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1]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피해자 등의 진실규명신청에 따라 진실규명신청 대상자를 희생자로 확인 또는 추정하는 진실규명결정을 하고 피해자 등이 그 결정에 기초하여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를 한 경우, 국가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허용되는지 여부(소극) 및 이때 ‘상당한 기간’의 범위
[2] 불법행위로 입은 비재산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액수 산정에서 사실심법원이 갖는 재량의 한계 및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의 진실규명결정을 거친 한국전쟁 전후 희생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위자료 액수를 산정할 때 고려하여야 할 사항
참조조문
[1] 민법 제2조 , 제750조 , 제766조 제1항 ,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 제8조 , 구 회계법(1951. 9. 24. 법률 제217호 재정법 제82조로 폐지) 제32조 (현행 국가재정법 제96조 참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제19조 제1항 , 제22조 제1항 , 제3항 , 제26조 [2] 민법 제393조 , 제751조 , 제763조
참조판례
[1][2] 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공2013하, 1077)
원고, 피상고인
별지 원고명단 기재와 같다.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서석 담당변호사 고운오)
피고, 상고인
대한민국
주문
원심판결의 피고 패소 부분 중 원고 4, 5, 6, 12, 13, 14, 15, 16, 17에 대하여 망 소외 1의 고유 위자료의 지급을 명한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광주고등법원에 환송한다. 나머지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원고 4, 5, 6, 12, 13, 14, 15, 16, 17을 제외한 나머지 원고들에 대한 상고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소멸시효 항변의 권리남용에 관한 법리오해의 점에 관하여
가. 소멸시효를 이유로 한 항변권의 행사도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으므로,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 후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이를 신뢰하게 하였고, 채무자가 권리자의 권리행사를 기대할 수 있는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자가 그의 권리를 행사하였다면,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 대법원 2011. 9. 8. 선고 2009다66969 판결 등 참조). 이때 권리를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하였는지 여부는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관계, 신뢰를 부여하게 된 채무자의 행위 등의 내용과 동기 및 경위, 채무자가 그 행위 등에 의하여 달성하려고 한 목적과 진정한 의도, 채권자의 권리행사가 지연될 수밖에 없었던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할 것이다.
나. 국가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하 ‘과거사정리법’이라 한다)의 제정을 통하여 수십 년 전의 역사적 사실관계를 다시 규명하고 피해자 및 유족에 대한 피해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선언하면서도 그 실행방법에 관하여는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아니한 이상, 이는 그 피해자 등이 국가배상청구의 방법으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사법적 구제방법을 취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수용하겠다는 취지를 담아 선언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고, 거기에서 파생된 법적 의미에는 구체적인 소송사건에서 새삼 소멸시효를 주장함으로써 배상을 거부하지는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취지가 내포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국가가 과거사정리법의 적용 대상인 피해자의 진실규명신청을 받아 같은 법에 의하여 설치된 피고 산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정리위원회’라 한다)에서 희생자로 확인 또는 추정하는 진실규명결정을 하였다면, 그 결정에 기초하여 피해자나 그 유족이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할 경우에 피고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들어 권리소멸을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신뢰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봄이 상당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피해자 등에 대하여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한다면 이는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될 수 없다 ( 위 대법원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다만 위와 같이 신의성실의 원칙을 들어 시효 완성의 효력을 부정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의 달성, 입증곤란의 구제, 권리행사의 태만에 대한 제재를 그 이념으로 삼고 있는 소멸시효 제도에 대한 예외를 극히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므로, 위 권리행사의 ‘상당한 기간’은 아무리 길어도 민법 제766조 제1항 이 규정한 단기소멸시효기간인 3년을 넘을 수 없다고 할 것이다 ( 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다. 원심판결 이유를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① 과거사정리법이 시행된 후 망 소외 2(이하 ‘망인’이라 한다)에 대하여 진실규명신청이 있었고 피고 산하 정리위원회가 2009. 8. 18. 망인을 광산 보도연맹 사건의 희생자로 확인하는 진실규명결정을 내린 사실, ② 위 진실규명결정 후 과거사정리법의 규정과 정리위원회의 건의 등에 따라 피고가 입법을 통하여 망인의 명예회복과 피해보상 등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하리라고 원고들이 기대할 만한 사정이 있었음에도 피고가 아무런 적극적 조치를 하지 아니하자,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일부터 약 2년 6개월이 지난 2012. 3. 14. 원고들이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한 사실, ③ 그런데 원고 4, 5, 6, 12, 13, 14, 15, 16, 17(이하 ‘원고 4 등’이라 한다)은 이 사건 소장에서는 망인의 아들인 망 소외 1의 고유 위자료를 청구하지 않다가, 이 사건 진실규명일로부터 3년이 지난 2012. 10. 30. 청구취지 및 청구원인을 변경하면서 비로소 위 위자료도 청구에 포함시킨 사실, ④ 이에 원심은 피고에 대하여 원고 4 등에게 망 소외 1의 고유 위자료까지 지급하라고 명한 사실 등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관계를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망인의 유족인 원고들의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는 망 소외 1의 고유 위자료에 관한 원고 4 등의 청구 부분을 제외하고는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일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를 한 것으로 보이고, 따라서 이에 대한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반면에 망 소외 1의 고유 위자료에 관한 청구 부분은 원고 4 등이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일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를 한 것으로 볼 수 없으므로, 이에 대한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하지 아니하고 정당하다.
라. 따라서 원고 4 등의 청구 중 망 소외 1의 고유 위자료를 제외한 나머지 손해배상청구와 나머지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에 관하여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한 원심의 판단은 결론에 있어 정당하고, 거기에 소멸시효 항변의 권리남용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으나, 망 소외 1의 고유 위자료에 관한 원고 4 등의 청구에 대하여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한 원심의 판단은 소멸시효 항변의 권리남용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여 판단을 그르친 것이다.
2. 위자료 산정에 관한 법리오해의 점에 관하여
불법행위로 입은 비재산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액수에 관하여는 사실심법원이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그 직권에 속하는 재량에 의하여 이를 확정할 수 있으나, 그것이 위자료의 산정에 법관의 자의가 허용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위자료의 산정에도 그 시대와 일반적인 법감정에 부합할 수 있도록 액수를 정하여야 한다는 한계가 당연히 존재하고, 그 한계를 넘어 손해의 공평한 분담이라는 이념과 형평의 원칙에 현저히 반하는 위자료를 산정하는 것은 사실심법원이 갖는 재량의 한계를 일탈한 것이 된다.
과거사정리법에 의한 진실규명결정을 거친 한국전쟁 전후 희생사건은 그 피해가 발생한 때로부터 무려 약 60년이 경과하였고, 과거사정리법도 그 피해의 일률적인 회복을 지향하고 있으며, 피해자의 숫자도 매우 많을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등 특수한 사정이 있다. 따라서 그에 대한 위자료의 액수를 정함에 있어서는 피해자들 상호 간의 형평도 중요하게 고려하여야 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희생자 유족의 숫자 등에 따른 적절한 조정도 필요하다 ( 위 대법원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이러한 법리에 비추어 볼 때 원심이 이미 유사한 다수의 사건들이 확정된 바 있는데도 이 사건에서 위자료 액수를 달리할 만한 다른 사정에 관하여 밝히지 않은 채 상당한 정도로 증액된 기준을 적용하여 위자료를 인정한 것은 다소 적절하지 않은 면이 있으나, 원심판결 이유를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이 인정한 위자료 액수가 형평의 원칙에 현저히 반한다고 볼 정도는 아니므로, 거기에 위자료 산정에 관한 사실심법원의 재량의 한계를 일탈한 잘못이 있다고 할 수 없다.
3. 결론
그러므로 원심판결의 피고 패소 부분 중 원고 4 등에 대하여 망 소외 1의 고유 위자료의 지급을 명한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며, 나머지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나머지 원고들에 대한 상고비용은 패소자가 부담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별 지] 원고 명단: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