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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1993. 6. 25. 선고 93다9200 판결
[토지소유권이전등기][공1993.9.1.(951),2106]
판시사항

가. 소송위임장의 제출이 민사소송법 제241조 제2항 소정의 “기일지정의 신청”에 해당하는지 여부(소극)

나. 종중재산의 관리에 관한 관습

판결요지

가. 소송위임장을 제출한 것만으로는 민사소송법 제241조 제2항 이 정한 “기일지정의 신청”이라고 볼 수 없다.

나. 종중 소유의 토지를 종손에게만 명의신탁하여야 한다는 관습도 존재하지 아니하고 종중재산의 관리권이 종손에게만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종중재산을 종손 아닌 종원에게 명의신탁함이 관습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다.

원고, 상고인겸 피상고인

해주오씨 참판공(상언)파 종중 소송대리인 변호사 서정우

피고, 피상고인

피고 1 외 1인

피고, 상고인

피고 3 외 1인 피고들 소송대리인 변호사 차상근

주문

원심판결 중 원고 패소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광주고등법원에 환송한다.

피고 4, 피고 3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이 부분 상고비용은 같은 피고들의 부담으로 한다.

이유

각 상고이유에 대하여

1. 피고 4, 피고 3의 상고이유를 본다.

원심이, 위 피고들이 원심에 소송위임장을 제출한 것만으로는 민사소송법 제241조 제2항 이 정한 ‘기일지정의 신청’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은 옳고 , 거기에 소론과 같은 위법은 없으므로, 논지는 모두 이유가 없다.

2. 원고의 상고이유를 본다.

가. 원심판결 이유의 요지

(1) 망 소외 1 앞으로 소유권보존등기 또는 소유권이전등기가 마쳐져 있던 이 사건 각 부동산에 관하여 1963.10.29. 소외 2, 소외 3, 소외 4, 소외 5, 소외 6, 소외 7, 소외 8, 소외 9, 소외 10, 소외 11, 소외 12 앞으로 상속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었고, 그날 위 소외 4와 소외 9를 제외한 나머지 9명의 지분 ½씩이 위 소외 4와 소외 9에게 이전됨으로써 위 소외 4는 30분의 16지분을, 위 소외 9는 30분의 14지분을 각 소유하게 된 사실, 그 후 소외 9의 지분에 관하여는 1976. 4. 14. 피고 1, 피고 3, 피고 4 소외 13 앞으로, 위 소외 4의 지분에 관하여는 1977. 9. 2. 피고 2 앞으로 각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된 사실, 위 소외 13의 지분이 1989. 7. 15. 피고 1에게 이전됨으로써 같은 피고의 지분이 30분의 8로 된 사실, 원심판결 첨부 별지목록 1, 3, 4, 5항 기재 토지는 전북 완주군 (주소 1 생략)임야 9단 5무보에서 분할된 후 행정구역과 지목이 변경된 것이고, 같은 목록 2항 기재 토지는 위 (주소 2 생략) 임야 2단 8무보에서 분할되어 행정구역이 변경된 것이며, 같은 목록 6, 7항 기재 토지는 위 (주소 3 생략) 임야 2,827평에서 분할된 후 행정구역이 변경된 것임을 인정할 수 있다.

(2) 원고 종중은 이 사건 청구원인으로서, 원고 종중원들이 200여 년 전에 성금을 갹출하여 이 사건 부동산을 매수한 후 선대들의 분묘를 설치하는 등 선산으로 조성하였고, 1936. 11. 18. 그 소유 명의를 종원인 소외 1에게 신탁하였다가 동인이 1962. 4. 15.사망하여 1963. 10. 15. 일단 그의 상속인들인 소외 2 등 11인 앞으로 상속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후 그들에게 위 명의신탁을 해지하고 다시 종원인 소외 4, 소외 9에게 위 지분 비율로 명의신탁하였는바, 피고 2는 위 소외 4의 상속인으로서, 피고 1, 피고 3, 피고 4, 소외 13은 위 소외 9의 상속인들로서 각 위 소외 4와 소외 9의 이 사건 토지의 명의수탁자인 지위를 승계하였고, 원고 종중은 피고들에게 위 명의신탁계약을 해지하였으므로, 이를 원인으로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의 이행을 구한다고 주장한다.

(3) 그러므로 먼저 이 사건 부동산이 원고 종중의 소유로서 위 소외 1이나 소외 4와 소외 9에게 명의신탁된 것인지 여부를 본다.

(가) 이에 부합하는 증거들로는 위 갑 제6호증, 갑 제16호증 및 갑 제10호증의 1, 2(각 명의신탁 해제통지), 갑 제11호증의 1, 2(확인서, 갑 제11호증의 1은 갑 제22호증의 2와 같다), 갑 제13호증, 갑 제25호증의 1, 2, 갑 제27호증(각 사서증서인증서), 갑 제26호증의 1(서면결의서), 갑 제14호증의 1, 갑 제21호증의 2, 갑 제22호증의 1, 갑 제30호증의 4(각 고소장), 갑 제15호증, 갑 제17호증의 1(묘지신고서, 갑 제18호증의 1과 같다), 2(분묘신고서, 갑 제18호증의 2와 같다), 갑 제19호증의 2, 갑 제20호증의 1(매매계약서), 3(평면도), 갑 제24호증의 1(위토대장사본 발급의뢰에 대한 결과통보), 2(위토대장사본), 갑 제30호증의 3(의견서), 5 내지 10, 12 내지 15, 17(각 진술조서), 19, 20(각 피의자신문조서), 갑 제31호증의 9(보완신청), 10(세부현황)의 각 기재와 제1심 증인 소외 14, 소외 15, 소외 16, 소외 17, 소외 18, 소외 19, 소외 20의 각 증언이 있다.

(나) 그러므로 위 증거들을 검토하기로 한다.

① 먼저 위 증인 소외 14의 일부 증언과 위 갑 제13호증, 갑 제20호증의 3의 각 기재를 보면, 이 사건 부동산에 원고 종중의 시조인 소외 21의 분묘를 비롯하여 원고 종중원들 또는 그 배우자의 분묘 합계 20기가 있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나, 원고 종중의 시조 분묘가 이 사건 부동산에 있다는 사실만으로써 곧바로 이 사건 부동산이 원고 종중의 소유라고 인정할 수 없다(원고 종중의 주장에 따르더라도, 이 사건 부동산에는 위 소외 21의 선대들의 분묘들도 있어, 이 사건 부동산이 위 소외 21을 시조로 하는 원고 종중의 소유라고 보기도 어렵다).

② 갑 제17호증의 1, 2, 갑 제20호증의 1, 4, 갑 제30호증의 7, 12의 각 기재와 위 증인 소외 18, 소외 20의 증언에 따르면, 소외 22가 원고 종중의 대표자로서 위 별지목록 6항 기재 토지 중 50평을 1963. 11. 2. 소외 20에게, 밭으로 개간된 200여평을 1963. 12. 15. 소외 23에게 각 매도하였고, 위 소외 20은 매수한 토지에 자기 선친의 분묘를 설치하였는데, 위 소외 20과 소외 18이 위 토지의 매매 당시 위 토지는 오씨 선산이라고 들었으며, 위 소외 20이 그 분묘를 신고할 때 묘지를 오씨 선산이라고 기재하였다는 것인바, ㉮ 시조를 비롯한 선대들의 분묘가 있는 위 토지의 일부에 종원 아닌 다른 사람의 분묘를 설치하라고 그 일부를 매각하였다거나 분묘 1기를 위하여 50평을 매수하였다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점, ㉯ 위 소외 23은 200여평을 매수하였고 위 소외 20은 50평을 매수하여 선친의 분묘를 설치하였다가 곧바로 다른 곳으로 이장하였다는 것인데도, 그 소유권이전등기나 이장 후의 대가 반환 등 권리관계에 관하여 아무런 주장이 없는 점, ㉰ 위 토지의 매매대금으로 위 소외 20은 돈 7,000원을, 위 소외 23은 백미 1가마 5말을 지급하였다는 것이나, 그 대가의 균형에 비추어 쉽사리 납득할 수 없는 점(위 매매 당시는 화폐개혁 직후로서 돈 7,000원은 상당히 고액임이 명백하다), ㉱ 위 매매계약서에 위 토지가 원고 종중의 소유임을 표시한 바 없는 점, ㉲ 위 소외 20과 매매계약을 체결한 때 종중의 승락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위 소외 4를 참여시켰다는 것이나, 위 갑 제30호증에는 위 소외 22가 위 소외 4의 도장이 찍혀 있는 매매계약서를 가지고 왔다고 기재되어 있어 서로 모순되는 점, ㉳ 앞서 본 바와 같이 당시 위 토지는 소외 1 명의로 등기되어 있었음에도 소유관계를 문의하거나 이의를 제기한 흔적이 전혀 없었던 점에 비추어, 위 자료들을 위 토지가 원고 종중의 소유라는 점을 인정할 증거로 삼기에는 부족하다.

③ 갑 제24호증의 1, 2에는, 소외 1 소유인 전북 완주군 (주소 4 생략) 전, (주소 5 생략) 전에 대하여 위토인허신청을 하여 위토대장에 등재되어 있다고 기재되어 있으나, 이로써는 위 소외 1이 자기 소유인 위 토지들을 위토로 제공하여 그 인허를 받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 뿐이고, 더 나아가 원고 종중의 주장사실을 인정할 수는 없다.

④또한 ㉮ 갑 제10호증의 1, 2, 갑 제14호증의 1, 갑 제15호증, 갑 제19호증의 2, 갑 제21호증의 2, 갑 제22호증의 1, 갑 제25호증의 1, 2, 갑 제26호증의 1, 갑 제27호증, 갑 제30호증의 4, 갑 제31호증의 9, 10의 각 기재 및 위 갑 제6, 16호증의 각 일부 기재(앞에서 채용한 부분은 제외)는 모두 이 사건 소송의 제기를 전후하여 원고 종중의 대표자나 그의 동생인 소외 14 등이 작성한 것이고, ㉯ 갑 제11호증의 1, 2, 갑 제30호증의 5, 6, 8, 9, 10, 13, 14, 15, 17, 19, 20의 각 기재와 위 증인 소외 14, 소외 15, 소외 16, 소외 17, 소외 19의 각 증언(증인 소외 14의 증언 중 앞에서 채용한 부분은 제외)은 이 사건 부동산이 원고 종중의 선산임을 들어서 안다거나 그렇게 알고 있다는 진술 또는 이러한 진술을 기재한 것들로서 모두 그 신빙성이 박약할 뿐만 아니라, ㉰ 위 갑 제1호증의 1, 2, 3, 갑 제2호증의 1 내지 7, 갑 제9호증의 2 및 각 성립에 다툼이 없는 갑 제4호증의 1 내지 4(각 제적등본), 을 제8, 9호증의 각 1, 2(각 등기부등본)의 각 기재와 변론의 전취지에 의하여 인정되는 아래의 사실들 즉, 이 사건 부동산 중 위 별지목록 6, 7항 기재 토지의 분할 전 토지인 전북 완주군 (주소 3 생략) 임야는 원래 1936. 11. 6. 소외 1, 소외 24, 소외 25의 공유로 사정받았다가 위 소외 24, 소외 25의 지분이 위 소외 1에게 이전됨으로써 위 소외 1의 단독소유로 된 사실, 이 사건 부동산을 명의신탁받았다는 위 소외 1은 원고 문중의 시조인 위 소외 21의 손자 소외 26의 둘째 아들 소외 27의 손자로서 종손이 아닌 사실(원고 종중은 1992. 5. 27.자 준비서면에서 위 소외 1은 소외 28의 사생아인데 그를 사촌인 소외 29의 장자로 입적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외 9는 호적에 위 소외 1의 5남으로 등재됨과 동시에 소외 22(위 소외 26의 넷째 아들 소외 30의 손자임)의 장남으로서 2중 등재된 사실, 원고 종중이 그 소유라고 주장하는 토지 외에도 전북 완주군 (주소 6, 7 생략) 토지에 관하여도 이 사건 부동산과 같이 위 소외 1, 그의 상속인들 11인, 소외 4와 소외 9 앞으로 등기가 경료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원고 종중이 200여 년 전에 이 사건 부동산을 매수하여 선산으로 조성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또한 시조의 분묘가 있는 이 사건 부동산을 종손이 아닌(더구나 원고의 주장에 따르면 적손이 아니라 사생아에 불과한) 위 소외 1 단독 명의로 사정받게 하거나 그가 사망한 후 위 명의신탁을 해지하고 다시 명의신탁을 하면서 당시 종손인 소외 31이 생존하고 있었는데도 여전히 위 소외 1의 상속인들인 소외 4, 소외 9 2명(위 소외 9가 호적에 위 소외 1의 5남으로도 등재되어 있음은 앞서 본 바 있다)에게만 그 명의를 신탁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임에 비추어 이를 믿기 어렵다.

(다) 따라서, 이 사건 부동산이 원고 종중의 소유로서 위 소외 1 및 그의 상속인들인 소외 4, 소외 9에게 명의신탁되었음을 전제로 한 원고의 이 사건 청구 중 피고 1, 피고 2에 대한 부분은 이유가 없다.

나. 당원의 판단

(1) 과연 원심이 원고 종중의 주장에 부합하는 증거들을 배척한 이유가 합당한지 여부를 살피기로 한다.

(가) 원심의 배척 이유 ①항에 대하여

① 원심이 채용한 갑 제13호증의 기재를 보면, 원심판결 첨부 별지목록 6항 기재 부동산에는 원고 종중의 시조 소외 21 부부의 분묘, 소외 21 선대(모, 조부모, 증조부모)의 분묘 5기 이외에도 소외 21의 5대손, 6대손 부부, 7대손, 다른 7대손의 처(소외 28, 소외 22 부부, 이 사건에서 문제로 된 소외 9, 소외 14의 처; 차례로 원고 종중의 대표자인 소외 33의 조부, 부모, 큰형, 제수이다)의 분묘가 있고, 위 별지목록 1항 기재 부동산에는 위 소외 21의 선대 부부(정실부인), 동생 부부, 며느리, 7대손 소외 5(위 소외 1의 3남), 7대손 소외 11(위 소외 1의 4남)의 처의 분묘가 있으며, 위 별지목록 2항 기재 부동산에는 위 소외 21의 백부모의 분묘가 있음을 알 수 있고, 한편 위 갑 제13호증의 일부인 가승(가승; 기록 194장)과 원심이 채용한 갑 제9호증의 2의 각 기재에 따르면, 위 소외 21의 손자 소외 26의 차남 소외 27의 가계(가계)는 소외 29, 위 소외 1, 소외 32 형제들(소외 32, 위 소외 4, 소외 5, 소외 11)로 이어져 왔고, 위 소외 26의 4남 소외 30의 가계는 소외 28, 소외 22(일명; ○○○), 위 소외 9 형제들(위 소외 9, 소외 33, 소외 14와 소외 34; 위 소외 9의 신분에 대하여는 아래에서 따로 살핀다)로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위 부동산들에는 원고 종중의 공동 시조인 소외 21과 그 선조들의 분묘 및 그 후손들 중 특히 원고 종중의 대표자(피고 2와는 9촌 간이다) 가계에 속하는 사람들의 분묘가 많이 있는 반면, 이 사건 부동산의 최초 등기명의인인 소외 1 가계에서는 오직 그의 3남과 며느리(4남의 처)의 분묘만이 있을 뿐이므로, 위 부동산들은 망 소외 1 개인 소유라기보다는 원고 종중의 소유라고 봄이 사리에 합당하다 할 것이다.

② 원심은 “원고 중종의 주장에 따르라도 이 사건 부동산에는 위 소외 21의 선대들의 분묘들도 있으므로, 이를 위 소외 21을 시조로 하는 원고 종중의 소유라 보기도 어렵다.”고 판시함으로써, 이 사건 부동산을 원고 종중의 공동시조보다 더 선대를 공동 시조로 하는 어느 종중(원고 종중으로 보면 대종중)의 소유로 보고 있는 듯하나, 위 갑 제13호증의 기재{위 소외 14가 제1심에 제출한 호소문(기록 392장)도 참조}에 따르면, 위 부동산들에 있는 분묘들 중 가장 선대인 위 소외 21의 증조부모의 분묘는, 원고 종중이 1974. 5. 경 원래의 소재지인 소외 35 소유의 전북 김제군 (주소 8 생략)에서 이 사건 부동산에 이장하여 관리중인 사실을 알 수 있는바,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보더라도 원심이 위 사정만으로 원심과 같은 결론을 도출한 것은 아무래도 무리라고 하겠다.

(나) 원심의 배척 이유 ②항에 대하여

① 그중 ㉮항에 대하여

위 갑 제17호증의 1은 소외 20이 1971. 6. 18. 전북 완주군 조촌면장에게 제출하여 접수된 묘지신고서의 사본이고 현재 전주시 덕진구 동산동사무소에 보관중인 서류로서, 거기에는 동인이 1967. 6. 3. 오씨 선산(오씨 선산)인 전북 완주군 (주소 3 생략) 토지(위 별지목록 6, 7항 기재 부동산의 분할 전 토지) 중 15평에 분묘 1기를 설치하였다고 기재되어 있다.

만일 소외 20이 위 분묘를 그 기지(기지)의 소유자 몰래 설치하였다면 감히 이러한 신고를 할 수 없었으리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그가 위 신고를 한 것은 위 토지의 소유자에게 내세울 권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봄이 옳고, 그렇다면 동인이 그 기지를 매수하였다는 위 증거들은 믿을 만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바, 원심이 설시한 ‘시조를 비롯한 선대들의 분묘가 있는 위 토지의 일부에 종원 아닌 다른 사람의 분묘를 설치하라고 그 일부를 매각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사정만으로 위 증거들의 신빙성을 배척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할 것이다.

또한 위 소외 20이 위 분묘의 면적을 15평이라고 신고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그가 매수한 면적이 50평이라는 점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② 그중 ㉯항에 대하여

소외 23, 소외 20이 그 각 매수 부분에 대하여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밟지 아니하였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의 매수 사실을 부인함은 너무 이르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위 갑 제20호증의 1의 기재를 보면, 매도인인 소외 22와 매수인인 위 소외 20은 “차 묘지를 후일에 사용 유무는 하등 갑에게 이의가 없다.”는 특약을 맺고 있는바, 이는 ‘소외 20이 매수한 분묘 기지 50평을 후일에 분묘로 사용하지 아니하더라도 매도인에게 아무런 이의를 하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새길 것이므로, 원심이 “위 소외 20은 50평을 매수하여 선친의 분묘를 설치하였다가 곧바로 다른 곳으로 이장하였다는 것인데도, 이장 후의 대가 반환 등 권리관계에 관하여 아무런 주장이 없다.”는 점을 내세워 위 매매사실을 배척한 데에는, 위 특약을 간과함으로써 처분문서인 위 서증의 기재 전체를 배척한 잘못이 있다 할 것이다.

③ 그중 ㉰항에 대하여

분묘 기지의 매매대금은 그 면적보다는 그곳이 분묘의 기지로 적합한지 여부(이른바 ‘명당’인지 여부)로 결정됨이 우리의 관습이라 할 것이므로, 위 밭의 매매대금보다 위 분묘 기지의 매매대금이 훨씬 고액이라는 사정만을 내세워 그 매매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적절하지 아니하고, 따라서 원심의 이 부분 판단에는 분묘 기지의 매매에 대한 관습을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하겠다.

④ 그중 ㉱, ㉲, ㉳항에 대하여

기록을 살피건대 원심이 설시한 대로, ㉠ 위 각 매매계약서인 갑 제20호증의 1, 4에 위 토지가 원고 종중의 소유임을 표시한 바 없고, ㉡ 소외 22가 위 소외 20과 매매계약을 체결할 때 소외 4를 참여시켰는지 여부에 관하여 원고 종중의 주장과 매수인인 소외 20의 진술이 엇갈리며, ㉢ 매수인인 소외 20이 위 토지의 진정한 소유관계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한 흔적이 없기는 하다.

그러나 ㉠ 위 갑 제20호증의 1, 4에 위 토지가 원고 종중의 소유임을 표시한 바 없다 하여 그 기재 자체를 부인함은 무리라고 보이고, ㉡ 소외 22와 소외 20 간의 매매계약서인 갑 제20호증의 1에는 소외 4가 입회인으로 기재되어 있고 그 이름 밑에 동인의 도장이 찍혀 있으므로, 위 서증의 신빙성 유무가 쟁점인 이 사건에서는 위 서명날인 또는 날인이 소외 4 스스로의 의사에 기한 것인지 여부만을 따지면 족할 뿐, 더 나아가 동인이 위 매매계약을 체결할 때 참여하였는지 여부까지 살펴서 그 여부에 따라 위 신빙성의 유무를 결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아니하다 할 것인바, 위 증거들에 따르면 소외 4의 의사에 기하여 위 서명날인 또는 날인이 이루어졌음을 인정하기에 충분하며, ㉢ 위 소외 20은 한결같이 '위 매매에 이르기 전에 비록 공부를 확인하지 아니하였지만 소개인인 소외 36, 위 토지의 관리인인 소외 37, 원고 종중의 대표자인 소외 22가 위 토지의 진정한 소유자가 원고 종중이라고 하므로 그 대표자인 소외 22와 위 매매계약을 체결하였다.'는 것이므로(특히 갑 제30호증의 12 참조), 원심이 설시한 사정만으로 위 매매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하겠다.

(다) 원심의 배척 이유 ③항에 대하여

망 소외 1이 전북 완주군 (주소 5, 4 생략) 토지를 위토로 신고한 사실은 원심이 인정한 바와 같고, 한편 위 갑 제13호증의 일부인 지적도(기록 193장)를 보면, 위 위토들은 원심판결 첨부 별지목록 2항 기재 토지와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고, 위에서 살펴본 대로 위 2항 기재 토지에는 망 소외 1의 직계선조로서 원고 종중의 공동시조 소외 21의 백부모 분묘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위 위토들은 망 소외 1 개인의 선조의 제사를 위하여 제공된 것이 아니라 원고 종중의 공동선조들의 제사를 위하여 제공된 것이라 할 것이고, 따라서 위 별지목록 2항 기재 토지는 망 소외 1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원고 종중의 소유라고 볼 여지가 많으므로, 원심의 이 부분 판단에는 위 위토들과 위 별지목록 2항 기재 토지의 관계에 대하여 심리를 다하지 아니한 잘못이 있다 할 것이다.

(라) 원심의 배척 이유 ④항에 대하여

① 원심이 인정한 대로, 이 사건 부동산 중 위 별지목록 6, 7항 기재 토지의 분할 전 토지인 전북 완주군 (주소 3 생략) 임야는 원래 1936. 11. 6. 소외 1, 소외 24, 소외 25 3인의 공유로 사정받았다가 위 소외 24, 소외 25의 지분이 1936. 11. 16. 위 소외 1에게 이전됨으로써 위 소외 1의 단독 소유로 되었다.

그러나 원심으로서는 이 점만을 들어 위 6, 7항 기재 토지를 원고 종중의 소유로 볼 수 없다고 단정할 게 아니라, 그 경위를 더 심리함이 옳았을 터이다(원고 종중은 상고이유서에서 원래 소외 24, 소외 25와 원고 종중이 위 토지들을 구분하여 소유해 왔지만, 한 필지였기 때문에 공유로 사정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② 원심이 설시한 사정 중 “이 사건 부동산의 명의수탁자라는 위 소외 1은 원고 문중의 종손이 아니므로, 시조의 분묘가 있는 이 사건 부동산을 동인의 단독 명의로 사정받게 하거나, 그가 사망한 후 위 명의신탁을 해지하고 다시 명의신탁을 하면서 당시 종손인 소외 31이 생존하고 있었음에도 여전히 종손 아닌 위 소외 1의 상속인들인 소외 4, 소외 9 2명에게만 그 명의를 신탁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이다.”는 점을 본다.

㉮ 종손 아닌 자에게 종중재산을 명의신탁함은 이례라는 점에 대하여

종중 소유의 토지를 종손에게만 명의신탁하여야 한다는 관습도 존재하지 아니하고, 종중 재산의 관리권이 종손에게만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 당원 1958.1.30. 선고 4290민상736 판결 참조), 종중 재산을 종손 아닌 종원에게 명의신탁함이 관습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다 ( 당원 1966.6.28. 선고 66다704 판결 참조).

㉯ 위 소외 1의 상속인들인 소외 4, 소외 9에게만 두번째의 명의 신탁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이례라는 점에 대하여

위 소외 21의 손자 소외 26의 차남 소외 27의 가계(가계)가 소외 29, 위 소외 1, 소외 32 형제들(소외 32, 위 소외 4, 소외 5, 소외 11)로 이어져 왔고, 위 소외 26의 4남 소외 30의 가계가 소외 28, 소외 22(일명; ○○○), 위 소외 9 형제들(위 소외 9, 소외 33, 소외 14와 소외 34)로 이어져 왔음은 위에서 본 바와 같고, 원고 종중은 위 소외 9가 호적에 위 소외 1의 5남으로 등재된 이유는 그의 국민학교 입학을 위해서였다고 주장하고 있는바(1992. 5. 19. 자 준비서면 3항 참조), 소외 9의 신분이 그러하다면 원심의 판단은 이미 근거를 상실하였다 할 것이고, 오히려 “원고 종중이 이 사건 부동산의 임의 처분을 막기 위하여 위 소외 1의 가계에서 소외 4를, 위 소외 22의 가계에서 소외 9를 뽑아 두번째의 명의신탁을 하였다.”는 내용이 담긴, 원심이 배척한 증거들은 신빙성이 있을 뿐더러 그 내용 또한 이례이기는 커녕 아주 자연스럽다고 하겠다.

③ 이어서 원심이 설시한 사정 가운데 “원고 종중이 그 소유라고 주장하는 토지 외에도 전북 완주군 (주소 6, 7 생략)에 관하여도 이 사건 부동산과 같이 위 소외 1, 그의 상속인들 11인, 소외 4와 소외 9 앞으로 등기가 경료되어 있다.”는 점을 보건대, 원고 종중은 망 소외 1의 재산이 이 사건 부동산뿐이라든가, 동인 명의로 등기되어 있던 재산은 모두 원고 중중의 소유라고 주장한 바 없으므로, 원심의 이 부분 판단에는 이유불비의 잘못이 있다 할 것이다.

(2) 그러므로 원심이 그 설시와 같은 이유로 원고 종중의 주장에 부합하는 증거들을 배척한 데에는, 경험칙에 반한 증거의 취사, 처분문서에 기재된 특약을 간과하여 그 기재 전체를 배척한 잘못, 종중 재산의 관리권과 명의신탁 및 분묘 기지의 매매에 관한 경험칙과 관습의 오해, 아무런 합리적 이유 없이 원고 종중의 주장에 부합하는 증거들을 배척한 잘못, 심리 미진과 이유불비로 인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할 것이고, 따라서 이 점을 탓하는 논지는 이유가 있다.

3. 결론

이에 원심판결 중 원고 패소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되, 피고 4, 피고 3의 상고는 모두 기각하고 이 부분 상고비용은 패소한 위 피고들의 부담으로 하기로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어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김상원(재판장) 박우동 윤영철 박만호(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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