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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1977. 4. 26. 선고 77도210 판결
[살인등][공1977.5.15.(560),10046]
판시사항

자백의 임의성을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피고인이 수사기관에서 한 자백이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이라는 주장을 가볍게 신빙력 있는 것으로 보기 어려우나 피고인이 범행을 한 뚜렷한 동기가 없고 범인이라는 혐의를 받을 수사의 단서도 없으며 피고인의 자백진술이 객관적 합리성이 결여되고 범행현장과 객관적 상황과 중요한 부분이 부합되지 않는 등의 특별 사정이 있는 경우 피고인이 수사기관에서 자백하게 된 연유가 피고인의주장대로 고문이 아니라 할지라도 다소의 폭행 또는 기타의 방법으로 자백을 강요하여 임의로 진술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할 사유가 있다 할 것이다.

피고, 상고인

피고인 1 외 1명

변 호 인

변호사 채원식(피고인 1) 박종헌 (국선 피고인 2)

주문

원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피고인등 및 피고인등 변호인의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원심판결에 의하면 원심은 피고인 1 2는 공모하고 1976.2.28새벽 1시경 같은 동리에 있는 자동차부속품공장 공장장인 피해자 1가에서 위 피해자 1과 그처와 장녀 피해자 2 차녀 피해자 3의 머리를 각 망치(증8호)로 쳐서 살해하고 4세된 그 장남 피해자 4의 배와 목을 눌러 살해한 후 위 범행을 은폐하기 위하여 동가에 방화하여 소훼하였는 바,

위 범죄사실은

1. 검사작성의 피고인등에 대한 각 피의자 신문조서(피고인 1에 대한 1회 신문조서 제외)

2.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서의뢰 기재

3. 수명법관 이병호의 증인 정성욱에 대한 신문조서의 기재

4. 압수된 망치(증 8호) 의복(증9, 10호)

5. 그외 1심판결 이유에 적시된 증거자료 등에 의하여 이를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의 제1심판결의 채증절차가 모두 적법하다는 이유로 피고인등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그러나 원판결에는 다음과 같은 채증법칙에 위배하여 범죄사실을 인정한 위법 사유가 있다.

1. 피고인의 수사기관에서의 자백이 임의로 진술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할만한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어 유죄의 증거로 할 수 없는 증거능력 없는 증거자료를 유죄의 증거로 채택한 위법이 있다.

(1) 이 사건을 수사함에 있어서 수사기관에서 피고인등에게 폭행등으로 이건 범죄사실의 자백을 강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다음과 같은 자료가 있다.

(가) 이사건을 수사한 경찰관 공소외 1은 1심 증언에서 피고인 1을 조사할시 나무가지로 발바닥을 때렸다고 자인하고 있다.

(나) 피고인등은 수사기관에서 잠을 못자게 하였다고 진술하고 있는 바 수사기록(이하 기록 I로 약칭) 71면의 피고인 1의 자백진술서의 기재시간은 76.3.1. 0시50분이고 기록 I의 280면의 진술조서는 3.6 새벽 1시 25분이며 기록 I의 345면의 진술서는 3.6 오후 10시 50분 기록 I의 387면의 진술서는 3.7 새벽 3시 55분등으로 기재되어 있어 피고인등의 진술을 뒷받침하고 있다.

위 (가) (나)의 행위는 경찰에서 있었던 일이기는 하나 이러한 방법으로 피고인 1이 경찰에서 범행을 자백한 것이 검찰에서의 자백에까지 영향을 주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 1심공판시 검사는 피고인 2에 대하여 피고인 1과 공모하여 이건 범죄행위를 한 사실이 있는가 라는 취지의 질문에 대하여 피고인 2는 이건 범행을 한일이 없다고 진술하면서, 피고인 2는 이어서 검찰에서는 일방적으로 서류를 작성하여 읽어 주지도 아니 하였고 범행을 안했다고 하면 때리고 했다고 하면 안 때리고 잠도 못자게 하지 안했느냐고 검사에게 말하자 검사는 현장검증 할 때에도 때리던가 라는 취지로 반문한 진술기재가 있는바, 이는 피고인을 신문할 시에는 때린 사실이 있음을 전제로 하고 현장검증시에는 안 때렸는데 왜 자백을 하였는가 라는 취지의 반문이라고 의심할 만한 사유가 된다고 할 것이다.

(라) 피고인 양인은 1심법원에서 수사기관에서의 자백은 심한 고문으로 인하여 허위 진술한 것이라고 고문당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고 또 검찰에서는 순순히 자백을 아니하면 경찰에 넘겨 고문을 하겠다는 취지로 협박을 하였다고 진술하고 있는바 대저 형사 피고인이 수사기관에서는 범죄사실을 자백하고 나서 법원의 공판시에는 범행을 부인하면서 수사기관에서의 자백을 고문으로 인한 허위진술이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는 경우 이는 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하기 위한 수단으로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므로 피고인의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이라는 주장을 가볍게 신빙력있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할 것이나 아래에 설시하는 바와 같이 피고인등이 이건 범행을 할 동기도 없고 범인이라는 혐의를 받을만한 수사의 단서도 없으며 피고인등의 자백진술이 객관적 합리성이 결여되고 범행현장의 객관적 상황과 중요한 부분이 부합되지 않는등의 특별사정이 있는 이 사건에 있어서는 피고인등의고문등에 의한 허위자백이라는 주장을 믿을 수 없다하여 이를 일률적으로 배척할수는 없다 할 것이므로 피고인등이 수사기관에서 자백하게된 연유가 피고인등이 주장하는 그대로의 고문은 아니라 할지라도 다소의 폭행 또는 기타의 방법으로 자백을 강요하여 피고인등이 임의로 진술한것이 아니라고 의심할만한 사유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피고인등의 검찰에서의 자백진술을 검토하니 피고인등의 진술은 객관적 합리성을 결여하고 범행현장의 상황과 중요한 부분이 서로 상위되어 피고인등이 경험한 사실을 진술한 것으로는 볼 수 없고 범행현장의 상황에 맞추어 추리에 의한 진술을 한 것으로 보여지는 다음과 같은 사유가 있다.

(가) 피고인 1의 검찰진술(II504)에 의하면 동 피고인은 먼저 공장장부인을 부엌에서 죽이고 방에 들어가서 부엌쪽에서 가장 먼 곳인 책상있는 쪽에 공장장이 자고 있고 그다음에 장녀 차녀 순으로 누워 자고 그 다음 부엌쪽에 4세된 아들이 누워 자고 있어서 먼저 공장장과 딸 둘을 망치로 죽이고 그 다음에 4세아는 발로 배를 밟고 두손으로 목을 약 5분간 눌러서 살해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으니 피고인의 진술대로라면 4세아는 공장장시체에서가장 멀리 떨어진 곳인 부엌쪽에 그 시체가 있어야 할 것인데 기록 II의 208면 206면에 의하면 4세아는 공장장 피해자 1의 배위에 엎드려져 있고 그 몸의 방향이 머리는 부엌쪽이고 다리는 그 반대쪽으로 되어 있고 경장 김병주의 수사보고서와 공소외 1 형사의 1심증언에도 4세아의 시체는 피해자 1의 시체위에 일어섰다가 힘없이 엎어진듯한 자세로 엎드려져 있었다는 것이니 그렇다면 피고인의 진술에 따르면 범행직후 방에 방화까지 하였다는 것인데 사망한 4세아가 불속에서 두여아 시체를 넘어서 피해자 1의 시체위에까지 움직였다는 결과가 되어 동 피고인의 진술이 객관적 상황과 부합되지 아니하고 이는 의사 박명수의 진술(공판기록 421면 공판기록은 이하 II로 약칭)에 의하더라도 4세아는 목졸려 죽었으면 목에 그 흔적이 있을 것인데 그 흔적이 없었다는 진술에 의하더라도 피고인 1의 4세아의 살해방법의 진술은 진실한 사실의 진술이라고 볼 수 없다 할 것이다.

(나) 피고인 1이 범행에 사용했다는 도라이바에 관한 진술을 검토해본다.

피고인 1은 검찰 진술에서 2.28새벽 집에서 망치를 가지고 공장 부근 묘소에서 공장장 죽일방법을 생각하여 결정한 후 스포트공장 창문이 잠겨져 있지 아니하였기에 그 창문을 열고 공장안에 들어가 불을 켜니 책상위에 도라이바가 있기에 가지고 나와서 그 도라이바로 공장장 숙소문의 열쇠장식을 파괴하고 문을 열고 범행후 그 도라이바는 그방에 놓아두었다(II 503, 508)는 취지를 진술하고 있는바 동 공장의 종업원인 김재식 (II 239)이나 동 정용문(II 243) 동 또 공장내에서 그 도라이바를 본일이 없다는 것인데 피고인 1이 창문을 열고보니 바로 이건 도라이바가 책상위에 있었다니 피고인 1은 그 넓은 공장내에서 바로 그곳에 도라이바가 있는 것을 어떻게 알고 밤중에 그렇게도 용이하게 도라이바를 입수하였으며 동 피고인 진술대로 범행한 방에 그 도라이바를 놓아두었다는데 경찰에서는 시정장치의 파괴부분이나 (II의 21) 라이타(II의 23)와 같은 작은 물건은 2.28에 바로 압수하였으면서도 이건 도라이바는 어찌하여 그날에 보지 못하였고 오히려 피고인 1이 3.1에 범행을 자백하는 진술서를 쓰면서 도라이바는 웅덩이에 버렸다 (II의 71)고 기재한 것을 보면 3.1까지 범행 현장부근에서 도라이바를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기록II의 87에 보면 3.1자 수사보고서에 발견장소의 기재도 없이 도라이바를 압수하였다는 기재가 있고 기록의 489에 보면 2.29에 도라이바를 압수하였다고 전후 상치되는 기재가 있는바 이상의 정황을 검토하면 이건 도라이바에 관한 피고인의 진술은 객관적 정황과 부합되지 않는다 할 것이다.

(다) 피고인 2의 검찰에서의 자백 진술을 보면 동 진술이 허위진술이라는 반증도 있거니와 그 반증을 기다릴 것도 없이 동 자백진술 자체만으로도 객관적 합리성을 현저히 결여하고 논리칙에도 위배하여 허위진술이라고 의심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할 것이다. 즉 피고인 2가 이건 범행에 가담하게된 경위와 전지불(후라쉬)을 범행시에 사용한 경위에 대한 진술을 보면 1976.2.25밤에 피고인 1이 밖에서 부르기에 나가보니 공장장을 죽이자고 하기에 어떻게 그런일을 할 수 있느냐고 하니까 흔적없이 죽이면 된다고 하기에 남도 아닌 매부의 부탁이기에 거절할 수 없어서 「예 도와드리겠읍니다」하고 승락한바 피고인 1이 거사날짜는 나중에 이야기 해준다고 하고 돌아가면서 피고인 1은 혼자말로 불도하나 있어야 할텐데 하고 돌아갔는데 그 후 2.27밤이 되어 그날은 비도 오고 바람도 불고 하고 예감이 오늘 저녁 피고인 1이 공장장을 죽이러 가자고 찾어올 것 같아서 그날밤 11시 집에 있던 전지약이 안들어 있는 후라쉬에 4촌동생 공소외 2의 집 라디오 안에 들어있는 전지약 2개를 몰래 훔쳐서 꺼내다가 넣고 잠을 자던중 1시간반후인 2.28 새벽 0시반경 피고인 1이 문밖에서 부르기에 나갔더니 오늘밤 공장장을 죽이자고 하기에 따라가서 범행을 한후 새벽 3시경에 그 전지약 2개를 다시 4촌동생 공소외 2의 집 라디오속에 끼어넣고 집으로 돌아와서 잤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였는바 위 진술자체만으로 보더라도 너무나 사리에 어긋나고 기발한 진술이여서 자기가 경험한 사실을 진술한 것으로는 볼 수 없다 할 것이니 이를 동 피고인 임의로 진술하였다고 볼 수 없다 할 것이고 더구나 위 전지불에 관하여 위 라디오의 소유자인 1심증인 공소외 2는 동인의 라디오는 방안에 있는 밥먹는 상위에 놓고 사용하며 밤에는 방문을 잠그고 자므로 동 피고인이 몰래 방안에 들어와서 라디오의 전지약을 빼내갈수 없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고 피고인 2는 1심공판에서 검찰에서 진술을 받을시에 머리를 끌고 다니면서 범행을 안했다고 하면 때리고 했다고 하면 안때리고 범행을 했다고 하면 조서를 받고 안했다고 하면 때리기만 하면서 조사를 받을때 이건 후라쉬를 보이며 그 후라쉬로 범행을 한것 아니냐고 묻기에 후라쉬가 집에 없다고 하였더니 차고 때리고 하여서 할 수없이 그대로 시인하였더니 전지약은 어디다 두었느냐고 하기에 변전소 앞에다 버렸다고 대답하자 변전소까지 데리고 가서 버렸다는 전지약을 찾아도 없으므로 경찰에 넘겨 고문을 받게 하겠다고 말하기에 고문을 여러차례 받아보아(II의 662의 피고인 2에 대한 동리사람들의 진정서의 기재에 의하면 동 피고인은 이 사건의 경찰수사 단계에서도 구금되어 조사받은 사실이 있음을 알수 있다) 고문 받을 것이 무서워서 4촌동생 공소외 2의 집 라디오생각이 나서 그 라디오에서 전지약을 몰래 빼내다가 쓰고 도루 갔다 넣었다고 말하였다는 것이고 기록의 99면에 있는 피고인 2의 검사에 대한 반문의 취지 즉 이건 후라쉬에 전지약을 넣어도 불이 안켜져서 기술자를 데려다 수선하여 불을 켰다고 검사가 말하지 안했느냐고 반문한 점을 보면 이건 후라쉬는 압수 당시에는 전지약을 넣어도 불이 안켜졌던 후라쉬라는 의심도 있어 이상 모든점을 참작하면 동 피고인의 자백진술이 임의로 진술한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 할 것이다.

(라) 이건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관 공소외 1의 1심 증언에 의하면 피고인 1의 경찰에서의 자백은 동 피고인이 경험한 사실을 임의로 진술한 것이 아니고 범행현장에 맞추어 수사관이 추리한 허구사실을 피고인에게 대답하라고 유도하는대로 진술한 것으로 의심되는 다음과 같은 사유가 있다. 즉 위 공소외 1에 대하여 1심변호인이 범인이 다른 피해자는 다 망치로 머리를 쳐 죽였는데 4세아만을 질식사 시킨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의심가져본 일이 있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대하여 동 증인은 그점을 생각해 보았는데 피고인 1에게는 4세아와 같은 연령의 아이가 있고 두아이가 자주 만나 놀기도 하니 차마 망치로 때려죽일수가 없어서 목을 눌러 죽인것으로 생각하였다는 취지로 대답하고 있어서 (II261) 위 4세아를 망치로 안때린 이유를 수사관이 피고인으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이 아니고 수사관 자신의 추리를 말한 것으로 보아 피고인 1의 진술서 (II342)와 그의 진술조서에 위 수사관의 추리와 같은 내용의 진술기재가 있는바 이는 피고인이 임의로 진술한 것이 아니고 수사관이 추리한 대로의 허구사실을 피고인으로 하여금 진술하게 한 것으로 의심하지 아니할 수 없고 따라서 이점에 관해서 뿐만 아니라 동 피고인의 자백내용의 다른 부분도 위와같은 식으로 자백진술하였기 때문에 검찰에 와서도 경찰에서와 거의 같은 내용의 자백진술을 하게 된 것으로 보여지므로 수사기관에서의 동 피고인의 진술은 임의로 된것이 아니라는 의심이 간다할 것이다.

(3) 피고인등은 이건 피해자를 살해할만한 범행의 동기를 기록상 찾아볼 수 없고, 피고인 1을 이사건의 용의자로 지목한 수사단서 또한 동 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할 수 없는 범행의 단서가 노출된 것이 아니고 너무나 불합리한 단서에 의하여 바로 동 피고인을 용의자로 지목수사를 계속한 점 등을 보더라도 피고인이 이러한 동기와 단서에 의하여 임의로 자백하였다고는 볼수 없다는 다음과 같은 사유가 있다.

(가) 원심판결이 유지한 1심판결은 피고인등의 이건 살인범행의 동기를 아래와 같이 적시하고 있다. 즉

ㄱ. 피고인 1은 처남인 상피고인 2가 공장에서 해고된 원인이 피해자인 공장장 피해자 1의 고자질에 기인한 것이고

ㄴ. 1974년도에는 피고인 양인이 공장주인의 논을 경작하였는데 1975년도에는 경작을 못하게된 것도 공장장의 고자질에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ㄷ. 1974.7경 공장장이 피고인 1의 처제인 공소외 3의 젖가슴을 만지는 등 희롱한 일이 있어 공장장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아니하였고,

ㄹ. 하루 800원의 보수로는 생계가 곤란하여 평소 공장장이 없어지면 피고인이 공장장이 될 수 있어 생계도 나아질 것이다 라는 등의 이유로 피고인 1이 1976.2.25 밤에 피고인 2와 공장장 피해자 1을 살해하자고 모의한후 이건 범행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피고인 1이 평소의 네가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가 있는가를 검토해 본다.

㈀ 첫째 피고인 2는 해고된 사실이 없고 공장을 다니다가 스스로 그만두었다는 점은 공장주인 공소외 7도 시인하고 있고 피고인 2도 해고당한 것이 아니라고 진술하고 있어 (282), 피고인 2가 공장에서 해고 당했다는 객관적 사실이 없는데 피고인 1이 처남인 피고인 2가 해고당한 것이라고 오인하였다고 볼만한 자료도 없는 이건에 있어 어찌하여 피고인 1이 진실이 아닌 사실을 임의로 진술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이사건 발생직후부터 외부와 격리당하고 있는 피고인 1의 항소이유서에 보면 피고인 1도 위 최수웅이나 피고인 2의 진술과 동일하게 피고인 2는 해고당한 것이 아니고 자기 스스로의 의사에 의하여 퇴직하였다고 기재되어 있으니 피고인 1의 이점에 대한 진술이 허위임은 분명하다 할 것이다.

㈁ 일건기록중 피고인등이 1974년도에는 공장주인의 논을 경작하다가 1975년도부터는 경작하지 못하게 된 것이 피해자 피해자 1의 고자질로 그렇게 되었다고 인정할 자료가 없고 오히려 1975년도부터 경작을 아니한 것은 피해자 피해자 1과는 관련이 전연 없이 공장주인 최수웅의 단독의사로 인하여 경작 못하도록 하였다는 취지의 사실만이 인정되는 바 그렇다면 공장장 피해자 1이 고자질한 객관적사실이 전연 없는데 피고인 1이 없는 사실을 있는 것으로 오인할만한 특별한 사유가 있었다는 아무런 흔적도 기록상 찾아볼 수 없는 이건에 있어 피고인 1의 이점에 대한 진술이 임의로 자기의사를 진술하였다고는 볼 수 없다 할 것이다.

㈂ 기록을 정사하여도 피고인 1의 처제이며 피고인 2의 동생인 공소외 3(당시 17세 569)가 본건 공장에 근무하였다는 자료는 없고 오히려 위 공소외 3은 공장에 다닌 일이 없다는 것이며 다만 공소외 4, 공소외 5가(양인은 4촌간) 과거에 공장에 다닌 일이 있는데 공장장이 공소외 4, 공소외 5(양인중 누구의 가슴을 만진 사실이 있는지 없는지도 기록상 명백하지도 아니하고 공장 종업원들도 이를 못들었다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피고인 1도 1심에서 이를 들은 사실이 없다는 것이니 공소외 4나 공소외 5의 젖가슴을 공장장이 만진 사실이 있었는가의 사실을 인정할 자료도 없거니와 더 나아가 가사 그러한 사실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 1이 그 사실을 들어서 알고 있었으며 이를 듣고 공장장에 대하여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보여지는 자료도 없는데 이점에 대한 피고인 1의 진술이 임의로 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할 것이다.

㈃ 피고인 1이 공장장 되기 위하여 살해하였다고 하나, 피고인 1은 국민학교 5년 중퇴이며 조실부모하고 고아로 전전하던 중 고향에 돌아와 1975.1월경부터 이건 공장의 일금 500원을 받는 공원으로 일하다가 일금 800원을 받아오던 자인 바 동인의 학력이나 공장의 일개 일급노무자로 그것도 1년밖에 안된 사람이 공장장이 된다는 것은 생각조차도 할 수 없고 공장주인 공소외 7도 피고인 1이 공장장을 시켜달라고 요청한 일도 없거니와 공장장을 할 사람이 못된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고 또 기록상 피고인 1이 평소 공장장인 피해자 1이 없으면 자기가 공장장이 될 수 있다는 과대망상을 한 일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아무런 자료도 없는데 피고인 1의 이점에 대한 진술이 자기의사를 임의로 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할 것이다.

(나) 이 사건의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관 공소외 1은 1심 증언에서 피고인 1을 용의자로 심증을 가지게 된 수사의 단서는 동 피고인이 조사를 받던 중 눈이 충혈되고 현장 내용을 잘 알고 있으며 서울공장 주인에게 피해자등이 화재로 인하여 사망하였다고 전화로 말한 점이라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는바 수사기록에 의하면 피고인 1은 2.28 아침 출근후 바로 이 사건발생을 발견한 공장종업원인 최성선이란 사람이 피고인 1에게 속히 서울 공장주인에게 전화로 알리라고 하므로 우체국으로 시외전화하러 갔는바 피고인 1이 전화하러갈 무렵까지는 공장직원 누구나 다 공장장 가족이 화재로 인하여 사망한 것으로 알았다는 것이며 수사기록에 보면 피고인 1이 서울로 전화할 때 공장주인이 왜 불이 났느냐고 물으니 피고인이 누전인것 같다고 대답한 점이 이상하다고 피고인에게 혐의를 둔 것같은 기재가 있으나 피고인은 동 숙소는 화재가 날만한 이유가 없어서 자기가 추측되는대로 누전인 것 같다고 대답하였다는 것이니 이점이 어찌하여 이상하다는 것이며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마당에 경찰관의 추궁신문에 눈이 충혈되었다고 하여 용의자로 보았다는 것은 도대체 어떠한 근거에서 도출된 이론인가. 결국 이상의 사유들이 이건 범죄의 단서가 될 수도 없고 이러한 정도의 사유로 피고인 1이 형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촌부도 짐작할 수 있는 이건 살인사실을 임의로 자백한 것으로는 볼 수 없다 할 것이다.

2. 압수된 망치(증8호) 국방색 작업복과 야전잠바(증9, 10호)등은 위 1항에서 설시한대로 피고인 1의 증거능력 없는 자백에 의하여 획득된 것이므로 따라서 증거능력이 없다 할 것이고 증거능력이 설사 있다하더라도 위 압수물들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서의 기재 및 증인 정성욱에 대한 심문조서등은 다음과 같은 그 증명력을 감쇄하는 사유로 인하여 이들 피고인등에 대한 유죄의 증거로 할 수 없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이를 유죄의 증거로 적시한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한 위법사유가 있다.

(1) 우선 위 망치에 피해자의 피와 머리털이 묻어 있었다는 취지의 기재가 있으나 피고인 1의 진술취지가 살인의 도구로 사용하여 피투성이가 된 망치를 자기집으로 가지고 가서 의복은 피묻은 것을 비누로 세탁하면서도 망치는 묻은 피를 없애기 위하여 땅에다 문질러 그대로 부엌에 두었다는 진술자체가 사리에 맞지 않거니와 그 진술대로 망치에 묻은 피를 없애기 위하여 땅에 문질렀다면 어떻게 머리털이 망치에 묻은채 남아있을 수 있으며 가사 흙에 문지른 후에도 피와 머리털이 묻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망치는 2.28 경찰관이 피고인가에 와서 집수색을 하며 피고인의 처에게 망치가 없느냐는 물음에 당황한 끝에 없다고 대답한 후 부엌찬장에 있는 이건 망치 생각이 나서 없다던 망치가 후에 나오면 또 귀찮게 할 것 같아서 그 망치를 옆집에 가지고가서 위와같은 경위를 말하고 맡겨두었다는 것인바 그렇다면 공장장의 가족 5인이 살해되어 그 범인수사과정에서 자기 남편인 피고인 1이 경찰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피고인의 처 공소외 6이 피와 머리털이 묻어있는 망치를(1심증인 공소외 1형사는 그 망치에는 피투성이인 것이 현저했다고 진술) 피투성이인채 남의 집에 그대로 가지고 가서 이를 남에게 광고하는 식의 행위를 하였다고 본다는 것은 현저히 사리에 어긋난다 할 것이다.

(2) 기록에 의하면 이건 증 9, 10호의 의복의 압수는 3.6 오후 4시30분이며 동 의복이 압수된 장소도 그 의복을 찾기 힘든 곳에 감추어둔 것을 수색하여 찾아냈다는 것이 아니라, 1심증인 공소외 1 형사의 증언에 의하면 잠바는 방에 걸려 있는 것을 걷어오고 하의는 옷을 넣어두는 상자속에 있는 것을 가지고 왔다는 것인데 그 압수해 온 옷에 피해자의 피가 묻어 있었다니 그렇다면 5인가족을 살해하였다고 자백한 피고인 1의 간소하고 옷도 몇벌 안되는 것 중에서 감추지도 아니하고 벽에 걸어두고 옷 상자에 넣어둔 (장농이 없어서 평소부터 상자에 옷을 넣어두었다는 것) 옷에 피가 묻어 있는 것을 수사경찰관들은 사건발생후 7일이 경과하도록 어찌하여 그대로 방치해 두었단 말인가 1심증인 공소외 1의 증언에도 3.1에도 피고인 집에가서 옷을 보았고 옷을 압수해 왔다는 것이며 피고인 1 피고인의 처의 진술에 의하면 사건발생직후부터 여러차례 집수색을 당했다는 것인데 어떤 이유로 피가 묻어 있는 옷은 남겨두고 피가 안묻은 옷은 압수해 왔단 말인가 객관적 합리성이 전연 없는 위와같은 경우의 압수의복과 그옷에 묻었다는 혈흔이나 이의 감정서기재는 그 증명력이 없다 할 것이다. 결국 위(1), (2)의 사유만으로도 위 2항 기재의 각 증거자료등은 그 증거능력이 없거나 증거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증명력을 상실하였다고 할 것이다. 나아가 위 2항기재의 증거자료의 증명력을 감쇄하는 다음과 같은 의문점이 있다.

(3) 피해자 5인의 시체는 3.1에 매장되었는바 그후 3.3에 공장장 피해자 1과 그 처를 합장한 묘를 다시 판 사실이 있다는 것인바 (II466)1심에서 공소외 1 형사는 과학수사연구소에 피해자 1의 모발을 채취 발송하기 위하여 묘를 다시 팠다는 것이나(II359)기록에 의하면 피해자 1의 모발의 감정의뢰는 그 전인 3.1에 위 연구소에 이미 송부되었던 것이다.

(4) 기록에 의하면 이건 망치와 옷은 3.6에 압수된 것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피고인 1의 처 공소외 6은 1심 증언에서 검사의 질문에 대하여 망치는 시체를 묻은 사흘후에 나왔는데(망치를 옆집에 맡긴 것은 2.29임이 기록상 명백하고 시체의 매장은 3.1이므로 그 사흘후라면 3.3이라고 추정된다) 선생님이(수사관을 지칭) 무덤을 파서 망치를 대어 보니까 센찌도 같다고 말하고 망치에 묻은 피도 O형이라고 말하였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고 있다.

3. 위 1,2항의 설시대로 원심이 유지한 1심판결에 적시된 중요한 증거는 그 증거능력이 없고 또는 증거능력이 있어도 그 증명력이 지극히 희박하여 이를 피고인등을 유죄로 인정하는 증거로 할 수 없다할 것인바 기록에 의하면 위 1,2항 이외에도 1심판결에 적시된 모든 증거자료의 증명력을 감쇄할 수있는 다음과 같은 자료가 있다.

기록 I의 206면 고부지서경장 김병주의 수사보고서에 의하면 범인이 공장내부로 침입한 듯한 열려있는 창문을 확인한 바 창문턱에 황토 흙이 묻어 있었고 문턱밑에는 창문에서 내릴때 찍힌 신발자국이 나란히 남아 있음을 확인하고 현장보존하였다는 취지의 기재가 있고 동 290면에도 같은 취지의 진술기재가 있어 그날밤에 비가 내린 관계로 범인의 신발밑바닥의 모양이 공장 마루바닥에 선명하게 찍혀져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신발자국이 선명하였다는 증거 자료는 다음과 같다.

(가) 위 수사보고서에 보면 현장보존하였다는 기재가 있으니 수사시 혐의있는 신발과 대조판정할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지 않으면 현장보존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 기록의 367의 이하에 보면 위 현장보존된 신발 자국과 같은 신발을 가려내기 위하여 공장직원 김재식 동 김치곤 동 이동연 동 김평호 등이 신고 있는 신발의 밑바닥의 모양을 인주로 찍어서 기록에 붙인다는 기재가 있으니(그런데 그 신발모양 찍은 것을 기록에 부치지아니했다) 위 공장바닥에 있는 신발자국과 대조하기 위하여 그 바닥모양을 인주로 찍은 것이 분명하니 위 공장바닥의 범인의 신발자국은 범인의 신발을 가려낼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기록을 정사하여도 그 공장바닥에 찍힌 신발자국이 어떤 모양의 것인지를 기록에 남겨둔 자료가 없고 피고인 두사람의 신발자국과 대조 조사하였다는 자료도 없으며 사건이 발생한 1주일 후인 3.6에 공장직원 김재식 등 4,5명의 남자 직원과 여자 직원등의 신발까지를 조사한 것을 보면, 위 공장내에 찍힌 신발자국이 피고인 1, 피고인 2가 가지고 있는 신발자국이 아님을 규지할 수 있고 수사기록에 의하면 피고인 1은 살인행위를 한후 피묻은 망치나 의복까지도 집으로 가지고 갔다고 자백하고 있으니 하필 신발만을 증거인멸하기 위하여 없애버렸다고도 볼 수 없으니 기록상으로 보아 위 공장바닥의 신발자국은 범인의 신발자국이라고 보여지고 그 신발자국이 피고인 양인의 신발자국이 아니라고 보여진다 함은 위 설시와 같으니 피고인 1, 2를 이 사건의 범인이라고 보기 어려운 자료가 된다 할 것이다.

결국 원심판결은 증거능력이 없거나 증명력이 없는 증거자료에 의하여 피고인등의 이건 범죄사실을 인정한 위법사유가 있다 할 것이니 이점에 대한 논지는 이유있어 관여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원판결을 파기 환송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라길조(재판장) 주재황 한환진 임항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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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급 사건
-광주고등법원 1976.12.21.선고 76노4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