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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22. 1. 13. 선고 2021두38567 판결
[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미간행]
판시사항

[1]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 제1호 에서 정한 ‘업무상의 재해’로 인정하기 위한 업무와 사망의 원인이 된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방법 및 그 인과관계에 관한 증명의 정도 / 업무와 질병 또는 사망과의 인과관계 유무 판단의 기준이 되는 자(=당해 근로자)

[2] 종합병원 약제과장으로 근무하던 갑이 퇴근하여 귀가하였다가 자택에서 쓰러진 후 뇌지주막하 출혈로 사망한 사안에서, 갑이 뇌동맥류의 위험인자를 가지고 있던 상태에서 종합병원의 약제과를 총괄하는 지위로의 업무상 환경 변화와 약제과의 정비 및 오제조 사고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기존 질환이 자연적 진행경과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되어 뇌지주막하 출혈로 발현된 결과 사망에 이른 것으로 볼 여지가 있음에도, 이와 달리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본 원심판단에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고 한 사례

참조판례
원고,상고인

원고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마중 담당변호사 김용준 외 5인)

피고,피상고인

근로복지공단

원심판결

서울고법 2021. 4. 23. 선고 2020누48750 판결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 제1호 에서 정한 ‘업무상의 재해’란 근로자의 업무수행 중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질병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업무와 사망의 원인이 된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이 업무수행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적어도 업무상의 과로나 스트레스가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에 겹쳐서 질병을 유발 또는 악화시켰다면 그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도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평소에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한 기초 질병이나 기존 질병이 직무의 과중 등이 원인이 되어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된 때에도 그 증명이 있는 경우에 포함된다. 업무와 질병 또는 사망과의 인과관계 유무는 보통 평균인이 아니라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 대법원 2020. 5. 28. 선고 2019두62604 판결 등 참조)

2.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알 수 있다.

가. 원고의 배우자인 망인은 ○○의료원에서 약 2개월, △△△대학교 부속 부천병원에서 약 1년 6개월 동안 약사로 근무하다가 2016. 12. 1.부터 □□종합병원(이하 ‘이 사건 병원’이라고 한다)의 약제과장으로 근무하였다. 망인은 이 사건 병원에서 약제과 업무를 총괄하였는데, 입원환자 및 응급환자에 대한 의약품 조제 확인 검수, 처방 약품에 대한 복약지도, 의약품 발주 및 불출, 재고 정리, 마약 및 향정신성의약품 관리(입고, 조제, 재고 등 관리에 대한 전반 사항), 사용 의약품 품질 및 정보 관리, 처방전 관리 등 업무를 실제로 수행하였다. 이 사건 병원의 원내 처방건수는 2016년 12월 58,166건, 2017년 1월 46,896건에 달하였다.

나. 망인은 이 사건 병원의 약제과 시스템을 정비하기 위하여 다른 병원의 약사로부터 그 소속 병원의 비상마약류 관리서약서, 의료용 마약류 저장시설 점검부, 수술실 비치 마약류 관리대장, 종합병원 마약류 관리지침, 마약류 교육자료, 사고 마약류 발생 경위서, 본원 마약류 취급 내부규정 등 파일을 전달받아 이 사건 병원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병원 내 약국 이전과 관련하여 효율적인 동선 설계를 위하여 직접 3DMax 프로그램을 설치하여 인테리어 설계를 하는 등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적극적으로 업무를 수행하여 왔다.

다. 망인은 2017. 1. 30. 이 사건 병원의 입원환자이던 소외 1의 퇴원 시 퇴원약으로 처방된 향정신성의약품인 자나팜정 0.5mg을 자나팜정 0.25mg으로 잘못 검수하여, 1일 3회 복용의 14일 분량, 총 42정을 잘못 조제한 채 환자 측에 교부하였고(이하 ‘이 사건 오제조 사고’라고 한다), 2017. 1. 31. 오전 이 사건 오제조 사고를 인지하고 소외 1의 배우자인 소외 2에게 직접 전화하여 이러한 사실을 알린 후 13:16경 소외 1의 자택 근처로 찾아가 소외 2로부터 오제조된 약을 수거하고 새로 조제된 약을 교부하였다.

라. 망인은 2017. 1. 31. 오후 이 사건 병원의 약제과 직원에게 몸이 아파서 병원에 돌아가지 않고 바로 귀가하겠다고 알리고, 18:26경 한의원에 방문하여 진료를 받았다. 망인은 한의사에게 ‘신경성 두통이 일주일 정도 되었다. 이직 문제로 신경 쓰고 증상 유발되었다. 식적두통 양상에 어지럼증 증상도 있다. 처음보다 두통증상은 호전 중이다.’라고 증상을 설명하였다.

마. 망인은 2017. 2. 1. 평소대로 출근하여 업무를 마치고 정시에 퇴근하여 18:48경 귀가하였다가 20:24경 자택 내에서 쓰러졌고(이하 ‘이 사건 사고’라고 한다), 2017. 2. 10. 10:25경 사망하였다. 사망진단서상 망인의 사망원인으로는 ‘(가) 직접 사인: 뇌부종, (가)의 원인: 상세불명의 뇌지주막하 출혈’로 기재되어 있다.

바. 원심법원의 서울특별시 서울의료원장에 대한 진료기록감정촉탁 회신 결과는 ‘망인의 경우에는 우측 중대뇌동맥의 동맥류가 확인되어 이 동맥류가 터져 뇌지주막하 출혈, 뇌실질내 출혈, 뇌실내 출혈이 발생된 것으로 보이며, 망인은 기존에 뇌동맥류를 가지고 있었던 경우로 2017. 1. 31. 한의원 진료기록상의 두통이 뇌동맥류 파열환자가 동맥류 파열 전에 겪게 되는 파수꾼 두통이었는지 그냥 단순 두통이었는지를 감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격무나 스트레스가 뇌동맥류 파열의 원인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으나, 스트레스나 격무로 인한 고혈압이나 혈압의 변동에 의해 뇌혈류학적 부담에 따른 뇌동맥류 파열의 가능성이 있고, 만약 과로로 인정할 경우 10% 이하로 뇌동맥류 파열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추정된다.’는 취지이다. 한편 망인이 이 사건 사고 이전에 실시한 건강검진에서는 특별한 뇌혈관계의 이상이 발견된 적은 없다.

3. 이러한 사정들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망인의 업무와 이 사건 사고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여지가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 망인의 약사로서의 이력과 이 사건 병원의 약제과장으로서의 업무 기간 및 업무 내용 등에 비추어 보면, 망인이 종전에 담당한 업무와 종합병원 약제과장으로서 담당한 업무는 그 직책, 구체적인 업무 내용, 권한 및 책임 범위 등에서 상이하고, 망인이 종합병원 약제과의 총책임자로서 직책을 수행함에 있어 이 사건 사고 발생 시까지 업무상 충분한 숙달이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이 사건 병원은 망인에게 약제과 직원의 연장근무수당 최소화를 위한 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청하였는데, 위 방안은 약제과 직원의 이익과 상반되는 것으로 새로 취업한 직장에서 자신의 능력을 보이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하였던 망인의 입장에서 상당한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나. 망인은 이 사건 병원의 약제과 시스템을 정비하기 위한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근무 시간 외에도 약제과의 시스템 개선 방안에 관해 골몰하여 왔는데, 그 과정에서 병동 간호부와 사이에 환자 퇴원 시 용법별 약 교부와 관련한 의견 합치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도 보인다.

다. 망인은 이 사건 사고 발생 1~2주 전부터 두통을 호소하였는데 원심법원의 진료기록감정촉탁 회신 결과에 의하더라도 이 같은 두통이 뇌동맥류 파열 환자가 동맥류가 파열되기 전에 겪는 파수꾼 두통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스트레스로 인한 고혈압이나 혈압의 변동이 뇌혈류학적 부담을 주어 그에 따른 뇌동맥류 파열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망인의 건강보험 요양급여 내역상 2009. 5. 이후 위 두통 발병 시까지 두통으로 치료받은 내역이 없는 데다가, 망인이 이 사건 병원 업무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주변인에게 토로하였던 점, 망인의 평소 건강상태 등에 비추어 보면 설령 망인의 두통이 뇌출혈의 전조 증상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새로운 환경에서 약제과장으로서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과정에서 받은 업무상 스트레스와 두통이 발생한 이후에도 새로 취업한 직장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 계속 출근하는 등 적절한 치료와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함으로써 악화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라. 망인은 종합병원 약제과장으로서 마약류관리자의 지위에 있었는데, 이 사건 병원에서 근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 사건 오제조 사고가 발생하였고, 이러한 점이 병원에 알려질 경우 그에 따른 불이익의 가능성 내지 적어도 자신의 업무능력 평가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느꼈을 것을 보이고, 이는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한 시점에 실제로 이 사건 병원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망인에게 상당한 정신적 부담으로 작용하였을 것으로 추단된다.

마. 따라서 망인이 종전부터 지주막하 출혈의 원인이 될 만한 기존 질환이 있어 자연경과적으로 뇌출혈이 발생하여 사망에 이를 가능성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뇌동맥류의 위험인자를 가지고 있던 상태에서 종합병원의 약제과를 총괄하는 지위로의 업무상 환경 변화와 약제과의 정비 및 이 사건 오제조 사고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해 기존 질환이 자연적 진행경과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되어 뇌지주막하 출혈로 발현되었고, 그 결과 사망에 이른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할 것이다.

4. 그런데도 원심은 망인의 업무 수행 과정에서 정신적 스트레스가 없지 않았다 하더라도, 객관적인 업무시간이 길지 않고 이 사건 오제조 사고로 인하여 실제 불이익을 받은 정황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망인의 업무와 이 사건 사고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판단에는 업무상 재해의 상당인과관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5. 그러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이흥구(재판장) 김재형 안철상(주심) 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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