하지만 이 상황은 피고인이 잘못하지 않았느냐?'라고 말한 사실(소송기록 90, 114쪽), ㉢ 피해자는 H과 I이 위 화장실에서 나온 뒤 I에게 뺨을 때린 점을 사과한 사실(소송기록 114, 206쪽), ㉣ 이후 피해자와 H은 위 화장실에 함께 들어가 경찰에 성폭행을 당했다는 취지로 신고한 사실(소송기록 103~104쪽, 증거기록 9쪽), ㉤ H은 피해자와 위 화장실에서 나온 뒤 피고인에게 우선 사과를 요구하면서 '좋게 풀자.'라거나 '우리끼리 하지 말자.'라는 취지로 말하였고, 피고인은 경찰 신고를 취소한 사실(소송기록 115쪽, 증거기록 10, 201쪽), ㉥ 피해자가 "이 오빠(I)는 자고 있었다고 확신하면서, 저는 자고 있었는지 안 자고 있었는지 어떻게 알고 오빠(피고인)가 저한테 그렇게 했는데요?"라며 계속 항의하자, 피고인은 피해자가 녹음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한 뒤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라는 취지로 사과하였고, H은 자신의 휴대폰으로 피고인 몰래 위 장면을 녹화한 사실(증거기록 45, 198, 200, 202~203, 208쪽) 등이 인정된다.
앞서 ①에서 인정한 사실과 위 사실에서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 피해자에게서 피해 사실을 들은 H이 '윤간한 것 아니냐?'라고 말하자, 피고인은 피해자와 H이 자신을 협박하는 꽃뱀이라며 경찰에 신고하면서 위 당사자들의 대화 내용을 녹음하기 시작한 점(증거 기록 201, 204쪽), ㉡ H은 이 사건이 형사사건으로 비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피해자와 I이 화해하도록 주선하거나 피고인에게 경찰 신고를 취소하고 대화 내용을 녹음하지 말 것을 요청한 것으로 보일 뿐, 피고인이 먼저 사과하면 이 사건을 덮어두겠다고 제안하였다거나 피고인이 경찰 신고를 취소하도록 유도하였다고 볼 만한 정황을 기록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점, ㉢ 피해자와 H이 피해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피해자가 통상 취할 수 있는 당연한 조치로서 피고인에게 이를 알릴 의무나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없고, 피고인에게 이를 알리지 않았다고 하여 피고인을 기망하였다고도 볼 수 없는 점, ㉣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범행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취지로 계속 항의하였음에도 피고인이 대체로 범행을 부인하는 태도를 내비치자 H이 증거를 확보하기 위하여 피해자와 피고인 사이의 대화 장면을 녹화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경찰에 신고한 뒤 피고인에게 이를 알리지 않은 채 자신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하고, 피해자의 친동생인 H이 자신의 휴대폰으로 피고인 몰래 이러한 모습을 촬영하였다는 것을 두고 피해자와 H이 피고인을 속여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미리 계획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추측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는바, 피고인과 변호인의 위 주장도 받아들이기 어렵다.3)
③ 피고인과 변호인은, 피고인의 주거지에 피해자와 그의 친동생 H이 함께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피해자가 피고인과 합의한 후 성관계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 피해자와 피고인은 다른 일행인 H, I과 함께 이 사건 당일 처음 만난 사이였고, 술자리에서는 피고인과 H, 피고인의 친구 I과 피해자가 파트너여서 피고인과 피해자는 서로의 파트너도 아니었던 점, ㉡ 피해자가 술자리에서 자신의 파트너인 I과 일부 신체적 접촉을 하였다거나 함께 피고인의 주거지에 가 술자리를 가졌다는 사정만으로 피고인과의 성관계를 암묵적으로 동의하였다고 보는 것은 남성 위주의 일방적인 사고로서 일반인의 상식과 경험칙에 부합하지 않는 점, ㉢ 피해자는 이 사건 직후 줄곧 피고인에게 피해 사실을 항의하며 억울함을 호소하였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과 변호인의 위 주장 역시 받아들이기 어렵다.
나) 피고인의 사과 내용
피고인과 변호인은, 피고인은 이 사건 직후 피해자를 꽃뱀이라고 표현하며 경찰에 신고한 점을 피해자에게 사과하였고, 그 대화 내용을 보더라도 피고인이 피해자의 동의 없이 성행위를 한 점을 사과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 앞서 본 것과 같이 피해자는 '자신이 자고 있었는지 어떻게 확신하고 성행위를 했느냐?'라는 취지로 일관되게 항의하면서 피고인의 범행에 불쾌감을 표시한 점, ㉡ 이에 피고인은 피해자가 당시 의식이 있었다는 취지로 반박하기도 하였으나, 대체로 "내가 그거 100% 너한테 미안해. 잘못했어. 한 것도 사실 난 인정할 수 있어.", "어쨌든 행위를 한 거는 내 잘못이고, 행위를 한 것도 진짜 내가 진심으로 진짜 사과할게. 진짜 미안해.", 내가 백 번, 천 번 잘못한 거야. 또라이짓 했어."라고 말한 점(증거기록 198, 206, 208~209쪽), ㉢ 피고인의 위와 같은 답변에 H은 "그렇게 사과했으면 끝날 일인데, 크게 만들었잖아요."라고 말하였고, 피해자도 이에 동조한 점(증거기록 207쪽)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은 피해자가 자신이 자고 있어 성관계를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일방적으로 성행위를 한 이유나 경위에 관하여 설명하라고 계속 요구하자 이에 대한 답변으로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한 사실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고, 이와 다른 취지의 피고인과 변호인의 위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다) 피해자가 이 사건 당시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는지 여부
피고인과 변호인은, 피해자가 잠들어 침대로 옮겨진 후에도 피고인과 I의 대화를 듣는 등 잠에서 깨었다고 보이는 점, 피해자는 침대에서 피고인의 허벅지를 쓰다듬기도 한 점, 피해자가 피고인을 I으로 오인하여 성관계하였을 가능성이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의 이 사건 직후 혈중알코올농도나 전날의 행적 등을 근거로 피해자가 이 사건 당시 피고인의 성행위를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잠들어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 피해자는 피고인의 주거지에서 일행 중 가장 먼저 잠을 자기 시작하였고, 피해자가 잠이 들었던 좌식 테이블 근처 바닥과 침대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는데도 피고인과 I이 피해자의 양쪽 팔을 부축하여 피해자를 침대로 옮긴 점(소송기록 77, 110~111, 121~123, 188쪽), ㉡ 이후 피고인이 이미 잠든 피해자의 옆에 누워 함께 이불을 덮었는데, 이불이 들썩거리자 H이 "저 오빠 뭐해?"라고 말하였는데도 피해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바(소송기록 85, 111, 124쪽, 증거기록 115쪽), 피해자가 의식적으로 피고인의 허벅지를 쓰다듬었다고 볼 만한 정황을 기록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점, ㉢ 앞서 본 것과 같이 피해자는 잠에서 깨어난 뒤 피고인과 I이 서로 대화하는 모습을 목격하였을 뿐 피해자가 잠이 든 사이 위 대화를 들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는 이 사건 당시 술에 취하여 잠들어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고 보이는바, 이와 다른 취지의 피고인과 변호인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라) 준강간의 고의 여부
피고인과 변호인은, 피해자가 성관계에 동의하는 것처럼 보이는 행위를 하였다면 피고인으로서는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는 점을 인식하였다고 볼 수 없으므로 준강간의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 피고인은 피해자가 일행 중 가장 먼저 잠든 것을 알고 있었고, 피해자를 침대로 옮기면서 부축까지 하였던 점, ㉡ 또한, 피고인은 침대에서 자는 피해자 옆에 가 함께 이불을 덮고 눕기도 하는 등 피해자가 잠든 상태를 직접 확인하기도 한 점, ㉢ 피고인은 침대 아래쪽 바닥에서 자고 있던 H과 함께 자려 하였으나 H이 자신을 밀어내자 침대 앞에 있는 책상 의자에 앉아 있었고, 나머지 일행들이 모두 잠들어 있음을 알고 있었던 점(소송기록 267~268쪽, 증거기록 88, 209~210쪽), ㉣ 피해자와 H이 I도 피고인의 범행에 가담하였다고 의심하자 피고인은 'I은 확실히 자고 있었다.'라고 일관되게 말하였는바, 피해자 옆에 있던 I이 깊이 잠들어 있어 범행 실행에 장애가 되지 않으리라고 예측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점(증거기록 202, 210쪽 등)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은 이 사건 당시 피해자가 술에 취해 자고 있어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나아가 피고인에게 이를 이용하여 피해자를 간음하려는 고의가 있었다고 보이고, 설령 피해자가 잠든 도중에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내는 등 행동을 하였다고 하더라도4) 이를 두고 피고인이 피해자가 당시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음을 알지 못하였다고 추단하기도 어려운바, 피고인과 변호인의 위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
나. 피고인과 검사의 각 양형부당 주장에 관한 판단
피고인은 형사처벌의 전력이 없는 초범인 점, 계획적으로 이 사건 범행을 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아 그 동기에서 다소나마 참작할 여지가 있는 점, 피고인이 수사단계에서 나름 피해 회복을 위하여 노력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은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이다.
그러나 이 사건 범행은 피고인이 피해자가 자신의 집에서 술에 취하여 잠들어 항거불능 상태에 있는 점을 이용하여 범행 당일 클럽에서 처음 만난 피해자를 간음한 것으로 죄질이 불량한 점, 당시 피고인의 주거지에는 피고인 외에도 I과 피해자의 친동생인 H이 자고 있었고, 특히 피고인의 친구 I은 피해자 바로 옆에서 자던 상황임을 감안할 때 피해자가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하여 받은 정신적 고통이나 성적 수치심이 상당할 것으로 보이는 점, 피해자가 비록 이 사건 범행이 일어나기 전에 피고인 등과 1, 2, 3차의 술자리를 함께하고, 이어 피고인의 집에 따라갔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이 피해자와 성관계를 하기 전에 피해자의 동의 없이 성관계한 후 피해자의 동의가 있었거나 동의가 추단되는 상황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무시하는 남성 위주의 편향적 사고로서 그러한 발상에 경종을 울려 성범죄를 예방할 필요성이 있는 점, 피고인은 피해자와 합의에 이르지 아니하였고, 피해자는 이 법정에서 피고인의 처벌을 원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표시한 점, 피고인은 이 법원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는 태도로 일관하는 등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점 등은 피고인에게 불리한 정상이다.5)
그 밖에 피고인의 나이, 성행, 환경,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의 동기나 경위, 범행 후의 정황 등 양형의 조건이 되는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원심이 선고한 형은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고 인정된다.
따라서 피고인의 위 주장은 이유 없고, 검사의 위 주장은 이유 있다.
3. 결론
그렇다면 검사의 항소는 이유 있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6항에 따라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변론을 거쳐 다시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다시 쓰는 판결 이유]
범죄사실 및 증거의 요지
이 법원이 인정하는 범죄사실과 그에 대한 증거의 요지는 원심판결 이유의 각 해당란 기재와 같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9조에 의하여 이를 그대로 인용한다.
법령의 적용
1. 범죄사실에 대한 해당법조
1. 작량감경
형법 제53조, 제55조 제1항 제3호(위에서 살펴본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 등 참작)
1. 이수명령
1. 공개 및 고지명령의 면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47조 제1항, 제49조 제1항, 아동 ·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49조 제1항 단서, 제50조 제1항 단서(피고인에게 아무런 범죄전력이 없는 점, 형의 집행, 신상정보 등록 및 성폭력 치료프로그램의 이수만으로도 어느 정도 피고인의 재범을 방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보이는 점, 그 밖에 피고인의 나이, 직업, 가정환경 및 사회적 유대관계, 이 사건 범행의 내용, 경위 및 결과, 공개 · 고지명령으로 인하여 달성할 수 있는 등록대상 성폭력범죄의 예방 및 피해자 보호 효과와 공개 · 고지명령으로 인하여 피고인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와 예상되는 부작용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보면, 피고인의 신상정보를 공개 · 고지하여서는 아니 될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판단된다)
양형의 이유
1. 법률상 처단형의 범위: 징역 1년 6월~15년
2. 양형기준의 적용
[유형의 결정] 성범죄 > 일반적 기준 > 강간죄(13세 이상 대상) > 제1유형(일반강간)
[특별양형인자] 없음
[권고영역 및 권고형의 범위] 기본영역, 징역 2년 6월~5년
3. 선고형의 결정
앞서 양형부당 주장에 관한 판단에서 살펴본 것과 같은 여러 정상과 공판 과정에 나타난 여러 양형 조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권고형의 하한의 범위를 다소 벗어나 주문과 같이 형을 정한다.
신상정보 등록 및 제출의무
피고인은 판시 범죄사실에 대하여 유죄판결이 확정되는 경우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42조 제1항의 신상정보 등록대상자가 되므로, 같은 법 제43조에 따라 관할기관에 신상정보를 제출할 의무가 있다.
판사
재판장 판사 이영진
판사 홍성욱
판사 김동완
주석
1) 피해자는 이 법정에서 "이 사건 직후 피고인과 다투면서, 잠을 자고 있던 도중 이상한 느낌이 들어 잠에서 깨어나려고 노력하였다는 의미로 '중간에 일어나서 알았다.'라고 말하였다. 또한, 피고인에게 강간을 당한 뒤 피고인이 I과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H이 화장실을 간 사이 피고인과 I이 소곤대는 것을 들었다.'라고 말하였다."라는 취지로 진술하기도 하였다(당심 증인 F에 대한 증인신문 녹취서 2쪽).
한편 피해자는 이 법정에서 "피고인에게 범행을 당한 뒤 놀라서 일어났는데, 피고인이 I을 데리고 베란다로 가서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한 것 같았다."라고 진술하였다가 "베란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피고인과 I 둘이서 속닥속닥 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당시 현관 주변에 있었다."라고 진술하였다(당심 증인 F에 대한 증인신문 녹취서 2, 10, 15쪽). 그런데 피해자는 이 사건 직후 바닥에서 자고 있던 H을 깨워 피고인이 강간하였다는 사실을 알렸고, H은 당시 피해자 옆에서 자고 있던 I도 피고인의 범행에 가담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며 '윤간한 것 아니냐?'라고 말한 사실과 피고인은 자고 있던 I을 깨워 '꽃뱀이니 경찰에 신고하여야 한다.'라는 취지로 말한 사실은 앞서 본 것과 같고, 기록에서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원룸 구조인 피고인의 주거지는 면적 29㎡(길이 가로 418cm, 세로 860cm)로서, 침대는 발코니에 매우 근접하여 위치하여 있고, 침대와 현관 사이의 거리는 약 5m 정도에 불과한 점(소송기록 188쪽)을 보태어 살펴보면, 이 사건 직후 자신이 강간을 당하여 당혹감을 느꼈던 피해자로서는 피고인이 침대에서 자고 있던 I을 깨워 서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피고인과 I이 침대 바로 옆에 있는 발코니에서 대화하는 것으로 인식하였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보이고, 피고인과 I이 대화한 장소에 관한 피해자의 기억이 다소 불분명하다는 사정만으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볼 수 없다.
2) 피해자는 이 사건 직후 H에게 '피고인이 나쁜 짓을 했다.'라고 말하였는바, 피고인의 성기가 삽입되었다는 사실을 전한 취지로 보인다.
3) 또한, 피해자는 수사단계에서 피고인에게 8,000만 원이라는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한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이는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며 진정으로 사과하지 않는 피고인의 태도를 보고 이행이 어려워 보이는 금액을 제시한 것으로 보이고, 실제로 이 법원에서의 진술에 이르기까지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고 있어, 달리 피해 사실을 허위로 꾸며내거나 과장되게 진술하여 피고인을 무고할 동기가 있었다고 볼 만한 사정도 찾아볼 수 없다.
4) 성교 직후 잠에서 깨어난 피해자는 바닥에 누워 자고 있던 H을 깨워 피고인으로부터 강간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렸고, 피고인에게 욕을 하면서 '경찰에 신고하고, 산부인과에도 가겠다.'라는 취지의 말을 한 점, 이어 H이 피고인과 I이 함께 피해자를 윤간한 거 아니냐며 의심을 하자 피해자가 I의 뺨을 때린 점, 피해자는 I에게 '피고인이 이상한 짓 할 때 막았어야지.'라며 원망스러움을 표시하기도 하였고, 피고인에게 한 침대에서 자신의 옆에 I이 자고 피해자의 여동생도 한 방에 있는 상황에서 간음을 당한 사실에 대해 더욱 불쾌함을 표현하기도 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가 잠결에 피고인의 간음 행위에 동의하였다고 보기도 어렵다.
5) 피고인과 변호인은 피해자가 평소 성적으로 개방적이거나 문란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기도 하나, 설령 피해자에게 그러한 면이 없지 않다고 하더라도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여하한 상황에서도 존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