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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1992. 9. 1. 선고 92도1405 판결
[강간치상][공1992.10.15.(930),2809]
판시사항

가. 형사재판에서 유죄의 인정을 위한 증거의 증명력 정도

나. 피고인과의 성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할 유력한 물적 증거에 관하여 사법경찰리 앞에서 구체적으로 한 진술을 검사 앞에서 번복하는 등 신빙성이 없는 피해자의 진술 등에 의하여 강간치상죄를 유죄로 인정함으로써 증거의 증명력에 관한 법리오해 등으로 채증법칙을 위반하여 사실을 잘못 인정한 위법이 있다 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한 사례

판결요지

가. 형사재판에 있어서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하는바,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할 수 있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할것이므로, 이와 같은 증명력을 가진 증거가 없다면 설사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 피고인과의 성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할 유력한 물적 증거에 관하여 사법경찰리 앞에서 구체적으로 한 진술을 검사 앞에서 번복하는 등 신빙성이 없는 피해자의 진술 등에 의하여 강간치상죄를 유죄로 인정함으로써 증거의 증명력에 관한 법리오해 등으로 채증법칙을 위반하여 사실을 잘못 인정한 위법이 있다 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한 사례.

피 고 인

피고인

상 고 인

피고인

변 호 인

변호사 이병후 외 1인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피고인과 변호인 변호사 김명윤 및 국선변호인 변호사 이병후의 각 상고이유에 대하여 함께 판단한다.

1. 원심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이 사건 강간치상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여 형을 선고하였다.

가. 피해자 가 수사기관 이래 원심 공판정에 이르기까지 일치하게 진술하는 주요사항의 요지는, 피고인이 1989.9.8. 22:20경부터 22:30경까지 사이에 동해시 삼화동 소재 피해자의 집으로 찾아와, 잠을 자다가 일어난 피해자에게, 그녀의 남편인 공소외 1이 술에 취하여 제방뚝에 쓰러져 있는데 집에 가자고 해도 오지 않으니 함께 가서 데리고 오자면서, 피해자를 삼화동 10통 4반 소재 삼화국민학교 뒤 제방뚝 밑으로 유인해 가 그 곳에서 신발을 잃어 버렸다면서 찾는 척 하다가 갑자기 그녀를 끌어안고 옆으로 밀어 넘어뜨린 다음, 손으로 그녀의 목을 조르고 주먹만한 돌멩이를 집어 들고 죽인다면서 겁을 주는 등 하여 그녀의 반항을 억압하고 강제로 그녀를 1회 간음하여 강간하고, 그로 인하여 그녀로 하여금 요치 10일 간의 좌측두부좌상 등을 입게 하였다는 것으로 일관되고 있고, 다만 현장에서의 피해입은 구체적 과정이나 그 이후의 자신의 행동에 관한 지엽적인 부분에 제1심의 지적과 같이 다소 불일치하는 점이 있기는 하나, 피해자가 그 진술하는 바와 같은 경위로 강간을 당하였다면, 당시 피해자로서는 공포와 경악에 휩싸여 제정신을 차릴 수 없는 상태에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후일 피해자가 돌이켜 생각하고 싶지도 않을 그 범인의 범행경위를 기억하여 여러 차례 반복 진술함에 있어서는 세부적인 부분에서 그 내용이 다소 엇갈릴 수도 있으리라는 것은 우리의 경험상 충분히 상정할 수 있는 일이므로, 피해자의 진술이 위와 같은 부분에 있어서 다소 엇갈린다는 점만으로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주요사항에 관한 일관성에도 불구하고 그 신빙성을 의심하는 사유로 삼을 수는 없다.

나. 증인 신현숙, 공소외 2의 제1심 공판정에서의 진술과 같이 피해자가 피고인으로부터 강간을 당하였다고 하는 다음날 강간범인이라는 피고인의 처인 공소외 2와 피해자가 나란히 함께 옷을 사려고 신현숙의 양품점에 나타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통상의 강간피해자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거동일 것이다. 그러나 증인 신현숙, 진영자의 원심 공판정에서의 각 진술과 검사가 1992.3.6. 작성한 양인에 대한 진술조서의 각 진술기재, 그에 첨부된 장부사본의 기재 등을 종합하면, 피해자는 강간을 당한 다음날인 1989.9.9. 17:00경 시장을 보러 나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외상값을 갚기 위하여 신현숙 경영의 대덕양품점에 들르게 되었고, 그곳에서 신현숙의 권유로 진열된 옷 중에서 상의 한 점을 들고 가게에 딸린 골방에 들어가 입어 보고는 마음에 들지 않아 도로 가게로 나와 옷을 걸어두고 외상값 잔액 9.700원을 지불하였고, 잠시 후 그 곳에 들린 피고인의 처 공소외 2와 우연히 만나게 되자,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피해자로서는 어제의 강간 내용을 경찰에 알려 피고인으로 하여금 처벌을 받게 할 것인지 여부에 관하여 마음을 정하지 못한 상태였으므로, 공소외 2에게 피고인이 전날 밤 귀가한 상황에 대하여서만 간략하게 묻고는 먼저 가게를 나온 사실이 인정되므로, 강간당한 다음날 피해자가 양품점에 피고인의 처와 동행하여 나타났었다는 신현숙 공소외 2의 제1심 공판정에서의 진술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고, 피해자는 옷을 사기 위하여 양품점에 들렀다기 보다는 귀가길에 외상값을 갚기 위하여 양품점에 들렀던 것으로 보이며, 그러다가 진열된 옷 중에서 가게 주인이 권하는 상의 한 점을 들고 가게에 딸려 있는 골방에 들어가 입어 보았을 정도였으므로, 당시 골방 바깥의 매장안에 있던 신현숙이나 공소외 2가 피해자의 상체에 나 있던 상처를 쉽사리 발견할 수도 없었을 터이니, 피해자의 거동이 위와 같은 정도이었다면 강간 피해자로서의 행동으로서 심히 납득하기 어려운 바도 아니다(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상황에서 신현숙이 제1심이나 원심 공판정에서 당시 피해자의 몸에서 상처를 보지 못하였다고 한 진술은 피해자의 몸에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상처가 없었다는 사실에 대한 적극적 입증자료로서는 신빙성이 매우 약하다),

다. 피해자가 강간을 당한 지 이틀 후인 1989.9.10. 23:00경 피고인을 무릉계곡 산장휴게소로 불러내어 그 곳 화장실 근처에서 30분 내지 1시간 가량 이야기를 주고 받았으며, 2시간 가까이 걸리는 인적 드문 산길을 걸어 함께 내려오다가 도중에 또다시 피고인으로부터 강간당하였다는 부분도 강간 피해자의 거동으로서는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아니하나, 피해자의 원심 공판정에서의 진술에 의하면, 피해자는 남편과 평소 절친한 친구인 피고인으로부터의 강간이라는 상식으로 수용하기 힘든 일을 당하게 되자 자괴심으로 인하여 남편을 대하기가 두려웠고, 또한 평소 남편과 절친하면서 성격도 얌전하던 피고인으로부터 당한 연유가 납득이 가지 아니하여 마음에 갈피를 잡지 못한 상태에서 피고인을 만나 특별한 이유의 유무를 알아 보려고 조용한 산장으로 피고인을 불러 내었고, 대화를 나눈 후 교통편이 끊겨 먼 길임에도 불구하고 걸어 내려오게 되었다는 것인바, 당시 피해자로서는 남편 친구로부터의 강간사실을 알고난 후 남편이 받을 충격과 그것이 가정의 평화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므로, 남편이나 외부 사람들에게 강간사실을 섣불리 알리지 못한 채 이 일을 경찰에 알려 피고인으로 하여금 처벌을 받게 할 것인지, 아니면 남편과 피고인의 우정에 금이 가지 않도록 하고, 양쪽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비밀로 묻어둘 것인지 번민한 흔적을 역력히 찾아볼 수 있어,비록 강간을 당한 가정주부의 거동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면이 있기는하나, 지나가던 불량배가 아닌 남편과 절친한 친구로부터 강간을 당하였다는 이례적 상황에서 보게 되면, 피해자의 거동에 수긍이 가는 다른 측면도 없지 않다고 할 것이므로, 이와 같은 피해자의 납득하기 어려운 거동을 들어 피해자가 한 진술의 신빙성을 탄핵할 이유로 삼기에는 부족하다.

라. 피해자가 무릉계곡에서 피고인을 만나고 내려온 1989.9.11. 23:00경 손윗동서인 공소외 3과 함께 있던 자리에서 비로소 남편 공소외 1에게 처음으로 피고인으로부터 강간사실을 고백하였다는 것이고, 이에 접한 공소외 1은 펄펄 뛰다가 24:00경 피해자와 공소외 3을 대동하고 피고인의 집으로 찾아갔으나, 피고인이 술에 취하여 자고 있다는 처와 어머니의 말을 듣고 그냥 물러 나왔다는점도 강간 피해자 및 그 가족의 거동으로서는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아니하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증인 공소외 1, 공소외 3의 원심 공판정에서의 각 진술에 의하면, 피해자의 남편인 공소외 1로서도 처가 친한 친구로부터 강간을 당하였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고 놀라움, 분함, 배신감에 휩싸인 채 피고인의 집을 방문하였으나, 피고인의 어머니와 처가 울면서 사정을 하고, 동네가 창피하기도 하여 형수인 공소외 3 등이 말리는 데 따라 법에 호소하기로 마음을 고쳐 먹고 그날 밤에는 피고인을 깨우지 아니한 채 순순히 피고인의 집을 물러 나왔다는 것인바, 피해자의 남편으로서 공소외 1이 처음 느낀 분노의 감정에서 이해하자면 술에 취해 잠잔다는 피고인의 어머니와 처의 말에 그대로 물러서 피고인을 깨우지 조차 아니하였다는 거동은 매우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는 하겠으나, 한편 평소 절친하던 친구의 어머니와 처 등의 애절한 호소와 형수의 만류 속에서 공소외 1이 분노를 삭이고 이성을 되찾아 정당한 법적 절차를 밟아 억울함을 호소하기로 마음을 되돌림으로써, 피고인을 깨워 물리적 충돌에 가까이 가는 더욱 불행한 사태를 미리 막고 순순히 되돌아 나와 다음날인 1989.9.12. 피해자에 대한 진단서를 발부받아 형인 공소외 4를을 통하여 관할 경찰관서에 이 사건 범행을 신고함으로써 이 사건 수사를 개시하게 한 사정 속에서 보자면, 그와 같은 거동을 수긍하지 못할 바도 아니라 하겠으므로, 피해자 부부의 위와 같은 거동을 들어 피해자가 한 진술의 신빙성을 탄핵할 사유로 삼기에도 부족하다.

마. 이렇게 볼때, 피해자의 경찰 이래 원심 공판정에 이르기까지의 위 진술은 그 신빙성이 충분하고, 위 피해자의 진술에다가, 피고인과 피해자에 대한 거짓말탐지기시험결과는 접어두고라도, ① 공소외 3, 전찬국, 이은자의 수사기관과 제1심 및 원심 공판정에서의 각 진술에 의하면, 이은자가 범행당일 밤 12:00경 피해자로부터 전화를 받고 집으로 오라고 하였더니 그 다음날 새벽 피해자가 찾아와 피고인에게 강간당할 뻔 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몸에 있던상처를 보여 주었는데 그때 피해자의 양쪽 볼이 부어있고 양쪽 팔 안에 깨물린 자국이 있는 등 상해부위를 직접 보고 확인하였고, 전찬국, 공소외 3이1989.9.11. 10:20경 위 무릉계곡 산장휴게소 2층 방안에서 술을 마시는데 피고인이 오기에 공소외 3이 강간 사실을 추궁하자 처음에는 이를 부인하였으나 피고인의 양쪽 바지를 올려 보니 무릎에 상처가 있어서 이를 추궁하자 피고인이 눈물을 흘리면서 범행을 자인하고 용서를 빈 사실이 있었음이 인정되는 점, ② 피해자의 동서인 공소외 3이 이 사건 범행일로부터 3일 후 피해자와 함께 이 사건 범행현장을 둘러보러 갔다가 금색라이타 1개를 돌 틈에서 발견하고 이를 경찰에 제출하였는데 피고인도 그 라이타가 자신의 것임을 시인하고있는 점, ③ 의사 박영식 작성의 피해자에 대한 진단서의 기재내용 및 그 기재 중의 이은자가 확인하였다는 위에서 본 피해자의 일부 상해 부위가 일치하는 점, ④ 피해자의 딸 공소외 5의 원심 공판정에서의 진술에 의하면, 이 사건 당일인 1989.9.8. 밤늦게 피해자가 귀가한 후 피고인이 비와 흙에 범벅이 된 옷을 입은 채 피해자의 집으로 피해자를 찾으러 나타난 사실이 있었음이 인정되는 점 등을 종합 고찰하여 보면, 이 사건 공소사실은 이를 인정하기에 충분하다(제1심은 이 사건 범행시간에 대하여, 피해자는 그날 저녁 21:00경 잠을 자고 있는데 피고인이 22:20경 술에 취한 채 찾아와서 피해자를 이 사건 범행장소로 유인하여 강간하였다고 진술하나, 오세윤·홍동표·이종관· 공소외 2· 공소외 6·이옥순의 각 진술을 종합하면 피고인은 피해자가 진술하는 위 시각에는 그 범행현장에 없었음이 분명하다고 설시하고 있는바, 피고인과 범행당일 23:00경까지 함께 술을 마셨다는 회사 동료들이나 피해자가 진술하는 시간은 그들이 각 그때마다 시계를 봐 가면서 확인하고 기억해 둔 것으로는 보여지지 아니하므로 이는 대략적인 시간을 말하는 것이어서 다소간의 오차가 있을 수 있고, 특히 피해자는 잠을 자다가 갑자기 피고인이 찾아와 경황이 없는 중에 피고인을 따라 나서게 된 점에 비추어 그녀의 시간에 대한 진술이 반드시 정확하다고는 보기 어려우므로, 과연 이 진술들을 토대로 하여 피고인의 현장 부재 변소의 진위를 가리기는 어렵다고 보여져 이런 점에서 시간에 관한 확실성이 결여된 증거들을 기초로 피고인의 현장부재증명을 가볍게 받아들인 제1심의 조처는 수긍할 수 없다),

2. 형사재판에 있어서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하는바,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할 수 있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할 것이므로, 이와 같은 증명력을 가진 증거가 없다면 설사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원심판결이 들고 있는 증거들을 기록과 대조하여 검토하여 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증거가치의 판단은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은 점들에 비추어 볼 때 논리와 경험법칙에 맞는 합리적인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가. 피해자의 진술에 대하여.

피해자는 사법경찰리가 제2회 진술조서를 작성할 때에는, 피고인에게 강간을 당한 후 상의는 브래저만 하고 하의는 치마와 팬티를 입은 채 집으로 돌아와 팬티에 정액이 묻어 있는지를 확인하지 아니하고 빨았다고 진술하였다가(수사기록 27면 뒷쪽), 검사가 제2회 진술조서를 작성할 때에는, 팬티를 입지 않고 돌아왔는데 팬티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고 진술하여 앞서 한 진술을 번복한 이래(수사기록 200면) 원심 공판정에 이르기까지 계속하여 같은 취지로 진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바, 피해자가 원심이 판시한 바와 같이 강간을 당한 공포와 경악에 휩싸여 세부적인 부분을 빠뜨리고 진술하지 아니하거나 지엽적인 부분에 관하여 다소 내용이 엇갈리게 진술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피해자가 이 사건 범행의 경위에 관하여 일관되지 않게 진술하고 있는 다른 부분들은 제쳐 두더라도, 피고인과의 성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할 수 있는 유력한 물적 증거가 될 수 있는 팬티에 관하여 사법경찰리 앞에서 위와 같이 구체적으로 한 진술을 번복하는 것은, 원심이 판시한 바와 같은 피해자의 심리상태를 감안하더라도 피해자의 진술에 대한 신빙성을 의심할 만한 사유가 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나. 피해자와 그의 남편인 공소외 1의 거동에 대하여.

(1) 증인 신현숙의 원심 공판정에서의 진술과 검사가 1992.3.6. 작성한 피해자에 대한 진술조서 중 신현숙의 진술기재에 의하면, 신현숙은 피해자가 피고인의 처와 동행하여 위 양품점에 온 것은 아니고 그날 피해자가 옷을 사지도 않았다고 진술하여 제1심 공판정에서와 다소 다르게 진술하고 있음은 원심이 판시한 바와 같지만, 피해자가 위 양품점 내에서 사려는 옷을 입어 보기 위하여 상의를 벗은 것을 직접 보았다는 것을 비롯한 나머지 진술내용은 수사기관과 제1심 공판정에서의 진술과 대동소이하고, 또 피해자도 제1심 공판정에서는 자기가 1989.9.10. 위 양품점에서 상의를 벗고 슬립만 걸친 상태에서 사려는 옷을 입어 보고 하였는데 그때 신현숙이 자신의 상처를 보지 못한 것은 자신의 뒤를 보지 않고 앞쪽만 보았기 때문인 것 같다는 취지로 진술하여(공판기록 88면), 신현숙이 보는 데에서 옷을 갈아입은 사실을 시인하는 듯이 진술한 바 있으므로, 신현숙과 피해자가 1992.3.6. 검사 앞에서 한 진술이나 원심 공판정에서 한 진술만을 가지고 피해자가 위 양품점에 들러 옷을 입어본 경위가 원심이 인정한 바와 같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원심이 인정한 사실에 의하더라도 피해자가 강간을 당하였다는 다음날인 1989.9.9.에 단지 외상값을 갚을 목적으로 위 양품점에 들려 그곳에서 옷을 갈아입어 보았다는 것은, 강간을 당하여 상처를 입고 9.12.에는 그 상처를 치료받기 위하여 병원에 입원까지 하였다는(수사기록 8면, 110면, 공판기록 455면) 피해자의 거동으로서는 여전히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 피해자가 강간을 당한 이틀 후인 1989.9.10. 23:00경 동해시내에서 약 4km 이상 떨어진 인적이 드문 무릉계곡 산장휴게소로 강간범인이라는 피고인을 불러내어 30분 내지 1시간 동안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은, 설사 원심이 판시한 바와 같이 피해자가 남편과 평소에 절친한 친구이고 성격도 얌전하던 피고인으로부터 강간을 당한 것을 납득할 수 없어서 번민한 끝에 피고인을 조용히 만나 강간을 한 이유를 따져보기로 작정한 끝에 취한 행동이라고 하더라도, 강간을 당한 피해자로서는 좀처럼 취하기 어려운 거동임이 경험법칙상 명백하므로, 이와 같은 사정을 피해자의 진술의 신빙성에 대한 탄핵사유로 삼는 것이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

(3) 피해자의 남편으로서 피해자가 강간당한 사실을 알게 된 공소외 1이 피해자와 자기의 형수인 공소외 3을 대동하고 피고인의 집으로 찾아갔다가, 피고인이 술에 취하여 자고 있다는 피고인의 처와 어머니의 말을 듣고, 피고인을 깨워 강간 여부와 그 경위를 추궁하지도 아니한 채 그냥 물러나왔다는 것은, 원심이 판시한 바와 같이 공소외 1이 평소 절친하던 친구의 어머니와 처가 애절하게 호소하고 공소외 3이 만류하여 법적 절차를 밟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처가 강간당한 사실을 알고 그 강간범인을 찾아나선 남편의 거동으로서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면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다. 전찬국·이은자· 공소외 3· 5 등의 진술에 대하여.

피고인은 전찬국과 피해자의 남편인 공소외 1이 의형제를 맺은 사이라고 진술하고 있는바, 사법경찰리 작성의 이은자에 대한 진술조서의 진술기재에 의하면 피해자가 전찬국을 “삼촌”이라고 호칭하였음을 알 수 있는 점(수사기록 93면 뒷쪽), 피해자가 맨처음 강간당한 사실을 고백한 상대방이 이은자라는 점등을 감안하여 본다면, 전찬국·이은자 부부는 공소외 1·피해자 부부와 평소 형제처럼 가깝게 지내는 사이인 사실이 인정되고, 공소외 3은 피해자와 동서간이며, 공소외 5는 피해자의 딸이라는 것이므로, 그들이 수사기관이나 제1심 또는 원심 공판정에서 한 각 진술은 피해자측에 유리하게 된 것이라고 볼 여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아래 마항에서 보는 증거들에 비추어 보면 신빙성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라. 압수된 금색라이타(증 제1호)의 현존사실과 의사 박영식 작성의 피해자에 대한 진단서의 기재에 대하여.

피고인은 당초부터 위 라이타가 자기의 것이기는 하지만 약 1개월 전에 잃어버렸다고 진술하고 있고(수사기록 54면, 73면) 피고인의 이와 같은 진술은 증인 공소외 6의 수사기관 이래 원심 공판정에 이르기까지의 진술에 의하여 뒷받침되고 있으므로, 위 라이타를 발견하게 된 경위에 관한 공소외 3과 피해자의각 진술이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인정되지 않는 한 위 라이타의 현존사실만으로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고, 의사 박영식 작성의 피해자에 대한 진단서의 기재내용도 피해자와 피해자의 상처를 확인하였다는 이은자의 각 진술이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면 이 사건 공소사실과 관련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마. 한편 증인 오세윤·이종관· 공소외 6 등은 수사기관과 제1심 또는 원심 공판정에서 일관하여,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당일인 1989.9.8. 17:30경 피고인과 오세윤 및 이종관 등이 함께 근무하던 운수회사에서 퇴근한 후부터 줄곧 회사의 동료인 오세윤·이종관 등과 함께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술을 마시다가 만취하여 공소외 6이 종업원으로 있는 용궁술집에서는 구토를 하고 넘어지는 등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가 되자, 오세윤과 이종관이 23:00경 피고인을 양 옆에서 부축하고 위 술집을 나와 피고인의 집 앞 골목까지 데려다 주었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바, 설사 피고인이 위 용궁술집에서 나왔다는 시각에 관한 위 증인들의 진술이나 이 사건 범행시각에 관한 피해자의 진술이 정확한 것이 아니어서, 위 증인들의 각 진술이 원심이 판시한 바와 같이 시간적으로 틀림없는 현장부재증명이라고는 단정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같은 날 밤에 피고인이 피해자의 집에 찾아가서 피해자를 불러내어 이 사건 강간범행을 저질렀다면, 피고인이 오세윤 및 이종관과 헤어진 후에나 가능할 것임이 분명하므로, 당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만취상태였다는 피고인이 과연 피해자가 진술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이 사건 강간범행을 저지를 수 있었을 것인지 극히 의심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위와 같은 증거들만에 의하여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였으니, 원심판결에는 형사재판에 있어서의 증거의 증명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 채증법칙을 위반하여 사실을 잘못 인정한 위법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고, 이와 같은 위법은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임이 분명하므로, 이 점을 지적하는 논지는 이유가 있다.

4.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사건을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어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윤관(재판장) 최재호 김주한 김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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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급 사건
-서울고등법원 1991.6.7.선고 90노4118
-서울고등법원 1992.5.8.선고 91노4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