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2013두7230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취소
원고,상고인
피고,피상고인
근로복지공단
원심판결
서울고등법원 2013. 3. 29. 선고 2012누31146 판결
판결선고
2015. 1. 15 .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
1.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1항에서 말하는 ' 업무상의 재해 ' 란 업무수행 중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근로자의 부상 · 질병 · 신체장애 또는 사망을 뜻하는 것이므로 업무와 재해발생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 인과관계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증명하여야 하지만, 반드시 의학적 ·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며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근로자가 자살행위로 인하여 사망한 경우에, 업무로 인하여 질병이 발생하거나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가 그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에 겹쳐서 질병이 유발 또는 악화되고, 그러한 질병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결여되거나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서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추단할 수 있는 때에는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자살자의 질병 내지 후유증상의 정도, 그 질병의 일반적 증상, 요양기간, 회복가능성 유무, 연령, 신체적 · 심리적 상황, 자살자를 에워싸고 있는 주위상황, 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 대법원 1993. 12. 14. 선고 93누9392 판결, 대법원 2011. 6. 9. 선고 2011두3944 판결 등 참조 ) .
2. 원심판결 이유와 원심이 인용한 제1심판결 이유 및 적법하게 채택된 증기들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
가. 원고의 남편인 B ( 이하 ' 망인 ' 이라고 한다 ) 는 2008. 2. 1. C 주식회사 ( 2008. 5. 26 .
주식회사 D로, 2012. 1. 5. 주식회사 E로 상호가 변경되었다. 이하 ' 소외 회사 ' 라고 한다 ) 에 입사하여 기술연구소장 겸 공장장으로 근무하면서 휴대전화기 등에 사용되는 플라스틱용 도료 개발, 제품생산 등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
망인은 평일 근무시간이 08 : 00부터 17 : 00까지이었으나 보통 20 : 00경까지 근무하였고 , 한 달에 3일 정도는 휴일에도 근무를 하였다 .
나. 망인이 입사한 지 3개월 정도 지나 소외 회사의 경영권이 주식회사 F에게 인수되었다. 그에 따라 주식회사 F 측의 사람들이 소외 회사의 대표이사와 관리자 등으로 배치되었는데, 인수 이후 망인이 사망할 무렵까지 기술연구소 소속 기존 직원들의 80 % 정도가 경쟁회사로 이직하는 등으로 퇴사하였다 .
망인은 기존 직원들이 퇴사함에 따라 기술개발업무의 추진에 애로를 겪게 되었는데 , 그럼에도 대표이사와 영업팀 · 디자인팀의 직원들은 망인에게 기술연구소의 제품개발이 지연되고 기술수준이 낮기 때문에 매출이 부진하게 되었다고 질책하며 소외 회사의 매출부진 책임을 기술연구소 측에 전가하였다 .
또한 2011. 1. 부터는 매주 팀장회의가 상설화되었는데, 대표이사의 매출증대 요구가 더욱 빈번해졌고, 대표이사는 망인이 이끄는 기술연구소가 그 업무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고, 실력이 떨어져 제품을 판매할 수가 없다는 등으로 공개적으로 기술연구소 측을 질타하기도 하였다 .
이에 대하여 망인은 기술연구소 소속 직원들에게 대표이사나 영업팀 · 디자인팀이 기술연구소의 인력 등에 비추어 기술연구소가 소화할 수 없는 요구를 하고 있다고 하면서 수차례에 걸쳐 애로를 토로하였다 .
다. 망인이 자살하기 전 3개월 내지 6개월 동안 망인이 맡고 있는 기술연구소에 엘지전자 관련 업무 · 삼성전자 실사, 중국 현지공장 지원 등의 업무가 동시에 겹침에 따라 망인은 인력 부족으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
그러던 중 소외 회사의 중국 현지법인 책임자이었던 G이 2011. 1. 31. 권고사직을 당하자, 망인은 " 다음에는 내 차례다. " 라고 하면서 불안해하며 직장동료 H에게 불안하여 잠을 잘 못자고 심장이 뛰며 자살하는 꿈을 꾼다고 말하는 한편, 2011. 2. 28. 에는 사직서를 제출해야겠다고 말하였다 .
라. 망인은 2011. 2. 28. 기술연구소 소속 직원들에게 업무가 많으니 휴일인 다음날 근무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직원들이 쉬고 싶다고 하자 실망하였다. 망인은 2011. 3. 1 . 아침 출근하였는데, 다음날 08 : 20경 공장 안에서 대표이사, 기술연구소 소속 직원들 , 가족 앞으로 각각 유서를 남기고 목을 매어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
유서 중 대표이사에게 남긴 내용은, G이 권고사직을 당한 것을 계기로 소외 회사와 함께 할 수 있다는 망인의 믿음이 허상임을 깨닫게 되었고, 인적 · 물적 지원 없이 무리하게 제품개발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며, 기술연구소 소속 직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영업팀이나 디자인팀의 이야기만 들어 기술연구소 측에 영업부진의 책임을 전가하지 말라는 것이다 .
그리고 기술연구소 직원들에게 남긴 유서의 내용은, 기술연구소장으로서 대표이사와 영업팀 · 디자인팀이 부당하게 기술연구소 측에게 책임을 전가한 것을 막지 못하면서 위 직원들에게 참거나 희생만 요구한 것에 대한 잘못을 죽음으로써 속죄한다는 취지이 마. 한편 망인은 2010. 8. 26. 부터 2010. 10. 12. 까지 가톨릭대 성모병원에서 귀가 울리는 이명 증상으로 진료를 받은 적이 있고, 2011. 2. 17. 정기건강검진 당시 간호사와의 상담 과정에서 ' 나이 50이 넘어도 해놓은 것도 없고 사는 게 힘들다. 한 달 정도 잠을 못자서 피곤하다. 회사일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다 ' 고 진술하였고, 이에 간호사는 망인에게 정신적 이상이 있음을 느껴 정신과 상담을 받을 것을 권유하였다 .
바. 망인은 업무를 꼼꼼하게 처리하고, 업무에 책임감을 많이 느끼는 성격이었으며 , 직원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
3. 이러한 사실관계를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본다 .
소외 회사의 제품 개발 및 생산을 책임지던 기술연구소장 겸 공장장인 망인은 소외 회사의 경영권이 주식회사 F에게 인수된 후 대표이사 등으로부터의 매출부진에 대한 ,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계속된 질책으로 인하여 자존감이 상함과 동시에 기술력을 가진 기존 직원들의 80 % 가 경쟁회사로 이직하는 등으로 퇴사하여 인적 · 물적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는 어려운 상황에서 제품을 개발하여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렸고, 이에 더하여 중국 현지공장 책임자인 G이 권고사직을 당하자 다음에는 자신이라는 생각에 자살하기 한 달 남짓 전부터는 제대로 수면을 취하지 못하는 등 불안해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망인은 특히 G이 권고사직을 당한 2011. 1. 31. 이후부터 자살할 꿈을 꿀 정도로 급격히 불안증세, 우울증세를 나타내면서 회사 동료들에게 자신의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여 온 것으로 보인다. 망인은 평소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성격으로 우울증세 등을 앓은 전력이 전혀 없고 업무 외의 다른 요인으로 인하여 위와 같은 증상에 이르렀다고 볼 만한 자료는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기술연구소장으로서 수긍할 수 없는, 대표이사 등의 계속된 질타와 조만간 권고사직을 당할 것이라는 불안감 속에서 당시 인력상황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과중한 업무에 따라 망인이 극심한 업무상의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 급격히 위 우울증세 등이 유발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
그리고 위와 같은 정신적인 고통으로 인하여 망인이 가장으로서의 책임이 있음에도 퇴직을 고려하였고, 자살하는 꿈까지 꿀 정도였으므로, 위와 같은 극심한 업무상의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망인이 입은 정신적인 고통이나 그에 따른 우울증세 등은 매우 심각한 정도라고 볼 수 있다 .
이와 같이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망인에게 가한 중압감 내지 불안감의 정도와 지속시간, 망인의 신체적 · 정신적 상황과 망인을 둘러싼 주위상황, 우울증세의 발현과 악화정도에 관한 여러 사정들과 아울러, 망인이 동료직원에게 퇴직을 해야겠다고 말한 후 불과 이틀 뒤에 결국 자살에 이르렀고, 자살 무렵에는 휴일에 혼자 사무실에 출근하여 다음날 아침까지 신세를 비관하였으며, 망인에게 자살을 선택할만한 동기나 계기가 될 수 있을 만한 다른 사유가 나타나 있지 아니한 사정들을 함께 참작하여 보면 , 망인이 자살 직전 극심한 업무상의 스트레스 및 정신적인 고통으로 인하여 우울증세 등이 악화되어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하여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할 여지가 충분하므로,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을 것이며, 비록 망인에게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은 구체적인 병력이 없다거나 망인의 성격 등 개인적인 취약성이 자살을 결의하게 된 데에 일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 .
그럼에도 원심은 위와 같은 사정들에도 불구하고, 망인의 우울증세 등 및 그 악화로 인한 자살의 가능성과 업무와의 관련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다른 사정들이 있는지, 특히 망인이 남긴 유서의 구체적인 내용을 비롯하여 자살 전후의 망인의 구체적인 언행 등 망인이 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 및 동기 등에 관하여 좀 더 면밀하게 따져보지 아니하고, 망인의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하여 망인이 자살할 정도의 우울증 등에 빠지게 되었다거나 그로 인하여 정상적인 행위선택능력 등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 빠져 자살에 이르게 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여, 망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의 인과관계를 부정하고 말았다 .
따라서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업무상 재해에서의 업무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의 주장은 이유 있다 .
4.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 · 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
대법관
재판장 대법관 김창석
주심 대법관 신영철
대법관이상훈
대법관조희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