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2020구합81328 여권 영문성명 변경 거부처분취소 청구의 소
원고
ooo
미성년자이므로 법정대리인 친권자
피고
외교부장관
변론종결
2021. 6. 25.
판결선고
2021. 8. 20.
주문
1. 피고가 2019. 8. 30. 원고에게 한 여권 로마자성명 변경 거부처분을 취소한다.
2.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주문과 같다.
이유
1. 처분의 경위
가. 원고는 2014. 7. 15. 프랑스에서 출생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현재까지 계속하여 프랑스 및 벨기에에서 살고 있는 ‘아동’이다.
나. 원고의 부모는 프랑스 행정기관에 원고의 출생을 신고하면서 그 로마자성명을 ‘oooo, SEONOU JOSHUA’으로 표기하고, 2014. 9.경 최초의 여권 신청 시에도 로마자성명을 위와 같이 표기하였다. 그러나 피고의 여권 발급업무를 대행한 서울특별시 종로구청장은 위 표기가 로마자표기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로마자 이름을 ‘oooo, SEONOU SEONHOU’로 하여 여권을 발급하였다.
다. 원고는 2019. 8. 28. 피고에게 원고의 여권 로마자성명 ‘oooo, SEONOU SEONHOU’을 프랑스 출생증명서상 로마자성명인 ‘oooo, SEONOU JOSHUA’로 변경해 줄 것을 신청하였으나, 피고는 2019. 8. 30. ‘원고의 여권상 로마자성명 중 ‘oo (SEONHOU)’에 대한 표기는 구 여권법 시행령(2021. 7. 6. 대통령령 제31865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여권법 시행령’이라 한다) 제3조의2 제1항에 따른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위 신청을 거부하였다(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
라. 원고는 2019. 11. 15. 이 사건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심판을 청구하였으나,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2020. 6. 16. 기각재결을 하였다. 위 재결서는 2020. 7. 20. 원고에게 송달되었다.
[인정 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7, 9호증, 을 제1, 3, 4호증(가지번호 포함, 이하 같다)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처분의 적법 여부
가. 당사자들의 주장
1) 원고
원고의 부모가 프랑스에서 원고의 이름을 ‘SEONHOU’가 아닌 ‘SEONOU’로 하여 출생신고를 한 것은 불어에서는 H가 묵음이어서 불어문화권에 생활하기에는 ‘SEONOU’가 더 적합한 로마자음역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원고는 출생 후 계속 프랑스에서 거주하다 2020. 9.경 같은 불어권인 벨기에로 이주하였는데, 출생 후 이 사건 처분 당시까지 5년여 동안 여권 성명과 프랑스 현지 공부상 성명이 달라 초등학교 진학 및 전학, 공항이용 등 생활에서 큰 불편과 어려움을 겪었고, 현재 벨기에에서도 그와 같은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원고는 ‘국외에서 여권의 로마자성명과 다른 로마자성명을 취업이나 유학 등을 이유로 장기간 사용한 경우’에 해당하여 구 여권법 시행령 제3조의2 제1항 제2호의 로마자성명 변경사유가 인정되므로, 이와 다른 전제에서 원고의 신청을 거부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2) 피고
원고가 “oooo, SEONOU JOSHUA”라는 로마자성명을 국외에서 일관되게 장기간 사용했음을 인정할 수 없으므로 구 여권법 시행령 제3조의2 제1항 제2호의 로마자성명 변경사유가 인정되지 않고, 위 조항 나머지 각호의 로마자성명 변경사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더구나 여권에 기재되는 로마자성명은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된 법적 성명을 음역에 맞게 표기하여야 하는데, 원고의 가족관계등록부상 이름인 ‘선후’의 로마자 음역은 ‘SEONHOU’로서 여기서 H를 뺀 ‘SEONOU’는 가족관계등록부상 이름을 음역에 맞게 표기한 데 해당하지 않으므로, 여권 성명 ‘oooo, SEONOU SEONHOU’에서 ‘SEONHOU’를 삭제하는 것은 여권법상 로마자성명 표기법에 반하여 허용되지 않는다.
나아가 설령 원고에게 구 여권법 시행령 제3조의2 제1항 제2호의 로마자성명 변경사유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그 변경 여부는 피고의 재량에 속하는데, 여권의 대외신뢰도 제고 등을 위해 로마자성명 변경은 신중해야 하는 점, 원고는 여권법상 표기법에 부합하는 이름 ‘SEONHOU’에 ‘국외에서 사용하고자 하는 이름 ’SEONOU JOSHUA’를 병기함으로써 국외생활상의 불이익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점, 또는 한글 이름을 ‘선우’로 개명한 후 구 여권법 시행령 제3조의2 제1항 제6호에 따라 로마자성명을 변경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 처분은 그로 인하여 제한되는 사익보다 그로써 달성하려는 공익이 더 크므로 재량권 일탈·남용의 위법이 없다.
나. 관계 법령 등
별지 기재와 같다.
다. 판단
1) 근거 규정의 해석
가) 구 여권법(2021. 1. 5. 법률 제17820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여권법’이라 한다) 제7조 제2항의 위임에 따라 여권 수록 정보의 수록 방법을 정한 구 여권법 시행령은 제3조 제1항 후단에서 ‘여권 명의인의 로마자성명은 국제민간항공기구의 관련 규정에 따라 한글 성명에 맞게 표기하여야 한다’고 규정하면서, 그 세부사항을 외교부령에 위임하고 있다. 구 여권법 시행규칙(2021. 7. 6. 외교부령 제9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여권법 시행규칙’이라 한다) 제2조의2 제1항 본문은 구 여권법 시행령 제3조 제1항 후단에 따른 여권 명의인의 로마자성명은 가족관계등록부에 등록된 한글성명을 음절 단위로 음역에 맞게 표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편, 구 여권법 시행령 제3조의2 제1항 본문은 ‘피고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여권을 재발급 받으려는 사람의 신청에 따라 제3조에 따른 여권의 수록 정보 중 로마자성명을 정정하거나 변경할 수 있다’고 정하면서 제2호에서 ‘국외에서 여권의 로마자성명과 다른 로마자성명을 취업이나 유학 등을 이유로 장기간 사용하여 그 로마자성명을 계속 사용하려고 할 경우’를 들고 있고, 위 조항 단서는 ‘다만, 로마자성명의 정정이나 변경을 범죄 등에 이용할 것이 명백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피고는 로마자성명의 정정이나 변경을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구 여권법 시행령 제3조의2는 제2항에서 ‘피고는 제1항에 따라 로마자성명이 정정되거나 변경되는 경우로서 새로 발급되는 여권에 구 로마자성명을 표기할 필요가 인정할 때에는 새로 발급되는 여권에 구 로마자성명을 표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제3항에서 로마자성명의 정정 및 변경에 필요한 기타 사항을 외교부령에 위임하고 있다. 구 여권법 시행규칙 제2조의2 제2항은 ‘여권 발급 신청인이 영 제3조의2 제1항 제2호에 따라 국외에서 장기간 사용한 로마자성명으로 변경하려는 경우로써 그 로마자성명이 가족관계등록부 상의 한글성명에 대한 로마자표기가 아닌 경우에는 기존 로마자성명 앞 또는 뒤에 변경하려는 로마자성명을 함께 표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 즉, 구 여권법령은 원칙적으로 여권의 로마자성명을 가족관계등록부에 등록된 한글성명을 음절 단위로 음역에 맞게 표기하도록 하되, 구 여권법 시행령 제3조의2 제1항 본문 각 호에서 로마자성명을 변경할 수 있는 예외적인 사유를 제한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또한 로마자성명의 변경이 범죄에 이용될 우려가 있는 경우 피고로 하여금 로마자변경 신청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고, 새로 발급되는 여권에 구 로마자성명을 표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와 같이 구 여권법령이 로마자성명 변경사유를 제한하고 나아가 변경사유가 있는 경우에도 그 변경을 허용하지 않거나 구 로마자성명을 표기할 수 있도록 한 취지는, 우리나라 여권에 대한 대외신뢰도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여권은 대한민국 국적 및 신분을 증명하고 그 소지자에 대하여 우리나라 정부가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공문서로서, 여권에 표기된 로마자성명은 출입국심사 및 관리를 함에 있어 중요한 정보이다. 따라서 로마자성명 변경을 제한하지 않을 경우 외국 정부가 그 변경 전후로 해당 여권 소지자의 동일성을 식별하기 어려워져 우리나라 국민에 대한 출입국 심사 및 관리에 어려움을 초래하고, 이로 인하여 외국에서 우리나라 여권에 대한 신뢰도가 저하되어 우리나라 국민들에 대한 사증(VISA) 발급 및 입국심사 등이 까다로워질 수 있다.
2) 이 사건에서 구 여권법 시행령 제3조의2 제1항 제2호 사유가 존재하는지 여부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는 원고가 구 여권법 시행령 제3조의2 제1항 제2호에서 정한 로마자변경 사유, 즉 ‘국외에서 여권의 로마자성명과 다른 로마자성명을 취업이나 유학 등을 이유로 장기간 사용하여 그 로마자성명을 계속 사용하려고 할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사건 처분을 하였다.
그러나 앞서 본 인정 사실, 갑 제1, 3 내지 6, 9, 10호증, 을 제2호증의 각 기재에 의하여 인정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원고는 국외에서 여권의 로마자성명 ‘oooo, SEONOU SEONHOU’와 다른 로마자성명 ’oooo, SEONOU JOSHUA’을 취업이나 유학 등을 이유로 장기간 사용하여 그 로마자성명을 계속 사용하려고 할 경우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가) 원고는 2014. 7. 15. 프랑스에서 출생한 후 이 사건 처분일인 2019. 8. 30.까지 5년 이상 프랑스에서 거주하면서, 프랑스에서 출생 신고한 이름인 ‘oooo, SEONOU JOSHUA’를 사용하였다. 프랑스 행정기관은 위 로마자성명으로 원고의 출생증명서, 체류증을 발급하였고, 원고가 2019년경 입학한 프랑스 공립초등학교의 학적부에도 위 로마자성명이 기재되어 있다. 즉, 원고는 이 사건 처분일을 기준으로 5년이 넘는 기간 프랑스에서 ’oooo, SEONOU JOSHUA’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공적 장부에 기재되었으며, 나아가 첫 학교생활도 시작하는 등 위 로마자성명을 사용하였다.
또한 원고는 이 사건 처분 이후인 2020. 9. ooo로 이주하면서 ooo 공립초등학교로 전학을 하였는데, 종전 프랑스 학교의 기록이 이전됨에 따라 ooo 학교의 학적부에도 성명이 ‘oooo, SEONOU JOSHUA’으로 기재되었다. 다만, ooo 가족관계등록부에는 여권 로마자성명과 같은 ‘ooo, SEONOU SEONHOU’이 기재되었으나, 이는 ooo 정부의 방침에 따라 ooo의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명을 여권에 기재된 로마자성명과 일치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원고는 현재 ooo에서 불일치하는 두 로마자성명의 혼재로 생활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 한편, 구 여권법 시행령 제3조의2 제1항 제2호의 ‘국외에서 여권의 로마자성명과 다른 로마자성명을 취업이나 유학 등을 이유로 장기간 사용’한 경우에는, 취업이나 유학뿐 아니라 원고와 같이 국외에서 출생하여 성장하는 등 국외에서 사회생활상 관계가 장기간 형성된 경우도 당연히 포함된다고 새기는 것이 타당하다. 원고와 같이 국외에서 출생하여 성장한 아동의 경우, 그 나이가 어려 ‘유학’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재학기간이 짧다 하더라도 이미 출생 후 입학 전까지 수년간 국외 사회공동체 생활에서 해당 로마자성명으로 불리며 다방면으로 관계를 맺었을 것이므로, 아동의 복지를 고려할 때 이를 성인이나 유학기간이 긴 청소년 등과 달리 취급할 합리적 이유가 없다.
다) 원고의 부모는 2011년경 프랑스에 유학을 가서 계속 거주하다 원고를 출산하였고, 원고의 모는 2013년에 현지 기업에 취업하여 취업비자로 체류하던 중 2020. 9. 같은 EU 공동체 회원국인 ooo로 이직하여 현재까지 원고와 함께 체류하고 있다. 원고의 부는 2017년경 학생비자 기간 만료로 대한민국에 귀국하여 원래 다니던 회사에 복직하였으나, 원고의 모는 이 사건 처분 당시 프랑스 현지 기업에서 7년째 계속하여 근무 중이었고 이후에도 ooo 현지 기업으로 이직하여 취업비자로 체류 중이다. 향후에도 원고의 모는 국외 취업 중 계속 국외에서 거주하며 원고를 양육할 것으로 보이고, 원고는 국외에서 계속하여 ‘oooo, SEONOU JOSHUA’를 사용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3) 원고가 사용하려는 로마자성명이 여권법상 음역 표기에 맞지 않는다거나, 로마자성명 변경사유가 인정되더라도 이를 거부할 중대한 공익상 필요가 인정된다는 피고 주장에 관하여1)
가) 피고는 원고가 사용하려는 로마자성명 ‘oooo, SEONOU JOSHUA’가 여권법상 음역 표기에 맞지 않는다거나, 로마자성명 변경사유가 인정되더라도 공익을 고려해 적법한 재량권을 행사하여 그 신청을 거부하였다고도 주장하므로, 이에 대하여 본다.
특히 구 여권법 시행규칙 제2조의2 제2항이 국외에서 장기간 사용한 로마자성명으로 변경을 신청할 때 ‘그 로마자성명이 가족관계등록부 상의 한글성명에 대한 로마자표기가 아닌 경우’에는 기존 로마자성명 앞 또는 뒤에 변경하려는 로마자성명을 함께 표기할 수 있도록 한 점에 비추어 보면, 구 여권법 시행령 제3조의2 제1항 제2호는 ‘국외에서 장기간 사용한 로마자성명’이 가족관계등록부 상의 한글성명에 대한 로마자표기와 다른 경우에도 그 변경사유가 인정되면 변경을 허용하는 취지라고 해석함이 타당하다.
피고는 위 규정에 따르면 원고의 이름 ‘SEONOU’는 가족관계등록부상 한글이름의 로마자표기인 ‘SEONHOU’가 아니므로 반드시 ‘SEONHOU’를 병기하여야지 ‘SEONHOU’를 삭제할 수는 없다고도 주장하나, 위 규정은 이러한 경우 새로운 로마자성명을 기존 로마자성명과의 “함께 표기할 수 있다”라고 병기가 가능함을 규정하고 있을 뿐, 병기를 의무화하고 있지 않다(이는 구 여권법 시행규칙 제2조의2가 제1항, 제4항 등에서 “표기한다”라는 표현으로써 특정 표기방법을 의무화한 것과 대비된다). 뿐만 아니라, 위 규정은 기존 “로마자성명”, 즉 기존 성과 이름 앞·뒤에 변경하려는 “로마자성명”, 즉 새로운 성과 이름을 함께 표기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원고 주장과 같이 기존 “로마자 이름”을 혼합하여 새로운 “로마자성명”을 정하도록 새로운 로마자성명의 인정범위를 제한하는 취지가 아니라, “oooo, SEONOU JOSHUA(oooo, SEONOU SEONHOU)” 등의 방식으로 신·구 로마자성명 전체를 병기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새겨야 한다.
피고는 여권의 로마자성명이 가족관계등록부에 등록된 한글성명을 음역한 로마자성명과 일치하지 않게 되면 이는 구 여권법 시행령 제3조 제1항이 따르도록 한 ‘국제민간항공기구의 관련 규정’ 및 구 여권법령의 취지에 반한다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가족관계등록부와 일치하지 않는 로마자성명으로의 변경을 예외 없이 금지하는 것은 앞서 본 구 여권법령의 명문 해석에 반할 뿐 아니라, 구 여권법령이나 국제민간항공기구의 관련 규정의 취지로부터 논리 필연적으로 도출되지 않는다.
즉, 앞서 본 바와 같이 구 여권법 시행령 제3조의2는 우리나라 여권에 대한 대외신뢰도를 확보하기 위한 취지에서 그 로마자변경 사유를 엄격히 제한하고, 나아가 변경사유가 있는 경우에도 범죄 등 이용 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그 변경을 허용하지 않거나, 혹은 로마자성명이 변경되는 경우에도 피고가 새로 발급되는 여권에 구 로마자성명을 함께 표기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외국 정부의 출입국관리상 편의 및 여권의 대외신뢰도 제고를 도모하고 있다. 그렇다면 구 여권법령이 명시적으로 인정한 예외사유에 한하여, 범죄 등 이용 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변경 허부를 결정하고, 변경 후 로마자성명과 변경 전 로마자성명을 병기하는 방식으로 로마자성명 변경을 허용하는 것은 여권의 대외신뢰도 확보라는 입법 취지에도 반하지 않는다.
또한, 국제민간항공기구의 관련 규정인 ‘기계 판독이 가능한 여행문서(Doc 9303, Machine Readable Travel Documents)는 구 여권법 시행령이 ’원칙적 로마자성명 표기법‘을 정한 제3조 제1항에서 인용한 규정으로써 예외적 변경사유를 정한 제3조의2 제1항은 위 규정을 인용하고 있지 않다. 나아가 위 문서는 민간기구의 규정으로서 조약 등과 같이 일반적인 법적 구속력을 가지지도 않는다. 뿐만 아니라 위 규정의 내용을 보더라도, 여권의 육안검사 및 기계판독 등을 위하여 라틴어 기반이 아닌 자국 문자를 라틴 문자로 “음역(transliteration)”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그 음역의 구체적인 방식이나 음역의 대상이 되는 자국 문자 성명의 범위를 제한하고 있지도 않다.
엄밀히 말하여 여권의 대외신뢰도 관점에서 문제되는 것은, 여권의 로마자성명이 변경됨으로써 외국 정부의 우리나라 국민에 대한 출입국심사 및 관리에 어려움을 초래하는 것인지 여부이지, 여권의 로마자성명과 가족관계등록부상 한글성명의 로마자표기 일치 여부가 아니다. 구 여권법 시행령 제3조의2 제1항 각 호의 로마자성명 변경사유가 인정되는 이상, 그 허용 여부는 범죄 등 이용가능성 등 여권의 대외신뢰도에 끼칠 영향을 고려하여 결정할 사항이고, 한글성명 개명(제6호) 등과 같이 가족관계등록부와의 불일치가 발생하지 않는 경우이든, 혹은 국외에서 장기간 사용한 로마자성명으로의 변경(제2호) 등과 같이 가족관계등록부와의 불일치가 발생하는 경우이든 이를 달리 취급할 합리적 이유는 없다. 반대로, 기존의 여권 로마자성명이 가족관계등록부상 한글성명의 로마자표기와 일치하지 않아 변경을 통해 이를 가족관계등록부와 일치시키려는 경우에도, 가족관계등록부와의 일치 사실만을 들어 변경을 허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구 여권법 시행령 제3조의2 제1항 각 호의 사유가 존재하여야 하고 대한민국 여권에 대한 대외신뢰도가 저하될 사정이 있는지를 고려하여야 한다.
한편, 피고는 구 여권법 제8조 제1항, 구 여권법 시행령 제5조, 구 여권법 시행규칙 제4조 등에 따라 여권 명의인의 주소, 주민등록번호, 연락처, 지문 등 개인 식별을 위한 정보를 제출받아 관리하고 있으므로, 피고가 자신의 행정 목적에서 예외 없이 가족관계등록부상 한글성명의 로마자표기와 여권의 로마자성명을 일치시켜야만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
이와 궤를 같이하여, 우리나라가 가입하여 1991. 12. 20.부터 발효 중인 다자조약인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 제3조에 의하면, 행정당국 등에 의하여 실시되는 아동에 관한 모든 활동에 있어서 아동의 최선의 이익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고, 당사국은 아동복지에 필요한 보호와 배려를 아동에게 보장하고, 이를 위하여 모든 적절한 입법적·행정적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이러한 헌법 규정과 위 협약의 원칙에 입각하여 볼 때, 아래와 같은 이유로 원고의 로마자성명 변경사유가 인정됨에도 피고가 그 신청을 거부할 수 있을 만큼 원고가 입을 불이익에 비하여 중대한 공익이 인정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1) 원고는 프랑스에서 출생하여 ‘oooo, SEONOU JOSHUA’라는 이름으로 학교생활을 포함하여 현지의 사회공동체에서 다방면의 관계를 맺으며 장기간 성장해 왔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국외에서 거주하며 생활할 것으로 보인다. 원고가 태어나 지금까지 평생 동안 불리고 쓰던 이름을 계속 쓸 수 없게 된다면 사회생활상 불편과 어려움을 겪게 될 뿐 아니라, 아직 나이가 어린 아동인 원고는 그 성장과정에서 많든 적든 어느 정도의 정신적 혼란을 겪는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
(2) 반면, 원고가 수차례 프랑스로 출입국 하였다 하더라도(2019년까지 약 5년간 7차례), 이는 모두 7세 미만의 아동으로서 부모를 동반하여 출입국한 기록으로 현재 8세인 원고가 여권 로마자성명을 변경한다 하여 외국 정부의 출입국관리 및 심사에 현실적인 어려움을 초래한다고 단정할 수 없고, 더욱이 원고나 그 부모가 위와 같은 변경을 범죄 등에 이용할 것이 명백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피고가 여권의 대외신뢰도 저하가 염려되는 경우라고 판단한다면, 구 여권법 시행령 제3조의2 제2항에 따라 여권에 “oooo, SEONOU JOSHUA(oooo, SEONOU SEONHOU)”의 방식으로 원고의 변경 전·후 로마자성명을 모두 표기함으로써 여권의 대외신뢰도 저하 우려를 불식할 수 있다.
(3) 로널드 드워킨(Ronald Dworkin)이 설파한 것처럼, 개인의 권리는 정치적 ‘으뜸패’(trump)로서, 국가가 내리는 정치적 결정에서 개인의 권리가 추상적 전체의 이익에 의해서 언제나 무시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결코 개인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헌법과 우리나라가 가입・승인한 국제규약에 따른 아동에 대한 특별한 보호 및 복리 증진의 필요와 그에 따른 기본권의 특별한 보장이라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러한 헌법적 요구를 단순한 추상적 공익 또는 국가적 위신이라는 추상적 사유만을 들어서 그 기본권 보장을 뒤로 물릴 수는 없다. 특히 원고처럼 나이가 어린 아동이 여권상 영문명으로 인하여 겪게 되는 생활상 불편함은, 자기결정능력이 없는 원고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 아니고 그 동안 완고하게 경직되어 있던 여권법 규정과 그에 따라 적절히 권리구제를 받아 줄 수 없었던 부모의 상황과 제도적 불합리에 기인한 것이므로, 그 불이익이 결코 특별한 보호의 대상인 아동에게 돌아가도록 방치해서는 아니 된다.
4) 소결론
따라서 이 사건 처분은 어느 모로 보더라도 위법하므로 취소되어야 한다.
3. 결론
원고의 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이를 인용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주석
1) 피고의 이러한 주장은 모두 ‘구 여권법 시행령 제3조의2 제1항 제2호의 로마자성명 변경사유의 부존재’라는 당초 처분사유와 기본적 사실관계가 달라 그 처분사유의 추가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으나, 음역표기 원칙 위배 주장은 법령이 정한 거부사유가 아닌 새로운 거부사유를 피고가 사실상 창설하여 주장하는 것이므로 이를 일종의 법률상 주장으로서 항변유사주장처럼 보아 적극적으로 판단하고, 중대한 공익상 필요에 관한 피고 주장은 위 시행령 제3조의2 제1항이 “정정하거나 변경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위 주장은 그 거부처분 사유를 구체화한 것으로 보아 이 부분에 대하여도 나아가 적극적으로 판단한다.
만일 이와 달리 기본적 사실관계 동일성을 좁게 보아 제시된 거부사유의 위법성을 확인하면서도, 예비적으로 추가적 거부처분사유에 대하여도 나아가 방론으로 판단할 경우, 최근 ‘유승준 사건’ 대법원 판결에 대한 외교부의 대응에서 보듯이 피고 측이 해당 부분 판시의 기속력 자체를 부정하고 재차 거부처분을 할 우려도 있다. 이처럼 사안에 따라서는, 처분사유 동일성 여부를 너무 엄격하게 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분쟁의 1회적 해결과 국민의 실효적 권리구제에 기여할 수 있다. 이하 이러한 전제에서 판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