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2018도2464 사기
피고인
A
상고인
피고인
변호인
변호사 B
원심판결
대구지방법원 2018. 1. 19. 선고 2017노4782 판결
판결선고
2018. 4. 24.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구지방법원 본원 합의부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이 사건 각 공소사실의 요지는, 주식회사 DI(이하 'D'이라 한다)을 운영하는 피고
인이 위 회사의 부채가 약 90억 원에 이르는 등 경제적인 사정이 어려워 피해자들로부
터 물품을 공급받더라도 그 대금을 지급할 의사나 능력이 없는데도 피해자들에게 그
대금을 지급하겠다고 거짓말을 하여, 2016. 3. 18. 피해자 F로부터 시가 합계
6,000,000원 상당의 턴테이블 2대를 공급받고, 2016. 1. 22.부터 2016. 4. 18.까지 15회
에 걸쳐 피해자 I로부터 시가 합계 292,010,377원 상당의 철강재를 공급받았다는 것이
다.
2. 원심은, 피고인이 기존 거래처로부터의 철강재 공급이 중단되자 피해자 I로부터
철강재를 공급받은 것으로 보이는 점, D의 채무가 2016. 1.경 약 90억 원이었고 피고
인이 2016. 4.경부터 직원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다가 2016. 6.경 D이 부도에 이르렀는
데, 피고인이 피해자들로부터 물품을 공급받을 당시 이미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점, 피해자들이 그러한 사정을 알았다면 피고인에게 물품을 공급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이유로 피고인에게 편취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아, 위
각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였다.
3. 그러나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1) 사업체의 경영자가 사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거래를 하였다가 그 채무를 이
행하지 못한 경우, 경영자가 거래 당시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어 채무를 이행하지
못할 수도 있음을 예견하였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사기죄의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보
는 것은, 발생한 결과에 의하여 범죄의 성립 여부를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설령
경영자가 채무불이행의 가능성을 인식하였더라도 이를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상당한
정도로 있다고 믿었고, 또한 성실하게 계약을 이행하기 위하여 노력할 의사를 가지고
있었을 때에는, 경영자에게 편취의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대법원 2001, 3.
27. 선고 2001도202 판결, 대법원 2015. 6. 11. 선고 2015도1809 판결 참조)
(2)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정을 알 수 있다.
① 피고인이 운영하던 D은 철판 가공 등을 사업 목적으로 하는 회사인데, 피고
인이 공급받은 물품 중 턴테이블은 철판 용접 등에 필요한 기계이고, 철강재는 철판
가공 등을 위한 원자재로서, 모두 D의 사업 수행과 관련된 물품이다.
② D의 2015년말 기준 자산이 약 104억 원, 매출액은 2013년 약 146억 원,
2014년 약 130억 원, 2015년 약 123억 원인 데 반해, 피고인이 공급받은 물품의 대금
은 합계 약 3억 원으로 D의 자산이나 매출액과 비교하여 볼 때 그 대금이 객관적으로
변제하기 어려울 정도의 다액이라고 보기 어렵고, 특히 턴테이블대금은 합계 600만 원
에 불과하다.
③ 피고인이 공급받은 철강재를 가공하여 판매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수사보고서
와 관련 자료가 제출되어 있고, 피고인은 철강재 판매대금을 기존 채무 변제와 직원
임금 지급에 사용하였다는 취지로 수사기관에서 진술하였으며, 피고인이 공급받은 철
강재나 그 판매대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였다고 볼 자료는 없다. 또한 피고인은 철강
재를 공급받는 중이던 2016. 3. 30. 철강재대금 중 약 2,565만 원을 변제하기도 하였
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할 때, 피고인은 공급받은 철강재를 가공, 판매하여 회사의 경
영을 정상화시키기 위하여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④ 피고인이 피해자들로부터 물품을 공급받을 당시 D의 채권자가 D 재산에 대
하여 압류 또는 가압류를 하거나, D의 어음 또는 수표가 부도가 나 거래정지처분이 내
려지는 등 D의 정상적인 회사 운영이 곤란한 상황이었다고 볼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
⑤ 피고인이 피해자들로부터 물품을 공급받는 과정에서 D의 재정 상황이나 피
고인의 변제 능력에 관하여 적극적으로 피해자들을 기망한 사실을 인정할 자료도 없
다.
(3) 이러한 사정을 종합하면, 원심이 든 사정이나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해자들로부터 물품을 공급받을 당시 피고인에게 편취의 고의가 있었다는 점이 합리
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4) 그런데도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사정만을 근거로 피고인에게 편취의 고의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판단에는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
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사기죄의 편취 고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
4. 결론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
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재판장대법관민유숙
대법관김창석
주심대법관조희대
대법관김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