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가. 피고인이 경찰에서 조사받는 도중 범행을 시인하였다는 것을 직접 보고 들었다는 증인들의 증언 및 그들에 대한 진술조서 기재의 증거능력
나. 채증법칙을 위배하여 증거 없이 강간치상 등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였다 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한 사례
판결요지
가. 피고인이 경찰에서 조사받는 도중에 범행을 시인하였고 피해자측에게도 용서를 구하는 것을 직접 보고 들었다는 취지의 증인들의 각 증언 및 그들에 대한 사법경찰리, 검사 작성의 각 진술조서 기재는 모두 피고인이 경찰에서 조사받을 때의 진술을 그 내용으로 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어서, 피고인이 공판정에서 경찰에서의 위와 같은 진술내용을 부인하고 있는 이상, 위 증거들은 증거능력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나. 채증법칙을 위배하여 증거 없이 강간치상 등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였다 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한 사례.
참조조문
피 고 인
피고인
상 고 인
피고인
변 호 인
변호사 김일두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변호인의 상고이유(상고이유서 제출기간이 경과한 후에 제출된 피고인의 상고이유는 변호인의 상고이유를 보충하는 범위 내에서)를 본다.
1.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는, "피고인이 1993.8.27. 04:00경 충북 청원군 현도면 (이하생략) 소재 피해자(여, 당시 만 21세)의 집에서 피해자를 강간하려고 잠겨져 있지 아니한 문을 열고 피해자의 방에 침입하여 잠자고 있던 피해자의 목을 누르고 소리지르지 말라고 입을 막으며 주먹으로 피해자의 얼굴을 약 3회 때려 반항을 억압한 후 강간하려고 하다가 피해자의 비명소리를 듣고 피해자의 시어머니인 공소외 1이 방문을 열고 나오는 바람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미수에 그쳤으나, 이로 인하여 피해자에게 약 10일 간의 치료를 요하는 안면부 타박상을 입게 하고, 도주하기 위하여 위 방의 출입문을 발로 차서 유리창 시가 120,000원 상당을 손괴하였다"는 것이고, 원심은 제1심판결이 채용한 증거들과 원심 증인 위 피해자, 공소외 1의 각 증언을 종합하면 제1심이 유죄로 인정한 위 범죄사실을 인정하기에 넉넉하다고 판단하여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2. 그러나 피해자를 강간하려고 하였던 범인이 바로 피고인이었다는 원심의 인정은 수긍하기 어렵다.
이 사건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직접적인 증거들로는, 범인을 목격한 피해자와 피해자의 시어머니인 공소외 1의 경찰, 검찰, 제1심 및 원심법정에서의 각진술, 피고인이 현도지서에서 이 사건으로 조사받는 도중에 조사경찰관에게 범행을 시인하였고, 피해자의 시어머니인 공소외 1에게도 죽을 죄를 지었다고 말하면서 용서를 구하는 것을 직접 보고 들었다는 취지의 사법경찰리 작성의 공소외 1, 어영수에 대한 각 진술조서와 검사 작성의 전영배, 김태용에 대한 각 진술조서의 각 기재내용, 같은 취지의 제1심 증인 김태용, 원심 증인 전영배, 어영수, 공소외 1의 각 증언 등인데, 위 증거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신빙성이 없거나 증거능력이 없다고 할 것이다.
(1) 먼저 피해자와 공소외 1의 수사기관과 제1심 및 원심법정에서의 각 진술에 의하여 이 사건 발생 당시의 상황과 피고인이 범인으로 지목하게 된 경위를 살펴보면, 중앙엘리베이터주식회사의 기술직 사원인 피고인은 이 사건 발생 사흘 전에 같은 회사원인 공소외 어영수, 전정배와 3인 1조가 되어 위 현도면 죽전리에 건설되는 맥주공장에 엘리베이터설치작업을 하기 위하여 위 현도면에 내려와 숙소를 구하게 되었다가, 도로변에 있는 피해자의 집에 이르러 피해자의 시어머니인 공소외 1에게 부근에 방이 있는지를 물어보는 잠깐 동안에 공소외 1과 피해자를 처음 대면하게 되었던 사실, 사건 당일 새벽에 피해자의 방에 침입한 범인이 피해자의 얼굴을 세번 정도 주먹으로 쳤고, 이에 피해자가 "엄마야"하고 소리치자 피해자의 시어머니인 공소외 1은 아들 부부가 부부싸움을 하는 줄 알고 피해자의 방에 들어왔다가 범인을 발견하고 범인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범인이 발로 공소외 1을 찬다는 것이 잘못하여 출입문을 차면서 건넌방을 거쳐 뒷문쪽으로 도주하는 바람에 붙잡지 못하였던 사실, 사건 당일 아침에 피해자는 새벽에 침입한 범인이 키가 작고 안경을 착용하였다는 것을, 공소외 1은 범인이 자주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는 것을 서로 이야기하다가, 공소외 1은 아무래도 외지인의 소행이 분명한데, 3일 전에 방을 얻으러 온 사람들이 수상하다고 하면서 혼자서 피해자의 집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집에 묵고 있던 피고인 일행의 방으로 찾아가 방에 걸려 있던 옷들을 유심히 관찰한 결과, 새벽에 보았던 것과 같은 자주색의 티셔츠가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던 사실, 피고인의 방 밖에서 피고인 일행이 퇴근하기를 기다리고 있던 공소외 1은, 그날 비가 내리고 있어서 다른 때보다 일찍 퇴근한 피고인 일행(피고인과 어영수, 전영배)에게 이 자주색 티셔츠가 누구 것이냐고 물었고, 이에 피고인이 자기 것이라고 대답하자 공소외 1은 피고인을 지목하면서 간밤에 며느리 방에 침입한 것이 틀림없지 않느냐고 따졌고, 피고인이 이를 부인하면서 다툼이 계속되자, 위 전영배가 이런 일은 지서에 신고하여 지서에서 해결하여야 한다면서 현도지서에 전화로 연락한 사실, 연락을 받은 현도지서의 경찰관들이 피고인 일행과 공소외 1을 지서로 데려가 조사를 하면서 나중에 피해자도 지서에 데려와 같이 조사하게 되었는데, 피해자와 공소외 1은 피고인이 범인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하였고, 피고인은 이를 계속 부인하다가 자정 무렵에 피고인이 일시적으로 공소외 1에게 한 번만 살려달라고 용서를 빌면서 담당경찰관에게도 자신이 범인이라고 시인하였다가 곧바로 범행을 부인하면서 피의자신문조서에 날인하기를 거부하였던 사실 등이 인정된다.
(2) 다음으로 위 인정과 같은 사건의 경위에 비추어 피고인이 범인임에 틀림없다는 취지의 피해자와 공소외 1의 각 진술의 신빙성에 관하여 살펴본다.
(가) 피해자가 경찰에서부터 원심법정에 이르기까지 범인의 외모와 인상착의에 관하여 한 진술을 종합하여 보면, 범인은 키가 작고 말랐으며 안경을 쓰고 있었고, 범인 얼굴의 앞 부분 특징은 잘 식별하지 못하였으나 옆모습은 확실하게 보았는데, 귓바퀴의 중간부분(또는 귀밥)이 뒤로 제쳐졌고 이마가 뒤로 경사졌으며 얼굴이 타원형이 아니었다는 것이며, 비록 야간이었지만 날이 새고 있었고 범인과 5분 내지 10분(또는 10분 내지 15분) 동안 이야기를 하였기 때문에 확실히 범인을 식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는 처음 경찰에서 범행시각을 새벽 3시 내지 4시로, 공소외 1은 새벽 3시로 각 진술하다가, 피해자는 검찰에서 진술할 때는 범인에게 지금 몇시냐고 물었더니 4시라고 말하여 주어서 범행시각이 4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보다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는데, 비록 후자의 진술이 정확한 진술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원심법원의 천문대장에 대한 사실조회결과에 의하면, 범행 당일의 일출시각은 충주가 05:55, 대전이 05:58이고, 월몰시각은 충주가 00:07, 대전이 00:11이어서, 범인이 피해자의 집에 침입한 시간이 일출 약 2시간전이고 월몰 약 4시간 후였으므로, 당시 피해자의 방안이 상당히 어두웠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또 피해자는 시력이 0.3 내지 0.5이어서 평소에 안경을 쓰고 지내는데, 당시 안경을 벗고 자다가 깬 상태였다는 것이고, 당시 방안에 있는 물건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할 때였는데 / 가로등이 있으나 방 정면은 비춰주지 않았다고 원심에서 증언하고 있으며(공판기록 제138면에 첨부된 사진의 영상에 의하면 가로등은 피해자 집의 측면쪽에 있으며 피해자의 집으로부터 상당히 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검찰에서는 "제가 부엌쪽에 머리를 두고 누워 있었고 범인은 저의 얼굴을 마주 보고 있었는데, 창문이 제가 누운 반대쪽에 있어서 그 사람이 저를 정면으로 바라볼 때는 창문을 가리고 있기 때문에 빛을 가려서 잘 보이지 않으나 옆모습은 확실히 보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시 피해자는 방안의 물체가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는 어두운 방안에서 안경을 벗은 눈으로 범인의 정면을 바라보고는 있었지만 그 정면에서 바라보이는 얼굴의 눈, 코, 입 등의 특징은 보지 못하였고 단지 얼굴의 윤곽이 타원형이 아니라는 정도 밖에는 식별할 수 없었던 것이며, 옆모습도 귀 중간부분의 특징과 옆에서 보이는 이마의 경사 정도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에 불과하여 나중에 동일인인지 식별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범인의 얼굴 특징을 관찰하였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고, 이 점은 피해자가 원심법정에서 증언할 때 "사건 당일 현도지서에서 경찰이 피고인을 가리키며 범인이냐고 물었을 때 바로 대답을 못한 사실은 있지만 그 이유는 보호실에서 피고인의 앞모습만 보아서 단정을 못했기 때문이고, 그러나 보호실에서 나오다가 피고인의 옆모습을 보고는 범인임을 알게 되어 새벽에 본 사람이 맞다고 경찰에게 말하였다"고 증언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보더라도 분명하여진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어두운 방안에서 범인의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던 피해자가 날이 밝은 후에 앞모습을 보고는 피고인을 범인으로 단정하지 못하였으면서 옆모습을 보고는 범인으로 단정하였는데, 범인으로 단정한 옆 얼굴 특징이 귓바퀴의 중간부분이 뒤로 젖혀졌다는 것과 이마가 뒤로 경사졌다는 정도에 불과하다면, 피고인과 범인이 동일인임이 분명하다는 취지의 피해자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고, 키가 작고 말랐으며 안경을 쓰고 있었고 귓바퀴의 중간부분이 뒤로 제쳐졌고 이마가 뒤로 경사졌으며 얼굴이 타원형이 아니었다는 취지의 범인의 외모와 인상착의에 관한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범인이 피고인과 동일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 다음으로 범인이 입고 있던 상의가 자주색 티셔츠였는데 그 색깔이 피고인의 방안에서 발견된 티셔츠와 똑같았으므로, 피고인이 범인임에 틀림없다는 취지의 공소외 1의 진술의 신빙성에 관하여 보면, 공소외 1은 경찰 이래 원심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진술하기를, 당시 피해자의 방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또 부부싸움을 하는 줄로 알고 부엌에 불을 켠 후 건넌방을 거쳐 피해자의 방에 들어갔더니, 범인이 도망가려고 반대편 창문을 발로 서너번 찼으나 방문은 열리지 않고 유리창만 깨지니까 범인이 어쩔줄 몰라 왔다갔다 하기에 붙잡으려고 보니까 안경을 쓴 조그만 사람이 뿌리치고 건넌방 쪽으로 도망을 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소외 1은 어두운 피해자의 방안에서 극히 잠깐 동안 범인을 보았을 뿐인데, 야간에 범인이 입은 티셔츠의 색깔을 정확하게 구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할 것이고, 자주색이라고 하더라도 그 농도에 있어서 차이가 있는 것이므로 공소외 1의 증언만으로 범인이 입었던 옷색깔이 바로 피고인의 티셔츠의 색깔과 똑같은 자주색이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특히 공소외 1은 경찰에서, "저는 당시 피고인에게 이 자주색 티셔츠를 입고 우리집에 왔지 하고 물어보니 그런 일이 없다고 하면서 자주색 티셔츠에 카라가 있고 팔이 달려 있더냐고 되물어 오므로, 저는 카라가 없고 팔이 달려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한바, 그때 피고인과 함께 있던 사람(전영배)이 지서에 신고를 한 것입니다"라고 진술하고 있어서 과연 공소외 1이 범인이 입은 티셔츠를 얼마나 유심이 보았는지 상당히 의심스러운데다가, 5분 내지 10분간 범인과 대화하였다는 피해자도 진한색이었다고 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범인의 옷색깔을 범인이 도망하는 순간 잠깐 동안 본 공소외 1이 그것도 야간에 정확하게 식별할 수 있었는지도 의심스럽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야간에 순간적으로 본 범인의 옷 색깔과 키가 작았고 안경을 썼다는 범인의 외모에 대한 기억만으로 피고인과 범인을 동일인이라고 단정하는 취지의 공소외 1의 진술도 신빙성이 없다고 할 것이고 / 가사 범인이 입고 있던 옷의 색깔이 피고인이 입은 티셔츠의 색깔과 같았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실이 이 사건 범죄사실을 유죄로 인정할 수 있는 직접적인 증거가 될수도 없는 것이다.
다. 다음으로 피고인이 현도지서에서 이 사건으로 조사받는 도중에 조사경찰관에게 범행을 시인하였고, 옆에서 같이 조사받던 피해자의 시어머니인 공소외 1에게도 죽을 죄를 지었다고 말하면서 용서를 구하는 것을 직접 보고 들었다는 취지의 사법경찰리 작성의 공소외 1, 어영수에 대한 각 진술조서와 검사 작성의 전영배, 김태용에 대한 각 진술조서의 각 기재내용, 같은 취지의 제1심 증인 김태용, 원심 증인 전영배, 어영수, 공소외 1의 각 증언에 대하여 살펴보면, 위 증거들은 모두 피고인이 경찰에서 조사받을 때의 진술을 그 내용으로 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어서, 피고인이 공판정에서 경찰에서의 위와 같은 진술내용을 부인하고 있는 이상, 위 증거들은 증거능력이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당원 1983.7.26. 선고 82도385 판결 ; 1984.1.24. 선고 83도2799 판결 참조).
3. 그런데 검사가 제출한 나머지 증거들은 모두 정황증거에 불과하여 이 사건 공소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직접적인 증거가 되지 못하는 것인데, 그러한 정황증거들과 피해자와 피해자의 시어머니가 한 진술들 중 범인의 외모나 얼굴 특징에 대한 진술들을 합하여 본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이 범인이 아닐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어 보이므로, 이 사건 공소사실이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할 수 있는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원심은 채증법칙을 위반하여 증거없이 위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제1심판결을 유지하고 있어 파기를 면치 못한다고 할 것이니, 논지는 이유가 있다.
4.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