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처가 어음의 최종 배서인인 남편으로부터 그 어음을 생활비조로 교부받은 경우, 어음채무자가 남편에 대한 인적 항변으로 처에게 대항할 수 있는지 여부(적극)
판결요지
어음법상 인적 항변 절단의 원칙은 어음의 자유로운 유통을 보장하는 데 그 근본취지가 있으므로 어음의 자유로운 유통이 침해되지 않는 경우에도 무조건 그 원칙을 적용해서 어음채무자의 희생을 요구해서는 안되므로, 처가 어음의 최종 배서인인 남편으로부터 그 어음을 생활비조로 교부받은 경우에는 비록 처가 소구의무자인 전전배서인을 해할 것을 알고 그 어음을 교부받은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 전전배서인은 남편에 대한 인적 항변으로 처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신의칙상 합당하다.
원고, 항소인
원고(소송대리인 변호사 정대권)
피고, 피항소인
피고
원심판결
제주지법 1996. 6. 12. 선고 95가단16423 판결
대법원판결
대법원 1997. 11. 12. 선고 97다36477 판결
주문
원고의 항소를 기각한다.
항소비용은 원고의 부담으로 한다.
청구 및 항소취지
원심판결을 취소한다. 피고는 원고에게 30,000,000원 및 이에 대한 1995. 8. 22.부터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일까지는 연 6푼, 그 다음날부터 다 갚을 때까지는 연 2할 5푼의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이유
갑 제1호증의 1, 2(약속어음 표면 및 이면)의 각 기재에 의하면 소외 1( 소외 2 주식회사의 대표이사이다.)은 1995. 5. 25. 액면 30,000,000원, 발행지 및 지급지 제주시, 지급장소 중소기업은행 제주지점, 지급기일 1995. 8. 22.로 된 약속어음 1장(이하 이 사건 어음이라고 한다.)을 소외 2 주식회사를 수취인으로 하여 발행하였고, 이 어음은 위 소외 2 주식회사를 시작으로 하여 피고, 소외 2 주식회사, 소외 3 주식회사의 순으로 각 지급거절증서 작성이 면제된 채 배서되어 최종적으로 원고가 이를 소지하게 되었고 원고는 이 어음을 지급기일에 지급제시하였으나 지급거절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반증이 없다. 따라서 배서인인 피고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고의 소구권에 기한 이 사건 어음금 청구에 응할 의무가 있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악의의 항변을 하므로 살피건대, 을 제2호증의 1 내지 6(각 영수증), 을 제3호증(입금표), 을 제4호증의 1, 2(약속어음 표면 및 이면), 을 제6호증(민간건설공사 표준도급계약서)의 각 기재, 원심 증인 소외 4, 당심 증인 소외 5의 각 증언 및 당심 증인 소외 6의 일부 증언(뒤에서 믿지 않는 부분 제외)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피고는 북제주군 한림읍 한림리 (지번 생략)에 목욕탕을 신축하여 영업할 생각으로 1994. 5. 26.경 소외 7 주식회사에 위 목욕탕 신축 공사를 맡겼으나 이 회사가 1995. 3.경 부도가 나는 바람에 공사가 중단됨으로써 남은 공사를 소외 2 주식회사에 맡겼고, 이 회사는 다시 위 공사 중 설비 부문의 공사를 이 사건 어음의 최종 배서인인 소외 3 주식회사에 맡겼는데 이 소외 3 주식회사가 설비 부문 공사를 계속 지연함으로써 피고는 하는 수 없이 1995. 9. 7.부터 1996. 2. 2.에 걸쳐 이 회사가 지급해야 할 설비 공사 인부들의 노임 및 그 공사에 사용되는 자재비 등을 대신 지불하며 이 부문 공사를 마쳤고, 이와 같이 피고가 위 회사를 위하여 대위 변제한 금액은 28,100,000원에 달하는 사실, 한편 위 소외 3 주식회사는 1995. 10. 13. 액면금 20,000,000원, 지급기일 1996. 4. 26.로 된 약속어음 1장(을 제4호증)을 발행하였고 피고는 그 어음의 최종 소지인으로서 위 회사에 대하여 위 어음금 상당액의 채권을 갖고 있는 사실, 원고는 위 소외 3 주식회사의 대표이사인 소외 6의 처로서 회사의 경리일도 보았는데 이 사건 어음은 1995. 8.경 남편으로부터 생활비조로 받은 어음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이에 반하는 갑 제2호증의 1(이사회 차입 결의서), 2(차용증서), 갑 제3호증(영수증), 갑 제6호증(채권양도 통지서)의 각 기재와 위 소외 6의 일부 증언은 믿지 아니하며 달리 반증이 없다(피고는 더 나아가 위 소외 3 주식회사가 시공한 설비부문 공사에 하자가 발생하여 8,724,815원 상당의 하자보수비용이 들어가게 되었다며 이 금원 역시 피고의 위 회사에 대한 채권액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나, 가사 피고 주장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위 회사는 위 소외 2 주식회사의 하청업자에 불과하고 피고와 이 사건 목욕탕 공사에 대하여 직접 계약을 체결한 당사자가 아니어서 그러한 지위에 있는 위 회사에 피고 주장과 같은 계약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것이므로 피고의 이 부분 주장은 더 나아가 살펴 볼 필요 없이 이유 없다).
한편 피고가 위 소외 3 주식회사에 대하여 갖고 있는 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하여 원고의 피고에 대한 이 사건 어음금 채권과 대등액에서 상계한다는 취지의 의사표시가 담겨 있는 피고의 1996. 4. 20.자 준비서면을 같은 해 5. 8. 원고가 수령한 사실과 피고가 소외 3 주식회사 발행의 위 액면 금 20,000,000원짜리 약속어음을 원심 제2차 변론 기일에 서증으로 법정에서 제시한 사실은 기록상 분명하다.
그렇다면 과연 피고가 위 소외 3 주식회사에 대한 위와 같은 항변을 가지고 그 후자인 원고에 대항할 수 있는가를 살피건대, 위에서 인정한 사실에 의하면 원고가 이 사건 어음을 취득한 시점은 1995. 8.경이고 그 때는 아직 피고의 소외 3 주식회사에 대한 채권이 발생하지 않았던 때이므로 원고가 회사 경리일을 보았다 하더라도 피고를 해할 것을 알고 이 사건 어음을 취득했다고는 볼 수 없다. 따라서 원고는 어음법 제17조 단서의 악의의 취득자에는 해당하지 아니한다. 또한 원고의 남편인 위 소외 6이 회사에 대한 피고의 인적 항변을 피하면서 이 사건 어음금을 추심하기 위하여 원고에게 배서를 해준 것으로도 볼 만한 증거는 없다. 그러나 어음법상 인적 항변의 절단 원칙은 어음의 자유로운 유통을 보장하는 데 그 근본 취지가 있으므로 어음의 자유로운 유통이 침해되지 않는 경우에도 무조건 그 원칙을 적용해서 어음채무자의 희생을 요구해서는 안될 것이다. 앞서 보았듯이 원고가 이 사건 어음을 남편으로부터 생활비조로 교부받은 것에 불과하다면, 이는 위 원칙에 의하여 보호할 만한 어음의 유통이 있었다고 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 사건의 경우 피고는 소외 3 주식회사에 대한 인적 항변으로 원고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신의칙상 합당하다.
한편 원고는, 소외 2 주식회사와 소외 3 주식회사는 공사비 총 165,000,000원에 하도급계약을 체결하였는데 피고는 소외 2 주식회사의 소외 3 주식회사에 대한 위 공사비 대금에 대하여 지불보증을 하였고, 위 소외 2 주식회사는 아직 소외 3 주식회사에 25,000,000원의 공사비를 미지급하고 있으므로, 가사 피고가 원고에 대하여 소외 3 주식회사에 대한 채권을 가지고 위와 같이 대항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위 금원 상당액은 상계 처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원고가 소외 2 주식회사의 공사비 대금 채무를 보증하였다는 주장에 부합하는 증거로서는 갑 제5호증(지불보증서)은 피고가 이 사건 어음 배서인으로서 그 어음 부도에 따른 배서인의 책임을 지겠다는 취지의 문서에 불과할 뿐이어서 원고 주장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그 밖에 위에서 믿지 아니한 위 소외 6의 일부 증언 외에는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이를 전제로 하는 원고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
그렇다면 결국 원고의 이 사건 어음금 채권을 피고의 소외 3 주식회사에 대한 48,100,000원의 채권으로 대등액에서 상계하면 원고가 지급받을 약속어음금은 전혀 남지 않게 되므로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여야 할 것인바, 원심판결은 이와 결론을 같이하여 정당하므로 원고의 항소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