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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법원 2010. 3. 19. 선고 2009노3318 판결
[대통령긴급조치위반·반공법위반][미간행]
피 고 인

피고인

항 소 인

검사

검사

임상길

변 호 인

법무법인 덕수 외 1인

주문

검사의 항소를 기각한다.

이유

1. 검사의 항소이유의 요지

가. 증거능력에 관한 법리오해

사법경찰관 작성의 피고인에 대한 각 피의자신문조서, 피고인 및 공소외 1(대법원판결의 공소외인) 작성의 각 진술서는 모두 피고인이 재심전 원심 공판절차에서 그 진정성립, 임의성 및 내용을 인정하거나 증거로 사용함에 동의한 것인데도, 원심이 그 증거능력을 배척하고 이들을 증거로 채택하지 아니한 조치는 위법하다.

나. 사실오인

원심이 채택한 증거들만으로도, 피고인은 공소외 1이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이하 “민청학련”이라고 한다)과 관련된 활동으로 수배 중이라는 사정을 알면서 그를 은신시키는 등 편의를 제공하였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그럼에도 원심은 채증법칙을 위반하여 반공법위반의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하였다.

2.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1966. 10.경부터 친구로 지내고 있는 공소외 1이 국가를 변란하고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정부를 전복하여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공소외 2, 공소외 3, 공소외 4와 함께 인민혁명당 재건을 위한 공산비밀지하조직인 서울지도부를 결성하여 반국가단체를 구성하고 그 지도적 임무에 종사하는 한편 민청학련의 조직 활동에 관여하여 수사기관에 의해 수배중인 자인 것을 1974. 5. 28.자 한국일보 기사에서 보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974. 6. 14. 22:00경 공소외 1이 서울 동대문구 (이하 주소 생략)에 있는 피고인의 집을 찾아와 은신을 부탁하자 그때부터 다음날 07:30경까지 피고인의 집 건넛방에 공소외 1을 유숙하게 하여 은신시키고, 1974. 6. 15. 08:00경부터 같은 날 14:00경까지 피고인이 경영하는 서울 성동구 인창동에 있는 ○○○○○에 공소외 1을 은신케 함으로써 공소외 1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같은 날 11:30경 공소외 1로부터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 있는 수정여관에 두고 온 양복과 색안경을 가져오라는 부탁을 받고 같은 날 13:30경 위 여관에서 여관주인 성명불상자에게 공소외 1의 소지품을 요구하는 등 공소외 1의 활동을 도와줌으로써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인 공소외 1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한편, 민청학련의 활동에 간접으로 관여하여 대통령긴급조치 제4호를 위반하였다.

3. 원심의 판단

원심은, 제1항 가.의 증거들은 재심개시결정 후의 공판절차에서 변호인이 그 내용을 부인함에 따라 증거능력이 없고, 검찰이 제출한 나머지 증거들은 그 신빙성이 없거나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는 부족한 것들이며,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어 공소사실 중 반공법위반의 점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로서 무죄이고, 한편 이와 상상적 경합의 관계에 있는 대통령긴급조치위반의 공소사실은 범행 후 법령의 개폐로 그 형이 폐지된 경우로서 면소판결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4. 당심의 판단

가. 법리오해 주장에 관하여

재심개시의 결정이 확정된 사건에 대하여는 법원이 그 심급에 따라 다시 심판을 하여야 하는바( 형사소송법 제438조 제1항 ), 제1심 확정판결에 대한 재심심판절차에서 법원은 종전 소송절차의 증거를 그대로 사용하여서는 아니 되고, 증거신청, 당사자의 의견진술, 증거결정 및 증거조사의 실시 등 증거조사절차의 과정 전체를 새로이 진행한 후 증거능력이 인정되고 적법한 증거조사를 마친 것에 한해서 범죄사실을 인정할 증거로 삼을 수 있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살피건대, 먼저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 중 사법경찰관이 작성한 피고인에 대한 각 피의자신문조서 사본, 경찰수사 단계에서 피고인이 작성한 각 진술서 사본은 재심개시결정 후의 원심 절차에서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그 내용을 인정한 적이 없으므로 그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

그리고 공소외 1 작성의 진술서 사본은 재심개시결정 후 변호인이 증거로 함에 동의한 바 없는데다가, 원진술자인 공소외 1의 재심개시결정 후 공판기일 등에서의 진술에 의하여 성립의 진정이 증명되지도 아니하였으므로 역시 그 증거능력이 없다. 원심판결이 편의제공에 의한 반공법위반죄에 있어서의 본범에 해당하는 공소외 1을 피고인의 공범으로 보고 변호인의 내용 부인에 의해 위 진술서의 증거능력이 배척된다는 취지로 설시한 것은 다소 부정확한 면이 있으나, 결국 위 증거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아니한 조치는 정당하므로 원심의 판단에는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검사의 법리오해에 관한 위 주장은 이유 없다.

나. 사실오인 주장에 관하여

(1) 1980. 12. 31. 법률 제3318호로 폐지되기 전의 구 반공법(이하 ‘반공법’이라고만 한다) 제7조 는 “이 법 또는 국가보안법의 죄를 범한 자라는 정을 알면서 총포·탄약·금품 기타 재산상의 이익을 제공하거나 잠복·회합·연락을 위한 장소를 제공하거나 또는 기타의 방법으로 편의를 제공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위 법률은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공산계열의 활동을 봉쇄하고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자유를 확보’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었고( 반공법 제1조 ), 반공법이 폐지되면서 그 내용을 상당 부분 흡수하여 유사한 규정들을 두고 있는 국가보안법 또한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함’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제1조 제1항 ). 또한 국가보안법은 그 해석과 적용의 준칙으로서 위 ‘목적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칠 것과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지 않을 것 등을 특별히 천명하고 있고( 국가보안법 제1조 제2항 ), 헌법재판소는 반공법 제7조 와 그 내용이 유사한 국가보안법 제9조 , 특히 제2항의 처벌대상이 되는 ‘편의제공’의 범위와 관련하여, 위 용어는 문언해석상 적용범위가 넓고 불명확하여 헌법상 보장된 행복추구권과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법운영당국에 의한 편의적·자의적 집행의 소지도 생길 수 있어 법치주의·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될 소지가 있으므로, 위 조항에서 처벌대상이 되어야 할 것은 편의제공행위 가운데서 국가의 존립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미칠 구체적이고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로 축소제한하여야 한다는 취지로 판시한 바 있다( 헌법재판소 1992. 4. 14. 선고 90헌바23 결정 참조).

위와 같은 반공법 및 관련 법령의 문언, 목적, 해석적용상의 원칙 등에 비추어 보면, 반공법 제7조 의 ‘편의제공’이란 본범인 상대방과 공산계열의 관련성을 인식하면서도 공산계열의 활동과 객관적으로 관련이 있는 편의를 제공하는 행위로서 국가의 안전이나 국민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위태롭게 할 구체적이고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것만을 의미한다고 엄격하게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2) 이 사건으로 돌아와 먼저 당시 피고인이 공소외 1과 공산계열의 관련성을 인식하고 있었는지 여부에 관하여 살피건대,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피고인은 대통령긴급조치 제4호의 공포와 민청학련 사건 수사 등에 관해서 평소 ‘큰일났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크게 다치겠다. 마치 일본시대 경찰이 사람 잡듯이 하고 있다’는 등으로 비판하며 민청학련 사건이 과장 또는 조작된다는 의심을 강하게 가졌던 것으로 보이는 점, 1974. 5. 27. 비상군법회의 검찰부의 민청학련 사건 수사결과 발표에 관한 당시의 언론 보도는 공소가 제기된 54명의 명단과 해당 공소사실의 요지에 집중된 반면 수배자 명단이나 혐의 내용은 상세히 다루어 지지 아니하였던 점, 당시 수사당국이 작성하여 언론에 게재된 민청학련의 주요 조직과 관련자들에 대한 체계도에 공소외 1은 포함되어 있지 아니하였던 점, 한편 공소외 1은 이 사건 당시 피고인에게 민청학련 사건으로 쫓기고 있으나 자신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밝혔던 점, 실제로 공소외 1에 대한 혐의 중 민청학련 관련 부분은 대통령긴급조치 4호의 선포 이전에 공소외 2 등을 통하여 민청학련에 간접적으로 관여하고도 그 내용을 수사·정보기관에 고지하지 아니하였다는 내용뿐인 점, 공소외 1은 이전에 공산주의 활동과 관련하여 처벌받은 적이 없고 이 사건으로 피고인과 함께 체포되어 내란음모, 국가보안법위반, 반공법위반 등의 내용으로 비상보통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그 후 재심절차에서 무죄판결이 선고, 확정된 점, 나아가 당시 민청학련과 관련되어 유죄의 판결을 받은 인물의 대부분이 재심절차를 통해 무죄판결을 받은 점 등을 알 수 있는바, 이와 같은 민청학련 사건에 관한 피고인의 평소 입장, 당시 민청학련 사건에 관한 언론 보도의 내용, 공소외 1과의 사건 당일 대화 내용, 공소외 1과 공산계열과의 관련성 결여, 공소외 1의 민청학련 사건에 관한 혐의의 정도 등에 비추어 보면 당시 피고인은 수사기관의 발표 내용이나 언론 보도에도 불구하고 공소외 1은 공산계열과 무관하다고 인식한 것으로 판단된다.

검사는 피고인이 검찰 수사 및 재심전 공판절차에서 ‘공소외 1이 1974. 5. 27.자 한국일보를 기사를 통해민청학련의 배후조종자로서 정부를 전복하고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비밀지하조직을 결성, 주도적으로 활동하였음을 알고 있었다’는 내용으로 진술한 점을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정황으로 들고 있으나, 위 진술의 내용과 앞서 인정한 당시 사정에 비추어 이는 공소외 1이 수사기관으로부터 받고 있는 혐의의 내용을 피고인이 알고 있었다는 것일 뿐 실제로 공소외 1이 공산주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되지는 아니한다.

(3) 다음으로 피고인의 행위의 내용과 국가안전 등에 미치는 위험성 등에 관하여 살피건대, 위 증거들에 의하면 피고인이 공소외 1에게 도움을 준 내용이 하룻밤 숙식을 제공하고 개인 소지품을 찾아달라는 부탁에 응하여 심부름을 해 준 정도에 불과한 점, 공소외 1은 피고인과 수년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 사이였다는 점, 공소외 1의 당시 피고인에 대한 부탁 내용도 하룻밤 재워달라는 것이 전부였던 점 등의 사정을 알 수 있는바, 이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피고인의 행위가 공산계열의 활동에 편의를 제공함으로써 국가의 안전이나 국민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위태롭게 할 구체적이고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정도에 이른다고 보기 어렵다.

(4) 결국 이 사건 피고인의 행위는 공산계열의 활동과 관련되어 있다는 인식이 결여되어 있고, 그 내용에 있어 공산계열과의 관련성 또는 국가의 안전이나 국민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위태롭게 할 구체적이고 명백한 위험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반공법 제7조 의 ‘편의제공’에는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판단된다. 그밖에 달리 반공법위반의 공소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이는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는바, 따라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고 검사의 사실오인 주장은 이유 없다.

5. 결 론

그렇다면, 검사의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4항 에 의하여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이태종(재판장) 김일연 김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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