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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방법원 2011.2.15. 선고 2010고단3873 판결
유기
사건

2010고단3873 유기

피고인

1. A

2. B

검사

최수봉

변호인

변호사 C, D(피고인 모두를 위하여)

판결선고

2011. 2. 15.

주문

피고인들은 각 무죄.

피고인들에 대한 무죄판결의 요지를 공시한다.

이유

1. 이 사건 공소사실

가. 피고인 A

피고인 A은 2009. 1.경부터 E공사 서울본부 F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사람이다.

피고인 A은 2010. 1. 15. 07:30경 G 소속 공익근무요원인 H과 G 합동순찰을 마칠 무렵 2층 대합실 물품보관함 앞에서 만취상태 및 갈비뼈 골절상 등으로 인해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고 쓰러져 있던 피해자 I을 발견하였고 당일은 영하 6.5℃(체감온도 영하 9.7℃)의 추운 겨울날씨였으므로 피고인으로서는 철도공안 담당경찰관에게 인계하는 등의 적절한 구호조치를 취하여야 할 법률상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H에게 "노숙자를 밖으로 내보내라."라고 지시하고, H은 피해자 뒤에서 양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어 일으켜 붙잡고 그곳에서 20m 정도 떨어진 G 2층 대합실 2번 출구 밖 대리석 바닥에 놓아둠으로써 피해자를 유기하였다.

나. 피고인 B

피고인 B은 2009. 5, 6.경부터 현재까지 E공사 G 본부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사람이다.

피고인은 2010. 1. 15. 08:20경부터 G 2번 출구 근처 G 광장에서 함께 제설작업을 하던 중 같은 공익근무요원인 J로부터 'G 2번 출구 앞에 노숙자가 쓰러져있으니 확인해 보라.'는 무전을 받고, 같은 날 08:50경 G 2번 출구 앞에서 위 1항의 유기장소로부터 그곳으로 돌아와 갈비뼈골절 및 만취상태에서 바지가 엉덩이까지 내려간 채로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고 의사표시도 하지 못하는 피해자를 발견하였고 당일은 영하 6.5℃(체감온도 영하 9.7℃)의 추운 겨울날씨였으므로 피고인으로서는 철도공안 경찰관 또는 119 구급대에 신고하거나 역사부근의 노숙자 구호시설인 'K센터'로 이동시키는 등 적절한 구호조치를 취하여야 할 법률상의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배 공익요원인 L와 함께 피해자를 휠체어에 태운 뒤 주변에 있던 장애인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지하1층 엘리베이터 옆 구석진 곳에 데려다놓으려고 하였으나 마침 그곳에서 청소 중인 성명불상의 아줌마가 "거기에 내려놓으면 안된다."라고 말하자,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올라가 G 광장 중앙계단 좌측 기둥 옆에 유기하였다가, 이를 현장에서 목격한 M백화점 성명불상의 경비원이 "눈 위에 노숙자를 내놓으면 얼어 죽을 수 있다며 다른 곳으로 이동해라."라고 말하자, 같은 날 09:07경 피해자를 다시 휠체어에 태운 후 그곳으로부터 약 200m 떨어져 있는 서울 중구 N에 있는 G 구름다리(과선교) 아래에 옮겨 놓음으로써 피해자를 유기하였다.

2. 피고인들 및 변호인의 주장

피고인들은 사망한 I이 부조를 요하는 자였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였으므로 피고인들에게는 유기죄의 고의가 없었을 뿐 아니라, 피고인들은 유기죄에 있어서 법률상, 계약상 보호의무가 있는 자라고 할 수 없다.

3. 판 단

가. 우선 이 사건 피고인들에게 유기죄에 있어 요부조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는 자에 해당하는지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건대, 이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우리 형법상 유기죄의 연혁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나. 우리 형법이 제정되기 이전에 시행되던 의용형법(依用刑法)은 "노유(老幼), 불구 또는 질병 때문에 부조를 요하는 자를 유기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제217조), 제218조 제1항에서는 노인, 어린이, 불구자 또는 병자를 보호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 유기한 경우에는 이를 가중처벌하였다. 의용형법은 부조를 요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회 구성원 누구나 그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소위 '착한 사마리아인 법(The Good Samaritan Law)'을 기본 구상으로 하면서 특별히 요부조자를 도와야 할 법적 책임이 있는 사람은 보다 무거운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 그런데, 1953년 제정 당시의 우리 형법은 "노유, 질병 기타 사정으로 인하여 부조를 요하는 자를 보호할 법률상 또는 계약상 의무 있는 자가 유기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였다{구 형법(1953. 9. 18. 법률 제293호로 제정된 것) 제271조 제1항}. 의용형법과 비교하여 볼 때 우리 형법은 부조를 요하는 자 가운데 "기타사정'으로 인한 자까지 포함하여 유기죄의 성립범위를 확장한 반면에 보호할 의무 있는 자를 "법률상 또는 계약상 의무"가 있는 자로 한정함으로써 유기죄의 성립범위를 제한한 것인데, 1953년 우리 형법의 입법자들은 형법전 심의 당시 6·25 전쟁으로 야기된 극심한 사회적, 경제적 궁핍상태를 감안하여 한편으로는 부조를 요하는 자의 범위를 확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조의무자의 범위를 제한함으로써 유기죄로 인한 지나친 처벌을 방지하려고 하였고, 이와 같은 태도는 형법이 1995. 12. 29. 법률 제5057호로 개정되면서 유기죄의 법정형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만 바꾸는 것으로 개정된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라. 그 결과 우리 형법은 유기죄를 규정함에 있어 프랑스 등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소위 착한 사마리아인 법을 기본형식으로 취하지 아니하고, "법률상 또는 계약상 의무 있는 자"만을 범죄주체로 설정함으로써 신분범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마. 검사는 피고인들에 대하여 유기죄로 공소를 제기하면서 피고인들에게 철도공안 담당경찰관에게 인계하거나 119 구급대에 신고하거나 역사부근의 노숙자 구호시설인 'K센터'로 이동시키는 등 적절한 구호조치를 취하여야 할 법률상의 의무가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바. 유기죄에 있어서 법률상의 의무란 부조의무의 근거가 법령에 규정되어 있는 경우를 말하는바 당해 법령이 공법(公法)인가 사법(私法)인가는 묻지 않는데, 공법에 근거한 경우로서는 경찰관직무집행법상 경찰관의 보호조치의무(경찰관직무집행법 제1조 제1항1), 제4조2))를 들 수 있다. 도로교통법 상 사고운전자의 구조의무도 부조의무의 발생근거가 될 수 있으나 이 경우 의무의 불이행은 관련법률에 의하여 독자적인 범죄를 구성한다고 하겠다(도로교통법 제148조,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3), 사법상 발생하는 부조의무로는 예컨대, 민법상 친권자의 자에 대한 보호교양의무, 친족간의 부양의무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사. 위와 같은 해석에 비추어 이 사건의 피고인들이 유기죄에 있어 법률상 부조의무가 있는 자인지에 대하여 살피건대, 검사 제출의 증거들 중에 피고인들의 구조의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검사는 보충역으로 근무하는 공익근무요원을 배정받아 임무를 부여하고 이를 지도·감독하는3)4) 공공단체인 E공사의 직원인 피고인 A과, 공익근무요원으로서 그 직무상 행위가 공무수행에 해당5)하는 피고인 B으로서는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건강을 침해하지 아니하도록 하여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할 것이라고 주장하나, 공익근무요원의 행위를 공무수행으로 보게 된다는 점이나, 이러한 공익근무요원들을 배정받아 지도, 감독하는 단체의 직원이라고 하여 바로 요부조자를 구조할 법률상 의무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철도안전법 제1조는 "이 법은 철도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철도안전관리체계를 확립함으로써 공공복리의 증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목적을 정하고 있어 위법의 주된 목적은 철도안전이라고 할 수 있고, 제48조 제8호에 의하면 누구든지 역시설 또는 철도차량 안에서 노숙하는 행위를 금하고 있고, 같은 법 제50조 제5호는 철도종사자는 이에 위반하여 금지행위를 한 자나 물건을 밖으로 퇴거시킬 수 있다고 정하고 있고, E공사법에도 직원 등의 부조의무를 부과하는 규정이 없다.

아. 검사는 형법 제18조의 부작위범에 관한 규정이나 민법 제734조의 사무관리 규정 등을 근거로 피고인들이 유기죄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으나, 형법 제18조 부작위범 규정을 원용하려는 주장은 입법자가 형법 제271조 제1항에서 부조의무의 발생근거를 특별히 제한한 취지에 벗어나는 것으로서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곤란하고, 사무관리나, 관습, 조리 등에 의해서도 부조의무를 확장하려는 것은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우리 입법자의 명시적 결단에 의하여 부조의무자의 범위가 제한된 점, 형법 제271조가 보호의무의 근거를 벌률상 · 계약상 의무로 제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사무관리 · 관습 또는 조리에까지 확대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상 허용될 수 없는 점, 관습 · 조리 · 공서양속·사회통념과 같은 불확정개념을 가지고 가벌성의 근거로 하는 경우 법관의 자의적 판단할 초래가 있는 점 등에 비추어 이러한 확장해석은 허용될 수 없다고 본다. 사무관리는 원래 재산상의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의무 없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한 경우에 인정하는 제도이므로 이를 특별한 근거 없이 생명·신체에 대한 위험범에 그대로 확대 적용할 수는 없고, 사무관리 · 관습 · 조리가 민법이라는 법률에서 규정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여기의 "법률상"보호의무에 포함될 수는 없다. 단순한 규정이 아닌 보호의무를 명시적으로 규정한 법률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자. 한편, 경범죄처벌법 제1조 제7호는 "자기가 관리하고 있는 곳에 도움을 받아야 할 노인·어린이·불구자 다친 사람 또는 병든 사람이 있거나 시체 또는 죽어 태어난 태아가 있는 것을 알면서 빨리 이를 관계공무원에게 신고하지 아니한 사람을 1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과료에 처하고 있는데, 이 규정은 부조를 요하는 사람을 신속히 보호·구제하고 재해 등이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관계공무원의 원활한 업무수행을 위하여 그 요보호자가 발견된 장소의 관리인이나 그 근처에 있는 사람들에게 신고의무를 부과한 것으로, 요보호자가 발견된 장소를 관리하고 있는 자에게 신고의무가 있다고 하여 유기죄에 있어 요부조자를 보호해야 할 법률상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

차. 그렇다면 피고인들에 대한 이 사건 공소사실은 피고인들이 유기죄에 있어 요부조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는 자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피고인들에 대하여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하고, 형법 제58조 제2항에 의하여 피고인들에 대한 판결의 요지를 공시하도록 한다.

4. 판결을 마치며

피고인들이 노숙자였던 위 I을 G 밖으로 내보내던 시각 이전인 같은 날 07:15경 112 신고를 받은 경찰관과 119구급대원들은 동인이 있는 장소에 도착하여 I의 생체리듬을 체크하는 등 살펴보았으나 정상이었음을 확인하였고, 동인은 괜찮다는 의사표시를 할 정도였으며, 이에 경찰관과 119 구급대원조차 동인의 몸에 이상이 없다고 생각하고 동인을 단순주취자로 판단한 채 철수하였다.

그러나, 노숙자인 I은 같은 날 12:22경 G 구름다리(과선교) 아래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는데, 부검결과 위 피해자는 혈중알콜농도 0.157%의 만취상태에 있었고, 사인은 동사(凍死)가 아니라 흉부의 고도손상(오른쪽 제2-12번 갈비뼈의 다발성 골절, 오른쪽 폐의 파열)이었다.

노숙자였던 망인은 이승에서의 마지막인 이날 참으로 고달픈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성치 않은 몸으로 술에 취한 상태에서 여기저기를 타인에 의해 부축을 당하거나 휠체어에 실려 다니면서 결국에는 차가운 곳에 버려져 이승을 하직하였으니, 그 심신의 피로가 오죽했을까 싶다.

망인의 사망이라는 불행한 결과만으로, 형법상 유기죄에 있어 보호할 의무 있는 자를 "법률상 또는 계약상 의무"가 있는 자로 한정한 입법자의 결단이 있는 현행 형법하에서 피고인들에게 유기죄의 형사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고 하겠지만, 피고인들로서는 자신들의 형사책임을 떠나 망인의 죽음 앞에 도덕적인 비난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피고인들은 자신들이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망인이 사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이 사회가 만들어낸 사람들이면서 사회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사람들인 노숙자의 문제는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앞으로도 함께 계속 고민하고 풀어나가야 할 숙제 중 하나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많은 고민을 남긴 채로 먼 길을 가는 고인의 명복을 빈다.

판사

판사 권태형

주석

1) 동법 제1조(목적)

제1항 "이 법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보호 및 사회공공의 질서유지를 위한 경찰관(국가경찰공무원에 한한다. 이하 같다)의 직무수행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

2) 동법 제4조(보호조치 등)

제1항 "경찰관은 수상한 거동 기타 주위의 사정을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함이 명백하며 응급의 구호를 요한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를 발견한 때에는 보건의료기관 또는 공공구호기관에 긴급구호를 요청하거나 경찰관서에 보호하는 등 적당한 조치를 할 수 있다."

1, 정신착란 또는 술취한 상태로 인하여 자기 또는 타인의 생명·신체와 재산에 위해를 미칠 우려가 있는 자와 자살을 기도 하는 자

2. 미아·병자·부상자등으로서 적당한 보호자가 없으며 응급의 구호를 요한다고 인정되는 자. 다만, 당해인이 이를 거절하는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

"공익근무요원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업무에 복무하게 하여야 한다."

1. 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공공단체 및 사회복지시설의 공익목적에 필요한 사회복지, 보건·의료, 교육·문화, 환경·안전 등 사회서비스업무의 지원업무

2. 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공공단체의 공익목적에 필요한 행정업무 등의 지원업무

3. 문화창달과 국위선양을 위한 예술·체육 분야의 업무

4. 「국제협력요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개발도상국가의 경제·사회·문화발전 등의 지원업무

4) 병역법 제31조의2(공익근무요원 복무관리·감독 등)

① 제26조제1항제1호 및 제2호에 따라 공익근무요원이 복무하는 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공공단체 또는 사회복지시설의 장은 공익근무요원 복무관리 담당직원을 지정하여야 한다. 다만, 사회복지시설에서 복무하는 공익근무요원에 대하여는 지방병무청장이 소속 직원 중에서 복무관리 담당직원을 지정할 수 있다.

② 제26조제1항제1호 및 제2호에 따른 공익근무요원의 복무와 관련하여 병무청장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공익근무요원을 관리·감독할 수 있다. 이 경우 복무기관의 장은 이에 협조하여야 한다.

"제26조제1항 제1호 및 제2호에 따른 공익근무요원을 배정받은 기관의 장은 복무분야를 지정하여 복무하게 하여야 하며, 그 복무에 필요한 사항은 이 법에서 정하는 사항을 제외하고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이 경우 공익근무요원의 직무상 행위는 공무수행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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